데프콘 1부 – 한중전쟁

  1999. 7. 16  15:00  대전, 정보사단

  1997년,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자 한국군은 그동안의 대(對) 북한 정보업무 편중에 대한 반성에서 국제군사정보를 담당할 새로운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연구단계에 불과한 정보군단을 모델로, 정보사령부와 기타 잡다한 정보업무 담당부서를 통합하여 정보사단을 창설하게 되었고,  이 사단은 국제정보와 한반도 주변의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대통령 직속 부대가 되었다.  이는 한국군이 그동안 동족상잔에 대비한 군대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국민의 군대로 재탄생되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정보사단은 유성의 3군본부와 달리 교통이 편리한 대전에 본부를 두고 지방 각지에 파견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이 끝나자 대전에 있는 정보사단에서는  통일참모본부와 각 군에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는 회의가 있었다. 각 여단장급들과 고위 국실장,  그리고 주로 정치학자나 군사학자인 민간인 고문들이 참가했다. 정보사단장인 이 재영 중장의 사회로 열띤 회의가 벌써 두 시간째 지속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의 원인은 해안지역에 대한 부의 편재로 인한 내륙지방 인민의 불만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인 불평등 심화, 그리고 연속된 국영기업의 파산으로 인한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반발, 게다가 등 소평 사후의 권력투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등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중장이 단말기의 한쪽면에 부관이 정리해 준 내용을 읽어갔다. 이 회의는 화상으로 각 군 본부와 정보참모본부, 심지어 남북의 고위 정책 담당자들과 정보관련기구에도 연결되어 그로서는 자신을 내세울 절호의 기회였다.이 중장은 계속 회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의장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회의에 직접 간여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왜 광동성과 복건성의  군산(軍産)연합이 북경과 상하이의 기존 권력집단에 대해 승리했는지에 대한 토의를 하겠습니다. 먼저, 중국전문가이신 신 은정 교수께서 말씀해 주십시요."

  이 중장이 신 교수를 힐끗 보았다. 중국내전의 발발을 예상하여 유명해진 신 교수는, 그러나 아무리 봐도 똑똑해 보이진 않았다. 얼굴에 가득한 주근깨, 여자답지 않게 큰 키, 두터운 안경의 그녀는 주근깨를 가리기 위한 수단인지 화장도 진하게 하고 있었다. 37세의 노처녀인 젊은 교수가 세미나에 참가한 학자처럼 정리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사단장께서 정리하신 대로 중국의 인민들은 화합이 깨지고 파편화되었습니다. 개방화 정책으로 인한 초기의 산업화는 중국인민들에게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마련해줘서 좋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나타나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농민 폭동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인민해방군의 각급부대들은 군사훈련이 아닌 경제활동에 내몰렸으며 이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컸습니다. 95년도에 군의 기업활동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기업활동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군인들도 많았지만 어쨋든 각급 군부대에 대한 중앙정부의 확고한 지배력이 흔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각 성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경제개방을 전후하여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하여 작년 겨울부터의 북경의 권력투쟁을 기화로 지방정부들이 독립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티벳이나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먼저 독립 움직임을 보였다는게 이상하죠.

  이들 지방들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상당한 수준의 산업화가 진전되어 부의 축적이 있었다.  둘째, 이는 중국 개방화 정책의 혜택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한 배분이었다.  세째, 군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신흥 중산층간의 강한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음, 신 교수.그건 내전의 원인아닙니까? 광동성과 복건성 연합이 이번 내전에서 승리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군사적 요인을 뺀다면…"

  이 중장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젊은 여교수에게서 강의 듣는 듯해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력이 우월해서 그런거 아니냐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신 교수는 안경 너머로 이 중장을 흘끗 본 다음에 말을 이었다.

  "첫 반란은 상하이와 인접한 저장(절강)성과  장쑤(강소)성에서 일어났습니다. 두 지방 역시 연안지역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경제개발이 되어 부의 축적이 있었다는거죠. 이는 동시에 부의 배분이 불평등해서 이지역 인민들의 불만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까지는 지방 군부의 가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파산한 국영기업의 폐쇄를 막으려는 노동자들의 소요사태를 북경군구에서 온 진압군들이  과잉진압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분노한 노동자, 농민, 실업자들의 폭동이 이어지고 급기야 공장파괴 운동으로까지 확산되자 그 지방 군벌과 산업자본들의 우려를 자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각지에서 민병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신 교수의 강의는 길어질듯 싶었다. 그러나 누구도 신 교수의 발언을 막지 못했다. 1995년 등소평이 유언으로 남긴 것은 군부, 지방, 소수민족에 대한 중앙정부의 권위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군부나 지방세력, 또는 중국 내의 소수민족은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여 중국이 통일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세력이었다.중앙의 공산당 정부는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데 신경을 썼고,  미국정부의 중국정책은 중국내 소수민족의 인권, 특히 티베트민족의 독립에 관심이 있었다.그리고 다른 중국전문가들은 홍콩이나 대만과의 갈등을 예상했으나,  지방별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갈등의 심화는 신 교수가 처음으로 예리하게 지적했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자본과 인재의 유출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중국정부의 배려로 자유가 보장되자 떠났던 자본과 인재가 되돌아와 홍콩과, 인접한 광동성은 더욱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대만의 대자본이 투입된 복건성을 제치고  광동성은 중국 경제혁명의 견인차가 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홍콩은 1국 2체제 아래 정치체계가 다르면서도 홍콩과 광동성의 이익이 합치하자 두 지역은 급속도로 가까와졌다.  홍콩 이양전부터 긴밀하던 경제관계는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단계였는데 이양 후 홍콩의 자본가들과 광동의 당, 군 간부들과의 관계가 밀착되었다.짧은 시간에 많은 정략결혼이 이뤄졌고,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커질수록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갔다.

  광동성과 복건성은 각자의 배후 자본인  홍콩과 대만의 분업체계처럼 분업화되면서 관계가 긴밀해져갔다.  복건성이 공업제품을 생산하면 광동성이 이를 국제시장에 판매하는 식의 분업체계였다.  두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 분업체계의 형성과정부터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며 유대감이 강해져서 두 지역은 거의 한 지방처럼 되었다.

  광동성과 복건성은 군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성의 고위 당,군 간부들은 밀착되어갔다. 광동은 광주대군구, 복건은 남경대군구였으나 이 지역 고위 군관계자들은  뇌물이나 경제적 압력 등 갖은 방법으로 인사 이동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아 두 지역만 오갈 수 있었다.

  두 지역이 밀착하고 폐쇄성이 강해지자  중앙정부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뒤늦게 압력을 가했으나 오히려 역효과만을 빚어냈다.  먼저 경제적 통제장치로 세금의 차등부과를 실시했으나 외국자본의 급속이탈과 경제침체로 중앙정부의 권위만 추락했으며 인민들로부터 중앙정부는 경제개혁의 걸림돌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고위 군관계자들을 대거 변방으로 인사이동 조치를 취했으나 광동성과 복건성의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들이 부도사태가 속출하여 다시 군 장성들을 변방에서 불러와야했다.

광동과 복건의 군 장성들은 이미 이 지역 주요 경제인으로 깊숙히 뿌리내린 것이다.

  중앙정부가 이들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자  이 지역의 당,군,경제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결합하여 그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광동과 복건의 주변 지역인 강서, 호남, 호북, 안휘, 절강성, 귀주, 해남성 등으로부터 해마다 수 십 만명의 주민이 일자리와  자본주의적 기회를 찾아 두 지역으로 몰려갔으며 이 지역들은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 즉,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하여 산업이 재편되고, 두 지역으로부터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했다.

  자본주의화하면서 남부연안이 급격히 발전하자 이 지역에서는 화폐가치의 변동이 심한 인민폐보다는 미국 달러와 홍콩달러가 기준화폐로 부상하여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80년대부터 광동성의 극히 일부지역에서만 유통되던 홍콩달러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광동-복건성의 경제적 역할이 커지자 남부중국의 기준화폐로서의 역할을 맡게된 것이다.전국적으로 통용되어야할 인민폐나 각 성의 화폐는 이들 지역에서는 유통력을 상실하였다.

  언어도 북경어가 점차 쇠하고 광동어가 세력을 뻗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서는 이미 광동어가 표준어가 되었고 광동어를 모르면 아예 경제계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남부중국의 학교에서는 이제 북경어를 따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반대로 북경과 상하이의 대학생들은 광동어 배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광동어는 출세와 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남부중국의 지배권은 군사계에도 영역을 넓혀갔다. 그동안 중국의 제 1의 적은 구 소련이어서 대부분의 군사력이 러시아국경에 밀집해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도 차츰 약화되자  러시아국경의 지상군이 감축되고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남부중국의 방어를 위해 이 지역 해군과 공군이 증강되었다.  또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부중국에 비해 장비와 인원에서 크게 뒤지던 남부중국의 지상병력은 경제인들과 군 영기업들의 협조로  각 집단군마다 하나씩의 기갑사단을 갖추게 되었고 그 질적 수준은 미국이나 러시아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화되었다.  그리고 중앙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병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이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게되었다.  남부중국은 중앙정부 도움없이도 경제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과 사실 중앙정부가 남부중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중앙정부는 남부중국 각 성의 눈치를 보게되었다. 특히 광동성장과 복건성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중앙에도 미치게 될 정도였으며 두 성장(省長)은 중국의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에서도 일곱자리밖에 없는 상무위원직에 오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또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장과 전인대의 주요 전문위원회의 위원장은 광동어에 능통한 남부중국인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묵계가 이루어졌다.

  전통적으로 정계와 재계에서 우세한 지위를 점하던  북부중국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번지기 시작했다.정치계에서까지 남부중국인들에게 밀리고 광동-복건성이 주도하는 지역별 분업화에 동참하지 못하거나 적응이 느린 북부중국의 국영기업들이 부도사태로 쓰러져갔다.  북경과 상하이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났으며, 모처럼 창업된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이 부도로 도피하거나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남부중국이 경제성장의 단맛을 즐기는 사이에 북부중국은 도태의 쓰라림을 맛봐야했던 것이다.

  북부중국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격은 절강성 호주(湖州)에서 있었던 파산한 국영기업체 노동자들의  소요사태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었다. 절강성은 대만과 접했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룬 복건성의 바로 북쪽에 위치하였으나  상하이와 인접하여 중앙정부의 간섭을 많이 받았다.그리하여 남부중국의 경제적 성공의 대열에서는 탈락하고 북부중국인들로부터는 질시를 받는, 묘한 완충적 지역이었다. 이 지역 인민들은 광동성과 복건성의 부에 대한 부러움과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하고  소요가 확산되어 국영공장과 외국인 합작공장을 파괴하자, 남경군구 소속의 지방 군사력인 인민무장경찰이 치안유지를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북경군구의 예비대 성격인 제남군구의 병력을 파견하여  파업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중앙정부의 감정적인 대응과 남부중국에 대한 군사적인 시위의 성격을 띤 이 사태는 그러나 절강성과 안휘성 등 중립적인 지역들이 대거 남부중국에 가담케하는 결과를 나았고, 중국인들은 전체 중국의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의 새로운 주역으로 남부중국의 광동성과 복건성에 기대게 되었다.

  "중앙정부는, 아니, 북부중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민심을 얻는데까지 실패했습니다."

  신 교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남부중국은,  아니, 모든 중국인들은 북경과 상하이 출신인 고위 당 관료들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개방화 초기에는 이들의 주도하에 성공적으로 경제개혁을 이루어냈지만 아직도 개방의 속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등 어느 정도 개방화가 이루어지고 나자 개방의 주역들이 오히려 개방의 장애물이 되어버릴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져버렸습니다."

  신 교수의 주도하에 토의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결국 결론은 경제력에서 훨씬 우월한 남부중국이 당시 중국정부를 탐탁치 않게 본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업고, 그리고 돈이 궁한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무기를 대량 구입하여 막강한 북경-상하이 연합에 대해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전 중의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상호 파멸과 사용한 측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우려하여 핵폭탄의 사용이 자제되어 다행이라는 결론이었다.

  "다음 전쟁을 예상한다면, 아무래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 되겠죠. 아니, 그 전에 베트남과 필리핀이 될까요?"

  좌중에서 놀라움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1999년의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이나 베트남을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중국과 대만은 밀월관계 아닙니까?  물론 남사군도 문제도 있고 자유왕래가 당분간 막히긴 했지만  내전이 끝났으니 곧 원상회복될 것이오. 그리고  중국의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대만의 자본과 마케팅으로 세계 경제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정도인데.. 설마 중국이 경제위기의 부담을 지고 대만을 공격하려 하겠소?"

  이 재영 중장이 놀라서 물어보았다. 신 교수의 주장은 정보사단의 최근 평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대만과 중국은 최근 경제적으로 밀접히 결합하였고 긴장상태가 해소되어 구태여 침공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또한 경제를 중요시하는 광동-복건 연합이 정치적 주도권을 쥔 마당에 전후 복구에 힘써야할 중국이 대만에 눈돌릴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과 외무부 및 안전기획부 등 정보업무 담당부서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중국 공산당의 개혁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 후에 보수주의자들로 몰린 것처럼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의 보수적 정치체계가 보다 자유로운 복건과 대만간 인적, 물적 유통을 막고 있습니다. 대만이야 생존을 위해서 그랬다지만 내전 동안에 중앙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남부중국인들에 대한  자본동결과 출국통제는 광동-복건성 지도층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다시 교류가 재개되긴 했지만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대만과는 아무래도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중화민족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아실겁니다. 한족(漢族)은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도 수천년간을 그들의 땅에 살아왔습니다. 그 거대한 땅덩이와 함께 말입니다."

  신 교수가 잠시 쉬고 유리잔의 물을 마셨다.  당연히  생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을 더럽히고 그 대가로 비싼 물을 사서 마시니 얼마나 비경제적인 동물인가 생각했다.  오늘 아침엔 집에 생수가 배달되지 않았다. 지하수원이 오염되어 생수공장이 폐쇄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젠 다른 생수를 주문해야겠다고 신 교수는 생각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사군도때문이가요?"

  나영찬 대령이 호기심에 가득차 물었다.신 교수가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중년의 군인들 사이로 신사같이 말쑥한 젊은 대령이 보였다.저 나이에 이 정도 계급이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일 것이라고 신 교수는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신 교수가 짧게 대답했다. 중국은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영토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수천년간 농경민족이어서인지 땅에 대한 애착은 비정상적일 정도였는데, 산업화가 진행되어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자 드넓은 남중국해(남지나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남사군도는 고대부터 중국의 어부들이 어로활동을 해왔다는 후한지(後漢誌)의 기록을 근거로 강력하게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필리핀과 베트남 등의 주변국들은 이에 반발하여 중국과 분쟁중이며, 해상교통로의 유사시 봉쇄를 우려한 자원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은 은근히 중국의 남사군도 영유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이 해로는 두 나라의 사활을 쥐고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주변의 중소국가끼리 분할하거나 공동영유하는 방안을 유엔에서 지지해왔다.  이들 두 나라는 중국의 독점적인 남사군도 영유를 방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무역량 등 당장의 이익을 본다면 당연히 중국을 지지해야하지만 중국이 더 강해졌을때 만약 중국과 분쟁이 생긴다면  남사군도는 한국과 일본의 목에 겨눈 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자원 말인가요?  막대한 석유매장량…  중국 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나 대령의 말에 신 교수가 빙긋이 웃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신 교수가 자리를 같이한 고급장교들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중국과 일본, 또는 중국과 한국간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남사군도의 전략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니, 한국과 일본간의 분쟁에서도요."

  젊은 정치학 교수의 단순한 가정이었지만 군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심상치 않은 이야기였다. 이웃나라란 항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고 언제나 제 1의 가상적국이기 때문이었다. 우호적인 관계일 때도 이웃나라에 파견되는 대사는 정치적으로 장관급 이상이었으며 정보관계 종사자들의 숫자도 다른나라에 파견되는 주재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 상례였다.옛부터 전쟁은 항상 이웃나라로부터의 침략으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었으며 실제로 그래왔다.

  "해군의 자료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해군출신인 표 인준 중령이 먼저 대답을 했다. 해군의 역할의 하나가 무역로와 해상수송로를 확보하는 것이므로 해군에서는 항상 해상수송로의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다.

  "남사군도가 중국에 의해 봉쇄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은 호주를 우회하여 석유류를 수송해야합니다. 이 경우 운송기간은 호주 남부 해상의 복잡한 해로를 감안하면 1개월 이상 늦춰집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전시에는 석유류의 소비가 급증하는 것이 상례이고, 에너지 저장시설에 대한 적의 공격까지 감안한다면,그리고 해상운송수단의 부족을 감안한다면 1개월 내에 비축분은 소모가 되어버립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라는 것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현물시장에서의 구입이나 미국이나 멕시코같은 곳에서 수입한다면?"

  이 재영 중장이 입이 바싹 타서 물었다.  멀리 떨어진 남사군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 중장이나 다른 육군출신의 고위장교들은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싱가포르 석유 선물시장은  만약 중국이 남사군도 주변해상을 봉쇄한다면 시장 자체가 붕괴되어버립니다. 미국은 풍부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유독 석유만은  전략적으로 수입해왔습니다. 알래스카의 풍부한 원유를  1995년에야 수출을 허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원유를 거의 수출하지 않습니다.  멕시코는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원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는 너무 멀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브루나이나 인도네시아같은 산유국들로부터의 원유수입은 남지나해를 통과해야 합니다."

  표 중령의 설명에 이 중장이 허탈해지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호통을 쳤다.

  "그럼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무조건 중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단 말이오?"

  "중국의 입장에서 미래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한국과 일본입니다. 지리적 위치와 산업구조, 또는 인구와 경제력 등 국력에 있어서 말입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크지만 중국에는 아직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 교수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했다. 좌중은 신 교수가 또다른 예언을 하지 않나 걱정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다음 차례는 필리핀과 베트남인데 필리핀은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쉽죠. 아마 중국 입장에서 베트남과는 일전을 각오해야할 것입니다. 베트남을 먼저 치고 나중에 대만을 공격할 수도 있겠죠. 어쨋든 그 다음은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 신 교수가 예언을 하고 말았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보이던 중국의 내전을 예상한 신 교수, 이번엔 더 가능성이 없는 중국의 한국 침공을 예언했다.이 재영 중장을 필두로 모든 군인과 정치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신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도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교수가 중국의 내전을 예상했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상가라고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그의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이번 예언은 틀리길 바라는 것이 모두의 마음이었다. 이 중장이 갑자기 책상을 치며 물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럼 왜? 왜 중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한다는겁니까? 이유는 뭐죠? 내전 때의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행동?  군사적 위협? 경제적 라이벌이라서? 도대체 뭡니까?"

  신 교수가 이 중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계 사회주의라는 중국의 50년간의 목표,  그리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죠."

  한반도는 1997년 9월의 역사적인 통일협정을 시작으로 급속히 통일의 길로 접어들었다. 산업구조가 비슷한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독주제동에 실패한 남한과 경제재건에 실패한 북한은 파국을 막기 위하여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게 된다.

  당시의 남한 대통령은 1997년 초의 선거에서 의외의 당선을 한 홍 경식 대통령이었다. 전임 김 영삼 대통령이 잔여 임기를 남기고 퇴임하자 충남지사로 있던 그는  열렬한 시민들의 지지를 업고 일약 제 1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곧이어 실시된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0대 초반의 그는 90년대 초반까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5년에 실시한 최초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간신히 도지사로 당선됐었다.  당선 이후 그는 청렴한 공직생활과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충청남도를 엄청나게 발전시키는 업적을 쌓았다.그는 당파를 초월해 시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언론의 초점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영남의 비호남 정서와 호남의 비민자정서가 맞물려 중부 출신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홍 대통령은 경제발전은 물론 통일노력에 힘을 쏟아부었다.북한에 대해 각종 무상지원과 대외차관을 쏟아붓고 인적교류를 활발히 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사람과 물자가 남북으로 왕래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으나 남과 북의 열린 마음과 현실적 필요가 이를 가능케했다. 남북은 급속도로 가까와져서 급기야 북한이 개방한지 1년도 안된 1997년 9월에 통일협정을 맺었다. 홍 대통령과 북한의 김 정일 비서는 서울과 평양을 수시로 왕래하며 신뢰를 쌓았다.

  물론 통일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북 모두 군부의 강경파들이 평화통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자신들의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강경파들이 발호했지만 통일을 갈망하는 젊은 장교들이 이들의 야욕을 꺾었다. 남한에서는 국군 장성 몇 명이 수감되는 것으로 끝났지만 북한에서는 군부에 피의 숙청이 있었다.

  외국도 한국의 통일에 결코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북한에 제시하며 통일을 방해했으나 북한의 지도층이 결단을 내려 동족을 믿기로 하였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해결된 핵문제를 또 트집잡아 동해에 항모기동부대를 파견했다.그러나 한국 해군이 인민군 해군을 지원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여, 위기시에 한국에 남아있는  주한미군의 안위를 걱정한 미 7함대는 일본 사세보항으로 귀항해야 했다. 곧이어 주한미군의 철수가 시작되었고 한국은 미국으로 부터 혹독한 무역보복을 당해야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중국은 1999년 7월 1일에 영국으로부터 이양받은 홍콩을 경영하기 위해  침략근성을 보이지 않아야 했으므로 군사적 충돌이나 긴장은 없었지만 은근히 무역에서 압력을 가했고, 러시아는 한국의 만주와 연해주 수복운동을 경계하여 경제교류의 폭을 제한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만주와 연해주의 실지 회복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치욕을 치름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했다.

  남북 모두 통일과정 중에 발생한 사회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98년 한햇동안 수만쌍의 남북한 처녀, 총각들이 결합했는데 문화가 워낙 다른 두 지역 출신의 부부는  1년도 못가서 가정이 파탄나고, 이 문제는 크게 사회문제화되었다.이로 인해 남북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도 했다. 6.25때 북한에 토지를 두고 월남한 실향민들이 땅을 찾기 위해 수백만건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문제는 특별법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법이 일방적으로 실향민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라서 그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서서히 융합되어갔다.

  1999. 9. 12  19:30  용암포

  ‘오랫만에 맛있는 공기를 마셔보는군.’

  신의주 개방구 서남쪽 용암포의 남쪽에 있는 신항만에서 저녁놀을 향해 릴을 던지며 국군 제 11 기갑사단의 차 영진 중령은 생각했다. 봄엔 편서풍에 실린 화북의 황사와  중국 동북공업지대의 중금속 먼지바람에 시달리고,  여름엔 후덥지근한 장마에 짜증났는데 초가을의 저녁공기는 참으로 시원했다.

  릴은, 정확히 말해 낚시바늘과 갯지렁이와 봉돌과 낚시줄은, 멀리 중국 다사도 석유화학단지의 굴뚝연기와  그 너머 동구경제특구의 시가지 네온과 서쪽 하늘의 저녁놀이 뒤범벅이 된 서해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시커먼 박쥐가 봉돌을 좇다가 반대방향으로 날아 올랐다.  릴은 촤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풀리고 있었다.

  차 중령은 릴을 던지는 동안 지렁이 생각을 했다.

  ‘참 웃기는 경우는 지렁이를 비닐하우스에서 키운다는 것이다.서해는 이미 죽은 바다이고 갯벌은 썩어버렸다. 깨끗한 곳에서 키운 깨끗한 지렁이를,  더러운 바다에 살다 죽어가는 더러운 물고기에게 물리는 것은 얼마나 개같은 경우인가? 집사람은 내가 잡은 지렁이보다 더 더러운 물고기를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감성돔과 역돔도 구별 못하는 집사람, 가재미와 넙치는 어떻게 가릴까?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어찌 알지?’

  물이 튀는 것이 보였다. 이제 3분의 1 초 뒤면 ‘퐁’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릴은 계속 풀려 나갔다. 차 중령은 초조했다. 겨울의 서해바다는 차갑다. 10월 이후 연평도 이북의 바다에는 물고기가 없다.  바다가 얕아 물이 너무 차기 때문이다.이제 앞으로 낚시할 수 있는 기간은 2주 남짓.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용암포는 가을의 북한서해안지역중에서는 낚시하기에 꽤 좋은 조건이었다.

  ‘내고향 여수에서는 일년 내내 낚시할 수 있었는데…’

  차 중령은 압록강의 겨울낚시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북한의 강과 호수는 시커먼 공장폐수와 산성비에 절어버렸다. 아마 내년, 2000년 겨울부터는 강이 얼지 않을 지도 모른다.  중국 동북공업지역의 시커먼 폐수가 압록강을 흐르고, 중금속과 유황의 매연이 10년째 북한지방, 아니, 북조선에 비를 타고 내린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나라’의 환경이 희생되어야 하다니,정말 개떡같은 경우다.그래도 우리정부, ‘우리나라’의 ‘통일정부’는 중국에 항의를 강하게 할 입장이 못된다.’남한정부’는 중국과의 경제교류에, ‘북조선정부’는 과거의 선린우호에 발목이 잡혀 있다.아직 정치적 통일이 완전히 이뤼지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같은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특히 일본은 얼마나 집요하게 통일을 방해했던가.’

  ‘퐁’ 하는 소리가 나고 물결이 여러 겹의 동심원이 되어 퍼져 나갔다. 파문에 기름띠가 넘실댔다.  차 중령은 릴을 천천히 감았다. 왼쪽 외항에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정박 중이고 오른쪽으로는 멀리 압록강 제 2 철교가 보였다. 바다는 저녁놀에 물들었다. 하늘엔 중국 랴오닝성의 단둥(丹東)에서 다롄(大連)으로 가는 여객기가 붉은 비행등을 킨 채 서서히 선회하고 있었다. 공해문제만 빼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다.서서히 바다에 어둠이 깔리고 부두에는 전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화시대의 군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 중령은 완전한 남북통일 후의 군대문제를 생각했다.

  ‘감군을 한다지만 적을 잃은 군대…  유사시에 대비한다지만 예비군에 불과하지 않나…’

  이때 차 중령의 이동전화가 진동을 했다. 밥해놨으니 빨리 오라는 아내의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휴일에 낚시 왔으니 아내의 투정이 대단할거야.’

  천천히 전화를 들고 통화단추를 눌르며 대답했다.

  "여보세요. 이 현웁니다."

  "제 3전차 대대장 차 영진 중령은 지금 즉시 사단 사령부로 출두하시오. 2000부로 전군에 진돗개 3 발동. 차 중령은 복창하시기 바랍니다."

  전화의 다급한 남자 목소리와 그 내용에 차 중령은 깜짝 놀라 명령을 반복했다.

  "2000부로 전군 진돗개 3 발동, 제 3 전차대대 차 영진 중령 즉시 사단 사령부로!"

  전화를 끊은 그는 즉시 원터치자동낚싯대를 접고는 자기 차로 뛰면서 생각했다. 진돗개 3은 1997년 남북한 군대의 교차 주둔 이후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혹시 북한 군부의 강경파가 통일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아냐,그렇다면 나는 대대본부의 지휘위치에 가야하니 아니고…  그럼 독도 문제로 일본이?’

  차 중령은 시동을 킨 즉시 뉴스 전문라디오에 채널을 맞췄다. 통일국회에서의 북한지역 고용촉진법 통과소식에 이어, 남북 대학생들이 한글만 쓰기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당장의 급박한 위험은 없는 듯했다. 차로 부두를 빠져나가면서 차 중령은 전화로 대대 상황실을 불렀다.  오늘따라 상황실 직통전화가 통화중인 것을 보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차창 밖으로 전조등을 킨 인민군 군용트럭 세 대가 속도를 내며 지나갔다. 어둠속이었지만 트럭 뒷자리에 총을 든 인민군 전사들을 차 중령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이동전화의 통화중 연속발신기능 덕택에 곧 통화가 이뤄졌다. 대대 당직사관인 최 대위가 전화를 받았다.

  "최 대위? 나 대대장인데 무슨 일이요?"

  "대대장님.  2000부로 진돗개 3이 발동 중인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단에서는 국내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반복합니다. 국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작년의 남사군도(南沙群島) 분쟁이 크게 재발하거나 요즘 시끄러운 독도 문제로 일본의 도발 가능성이 있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국내문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현재 북한에 주둔하는 국군부대 지휘관들의 대부분은 요즘도 북한 인민군의 기습 포위공격을 받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최 대위가 말한 두 가지 가능성은 항상 예기되어 왔지만 차 중령의 부대로서는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통일해군은 지금 상당히 바쁠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럼 시간은 아직 있다고 보고,일단 장교와 하사관들의 소재를 확인하시요. 나는 사단사령부로 가고 있으니 최 대위가 모든 절차를 지휘하시요."

  그는 항만을 빠져나가, 선천으로 가는 지방도로에서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1993년형 프라이드DM 3 도어, 작고 단단하고 잔 고장이 없는 차였다. 지난해에 엔진을 교체하고 4륜구동으로 개조하면서 3방향 에어백과 광폭타이어, ABS, 12 CD changer 등을 장착하여 1,300cc 급으로는 호화롭지만, 겉보기에는 녹슨 긁힌 자국과 먼지 등으로 폐차 직전의 고물차로 보였다. 지난해 대전에서 근무할 때는 대전 지역 경주차 동아리인 Knight Riders의 준회원으로서 토요일밤마다 대전과 부산 사이의 고속도로를를 세 시간 반 만에 왕복하곤 했었다.

  1999. 9. 12  20:20  차련관

  날이 완전히 저물어 차련관 검문소에 닿았다.  차련관은 평안북도 철산군 북쪽지역의 역 부근이며 경의선 철도와 국도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교통의 요지다. 선천의 사단사령부까진 아직 절반 정도 남은 셈이었다.

  ‘검문소에 바리케이드! 자정 전에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차 중령은 불안해졌다. 전조등을 끄고 실내등을 켰다. 앞쪽의 양계장 트럭이 통과하자 검문소 뒤쪽 그늘에 인민군 장갑차가 보였다.

  ‘BTR-40 P!  대전차미사일 탑재형의 BRDM(구 소련에서 설계한 바퀴식 장갑정찰차)이다!’

  검문 차례를 기다리며 둘러보니 검문소 주위엔 무장병들이 꽤 있었고 모두 완전군장이었다. 인민군도 현 사태를 심각히 본 모양이었다. 통제소는 원형의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는데 옥상엔 대공화기가,아래 참호엔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다.

  ‘모두 북서쪽을 향하고… 중국이다! 중국에 무슨 일이 있다!’

  바로 앞의 승용차가 지나가고 차 중령 차례가 되자 차 중령은 육군신분증을 위병에게 주었다.  위병은 젊은 인민군 하급전사인데 깜짝 놀라 차 중령을 보더니 통제소의 군관에게 뛰어갔다.  검문소의 불빛을 배경으로 인민군 군관이 바삐 걸어왔다. 그 인민군 상위는 거수경례를 하고는 고개를 숙여 말을 걸어 왔다.

  "중령 동지! 실례디만 어데로 가십네까?"

  절도있고 정중한 질문이었지만 북한에 온 지 1년도 안된 그로서는 아직도 평안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렸다.

  "군에 비상이 걸려 사단사령부로 가는 길입니다."

  "알고 계시겠디만 중국이 대북을 곧 공격한다는 첩봅네다. 중국 접경전 지역과 해상교통이 통제 중입네다.  중령동지는 비상등을 키고 가시면 제가 다음 검문소에 연락하여 우선 통행하시도록 조치하갔습네다."

  "고맙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요."

  차 중령은 차의 속도를 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장한 인민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백미러에는 아까 자신을 검문했던 인민군 하급전사가 상위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 왔다. 남북군사협정에 규정된, 군적에 불문하고 상급자에 대한 경례를 그 하급전사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하며 혀를 찼다.

  ‘어차피 피차 놀란 것은 마찬가진데, 그런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 이상하군. 중국의 핵항모 해신 1, 2호 모두 지금 남사군도에 있을텐데…’

  해신 1호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중국 최초의 원자력수상함이기도 했다. 배수량 48,000t 급의 소형항모이며 단거리 / 수직 이착륙기와 헬리콥터를 싣고 있었다. 해신 2호는 6만톤급의 본격적인 항공모함으로서 항모탑재형 전투기와 대함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다. 중국은 그 외에도 두 척의 핵항모를 시험운항, 또는 건조 중이며 2010년까지는 총 6 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1999. 9. 12  20:40  평북 선천, 국군 제 11기갑사단 사령부

  사령부에 도착한 차 중령은 곧장 회의실로 뛰어 올라갔다. 회의실 벽에 걸려있는 대형 액정비전의 큰 그림에는 대만과 그 대안인 중국 난징 군구(南京軍區 — 福建,江西,浙江,安徽,江蘇省 관할)의 군사력배치상황이 있고, 아래 작은창에는 남사군도 근해에 배치된 각국 함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보참모가 한창 브리핑중인 가운데 그는 빈 자리를 찾아 앉은 뒤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난징군구의 정확한 지상군 배치도와  1개월 전과의 위치변동을 확인하였다.컴퓨터들은 유성에 있는 정보사단의 대형컴퓨터에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B-ISDN)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아시다시피 중국은 지난 1년 간에 걸친 내란을  거의 수습하고 요즘엔 홍콩경영에 열을 올려 왔습니다. 문제는 지난 내전 때 남사군도를 분할점령한 대만과 베트남이 이를 반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만으로서야 중국내전 중 베트남의 남사군도 점령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변명하고있지만 중국의 자존심이 상한 것은 사실이죠."

  정보참모가 조작하는 화면의 붉은화살표가 홍콩에서 대만쪽으로 잽싸게 움직였다.

  "중국은 남사군도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대만 모두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보사단의 평가입니다."

  남사군도의 무진장한 자원과 해상교통로로서의 중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중국의 자존심이었다. 중국의 내란을 틈타 중국이 자국 영토로 선언한 남사군도를 이들이 점령한 것을 중국은 영토침범으로 보고 선전포고에 앞서 무력시위와 외교전이 한창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여기에 일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구실로 이 지역에 88함대를 파견했습니다. 미국도 제 7함대를 이 지역에 파견할 것을 신중히 검토 중이며, 러시아는 이미 작년에 베트남과 상호방위조약을 강화한 바 있습니다. 또한 아세안(ASEAN)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네시아는 대만과 베트남에 의한 남사군도 분할을 비난하며 주변국에 의한 공동관리 또는 재분배를 요구하고, 필리핀과 말레이지아가 이에 가담했습니다."

  화살표가 각국의 위치를 따라 정신없이 화면의 좌우를 오갔다.

  "또한 브루나이는 최근 프랑스에서 연대규모의 항공기를 수입함과 동시에 조종사와 정비사 등의 용병을 모집중이라는 미확인 정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중화통일이라는 명분으로 마지막 남은 대만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대만해협 대안에 대한 병력배치를 완료했다는 중국정부의 공식선언이 조금전 있었습니다."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지구상의 마지막 자원의 보고, 30여개의 작은 섬과 몇 개의 암초가 전부인 총면적 0.4평방km에 불과한 일명 스프래틀리 군도가 177 억톤 매장량의 석유라는 강력한 미끼로 고기떼를 끌어들인 것이다.

  "유엔도 상임이사국 7개국이 어떤 형태로든 이 분쟁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중국의 대만공격 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충돌입니다. 엔 경제권의 수호와 아시아의 평화유지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내전으로 허약해진 중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킬 태세입니다."

  화면의 푸른 화살표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을 오갔다.

  "이럴 경우 19세기의 경우를 보지 않더라도 한반도, 최소한 우리나라 남해안과 평안북도 일대가 이들의 전쟁에 의해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 큽니다.일본과 중국 어느쪽에도 한반도는 훌륭한 방패로서의 가치가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중국과 일본이 교두보 선점을 위해 동시에 우리나라를 침공할 가능성도 있는겁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두 개의 강력한 적에게 포위공격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정보참모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 지도를 확대한 뒤, 최악의 시나리오인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동시 침공의 상황을 가정한 전략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화면에 갖가지 색깔과 숫자와 문자로 표시된 그림들이 움직이고 서로 부딪히며 명멸해갔다. 잠시 후 15일만에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최악의 결과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우리 통일정부는 현재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 중입니다만, 여러분들도 경계태세의 확립과 동시에 각 관측소에서는 중국측의 병력 이동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요."

  ‘한반도표 새우등이로군,  2차 청일전쟁에 전장은 또 한반도인가? 어떤 나라든 자기 영토에서 전쟁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차 중령은 머리를 긁으며 생각했다.  두 개의 강력한 나라가 서로 싸우기 전에 유리한 교두보를 차지하기 위해 애매한 다른 나라를 치는 경우는 역사상 빈번하게 있었다.  차 중령은 2차대전 때의 폴란드를 생각했다.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이후 두 나라의 싸움. 완충지대가 한 나라의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도 동시에 공격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두 나라가 합동작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폴란드는 당시에 최선을 다했으나 나라를 잃었다.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무기체계의 후진성이나 작전의 실패, 또는 국제정치의 냉엄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국력의 문제였다.  당시의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침공을 동시에 받았으나 한 나라의 공격도 막을 힘이 없었다. 현대전은 총력전이다.병력과 현대화된 무기 뿐만 아니라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인구, 그리고  이들을 전쟁에 집중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그 공동체의 합의에 의한 전쟁수행 의지 등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한가,통일정부는 있으나 아직 완전한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한 지역 모두에 기존의 정부가 일반행정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남쪽은 북쪽에 대한 막대한 경제 지원으로 통일비용이 과다함을 걱정하고 있고, 북쪽은 북쪽대로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흡수통일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남북한 통일정부에 의한 조정으로 간신히 북한이 지역적 식민지화되는 것을 막으며 사회적 통합을 수행 중이다.’

  차 중령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1997년 감격의 남북통일 시대를 맞았으나 통일의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먼저 상호방문과 경제교류를 시작했는데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극심하였다. 서로에 대한 앎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만남은 오해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법인데 50년간의 분단과 적대 관계의 남북은 서로를 너무나 몰랐었다. 이런 와중에 정치적 통일을 강행하기에는 위험이 커서 통일정부는 점진적인 통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적교류와 경제교류에서 시작하여 점차 사회통합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부터의 군사적 통합과 군비감축은 예민한 문제이긴 했지만 잘 진행 중이었다. 먼저 해군과 공군의 통합이 시작되었고, 장비상의 문제와 최종적인 평화통일의 담보로서 지상군의 통합이 늦춰지는 대신 일부 지상군의 상호주둔이 실시되었다. 남북한군이 기존의 인원과 장비를 가지고 국군은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국경에, 인민군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해안 지역에 주둔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각자의 수도인 서울과 평양은 기존의 남북한군이 수비하고, 기존의 비무장지대의 군사력은 휴전선에서 100km 이상 후퇴하여 배치되었고, 서로 감시단을 보내 서로의 병력이동을 감시하였다.그러나 역시 남북통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한민족의 생존이었다.

  "중국은 내일 새벽에 남사군도를 공격할 것같다는 정보사단의 보고가 있습니다."

  정보참모의 브리핑이 계속 이어졌다.

  "대만 해협의 대안에는 인민해방군의 지상군과 공군,  그리고 해군이 증강 배치되어 있으나,  이는 대만의 남사군도 지원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중국은 실추된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남사군도를 먼저 점령한 뒤에 대만을 친다는 것입니다. 통일참모본부에서는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긴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없기 때문에 군병력의 이동 등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하는 행동을 엄금한다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물론 예비군 동원령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정보수집은 최대한으로 하되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케 할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통참의 명령입니다."

  차 중령은 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집에 전화를 했다.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니 부대에 들르면 12시 전에 귀가하긴 이미 틀린 일이었다. 그의 아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귀신같이 알아챘다.

  "오늘 늦게 들어오신다고요? 또 비상이어요?"  걱정하는듯한 말 속에서도 셈틀 글쇠 두들기는 소리가 작게라도 틀림없이 들려왔다.

  ‘요즘 아내가 하는 머드(MUD)게임은 또 어떤 것일까? 오즈의 마법사? 아니면 사우러스볼?’

  그는 다른 머드게임 사용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화를 빨리 끝내야 했다.

  "예, 부대에 갔다가…"

  차 중령은 그냥 부대에서 잠을 잘까 생각했지만  아는 사람이라곤 별로 없는 북녘땅에서 외로워하는 집사람이 안스러워 마음을 고쳐 먹었다.

  "1시쯤 퇴근할테니 먼저 자요."

  물론 그의 아내는 자신이 올 때까지  잠을 자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게임이 조금 난폭해질 것이다. 차 중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화를 끊은 차 중령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자신의 대대를 생각했다.젊은 사병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북의 군대가 통합되어 가면서 병력감축과 지원병제도가 자연스럽게 논의되자 병역기피풍조가 남북의 젊은이들에게 만연되었다. 마지막 징병제로 군에 가지 않기 위해 진학,유학, 질병 등 갖은 사유로 병역을 연기했다. 차 중령은 전차병교육을 마치고 대대에 갓 배치된 박 일병의 말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저는 사회에서 돈도, 빽도, 대학에 갈 머리도 없어 군대에 끌려왔습니다. 친구들은 지원제로 전환될 앞으로의 2년간을 버티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재주도 없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싶기 때문에 하사관으로 장기복무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군복무기간중 건강만 지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전입 신고식 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박 일병의 말에 배석한 장교들은 당황하고 대대의 주임상사는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흥분했지만,부동자세의 신병들은 모두 동감한다는 뜻인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 중령은 그의 뻔뻔함에 처음엔 화가 났지만, 현재의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기에 있는 남북의 상황에 대한 생각과, 그의 처지에 연민을 느껴 도저히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복무기간 동안 제군들의 건강을 빈다는 짧은 훈시를 한 뒤 신병들을 보내고 나서 장교들과 주임상사에게 차분하게 명령을 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썩었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길 바라오.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요.앞으로 2년간은 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런 고분고분한 신병들은 이젠 없을 것이요.  그들에게 잘 해주시요."

  1999. 9. 12  24:00  국군 제 11 기갑사단 제 3 전차대대본부

  대대본부에 도착한 그는 장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장교와 하사관의 위치파악과 연락방법을 논의했다. 아직은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없으므로 휴가장병의 귀대나 전차의 방어지역 전진배치 등을 금하고 다만 장교들은 중국과 대만의 분쟁을 주시하라고 지시했다.만일에 대비하여 중국군의 무기 및 작전체계를 숙지해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젊은 장교들은 정보사단과 연결된 단말기를 두둘길 것이고 나이든 하사관들은 또 젊은 사병들을 못살게 굴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저 고집스런 늙은이들, 빨리 단말기 사용법이나 익힐것이지..’

  그러나 늙은이의 머리와 용기는 한계가 있었다.  인원과 장비 점검을 마치고 탄약과 식량의 추가 보급을 상의한 뒤  상황실장인 최 대위에게 지휘권을 맡기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의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차면 …’  그는 올해 추석에도 고향에 가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부모님께는 ISDN으로 인사드릴 수밖에 없겠군. 부모님이 ISDN 사용법에 익숙해지셨으면 좋겠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의 도움 없이는 전화 한 통화도 못하시는  부모님의 시대에 뒤떨어짐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너무 빠른 사회 발전 속도에 자신도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서워 아직도 아파트 6층을 걸어 다니시는 외할머니도 생각이 났다.

  ‘언젠가는 내 자신도 시대에 뒤떨어져 문명발전의 혜택을 포기하는 날이 오겠지…’

     난사군도(南沙群島)

  남사군도는 남지나해 남단의 한 군도로 30여개의 작은 섬과 40여개의 암초 및 산호초로 이루어진 총면적 0.4 평방 km의 작은 군도이다. 일명 스프래틀리 군도. 동쪽은 필리핀, 서쪽은 베트남, 남쪽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동으로는 필리핀,  그리고 북으로는 중국과 대만이 있으며 동아시아로 가는 해상로가 바로 옆에 있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천혜의 해상요충인 곳이다.

  그러나 그 지정학적 위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의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쿠웨이트 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는, 추정 10억에서 177 억톤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1968년부터 주변 각국은 일방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섬들을 점령한 후 자국 영토로 선언하였다.

  2차대전 후 일본군으로부터 장계석이 인계받아 남사군도 최대의 섬인 타이핑(일명,이투 아바)섬에 주둔 중인 대만을 비롯, 중국과 베트남,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이 산호초섬이나 암초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싸워왔고, 항상 국지전의 위험이 있던 곳이다.

  베트남은 1985년부터 석유개발을 시작, 연간 540 만톤의 석유를 생산하여 일약 산유국 대열에 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석유 수출액이 쌀수 출액을 초과하여,이 돈으로 90년대 베트남 경제의 발전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사군도를 둘러싼 주변국간의 갈등이 커지고,동남아시아 주요국들간의 군비경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중국은 광둥과 푸젠의 연안 지방정부들이 각 지방정부와 군부의 내란을 평정한 후, 다시 이 섬들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먼저 중국내란 중 대만과 베트남이 강제 점령한 섬들의 반환과 배상을 요구했으며,남사군도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남사군도가 자국 해안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자국 영토임을 선언했고, 대만은 45 년 일본군에게서 인수했다는 점을 내세워 기득권을 주장했다. 외교전과 함께 공중과 해상에서의 무력시위가 계속된 1999년 여름의 남사군도 근해는, 바다에 낚시대 하나 드리울 틈이 없을 정도로  각국 군함들로 초만원이 되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1999. 9. 13  05:50  남사군도 타이핑섬

   남사군도 최대의 섬인 이곳 타이핑섬엔 1개 대대의 대만 해병대뿐만 아니라 해군 항공대와 대함미사일부대, 대공부대 등이 전투준비 등으로 분주했다. 겨우 0.4평방킬로미터도 안되는 좁은 이 섬은 너무 혼잡하여 오히려 전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어제는 이륙중이던 F-14 전투기와 대잠헬리콥터가 충돌하여 헬리콥터 조종사들이 사망하는 참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활주로 동쪽 끝의 지하 벙커에서는  중국해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레이더관제관과 통신장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 구석에 있는 OTH 해상감시레이더 담당 하사관이 비명을 질렀다.

  "해신 2호 침로 변경, 현재 방위 0-1-2, 거리 20해리, 침로는 2-2-0! 속력 30노트! 기타 다수의 수상함정 남진중! 전투속도입니다!"

  "서사군도 상공에 다수의 항공기 출현, 숫자는 점점 늘어납니다. 현재 약 23기!"

  레이더 관제사관도 그 하사관에 지지 않을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

   "26기로 증가!"

  ‘올것이 왔다…’

  타이핑섬 수비대 사령관인  리 회이 대령은 남사군도 분쟁에 대한 최신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서사군도에서 중국군 경폭격기들이 다수 이륙하여 대만 함대 공격,  타이핑섬을 구원하려는 동사군도의 대만 전투기 부대를 중국항모에서 출동한 전투기가 요격,중국 해병대의 타이핑섬 상륙,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은 중국해병대에 의해 대만의 타이핑 수비대 전멸, 최악의 경우 중국에 의한 대만 침공…

  ‘그러나 이 섬은 우리 자유중국에 너무나 절실하다.’

  리 대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전 수비대 대공전투위치로,항공관제관 전투기 발진! 통신병은 현 상황을 제 2함대와 동사군도 수비사령관에 보고하라.  조기경보기의 보고는 없나?"

  곧 모든 수비대원이 전투위치에 배치되었다.  보조연료탱크와 중거리 대공미사일을 가득 실은 전투기들이 차례로 이륙하고  지상의 대공미사일은 모두 북쪽을 향했다.  대만의 제 2함대는 기함인 이지스 순양함의 지휘하에 모두 북쪽으로 전속 항진하며 중국 경폭격기의 대함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남사군도의 대만 정예 요격기부대는  찬란한 아침햇살을 오른편 하늘로부터 받으며 서서히 편대를 짜며 남하해갔다. 대만 최초로 미국제 F-14전투기로 구성된 타이핑 주둔 제 12전투비행단의 제 1대대장인 창 중령은 아침에 화장실도 못간 채 긴급출동한 것에 대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짜식들, 아침이나 먹거든 시작할 것이지…’

  이제 당분간 아침 단잠과 식사 후의 담배를 곁들인 여유있는 홍차 한 잔,그리고 비행대기시간의 동료들과의 돈내기 포커는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살아 남더라도 말야…’

  창 중령은 타이페이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해 냈다.  미인이며 중학교 수학선생인 부인, 소학교 2학년인데 벌써 웬만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10살배기 딸…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비록 내란으로 피폐해지긴 했지만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대만인들에게는 악몽 자체였다. 하방감시 레이다에 중국함대가 나타났다.

  ‘곧 전투기도 몰려 오겠지..’

  창 대령은 북쪽 하늘을 보았다.

  이제 전쟁을 믿지 않는 아시아인은 없게 되었다. 대만의 직선 총통에서부터 타이난 요트공장의 노동자들, 남사군도 근해에 배치된 일본해상 자위대 제 2호위함대 승무원들, 호지밍시 근교의 기지에서 긴급 발진한 베트남 전투기의 조종사들, 캄란만에서 출동하는 러시아 순양함 프룬제의 승무원들,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둔 한국의 어느 종합상사 회장.  모두 중국과 대만의 전쟁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유럽과 미국의 일반시민들도 위성중계TV 앞에 모여들었다.

  전쟁을 막으려는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대만의 패배와 중국복속은 기정사실이었다.  이제는 대만 복속 후의 아시아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관심일 뿐이었으며,이 지역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이번 기회에 아시아에서의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틈을 노리는 부류도 있었다.  남사군도 해역에 해군을 파견한 일본과 미국이 그들이었다.

  1999. 9. 13  06:00  대만 후아리옌(花蓮) 지하공군기지

  대만 북동부의 후아리옌의 지하공군기지에서는 계속해서 미라쥬 전투기가 이륙했다. 태평양연안의 작은 항구도시인 후아리옌의 교외에 있는 이 기지는 극동 지역 최대의 지하공군 기지로,  대만정부가 7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1993년 겨울에 완공한 대만 영공수호의 상징이었다.이곳에는 1993년 미국에서 수입한 F-16전투기와, 지난해인 1998년 중국의 내란을 기화로 대만에 대한 외국의 무기판매를 중국이 견제하지 못하자 미국에서 F/A-18 전투공격기를 대량수입하여 후아리옌 지하기지에 집중 배치하였다.  각 활주로별로 전투기들이 이륙준비에 바빴다.

  대만에서 자체개발한 슝펭3 대함미사일을 양날개에 실은 프랑스제 미라쥬 전투기는 1993년 수입한 것이었다.  미라쥬가 이륙하면 곧이어 미제 F-16 전투기와 F/A-18 전투공격기가 이륙할 차례였다.  물론 목표는 타이핑섬을 공격하는 중국함대와 경폭격기대였다.미라쥬와 F/A-18이 함대를 공격하고 F-16이 상공 엄호를 할 계획이었다. 물론 중국해군의 명백한 도발이 있기전의 선제공격은 억제된 상태였다.

  1999. 9. 13  06:30  대만 후아리옌 근해

  후아리옌의 동남방 20km 해상에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항해 중이었다. 5만톤의 원자력화물선인 이 배는 선체를 검게 칠하고 앞부분에 흰색 페인트로 흑환(黑丸)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었다. 선미에는 일장기가 바람에 날리고 갑판에는 컨테이너가 만재되어 있었다. 원자력상선 구로마루는 일본이 상업적 목적의 핵 이용을 시작한 1996년에 건조되어, 이듬해부터는 자매선 20여척을 만들어 세계의 항로에 투입되어 있었다. 그 중의 두 척을 중국이 비밀리에 매입하여 개조한 후 일본에 잠시 기항, 구로마루와 목적지를 바꿔치기하여 이 배로 선체를 위장하여 후아리옌항을 향하고 있었다.

  선교에는 보통의 상선보다 많은 선원들이 있었다.한 모니터에 중국의 통신위성으로부터 받은 남사군도의 각 군별 항공기와 함대의 위치가 그려진 자료가 영상에 나타났다.  영상에는 후아리옌에서 이륙한 대만 전투기들이 거의 남사군도 해역 상공에 도착하고 있었다. 선장이 함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작전 2호 발령!"

  짧게 외친 그의 말은 분명 중국어였다.이 배의 선장은 중국해방군 해군 북해함대 사령관인 리 소장이었다.그리고 이 거대한 상선의 배 밑에는 로미오급(중국 해군의 제식명 033식) 재래식잠수함 40여척이 배터리를 이용한 무음항해를 하고있었다. 상선으로부터 전기와 산소를 공급받고, 통신선을 통해 사령관의 명령을 받으며, 또한 수상의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의 무음장항이 가능했다.

  물론 많은 잠수함들이 좁은 수중공간에서 잠항하기때문에 잠항 중 잠수함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상선에 있는 잠항통제사관이 땀을 흘리며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상선의 통제관과 잠수함들은 모의훈련과 실전 훈련을 거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같은 시간 대만 남부의 최대 항구인 까오슝의 앞바다에는 구로마루의 자매선인 원자력상선 호오류가 항구를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 운반선인 호오류는 명목상 2천대의 일본산 전기자동차를 까오슝항에 하역하기 위해 대만영해에 진입하였으나, 호오류도 역시 구로마루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 위해 중국해군에 의해 개조된 배였다.호오류는 입항 직전 이미 잠수함들을 떼어 놓았다.

  작전 2호는 공격 예정시간 전에 대만의 해안에 도달하여, 잠수함들이 각각의 임무에 맞춰 자신의 공격위치로 출발하는 것이다. 공격예정 1시간전이었다. 먼저 상륙부대를 태운 잠수함 10 여 척이 호위잠수함의 유도를 받으며 출발했다.  그리고 상선의 호위를 맡아 대함미사일을 탑재한 공격형 잠수함들은 각자가 맡은 책임해역으로 흩어졌다.

  대만정부로서는 전쟁 전에 최대한의 물자를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해상의 항로는 대만에 식량과 생필품, 또는 군수품을 실은 각국의 화물선으로 붐볐다. 화물선은 상당히 큰 소음을 내므로 대만의 구축함과 대잠 초계기는 이런 해역에서 무음잠항하는 중국해군의  잠수함을 포착할 수는 없었다.  더우기 대만해협과 남사군도가 더 중요한 해역이기 때문에 이런 통상항로에는 대잠초계를 강화할 수도 없었다.후아리옌 항구 앞의 푸른 바다 속은 중국 잠수함들로 붐볐다.

  같은 시간, 남사군도 70 km 북방, 피어리 크로스 암초지대 상공

  ‘이제, 조금만 더…’

  해상 30 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대만 공군의 F/A-18 대함공격대 30여기의 편대장인 왕 대령은 무척 초조했다.대함미사일 발사 전 저공비행 중에는 레이더 사용과 편대기 사이의 통신이 봉쇄된다.후방 100여km 상공에서 선회중인 레이더 조기경보기 덕분에 적함대의 위치는 잘 알 수 있었지만 미사일공격 전에는 적 요격기 편대의 위치와 왕 대령이 지휘하는 편대기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간간이 고도 일만 미터에서 중국해군의 조기경보기가 발신하는 레이더파가 기체를 스쳐갔다.

  ‘이제 중국함대도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을 것이다.’

  왕 대령의 기체 하부에는 중거리 공대함 미사일인 하픈(HARPOON) 2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공대함 하픈은 개발 초기에는 INS(관성유도장치)에 의한 중거리유도와 액티브레이더호밍에 의한 단거리유도의 2단계 유도를 거쳤으나 목표물의 전자방해전, 특히 soft kill(채프나 레이더 발신미끼에 의한 오인 유도)의 발달에 따라 단거리 유도방식에는 TV 유도방식 등의 광학적 유도와, 기존 액티브 레이더호밍을 강화한 주파수도 약 액티브 레이더 호밍의 복합적 유도방식이 많이 이용되었다.조기경보기로부터 목표의 위치에 대한 데이터가 계속 수신되고 있었다.

  ‘어차피 장거리 함대공미사일은 저공을 비행하는 기체에는 발사할 수 없다. 이제 목표까지 80 km! 사정거리가 되고도 남는데 왜 발사 명령을 내리지 않는거야?’

  왕 대령 뿐만 아니라 다른 조종사들도 초초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몇 분 후에는 중국전투기들의 요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 수상함의 단거리 함대공미사일의 사정에 들어 올 것이다.F/A-18은 전투기로서도 훌륭하지만 무거운 하픈 공대함미사일을 2기나 장착한 상태에서는 30년전 개발된 미그 23의 상대도 안될 것이 뻔했다.더구나 상대는 러시아제 미그 29가 아닌가?  그렇다고 관제기의 명령없이 혼자만의 판단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없는 일,더 이상 참지 못한 왕 대령이 무선봉쇄를 해제하고 관제기 역할을 하고 있는 조기경보기를 불러냈다.

  "여기는 갈매기 6호! 도대체 왜 명령을 내리지 않는거야?"

  "갈매기 6호. 여기는 죠나단. 즉시 무선 봉쇄하시요.목표의 움직임이 있습니다.목표는 3-2-6으로 선회중! 이를 목표의 아군에 대한 적대행위 중지로 인정하고 남사군도 파견함대 사령관과 협의 중입니다. 반복합니다. 목표의 위치 변경 중. 항로를 유지하고 무선봉쇄를 지속하시요."

  왕 대령은 무선을 끊었다.2시 방향 상공에 중국해군의 함재기인 미그 29기 4대가 편대를 지어 서서히 나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군. 저놈들이 왜 우릴 공격하지 않지?’

  왕 대령의 F/A-18 편대 뒤를 따르던 미라쥬 전폭기 편대는 이미 동사 군도에의 착륙을 명령받고 귀환중이었다.

  1999. 9. 13  06:40  웨스트 리프 해역, 대만해군 프리깃함 쳉쿵

  대만 해군의 남사군도 파견함대 기함인 미사일 프리깃함 쳉쿵의 전투 함교에서는 중국해군 함대와 중국 전투기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부산했다. 큰 전자전 콘솔에 앉은 전자전 사관이 모니터를 계속 주시하며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목표 1, 진로 3-2-6. 목표 2, 진로 3-8-0. 목표 3, 진로 0-9-0!  레이더와 전자전 자료 일치합니다."

  "죠나단의 평가와 물까마귀 1호의 육안관측 모두 일치합니다."

  연이어 통신사관이 보고했다.  죠나단은 공중조기경보기, 물까마귀는 함대 소속의 초계기의 암호명이었다.

  "죠나단에서는 갈매기들의 진로변경을 계속 건의하고 있습니다."

  사령관은 고민했다. 중국이 이대로 돌아가는가… 다행이지만 이상했다.

  "일단 갈매기들은 후아리옌기지로 돌려보내. 독응은 동사기지로 유도하라. 목표와의 접근을 최대한 회피하라. 계속 경계 유지!"

  명령을 마친 사령관은 대만 해군본부와의 직통 화상전화를 들었다.전화는 위성경유로 즉시 타이페이의 해군본부 지하벙커에 연결되었다.

  "제 2함대 사령관입니다. 총장님! 목표가 진로를 바꿨습니다.단순 시위로 보입니다."

  사령관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늙은 해군총장은 잇따른 밤샘으로 더욱 초췌해 보였다. 대만해군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국부군 린 허우 제독이다.경험과 합리,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으로 오늘의 대만해군을 이끈 군인이었다.늙은 제독이 고뇌하듯 입술을 깨물더니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제독. 지금 적의 잠수함대가 보이질 않소. 해협에도, 남사군도 근해에도 없단 말이오.하이난(海南島) 해협 부근에서 간간이 부상하여 항해하는 잠수함이 보이지만 몇 척의 밍급 고물들 뿐이오. 4개 잠수함 전대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동시에 보이지 않소.특히 시아급과 한급 핵잠수함, 게다가 숫자가 가장 많은 로미오급 재래식 잠수함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단 말이오. 그리고 해협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제독은 2함대를 이끌고 돌아와 주시오."

  ‘그럼 남사군도는 포기하란 말입니까? 우리 대만의 보고(寶庫)를?’

  라는 말이 목젖에까지 올라왔지만, 석유보다는 국가의 존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2함대사령관은 해군총장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미라쥬는 동사에 배치해도 좋소."

  늙은 총장이 부하의 걱정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부족하긴 했지만 F-16과 미라쥬가 동사군도의 기지에 있으면  남사의 F-14와 함께 중국해군의 항공모함 2척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함대사령관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독은 함대의 대공전투경계를 해제하고 서둘러 대만남안의 항구이며 제 2함대의 모항인 쪼잉(까오슝 북쪽 항구)을 향해 항진할 것을 명했다.

  1993. 9. 13  07:30  후아리옌 동쪽 해상, 원자력 컨테이너선 구로마루

  "선장님! 창고가 보입니다. 좌전방 9 km!"

  망원경으로 해상을 감시하던 사관이  전방에서 커다란 화물선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함장에게 보고했다.통신사관이 통신전문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중국해군 북해함대 사령관 리 소장은  베이징의 당 중앙군사위로부터 위성경유로 타전된 짤막한 명령서를 손에 쥐었다.  명령서의 전문은 단 두 자로 되어있었다.

  ‘공격’

  공격명령서를 받은 리 소장은 지체없이 작전 3호를 발령했다. 작전 3호는 후아리옌 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의미했다. 후아리옌에서 이륙했던 대만의 F-16 전투기편대와 미라쥬 전투기편대가 동사군도의 대만 기지에 착륙한 것을 알고 리 소장은 월척을 손에서 놓친 듯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베리아 선적의 화물선 허미즈(Hermes)는 마주오는 항로에서 구로마루를 발견하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이 배는 후아리옌항에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다음 항구인 싱가폴로 가는 예정항로상에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허미즈는 큰 원을 그리며 서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구로마루의 갑판에 있던 수십개의 위장용 빈 컨테이너들이  기중기와 불도져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이들은 플라스틱으로 가볍게 만든 것들이었다.  몇 개의 컨테이너는 외각을 해체하자 속에 대함미사일과 대공 미사일 발사기가 나타났다.  선미(船尾)의 컨테이너를 해체하니 예인용 소나(SONAR)가 드러났고 승무원들이 기중기를 조작하여 이를 물속에 넣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갔다. 이 배의 승무원들은 이 한 순간을 위해 몇달씩 연습했던 것이다. 불과 10분 만에 모든 것이 다 정리되었다.

  갑판 중앙의 세 부분이 소리없이 내려앉았다.잠시 후 그 부분이 다시 올라올 때에는 러시아의 수호이-27K 를 본딴 중국해군의 함재전투기 섬(殲)-15형 3기가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채 나타났다. 구로마루는 중국해군의 위장항공모함이었던 것이다!

  구로마루는 올초에 칭다오(靑島) 조선소에서 비밀리에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받았다.선수에는 대지공격용 순항미사일과 대함미사일 수직발사기, 선미에는 대공미사일 수직발사기가 만들어졌다.배 중앙의 공간에는 함재기 격납고와 수리시설,보급창 등이 만들어졌고 배의 외측은 고강도 장갑판이 덧대어졌다. 선수의 활주로는 스키점프대로서 경사를 이뤄 단거리 이륙이 가능하도록 개조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원자력 상선 구로마루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항공모함 해신 3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렇나 위장을 위해 배의 전체적인 윤곽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첫번째 전투기가 증기사출기에 의해 시속 250km로 가속되어 이륙했다. 쌍발엔진인 이 섬-15형 함재기는 주익 앞의 대형 카나드를 약간 올린채 급 가속했다. 갑판작업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 전투기를 전송했다. 이어서 두번째, 세번째 전투기도 이륙하자, 다시 엘리베이터에 의해 올려진 다른 전투기들이 사출기로 옮겨졌다.  수호이 27-K의 특징인 주익과 연결된 두 개의 대형 수직미익이 남국의 햇살에 반짝였다.

  갑판작업원들의 함성을 들으며 리 소장은 젊었을 때 군사학원에서 본 미국영화가 생각났다. 진주만을 습격하기 위해 일본의 항모에서 이륙하는 뇌격기 조종사들에게도 갑판원들이 함성을 지르지 않던가?  리 소장은 다시 생각했다.

  ‘우린 이긴다. 대만은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아니잖는가?’

  그러나 어쨌든 동족을 공격한다는 것이 리 소장의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군인은 외적의 침략으로 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인데…’

  1999. 9. 13  07:40  까오슝(高雄)

  같은 시간, 구로마루와 같이 중국해군에 의해 개조된 원자력 상선 호오류는 작은 예인선들에 끌려 까오슝항에 들어왔다. 입출항 서류절차는 먼저 상륙한 일본인 항해장이 맡아서 끝냈고 밀수품을 검사하는 세관검사는 세관원을 매수하여 갑판 1층의 위장용 일제전기자동차 몇 대만 형식적으로 조사한 뒤 검사를 끝마쳤다.드디어 입항허가가 내려지고 자동차하역 전용항만에 배를 계류시켰다.본격적으로 하역준비가 시작되었다.

  까오슝은 대만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150만명인 타이완 제 2의 도시이다. 개발이 비교적 늦게 되어 중국이나 대만 특유의 고풍스런 유적은 없지만,  남국풍의 온화하고 깨끗한 도시이며 대만 최고의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까오슝항은 10만톤급의 선박이 정박가능할 정도로 항구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으며 세계 10대항 중에 꼽힐 정도로 큰 항구이다. 까오슝항 바로 북쪽에는 대만 해군 함대의 모항인 쪼잉항이 있어서 까오슝항에도 대만해군 함정들의 출입이 잦았다.  전쟁위기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에 외국 선적의 화물선들은 약간 서두르는 기색이 보였다.

  드디어 하역시키기 위해 배 우현의 브리지 세 개가 동시에 내려왔다. 소형트럭 몇 대에 분승한 항구의 노무자들이 일본산 전기자동차를 하역시키기 위해 각 브리지에 도착하여 하차했다. 그들이 브리지로 걸어 올라가려고 할 때, 갑자기 컴컴한 배안에서 수많은 차량들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반장님, 일본놈들이 하역전문 운전사까지 데려온 모양인데요?"

  한 젊은 노무자가 기가 막힌 듯 자동차 전용 항만의 하역반장에게 물었다.

  "그럴리가? 서류에는…"

  반장이 잠시 서류를 펼쳐 보던 중 배안에서 나는 엔진음을 듣고는 경악했다.

  "잠깐, 저 소리는 전기자동차가 아냐.  디젤엔진, 그것도 군용장갑차 엔진음이다. 나온다! 모두 피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 소련제 BMP-1 보병전투차의 중국 복제품인 WZ-501 보병전투차가 배와 부두를 연결한 브리지에 나타났다.보병 전투차 위에는 73밀리 포탑의 해치를 열고 올라와 대공기총을 잡고있는 인민해방군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노무자들을 보더니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총구를 그들에게 돌리고는 쏘는 시늉을 했다.장난스럽게도 입으로는 총소리를 냈다.

  "팡!  팡!"

  항만노무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세 개의 브리지에서는 수 십 대의 보병전투차와 이의 변형인 WZ-504 대전차 미사일 탑재차, 90식 APC, (APC : Armoured Personnel Carrier, 장갑병력수송차 또는 장갑차), 소

형인 62식 경전차, 그리고 기관총을 탑재한 사륜구동차들이 몰려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배 위에는 지상공격용 헬기들이 떼지어 날아올랐고,갑판 위에는 위장막을 치우자 대공무기들이 나타났다. 이어 중국 해병대원들이 완전무장한 채 상륙하여 예정된 위치로 달려갔다.

  ‘쿠아앙! 콰광!’

  자동차 전용부두의 바깥쪽 외항에 정박하고 있던 대만 해군 함정들이 연이어 폭발했다.  호오류를 따라 까오슝항에 숨어들어온 중국 해군 잠수함들이 어뢰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고속미사일공격정 ‘룽 창’이 어뢰 한 발에 산산조각이 나고, MWV-50급 소해정 한 척이 침몰했다. 해양경찰대 소속의 경비정 PP-823과  세관 소속의 ‘호 싱’도 어뢰를 맞고 불에 타며 침몰 중이었다.

  하늘에는 항구 바깥에서 날아온 중국 해군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들이 소우산(壽山) 군사기지의 공격목표를 찾아날아다녔다.항구는 계속된 폭발 소리와 사이렌 소리,  헬기와 장갑차의 소음과 총소리들로 시끄러웠다.  먼저 항무국(港務局)을 점령한 중국 해병대는 일부는 도로를 따라 소우산 군사기지로 가고 일부는 中山三路를 통해 까오슝 남동쪽에 있는 까오슝 국제공항을 점령하기 위해 이동해갔다.  중국해병대는 항구시설을 모두 점령하자 시내 점령에 나섰다. 까오슝 북쪽의 쪼잉항도 하늘과 바다, 육지의 입체적인 공격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안전한 항로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매는 어선들 사이에 숨어 대만 해양 경찰대 소속 PCL 경비정 한 척이 40 밀리 포를 연속 발사하며 호오류에 접근해 왔다. 호오류의 측면에 포탄이 관통하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러나 호오류의 상공에 있던 호위용 헬기가 발사한 대함미사일 한방을 맞고 그 경비정은 순식간에 폭발하며 침몰하였다.

  폭발하는 경비정에서 튕겨져 나온 12.7밀리 기총사수 왕 하사는 중상을 입은채 물위에 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참 푸르다고 생각했다. 상처의 출혈이 심했으나 고통은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자신 외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위장상선에서 방금 막 발사된 미사일의 연기가 보였다. 문득 자신이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매우 졸렸다.꿈인지 몰라도 까오슝항의 해군 관사에 있는 어린 딸이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왔다.

  ‘아빠. 이번 일요일엔 꼭 놀이동산에 가는거지?’

  왕 하사는 미소를 지었다. 딸의 웃는 얼굴이 까오슝항의 하늘에 보였다.왕 하사는 이번 일요일엔 꼭 딸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 9. 13  07:45  까오슝항 북서쪽 소우산(壽山) 365고지

  해상감시 레이더와 대공미사일 기지가 있는, 까오슝항을 내려다 보고있는 소우산의 정상 365고지에서는 잠수함에서 상륙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특수부대인 권단(拳團)과 기지수비대간의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미리 준비하고 급습한 권단의 공격에 기지수비대는 항복하고 기지는 쉽게 권단이 장악했다. 공격지원을 하기로 한 중국 해병대는 권단이 점령한 후에야 소우산 기슭에 도착할 정도로  권단의 공격은 신속했다.

  기지 점령 즉시 권단과 동행한 인민해방군 공군의 전업기술군관과 사 병들이 대만이 자체개발한 텐궁(天弓) 3호 대공미사일을 점검하고 일부는 해상감시 레이더를 조작했다.  이 고지는 중국군의 까오슝항 점령과 이후의 방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기능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소우산 기지가 점령됨으로써 대만 남단 근해의 모든 해상의 움직임들이 까오슝 서남방 150 km 해상의 중국해군 동해함대의 주력 수상부대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1993. 9. 13  07:50  까오슝공항

  까오슝 항구 남동쪽에는 까오슝 국제공항이 있다. 방금 막 착륙한 타이쭝(臺中)발 여객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까오슝항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폭음을 듣고 놀랐다. 까오슝항이 있는 방향에 치솟는 검은 연기와 불꽃들, 기관총소리와 폭발하는 소리들… 사람들은 한순간 멍청히 서 있었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분명했다.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고, 이를 신호로 까오슝 공항의 사람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앞은 다투어 이륙 준비 중인 여객기로 몰려갔다.남사군도의 위기가 지나갔다는 뉴스를 듣고 안도하며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까오슝은 전쟁터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헬리콥터 소리가 항구쪽 상공에서 들려왔다 항구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 사이로 수십대의 군용헬기들이 까오슝공항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려 하자 대합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헬기 몇 대가 공항관제탑과 청사 앞에 착륙하고 헬기에서 완전무장한 중국인민해방군 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임무와 공항내부를 잘 알고있는 듯 곧바로 맡은 구역을 향해 뛰어갔다.

  공항 보안요원들과 경찰 몇 명이 저지하려 했으나 지난 1년간의 내전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중국 정규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한 그들은 빈약한 무기로나마 싸우려고 했으나 차례로 쓰러져갔다.공항청사를 아직도 빠져나가지 못한 민간인들이 총탄을 피해 바닥에 엎드리거나 구석에 웅크린채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공항경비경찰인 우 경사는 청사의 기둥 뒤에 숨어 중국군 병사들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째 맞히는 순간 중국군 병사의 자동화기가 자신을 향해 불을 뿜는 것을 보았다.  큰 충격에 뒤로 나가 떨어졌다. 목이 메이고 울컥하며 선혈이 솟구쳤다. 깨끗한 제복이 피로 더럽혀졌을거라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공항청사의 커다란 기둥이 점점 희미해져 보였다.어제 저녁 이 기둥 옆에 서 있던 싱가폴항공의 젊고 매력적인 스튜어디스가 생각났다. 동그란 눈으로 우 경사를 쳐다보던 그 스튜어디스… 참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귀여운 눈…

  5분도 채 되지 않아 공항청사에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려졌다.

  1999. 9. 13  07:50  후아리옌 근해의 해신 3호

  전투기 50여대가 모두 이륙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먼저 제공권을 장악할 전투기와  대만의 대공미사일 발사대와 레이더를 공격할 공격기가 이륙한 후에 지상공격용 전폭기들이 이륙했다. 이들은 러시아 전투기로서는 최초의 함재형전투기인 수호이-27K를 본뜬  섬(殲)-15 전투기였다. 각자 맡은 바 임무대로 장비를 싣고 이륙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후아리옌 근해의 하늘은 순식간에 중국전투기들로 메워졌다.

  중국함재기들이 편대를 형성하여 후아리옌 공군기지쪽으로 출발한 직후, 리 소장은 대지공격용 순항미사일의 연속발사를 명했다. 이미 좌표가 입력된 순항미사일들이 꼬리를 물며 발사되었다. 함수의 수직발사기에서 연속발사된 순항미사일은 상승 후 다시 고도를 내려 해상 10 미터의 아슬아슬한 고도와 마하 3의 빠른 속도로 후아리옌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이런 기술은 1995년까지 상상도 못하는 기술이었다. 파도를 스치듯 낮게 날아가는 대함미사일은 이때까지 마하 이하의 속도였으나 획기적인 레이더기술의 발달로 이 미사일은 마하 3을 시현할 수 있었다. 이어 해군 특전대를 태운 헬기들이 날아올랐다.

  전투기들이 모두 이륙하자 구로마루는 속도를 줄이고 허미즈(Hermes)가 접근해오길 기다렸다.  화물선 허미즈와 15노트의 속도로 완전히 속도가 같아진 후 허미즈의 기중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중기의 철선끝에는 컨테이너가 있었고 이를 같은 속도로 항행하는 구로마루에게 넘겼다. 구로마루의 작은 기중기가 이를 다시 엘리베이터 위에 올렸고 그 엘리베이터는 즉시 아래로 내려갔다. 이 같은 작업이 몇 회나 계속되었다. 허미즈는 구로마루, 즉, 해신 3호의 위장보급선이었다. 큰바다에서는 파도가 높기 때문에 보급 중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하여 두 척의 배가 같은 속도로 항진하며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해신 3호의 밑에 있다가 후아리옌 근해로 숨어들어온 로미오급 잠수함 20여 척이 일제히 잠망경 심도까지 부상하여  후아리옌 공군기지와 주변의 대만 지상군 기지를 목표로 533 밀리 어뢰발사관을 통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바다위를 항해중인 배에서 보았다면 사방에서 흰 물기둥이 솟구쳐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를 마친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들은 다시 잠수하여 전파수신기가 달린 슈노켈을 올린채 해신 3호와 허미즈가 있는 동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1999. 9. 13  08:00  후아리옌 공군기지

  새벽의 전 항공기 출격에 이은 F/A-18 편대의 착륙과 정비에 눈코 뜰 새 없던 후아리옌 지하공군기지에 다시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적 항공기에 의한 공습경보였다.후아리옌은 상대적으로 후방이기 때문에 적 항공기에 의한 기지 급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여 모두 당황했다.

  조종사들이 허겁지겁 이륙 대기 중인 전투기에 올라탔다. 남사군도로 출격할 때 탑재한 대함미사일은 이미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에 F/A-18은 이제는 전투기가 되어 하늘을 날으려는 참이었다.조종사들이 헬맷을 쓰자 이어폰을 통해 놀라운 정보가 전해졌다.적 항공기는 대륙이 있는 서쪽이 아니라 바다가 있는 동쪽에서 몰려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적이 이미 기지에서 10 킬로미터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이었다.

  첫번째 비행기가 이륙도 하기 전에 순항미사일들이 몰려왔다.기지 자체 방어시설들인 대공 발칸포와 대공미사일들이 연속 발사되었다. 대공 방어망의 틈을 뚫고 들어온 미사일들이 입구 근처에 작열했다.  굉음과 진동이 기지를 휩쓸었다. 그러나 지하기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준비된 전투기부터 서둘러 이륙했다.  지하기지는 전투기들의 굉음과 미사일 폭발음, 그리고 관제탑의 확성기 소리에 휩싸였다.

  같은 시간, 기지 옆 바위틈

  "자네 오리사냥 해본 적 있나?"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병대 제 11여단 방공대대 소속의 장바오 중위가 바위틈에 숨어 휴대형 대공미사일의 발사를  준비 중인 한 병사에게 물었다.  이들은 전날 밤에 야음을 틈타 잠수함으로부터 상륙한 선발대였다. 이들 말고도 세 곳의 후아리옌기지 활주로 입구 주변과 후아리옌기지로 통하는 고속도로 주변에 중국 해병대원들이 매복중이었다.

  "아니요…"

  젊은 병사는 중위를 힐끗 쳐다본 후 계속 사격자세를 유지했다. 병사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중위는 신나게 떠벌였다.

  "오리들이 모인 물가에 살금살금 다가가서, 먼저 물 위에 떠 있는 놈들에게 총을 쏘는거야.정말 맞히기 쉽겠지? 이런걸 미국놈들은 sitting duck이라 하여 아주 맞히기 쉬운 목표를 표현하지. 그러면 총소리에 놀란 다른 오리들이 날아가는데, 뚱뚱한 오리는 바로 물 위로 날 수 없어. 그놈들은 수면 위를 차고 날아야 하거든. 비행속도를 내기 위해서 일직선으로 말야. 이것도 정말 쉬운 표적이지… 대공화기를 피해 저공침투하는 적기를 요격하는 것 보다는 말야."

  주위에서 미사일 발사 준비 중인 병사들이 키들거렸다.

  ‘오리와 값비싼 전투기를 비교하다니…’

  "아무리 최신예 전투기라도 일단 순항 속도에 도달해야 제 값을 한단 말야! 이륙 중인 전투기는 오리와 다름없이 공격에 취약하다구. 너희들은 전투기를 격추시키는게 아니고 오리를 쏘는거야.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알았나?"

  "예!"

  주변의 병사들이 낮지만 강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이들은 내전을 겪은 고참 병사들이었다. 중위만 해도 휴대형 미사일로 초음속기 3대와 헬기 7대를 격추시킨 베테랑이었다.

  이 때 기지의 미사일발사대에서는 대공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제 2파인 중국제 순항미사일들이 지하 활주로 입구 근처에서 작열하기 시작했다.

  "나온다! 순서대로 사격!"

  이륙하는 전투기 1기에 2기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다른 활주로 주변에 잠복 중인 동료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첫번째로 이륙한 전투기는 불시에 습격한 미사일에 동체를 맞고 공중폭발하였다.기지 관제탑에서 즉각 휴대형 미사일 공격의 경보를 울리고 후속기들은 대공미사일의 위협에 대비,이륙 후 즉시 회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륙 후 속도가 아직 붙지 않은 전투기들은 절반이 넘게 안전 고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하였다.

  이를 본 기지 경비대는 대공화기의 절반을 미사일요격에서 지상의 위협 제거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30밀리 대공발칸포가 바위틈을 휩쓸었다. 파편이 사방에 튀고 중국 해병대원  몇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땅에 나뒹굴었다. 이를 본 장 중위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대공포와 미사일 공격조들은 도대체 뭐하는거야!"

  같은 시간,  후아리옌 기지 상공

  대공화기의 지원에 힘입어 딩 쯔린 대위의 전투기가 안전하게 기지를 이륙했다.이륙 후 일단 고도를 올리던 딩 대위는 주변의 광경에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하늘이 온통 순항미사일로 뒤덮였다. 커다란 순항 미사일 사이사이에 작은 대레이더미사일이 끼어 있었고, 이것들이 레이더와 대공미사일 발사기들을 공격했다.바위산의 암벽을 뚫어 만든 활주로 세 개 중 하나가  순항미사일의 폭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마침 그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던 전투기 한 대가 폭풍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바다에 추락하여 폭발했다.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간 딩 대위는 갑자기 울리는 레이더 유도미사일의 경계음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즉시 급상승 후 채프를 뿌리며 급강하를 했다. 미사일이 기체 우측을 지나며 폭발했다.폭발 전에 급선회를 한 덕택에 딩 대위의 기체는 큰 손상이 없었으나 놀라움과 흥분에 자기도 모르게 숨이 막히며 손이 떨렸다. 그로서는 최초의 실전이었다.

  딩 대위는 정신을 차리고 레이더를 봤다. 모니터에는  중국의 섬(殲) -15형 함재기 형태의 공격목표 50여기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순항미사일들이 표시되었다.가장 가까운 적은 벌써 5킬로미터 전방 상공에 있었다.뒤쪽에서는 아군 전투기들이 속속 이륙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활주로가 다시 붕괴되었다. 이제 활주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딩 대위는 가장 가까이 있는 적기 두대에 사이드와인더 L형 공대공미사일 한 발씩을 발사했다. 발사 직후 적의 적외선유도 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 세 군데에서 발사된 모두 네 발의 열추적 미사일이  딩 대위의 기체를 노리고 쇄도해 왔다. 딩 대위는 즉시 급강하하며 플래어를 연속 발사했다. 우측으로 급선회한 후 다시 급상승하며 하늘에 큰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는 숨이 막힐 듯한 중력을 느끼며 갑자기 모든 것이 붉게 보였다.  딩 대위는 이 현상이 피가 머리로 몰려 일어나는 레드 아웃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심하게 겪은 것은 처음이라 무척 놀라웠다. 다시 같은 방향을 돌며 급강하를 하는데도 아직 두 발의 미사일이 추적해왔다. 급강하하니 다시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갑자기 졸려왔다.

  딩 대위는 어둠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그의 비행기는 선회가 풀리고 수평비행이 되었다. 미사일이 계속 추적해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타이베이에 계신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1993년부터 대륙방문이 허용되자 그렇게 자주 들르시던 고향인 푸젠(福建)성을 대륙의 내전 이후 중국과 대만 사이의 갈등으로 못가시게 되자 매일 황혼 무렵 바닷가 서쪽하늘을 보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소원은 이제 풀릴거라 생각하며 딩 대위는 고통을 잊은채 미소지었다.

  공중분해되며 추락하는 딩 대위의 전투기를 보며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소속의 장 준센 소좌는 혀를 찼다.

  "바보같은 녀석,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급선회할 때는 속도를 낮춰 선회반경을 줄여야지… 그리고 그 정도의 G에도 못견디다니 역시 실전 경험이 없어…"

  고도 8천 피트에 이른 왕 대령은 더 이상의 상승을 지속할 수 없었다. 마하 3.5인 반능동레이더유도방식의 PL-12 미사일이 날아왔다. 이 미사일은 꼬리에 연기를 끌지 않기때문에 육안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약 300미터의 거리에서 왕대령은 급선회를 하고 추격중인 3기의 적기를 향해 천검(Sky Sword)-III 능동레이더유도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적기가 회피행동에 들어가자 레이더 유도가 없어진 반능동형유도형의 적 미사일은 목표를 잃고 멀어져갔다. 중국제 PL-12는 속도는 빨랐으나 목표에 명중되기까지 계속 전투기가 목표를 레이더로 비춰야하는 약점이 있었다.

  ‘이제 내 차례다!’

   이렇게 속으로 외친 왕 대령은 회피행동을 하느라 정신없는 적기들 사이로 전투기를 몰았다.  이미 적기 한 대는 미사일에 맞아 폭발했고, 한 대는 엔진 바로 뒤에서 미사일이 폭발하여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적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 대령은 겨우 미사일을 피한 다른 적기의 배후를 잡았다.

  "죽음의 6시 방향, 데드 식스다. 받아라!"

  왕 대령은 아군 편대원들과 불의의 기습을 받은 지상요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물론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어쨋든 그는 적기가 회피행동을 취하기 직전에 M-61 A1 20밀리 기관포를 적기가 산산조각이 나도록 퍼부었다. 그러나 뒤에 또 다른 전투기가 따라오고 있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간신히 이륙한 10여대의 대만 전투기들은 중국 전투기의 숫적 우세에 밀려 하나씩 격추당하고 있었다.거리가 너무 가까와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자 접근전(dog fighting)이 되었는데 중국내란에서 목숨을 건 실전 경험이 있는 중국 전투기조종사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기지의 지원과 아군기의 후속 발진이 없다는 것을 안  절망적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싸운 대만 조종사들은 모두 최후를 맞았다.

  공중전에서 세 대의 적기를 격추시키고 마지막으로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한 대만공군의 왕 대령은  기지 앞 바다쪽에 잠수함이 부상하여 상륙정을 발진시키는 것을 보았다. 세 척의 중국 재래식 잠수함에서 나온 WZ-551 수륙양용장갑차와 상륙주정들이 파도를 헤치며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후추안급(중국 제식명 025식) 구식 고속어뢰정 수 십 척이 나타나 이들의 상륙을 엄호했다.

  1999. 9. 13  08:20  후아리옌 기지

  후아리옌 공군기지는 이미 불바다가 되었다.적의 미사일 공격은 끝났지만, 조금 전에 중국 전투기가 발사하여 지하기지 안에서 폭발한 정밀 유도미사일이 이륙 대기 중인 전투기와 주변의 폭탄들을 연쇄 폭발시켰다. 이미 기지의 통신 지휘체계는 마비되었다. 기지사령관은 깨어진 관제탑의 창문 너머로 아비규환이 된 활주로를 보며 생각했다.

  ‘이미 패배한 전투다.  문제는 이 기지를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

  사령관은 자폭스위치를 보았다. 사령관의 눈치를 보던 주변의 관제원들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사령관의 눈길을 피했다. 극도의 패배감이 젊은 관제원 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를 떠나서 관제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생각해야 했다.과연 적의 총에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폭할 것인가가 그들이 선택할 전부였다.

  기지 수비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무선통화를 하더니 기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적의 지상부대가 기지내에 돌입할 기세입니다."

  기지 사령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수비대장을 보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걸 막는 건 자네의 임무가 아닌가?’ 라는 표정이었다.

  먼저 중국군의 헬기부대가 기지 앞에 도착했다. 전투기와 공격헬기의 공중엄호를 받으며 착륙한 수송헬기에서 중국군해병대가 잽싼 몸짓으로 내려 기지로 뛰어들어갔다.기지수비대는 이미 전멸하여 저항은 거의 없었다. 지휘관을 선두로 해병대원들이 관제실 쪽으로 뛰어올라갔다.기지 사령관이 중국해군 해병대의 난입을 보고 황급히 자폭 스위치를 눌렀으나 불발이었다. 기지에 침투한 적의 첩자에 의해 자폭장치는 이미 제거된 것이다.  기지사령관이 분노로 치를 떨며 권총집으로 손이 갔다. 손이 분노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렸다.관제실로 통하는 통로에서 자동화기의 연속 발사음과 비명이 들렸다.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냈을 때 중국 해병대들이 관제실로 뛰어 들어왔다. 수 십 개의 자동소총 총구가 관제원들의 손발을 얼어붙게 했다.

  기지사령관의 손에 권총이 들려진 것을 보고도 해병대 지휘관은 그에게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기지사령관이 권총을 손에 든 채로 얼떨결에 그에게 거수경례로 답했다.  경례를 마친 중국 해병대 지휘관이 기지사령관에게 짤막하게 선언했다.

  "인민해방군은 1999년 9월 13일 0830시부로 귀 성(省)의 후아리옌 공군기지를 접수합니다."

  1999. 9. 13  08:25  후아리옌 항구 컨테이너 야적장

  후아리옌은 타이완의 동쪽에 위치한 해안 관광도시이다. 옛 유적들과 멋진 풍광,  대만 고산족인 아미족의 춤 등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타이페이와 까오슝 모두에 항공로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다.

  북쪽 공군기지쪽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났다. 노무자들은 모두 어쩔줄 몰라했으나 컨테이너들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후아리옌 항구는 약간 한적한 항구이기 때문에 컨테이너 야적장은 3층 높이로 낮게 배열되었는데, 맨 아래층 컨테이너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모두 60 여개의 컨테이너 여기저기서 군용 사륜구동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중국 해병대원들이었다.  대공화기와 대전차미사일, 무반동포등을 각기 장착한 사륜구동차들이 몰려나오고, 컨테이너 위층에서는 보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부터 뜨거운 컨테이너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군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이들은 항구를 모두 접수하자 민간 공항과 시내의 관청가를 점령해 들어갔다.  일부는 해안로와 부전로(府前路)를 따라 후아리옌현경찰국(花蓮縣警察局)과 후아리옌현정부(花蓮縣政府)를 점령해 나가고,일부는 역과 교량, 그리고 도로교차점을 점령했다. 후아리옌 교외의 대만 군부대는 아직 진입해오지 않아서 점령은 수월한 편이었다.

  1999. 9. 13  08:40  타이페이, 합동참모본부

  "후아리옌 공군기지 연락 두절!"

  "까오슝 공항 실함! 쪼잉항 실함, 적 해병대와 아군 구원부대 조우!"

  "적 함대 까오슝항 서남방 100 km까지 접근! 제 1함대 전투 개시!"

  "적 대규모 편대 출격, 타이페이로 향함"

  "200여기의 미사일 적색선 접근, 추정침로 타이페이, 도착 10분전!"

  "1함대 구축함 난양, 잠수함 발사 미사일에 피침… 현재 1함대는 함대함, 공대함, 잠수함 발사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끔직한 정보의 양은 점점 늘고 있었다. 수많은 대형 모니터는 적과 아군의 위치와 이동상황을 표시했다.처리할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사령부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그러니까 공산군은…"   참모총감이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힌 채 말했다.  "남쪽 끝과 동쪽 끝에 동시에 상륙한 것이군…  까오슝과 후아리옌이면 우리 군의 가장 중요한 해군과 공군기지 아닌가?"

  "하지만…" 옆의 젊은 참모부장이 말했다. "해군과 공군의 대부분의 전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격할 수 있습니다."

  참모총감이 참모부장을 힐끗 보곤  화나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친구야! 타이페이와 타이쭝까지 공격받는 판국에  해군과 공군은 어디서 보급 받게 할텐가? 동사군도에서?"

  참모부장이 변명하듯 중국군의 전술을 비난했다. "민간상선을 개조한 항공모함과 상륙함을 쓰다니 적은 너무 비겁했습니다."

  "쯧쯧.." 참모총감이 위치가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대형 모니터의 적과 아군위치를 보며 젊은 부관을 나무랬다.

  "아냐, 훌륭한 전술이야. 우리가 그런 술책에 당하다니…  주의했으면 막을 수 있는건데… 근데 적의 주공은 어디를 목표로한 것일까? 수도인 타이페이를 우선적으로 공격하지 않는게 이상하군…"

  이 순간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순간이었다. 방어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병력을 이동해야하는 것,  잠시 후 결심한 듯한 참모총감이 연속적으로 명령을 발하기 시작했다.

  "2함대는 1함대를 지원하라!  동사의 항공기는 즉시 전원 출격, 타이페이 상공을 방어하라! 예비역 재소집 현황은?   후아리옌 구원군을 재파견하고 까오슝항과 공항은 제 24 사단의 지원하에 재탈환하도록 명한다!"

  통신사관들이 바빠졌다.  동사군도 주둔군 사령관의 항의가 거셌으나 본토가 침략받는 급박한 와중에 그의 주장이 먹혀들리도 만무했다.

  갑자기 지하벙커 안에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적의 미사일이 적색선을 돌파하여 수도 타이페이와 참모부가  곧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모니터에는 대만의 미사일요격 미사일들이 중국의 지대지 미사일을 향해 날고 있었다.요격미사일이 놓친 지대지미사일은 대만 공군의 최신예 청풍전투기 부대가 요격하기 위해 위해 각 공군기지에서는 속속 전투기들이 이륙했다.청풍(淸風)은 개발당시에 IDF라고 불렸던, 대만이 자체개발한 세계최고로 비싼 전투기이다. F-5 전투기를 개량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대만의 전투기 제조기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그러나 이 전투기들이 모두 타이페이에 대한 미사일공격의 요격임무에 나섰기 때문에 후아리옌 구원군은 어떠한 공중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1999. 9. 13  11:00  후아리옌 북방 12km, 고속도로 주변

  "여기는 물고기 3호, M-48 H 전차 1개 여단 규모가 북진중!"

  고속도로 주변 야산 잡목림에 이틀째 매복중인 중국 해병대 수색대가 임시사령부가 있는 후아리옌 공군기지에 무선보고를 했다. M-48 H 전차는 미육군 전차 M-48 A5를 원형으로 했다고 대만군부가 주장하지만, 더 강력한 전차인 후속 M-60 A3의 차체에 화기관제장치(CFS)를 컴퓨터화하여 포탑만 M-48인, 구식 미육군 M-48전차의 전혀 새로운 파생형이었다.

  후아리옌기지와 후아리옌시에 상륙한 중국 해병대는 합쳐도 1개 연대병력이 채 못되었다. 잠수함과 항모로부터 상륙한 병력은 후아리옌기지의 수비에도 벅찼고,  후아리옌 시내를 점령한 병력은 간신히 대만군의 시내 진입을 저지하는 정도였는데, 후속병력이 도착할 때까지는 사수하라는 명령이었다. 멀리 대만의 동부 간선철도인 북회선(北廻線)을 달리는 열차 자강호(自强號)가 보였다. 급하게 후아리옌을 빠져나간듯 허둥대는 모습이었으나 민간인들이 워낙 많이 탄 듯  속도는 별로 높아보이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급하게 이동중인 기갑부대는 중국 해병 포병대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203mm(8인치) 자주포에서 발사된 포탄은 잡목림에 숨은 수색대의 레이저 유도를 받아 하나씩 먹이를 차지했다.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고 각 전차들은 엄폐물을 찾아 숨었지만  정밀하게 레이저로 유도되는 포탄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포탄이 날아오는 반대쪽 언덕위에 구 소련산 카모프 공격헬기가 나타났다. 강력한 로켓포와 개틀링포로 미제 M-113 APC와 흡사한 외형의 대만제 보병전투차들을 쓸었다. 간간히 보병전투차에서 쿠엔 우 대전차유도미사일과 스팅어 대공미사일을 날렸지만 그 때마다 헬기들은 언덕 뒤로 숨어버렸다. 대공자주포는 이미 레이저 유도포탄에 맞아 찌그러진채 불타고 있었다.

  중국의 공격헬기들이 숨어서 미사일을 쏘는 언덕 뒤쪽으로 대만 공군의 공격헬기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뒤에서 쏘아대는 대공미사일에 견딜 수 없어 중국 헬기들이 급상승하자 이번엔 전차여단에서 대공 미사일을 쏘아댔다. 카모프 헬기들은 적외선유도 미사일에 대응하여 배기구 냉각장치를 가동시켰으나 22.5mm 대공포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맷집좋은 공격헬기들이 하나씩 격추당할 때 이번엔 재급유를 마친 중국의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몇대는 도망가는 대만 헬기들을 좇고, 나머지는 전차여단에 돌입했다. 섬-15함재기의 공격기들은 이미 지상공격을 위한 장비를 무장하고 있었다.먼저 대공포와 대공미사일을 갖춘 보병전투차들을 20mm 기관포로 격파한 후 전차는 천천히 한대씩 로켓포로 파괴시켰다.후속하는 기계화보병과 포병중대, 보급부대 등은 집속폭탄을 투하하여 휩쓸었다.대만에서 개발한 XT-69형 155밀리 자주곡사포들이 12.7밀리 대공기총을 쏘아댔으나, 기총의 위치가 오른쪽 뒤라는 것을 아는 중국 파일럿들이 자주곡사포의 전방 좌측을 공격하자 대공기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휴대형대공미사일들이 하늘로 날고 살아남은 장갑차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지만, 공중지원을 못받은 전차여단은  적 지상군의 얼굴도 못본 채 이동중에 전멸당했다.

  1999. 9. 13  15:30  까오슝 서남방 80 km 해상, 티엔 탄

  제 1함대의 기함인 신예 쾅후아급 프리깃함 티엔 탄의 함교에서는 함대의 전투지휘보다는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대함 미사일의 회피에 더 바쁜 입장이었다.  1998년에 취역한 이 최신예 군함은 대만의 해군증강계획에 따라 동급 2척이 제작되었다.  함 중앙에 슝펭 2 대함미사일 발사기,  함수에 48기의 SM-2 대공미사일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 발사관이 갖춰져 있었다.  어찌보면 소형의 이지스(Aegis)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상황은 대형 이지스 순양함인 타이컨디로거급의 방어력도 넘기는 대량공격이었다. 함대방위에 이 군함 1척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멀리 서쪽 수평선상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츙샨 피침! 함대함 미사일에 맞았습니다!"

  관측사관이 외쳤다. 츙샨은 프랑스의 라파예트급과 같은 함으로서 프랑스에서 제작하여 까오슝 조선소에서 무기가 탑재된 함이었다. 근거리 대공망을 책임진 3500톤급 프리깃함인데 자매함  6척 외에도 이와 비슷한 설계로 1500톤급의 코르벳함 10척이 만들어졌었다.  이제 어느 함의 차례인지 뻔했다. 적 함대의 주 공격목표는 제 1함대의 기함인 바로 이 배였다.

  "적 위치 판명되었나?"

  함장이 복수심에 일그러진 얼굴로 수상전투 담당사관에게 물었다.

  "아직입니다. 까오슝항쪽의 해상수색 레이더기지가 점령당해서… 아군 정찰기는 또 격추되었습니다.타이페이가 미사일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공중지원도 힘든 상태입니다. E-2C는 타이페이 상공과 동사군도에 있습니다.동사군도의 E-2C는 급거 북상중이지만, 도착하려면 아직 20분은 더 걸릴겁니다."

  ’20분이면 우리 함대는 전멸이야.’

  함장이 고민에 쌓였다.갑자기 함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함수의 캐니스터에서 대공미사일 스탠더드 SM-2 미사일이 3연속 발사되었다. 적의 대함미사일 3발이 본함의 침로에 접근하여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없다. 헬리콥터를 날려!  헬기의 유도에 따라 공격한다!"

  즉시 전자전 장비를 갖춘 시콜스키사의 S-70C 대잠헬리콥터가 상공을 날았다. 이미 초계기는 모두 격추된 상태였다.  대잠수함전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프리깃함으로서는 위성의 데이터에 따라 수평선 뒤에 숨어서 공격하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더 급했다.  또한 적기의 스탠드오프공격은 무시하기로 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적 미사일에서 대량으로 발사하는 함대함미사일이었다.

  같은 시각, 함재헬기

  티엔 탄의 탑재헬기가 급상승했다.적의 대함 미사일을 피해 선회하는 아군함대의 움직임이 보였다. 벌써 수는 많이 줄어있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하는 배는  조금 전에 함대함 미사일에 명중한 대만 프리게이트함 츙샨이었다.

  계속 상승하자 멀리 적 함대의 대략적인 위치가 파악되었다. 기함과 연계된 APS-707 해상감시 레이더가 적 함대의 위치를 모니터에 표시했다. 일단 탑재하고 있던 하픈 2발을 적 함대에 날렸다. 레이더 경보장치가 울리더니 적 공격기의 2차 공격편대가 다가왔다.이들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는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사일에 아군이 또 얼마나 희생될지…’

  기장이 생각했다.  기함에 자료를 전송하는 중에 멀리 적함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대공미사일입니다!"

  부기장이 공포에 질려 외쳤다.

  "계속 상승 해!"

  기장이 통신사를 겸한 부기장에게 외쳤다. 대잠공격을 주로하는 함재헬기로서는 대공 미사일에 대응할 어떤 무기도 없었다.  고공에서는 숨을 곳도, 헬기의 속도로서는 피할 수도 없었다.  미사일이 연기를 끌고 날아왔다. 헬기는 계속 상승하면서 적 함대에 대한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날아오는 미사일에 ECM을 걸었으나 미사일은 정확히 헬기를 향해 날아왔다.

  ‘초음속 전투기라면 저정도의 미사일은 피할텐데…’

  기장은 해군항공대에 입대하였으나  성적이 나빠 전투기 조종사가 되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었다. 이미 미사일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저 미사일… 전투기라면 피할 수 있는데…’

  같은 시각,  대만 1함대 기함 티엔 탄

  "자료가 입력되었습니다. 발사명령을 내려주십시요! 목표물 20개 포착!"

  그 때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굉음이 울려왔다.  헬기가 산산조각이 난 채 해상으로 추락했다. 동시에 공대함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함이 크게 기울어지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대공미사일과 대공포가 탄막을 형성하고 곧이어 채프가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

  프리깃함의 중앙에서 함대함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기가 2연장 2개인 슝펭 2 대함미사일 발사기에서 도합 20기의 함대함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동시에 함수에서는 SM-2 대공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했다. Mk-41 VLS(다연장 미사일 발사기)가 쉴 새 없이 미사일을 뿜어냈다. 다른 함에서도 해상의 목표를 향해 대함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판 차오에서 보고입니다.  1-8-7, 심도 50, 거리 2,400에 적 잠수함 발견, 현재 탑재헬기와 함께 공격중이라고 합니다."

  통신사관이 함장에게 보고했다.  아니, 보고라기 보다는 외침에 가까왔다. 그 정도의 심도에서 접근하는 잠수함이라면 미사일탑재 잠수함이 틀림없고, 그 잠수함의 공격목표가 무엇인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적 잠수함, 본함에서도 소나에 잡힙니다. 급속접근중!"

  "적 미사일 6기 접근! 대공미사일 발사!"

  대공전 담당사관이 적 잔여 미사일에 대한 요격명령을 내렸다.  함장은 대공전을 그에게 완전히 맡기고 대잠수함전에 신경써야 했다.

  "적 잠수함, 미사일 발사! 총 4기!"

  "판 차오에서 Mk-46 발사! 목표까지 32초!"

  "아, 적 잠수함 반전!  방위 1-8-5, 침로 1-8-0, 30노트! 급속잠항중입니다! 판 차오에서 발사한 어뢰는 목표를 잡을 수 없습니다."

  4100톤급 프리깃함 판 차오에서 발사한 Mk-46 어뢰가 40 노트의 속도로 목표 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곳에 잠수함이 사라진 뒤였다.판차오에서 유선 유도로 어뢰의 방향을 수정했으나 잠수함에서 발사한 허수아비에 헛되이 충돌했다.

  "914 로양!  적 잠수함의 추정침로에 아스록 발사하라! 1차 수색심도 500! 그건 원자력함이야!"

  함장을 겸한 함대사령관이 주변의 구축함에게 명령했다. 1944년에 미해군으로 취역하여 함령이 다하자  대만에 팔려온 이 알렌 섬너급 구식 구축함이 대잠로켓 2기를 발사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수평선을 넘어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의 3기의 궤적을 발견했다. 티엔 탄은 단거리 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며 요격에 나섰지만  초음속의 대함미사일을 막지는 못했다. 미사일 3기가 함에 접근해왔다.

  1999. 9. 13  16:00  대만해군 제 2함대 기함 쳉쿵

  "대잠헬기에서 보고, 3-5-4에 잠수함! 거리 3,500 심도 50, 침로 0-9-2, 속도 29노트!"

  "병기사용 자유! 즉각 공격하라!"

  대잠수함전 담당사관은 피아구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헬기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2함대는 1함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북진중이었다.수상함의 소나는 이미 기능이 떨어진 채 대잠헬기와 초계기만의 도움으로 중국군 잠수함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속도가 처지는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이라면  함대의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함교에서는 함대사령관이 타이페이의 해군총감과 화상전화 중이었다. 오늘따라 더욱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해군본부의 화상전화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초췌해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까오슝과 후아리옌은 점령당했소. 쪼잉의 함대사령부도 점령당했소."

  순간 함교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중국군이 상륙했다는 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전쟁이 시작된 것 만으로도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이었으나, 이렇게 패배의 순간이 빨리 올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해군으로서는 까오슝 바로 북쪽의 군항 쪼잉이 함락당한 것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규모의 적이지만 수복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오. 귀 함대는 가능한 빨리 1함대와 합류하기 바라오.각개격파 당하지 않도록 1함대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소."

  "5분 후부터 함대함미사일의 사정거리입니다. 적 잠수함의 방해가 만만치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함대 사령관은 전략에서는 졌지만 전술에서는 어느정도 자유중국 해군의 명예를 회복하리라 결심했다. 이제 멋지게 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죠나단에서 보고! 방위 0-2-5,  15마일에서 잠수함 발사미사일 다수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고도 30, 속도 마하 2! 순항미사일입니다!"

  핵공격의 가능성이 있는 순항미사일의  경보를 받은 함대사령관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 한 발의 핵공격으로 함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데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핵공격이라면 요격을 하더라도 폭풍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한다. 사령관은 위성수신 공격이 틀림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 미사일로는 요격이 곤란한 고도였다.

  "대공화기 사용자유! 채프 발사! 전 함대에 연락하라!"

  채프가 발사되기도 전에 레이더 유도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북동쪽 하늘에 수 십 개의 까만 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들이 점점 커졌다. 고도가 워낙 낮아 대공포의 포탄은 헛되이 바다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럴때마다 바다에 하얀 물보라가 튀었다.가장 북쪽에 위치한 라파예트급 프리깃함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초계기와 헬기가 미사일 발사 예상 해역으로 급파되었으나 이미 늦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렇다고 계속 미사일공격을 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함에서는 채프와 플레어, 그리고 레이더전파를 발사하는 복합 미끼로켓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각 함은 회피행동을 시작했으나 계속 북쪽으로 항진해야했기 때문에 회피행동에는 제약이 따랐다.  또 한 척의 구식 기어링급 구축함 라이양이 굉음을 울리고 침몰해갔다.

  검은 점이 하얀 점들이 되더니 다가왔다.  CIWS 대공발칸포가 두개를 잡고 하나는 미끼로켓을 좇아 함미를 스쳐갔다. 일단 적 잠수함대의 공격은 끝났다.  이제 반격할 순간이라고 함대사령관은 생각했으나 1함대의 구조가 우선이었다.

  "조나단에서 적 함대 포착, 자료 입력 완료!"

  수상전 사관의 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적기 내습! 죠나단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발사!"

  일각의 여유도 없었다. 한 척의 함정이라도 구하는 것이 패배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길이었다.순식간에 함 중앙의 수직발사관에서 슝펭 2 대함미사일이 연속 발사되고,  남은 목표는 뒤따르고 있는 동급의 프리게이트함 유페이에서 발사를 했다.  함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은 일정 고도에 이르자 하강을 하고 마하 0.85의 속도로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같은 시간,  조기경보기 죠나단

  "데이터링크 확인! 함대에서 대함미사일 발사!"

  "적기 10시방향에서 초음속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수호이 27형으로 확인! 30초후 적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갑니다."

  "피닉스 연속 발사!"

  관제관으로서의 임무를 저버린채 임 소령은 흥분해있었다. 세계 최초로 조기경보기가 초음속전투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전자기술의 발달로 조기경보기에 탑재한 각종 전자기기의 부피가 적어지자, 추가연료의 탑재외에도 대만해군은 조기경보기의 자위와 보조공격을 위해 대함대공무기를 탑재시켰다. 피닉스가 비록 구형이지만 사정거리가 길어 유리한 전투가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비싼 미사일을 구입한 것이다.

  기체에서 모두 세발의 피닉스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적 전투기 1기당 1기씩 목표를 찾아 날아갔다. 죠나단은 크게 선회하여 반대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날았다. 조금이라도 적기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이었다.

  "목표 포착! … 아! 한대는 회피했습니다."

  전자전사관이 거의 목이 쉰채로 외쳤다.  그 한대도 줄행랑을 놓을것이라고 임 소령은 생각했다.

  "적기 미사일 발사! 사정권이 아닌데…"

  전자전 사관이 의아해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혹시 적기의 조종사가 화가 나서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더를 보는 하사관의 눈이 점점 커졌다.

  "미사일 접근! 거리 3500!!"

  전자전사관이 경악했고 기장은 서둘러 회피행동을 시작했다.  채프와 플레어를 연속발사하고 급강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적의 미사일은 의외로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임 소령은 동기들에 비하면 늦게 결혼했다. 대만의 엘리트 코스는 영어회화와 미국유학이 필수였다.그는 임관 후에 미국유학을 다녀오고 대만 상류층 처녀들과 다양하게 연애를 즐겼다. 그는 여자들의 가슴에 특히 탐닉했다. 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의 저자가 여자의 가슴은 인간의 성행위 체위가 정상위로 바뀐 후,여성들이 성적 신호를 강화하기 위해 유방이 엉덩이를 자기모방해서 커졌다는 주장에 크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왜 인간 여자의 젖가슴은 다른 포유류와 달리 크고 엉덩이를 닮았을까, 아기에게 젖을 주기위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크다고 임 소령도 공감했다.

  연애생활이 끝날 무렵, 임 소령은 지성이 없는 섹시한 여자들에게 흥미를 잃고 과거는 있지만 머리가 있는 여성을 선택했다.그러나 그 여자는 너무 냉담했다. 결혼하지 말고 그냥 만나자는 그녀를 설득하는데 임소령은 여러가지 수단을 써야했다. 심지어 임지에 있을 때 바람 피워도 좋다,  내가 싫어지면 이혼에 동의하겠다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결혼했다.  그녀는 성적 자제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 그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았다.아니면 생활의 일부로서 중요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임 소령은 투덜거렸다.

  전쟁이 발발한 지금,  그녀는 이미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미국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그녀의 생활에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을 바라지 않겠다.’

  조기경보기 조나단은 공중폭발을 일으키고  잔해는 불에 타며 바다로 추락해갔다.

  같은 시간,  제 2함대 기함 쳉쿵

  "적함 5척 격침, 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프리깃함 2척입니다."

  전투함교 여기저기에서 짧은 환호가 들려왔다.

  "대규모 적 편대 스탠드오프 공격진형입니다! 방위 3-2-4 거리 35000, 고도 200!"

  만족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1함대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사일 발사기에서는 대함미사일을 재장전하고 있었다.

  "대공미사일 연속 발사!"

  1함대와 2함대의 차이점은  2함대는 아직 적의 위치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초계기가 2기나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조기경보기인 조나단은 격추되었지만 적 전투기 2기를 격추시켜 적 전투기가 초계기를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하는 효과를 낳았다.  지금까지의 손해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이제 공세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함수의 SM-3 대공미사일들이 연속 발사되었다. 다른 함정에서도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연기를 끌지않는 이 미사일을 적기들이 회피하지 못할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제 적기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격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정거리에 있어서 전투기 발사 공대함 미사일보다 함에 탑재한 함대공미사일이 더 길다는 것이 전투에서 극명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적기는 아군 함대에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모를 것이다!’

  2함대의 1함대 구원으로 전세는 호전되어 갔다.  잘하면 약간 유리한 조건의 휴전을 이끌어 낼 수 있지않나 하는,  일개 함대사령관으로서는 주제넘는 생각까지 했다.

  "우현 어뢰 3기 급속 접근! 거리 500!!! 명중합니다!"

  소나담당자인 젊은 준위가 경악성을 발했다.  중국의 잠수함 몇 척이 출력을 줄이고 이 해역에서 대기했던 것이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발사된 이 어뢰들은 피할 수 없었다.  함장이 급선회를 명하기도 전에 함체에 진동과 연속적인 폭발음이 울렸다.

  "기관실 파손, 침수! 4 곳에 화재 발생!"

  "침몰합니다!"

  ‘패했다. 육지와 바다, 하늘 모두에서 패했다. 이제 우리 자유중국은 어떻게 될것인가. 중국의 하나의 성(省)으로 전락하는가… ‘

  함장은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서도 기분이 차분해졌다.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어도 통일이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자신이 통일의 주체측이 아닌 반대편에 섰지만,  주어진 여건하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함대 지휘권은 유페이의 장 대령에게 맡긴다.기함은 퇴함하니 장 대령의 지휘와 판단을 존중하도록!"

  함장은 동급의 프리깃함인 유페이의 함장 장 대령에게  함대지휘권을 맡기고 서둘러 침몰하는 배에서  퇴함을 지휘했다.  부상자부터 퇴함을 하는데 함내에 폭발이 계속되었다. 2함대의 기함 쳉쿵은 함수부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1999. 9. 13  16:30  타이페이 합동참모본부

  "이 정도면,"

  참모총감이 얼굴을 감싸쥐며 신음하듯 어렵게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참패다. 아마 적은 방어가 집중된 타이중과 타이페이를 피해 대만 곳곳에 상륙할 것이다.이미 해군과 공군은 거의 전멸해서 더 이상의 전투는 학살에 불과하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이제 패전 후의 뒷처리가 문제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걱정들이 더 컸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해협에 2개 함대가 있고 다수의 청풍 전투기가 있습니다.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아직 개전 하루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부관이 강력히 항의하자 총감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는 그들까지 죽일 셈인가?"

  총감이 부관을 노려보자 부관이 고개를 숙였다.총감이 피곤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총통께 화상전화를… 연결하도록… "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므로 총감은 총통께 항복을 진언할 것이리라.

  화면에 나온 총통도 이미 내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총통과 총감은 말을 잊은채 한동안 묵묵히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미안해하는 총감의 얼굴을 보고 안스러운듯 총통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감, 수고하셨소. 패전 뒷처리는 내가 책임지겠소. 총감도 계속 도와주시오."

  "각하!"

  "부하들의 안위는 총감이 책임을 지시길 바라오.  총감이 무책임하지 않다는건 잘 알고있소."

  총통은 늙은 참모총감이 혹시나 자살할까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이제 총통이나 총감이나 일급전범이 되어 수모를 당할 것이다.그렇다고 만약 자기들이 도망가거나 자살하는 경우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전범의 책임까지 떠넘기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북경과 연락해보겠소. 부디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각하! 죄송합니다.!"

  기어코 늙은 군인은 눈물을 뿌렸다.

  1999. 9. 13  17:30  남사군도 타이핑 섬

  "긴급전문입니다!"

  통신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충격으로 얼굴이 심하게 경련하는 모습이 모두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타이페이는 항복했습니다.  총통과 북경과의 화상회담이 진행중입니다. 참모총감의 명령입니다. 1800시를 기하여 무조건 항복…개인적 행동을 일체 삼가라는 명령입니다."

  리 회이 대령이 의자에 앉은채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년간 군문에 종사해온 그로서는 이제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군들에게 총살이야 당하지 않겠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까지는 포로수용소 생활과  중국군의 신문 등을 당해야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이제 자유로운 공기와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넓은 곳에서 숨을 크게 들이키고 싶어졌다. 왠지 슬프지는 않았다.  부하나 가족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만 자유를 잃는게 안타까왔다.

  리 대령은 천천히 지하벙커를 빠져나왔다. 경비병 두명이 수근거리다가 리 대령을 보고는 당황한듯 경례를 붙였다.이미 기지 내에 패전사실이 퍼져있었다. 해병대원,항공요원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수근대고 있었다. 기지의 기능은 일거에 마비되었다. 핵폭탄이 터져도 이 정도의 피해는 받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패전은 기정사실이었지만 너무 허무하게 지는 게 안타까왔다. 30만의 육군, 각 10만의 해군과 공군은 무엇 때문에 있었는가 한탄스러웠고 50년간 분단되어 민족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게 안타까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해가 뉘엇뉘엇 서쪽 수평선으로 천천히 기울어갔다. 밖에 나오니 끈끈한 공기때문에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환한 햇살이 눈부셔 좋다는 생각이었다.

  벙커쪽에서 통신병이 달려왔다.동사군도에 중국해군이 상륙했다는 전언과 함께 전문을 읽는 리 대령이 당혹스러워졌다.이제 대만해군, 공식적으로 자유중국 해군은 없어진 것이었다.

  남사군도 타이핑섬에 주둔하는 모든 부대원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해군 해병대로 전입한다. 대만성 해군 대령 리 회이는 인민해방군 해군 상교에 임명하며 기지 사령에 보한다. 현 위치에서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울것.  – 인민해방군 해군 총사령   해군상장  자오 윈

  리 회이 상교는 휘하 부대원의 동요를 막고 지휘권을 장악,계속 기지 및 영해 방어 임무에 임할 것. 모든 명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남해함대사령부로부터 받는다. 보급은 예정대로 될것임. 금일 1900시에 남해함대 분함대의 타이핑섬 상륙이 있을 예정. 경거망동을 금한다. – 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 사령  해군소장  롱 이런

  해군상교라면 대만해군으로서는 해군대령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해임 또는 강등이 되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중국군이 상륙하기 전까지의 회유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쨋든 리 대령, 아니 이제 인민해방군의 해군상교가 된 그는 패전처리에 부심했다. 부대의 병력과 장비, 보급품을 재확인하고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대해 설명할 차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할 일이 있으니 어쨋든 시간이 빨리가서 좋았다.

  어느새 190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적도에 가까운 이곳은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있었다. 해를 등지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의 제 2 분함대가 구축함 탑재 대잠헬기 2대를 선도로 하여 나타났다.이제 소속이 바뀐 구 대만 해군 해병대원들은 활주로에 정렬하여 이들을 맞고 있었다.거대한 러시아제 대잠헬기 카모프(Ka-27)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거기서 중국군 몇 명이 내렸다.  다행히 중국군들은 자동소총을 대만군에게 겨누지는 않았다. 리 상교가 헬기로 뛰어갔다.

  "타이핑 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리 상교가 중국군 군관을 보며 어색하게 경례를 했다.  그 군관의 복장을 보니 의외로 장성급 군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롱 소장님이십니까?"

  "그렇소, 리 상교."

  그 중국군 군관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 사령인 롱 이런 소장이었다. 롱 소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만나서 반갑소."

  롱 소장이 손을 내밀었다. 리 상교는 롱 소장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리 상교가 롱 소장 일행을 안내하여 구 대만 해병대원들이 도열한 연병장으로 갔다. 군악대가 환영식용 군가를 연주했다.

  롱 소장이 연병장 앞에 걸린 대만의 청천백일기를 보고는  수행한 부관에게 눈짓을 했다.  부관이 상자에서 붉은 깃발을 꺼내 이를 리 상교의 부관에게 건내주었다. 부관이 붉은 기를 보더니 이를 헌병에게 주자 헌병 두 명이 청천백일기를 하강하기 시작했다.  군악대가 마지막 대만 국가를 연주하자 대만 해병대원들이 경례를 하고, 중국 해군의 롱 소장도 경례를 했다. 리 상교로서는 착잡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어서 대만 해병대원들에 의해 중국의 오성홍기가 게양되었다. 석양에 게양되는 붉은 오성홍기는 그동안 흘린 피보다 더 붉어보였다.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

  1995년에 시작된 메콩강 유역 종합개발을 시발로 메콩강이 지나는 중국의 윈난(雲南)성, 미얀마, 타이, 라오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었다.이 개발사업에는 일본, 미국, 프랑스와 함께 한국도 원조공여국으로 참가하였으며 도로, 교량 등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수자원과 농업개발, 역내 무역증진 등으로  이 지역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중국은 인도양으로 진출할 목적으로 특히 미얀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특히 윈난성의 쿤밍에서 미얀마의 라쇼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도로의 건설을 중국이 적극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중국이 점차 경제적으로 부강해지고 미얀마의 정치 ,경제위기가 계속되자 중국의 미얀마에 대한 원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같은 사회주의권인 두 나라의 관계가 긴밀해져서 미얀마의 정치는 북경의 입김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카렌족 등 소수민족의 지속적 항쟁과 민중의 봉기를 막지 못한 미얀마 정부는 결국 몇 차례의 군사정변을 거쳐  중국의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도양에 접한 미얀마의 영토 각지에 중국군의 해군과 공국기지가 건설되었으나 모두 미얀마의 방위를 위한 것으로 설명되어졌다.그러나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는 중국의 인도양진출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자국의 정치적 혼란과 정치격변, 베트남의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주변국중 최강자인 중국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더우기 중국의 경제원조가 잇따르자 두 나라의 국민들이 중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들 두 나라는 중국의 속국의 위치로 떨어졌다.

  제 3세계동맹이 깨진 마당에 인도는 더 이상 국제적 압력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한 압력을 가할 수가 없었다. 인도양에 진출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여 인도도 차츰 군사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으나 워낙 경제력 격차가 커서 중국의 압력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파키스탄이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 인도주변국들도 중국의 압력에 차츰 굴복해 들어갔다.이제 중국은 거대한 인도양을 껴안을 수 있었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커져서 드디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어깨를 함께하는  초강대국의 하나로 부상했다.

  인도차이나 주변국들을 복속한  중국의 입장에서 눈에 거슬리는 유일한 적은 베트남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필리핀은 미국의 지원이 끊긴 이후 연속된 경제불황으로  파국이 계속되어 밖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베트남과는 80년대 중반 남사군도를 사이에 두고 소규모 해전이 일어나긴 했지만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베트남 해군은 일격에 전멸을 피하지 못했다.베트남 해군이 절치부심하여 해군을 키워왔으나 막강한 중국의 함대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육군은 다양한 현대전의 실전경험, 그리고 베트남인의 자존심과 투쟁정신으로 중국 지상군보다 강하다고 평가되어왔지만 주변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중국에 복속되어 병력의 분산을 초래케되어 약체화되었다.

  베트남 주변국을 복속한 중국은 대만을 점령한 직후, 여세를 몰아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통해 베트남을 침공하고, 바다를 통한 세 곳의 상륙전의 성공으로 단숨에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다.  10여년간의 베트남 경제개혁 정책인 도이모이의 성과가 잿더미가 될 것을 우려한  베트남 정부는 중국군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에 대항했던 것처럼 베트콩을 조직하여 싸웠으나  민중들의 호응이 뒷받침되지 못한 전쟁은 길게 끌 수가 없었다.베트남의 독립과 베트콩들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중국의 선전에 무장독립단체들이 하나씩 투항했다.

  베트남의 패망을 본 남사군도 주변국들은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었었다.한편으로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싱가포르는 신속배치군을 2배로 늘리고 무기체계도 대폭 현대화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에 F-18 D 전투기 20 여기를 발주하였고 인도네시아는 영국에 소형 항공모함를 주문했다. 동남아 모든 국가들은 이제 중국의 위협에 밤잠을 못이루게 되었다.

  필리핀은 그간의 경제적 피폐로 말미암아  남사군도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해군력이 없었다.  필리핀은 마지막까지 남사군도의 유전을 지키려 하였으나 결국 중국의 무력시위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남중국해는 드디어 완전히 중국의 호수가 되었다.

  중국은 내전수습과 경제발전, 그리고 대만 점령으로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음은 물론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를 제패하여 세계제국으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중국의 침략주의를 경계하여 일본도 재무장의 길을 걷게되어 수많은 함정과 항공기를 제작하는 등,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1999. 11. 16  13:30  대전,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현재 5개의 장갑사단이 안둥에 집결했습니다. 주력은 제 13합성집단군의 3개 장갑사단이지만, 심양군구 내 다른 집단군의 장갑사단과 오토바이사단, 포병사단, 2개 고사포여단 등이 집결했습니다.특기할만한 점은 심양군구, 즉 동북 3성의 나머지 병력이 모두 서진하고 있으며 북경 군구의 병력은 동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신이 전하는 바가 맞다면, 이는 전형적인 내전직전의 병력이동 양상입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침입 기도는 절대 아니며 중국에 새로운 내전이 일어났다고 보아야합니다.항공전력과 해상전력은 아직까지 별 이동이 없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공군과 해군의 관망 속에 각 군구간의 알력, 특히 심양군구의 반란으로 보여집니다."

  종합상황실의 정보분석 반장인 나 영찬 대령이 대형 스크린의 만주지역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그러나 그도 약간의 의심을 한 상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국제정보를 담당하는 제 2 정보여단의 김 호근 준장이 반박했다.

  "하지만 나 대령, 중국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리고 선전포고도 없이 동남아 각국을 정복했소. 우리나라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소.나는 그들이 우리나라를 치기 위한 군사행동이라고 봐요. 도대체 왜 다른 곳도 아닌 신의주 바로 건너편의 안둥(安東)에 대규모 기갑부대가 집결했겠소? 그리고 이번 새로운 내전의 이유가 뭡니까? 군구간의 압력이란 늘 있어왔으나,  이것이 저번 내전에서도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잖소?"

  "심양군구의 고 휘 중장은 아시다시피 기동전의 대가입니다. 심양 서쪽에 3개 사단이 있지만 주력은 안둥의 5개 사단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의 국경인 안둥에 주둔시키면 중앙군의 공습이 용이하지 않아 주력을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요? 작년의 내전에서 고 중장은 적의 주력에게 소모전을 강요하다가,  마지막까지 아껴둔 기갑부대로 화려한 적진 중앙돌파를 성공시켰습니다.  내전의 이유는 고 중장과 일부 정치 국원과의 갈등,  또는 고 중장의 정치적 야심이라고 한 미국정보기관의 평가가 옳을 듯합니다.  지난 내전이 중국 각 지역의 부의 편재에 원인이 있었다면, 이번 내전은 권력의 재분배에 대한 일부의 불만이라고 봅니다."

  나 대령이 자신감 있게 발언했다. 나 대령 자신도 바로 전 보직이 전차연대 연대장 아닌가? 누구보다도 고 중장의 전략을 많이 안다고 자신하는 나 대령이었다.

  고 중장은 지난해의 중국내전에서 난징군구의 장갑집단군을 지휘하여 단 10일만에 베이징을 점령한, 중국 내전의 최고 영웅이었다. 신정부의 신임으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심양군구의 사령이 된 것이 작년 말이었다.심양군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의 만주지역 3개 성을 관할 하는 1급 군구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중국이 우리를 침공한다면? 그리고 중국의 해군과 공군은 비상시에는 1급 군구 소속이란 말이오.해군과 공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오. 정말로 내전이 일어났다면 이들이 관망만 할 이유가 없소."

  김 준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천천히 돌리며 말을 이었다.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일수도 있었다.

  "우리는 150 만의 대군과 현대적 무기가 있소. 중국은 대만과 동남아 몇 나라를 제압했지만 결코 우리를 넘보지는 못할거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종합상황실장 최 용묵 소장이 나섰다. 최 소장은 병력 보다는 현대화된 장비와 새로운 전략이 전장을 주도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은 병력이 700만이 넘습니다. 준군사력인 인민 무장경찰이나 각 지방의 민병대를 뺀 숫자입니다. 이들은 내전을 겪으며 실전을 쌓았고 동남아 각국과의 전쟁에서 확인된 바로도 무기체계의 비약적인 질적향상이 있었습니다."

  김 준장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중국과 대만의 해상전에 관한 데이터를 스크린에 올렸다.

  "대만과의 전쟁을 보십시요! 중국해군의 무기체계는 완전히 현대화되었을뿐만 아니라 전략,전술체계도 다른 군사강국에 못지 않습니다."

  "중국은 내전을 겪었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직 재래식무기의 병력위주 편성이요. 게다가 중국의 경제력으로는 우리를 공격할 수 없어요. 물론 해,공군의 전력이 상당히 증강된 것은 사실이지만 육군의 경우 아직 장비가 낙후되었고…"

  육군대학 교수 경력이 있는 최 소장이 긴 강의를 시작하려는 무렵 조기경보연대에서 화상통신으로 연락이 왔다. 현재 북경에서 심양에 걸친 선의 상공에는 항공기들의 격렬한 움직임이 있으며, 아마도 두 군구 전투기들 사이에서 공중전이 발발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북경주재대사관 무관의 연락이 왔는데 북경 시내 요소요소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했다.중국에서 새로운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이 밝혀졌소. 중국은 당분간 우리나라를 침공할 수는 없게된 것이오. 비상경계 해제를 건의하겠소."

  이 재영 정보사단장이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개성의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러 떠났다. 정보사단 참모회의는 싱겁게 막을 내리고 구성원들은 허탈하게 각 부서로 돌아갔다.

  ‘이로써 긴 대기는 끝났다. 이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승용차의 푹신한 시트에 몸을 묻고는 이 중장의 마음은 벌써 집에 가 있었다.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군비서의 다리가 참 예뻐보였다. 여군이 이 중장을 돌아보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1999. 11. 16  19:00  평안북도 선천, 차 중령의 사택

  오랜만에 비상이 풀려 차 영진 중령은 집에 일찍 돌아와서 쉬고 있었다.집사람은 차 중령이 일찍 귀가한 것이 신기한 모양으로 이것저것 따져물었다.

  "중국에 내란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면서요?  심양군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혹시 위장작전 아녀요? 우리나라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려는 중국의 작전일지도…"

  "지금 북경에선 공습경보가 내리고 시내 여기저기 스커드 E형 미사일이떨어지고 있대요. 실제상황이 틀림없을겁니다."

  차 중령도 약간 의심을 했지만 설마 수도에 미사일을 폭파시키면서까지 중국이 위장작전을 쓰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생각이 달랐다.

  "중국이 개발한 스커드 E형 미사일은 명중율이 굉장히 높아요. 한 지역의 특정 건물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다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북경 중심부의 중요건물이 피격되지는 않았어요. 물론 중남해의 공산당 건물에 명중은 했지만 주요인물들의 생사는 불확실해요. 미리 피할 수도 있고요."

  차 중령의 아내는 대학때부터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과 머드게임을 많이 했기때문에 군사적 지식이 풍부했다.두 사람이 만난 것도 그래픽 온라인 게임인 ‘에어 워 2000’에서 였다.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하여 몇 사람씩 편을 짜서 공중전을 하는 게임이다. 차 중령이 조종술과 근접공중전의 대가라면,  그의 아내는 적의 무기체계를 파악하여 작전을 세우는 작전통이었다.  그들의 팀은 국내는 물론 통신게임 인구가 많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인터넷 메일함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도전장이 쌓였다. 그 중에는 현직 공군 조종사들의 팀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팀 그린 윙스(GREEN WINGS)는 무적이었다.그들 부부는 2년 전에 팀원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나 차차 사랑이 익어갔다. 아니,  게임 중에서 벌써 사랑이 싹터 그들의 만남은 단지 사랑의 불을 댕겼을 뿐이었다.

  1년 전에 결혼하여 아직 아이는 없었고 그의 부인은 결혼후에도 컴퓨터 통신게임을 즐겼다. 대대장으로서 임지를 북한 지역으로 옮긴 차 중령은 바쁜 와중에도 자주 같이 게임을 하곤 했다.오늘같이 일찍 퇴근을 한 날은 당연히 부부가 같이 통신 게임을 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게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녀의 남편은 군인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무기체계가 중국내전과 동남아 정복을 통하면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오. 그들의 병력은 내전후에도 700만이 넘어요.그러나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약소국들과 달라요.지난 몇 십 년간의 휴전을 통하여 강도 높은 훈련을 쌓은 강군이란 말이오. 게다가 요즘의 통일과정에서 군사력은 배증했으니 중국이라한들 쉽게 침공할 수는 없을 것이오."

  차 중령은 통일참모본부에서 시달된 정보분석집을 외우듯 말을 했다. 사실 그로서도 자신이 없었다. 그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서 자주 만났던 심양의 조선족들과는 보름이 넘게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중국측에서 통신망이 차단된 것이다.기술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중령도 의심하고 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 어떤 이익이 있죠?"

  그의 젊은 아내가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중령으로서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영토적 야심, 한반도라는 땅의 넓이보다는 그동안 공유했던 서해를 독점하고 나아가서 러시아나 일본과의 대결에서 매우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어요. 최소한 일본은 중국의 눈치를 보게될 것이오. 일본이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으면, 세계 역학구도에서 미국의 입지가 많이 약화되고 러시아가 아직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

  차 중령은 대답하면서 깜짝 놀라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되는 길은,그리고 세계 사회주의를 이루는 제 일보는 우리나라를 점령하는 거여요. 중국의 지방별 부의 편재로 인한 내전을 종식하고, 남사군도와 동남아를 점령하여 정치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다진 지금 더욱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이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열강의 식민지 다툼이나,  2차대전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경제불황 타개책과 거의 같아요.  중국은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 모두에서 우리나라를 필요로 해요.일본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도 말여요."

  차 중령의 아내는 역시 객관적이고 냉정했다.그린 윙스의 작전참모인 그녀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대학원까지 마쳤다.그녀의 주요관심사는 국제정치와 전쟁 분야였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우리나라를…유사이래 중국의 침략은 잦았으나 아직 한번도 우리나라를 점령한 적은 없어요. 우리는 싸웠고 또한 항상 이겼소."

  "그건 국력을 기울여 우리나라를 점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가 있어요.  19세기 까지는 조공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위장한 중국으로서는 더욱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일본의 경제투자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중국이 침공한 나라는 모두 일본의 자본투자가 많은 지역이었어요.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부강은 곧 동북아의 안정을 해친다는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자제해왔어요.  지금 일본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종주권이 중국에 의해 위태해진다는 뜻이죠.  중국이 일본까지 침공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에 대한 압력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생각할 수는 있지 않겠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었다. 차 중령으로서는 아내의 단순한 걱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국제정치에 대한 그의 아내의 생각을 존중해왔었다. 그러나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에 수긍을 하고는 있지만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한다니…

  그의 아내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차 중령은 티비를 켜서 뉴스 전문 채널을 선택했다. 뉴스에서는 중국의 내전에 대한 보도 일색이었다. 전화를 들어 육군사관학교의 2기 후배인 이 현우 소령과 통화했다.

  11. 16  19:30  대전, 정보사단 통신정보대대

  "예, 선배님. 맞습니다…  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선배님."

  국내외 뉴스와 정보통신을 통해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통신정보대대의 야간당직인 이 현우 소령은 육사 선배인 차 중령과의 통화를 끊고 고민에 빠졌다. 차 선배는 정말 훌륭한 정보참모를 두었다는 부러움도 생겼다. 차 선배를 통해 형수님의 의견을 듣고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중국내전에 대한 국내외 TV 뉴스를 보면 미사일 공격을 당한 북경시내 뿐만 아니라 병력 이동상황과 중앙군의 전과까지도 자세히 보도되었다.중국의 지난번 내전과 동남아전쟁 때는 볼 수 었었던 생생한 전투장면들도 화면에 보였다.

  사무실에서는 세계 주요뉴스채널마다 담당자가 붙어서 녹화하며 중요 정보를 체크하고 있었다. 수 십 개의 영상 대부분이 중국의 내전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의 주요 뉴스채널을 담당한 TV뉴스소대 제 3반장인 김 선영 중위가 갑자기 긴장했다.  김 중위가 긴장했을 때의 버릇인 입술 깨물기가 시작되었다. 차 중령이 그녀의 섹시한 입술을 보며 침을 삼켰다.

  "저 화면은 가짜입니다."

  CNN 뉴스를 보던 김 중위가 단언했다.  이 소령도 중국측이 자기들의 내전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외국에 보여주는 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던 차에 김 중위가 녹화한 테이프를 주자, 이 소령이 테이프를 다시 돌려보았다.  장면은 정부군과 심양군의 전투장면인데 화면설명에는 정부군의 종군기자가 찍어 CNN에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음… 좋소. 김 중위, 내가 먼저 지적해 보겠소."

  한번 본 다음 테이프를 다시 재생시키며 이 소령이 말했다.화면은 중앙군이 심양군구 관할의 한 소도시를 점령하는 과정이었다.  도로에 중앙군의 전차와 보병들이 산개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불타는 전차와 보병장갑차, 시체들…  그 무엇을 보아도 이상할게 없는 화면이었다.

  "파편에 의해 죽거나 불에 탄 시체가 하나도 없소. 저 장갑차의 해치에 쓰러져 있는 시체도 총상이오.  파괴된 전차 옆에 쓰러져 있는 것도 폭발 파편이나 폭풍에 의해 죽은 시체가 아니오. 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의심을 하며 보니 모든게 의심되는군요.  저기 건물에서 저격하고 있는 심양군의 얼굴이 너무 깨끗하군요.  시가전 상황에서는 저런 얼굴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저 포로들의 얼굴에는 분노감이 나타나 있군요. 이번 내전의 이유는 잘 모르지만 중앙군과 심양군 사병들이 서로 적개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봐요.  전투중에 가혹행위가 있더라도 공포나 수치심은 나타날 망정 분노는 표출되지 않아요. 아마 분노하는 표정을 지으라고 교육을 받은 모양이오. 전쟁심리학을 전공한 내가 본 건 이 정도요. 김 중위는?"

  김 선영 중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령님은 역시 군인이시군요."

  "네? 무슨 말이오?" 이 소령은 당황했다.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그렇게 자세히는 못봤어요. 소령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렇군요. 맞아요. 저 화면은 연출된거여요."

  "그런데 김 중위는 저 화면이 가짜인줄 어떻게 알았소?"

  "화면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정지해 있는 중계차나 레일 위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며 찍은거죠. 전투 종료 후라면 이해가 가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건 아니잖아요."

  여군인 김 중위는 너무도 간단히 지적했다. 차 소령이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상황에서 아무리 용감한 종군기자라고 해도 자신을 은폐하지 않고 촬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왜 중앙군이 저 화면을 외신에 제공했냐는 거죠."

  이 소령은 선채로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출구로 뛰어나가면서 김 대위에게 외쳤다.

  "나는 상황실에 이 테이프를 보고하겠소. 김 중위는 무기 전문가들을 소집하여 무엇이 정말 잘못되었는지 상세히 분석하시오."

  1999. 11. 16  20:00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사단 상황실 정보분석반장인 나 영찬 대령은 고민했다.  내전이 진행되는 중국 만주지역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단의 각 부서에서 수집되는 정보들은 한결같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더불어 중국측이 우리나라의 정보수집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야간 당직을 맡은 장교들이 고민에 쌓인 모습들이었다.

  먼저 만주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전파방해 문제였다. 전쟁지역에 대한 광대역 전파방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범위와 정도가 너무 심해 그 지역에 대한 전파정보는 거의 수집이 힘들었다.  또한 만주지역에 파견된 지사원(첩보활동 인원)들의 보고가 전무했다. 무선 보고가 끊겼을뿐 아니라 인적 왕래가 차단되어 도저히 정보수집이 안되었다.  정찰기에 의한 정보수집도 중국의 전파방해에 의해 차단되었고 심지어 한만 국경지역의 유선전화마저 불통이었다. 광대역 전파방해가 유선통신까지 방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각 부서의 보고는  또한 중국 중앙군이 외신에 제공한 영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밝혔고,  중앙군과 심양군이 내전을 벌일만한 특단의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해왔다.  심양군구 사령인 고 중장의 인물 분석을 담당한 심리과에서도 고 중장이 반란을 일으킨데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했다.

  미국의 정찰위성을 통해 받는 정보는 갑자기 미국측의 사정이라며 질과 양에서 대폭적인 감축이 있었다. 중국에 파견된 한국 종합상사 직원들의 안부를 알지 못해 소재확인을 요구하는 민원도 쇄도했다.

  갑자기 만주지역에 대한 정보는 블랙박스 안에 담겨버린 상황이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의심이 갔다. 그것도 단지 중국이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그러나 비상을 해제한 몇 시간만에 다시 비상을 걸어 부산을 떨 필요는 없다고 나 대령은 생각했다.

  "아직 시간은 있다고 봅니다. 내일 아침에 각 단위부대장들이 출근한 후에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각 부서 당직께서는 재검토, 분석하여 일단 단위부대장들에게 보고해 주십시요."

  갑자기 이 소령이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만약! 만약에 중국에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사행동의 목표는 어딘지 자명하지 않습니까?"

  "이봐요,이 소령! 중국은 지난 내전중에도 내전 당사자 양쪽 모두 우리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했소.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할 뚜렷한 이유가 없단 말이오."

  "중국의 모험적인 정권이 지금까지 몇 나라를 침공했습니까?  침공하기 전에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동남아 어느 나라가 효율적으로 자기 나라를 방위했습니까? 중국은 군사적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10년 전의 재래식 군대가 아닌 현대적인 군대란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만주지역에 수십개 사단이 이동하고 있는지 설명을 해 주십시요. 과연 내전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훈련일수도 있지 않소? 중국의 가장 큰 적은 아직까지 러시아입니다. 러시아가 바로 북쪽에 위협으로 남아있는데  어찌 우리나라를 칠 수 있단 말이오?"

  "러시아는 경제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지만 중국은 내전 상황에서도 오히려 경제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발전 과정에서의 여러 모순들을 점차적으로 개선했고,  지금은 더 많은 욕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국제정치적 희생양으로서 더할 나위없는 좋은 상대란 말입니다."

  "좋소. 그것을 당신의 부대장에게 그렇게 보고하시요. 단, 내일 아침에 말이오."

  "중국이 당장 침공해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안북도 지역만이라도 비상경계를 시작해야합니다. 전차 5개 사단이 압록강 바로 너머에 있는 상황입니다.만약 오늘 밤중으로 침공해 온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아까 저녁때만 해도 차 소령의 부대도 비상경계해제에 동의했소. 그런데 몇시간만에 번복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이오? 더 이상 논란은 필요 없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내일 아침에 토의합시다. 이상으로 해산입니다."

  이 소령은 나 대령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령으로서도 오늘밤에야 설마 하는 생각으로 다시 자기 부대로 복귀했다.

  1999. 11.16  23:00  신의주 서쪽 용암포, 압록강 하구 해양감시소

  압록강이 바다와 만나며 이룬 삼각주인  용암포 서쪽 신우평(信遇平) 너른 들의 북쪽에 거대한 대형 유조선 세 척이 해상감시 레이더에 잡혔다.  만조 때 대형 화물선이 입항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유조선이 이런 얕은 바다에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라 해양감시소의 인민군들은 그 배들을 신기한듯 쳐다 보고 있었다.  북한의 신우평과 중국 단둥(丹東) 공업단지 사이의 밤바다 위에 떠있는 세 척의 유조선은 마치 커다란 괴물같았다.

  등대와 비슷한 모양을 한 해양감시소의 꼭대기 망루에 야간당직인 인민군의 이 태영 중위가 5km 서쪽의 유조선들을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이 해상은 수심이 낮아 아무리 만조라고 해도 유조선처럼 흘수가 깊은 배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대형화물선의 입항도 압록강 하구의 준설작업이 이뤄진 1998년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만조 평균수심이 1 미터밖에 되지 않고 중국측에서 준설한 물길도 깊어 봐야 6미터 남짓한 이곳 갯벌에, 흘수가 10 미터가 넘는 유조선의 입항은 상상도 못했었다.

  준설작업은 중국의 자본으로 이뤄졌고  남북한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단둥항의 이익만을 위한 준설이었기 때문이다.  신의주 북쪽의 압록강 너머 단둥시는 공업단지가 세워진 90년대 이래 10년간  급성장을 한 신흥공업도시이며 작년에 항구를 대대적으로 확장했었다. 북한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삼각주인 황초평(黃草平)과 중국 사이의 국경으로 쓰는 압록강 지류의 물길이 좁아 화물선이 단둥시에 직접 하역을 못하자 단둥시에서는 황초평과 용암포 사이인 압록강 본류의 준설을 제안했으나 신의주시에서 이를 거부를 했었다. 쌍둥이 국경도시이긴 하지만 단둥시에서 나오는 공해물질이 너무 과다해 신의주시는 북한 최고의 공해도시라는 악명을 듣고있기 때문이었다.

  이 중위가 그 배들은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모두 항해등을 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황을 상부에 보고할까 말까 망설이는 차에 유조선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한 척은 신우평에 남아있었으나 천천히 선회했고, 두 척이 용암포로 다가왔다. 유조선들이 움직이자 유조선들에 가려있던 대형화물선 여러 척이 보였다.화물선들도 역시 항해등을 켜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국제항해조례에 정면으로 위배된 행위였다.

  "유조선이 왜 이쪽으로 오는 기야? 길고 저 많은 배들이 항해등을 켜지 않다니… 이 낮은 곳에 유조선이 어케… 도대체…?  최 전사, 상부에 즉시 보고하라우야!"

  불안해진 이 중위가 명령을 내리고 최 전사가 복창하기도 전에  해양 감시소가 암흑 속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정전이었다.  남북한의 전력체계가 통합된 이후 한번도 있지 않은 정전이 일어난 것이다.

  "유선도 불통입네다. 뭔가 이상…"

  최 전사가 어둠 속에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명이 울렸다. 직감적으로 적의 침입을 알아챈 이 중위가 권총을 빼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그의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인민군 전사답게 가슴의 고통보다는 의문과 상부에 보고하지 못한 자책감이 더 컸다.

  ‘도대체 왜… 누가? 설마 중국이?’

  11. 16  23:05  신의주, 압록강 철교 남단 검문소

  신의주 철교에 근무하는 허 전사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어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곳도 국경인지라 밤 9시 이후에는 통행이 통제되었다.가끔 단둥시로부터의 귀가가 늦은 북한 출신의 보따리 장수들이 밤 9시 약간 넘어 승용차로 도착해서는 통행세로 양주나 음식을 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런 늦은 시간엔 그런 재미도 없었다.

  검문소 통제소 안에 있는 중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안쪽 내무반에서는 소대장을 포함한 인민군들이 남조선 TV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인지 시끌벅적했다. 같이 근무하는 하사는 차단기 뒤쪽에 앉아 달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허 전사는 모든 것이 항상 같은 인민군 생활이 지겨워졌다.

  입대하지 않은 고향 친구들은 남조선의  서울에 가서 한몫 단단히 잡은 모양이었다. 중장비 기술자인 친구 조 남철은 서울에 작지만 아파트도 가지고 있었다. 지난 휴가 때 서울 구경도 할 겸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서울의 밤은 정말 놀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고층빌딩, 자동차, 인파… 그곳에 사는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친구에게 듣기로는 남조선에서는 농부가 천대받는다고 했었다.  공화국에서도 말로는 농부가 우대받지만 사실 골시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친구의 말로는 시베리아나 만주에 있는 농장이나 건설현장의 인부로 가면 몫돈을 쥔다는데 거길 가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제대하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다. 통일이 되면서 군 병력을 감축한다는데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협동농장의 선희가 생각나 종종 같이 부르던 노래를 작은소리로 불렀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철교 북쪽에서 헤드라이트를 킨 차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 피우고 있는 하사를 부른 다음 총을 어깨에 맨 채 그 트럭이 오길 기다렸다. 차단기 앞에 트럭이 서자 허 전사가 트럭 운전석 쪽으로 갔다.  운전사가 양주나 다른 물건을 주면 통과시킬 생각이었는데 운전사가 알겠다는 듯이 웃더니 조수석 밑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뭔가 잔뜩 기대하던 허 전사와 하사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섬뜩한 섬광이었다.

  트럭 뒤쪽에서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하고 총을 든 괴한들이 뛰어내렸다.스털링 L34A1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그들이 통제소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졸다가 반쯤 깬 중사가 개슴츠레한 눈으로 무슨 일인가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기관단총을 연사하여 중사가 계속 잠들도록 했다.안쪽에서 TV소리가 들렸다. 괴한들이 문을 서서히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인민군 몇 명은 자고 있고 나머지는 TV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천히 내무반으로 걸어들어가 한명씩 기관단총을 쏘았다. 소음기관단총의 총소리는 TV소리에 묻혀 밖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TV에서는 쇼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세 명의 젊은 여자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지휘관인듯한 남자가 화면을 흘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전차의 우르렁거리는 소리가 내무반 안쪽까지 들려왔다.

  11. 16  23:10  용암포 앞바다

  감시자가 사라진 해상에 대형 유조선들과 화물선들이 해상 발레를 시작했다. 유조선 두 척이 일렬로 늘어서자 신우평과 용암포를 잇는 기다란 다리가 되었다.유조선들은 선수와 선미에 대형 다리를 내려 다른 배와 연결했다. 용암포의 항만경비대와 해관은 이미 중국의 해병수색대에 의해 제압된 상태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해상쇼를 이어나갔다. 일전에 중국측이 바다와 단둥을 연결하는 대규모 준설작업을 할 때  중국이 북한 몰래 용암포 앞 압록강 하구의 준설까지 했었다.  이 작업에는 수십척의 소형잠수함이 동원됐었다. 조그마한 포구인 용암포에 닿은 선두의 유조선에서 선수(船首)가 열렸다.

  대형유조선의 선수가 양쪽으로 갈라지자 전차와 APC들이 굉음을 울리며 내려왔고, 이들은 내리자마자 각자 맡은 위치로 달려나갔다. 보병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군은 대만상륙전에서 너무 소수가 상륙하여 작전에 어려움을 겪자 한반도 상륙전에서는 대규모 부대를 한번에 상륙시키고,또한 병력증강을 계속하기 위해 유조선과 화물선을 다리로 쓴 것이다.  충분한 병력이 항구와 그 주변에 배치된 것을 확인하자 중국측은 즉시 대기중이던 6척의 3천톤급 전차양륙함을 항구 주변의 갯벌에 접안시켰다.  각 전차양륙함으로부터 수십대의 전차들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중국군의 상륙과정을 숨어서 본 부두노동자 한 사람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지 고민했다. 항만경비대는 이미 적에게 당했을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다면 중국군이 이렇듯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상륙하지는 못할것이리라.

  ‘최선의 방법은…’

  노무자는 호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그가 숨은 창고는 보세품이 가득 쌓인 창고라서 불이 잘 붙을 것이며, 시내에서도 이 불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불에 타 죽을까? 아니면 중국군에게 사살될까?’

  불을 내지만 않으면 자신은 민간인이므로 중국군에게 잡혀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떤 기관도 중국군의 신의주 상륙을 아직 알지 못할것이며 빨리 알릴수록 우리나라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불이 잘 붙을 만한 종이들을 모았다.

  "이런 젠장, 누가 불을? 그래서 샅샅이 수색하라고 명령했잖아!"

   리 중장이 용암포에 정박한 유조선의 선교에서  중국 해병대 사단장에게 무선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항만 보세창고의 불빛으로 불을 켜지 않은 선교 안까지 환했다.불길은 바닷바람을 타고 옆 창고까지 옮겨 붙었다.

  리 중장은  대만상륙전에서 위장 원자력 컨테이너선인 항모로 후아리옌을 점령한 중국해군 북해함대 사령관이었다.용암포 점령전 선봉을 맡은 해병대들의 실수에 위신이 깎인 듯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용암포 점령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해군의 제지가 없었으므로 육군도 아직은 모를 것이다. 신의주도 이미 우리 중국군의 손에 들어왔다. 한국군 부대가 우리를 막으려고 오는 길은 이미 우리의 수중에 있다. 나는 또하나의 상륙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군인으로서 침략군의 선봉이 된 것은 부끄럽지만 국가의 명령이다. 이제 주도권을 육군에 넘겨주면 된다.’

  1999. 11. 17  00:10  대전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신의주시와 인근 일대에 현재 2 시간째 정전사태입니다. 유무선통신도 일체 불통입니다.  그 지역 군부대들과 용암포의 항구경비대도 연락이 두절된지 오래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당직사령 중의 한 명이 나 대령에게 보고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나 대령이 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이야! 한전과 한국통신에 더 자세한 걸 문의하고, 연락이 되는 군부대에 연락해서 차량으로 확인하도록 해!  혹시 해군이나 공군에서 연락 온 것은 없나? 중국군의 병력이동 현황은?"

  "알겠습니다! 중국 해군과 공군의 이동은 없습니다. 다만 단둥지역에 있는 중국군의 이동상황은 현재 알려지고 있지 않습니다.아직도 전파방해가 심하고 통신 두절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음… 알겠네. 아까 내 명령 실행하도록! 참, 그리고 전파방해원의 위치를 확인해봐. 혹시 만주지역의 전파방해로 신의주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예! 단결!"

  젊은 중위가 돌아가자 나 대령은 고민에 빠졌다.  비상을 걸 것인가, 아니면 긴급부서장 회의만 열것인가.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중국의 침략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나 대령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도대체 최첨단 정보처리장치가 있으면 뭐하나,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데…’

  "전파방해원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단둥 북방 50km, 다이렌 남동방 80km, 신의주 동북방 30km입니다.모두 항공기에 의한 광대역 전파방해입니다. 이전과는 다릅니다! 그 원의 중심에는…"

  보고를 하던 하사관이 멈칫하더니 자기 앞의 콘솔을 조작하여 상황실 중앙스크린에 한반도 북부지도와 전파 방해원의 위치를 나타낸  자료를 전시했다.

  "그 원의 중심은 신의주입니다!"

  하사관이 경악했다.  그는 이를 중국의 신의주 침공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 대령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단둥의 고 중장 휘하의 전차부대에 대한 중앙군의 공습일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단둥과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지 않은가? 고 중장의 작전을 잘아는 과거의 동료들이 고 중장 부대의 주력이 있는 단둥을 치려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동요하는 상황실 부원들을 진정시키고 나 대령은 각종 화상전화와 대형컴퓨터, 통신장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갑자기 자신의 콘솔에 붙은 화상전화가 켜졌다.  나타난 얼굴은 국제뉴스를 취급하는 부서의 이 소령이었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당황스런 얼굴이었는데, 경례고 뭐고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방금 중국으로부터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당 주석의 연설인데 정치 국원과 군사위원들의 서명이 된 것입니다.  내용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불만토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명한 군사위원 중에 심양군구의 고 중장,  아니 승진하여 고 상장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뭐요? 고 중장은 이번 군사반란의 주모자! 그럼 반란은 가짜란 말이오?"

  나 대령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마 병력이동을 위장하기 위한 책동인듯…"

  이 소령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군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확연하지 않은가. 나 대령은 갑자기 머리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비상! 각군 1급비상경계! 대 중국방어전 실전배치하라! 박 준위, 즉시 통일참모본부에 연락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평안도 지역 각군 비상 출동대기! 신의주 부근에 어떤 부대인가?  즉각 신의주 진입을 명하라! 만약 신의주에 외국군이 진주하였다면 즉각 교전하여 섬멸하라. 반복한다. 교전 후 섬멸하라! 공군은 신의주 상공을 정찰하도록 연락하라!"

  종합상황실이 갑자기 바쁘게 돌아갔다. 5분 내에 비상령이 각 하급부대까지 전달되었고 신의주 남방의 인민군 제 9사단 병력이 출동을 시작했다.  공군에서는 정찰기를 띄웠으나 신의주 시가 전체가 암흑에 쌓여 정찰헬기를 더 띄우기로 하였다. 용암포쪽을 정찰한 정찰기조종사의 보고에 의하면 항구쪽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항구 밖에 거대한 선박들이 있다는 것 뿐이었다.

  다시 이 소령이 보고를 했다. 군사전문가, 그리고 법의학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시체로 보인 것은 사실 시체가 아니며, 화면 전체가 다 연출에 의한 것,  즉,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뉴스, 외신에 전달된 화상, 모두 중국의 거짓 선전이었습니다!"

  "아까 중국공산당 주석의 연설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없소?"

  "지난 중국 내전시 한국과 일본의 행태에 대한 비난만 있었습니다.중국의 내전을 부채질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일뿐 선전포고와 유사한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한국내 민간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주 연변족들과의 민족통합운동,  또는 만주회복운동을 침략운동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전부터 그래왔던 것이고, 다만 중앙군사위원들까지 서명에 참가했다는 것이 이상할 뿐입니다."

  "알겠소. 모든 촉각을 중국으로 향하도록."

  "알겠습니다. 단결!"

  이 소령은 이제 자기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렇게 경고를 했건만, 나 대령은 믿어주지를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더 강력하게 주장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설마 하루 정도야 어떨까 했는데 바로 그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 소령은 난감해졌다.중국과 초유의 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중국은 핵보유국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11. 17  00:30  신의주 동남방 9km, 와이동 4차선 국도

  "이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디, 무신 중국군이 우릴 침략한다고, 부관! 내 전투복 달라우야. 정보사단 아새끼들 중국내전에 겁먹었구만!"

  인민군 제 9 사단 사단장인 노 영일 소장이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승용차로 쫓아와 이동중인 자기 부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첨병 부대는 배치했간?"

  경황중에도 노 소장은 부대이동의 원칙을 잊지 않았다.

  "설마 신의주에 무신 일이 있갔시요?"

  부사단장인 대좌가 얼버무렸다. 아무리 부대 이동이라고는 하나 평화시에 자기나라 안을 이동하는데 웬 첨병부대냐 싶었다.

  "기래도 배치하라우. 신의주와 위화도의 부대에서 연락이 없지 않아? 선두부대에서 차출해 신의주 정찰을 시키도록 하라우! 근데 와 이 시간에 지나가는 차량이 하나도 없디?"

  부대의 전진이 잠시 멈추고  보병전투차를 중심으로 첨병소대가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이어 첨병중대, 이어서 제 33연대의 본대가 뒤를 따랐다.

  사단 주력이 신의주 시내 진입로인 연상동 고개  아래에 이르자 신의주 시가에 진입한 첨병소대로부터 연락병이 왔다. 신의주에 접근할수록 극심한 중국의 전파방해로 무선통신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앞으로는 왼쪽에 신의주비행장의 불빛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신의주 시내에는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안보입네다.  단, 신의주 비행장쪽에 화재가 났다는데 거그에 차량과 사람들이 다수 목격되어 첨병소대가 그쪽으로 이동했습네다. 시내에는 인민도, 사회안전부 요원도, 움직이는 차량도 없습네다."

  "기래, 첨병중대는 시가에 진입했간?  좀 더 정밀정찰을 하도록!  전 부대 사주경계 철저토록! 이봐, 무전병! 상급부대와 연락 안돼?"

  "안됩니다! 모든 주파수대가 전파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무전병이 필사적으로 사용가능 영역대의 주파수를 찾고 있었다. 전파의 그늘 지역도 아닌데 이렇게 무선이 안되는 경우는 처음이라  북녘에는 이미 초겨울의 날씨인데도 땀을 뻘뻘흘리며 무전기를 조작했다.

  사단장은 조금 전과 다르게 긴장이 되어 있었다.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른쪽을 보니 작은 산그림자가 있었다. 인가 하나 없는 작은 야산이다. 그 밑으로는 경의선 철길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만약 적이 매복하고 있다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사단장의 뇌리를 스쳤다.

  "부사단장, 중대 병력을 차출하여 저 산을 점령하도록 명령하라우."

  부사단장은 갑자기 이게 웬 전쟁놀음인가 싶었다.겁쟁이 사단장과 주로 남한 국군으로 이뤄진 정보사단의 명령에 인민군들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통일이 되고 나서, 아니, 아직 통일과정 중에, 자랑스런 전통을 가진 인민군이 지휘계통이나 작전, 정보, 병참 모든 분야에서 남조선 국군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특히 통일참모본부와 정보사단이 맘에 들지 않았다. 국군이 거의 모든 실권을 쥐다시피한 정보사단은 걸핏하면 평안북도 지역에 비상경계령을 내려, 이제는 짜증내는 단계가 지나 인민군 하급전사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중국은 지난 1950 년의 통일전쟁후 몇 십 년간 인민공화국의 최고 우호국이었으며 작년 중국의 내전에서도 우호적으로 지내지 않았는가? 남한 정부 지도자나 군 지도자들은  아직도 중국을 적국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인민군 장교들은 불만이었다.

  부사단장이 보병 1개 중대를 차출하여 야산의 점령을 명하자 보병들이 투덜거리며 야산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신의주 상공을 정찰하던 통일공군의 정찰기 한대가 중국군의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이다. 야산 쪽에서도 커다란 불꽃이 여러개가 피어 올랐다. 동시에 여러개의 기관총이 이쪽을 향해 사격이 시작되었다.

  주로 보병전투차와 병력수송트럭들로 이루어진 대열의 곳곳에 포탄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캄캄하던 야산이 온갖 화기의 불꽃으로 번쩍거렸다. 전차들이 순식간에 파괴당하고  인민군 보병들이 정신없이 엄폐할 곳을 찾아 뛰는 동안 몇 대 남지도 않은 전차와 보병전투차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사격! 숨디만 말고 사격하라우!"

  사단장이 부하들을 닥달했으나 급작스런 적의 기습에 모두들 제 살길찾기에만 찾았다. 미리 기다려서 준비하고, 게다가 높은 위치에서 쏘아대는 적들앞에 막강한 인민군 제 9사단의 전사들이 힘없이 쓰러져갔다. 이름없는 적의 매복은 그 야산에만 있지 않았다.인민군 9사단의 기다란 행렬의 사방 곳곳에 대전차미사일과 각종 총탄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미 포병대는 전멸당했고, 전차와 보병전투차는 몇 대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쪽 상공으로부터 헬리콥터들이 떼지어 날아왔다. 상공의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중국군 헬기사단의  공격헬기들이 인민군의 흐트러진 대열에 로켓탄 세례를 퍼부었다.

  "사단장님! 저건 중국의 프랑스제 가젤 헬리꼽땁니다! 중국군이 틀림없습니다!"

  부사단장의 외침을 듣고 공격헬기들을 확인한 노 소장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형제국이었던 중국이 정말로 침공한 것이다. 헬기에서 발사한 기관포가 주변을 쓸고 갔다. 한 병사가 러시아제 휴대형 SA-16 대공 미사일을 발사해서 중국 헬기 한대를 공중 폭파시켰다.여기저기 숨어있던 인민군들 사이에 환성이 터져나왔다.

  "사단장님! 왼쪽 논길에 전차부대가 나타났습니다!"

  헬기의 기총소사에도 불구하고 포탄구덩이에 숨어서 야시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부관이 외쳤다.

  "쏘련 T-72 땅크, 아니! 저건 중국에서 개량한 해병대용  무적 5호전차입니다!"

  노 소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패잔병들이 군데군데 숨어서 소총사격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널부러진 인민군 전사들의 시체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단병력이 전멸할 쯤에야 적이 중국 해병대라는 것을 안 자신의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이제 자신은 중국군의 침공을 상부에 알리는데 주력할지,아니면 소탕전의 비극을 막아 부하들을 한명이라도 살릴지의 선택으로 고민했다. 중국제 전차들의 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1999. 11. 17  00:40  서울, 청와대

  정보사단의 비상령 발동은 평안북도 일대에만 국한되었다. 물론 서해 함대의 감시가 강화되고 공군 정찰기들이 출격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중(韓中)국경에 한해서였다.  몇 번 계속된 비상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 청와대를 지키는 93경비대대의 경비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청와대 내부와 외부의 경비는 평소처럼 청와대 경호실과 일반 교통경찰에게 맡기고 경비대대의 88전차와 K-200 보병전투차들은 차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승용차가 라이트를 킨 채 천천히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진입로로 들어섰다.  바리케이드 옆에 서있던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고 플레시로 차안을 비쳐보긴 했지만 판에 박은듯한 형식적인 관찰이었다. 뒷좌석에는 넥타이를 풀어헤친 두 명의 중년남자와 한 명의 젊은이가 몸을 시트 깊숙히 묻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차 안에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감싸쥔 교통경찰이 혹시 운전자도 술을 마시지 않았나 운전사를 보고는 그대로 통과시켰다.

  승용차가 청와대 앞길로 들어섰다. 반대쪽 차도에서는 편의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이 청와대 앞에 마주치자 갑자기 트럭이 서더니  뒷문이 열리고 검은복면을 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사람들을 내린 차는 그대로 가던 방향으로 지나가고 승용차는 정문 경비실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굳게 닫힌 청와대 정문 앞에는 의무경찰 두 명이 입초를 서고 있었다. 갑자기 차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뛰어오자 그들에게 K-2소총을 겨눴으나 미리 준비한 검은옷들이 빨랐다. 의경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의 총구에서 뿜어진 화염 뿐이었다. 청와대 정문 경비실의 책임자인 종로경찰서 소속의 경위가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으며 비상벨을 누르려했으나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온 복면들에게 사살당했다. 이들은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을 쏘아서 총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다.

  복면들이 의자에 앉아 코를 골고 있는 다른 경찰을 보더니 칼을 꺼내 가슴을 쑤셨다. 잠자던 경찰은 잠시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칼을 뽑자 시체에서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의 사나이가 경비실 안으로 들어오자 복면 중의 한 사람이 경례를 했다. 검은색 가죽가방에서 경찰복을 꺼내 입으며 중년의 사나이가 경례를 한 검은 복면에게 눈짓을 하자 그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청와대 내부로 통하는 경비실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중년의 사나이가 밖을 보니 같이 승용차를 타고온 사람들중 운전사와 뒷좌석의 청년이 경찰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시체들을 화장실 안쪽으로 치우고 자신은 의자에 앉았다.밖에 트럭의 전조등이 보이고 또다시 여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들이 총을 쥔 채 경비실 쪽으로 뛰어들어왔다.  신문수송트럭은 사람들이 다 내린 후 다시 가던 방향으로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사륜구동차에서 중장비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내리자 이 행렬은 끝이 났다. 경비실과 그 앞쪽에 10여명의 사나이들이 총을 움켜쥔채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11. 17  00:45  서울, 한남대교

  한남대교 중간부분의 교각 아래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 위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미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림자 하나가 줄을 타고 교각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발이 물에 닿자 등에 줄에 몸을 의지한 채 거꾸로 섰다.  등에 진 가방을 벗어 이를 어제 미리 작업을 해둔 수면 아래 교각의 틈 사이에 넣었다. 차가운 강물이 느껴졌다.가방에서 가느다란 안테나를 뽑아 물 위까지 오게했다. 다시 바로 서서 익숙한 솜씨로 줄을 타고 올라갔다. 그림자들은 주변을 살피며 다리 위의 인도로 올라섰다. 승용차가 이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들이 대교중간에 고장 경광등을 밝힌 채 주차중이던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미리 시동을 키고 있던 검은색 승용차가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서있던 빨간색 스포츠카도 라이트를 켠 채 이 승용차를 뒤따랐고 잠시 후 또 한대의 사륜구동차가 이들을 따랐다.

  이들이 한남대교를 벗어난 10분 후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며 한남대교와 옆의 동호대교 철교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폭음이 고요하던 서울 시내를 울리고 주변 아파트의 유리창들이 깨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잠시후에 한강대교와 한강철교, 그리고 성산대교와 당산철교도 폭음과 함께 무너졌다. 1999년 11월 17일 새벽 1시였다.

  11. 17  01:00  부산, 부산항

  늦가을 밤의 차가운 바다 바람이 부는 부산항 제 3부두와 4부두에 정박 중인 수 십 척의 화물선들은 야간 하역작업을 하느라 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중앙부두 바로 뒤의 부산역에는 새벽 0시 55분에 도착한 서울발 새마을 열차에서 인파가 쏟아지고 있었다. 2부두 쪽의 광복동에서는 아직도 유흥가가 영업을 하는지 불빛이 영롱하게 물 위에 비쳤다.

  갑자기 물 표면에 거품이 일더니 작은 막대기가 솔아 올랐다. 막대기가 잠시 회전을 하더니 한 곳에 멈췄다.물살이 일고 막대기가 진동하며 떨더니 수중에 무엇인가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그 물체들은 어뢰가 되어 제 7부두의 군함들에게 접근했다.  제 7부두는 미군이 전용항으로 쓰다가 한국 해군에게 넘긴 항만인데 한국 해군에서는 연안경비용 소형 함정들의 정박지로 쓰면서 화물선들에게도 정박을 허용하고 있었다.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초계함 두 척이 순식간에 침몰했다. 대형 상선 한 척은 화재에 쌓인 채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갑작스런 폭음에 놀란 부산 항만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써치라이트가 하늘과 바다를 스치며 침입자를 찾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침입자의 자취를 찾을 수 는 없었다.

  또 다시 어뢰공격이 시작되어 제 3, 4, 5 부두의 상선들이 연이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곡물하역작업 중인 벌크선과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당했다. 다시 옆에 정박중이던 대형선박이 침몰했다. 곧이어 제 3부두 반대쪽인 연합철강 앞에 있는 부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고철을 가득 실은 2만톤급 대형화물선이 굉음을 울리며 침몰했다.

  제 5부두 안쪽에 정박중이던 항만소방서의 소방선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했다.초계정과 연안경비정들도 써치라이트를 미친 듯 물위에 좌우로 비치며 적을 찾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도 침입자들이 나타났다.

  바다 위를 스치듯 저공으로 날며 12대의 시 해리어가 연안여객선터미널 상공을 지나 부산시청과 남포동 중심가의 상가, 그리고  부산호텔과 타워호텔에 폭탄을 투하하더니 용두산공원 위를 지나 북동쪽 하늘로 날아갔다. 그 비행기들의 아래에는 충무공의 동상이 남해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전투기들이 음속에 가까운 속력을 내어 구덕산을 넘어 김해 국제공항 상공에 도착했다.이들은 부산항의 참상을 연락받고 막 대공경계를 시작한 공항경비대의 써치라이트를 무시하고  활주로를 따라 양옆으로 줄줄이 서있는 여객기들에게 30밀리 기관포를 쏘기 시작했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새벽에 일본으로 출항할 예정이던 국제선 아시아나 항공기가 불길에 휩싸였다. 바로 옆의 일본항공 소속의 여객기도 당했다.

  당황한 공항경비대가 급히 나이키 지대공미사일을 쏘았으나 저공으로 공격중인 시 헤리어들은 이를 비웃듯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발칸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으나 한 대를 노리고 공격하면 다른 전투기에 당하기 일쑤였다.마지막으로 공항 연료저장고에 시 헤리어가 발사한 매브릭 미사일이 명중하자 휘발성이 강한 항공유가 연속 폭발하기 시작하여 공항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화했다.

  부산시내와 김해공항을 습격한 시 해리어들은 폭탄과 포탄을 모두 사용하자 남동쪽 바다 방향으로 날아갔다. 오륙도에서 남동방향으로 계속 3분쯤 비행하자 바다 위에 등불 몇개가 깜박였다.해리어들이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등불 위로 내려앉았다.해리어들이 수직착륙을 마치고 날개를 접자 바닥이 꺼지며 비행기들이 잠수함 안으로 사라졌다.  잠수함들이 잠수하고나서야 울산방향에서 날아온 한국공군의 F-16들이 잠수함들이 사라진 바다의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11. 17  01:00  광주, 광산구

  광주 하남공업단지 일대가 일순간의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다. 정전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업단지 일대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작았던 불길이 점점 커졌다. 가스관이 폭발하여 강력한 불길을 밤하늘로 뿜어냈다.주변 공장과 건물에도 불길이 옮아붙었다.즉각 소방차들이 출동해서 진화에 나섰으나 강한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11. 17  01:00  서울, 청와대

  고요하던 늦가을 밤, 청와대 뒷쪽 산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청와대 뒷쪽 북악산을 경비하던 95경비대대 소속의 군인들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접근하는 그림자들을 발견하고 수하를 했으나 이들이 불응하자 바로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참호에서 사격하던 군인 두 명은 뒤쪽으로 돌아온 다른 그림자들에게 즉각 사살당했다.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일어서더니 청와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청와대 경호실에  비상이 걸리고 숙직중이던 경호원들이 벽장에서 K-1 기관단총을 꺼내 무장하고 복도로 나섰다. 그러나 이들은 복도로 나가자마자 2층까지 침입한 복면들에게 사살당했다. 비상벨 소리를 들은 복면들이 다급해졌다.  이들은 대통령 침실이 있는 봉황실까지 뛰기 시작했다.  청와대 본관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본관 밖에서도 총성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괴한들과 경호원들과의 총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경복궁의 93 경비대대가 즉각 출동하여 K-200 보병전투차를 앞세우고 대부분 트럭으로 청와대 정문을 향했다. 그러나 당연히 문을 열어줄 줄 알았던 경비실 경찰들이 사격을 해오자 당황했다. 이들은 기관총과 RPG 등의 중화기로 무장하고 경비대대를 공격한 것이다. 경비실까지 점거당한 줄을 깨달은 대대장이 하차하여 사격을 명령했다. 뒤늦게 따라온 전차 한 대가 경비실을 향해 주포 한 발을 발사하자  경비실의 저항은 잠잠해졌다.

  "대통령 시해음모다. 우리는 대통령을 보호한다. 앞으로!"

  대대장이 지프에 타며 공격을 명령했다.대대장 옆의 통신장교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에서 호출하는 무선에 대답하고 병력지원 요청하기 바빴다. 청와대 경호실은 유,무선이 모두 불통되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88전차를 선두로 정문을 열고 경비대대가 막 청와대에 진입한 순간에 청와대 앞 도로에 승용차들이 오더니 차안에서 로켓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대대장을 뒤따르던 트럭 두 대가 당했으나 보병전투차의 기관포가 이 승용차들을 걸레처럼 찢어발겼다. 대대장은 정문에 전차 두 대와 보병 1개 소대를 남겨놓고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청와대 대통령 침실 바로 앞 복도는 복면괴한들과 청와대 경호원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있었다. 아직도 총성이 계속 울리고 수류탄과 RPG로켓탄의 폭발음이 가득했다. 대통령은 침실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권총 한자루를 쥐고 있었다. 영부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고 대통령은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적은 도대체 누군가? 혹시…북한인가?"

  "아직 확인이 안되었습니다. 각하!"

  경호실 차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만약에 북한이라면…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그 이상의 악몽이 연출될 것이 분명했다.

  실장은 괴한들과의 총격전에서 이미 사망했다는 보고가 왔었다. 경호원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감소했고, 이곳도 별로 못버틸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마지막 남은 경호원들은 10여명도 채 되지 않았다. 묵직한 자동소총의 연사음이 들리더니 침실 밖의 거실 문 뒤에 숨어서 사격을 하던 경호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 권총은 어떻게 쏘는 것인가? 난 육군병장 출신이라…"

  대통령이 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홍 대통령은 사병으로 제대하여 권총 사격연습을 받지 않았다. 대통령은 권총이 의외로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전장치는 해제했으니 방아쇠만 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그 권총은 호신용이 아닙니다, 각하!"

  경호실 차장이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이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기관단총의 연사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할것 같습니다. 각하…"

  차장이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자신의 임기중에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다.

  "몰려옵니다~~~~~~~ "

  경호실의 고참인 조 과장이 거실에서 침실쪽으로 외쳤다.  조 과장은 이미 3군데에 총탄을 맞았으나 악착같이 적을 막고 있었다. 차장이 침실을 나선 후에 총성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빨리! 대통령이 위험하다!"

  93 경비대대의 대대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지휘하여 본관 앞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두 곳으로부터 기관총 공격을 당했으나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그들을 잠재워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복면의 괴한들은 경비대대가 청와대 안까지 전차 등의 중화기를 들여올 줄은 계산 못한 모양이었다. 현관 안쪽에서 기관단총의 발사 섬광이 보였다.

  "전차, 현관에 집중사격! 모두 3층으로 뛰어간다. 돌격!"

  전차 3대가 주포를 발사하고 보병전투차들이 기관포를 연사한 직후에 대대장을 선두로 대대원들이 현관으로 뛰어들어갔다.  대대원들은 모두 본관의 지리를 숙지하고 있어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수 십 번의 도상훈련과 실제연습을 거친 이들은  각 소단위 부대장들의 지휘를 받아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각 층마다 복병들이 숨어서 이들을 저지했으나 수를 앞세운 그들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우리의 적은 시간이다. 급하다, 돌격!"

  대대장의 독려는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목숨이 지금 이 시간까지 붙어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지만 최단시간 내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대대장이 복도를 돌다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숨었다. 뒤따르던 부관이 수류탄을 던지고 폭발 후에 뛰쳐나가 자동소총을 연사했다.  모두들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군이 오고있다. 끝까지 버텨라. 각하를 보호하라!"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거실로 뛰어들어온 괴한 한 명을 사살하며 차장이 외쳤다. 경호실 차장의 왼쪽 팔은 아래로 축 쳐져 있었고 양복은 핏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경호원은 자신을 포함해 3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차장이 남은 실탄 수를 세어 보았다.

  대통령은 거실 안쪽에 있는 침실의 침대뒤에 숨어서 권총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었다.  자신이 이 젊은 나이에 할일도 다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침실 밖의 거실에서는 총소리가 이어졌으나 화력에서 앞선 괴한들의 상대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RPG의 폭음이 울리고 거실쪽의 벽이 무너졌다. 출입문의 저항이 거세자 시한폭탄을 준비하지 못한 괴한들 중 한 명이 복도에서 벽을 향해 RPG를 쏜 것이다.  물론 RPG를 발사한 괴한도 몸이 산산히 찢어졌으나 거실 안쪽의 경호원들도 1명이 죽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뚫려진 구멍으로 괴한들이 자동소총을 난사하며 쏟아져 들어왔다.

  차장의 비명소리가 밀실까지 들려왔다. 차장은 대통령인 자기를 지키지 못해서 억울한지, 아니면 죽어서 억울한지 매우 한을 품은듯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되었다. 대통령이 서서히 권총을 머리에 댔다. 이 한발이 자신의 운명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영부인이 울며 말렸으나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잡혀 이용당하는 수치를 겪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할 일 이라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북한이라면 자신을 죽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남북한의 수뇌는 통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만났었다.북한의 군부강경파들도 자신이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갔어도 별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의 군 장성들이나 극우파들도 통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암살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홍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안전한 상황이었다.

  밖에서는 총성이 연이어 울리더니 일순간에 딱 멈췄다.드디어 완전히 끝난 모양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젊을 때부터 같이 고생하던 영부인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각하! 어디 계십니까? 저희가 왔습니다!"

  응접실에서는 더 이상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괴한들이 자신을 생포하기 위한 술책인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93 경비대대장입니다. 각하, 실례지만 들어가겠습니다."

  말소리와 동시에 군인 몇 명이 침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총을 이리저리 겨누다가 대통령을 보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93 경비대대의 박 철민 중령입니다, 각하! 무고하셔서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리를 겨눴던 권총을 내리자 영부인이 긴장이 풀려서인지 기절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쓰러진 부인을 물끄러미 보더니 박 중령에게 물었다.

  "고맙네, 박 중령. 근데 적은 누구였나?"

  대통령은 박 중령의 고뇌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10여분간 전투를 치렀으면서도 적의 실체를 파악 못하고 있는 지휘관의 표정은 복잡했다.

  "각하! 적은 전원 사살되거나 자폭했습니다. 포로는 없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우리 동포가 아니며, 공산권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럼 중국인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각하!  유전자 검사를 하면 확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어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또다른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혹시 북한의 주석과 통화를 할 수 있겠나? 이곳 전화는 다 두절됐다네."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대대장을 따라온 젊은 통신장교가 군기가 바짝 든 채 대답한 후 즉시 국방부를 호출했다. 국방부와 북한의 인민무력부간의 회선이 열리고 다시 평양의 주석궁에 연결됐다. 통신장교가 군용무전기의 커다란 송수화기를 대통령에게 주었다.

  "대통령이오. 주석님은 지금 주무십니까?"

  대통령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듣더니 ‘알겠소’ 라는 짧은 대답만 하고는 송수화기를 통신장교에게 다시 넘겼다.

  "북한의 주석은 조금 전에 암살당했다네.  중국군 특수부대의 소행이라고 하는군.지금 당장 계엄령을 발동하고 삼군총장을 소집하여 비상각의를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대통령의 말에 깜짝 놀란 대대장과 통신장교는  한 번도 못해본 경호실과 비서실의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쁘게 되었다.

  1999. 11. 17  01: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정보사단의 비상경계령이 내려진지 50분도 안되어 개성의 통일참모본부 작전상황실에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서울과 평양에서 승용차로 오는 도중에 부관들로부터 대충 상황을 브리핑 받았으나 정보들이 너무 모호해서 궁금한 점이 많아  작전상황실장인 구 국군 공군의 양 석민 중장에게 질문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이제 이 종식 차수님만 오시면 브리핑과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중장이 부관의 보고를 받고 장중을 향해 외쳤다.

  "차수님이 입장하십니다. 전체 차렷!"

  통참참모 모두가 기립한 직후 통일참모본부 의장이며 통일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인 이 차수가 입장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한 그는 명색뿐인 직함이 싫었다.  그는 지금도 자랑스런 조국해방 전쟁(한국동란)의 젊은 하급전사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평시에는 사무실에만 앉아 있어야하는 이 일이 싫어 퇴역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의장은 국군 출신의 장성이 임명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부하 인민군 장성들을 생각하여서라도 퇴역하지도 못하는 입장이었다.그리고 통일과정 중이라서 군복과 계급체계가 아직 그대로 인데 자신이 국군의 고참 육군대장 취급을 받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차수님께 대하여 경례!"

  "통-일!"

  주로 장성들로 이뤄진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이지만 아직  서로가 서먹서먹해서인지 군 장성들치곤 꽤 군기가 들어있었다. 이 차수가 짧게 답례하고 중앙의 자리에 앉자 기립했던 장성들이 기다란 탁자를 중심으로 모두 자리에 앉았다.  대형 스크린 앞에 양 중장이 서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화면에는 신의주 부근 지도가 나타났다.

  "정보사단은 신의주 지역의 이상 단전, 유무선 통신 불통, 그리고 중국공산당 주석의 선언문을 계기로 비상경계령을 발동하였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었던 심양군구 사령 고 중장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서, 게다가 승진한 인민해방군 상장으로서 주석의 선언문에 서명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일단 신의주의 상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화면에는 전파방해원의 현재 위치와 평안북도의 통신불통지역이 표시되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중국의 전파방해원의 변동이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지상시설에 의한 광대역 전파방해였으나 지금은 다수의 항공기에 의한 전파방해입니다. 중심지역도 상당히 남하해서 평안북도 대부분이 전파방해의 영향을 받아 무선이 불통인 상황입니다.그리고 유선전화도 무슨 이유인지 평안북도 대부분이 불통입니다."

  화면에 인민군 9사단의 주둔지와 이동 경로가 나타났다. 화살표가 시간에 따라 주둔지로부터 신의주쪽으로 한방향으로 쭉 흐르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인민군 제 9사단이 신의주로 진주해 갔습니다만 0030 현재 무선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10분 전부터는 주둔지의 사단상황실과도 연락이 안되는 상태입니다."

  장내에 잠시 술렁거림이 있었다. 양 중장이 잠시 쉬었다가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아군 정찰기 한대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정찰헬기 두 대도 소식이 없습니다.정찰기의 경우 소요 연료량을 계산해본 결과 이미 10분전에는 연료부족 상황이므로 추락,  또는 불시착했다고 봐

야합니다."

  "기럼 적은 중국이오?"

  구 인민군 해군 상장인 박 정석 상장이 뻔한 질문을 했다.  그로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50 년간의 형제국이 일순간에 적국으로 돌변한 것이다.

  ‘비록 중국의 내전과 한반도 통일로 변화는 많았지만 사람은 같지 않은가? 북해함대 사령 리 소장,  아니, 대만 점령전에서 수훈을 세워 이제 중장이 된 그 사람도 나하고 오랜 친구사이인데…’

  중국과 북한의 오랜 군사교류를 통해 고급장교들끼리는  상당히 친숙해진 사이가 되었고 특히 리 소장은 서로 해군장비의 낙후성에 대해 울분을 토하다 같이 술잔을 기울인 적도 많아져 비슷한 연배인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다.박 상장이 보기에는 리 중장은 상당히 전략가다운 면모가 많아 보였다.  만약 본토에서 대만을 친다면, 자신의 계획대로 하면 일주일 내에 대만을 점령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해낸 것이다.

  "그렇습니다."

  양 중장의 짧은 대답은 인민군 장성들에게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무거운 압력으로 다가왔다. 보다 큰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이었다. 이렇게 큰 나라와 싸운다니 자신이 들지 않았다.

  "중국의 정규군 병력은 700만으로 추산됩니다. 육군 600만,전략 방공부대를 포함한 공군 60만, 해군 40만, 기타 준군사력인 인민무장경찰이 700만, 그리고 예비군으로 볼 수 있는 민병이 있습니다. 현재 가용병력 총 1천 9백만명입니다."

  말 안해도 잘 알지 않느냐는 투로 양 중장이 짧게 설명했다.

  "현재 평안북도  신천에 주둔중인 국군 제 11 기갑사단에 출동명령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인민군 제 15사단과 인민군 항공 3사단에서 비상 출동 대기 중입니다. 전시 교전권 부여에 대한 제청을 해주십시요."

  양 중장이 자위 이외의 공격권을 각 군이 가질 수 있도록 참모본부에 요청했다.  중국의 침공이 확실시 된다면 이제 국군과 인민군의 통일군대는 한반도 내에서의 침략군 격퇴임무 외에도 중국본토에 대한 공격권을 가지게 된다.

  이 즈음의 군에 대한 교전권의 부여체계는 통일참모본부가 남북의 수반이 공동 위원장인 통일군사위원회의에 제청하여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주석이 군 지휘권을 통일참모본부에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남북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통일의회는 있지만, 아직 통일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지 않아  이 경우에 최고사령관은 임시로 통일참모본부 의장이며 통일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즉 이 종식 차수가 된다. 평화시에는 명색뿐인 통일참모본부 의장에서 이 차수는 일약 통일한국군의  최고사령관이 되는 것이다.

  이 차수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150여만의 대군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전시에! 게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외국의 적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쟁이 아닌가?  군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잠깐 기다리시요!"

  위원중의 한명인 국군의 정 지수 육군대장이 제동을 걸었다.

  "교전권 부여는 군사위의 제청상황인데 아직 남북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께서 참가를 안하셨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적의 확실한 정보도 모르지 않습니까? 만약 만주지역의 불안을 계기로 평안북도 주둔 일부 부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면?"

  통일군사위원회는 남북의 수반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남북 국방장관(북의경우는 국방부장)과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들,그리고 남북 군을 대표하는 통일참모본부의 고위직들이 참가하는 회의체였다.  정 대장의 내심은 사실 막중한 군지휘권을 인민군 출신의 이 차수가 맡는 것이 못내 미덥지 못한 것이었다.

  "좋소, 양 중장. 군사위원 모두에게 화상회의를 준비하도록!"

  이 차수도 이 미묘한 문제를 어떻게 풀지 난감했다.통일군사위원회와 통일참모본부,  게다가 통일 과정이라 남북의 합참본부와 각군 본부 등이 산재해있어 지휘권의 일원화를 기하기 어려웠다.  남북의 통일과정, 그 하부과정인 군사력 통일과정에 있어서  아직 통일참모본부는 명색뿐이며 합의체일 뿐, 실권이 없었다.  아직 실권은 남북의 각 군사기구에 있어서 당연히 반발이 예상되었다. 사실 이 차수의 경우 퇴역대상 군인을 위한 명예직으로  모두들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일과정 중의 법률적 빈틈을 이용하여 그가 군 최고지휘관으로 임명되니 모두들 반발이 심할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통일참모본부에 소속된 각 군 장성들은 자신들의 임무는 서로에게 유리한 남북 군통합 형태를 유도해 내는 것으로 생각했지 실전에서의 참모 역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양 중장의 부하들이 화상회의를 위해 준비하는 동안  통일참모본부의 군사위원들은 법률적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각 소속군 참모총장들과의 연락을 위해 소란스러웠다.

  "피양으로부터 급전입네다!"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보는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주석께서 서거하셨습네다. 주석궁이 중국군 권단의 습격을 받았습네다. 주석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놓티 않았다 합네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장성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곧이어 한국 육군의 정 지수 대장도 놀란 얼굴로 보고했다.

  "청와대도 중국 특수부대에 습격을 당해서 대통령 각하께서 암살직전에 구출됐다고 합니다."

  참모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김 대장이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부산항과 인천항이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적으로부터 공격당했습니다. 그리고 김해공항이 적기의 공습을 받았고 서울의 한강 교각 5개가 무너졌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광주의 하남공단에 대화재가 발생했으며 고속도로와 철로 몇 군데가 폭발로 유실되었습니다.본격적인 침공 직전의 양상입니다!"

  "이북에서도 곳곳에서 공격을 받았습네다. 남포, 흥남, 김책(성진), 청진, 김형권(풍산)시 등에서 테러가 일어났습네다."

  김 대장이 아직도 주석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듯 말을 더듬거렸다. 인민군 장성들은 개전 초기부터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중국은 확실히 한반도를 점령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통일한국은 중국을 막을 힘이 없었다.

  11. 17  01:20  신의주, 연상동(신의주 시가 동남방 4 km)

  "전투가 끝났습니다. 전과확인 중이며 빠져나간 적들은 없습니다. 현재 소탕전이 진행중입니다. 아직까지 포로는 별로 없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제 2 해병사(사단) 사령 천 위안 대좌가 부관의 보고를 받고 미소지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인민군 9사단이 먼저 신의주쪽으로 올 것을 예상하고 도로 주변에 해병대 2개 사단이 잠복하여 인민군의 사단병력을 별 손해없이 섬멸한 것이다. 다만 헬기 사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헬기사단은 필요도 없었는데…’

  중국군은 전통적으로 전술적 임무의 완수보다는  적 주력의 섬멸전을 선호했다.모택동의 말대로 적의 열손가락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것이 낫다는 식이다. 국공내전의 홍군은 遼瀋,淮海,平津 등의 3대 작전에서 철저한 포위섬멸전을 감행함으로써 국부군과의 전력비를 역전시켜 내전을 승리로 이끈바 있었다.국공내전후 50년이 지났지만 이 전략은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어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베트남전, 기타의 전쟁에서도 자주 이용되었으며,  또한 아직도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작전이었다.전력이 약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승리를 노리는 중국 군부는 계속 이 섬멸전을 선호하고 있었다.

  "주석으로부터 당과 인민의 이름으로 이번 승리를 축하한다는 전문이 왔습니다. 그리고 국군 제 11기갑사단이 북진중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 인민해방군의 3개 장갑사단이 도하를 마쳤다는 연락입니다."

  연락군관이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보고했다. 적의 1개 기갑사단쯤 아군의 3개 장갑사단과 헬기사단,그리고 막강한 공군의 힘으로 이번 인민군 9사단처럼 전멸시키면 될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는 연락군관 뿐만 아니라 모든 인민해방군 장졸들의 사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천 대좌도 흐뭇했다. 서전을 멋진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이번 한반도 점령전은 매우 쉽게 풀릴 것이며, 또한 자신이 조금만 더 공을 세운다면 대망의 소장 진급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후 집단군 사령과 군구사령, 나중에는 군사위 위원, 또한 시류만 잘 타면 정치국에도 진출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도로를 정리하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우리 장갑사단의 진로를 깨끗이 비워라. 물론 장갑사단들이 싸울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부하들이 호쾌하게 웃어댔다. 현대전으로 와서 주력 전차부대의 위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보병의 대전차미사일 뿐만 아니라 항공기들의 활약이 전차의 효용을 감소시킨 것이다.그러나 전차부대의 집중적 운용은 항상 전장에서의 승리를 보장했으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중국군의 경기계화부대인 오토바이사단의 전차수와 장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 한국군의 기갑사단은 중국군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1999. 11. 17  01:50  제주시 서남방 100km 해상

  별빛도 없는 검은 바다 위로  항해등을 켜지 않은 수십척의 대형선박들이 밀물처럼 서서히 제주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항적을 따라 야광충들만이 파도 속에서 빛의 아우성을 질러댈 뿐, 선박들은 어떠한 소리나 빛을 내는 법이 없었다. 전파도 완벽하게 관제하여 항해는 단지 위성항법 시스팀에 의해 이뤄질 뿐이었다.

  갑자기 이 배들의 서쪽 하늘에서 대규모 비행물체들이 나타났다.이들은 배들을 본체만체  저공으로 스치고 그대로 지나쳐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도합 100여기의 대규모 전폭기 집단인 이들은 이 배들을 단지 이정표나 체크 포인트로만 여겼는지도 몰랐다.

  잠시 후 제주도 한라산 정상 바로 서쪽 부근인 윗새오름(1714미터)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곳에는 군사용 뿐만 아니라 항해용 레이더 기지가 있었는데, 레이더가 이 전투기들을 발견하자마자 대(對)레이더 미사일인 미제 STANDARD ARM에 의해 상부에 보고도 못하고 일격에 파괴되어 버렸다.

  02:00  제주항

  제주시의 항구인 산지항에 정박중인 여러 척의 한국해군 군함들에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한라산 레이더기지가 섬광과 함께 사라지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적이 나타난줄 직감한 제주 분함대 사령관 김 성우 준장이 비상출동 명령을 내린 것이다.  중국의 침공위협이 있다며 정보사단이 발령한 비상경계령과  대통령의 비상계엄 하에서도 함대를 전투배치하지 않고 경계만 강화시킨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지프로 자신의 지휘함인 한국형 구축함으로 가던 중 그 배가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그는 차를 세운채 구축함이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인 한국형 구축함 KDX-2000, 10척 중 3번째로 건조된 만재배수량 3900톤의 효종함이 중국 핵잠수함이 발사한 대함 미사일 한 발에 그대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마스트의 AWS-6A 돌핀 해상수색레이더만이 무참히 찌그러진채 물위에 남아있었다.효종함은 효종이 실패한 북벌을 아쉬워하여 붙인 이름이었는데 중국의 한급 핵잠수함의 공격에 반격도 못해본채 가라앉은 것이다. 김 준장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파괴된 것은 한국형 구축함 뿐만이 아니었다.  2300톤의 소형 울산급 프리깃함 FF 958 제주함(1990년 취역)과 포항급 코르벳함인 1200톤급의 781번함 남원함(1991 취역)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3척의 비교적 신형함이 침몰하고 남아있는 것은 겨우 두 척의 백구급 쾌속미사일정 밖에 없었다.  제주도 서쪽해상에서 초계중인 청주함으로부터는 무선연락이 끊긴지 30분이 넘었다.생각해보니 초계기도 연락이 없었다. 비상경계령을 너무 무시했다는 후회가 일어났다.

  불바다가 된 제주항에 갑자기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써치라이트가 하늘을 갈랐다. 임박한 공습을 말해주는 것이었다.김 준장이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 있는 출항직전의 백구 59호(PGM 589)에 승선했다.승무원들은 전쟁의 공포와 함께 분함대 사령관의 승선에 바짝 긴장해 있었지만  승무원들이 긴장할수록 김 준장의 자괴감이 깊어갔다.

  서쪽 하늘에서 수 십 대의 전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김 준장은 백구 59호의 정장에게 전투기들을 피해 즉시 항구 밖으로 나갈 것을 지시했다. 뒤로는 같은 급인 백구 61호(PGM 591)가 따랐다.선내 등화관제를 실시하며 나가는데도  폭발하는 항구시설과 함정들 때문에 사방이 환했다. 미그기 한 대가 막 항구를 빠져나온 백구 61호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바다에 물보라가 튀고 잠시 후 백구 61호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항구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오름(한라산 자락의 분화구 언덕)에 배치되어 있는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었다.공격을 마치고 막 상승하던 그 미그 23형 전투기는 발칸포의 십자포화에 맞아 미익 쪽에서 불을 뿜으며 바다로 추락했다.

  그러나 곧이어 호위 전투기들이 오름에 있는 발칸포 진지들을 공습하기 시작하여 5분도 안되어 항구 주변의 대공진지들은 침묵을 지켰다.대공포 덕택에 전투기의 공격을 받지않고  항구 밖으로 나간 백구 59호는 서쪽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보인 김 준장의 얼굴에는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간단히 남해함대 사령부에 적 내습 보고를 마친 김 준장은 복수에 불타는 눈빛으로 서쪽 바다를 응시했다.

  제주시 서쪽인 도두동의 제주공항에 커다란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서울과 부산으로 비행할 여객기 몇 대와 공항 부대시설이 불에 타는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전투기 몇 대와 초계기도 있다는 생각이 김 준장의 뇌리를 스쳤다. 갑작스런 소리에 하늘을 보니 수 십 대의 대형 수송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제주시와 한라산을 향하고 있었다.

  02:25 제주항 기점 서쪽 20 킬로미터 해상

  먼저 SPS-58 대공수색 레이더에 적으로 추정되는 초계기들이 잡히고, 잠시 후 캐나다제 HC-75 해상수색 레이더에 대규모 함정군이 걸렸다.김 준장은 이를 즉시 진해의 해군사령부에 연락하고  전파관제를 실시하였다. 초계기들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30 노트의 속력으로 20분간 이동해서 다시 서진하였다.  과연 멀리 검은 바다 위로 거대한 함정들의 대군이 보였다.실루엣을 보니 중국해군의 루다급 구축함과 지앙후이급 프리깃함들이었다. 백구급 미사일정은 즉시 시동을 끄고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어선들이 오징어 채낚기 작업을 하고 있어서 들킬 염려는 없어보였다. 집어등은 엄청난 촉광으로 고기떼를 끌어들이지만 주변을 밝히지는 않는다.

  "정장, 하픈은 4발 다 있겠지?"

  "그렇습니다. 육안수색결과를 미사일에 입력시키겠습니다."

  "아니야, 적은 상륙부대다. 조금 더 기다려.적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김 준장은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잃고 무작정 공격하는 무분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적함대의 핵심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멀리 수평선상으로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흘러갔다.  10분쯤 기다리자 훨씬 대형의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항모와 전차양륙함 및 수송함들입니다!"

  백구의 정장이 망원경으로 중국함대를 보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거대한 함체는 바다를 압도하는 듯이 보였고, 주변의 프리깃함과 수송함들은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작아보였다.  어선들을 발견한 호위프리깃함에서 대잠헬기 한 대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 준장은 자신이 적을 공격하면 저 어선들의 운명은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서는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표는 양륙함과 수송함이다. 항모는 아깝지만, 자체 대공화기가 있을 것이다. 목표입력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라.  포는 적 항모를 향해 발사준비! 대공전 준비!"

  발사진동이 선체를 울리고 선미의 네 발의 하픈이 연속발사되었다.발사 즉시 백구 59호는 16,800 마력의 TF-35 개스터빈을 발진시켜 방향을 동쪽으로 선회하며 이탈리아 오토 멜라라사의 76밀리 포를 쏘아댔다.포탄이 검은 하늘을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꿈결처럼 천천히 날아가 거대한 해신 1호의 흘수선 부근에 명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침수될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고 항모 안에서 연속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픈은 계속 하늘 높이 상승하다가 급강하하여  수면 바로 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항모 해신 1호와 수송함들의 레이더들이 일제히 켜지자 수 십개의 레이더에서 발사된 전파가 백구 59호를 스쳤다.

  "미사일 접근, 목표 1에 2,500 미터 남았습니다. 곧 명중합니다!"

  하픈을 처음 발사해 본 정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하픈 미사일이 마하 0.9의 속도로 천천히 목표에 접근하는 모습이 레이더 스크린에 보였다. 동시에 거대한 불빛과 보다 작은 불빛, 그리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불빛으로부터 작지만 훨씬 더 환하게 빛나는 불빛이 떨어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바깥을 보니 중국 항모에서 대공포가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그래, 적함대의 반응이 너무 늦었어. 수직발사기를 갖춘 대공미사일 시스팀이라도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면…"

  김 준장이 명중을 확신하자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픈과 목표의 위치가 합해졌다.

  "목표 1명중! 적이 우리를 목표로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레이더를 맡은 수병이 김 준장과 정장을 동시에 바라보며 말하자 김 준장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침로 2-0-0, 최대속도로! 디코이 발사!"

  전차양륙함 한 척이 불타오르는 모습이 어두운 수평선상에 보였다.양륙함은 탄두무게 227 킬로그램의 미사일에 맞자 크게 폭발하였으나, 즉시 침몰하지는 않고 불에 타고 있었다.그 불길을 배경으로 미사일이 날아왔다.  백구 59호가 Loral RBOC Mk-33 미끼로켓을 사출했다.  로켓은 불을 뿜으며 강력한 레이더 전파를 발사하여 대함미사일을 꼬였다.  두 발의 레이더 유도형 대함미사일이 미끼로켓을 스치고 멀어져 갔다.미사일정의 작은 선체도 적 미사일 회피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목표 2 명중, 목표 4 명중! 목표 3은 빗나갔습니다!"

  김 준장은 화가 났다. 한 발에 30억원이나 주고 산 비싼 미사일이 순발력도 별로 좋지 않은 수송함에 빗나가다니, 역시 대함 미사일은 탄두의 위력은 작지만  싸고도 명중율이 높은 엑조세가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상에 두 개의 불빛이 추가된 모습이 김 준장의 망원경에 보였다.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중국의 대함미사일이 또 날아왔다.

  "미사일! 레이더 호밍이 아닙니다. 하나는 텔레비전 유도방식입니다. 접근합니다."

  미사일정의 선미에 탑재된 30 밀리 포와 12.7밀리 대공기총이 접근하는 미사일을 향해 연속 발사했으나 이를 막지는 못했다. 어선들 사이로 도망하던 백구 59호에 미사일이 섬광과 연기를 뿜으며 접근했다.미사일이 명중하자 섬광이 번쩍이더니 300 톤도안되는 이 작은 미사일정은 단번에 두 조각이 나버렸다.  중국의 대잠헬기가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어선들이 급작스런 전투에 놀라 그물을 끊고 뿔뿔히 흩어졌다.그러나 어선들의 속도는 미사일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지는 못했다.한 척씩 미사일 세례를 받아 침몰해갔다. 중국 함대 주변의 해상에는 어느새 한 척의 어선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백구 59호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3100 톤급 유칸급 전차양륙함은 서서히 침몰하고 두 척의 샨급 수송함은 다른 함정들에 예인되어 제주항 쪽을 향했다. 그러나 그 중 한척이 연속 폭발하자 포기하고 한 척만 진화를 하여 계속 제주도 쪽으로 항진해 갔다. 중국함대가 떠나간 해상에는 수 백 구에 이르는 중국 상륙부대원들의 시체가 떠올랐다.

  02:40 제주항

  제주도를 지키는 육군 92연대 병력에 비상이 걸렸다. 전사한 제주 분함대 사령관 김 성우 준장이 해군사령부에 보고한 바로는  대규모의 함대와 상륙함들이 제주항을 향한다는 것이고,  바다와 하늘을 빼앗긴 상태에서 제주도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한국의 땅이었고, 군인은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긴급소집된 예비군까지 중요 거점의 방어에 나섰다. 그 때 하늘을 가득 메운 수송기들이 보였다.중국 공군기들의 1차 공습에서 살아남은 대공포들이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남제주군에 있는 대공기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몇 대의 수송기가 한라산 자락으로 추락하였으나 대공기지는 즉시 중국전투기들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하늘이 갑자기 함박눈이 온듯 하얀 물체들로 채워졌다.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02:40 개성, 통일참모본부

  "진해에 있는 해군사령부의 보고입니다. 중국군이 제주도를 공격하고 있다는 내용이며 제주도에 파견된 분함대는 이미 전멸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남해함대인 제 3함대는 급거 출동하여 제주도로 항진하고 있습니다. 부산 근해에서 초계기가 적 잠수함 5척을 포착하여 지금까지 3척을 격침시켰습니다."

  한국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보고하자 참모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북한 공산당 주석의 암살과  인민군 9사단의 연락두절까지는 아직 긴가민가 했지만 제주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에 이제 더 이상의 희망은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이었다!

  "중국이 확실하오? 우리측 피해는?"

  "제주항에 정박중인 남해함대 제주 분함대가 크게 당했습니다.중국전투기의 공격으로 제주공항의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레이더기지와 대공기지 몇 군데도 파괴되었습니다. 분함대 사령관인 김 성우 준장의 보고에 따르면, 제주항 서쪽 20킬로미터 지점에 대규모 적 함대가 제주도쪽으로 항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심 중장이 다른 참모들의 질문에 답하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계속 보고했다.

  "김 준장이 몸소 백구급 미사일정을 이끌고 중국 함대를 공격해 양륙함과 수송함 세 척을 명중시켰다고 합니다. 현재는 소식이 끊긴 상태입니다."

  전투중 연락이 끊긴 상황이라면 전사가 거의 확실했다. 인민군 9사단장의 생사가 불명하므로, 김 준장은 확인된 최초의 장성급 전사자가 되는 셈이었다. 참모들이 신음성을 발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비관이 퍼져나갔다.  한국 육군 정 지수 대장의 부관이 정 대장의 통신용 단말기를 급히 조작하고 손으로 짚었다.  정 대장이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급히 읽었나갔다.

  "제주도 상공에 대규모 수송기 편대가 나타나 공수부대를 낙하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점령전!"

  박 정석 상장이 비명을 질렀다. 중국의 목표가 한국 점령이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점령하려는 의도가 명확해졌다.

  "공군의 준비 태세는 어떻소?"

  이 차수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참모들을 힐난하듯 한국 공군의 이 호석 중장에게 물었다.

  "불행하게도…"

  이 중장이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한국 공군에는 야간해상전을 수행할만한 전투비행단이 없습니다. 물론 공중전이야 수행할 수 있지만, 야간 저공침투를 할 수 있는  장비나 대함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광주비행장에서 1개 대대의 전투기가 출격은 했지만 요격임무만을 위한 것입니다.  야간 대함 능력은 강릉의 비행단에만 있습니다만,  항속거리상 전투시간에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럼 적 상륙부대를 격퇴할 전력이 없다는 것이오?"

  이 차수가 놀라 되물었다.  현대전에서 전투기들은 전천후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가? 이것은 전투기 성능과 댓수에서 빠졌지만 한국 공군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제 3함대도 부산에서 출발했으나 아직… 새벽까지는 제주도에 주둔중인 제 92연대가 버텨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만약 중국군에 점령당했을 때 우리가 이를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 지수 대장이 비관론을 폈다. 한국군에도 해병대라는 상륙공격부대가 있지만 이때까지 수송수단을 미군에 의존해온 한국군은 독자적인 상륙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리고 상륙작전은 완벽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보유했을 때만 가능한 작전이 아닌가?

  02:45  추자도 상공

  광주에서 출격한 제 5 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들이 급거 제주시를 향하고 있었다. 대함무기가 없는 전투기들은 중국함대의 영해침범을 알고서도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공습중인 중국전투기에 대한 요격 임무를 맡고 출발했으나, 중간에 중국 수송기들이 공수병력을 투하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목표를 이 수송기로 정했다.

  24기의 F-16 전투기들이 편대진형을 갖추고 남쪽으로 향하던 중에 강력한 레이더의 전파를 탐지했다. 미사일 유도용의 주파수였다. 즉시 전투기 내부에 미사일 경보가 울리고 조종사는 발신지를 추적했다.

  "편대장님, 적 전투기는 보이지 않고 미사일만 날아오고 있습니다.전파원은 1시 방향 60 km, 제주도 서쪽 20 km 해상, 조기경보기입니다!"

  "이럴수가! 미사일은 미제 스패로우입니다. 40여기 접근 중!"

  아군기를 향해 오는 미사일이 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SAR)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미사일을 발사한 적기에서 유도하는 것이 아니고 훨씬 후방의 조기경보기에서 유도한다는 것을 깨달은 편대장은 당황이 되었다. 이 상태라면 아군기는 미사일의 목표가 될 뿐,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없었다.

  "저공 비행으로 피하면서 적기를 찾아!"

  "옵니다!"

  편대장이 채프를 뿌리며 급강하를 시작하자  전투기들이 편대장을 따랐으나 뒤늦게 강하를 시작한 전투기 3기가 공중폭발했다.1기는 정통으로 명중하고 2기는 미익 바로 20미터 후방에서 폭발한 섬광에 빨려들어가 전투기가 산산히 부서졌다.

  "분산한다. 브라보대는 우측으로 선회하라!"

  한 무리의 전투기들이 갈라져 나와 서쪽으로 향했다.새로운 미사일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한국 전투기들은 조심성있게 남진했다.

  "0시 30분 방향 적 발견! 30 km 전방 저고도에 30여기입니다. 적은!"

  "적기 기종 확인했나? 뭔가?"

  편대장이 브라보대(隊) 박 소령에게 묻자 박 소령이 기가 막히다는듯 말을 이었다.

  "이럴수가… 미그-29입니다."

  최강의 방공요격기라는 미그-29!  F-16의 조종사들이 전율했다.

  "기수를 낮춰! 저고도로 접근한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F-16전투기로서는 근접전으로 가야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미그-29 전투기들도 폭격기의 요격전 뿐만 아니라 근접전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과시하는 최고급 전투기였다.

  "미사일 접근!"

  브라보대의 박 소령은 이 한마디만 마치고 연락이 끊겼다.편대장인 최 중령이 심각해졌다. 서쪽의 미그기를 상대해야될지, 아니면 명령대로 제주도를 지원해야될지 몰랐다. 최 중령은 명령도 중요했으나 아군의 위험을 못본 척 할 수는 없었다.

  "우측으로 선회. 공격한다. 목표 입력되는 대로 공격하라!"

  최 중령의 본대가 서쪽으로 선회하며 기수를 올리자 레이더 스코프에 적기와 아군기가 근접전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아군기는 3기밖에 남지 않았다. F-16 전투기들은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2기씩을 발사하고 접근한 후 다시 사이드와인더 2발씩을 발사하고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7기의 적기가 공중폭발하거나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그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최 중령은 막 아군기 공격을 마치고 기수를 올린 미그기를 포착해 사이드와인더를 날렸다.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바로 우측으로 선회하여 또다른 목표에 기관포를 퍼부었다.근접전을 감안하여 설계한 F-16은 미그-29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군기의 숫자를 세어보니 자신을 포함하여 5기밖에 남지 않았다. 적기는 아직 15기나 있었다. 후방감시 레이더의 요란한 경보가 울리고 바로 뒤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1999. 11. 17  02:10  평안북도 신의주 상공

  평양 북쪽 순안비행장에서 긴급발진한 통일공군소속의 MIG-29와 F-16의 혼성부대가 신의주 상공으로 급파되었다. 미그기들이 상공엄호를 맡고 F-16은 지상공격을 하는 식의 편성이었다. 남북 혼성부대 최초의 실전이라 서로에 대한 신뢰의 끈이 약해 편대장인 인민군 출신의 김 강환 상좌는 적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군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다.

  신의주와 건너편 만주의 안둥 상공에는 전파방해가 심해 적기가 있는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았다.  레이더의 유효범위가 극히 제한된 가운데 적 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약 40km 전방에서 발견되어 아직 여유는 있었다.

  "지상공격대는 저공비행으로 신의주를 수색하라.  상공엄호조는 나를 따른다. 가자!"

  F-16 대대가 기수를 내려 저공비행을 시작하자, 이를 확인한 김 상좌의 전투기가 애프터 버너를 가동시키며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도달했다. 공격하는 적기는 의외로 미제 F-14로 판명되었고, 그 후방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레이더 전파가 발사되고 있었다.  미사일은 톰캣이 자랑하는 AIM-54C 피닉스였다.

  마하 4의 미사일들이 접근해오자 미그기들이 즉시 미사일에 ECM을 걸고 방향을 바꾸었다.  미그의 전자전과 고기동에 의해 피닉스 미사일은 단 한발도 목표를 잡지 못하고  편대 사이사이를 지나 공중에서 헛되이 작렬했다. 미그기들이 급상승하여 적을 노리고 사정거리 30km의 R-40TD(나토 코드 AA-6 Acrid)를 발사한 후 즉시 급강하했다.  미사일들이 마하 4.5의 속도로 날아갔다.인민군의 미그기들은 어느새 국경을 넘고 있었다.

  미사일의 접근을 발견하지 못한 톰캣의 조종사들은  선두 전투기들이 공중폭발하고 나서야 놀라 급선회하며 하늘에 채프로 수를 놓았다.  톰캣의 미사일경보는 아직 울리지도 않았다. 미사일로부터 멀어지려 했으나 미사일이 너무 빨랐다.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R-40TD는 중거리미사일치고는 의외로 적외선 유도방식이었다.

  "매복입니다! 미사일 밭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아남은 톰캣에 접근하던 편대장의 헬멧 이어폰에 비명이 이어졌다. 그의 미그기에도 미사일경보가 울렸다.  김 상좌가 기수를 급히 올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불붙은 젓가락 모양의 작은 미사일들이 지상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지옥의 겁화마냥 이들이 전투기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암람(AMRAAM :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입니다!  하지만 아래쪽엔 적기가 없는데요…"

  조종사 교환제에 의해 미그-29를 몰게된  한국공군의 이 승철 대위가 비명을 질렀다. 공대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데도 발사체인 적기는 보이지 않았다. 미사일에 ECM을 걸었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미그 몇대가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지상을 향해 날았다.

  "이기 AdSAM이야! 전파방해 중지, 지상에 접근하지 말라우!"

  김 상좌가 놀라 외쳤다.Ad-SAM은 원래는 공대공미사일인 AMRAAM을 지대공미사일로 쓰는 시스팀이다. 능동유도방식인 AMRAAM은 저공침투하는 적기에 효과적인 미사일이기도 하다. 적기가 전파교란을 실시할 때도 3개 포대의 레이더가 방해전파의 방향을 탐지하여 이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삼각측정하여 대처할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미사일에 대한 미그의 ECM은 오히려 미사일이 표적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격이었다.  중국의 톰캣 편대가 미사일 회피에 정신없는 미그기에 접근해왔다.

  "살려야돼! 미그기를 살려야돼!"

  김 상좌는 이 비싼 전투기들이 속절없이 격추되는 것이 아까왔다. 지금 이 순간은 부하 조종사들보다는 전투기를 지켜야했다.  그의 바램은 절망이 되었다. 미익 바로 뒤에서 미사일이 폭발하고 김 상좌는 자동으로 사출되어 낙하산이 펼쳐졌다. 분한 마음을 주체 못하고 그는 가슴에 달린 주낙하산의 케이프웨이를 떼어버렸다. 원형 낙하산이 중심을 잃고 바다의 해파리처럼 하늘을 떠다녔다.검은 땅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에 두 개 밖에 없는 미그-29 전투비행대대 중 하나인 이 미그 편대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F-16이 구원하러 왔다. 이 대위가 전송해준 자료를 토대로 F-16 전투기들이 야산을 넘자마자 미사일발사대가 있는 들판에 집속폭탄을 투하했다.  Ad-SAM 체계의 대응보다는 폭탄의 폭발이 빨랐다. F-16들이 톰캣편대를 향하여 자위용 사이드와인더를 날리고  즉시 남쪽 산을 넘어 예상되는 공격을 회피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미그기들이 팰콘의 뒤를 따랐다. 다시 그 뒤로 암람과 피닉스가 떼지어 날아왔다.

  1999. 11. 17  02:30  서울, 청와대

  대통령이 소집한 비상각료회의에 소집된 장관급과 군사령관들이 승용차를 타고 허겁지겁 청와대 정문을 통해 들어갔다. 상황은 대충 들어서 알았지만 청와대 정문에 서있는 전차들과 장관의 승용차에 총을 겨누는 험악한 표정의 군인들을 보고 다시 한번 몸이 얼어붙었다.

  승용차가 본관 앞까지 가는 동안 사방에 국군과 경호원, 또는 괴한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이 경숙 교육부장관은 본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전차포에 의해 처참하게 찢어진 괴한들의 시체를 보고 까무라쳐 경복궁 옆의 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몇몇 장관들은 계단을 오르는 길에 널려있는 팔다리와 내장을 보며 구토했다.

  대통령 침실이 있는 3층의 상황은 더 심했다.  일부 병력이 치우고는 있었지만 수십구의 시체와 핏자국에서 나오는 비린내가  진동하여 웬만한 비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며 통산부장관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부하들이 아직 산쪽으로 달아난 괴한들을 추적 중이라서 홍 대통령의 안위를 염려한 93경비대대장 박 중령은 대통령이 침실을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게 제지하고 있었다. 또한 경호원과 비서실직원들도 신분파악이 끝날 때까지는 3층에 접근도 못했다.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된 마당에 믿을 것은 없었다. 삼청공원쪽에서는 가끔씩이지만 아직도 총성이 이어졌다.

  "전쟁이오. 중국의 침공이오."

  확대각료회의의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대통령침실 밖의 거실에 모이자 대통령이 선언했다. 장관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승용차로 오면서 상황을 브리핑 받았지만 그때까지는 위기상황으로만 알고 있었다. 폭파된 한강다리에 막혀 돌고돌아 간신히 청와대에 도착하는 동안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보고를 듣고 장관들은 기가 막혔다.  전국이 중국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았고 특히 부산은 공습까지 당했다.이제 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같았다.

  "지금 평안북도의 통신이 마비된 상황이지만, 통일참모본부에 따르면 신의주로 출동했던  인민군 1개 사단이 전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오. 지금 한만(韓滿)국경에서는 공중전이 한창이요. 국경부근의 대공미사일 기지에서 중국기를 요격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 지역들은 다 점령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설명을 하자 장관들은 한숨만 쉬었다. 대통령이 긴급선포할 비상계엄령에 대해 장관들의 형식적인 심의가 끝나고, 계엄사령관을 정하는 문제에 들어가서는  국방부장관이 당연히 육군참모총장인 황보 영 육군대장을 천거했다. 뒷자리에 배석한 황보 대장이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전쟁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고 승인하려는 순간 93경비대대의 박 중령에게서 메모가 전달되었다.대통령이 모시라는 손짓을 하자 박 중령이 밖으로 나갔다.

  "북쪽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의 말에 장관들이 일제히 출입문쪽을 보자 그쪽에는 커다란 모자를 쓴 인민군 장성이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이가 80대는 되어보였다.  북한에서도 중국처럼 나이 많은 노인들이 고위직을 점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일어서서 그를 맞았다.

  "안녕하십네까, 각하! 다행입네다."

  "주석의 서거에 애도를 표합니다. 얼마나 고초가 많으시오. 자, 자리에 앉으시오."

  홍 대통령이 대통령 바로 옆 자리에 그를 앉히고 격려하자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네다. 그래도 각하께서 무사하셔서 불행중 다행입네다."

  그는 인민군 총참모장 최 광 차수였다.최 광은 1963년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가 반혁명음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1969년 탄광노동자로 숙청된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일성을 감동시켜 1988년 총참모장 자리에 다시 오른 고지식한 인물이다.  최 광 차수가 북한 당주석의 죽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주석은 중국의 동향에 대해 고위 군간부들과 함께 심야대책회의를 하던 중 중국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았는데 직접 총을 들고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함께 있던 사회안전부장 백 계림,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 봉률, 호위총국장 이 을호, 평양지역사령관 주 도일 등 최고위 군간부들도 모두 군인다운 최후를 마쳤다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기가 막히다는듯 속으로 혀를 찼다.

  "각하께서 계엄령을 선포하신다는데 계엄사령관으로 뉘기를 지명하셨습네까?"

  홍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육군참모총장인 황보 대장으로 정했다고 하자 최 차수가 표정을 바꾸더니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진언했다.

  "이제 중국과의 한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네다.  남북이 각각의 군령체계를 가질 경우 혼란은 필연적입네다. 차라리 군권을 통일참모본부에 몰아주시는 거이 어떻습네까?"

  "안됩니다!"

  국방부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장관은 긴장 때문인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왜 안된다는 것이오?"

  최 차수가 장관을 노려보자 장관이 말을 더듬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각하! 통일참모본부는 남북군대의 통합을 위한 임시적인 기구입니다. 전쟁을 지휘할만한 인원과 시설도 없고 그들은 그럴만한 지위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통일수반이 나오기 전까지의 비상시에는 통참이 군령권을 가지기로 합의하지 않았소? 동지는 북남합의를 무시할 생각이오?  의장이 인민군이라고 그렇다면 당장 남쪽에서 의장을 차지하기요."

  최 차수가 소리를 지르자  국방장관이 땀을 흘리며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절대 안됩니다, 각하!"

  "음… 통일참모본부의 의장이 인민군의 그… 누구더라…"

  "이 종식 차수입니다, 각하!"

  황보 대장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며 설명을 했다.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만한 분입니다. 수십년간 야전군 지휘관으로만 일생을 보낸 분입니다. 그리고… 통일참모본부는 합의체이므로 의장이 어디 출신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각하."

  황보 대장이 육사선배인 국방장관을 힐끗보며 그에게 기합 한번 받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 장관은 그 나이에도 육사 후배들에게 쪼인트를 까는 버릇이 있었다.며칠전 술자리에서 술버릇이 안좋다고 구둣발에 채인 정강이는 아직도 시퍼랬다.

  "그렇게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군지휘권을 믿고 맡기겠소. 북쪽에서도 물론 군지휘권을 수여하겠죠?"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자칫하다간 국군 전체가 인민군에게 접수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결단이었지만, 중국의 침공에 대처하는 데는 남북 모두의 결집된 힘이 필요했다. 대통령은 동족을 믿기로 했다. 국방장관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대통령을 보았다. 3년전만 해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만한 결정이었다.

  "물론입네다. 감사합네다, 각하."

  최 차수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을 보았다.  젊은 대통령이 의외로 배포가 굉장히 컸다.이런 지도자가 있고 남북이 힘을 합치면 잘하면 중국을 막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자, 이제 중국의 침략에 맞서  어떻게 우리가 대응해야할 지 토의해 봅시다. 아니, 최 차수도 같이 계세요."

  대통령이 물러나려는 최 차수를 붙들고 다시 비상각의가 진행되었다.

  1999. 11. 17  06:00  평안북도 선천 북방 10km 지점

  차 영진 중령은 불안해졌다. 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고속으로 부대를 이동시켜도 될까 걱정되었다. 사단장은 통일참모본부의 성화에 이끌려 무작정 부대를 이끌고 신의주로 북진하고 있었다. 구 국군의 3개 밖에 안되는 기갑사단중의 하나인 제 11 기갑사단은 K-1 전차 150여대와 신형 KIFV(한국군 보병 전투차량) 및 그 파생형 장갑전투차량 200여대로 구성되어 화력과 기동력면에서 한국군 최고를 자랑하는 부대였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바로 옆의 일본에 비하면 전차의 장비수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한반도 내에서는 최고의 수준이었다. 한참 고속이동하던 부대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대대장님, 사단장님의 명령입니다. 인민군 제 9사단, 전멸 추정. 부대 현 위치에서 대기, 사주경계."

  포수 겸 통신병의 보고를 받은 차 중령은 K-1 전차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동녘엔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서둘러 가더니 결국 전멸했군. 우리 사단도 마찬가지 아닐까…’

  차 중령은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자국 영토이지만 적이 어디까지 밀고들어왔는지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차 중령은 휘하 부대원들을 지휘,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주변 야산들은 장갑정찰차를 보내 모두 수색했다. 이 지역은 아직 적이 오지 않은 것으로 사단장에게 보고했다.차 중령이 지도를 보니 산 너머에 널따란 평원이 있었다. 기갑사단에게는 좁은 도로보다는 넓은 평원이 제격이었다.  선천(宣川)은 서해안 평야지대중에서도 비교적 산지가 많은 지역이었다. 원래 국군 제 11기갑사단은 선천 남방 5km의 150미터 고지인 독상산 아래 평야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북진을 하다보니  전차부대로서는 불리한 산지 지역으로 자꾸 들어가고 있었으나 선천 시가지를 지나 농건동에 이르자 넓은 평야지역이 나타났다. 사단장은 아마 그 벌판을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설마 벌써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포수가 차 중령을 안심시키려 했으나  차 중령은 해치 아래의 포수를 보며 씩 웃었다.

  "신의주에서 여기까진 한 시간 거리라네.  인민군 9사단이 출동한 것은 벌써 6시간 전이야. 그리고 적의 특수부대가 있을지도 모르고…"

  차 중령의 말을 들은 포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전투하면서 그렇게 빨리 전진해 올 수 있단 말인가?

  "명령입니다. 신속 전진하여 3 km 전방의 국도 우측 평원에 배치하라는 명령입니다."

  차 중령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부대를 이동시켜 마을에 전차엄폐호를 만들어 전차를 엄폐시켰다. 차 중령의 3대대는 우익에 배치되어 부대 후퇴시 엄호를 담당하기로 했다.

  하늘엔 계속 사단 소속의 정찰헬기들이 날아다녔다. 이상하게 헬기들이 자꾸 땅에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 중령이 놀라 무전으로 사령부를 불렀으나 무선이 불통이었다.  차 중령은 급히 전령을 사단본부로 보내고 연락용 유선전화망을 깔기 시작했다.  대대 소속의 전차를 무선으로 불러보니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각 전차중대장들에게 적의 전파방해에 대비한 지휘체계의 확립을 당부했다.

  대대전령이 돌아와서 보고하길, 현재 광대역전파방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의 공습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차 중령은 급히 전차엄폐호를 더 깊이 파도록 하고 나무로 위장시켰다. 공중엔 한국공군의 전투기 1개 중대가 편대비행을 하며 기갑사단을 엄호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갑자기 하늘이 시끄러워졌다.전투기들이 회피기동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차 중령의 눈에 아직 적의 미사일은 보이지 않았다. 전투기들이 모두 고도를 낮춰 비행하는 중에 상공에 적의 대편대가 나타났다.숫적으로 3배나 많은 중국전투기들이 보였다. 통일한국공군의 전투기대가 미사일을 발사하며 적 편대에 돌입했다.기갑사단의 대공부대는 서로 얽혀 싸우는 전투기들에게 미사일 한 발 쏘지 못하고  사태를 주시해야만 했다. 역시 숫적으로 밀리는 한국공군이 패퇴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은 총격전의 수학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9명의 청색분대와 6명의 적색분대가 교전에 들어간다. 병력수는 50% 차이, 명중율 등이 1/3로 같은 조건이라고 보면 1회의 사격후에 청색분대는 7명, 적색분대는 3명이 남는다. 두번째 일제사격 후에는 6대 1. 병력수 50%의 차이는 수적 열세인 쪽에 파멸적인 결과를 낳는다. 9 대 6의 병력비율은 실제 전투에 있어서는 그의 제곱인 81 대 36의 전력비율이 되는 것이다.하늘은 중국의 것이 되었다.

  드디어 중국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수십대의 수호이 24 전폭기들이 섬형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공습은 치열했다.  기갑사단이 전 화력을 동원해 공중의 침략자와 싸웠으나  전투기와 전차의 싸움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투기들이 대공미사일 탑재차량들을 공격한 후 전폭기들이 전차에 대한 공격을 가해왔다.

  한국형 보병전투차(KIFV)의 차체에 대공미사일을 적재한 천마와,험비(HMMWV)의 스팅거 4발로 이뤄진 어벤저 대공사격망은 그 수가 부족하여 대규모의 공습에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어갔다. 대공망이 무너지자 속도가 느린 대형의 K-1전차들은 중국 전투기들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파괴되었다.

  천지사방에 폭음이 메아리쳤다.  중국의 비행기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제 11 기갑사단에 남은 것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 전차와 수 백대의 고철 뿐이었다. 제 11기갑사단의 포병연대가 격추시킨 적기는 5대에 불과했다.

  중국 전투기들이 물러나자 평원 저편  세파발쪽에 중국군의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3개의 중국군 기갑사단이 밀어닥쳤다. 제 11 기갑사단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참모들이 방어전을 고집했다.  공습을 받아 피해는 입었지만 미리 도착하여 준비한 한국군이 유리하다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적 전차는 구식 69형의 개량형일 뿐입니다. 이동사격이 안됩니다."

  작전참모인 대령이 주장하자 다른 참모들도 거들었다.

  "곧 물러난 우리 공군이 다시 올것입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현재 적 선두전차 거리 2,200미터입니다."

  사단장은 위생병이 부상당한 머리를 붕대로 감싸는 중 생각에 잠겼다. 지금 물러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조금이라도 전과를 올리고 싶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국군 전차들을 보며 사단장이 말했다.

  "좋아. 공격한다. 그 전에 우리의 피해상황 파악은 끝났나?"

  "87기갑연대 중에서 전차 절반 파손, 103기계화연대 전투차량 2/3 대파, 105 기계화연대 전투차량 절반 파손, 포병 연대 전멸입니다.  포병 연대장 전사."

  부사단장이 비통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사단장이 기가 막혔으나 예상된 수치일 뿐이었다. 미국의 기갑사단 편제와 달리 한국군의 기갑사단은 3개의 전차대대와  2개의 기계화연대로 구성되었다. 전차의 수가 너무 적었다.

  "각 연대에 전달하라. 즉시 사격 개시!"

  차 중령의 제 3전차대대는 공습에 대비하여 엄폐와 은폐를 제대로 한 덕에 45대의 전차중 7대만 피해를 입었다. 5대 전파, 1대 포사격 불능, 1대는 운행불능이었다.  중국군의 전차가 다가오자 사격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사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차 중령이 바로 명령을 수행했다.

  "사격개시!"

  차 중령이 해치 위에서 마이크로폰으로 휘하의 전차들에 명령했다.기갑사단의 모든 전차가 포문을 열었고 대전차 KIFV에서 TOW-2 대전차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굉음이 울리고 불꽃이 중국군 전차들을 향해 날았다. 중국군 전차부대 곳곳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났다. 중국전차들이 연막탄을 쏘기 시작하자 들판이 온통 뿌옇게 변했다.중국전차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10시 방향의 선두전차에 한방 먹여!"

  차 중령이 개별 전차의 전투에 직접 간여했다. 무기와 기술이 비슷한 경우 전술과 사기가 전투의 향방을 가름짓는다. 차 중령은 포탄과 미사일의 우박을 피하며 돌진해오는 그 전차가 신경쓰였다. 게다가 그 전차가 향하는 곳은 사단사령부가 있는 쪽이었다.

  거대한 포탑이 서서히 선회했다.  포수가 적 전차에 조준경의 중심을 맞추자 레이저가 발사되어 컴퓨터가 적 전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계산하고 바람의 방향을 계산, 오차를 수정하여 자동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명중!"

  포수가 외쳤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그 위치를 보니 또다른 전차가 연기를 헤치고 드러났다.  아니, 한두대가 아니었다. 중국군은 숫적 우세를 십분 발휘하여 인해전술로 밀고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인해전술은 아니고, 공습으로 약해진 한국군의 좌익을 집중공격하는 것이었다.

  "적은 사선진이다. 전 전차는 12시 좌측으로만 사격하라!"

  차 중령이 다급해졌다. 중국군이 집중공격하는 쪽엔 공습으로 전멸하다시피한 제 1 기갑대대와 103 기계화연대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병력이 있을 뿐이었다.  방어진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차 중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과의 무선통신은 또 전파방해로 불가능했고 유선은 적 포격으로 끊겼는지 먹통이었다.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중국 전차들이 좌익의 진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원 전진! 반시계방향으로 전진하여 적의 측면을 공격하라!"

  기갑사단 본부의 상황은 풍전등화였다. 애초에 구식 69형으로 알았던 중국군의 전차는 이동사격이 가능한 신형 85-II M형이었다.  이 전차의 포탑은 이 모델 전 중국전차들의 일반적 양식인  주조식이 아닌 용접식이고 복합장갑을 갖추고 있다.또한 이들은 대전차미사일에 대비하여 차체 전면에 능동반응장갑까지 갖추고 있었다.능동반응장갑은 전차의 HOT 탄이나 대전차미사일이 전차에 명중했을 때, 탄두가 장갑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폭발을 일으켜 탄두를 날려버리는 방어장치이다.

  전차포를 쏘아 명중시켜도 중국 전차가 파괴되지 않자 한국군 전차병들 사이에서 가벼운 전율이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반응장갑의 위력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전차원들이 공포에 휩싸여 조준이 흩트러지자 이틈을 노려 중국군의 전차들이 쇄도해왔다.

  공습으로 약해진 1 기갑대대와 103 기계화연대는 압도적인 수의 중국전차들이 몰려오자 망연자실해졌다. 이미 예비부대는 없었고 다른 부대도 자신의 앞에 있는 적과 싸우기에도 바빴다.남아있던 전차는 거의 파괴되고 보병전투차의 대전차미사일도 떨어져 본대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3대의 중국전차가 드디어 진지를 넘어 들어와 지원부대 뿐인 본대를 유린했다. 125 밀리 강선포의 위력은 전차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강했다. 기갑보병들이 LAW로 전차의 측면과 후면을 공격했으나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중국전차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여 많은 국군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차 중령 대대의 전차들이 일제히 전차 엄폐호를 뛰쳐나갔다.  좌측의 전차들은 천천히,우측의 전차들은 속도를 빨리하여 전진하며 전면의 양동부대를 격파하자 주공(主攻)의 측면이 대대의 정면에 보였다.

  "일제 사격!"

  휘하의 전차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같이 따라나선 105 기계화연대의 잔존 병력도 보병전투차에서 중국 전차군을 향해 미사일을 퍼부었다. 평지에 몸을 드러내는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모두들 좌익이 돌파당하고 후퇴도 못하는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전차들이 하나씩 불덩이가 되었다.  가끔 포탑을 선회하여 이 중령의 대대에 반격하는 중국 전차들도 있었지만, 포탑을 90도 회전 시키는 6초와 조준시간 5초, 합계 11초 사이에 제 3전차대대의 전투조준 사격으로 곧바로 침묵해갔다.

  중국의 전차부대와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차 중령이 대대 무전기를 통해 그동안의 표적중앙 조준에서 표적하단 조준을 명했다.  차 중령도 자신의 전차에서 발사한 포탄이  빗나가고 나서야  조준방식을 바꿀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표적 중앙을 조준했을 때 거리 400에서 800미터까지는 포탄이 표적의 상부를 최고 80 센티미터나 통과하여 불명중구간이 생긴다. 이 차이는 웃기게도 FCS(화기관제)컴퓨터에 입력되어있지 않았다.

  중국 전차들이 갑작스런 측면의 공격에 놀라서인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물러나면서 제 3 전차대대에 집중사격을 가하자 평지에 노출된 차 중령 휘하 전차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었다.

  차 중령 바로 옆의 K-1 전차가 불덩이가 되어 폭발했다.차 중령의 전차에도 적의 주포가 명중되었으나 포탄은 포탑 상부에 맞고 튀어나갔다. 계속되는 전차의 피해보고가 이어졌다. 차 중령의 전차대를 따라온 105 기계화연대의 피해는 특히 컸다.애초에 전차와 보병전투차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었지만 아군 전차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려던 105 기계화연대장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적이 물러나자 차 중령도 진형을 갖춰 서서히 진지로 후퇴했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본진과 좌익을 살펴보았다. 남아있는 아군전차는 거의 없었고 많은 보병전투차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전령을 사단본부에 보내 현황을 물었다.

  잠시 후 돌아온 전령은 사단장의 전사소식을 전해왔다.지휘체계가 전멸하고 남아있는 영관급 장교도 드문 편이라고 했다.  또한, 좌익과 본진은 사단 작전참모인 한 중령이 지휘를 맡고 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한 중령의 명령은 즉시 본부로 오라는 것이었다.지휘체계와 통신체계가 무너진 제 11기갑사단은 부대라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차 중령의 뇌리를 스쳤다.

  차 중령은 보병전투차를 타고 사단본부가 있던 쪽으로 달렸다.  가는 길 곳곳에 불에 타고 있는 K-1 전차와 K-200보병전투차, 그리고 보병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눈을 잃은 젊은 병사들의 비명이 차 중령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몇 년씩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젊은 군인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사한 것이다. 아니, 젊음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

  사단본부에 도착하니 한 중령이 왼쪽팔을 붕대에 감고 지휘하고 있었다.  차 중령이 보니 그의 붕대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고 이상하게 팔이 짧아 보였다. 한 중령이 씩 웃었다.

  "아직 참을만 하다네."

  차 중령의 사관학교 1기 선배인 한 중령은 전차대원답지 않게 185 센티나 되는 큰 체구에 사람좋은 얼굴이었으나 지금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왼팔은 손목아래가 절단이 되었는데 지혈만 하고 진통제로 버텨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조금 전엔 고마왔네. 자네쪽 상황은 어때?"

  차 중령은 기가 막혔다. 지휘할 사람이 없어서 중상자가 지휘하다니. 한 중령은 사단내에 영관급이 별로 남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차 중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임시로 사단을 지휘하기로 자청한 것이었다.  아직 전투력이 남아있는 차 중령이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패전수습에 불과한 사단장 역할을 맡은 것이다.

  "선배님…"

  차 중령은 목이 매어왔다. 그러나 적의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므로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갔다.

  "제 3 전차대대는 아직 전차 27대가 남아있습니다.  105기계화연대는 보병전투차 52대와 자주박격포 3문, APC 7대입니다."

  "음… 사단 전력의 대부분이군… 수고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차 중령이 한 중령을 쳐다보았다.  그는 후퇴를 생각한 것이었다. 이 중령이 한숨을 쉬며 말을했다.

  "지금 아군의 증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절망적입니다. 적은 현재 우리보다 최소 10배나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후퇴하여 아군 증원 병력과 합류하시는게… 지금 적의 공격을 막을 병력이 없습니다."

  패배는 살아남은 자의 몫이었다. 한 중령이 차 중령을 패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대신 짐을 진 상태였으나, 부상이 악화되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차 중령이 본부의 다른 인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젊은 중위, 대위들이 각기 연대와 대대를 맡는 상황이었다. 수십명이었던 사단의 영관급 장교들은  일부 군의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사하여 비슷한 숫자의 전쟁미망인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모두 부대로 돌아가서 후퇴준비를 하도록, 차 중령이 후위를 맡아주겠나?"

  한 중령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차 중령에게 부탁하듯 명령했다. 차 중령이 그러마고 거수경례를 붙이며 본부를 나서자  그의 등뒤로 한 중령이 덧붙였다.

  "우리 사단의 전력은 자네가 지휘하는 병력이 대부분이네. 나머진 부상자부대에 불과해. 사단이 해체되지 않도록 병력을 아껴주게."

  한 중령의 말뜻을 이해한 차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대의 후퇴를 위해 무리하게 방어전을 고수하지 말라는 것이 한 중령의 뜻이었다. 이 중령이 고개를 푹 숙인채 막사를 나와 보병전투차로 돌아갔다.

  차 중령은 돌아가는 길에 막강했던 때의 부대를 떠올렸다. 국군 중에서 최정예의 기갑부대로서 5개의 보병사단을 능가하는 화력을 가졌다고 자랑하던 때가 바로 어제같았다.  그러나 적의 공습과 전차부대와의 격돌 한번에 졸지에 부상자부대로 전락하여 한 중령이 사단해체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해버린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사자 수습과 후퇴준비에 바쁜 젊은 병사들의 어두운 얼굴들을 보아야했다.

  대대에 도착해 보니 부대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어쨋든 제 3전차대대는 적의 공격을 물리치지 않았는가? 차 중령이 지휘체계를 점검하고 후퇴준비를 명령했다. 준비작업 틈틈히 중국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중국군은 급작스런 패퇴에 놀랐는지 아니면 한국군의 후퇴를 기다리는지 공격해올 기미가 안보였다. 가끔 로켓탄이 수십발씩 날아왔으나 피해를 입을래야 입을만한 전력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 1전차대대가 선두를 서고 제 103기계화연대가 보병전투차 위에 시체를 가득 쌓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바로 뒤따르는 보급부대는 탄약 등 보급품을 모두 버리고 부상병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차 중령의 부하들이 다른 부대 보병전투차 위의 시체들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어 제 2전차대대와 포병연대의 잔존 병력들,그리고 제 105기계화연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이제 제 3전차대대의 차례였으나 갑자기 관측병이 적의 공격을 보고 해왔다.

  차 중령이 전차의 해치 위에서 보니 중국 전차들은 아까와는 달리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포격도 없이 아군 진지를 점령하려고 오는 중국군들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으나 패배한 부상병 부대를 가만 내버려두는게 이상했다.

  ‘중국군이 저렇게 신사적이었던가?’

  사관학교에서 각 군의 전략을 공부할 때, 중국군은 전술적 거점의 점령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적 부대의 소멸이라고 배웠다.1개의 사단을 패퇴시키는 것보다 더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 1개 연대의 섬멸, 또는 포로화였다. 중국군이 이렇게 신사적으로 패배한 부대가 후퇴하도록 내버려 둘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 중령은 중국군의 헬기사단에 대한 생각이 얼핏 들었다. 미군이 헬기의 기동성과 화력을 이용한 공중보병 위주의 기병사단을 운영함에 비해 중국군은 서유럽 국가들처럼 대전차공격과 대지공격을 위주로 한 공격헬기사단을 운용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휘하에는 공군으로부터 배속된 헬기사단이 편제되어 있었다.차 중령이 즉시 대공방어 태세를 명령하고 통신차를 불렀다.통신대대의 통신차 6대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통신차가 차 중령의 전차 옆에 서서 가능한 모든 주파수를 찾아 상급부대에 연락했다.

  통신차의 무전병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중국측의 전파방해를 뚫고 무궁화 6호 위성채널을 통해 통일참모본부와 연결했다.참모본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참모회의에 직접 연결했다.차 중령이 무전기를 받아 보고했다.

  "단결! 제 11 기갑사단 제 3 전차대대 차 영진 중령입니다. 중국군의 공습과 장갑군단의 공격으로 현재 거의 전멸, 후퇴중입니다. 적 헬기사단의 공습을 막아주십시요."

  "사단장은 어떻게 되었나?"

  무전기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사단장이나 연대장은 어떡하고 중령이 보고하느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사단 지휘부는 현재 전멸, 영관급은 저와 한 일석 중령,  그리고 군의관 2명 뿐입니다. 그리고 한 일석 중령은 현재 중상입니다."

  차 중령은 보고하면서도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우치지 못한 통일참모본부에 울화통이 터졌다.언제 중국군의 헬기사단이 공격을 가해 후퇴하는 사단의 머리위로 기관포와 로켓포를 쏘아댈지 모르는 판에 격에 맞는 직급을 찾는 군 장성들의 썩어빠진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우리 공군은 전 영공에 걸쳐 교전 중이라서 전투기를 빼내기가 어렵다. 현재 모든 국경에서 중국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쪽에는 음… 잠깐 기다려."

  무전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화난 외침도 들려왔다.잠시 후 화가 난 듯한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 중령이 분노한 듯 무전기를 응시했다. 차 중령이 무전기를 땅에 내던질 것을 걱정한 무전병이 전전긍긍했다.

  "그쪽에는 전투기 1개 대대를 보내 후퇴를 엄호하겠다.  꼭 살아오도록. 참, 나는 육군의 정 지수 대장이다."

  "감사합니다. 단결!"

  의외로 호의적인 대답을 받고 차 중령은 잠시 멍해졌다.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건내고 부대의 후퇴를 독려했다. 자꾸 뒷머리가 근질근질하여 북쪽 하늘을 힐끔거렸다.중국군의 헬기사단은 꼭 올것이며 후퇴하는 기갑사단을 내버려둘리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북쪽 하늘에 굉음과 함께 수십대의 헬기들이 나타났다.  후퇴하던 대열이 뿔뿔이 흩어져 대공방어 태세에 들어갔으나 적기를 격추시킨다기 보다는 표적을 분산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대대의 모든 전차의 포탑에서 전차장들이 12.7 밀리 기총을 발사하여 탄막을 펼쳤으나 중국군의 무장공격헬기들은 기체의 장갑을 믿는지 전차대 상공에 돌입하여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차와 공격헬기의 싸움은  20 대 1의 비율로 공격헬기가 유리하다는것이 각국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고 또한 각종 시뮬레이션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격헬기의 가격이 전차에 비해 훨씬 비싸더라도 대전차전에서의 효용 때문에 각국의 군대에서는 공격헬기를 갖추길 원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군의 헬기는 수에 있어서도 제 3 전차대대의 전차의 수를 압도했다. 차 중령은 대대의 전멸을 예상했으나 앞서 출발한 기계화연대들의 안위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차 중령이 직접 기총을 잡아 쏘면서도 집에 있는 아내가 자꾸 떠올랐다. 젊은 전쟁미망인이 될 아내,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죽는 자신은 괜찮지만 아내가 고생할까 걱정되었다.  아내가 빨리 자신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피난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어 모습을 한 헬기들이 사방에서 공격해왔다.  멀리서 AT-6같은 대전차 유도미사일을 쏘아도 될텐데 중국군은 용맹성을 과시하려는 듯 접근해와서는 80밀리 로켓탄을 퍼부어대며 2A42 30밀리 기관포도 마구 쏘아댔다. 초구속도 초속 980미터의 막강한 위력을 가진 기관포가 비교적 얇은 K-1 전차의 상부장갑을 뚫었다.워낙 장갑이 튼튼한 러시아제 하복(Havoc) 공격헬기(Mi-28)들은 기총탄 몇 발 맞고는 꿈적도 안했는데 차 중령은 교묘히 헬기의 로터를 노려 3대를 격추시키고 있었다.그러나 주변을 보니 자신의 부하들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전차가 헬기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무력했다.

  "각 중대는 인원점검하라! 몇대 남았나? 가능한 남쪽으로는 기동하지 말라. 맞아도 우리가 맞는거야!"

  차 중령이 사격 중에도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차 중령의 물음에 연이어 각 중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중대장들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고 소위가 보고하는 중대,심지어 중사가 보고하는 중대도 있었다. 아직은 12대의 전차가 남아있었다.

  ‘대규모 공격헬기부대의 공격을 받고도 아직도 12대나!’

  차 중령은 자신이 했던 시뮬레이션 게임을 생각했다.  게임에서 자신이 탄 전투기는 가상 적인 수십대의 헬기들을 파리 잡듯 하지 않았던가. 단 한대의 전투기가 아쉬워지는 판이었다. 정 대장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을 보니 또 한대의 K-1 전차가 화염에 휩싸이며 폭발하고 있었다.

  이제 제 3 전차대대는 거의 전멸하고 대부분의 중국군 헬기들은 기계화연대를 추격해갔다.  차 중령은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인지 아군을 추격해가는 헬기들의 뒤에 기총을 퍼부었다. 그러나 적 헬기들은 거의 전멸한 차 중령의 대대에는 관심이 없는 듯 무시하고 남쪽으로 날아가고 곧이어 남쪽 산 너머에서 연이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대대장님! 남쪽에는 부상자들을 가득 실은 105 기계화연대가…"

  포수인 박 중사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헬멧의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차 중령도 경악했다.인원면에선 더 많으나 이미 전투력을 거의 상실한 부대가 압도적인 화력의 공격헬기사단의 공격을 받는 것이었다. 차 중령은 해치를 주먹으로 치며 신음성을 흘렸다. 아군이 살육 당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갑자기 남쪽에서 들리던 폭발음이 전투기의 폭음으로 바뀌었다. 아군 전투기가 도착한 것이다. 편대는 막강한 중국공군기들을 피해 저공비행을 하여 늦게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중국군 헬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허둥지둥 북쪽으로 도망쳐오는 중국군 헬기들을 이 중령이 볼 수 있었는데  곧이어 나타난 F-16의 사이드와인더와 기관포 공격에 연달아 추락해갔다.

  차 중령이 남은 전차를 지휘하여 와우동 고개를 넘었다. 지리를 살펴 남은 전차를 적 기갑부대에  대비한 방어배치를 하고 나서 남쪽 산길을 살피니 사방에 파괴된 보병전투차와 한국군의 시체들, 그리고 추락하여 파괴당한 중국군 헬기들의 잔해가 널려있었다. 염려대로 역시 전투기들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남쪽에 보이는 선천시가는 중국군의 포화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피난가는 민간인 행렬도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경의선 철길과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차 중령은 왜 그럴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F-16 전투기들은 헬기들을 전멸시키자  산을 넘어 중국군 기갑부대를 향했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쳐내려오던 중국군 기갑부대는 하늘로부터의 불벼락을 맞아야했다.대지공격에 막강한 위력을 나타내는 F-16 전투기들이 대공무기가 별로 없는 중국군 전차들을 하나씩 파괴해갔다.이 중령이 산 위에서 보니 중국군의 전차들은 대공사격도 못한채 허둥지둥 흩어지고 있었다. 제 3 전차대대의 잔존 승무원들이 해치 위로 몸을 내밀어 구경하더니 함성을 질러댔다.

  러시아제 30 밀리 2연장 자주대공포인 ZSU-30-2가 움직이며 대공사격을 가했으나 저공침투한 F-16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자주대공포마저 파괴되자 중국 장갑집단군은 대책없이 파괴되어 갔다. 차 중령도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그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요.  승자든 패자든,  살아남은 자든 죽은 자든 모두 비참해지죠. 전쟁을 정치의 수단, 또는 적에 대한 이쪽 정치의 강요로 생각지 말아야 하고,  군대는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것만이 이상적이죠. 전쟁은 게임이 아녀요.’

  1999. 11. 17  06:10  평안남도, 남포항

  통일해군 서해함대의 기항지인 남포항에 새벽부터 비상이 걸렸다. 통일참모본부의 훈령에 의하면, 신의주지역에 중국군이 월경 침공하여 아군과 교전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제주도가 공격을 받고 있으니, 압록강 부근 해역의 경계를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교전이면 교전이지 교전 추정은 또 뭔가!"

  서해함대 사령관인 김 종순 중장이 투덜거렸다.어차피 대부분의 함대 소속 군함들은 02시부터 전투초계중이었다.  이들을 집결시켜 압록강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서해상의 초계를 강화하느냐를 판단해야하는데 초계기들로부터 들어온 정보로는 서해상에 중국해군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보고이고 보면, 압록강쪽으로 가서 함포사격으로 아군 지상군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관이 대형스크린에 서해 북쪽의 해도를 확대한 영상을 비췄다.중국 다이렌에는 중국해군의 몇몇  구축함들이 기항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신의주해역에 나온 중국해군은 미사일구축함 2척 등 규모는 얼마되지 않았다. 물론 이 해역에는 가장 먼저 도착한 아군의 미사일구축함 대전함도 있었다.  단지 중국 해군의 잠수함들이 문제였는데 얕은 서해 바다에서는 잠수함의 발견이 쉬워 실제적인 위협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집결지는 북위 39도 32분 동경 124도 30분 정도가 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중장이 살펴보니 그곳은 평안북도 철산군 남쪽에 몇 개의 섬이 있는 얕은 해역이었다. 신의주 서남방 40 km정도에 있는 그곳은 아군함대가 집결하기에도, 지상군을 지원하기에도 좋은 위치였다.

  "전 함대 집결토록 연락해.  참, 충북함은 계속 초계임무를 수행하도록 내버려 둬. 혹시 모르니깐.  그리고 대전함은 현 위치에 대기시키도록!"

  "옛! 연락하겠습니다."

  김 중장은 충북함에 대해 생각했다. 외국에선 프리깃함으로 분류되는 한국해군의 미사일구축함, 함령이 50년이 넘은 고물이었지만 그래도 인민군의 여느 함정보다도 배수량이 크고,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결과 전자전용 장비와 무기체계가 고도화되어 인민군이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는 서해함대의 기함이 될 수 있었다.그러나 대공, 대함, 대공전에서 통일 서해함대 최강의 함인 이 함정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중국해군의 도발에 대비하여 서해상을 계속 초계하도록 두기로 했다.

  자신은 동급의 전북함에 타기로 결정했다.충북함과 같은 미군이 1945년경에 취역한 낡아빠진 기어링급 구축함이었지만, 1998 년의 대대적인 개수를 거쳐 대공미사일도 탑재한 막강한 함이 되었다.  인민군 출신인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사령관은 통신체계가 잘된 함정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고 생존성이 높은 함정이기때문에 자신이 그 함정에 승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의 비겁함을 부하들이 눈치챌까 두려웠다.

  창문을 열고 동트기 전의 항구를 살펴보았다. 벌써 초겨울의 북녘 하늘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각 함정들이 불을 밝히고 출동준비에 부산한 모습이 보였다. 이제 전쟁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11. 17  06:40  신의주 서남방 50km 해역

  한국군으로부터 배속받은 구식 초계기 P-3C 오라이언들이  함대 선두로 날았다. 바로 뒤에는 한국 구축함에서 발진한 대잠헬기 4 대가 따르며, 있을지도 모를 바다 속의 위협에 대비했다.  중국의 영해에 가까운 해역이라  중국 공격기들의 공습에 대비한 대공진형으로 함대를 편성해 전진했다. 동쪽 수평선 섬 사이로 뜨는 일출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전쟁통에도 불구하고 고깃배 세 척이 이른 아침부터 조업이 한참이었다.  아니, 밤새 어로작업을 하고 이제야 항구로 돌아가려고 그물을 걷는 모습이라고 김 중장은 생각했다. 어렸을 적 바닷가에서 동무들과 놀던 기억이 새로왔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배를 보며 손을 흔들었지만 배는 아이들을 못본 척 지나갔었다. 그게 안타까와서 김 중장이 승선 중에는 꼭 망원경으로 해안에 아이들이 있나 살피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기적을 크게 울려주곤 했었다.

  북진할수록 전파방해의 강도가 강해졌다. 아니, 강해진다고 초계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대는 완벽한 전파관제를 하고 함정끼리의 연락은 점멸등으로만 하고 있었다. 목표해역까지 5마일, 20노트의 속도로는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가면서 소형 경비정들까지 함대에 합류해왔다.  2척의 울산급 프리게이트함, 3척의 포항급 코르벳함,기타 30여척의 초계정과 경비정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어서 함대운용에 애를 먹어야했다.

  김 중장으로서 속상한 것은 한국 해군의 신형구축함은 모두 남해함대와 동해함대로 빼돌려 자기 휘하엔 한 척도 없다는 것이었다.중국은 해군이 상대적으로 낙후했으므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 서해함대는 구식 미제 기어링급이나 알렌 섬너급의 구축함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이는 인민군 수중에 비싼 한국형 구축함을 맡기지 않으려는 한국군의 술책으로 보였다.

  김 중장은 중국의 해군전술을 생각했다.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한 중국해군은 내전과 대만 침공을 계기로 전술과 무기체계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고 생각했다. 미 지상군의 공륙전을 빼다박은 항공기 운용기술은 배울만했다.  그리고 중국의 잠수함들은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재래식 잠수함 100여척뿐만 아니라 핵잠수함도 10여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김 중장은 불현듯 핵미사일이 생각나서 몸을 떨었다.

  ‘중국 잠수함에서 핵어뢰 한발만 발사하면 함대 전멸…’

  이런 생각이 들자 함대를 더 넓게 분산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대잠초계망을 넓히다가는 적 잠수함이 함대 중간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날엔 함대에 치명상을 입게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핵에 대한 우려는 떨쳐버렸다.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11. 17  07: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겁니다."

  "당연하죠. 통상전력만으로도 우리의 몇배인데…"

  인민군 장성의 말에 양 중장이 가볍게 응수했다. 참모본부 최고의 고민은 중국이 혹시나 핵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는데,  대부분의 참모들과 군사전문가, 또는 정치학자들의 견해는 부정적이었다. 중국이 먼저 침공한 경우, 또는 최소한 중국 국경의 일부가 침공당한 경우라도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북경을 점령할 정도가 된다면,그래도 중국이 핵을 쓰지 않을까요?"

  토론을 지켜보던 이 차수가 미소를 지었다. 젊은 사람이라 패기가 있다고 양 중장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니, 남조선의 자유분방함이 저런 사나이의 기백을 키워준다고 생각했다. 공화국의 젊은이들은 너무 패기가 없어… 하고 이 종식 차수는 자신의 젊은 날들을 떠올렸다.

  조국해방전쟁 직전에 의용군으로 소집되어  군사훈련을 훈련받던 일, 치열했던 전쟁,미군 비행기들의 잔인한 폭격,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했던 일들… 그러나 요즘의 공화국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안주하고, 최근의 통일과정에서는 남조선에 대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기백을 잃었다고 안타까와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일단 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난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우선 적의 위치와 규모부터… 제주도는 어떻게 되었소?"

  이 종식 차수가 의장답게 급박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 해병대가 북제주항에 상륙하여 현재 치열하게 교전중이라고 합니다. 제 2함대는 아직 제주해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제주 상공에서는 현재 공중전이 치열하답니다. 적기 25기 격추에 아군기 피해 17기 입니다."

  양 중장이 종합하여 보고했다. 아직 지켜볼 일이었다.

  11. 17  07:10  신의주 서남방 40km 해상, 전북함

  "초계기로부터 보고, 추정 적 잠수함 발견!"

  대잠전 사관이 적 잠수함의 위치를 해도상에 표시하며 보고했다.전북함의 함장인 장 태석 중령이 해도를 보니 철산군 가도의 부속 섬이었는데 섬 뒤쪽의 수심은 50m에 불과했다.

  "아니, 이런 수심에 어떻게 잠수함이?"

  "초계기로부터의 육안발견 보고입니다.  오라이언이 대잠폭뢰를 투하할 수 있도록 교전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대잠경보 발령!"

  대잠사관이 냉철한 어조로 물은 다음 함대에 비상을 걸었다.  함장이 함대사령관의 눈치를 보았다. 김 중장도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당연히 공격해야합니다. 영해 안쪽입니다. 잠수함은 우리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 중령이 함대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김 중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전쟁이 일어난게 확인이 안되었는데 적 잠수함이라니, 자신은 공격명령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초계기로부터 보고, 적 잠수함 이동중! 음파 탐지했습니다. 함종 파악! 밍급으로 분류됐습니다."

  무선병이 서둘러 보고했다. 밍급은 잠수배수량 2100톤급으로, 70년대에 취역한 구식의 소형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현대화 프로그램에 따라 최신의 전자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의 공식 제식명은 035식 잠수함으로, 9척이 동해함대(한국에서 보면 서해)에 소속되어 있다.

  "아! 잠수함에서 전파 발사!"

  무선병에 이어 전자전 사관이 고개를 돌려 사령관을 채근했다.  적이 만약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  미사일 요격체계가 허술한 함대 입장에서는 큰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잠수함의 전파는 함대를 미사일로 공격하기 위한 레이더파일 수도 있고, 자기편에 함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연락용 주파수대일 수도 있었다. 양쪽 모두 함대에는 위험했다.  무선병은 잠수함이 발신한 전파가 연락용 주파수라는 것을 알았으나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

  "공격을 허가한다."

  김 중장의 일성이 터져나왔다.

  "공격하라!"

  대잠사관이 함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초계기에 연락했다.

  "초계기에서 어뢰발사, 현재 수중항주중! 잠수함은 3-2-5로 도주중… 어뢰와의 거리 600…, 명중합니다!"

  무선병이 야구중계하듯이 보고했다.  잠수함이 함대의 소너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전북함의 대잠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 명중!"

  이번에는 무선병의 보고보다 소나 담당 하사관의 보고가 빨랐다.

  "초계기에서 보고, 적 잠수함에 어뢰 명중, 해상에 부유물 다수,  기름띠 누출! 확실하게 명중한 것으로 확인!"

  무선병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추가 보고를 했다. 첫 전투에서의 승리는 뭔가 좋은 것을 예고하는듯 했다.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승무원들의 사기가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김 중장은 생각했다. 잘 모르는 상대와의 첫 전투, 특히 그것도 강한 것으로 생각되던 적이 별거 아니란 것을 부하들이 알게된 것은  다음 전투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잠초계를 강화하라. 무선병은 통일참모본부에 보고를!"

  김 중장은 내해 깊숙히까지 중국 해군의 잠수함이 왔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어차피 현재 우리 해군의 능력으로는 중국 잠수함들의 영해 침범을 사전에 막을 능력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전략목표인 군항 등에 대한 방어와 함대 방어, 그리고 중요 물자수송에 투입되는 상선들을 보호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아까 잠수함에서 발사한 전파는 뭔가?"

  김 중장이 궁금해서 물었다. 워낙 경황중이어서 초계기에서도 보고를 못한 것이다.

  "해주 상공의 E-2C에서 연락입니다. 신의주 상공에 추정 적 항공기 1개 사단, 침로 2-3-0! 현재 아군 요격부대 출동, 접전 직전!"

  또다른 무선병의 보고에 모두들 놀랐다.  그 침로의 연장선에는 바로 자기들 함대가 놓여있었다. 40 km라면 초음속기의 속도로는 2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아니,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충분한 거리이기도 했다.함대의 위치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만 있으면.

  "대공경계 발령! 모든 함대 반전, 분산, 대공 요격태세를 갖추라!"

  김 중장이 분노했다. 중국은 잠수함 전대를 서해 연안에 침투시켜 무음잠행케하여 아군 함대의 위치를 찾은 것이었다.잠수함의 보고와 전북함의 무선을 도청한 적은 쉽게 함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주지역의 이상사태에 대해 아군 해군이 집결하여 접근할 것이라는 것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공방어력이 취약한 함대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된 함정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했다.  전북함이 급히 방향을 틀었다. 다른 함정들도 좌우로 돌려 오던 방향으로 침로를 바꿨다.

  "대전함에서의 보고입니다. 적 항공부대 접근,  적 미사일구축함 2척 접근중!"

  무선병들의 보고가 연이었다.

  "대전함은 선제 공격하라! 대전함이 위험해, 공격 후 그 해역을 탈출하도록!"

  김 중장이 급박하게 명령했다.함대의 모든 대공미사일 발사기와 대공포가 북동쪽을 향해 돌아갔다.

  11. 17  07:20  신의주 서남방 30km, 대전함

  대전함의 함장 이 완호 중령은 자신의 판단을 후회했다. 신의주에 대한 대규모의 상륙전이 예상되어  적 상륙부대를 습격하기 위한  위치를 잡기 위해 적의 공격권에 너무 많이 들어서 버린 것이었다.지금은 적의 공대함, 함대함, 지대함의 모든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직 발견 못한 적 잠수함이 자신의 배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난감해졌다.

  함대의 기함에서 급전이 날아왔다. 적에게 선제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이었다. 레이다에는 적기들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이 중령은 잠시 생각했다.적은 자신의 함정보다는 함대를 노릴 것이므로 적기들이 조금 더 가까이 온 후에 대공미사일을 발사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 180도. 전속반전!"

  함장의 명령에 따라 함이 급반전했다. 대전함은 점점 속도를 내어 중국 구축함이 있는 남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거리 15km, 적 위치 변함 없습니다. 멈췄습니다!"

  해상레이더를 담담한 준위가 외쳤다. 여기서 적은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이 중령이 자문했다.  적 구축함에 접근할수록 공대함미사일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 대신, 적함의 함대함 미사일에 공격당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이 중령은 다시 한번 중국 구축함들의 무기체계를 검토했다.

  ‘루다급 구축함 지난, 만재배수량 3670톤,  HY-2 장거리 대함 미사일에 YJ-1 잉지(鷹擊) 중거리 대함 미사일, 어뢰, 대공방어는 2연장 25밀리 대공포 4문에 탑재 헬기는 하르빈 Z-9A…  같은 급 구축함 카이펭, 배수량 3300톤, 지난호와 대동소이…  탑재헬기 대신 크로타일 대공미사일… 지난은 대함, 카이펭은 대공이라… 서로 보완관계로군.’

  "대공미사일은 적함의 예상되는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라. 적함과의 거리는?"

  "지난 12 km, 카이펭 14 km입니다. 아, 목표들 반대쪽으로 급속이동! 현재 20노트로 계속 가속중입니다. 도주 중입니다!"

  적은 아무래도 공대함미사일로 공격할 모양이라고  이 중령은 생각했다.해상전에서는 아무래도 대전함이 유리하다고 중국해군 지휘부에서도 판단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속 추격하라. 적기의 거리는?"

  "현재 북동쪽 25 km입니다. 고도 2천미터, 현재 음속돌파!"

  "하픈 4기 발사! 각 목표마다 2기씩 발사하라. 발사와 동시에 ECM 실시!"

  함장의 명령에 따라 함 중앙에 있는 8연장 미사일발사기에서 하픈 함대함 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하얀 꼬리를 물고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틀어 적함을 향해 날아가는 하픈미사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함은 이 미사일을 피하지 못할것이라고 이 중령은 단언했다.

  대전함(DD-918)은 충북함과 같이 기어링급 구축함으로서 1945년에 진수되어 함령이 50년을 훨씬 넘어가는 구식 함정이었다. 통일해군에서는 이런 대형함을 퇴역시키기 아까와서 엔진을 교체하고 탑재 병장을 대폭 교체하여 현대 해상전에 적합한 수준까지 개조했다.  그러나 함령이 지나치게 많아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완벽한 수준의 구축함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함이었다. 그러나 전년도의 개조로 인해 중국의 미사일 구축함보다는 해상전에서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공미사일 연속발사! 3기를 제외한 전 미사일을 발사하라."

  대함미사일의 발사를 확인한 함장이 명령했다. 적기들은 틀림없이 함대를 노릴 것이므로 적의 공격 전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아군함대에 대한 피해를 줄이자는 생각이었다. 함수의 수직발사기에서 12기의 시스패로 대공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시 스패로 대공미사일은 16기가 1조로 되어있는 수직발사 미사일시스팀인데 발사기 하나는 미사일 재장전을 위한 기중기가 탑재되어 있어 실제로 대전함은 1회에 최대 15기의 함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

  "적기 미사일 발사, 현재 50기.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사일담당 하사관이 비명을 질렀다.  함장은 이 모든 미사일이 전부 대전함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틀림없이 대전함을 노린 미사일도 있을 것이다!

  "하픈 목표 2 km 남았습니다. 아, 적함에서 채프발사. 적함의 위치가 레이더에서 흐려 지고 있습니다. 카이펭에서 미사일 발사! 하픈에 접근합니다."

  "좋았어, 이제 크로타일로는 하픈을 잡지 못해! 하픈 2기 추가발사하라."

  함장의 명령에 함이 진동하며 대함미사일이 추가로 발사되었다. 적함을 일단 따라 잡으면 항공기들이 발사한 공대함미사일의 방패막이 되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공대함미사일 접근, 0-5-5, 현재 200기, 그중 12기는 본함을 향하고 있습니다! 거리 12 km!"

  레이더 담담하사관이 울부짓듯 외쳤다. 함장은 만약 함이 살아돌아간다면 저 겁쟁이 대공레이더 담당하사관을 갈아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프 발사"

  "카이펭 명중! 2기 모두 맞았습니다. 지난 명중! 한 발은 빗나갔습니다. 적 미사일 1기 접근중. 6km!"

  해상레이더를 담당한 준위가 외쳤다. 이제 해상의 위협은 제거되었으니 상공의 위협에만 대비하면 된다고 함장은 생각했다.채프로켓이 발사되어 함 주위는 수많은 알미늄 박판으로 뒤덮였다.

  "우현 미사일 접근! 지대함미사일입니다! 거리 3km!"

  항해장교가 망원경을 들고 외쳤다.  함장이 급히 우현쪽을 보니 수평선 위에 까만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지대함미사일이었다.이것들은 저공으로 날아와서 보이기 직전까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틱스형 지대함미사일이었다.

  "대공방어! 우현으로 오는 놈들부터 요격하라!"

  함미에 있는 20 mm CIWS가 불을 뿜었다. 가장 최근에 장비한 이 레이더와 연계된 대공포가 제 위력을 내줄지가 함장으로선 불안했다.그리고 함에서 발사한 채프 때문에 레이더의 기능이 떨어져있는 상태여서 과연 R2D2로 불리는 이 짱구같이 머리가 큰 팔랑크스 벌컨 개틀링포가  기능을 제대로 다해줄지 의문이었다. 대공포와 함께 단장속사포도 미사일요격에 가세했다.  수 십 발의 포탄이 미사일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현재 공대함 미사일 11기 급속 접근, 거리 5 km!"

  "대공미사일 발사! 공대함 미사일만 요격하라.  채프 2기 추가 발사! 좌현 90도 급선회! 왼쪽에 보이는 섬 뒤로 숨어!"

  함장은 함에 배치된 모든 무기를 써버릴 생각이었다. 이 해역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현재로서 대전함은 공대함, 지대함, 함대함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적 잠수함까지 가세한다면… 아니,  적 잠수함은 있다고 해도 본함을 공격할 필요도 없겠지…’

  "함대함미사일 2km까지 접근. 아!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빗나갑니다."

  레이더 담당 하사관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어차피 구형인 중국의 응격 함대함 미사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함장은 생각했다. 문제는 공대함미사일이었다.  비교적 명중율이 높은데다가 채프에 얼마나 속아줄지가 불투명했다. 게다가 커다란 함대공 미사일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분명했다.

  대전함에서 그 전에 발사한 대공미사일에 중국군의 항공기 7 대가 명중했다. 12기를 발사했으니 반타작은 한 셈이었다. 순발력이 별로 없는 함대공미사일로서는 괜찮은 전과였다. 하지만 적기는 구형 미그-19기의 개량형인 싸구려 J-5 공격기에 불과했다. 이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인데 총 600기의 해군 전투기 중에서도 현대 공중전에 적응하기 어려워지자 주로 대함미사일 발사체로서만 활동했다.

  대전함이 좌로 급선회를 하며 연이어 채프로켓을 발사했다. 평소같으면 금방 도착할 듯하던 작은 섬이 너무나 멀어보였다. 대전함은 최고속도로 항진했다.

  "공대함 미사일 쇄도!! 10기 접근! 거리 1000!"

  대공레이더 하사관이 거의 비명을 질러댔다. 상황판단과 명령 내리기에 바쁜 함장이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디코이 사출!"

  함 전체를 진동시키며 레이더 전파와 다량의 적외선을 발산하는 미끼로켓이 발사되었다. 채프가 대량의 알미늄 박지나 유리섬유에 알미늄을 코팅하여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수동적인 미사일 방어 도구라면 디코이 로켓은 레이더파와 적외선을 강하게 내는 적극적인 방어수단이다. 드디어 대전함이 섬 어귀에 도착했지만  중국군 미사일도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CIWS가 미친듯이 불을 뿜었다.  함장이 돌진해오는 미사일을 이를 악물고 노려보았다.

  "좌현 미사일 접근!"

  11. 17  07:40  전북함

  "대전함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통신사관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이 물었다.

  "전파관제중이었나?"

  "아닙니다. 적 공대함미사일의 요격을 위해 레이더를 가동중이었습니다. 적 미사일 접근중, 거리 6700."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이 잠시 창밖을 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섬들 사이에 숨어. 적기들은 다 돌아갔나?"

  "미사일 발사 후 돌아갔다는 보고입니다. 아군 요격기들은 적기와 교전하지도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미사일은 엑조세의 중국형으로 추정됩니다만, 현재는 액티브 호밍을 하지 않고 관성유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섬에 접근중입니다."

  통신사관에 이어 함장이 종합해서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은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자꾸 서쪽 하늘을 쳐다 보곤 다시 섬들을 보았다. 먼저 선발대로 도착한 고속경비정과 포항급 코르벳함이  철산군 가도와 대화도 중간의 섬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두 척 모두 섬 사이의 해역에 들어가자 마자 섬광을 발하며 폭발해버렸다.

  "목표해역에 기뢰 다수! 앗! 부천함과 백구 53호 피침!"

  소나 담당 하사관이 뒤늦게 기뢰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부천함과 경비정은 앞서 갔음에도 소나의 성능이 떨어져 기뢰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격침되고 말았다.배수량 1,220톤의 부천함이 두 조각이 되어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갔다. 해군 현대화계획에 따라 1990년에 건조된 신형 코르벳함인 부천함을 잃자 함대사령관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미사일 접근! 거리 3200!"

  "초계기를 섬 사이로 보내 적 잠수함을 찾아! 소해정 선두,모두 일렬 종대로! 레이더 기구 발사!"

  김 중장은 미사일이 접근해오자 함대에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각오하고 연이어 명령을 발했다. 점멸등과 수기가 바삐 다른 함정들에 연락을 보내자 함대는 순식간에 일렬종대 대형을 이뤄 섬 사이로 들어갔다. 함대에 두척뿐인 소형 군산급 소해정(MSC-268/219)들이 선두에 나서서 기뢰가 없는쪽으로 함대를 유도했다.

  북쪽 하늘에서는 수많은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프랑스제 엑조세를 복사한 것과 같은 비어(飛魚) 미사일들이  수면을 헤치듯 낮게 떠서 섬쪽을 향했다. 그러나 이미 함대는 섬 사이로 숨어들어가서 목표를 찾지 못하자 레이더에 크게 비친 섬이나 채프의 구름, 또는 레이다발사체인 미끼로켓을 향해 날아가 헛되이 작렬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예상한 그대로이며 해전은 중국 잠수함들을 만나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잠수함 세 척을 발견했습니다. 본 함에서 3-2-0, 3-9-5, 0-5-7에 각 한 척, 각기 거리 1500에서 1700, 심도 20미터!"

  "현재 이 해역에 아군 잠수함의 활동 보고된 바 없음!"

  대함미사일을 피하고 기뢰를 피하며 함대가 섬 사이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초계기의 보고를 받은 대잠전사관에 이어 통신사관이 연이어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은 먼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이 섬들 사이의 평균수심은 40미터가 채되지 않았다. 한강이나 대동강에 잠수함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병기사용 허가, 각함 공격하라!"

  함대에서 아스록 대잠로켓과 어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북함은 적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피하기 위해 최고 속도인 35노트까지 가속했다.이 속도면 함에 탑재한 소나가 기능을 상실할 정도였지만 적 잠수함의  위치파악은 초계기에 의존해도 충분했다. 당장은 어뢰로부터의 회피가 중요했다.  모든 함대가 예상되는 적의 어뢰공격에 대한 회피행동을 개시하며 중국 잠수함을 공격했다.

  "전방을 향해 포 사격 개시! 기뢰부설 잠수함들입니다. 제독님."

  갑자기 장 중령이 외쳤다. 잠수함의 심도가 워낙 낮아 함에 탑재한 2기의 127 밀리(54구경, 5인치) Mk-45 단장포가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격을 명령한 것이다.  Mk-45는 매분 20발의 발사속도를 갖는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127밀리 단장포뿐 아니라 CIWS까지 사격에 가세했다.  전북함에서 발사한 포탄으로 바다 표면이 온통 하얗게 튀었다.

  미리 해역에 대기했던 중국 잠수함들이었지만  워낙 빠른 서해함대의 대응에 놀라 공격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침몰해갔다.  이 잠수함들은 대함 미사일을 갖추지 않고 어뢰공격과 기뢰부설을 전문으로 하는 통상형 잠수함이었는데 섬 사이의 기뢰부설을 마치고 섬들을 빠져나오는 입구에서 서해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함이 공격하기 전에 미리 발견한 덕에 위기는 넘겼지만 그래도 중국 잠수함과의 접전은 함대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장 중령은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초계기와 탑재헬기들은 갑작스러운 아군 함대의 포 사격에 놀라 기수를 올렸다. 대잠전은 적 잠수함이 발산하는 음파를 파악하여 적의 위치를 잡아 공격해야 되는데 이처럼  해상에 포를 발사하여 잠수함을 공격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전북함의 탑재헬기인 영국제 알루트 III이 음파탐지를 포기하고 자기변화탐지기(MAD)로만 적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초계기 오라이언이 투하한 소너부이에 잠수함이 발견되자 어뢰를 발사했다.첫발은 빗나갔으나 두번째 발사한 어뢰가 잠수함에 명중하여 바다 표면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초계기의 어뢰공격에 1척, 전북함의 127밀리 단장속사포에 1척, 울산급 프리깃함인 서울함의 Mk-46 어뢰공격에 1척 등으로 해서 섬 주변 해역의 잠수함 3척은 모두 침몰시켰다. 김 중장은 국군 해군의 대잠능력에 놀랐다. 인민군 해군은 잠수함에 많이 의존하고, 대형함이 없이 어뢰정이나 미사일고속정 등만 유지했기 때문에 대잠능력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초계기로부터 보고,  0-1-0, 거리 5,000에서 7,000에 적 잠수함 5척 발견!"

  통신병이 외치자 함장인 장 중령이 적의 연속된  공격에 대응하여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방향으로 아스록 대잠미사일 발사! 감속 20노트로, 침로 0-1-0"

  김 중장이 미처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전황이 시급하여 장 중령이 함장의 권한으로써 공격명령을 내린 것이다.  김 중장은 비로서 함대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해냈다.  함대 소속의 대잠 헬리콥터들이 목표해역으로 비행해갔다.

  "목표 1, 0-1-0, 거리 5500, 20노트의 속도로 2-2-5로 진행.  잠망경 심도, 발사! 목표 2, 0-1-5, 거리…"

  대잠전(ASW)사관이 각 공격목표에 대한 해석치를 내며 공격을 지휘했다. 함미의 8연장 아스록 대잠미사일발사기에서 로켓이 연속발사되었다. 기어링급 구축함들은 원래 Mk-46 대잠어뢰발사관을 갖추고 있었으나 해군 증강계획에 따라 차차 아스록 대잠로켓을 갖추게 되었다.

  해역의 심도가 낮아서인지,아니면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서인지 어쨋든 중국의 잠수함들은 모두 잠망경 심도에 머물고 있었다.마지막 8번째 대잠 로켓을 막 발사한 순간 전북함의 함수가 섬광에 쌓이더니 충격파가 전해져왔다. 폭발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전북함의 감속이 너무 늦어져 아직까지 소나기능이 회복되지 못해 미처 기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김 중장은 충격에 정신이 없었다. 겨우 일어나 상황을 보니 대부분의 함교 요원들은 벌써 자신의 전투위치에 있었다.

  "기뢰에 피함됐습니다. 함수가 침수 중! 화재발생!"

  "침몰한 적 잠수함 주변에도 기뢰가 있었습니다. 속았습니다!"

  대잠전사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과 다른 사관들은 쓰러졌다가 바로 일어났지만 장 중령은 일어나지 못했다.충격파에 쓸려 5 미터를 날아갔는데 머리를 벽에 부딪혀 그만 뇌진탕으로 쓰러진 것이다.

  "함장님 전사! 의무병!"

  이제서야 함장의 이상을 깨달은 항해사관이 비명을 질렀다.그러나 의무병을 부르기에는 함이 너무 위태했다.  만재배수량 3,470톤의 전북함은 함수부터 침몰해가기 시작했다.

  아스록 대잠미사일은 전북함으로부터 발사되어 약 5km를 날자 추진을 멈추고 탄두부분에서 낙하산이 펼쳐져 바다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착수한 다음 어뢰가 되어 목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중국잠수함은 너무 놀랐다. 설마 한국함대가 이렇게 빨리 대응해오리라고는 예상 못한 것이다. 중국잠수함들도 서둘러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수한지 너무 오래되어 핵탑재 전략잠수함의 역할을 하기 부적합하다는 중국해군 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최근부터는 공격형잠수함으로 역할이 바뀐 한급 핵잠수함들이었다.

  중국 한급 잠수함 405함은 목표에 대한 데이터를 최종 입력하고 잉지(응격 : 鷹擊)레이더 호밍 미사일을 막 발사하려는 순간에 전북함이 발사한 어뢰가 돌진해왔다. 405함의 함장은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 해역의 심도는 너무 낮았다. 어쨋든 최고속도를 명했지만  막 속도를 내기 시작한 잠수함은 어뢰의 속도보다는 훨씬 느려서 점점 거리가 좁혀져왔다. 함장은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부상! 허수아비 2기 발사!"

  즉시 부상을 시도하고  어뢰 회피용 소음발생장치를 발사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뢰는 도망가는 잠수함의 스크루 부분에 명중해 함미가 산산조각이 났다. 불행한 중국의 5천톤급 핵잠수함은 공격도 못해보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다른 네 척의 중국 잠수함도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한 척은 간신히 전북함의 어뢰를 피했지만 해역 상공에서 선회중인 대잠헬기의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디핑소나를 바다 속에 넣고 정확한 잠수함의 위치를 찾고 있던 전혀 군용헬기 같지 않은 모습을 갖춘 MD-500D 헬기가 필사적으로 도주중인 잠수함에 앞부분이 납작한 Mk-46 어뢰를 발사하여 잠수함의 기능을 상실시켰다.옆구리에 어뢰를 맞고도 필사적으로 부상을 시도했으나 서울함의 76밀리 단장포가 불을 뿜었다.

  구명정 안에서 함대 사령관 김 중장은 침몰해가는 전북함을 바라보았다. 기습당한 함대치고는 잘 싸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함장인 장 중령의 시신을 수습치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러웠다. 천천히 일어서서 함미만 남은 전북함에 거수경례를 올렸다.  다른 사관들과 수병들도 같이 거수 경례를 했다.잘 싸워준 전북함과 함장 장 중령을 생각했으며 다가올 싸움은 더 치열할 것이란 걱정이 앞섰다.어쨋든 자신들은 승패를 떠나 살아 남은자들이었다. 산 자는 앞날을 걱정해야 한다. 서울함이 승무원들의 구조를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11. 17. 11:00  평안북도 선천, 와우동 고개

  전투기들이 한바탕 중국군 전차부대를 휩쓸고 돌아가자, 이번엔 한국군이 얻어맞을 차례였다. 다연장 로켓포의 포탄이 고개 근처 사방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수많은 전차가 고개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저기 앞에 국도 위의 철교를 파괴시킬 수 있겠나?"

  차 중령이 포수인 박 중사에게 묻자 박 중사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미 군대밥 10년에 그 정도의 생각은 있는 사람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거리는 2200미터, 이미 확인했습니다."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철길과 국도가 와우동 고개 아래에서 서로 교차하고 있었는데 철교는 국도를 가로질러 위쪽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철교를 파괴하면 국도까지 막혀서 일시라도 전차부대의 전진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좋다. 전 전차, 철교에 대해 집중 사격!"

  차 중령이 명령을 내리자 제 11기갑사단의 마지막 남은 6대의 전차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철교 아래 국도를 통해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3발의 포탄이 철교에 명중하자 철교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중국군 전차들은 철교의 잔해를 넘어 계속 접근해 오고있었다.

  이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차 중령 휘하의 전차들은 아군과 민간인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최후의 결전에 대비해서 전차와 포탄수를 점검하고 있는 중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선두의 중국전차 몇 대가 동시에 폭발한 것이다. 중국군 전차부대의 전진이 갑자기 멎었고 차 중령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전방 1500 미터 정도의 길가 숲속에 인민군 군복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이 소형 대전차무기로 선두의 전차를 파괴한 것이다.뒤쪽의 전차에서 이들을 발견했는지 12.7 밀리 대공기총을 난사했다. 인민군들이 쓰러져갔다. 차 중령이 보기에 이들은 훈련이 덜된 부대같아 보였다.은폐가 부족하고 움직임이 활발치 못한 것으로 보아 신병들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차 중령의 전차 뒤에 사륜구동차 한 대가 와서 정지했다.

  "동무는 뉘기요?"

차 중령이 놀라서 뒤돌아 보자 사륜구동차에는 중년의 군인이 타고 있었는데, 계급에 비해 어쩐지 나이가 너무 들어보였고 군인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혹시 인민군 부대가 근처에 있는지 기대에 부풀었다. 차 중령이 일단 경례를 하고 대답했다.

  "국군 제 11기갑사단 차 영진 중령입니다. 실례지만 대좌님의 소속은 어떻게 되십니까?"

  "기렇소? 내레 선천군 당위원장이며 노농적위대 선천지구 사령 홍 종규 대좌요. 수고가 많으시오."

  자신을 홍 대좌라고 밝힌 중년이 사륜구동차에서 내려 전차로 기어올라 왔다.  차 중령이 다시 망원경으로 보니 숲속의 인민군들은 거의 전멸하고 중국군 전차들이 주변을 경계하면서  이번에는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홍 대좌도 망원경으로 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단도저격조래 죄 전멸했구만."

  차 중령이 눈이 커지며 홍 대좌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대좌님 부하들의 작전이었습니까? 정규군이 아니었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패해서 이렇게 군복을 입으시다니…"

  차 중령이 진심으로 사과하자 홍 대좌가 손을 저으며 만류했다.

  "아니디오. 전쟁이 터졌으니끼니 우리도 이젠 군인 아니갔시요?  참, 동지가 정규군 중령이니끼니 우리 부대의 지휘권을 인수받아 주시구래. 이건 규정이야오."

  "아닙니다.  저는 계급도 낮고 패해서 부하들을 다 잃었으니 홍 대좌께서 당연히 저희까지 지휘해 주셔야죠."

  차 중령이 당황해서 홍 대좌에게 지휘를 부탁했다. 그러나 홍 대좌는 규정을 들먹이며 막무가내였다.  만약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할 경우 군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며 한사코 지휘권을 강요했다.

  "그럼 혹시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대전차무기는 충분합니까?  일단 저들을 물리칠지 후퇴할지 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홍 대좌가 차 중령을 혐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 중령이 당황하자 홍 대좌가 자신의 의무라는 듯 설명을 했다.

  "우리 35 예비연대는 병력은 3,500명이고 대전차무기는 분대마다 RPG-7이 두 개씩 있습네다. 길고 2개 대대의 교도대가 후퇴를 못해서 지금 저의 지휘를 받고 있습네다. 하지만 후퇴는 못합네다. 우리는 침략자로부터 고장을 지킬 뿐입네다."

  현역에 복무하지 않는 만 17~45세 까지의 남자(여자는 17~30세)는 동원예비군격인 교도대에 편성되고, 46~60세 까지는 노농적위대에 소속된다.  노농적위대의 지휘관은 소속 직장의 당책임비서가, 부지휘관과 참모장은 사회안전부과장과 당군사부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교도대는 해당지역 위수담당 정규군 군단장의 관할하에 있으며 장비도 정규군 보병사단의 80% 수준이다.

  "그걸로는 저 막강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막지 못합니다. 일단 저들을 통과시키고 후속 보병부대나 보급부대를 공격하는게 어떻습니까?"

  홍 대좌가 불만스럽지만 지휘권자의 명령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갔습네다.  사단장님은 목숨을 아까와 하는 분이 아니니끼니 작전상 놈들을 통과시키겠습니다. 통신병! 떼놈 땅크들을 통과시키라우!"

  차 중령은 상당히 당황했다.  어떻게 자신이 이들의 사단장이란 말인가? 홍 대좌의 말로 미뤄볼 때 그는 중국군과 11 기갑사단의 전투를 지켜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서는 불만에 가득찬 홍 대좌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연대장도 아니고 사단장인지 궁금해졌다. 나머지 인민군의 예비군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했다.차 중령이 홍 대좌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홍 대좌가 깜박 잊었다는 듯 설명을 했다.

  "선천지구 노농적위대는 전쟁이 터지면 자동적으로 제 35 예비연대가 됩네다. 그리고 지휘관은 당연히 중좌 이상의 현역군인이 맡게 되어 있으며 저는 참모장으로서 차 중령 동지를 보필하게 됩네다. 다른 명령이 있으시면 받갔습네다."

  홍 대좌가 정식으로 차 중령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차 중령은 이들을 중국 장갑집단군의 무자비한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홍 대좌의 요청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차 중령도 정식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지휘권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일단 매복한 저격조를 후퇴시키시오.  그리고 우리 전차들이 숨을만한 곳은 있겠습니까?"

  아무리 현역장교가 지휘하게 되어 있다지만  아무래도 상관을 부하로 둔다는 것은 껄끄러웠다. 나이도 20년 정도나 차이나지 않는가?

  "알갔습네다. 통신병 연락하라우! 저를 따라 오시디오."

  홍 대좌의 사륜구동차를 선두로 전차 6대가 따라갔다. 중국군은 한국군 전차들이 고개에서 지키고, 보병들이 계속 숲속에 매복해 있는줄 알고 전진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신중한 정찰을 거쳐 중국군 전차들이  차 중령의 전차들이 있던 고개를 점령하고 나서야 국군들이 모두 후퇴해버린 것을 알고 땅을 쳤으나 이미 늦었다.차 중령의 전차들은 자국을 모두 지우면서 후퇴하여 결코 이들을 찾지 못했다.

  중국군 전차들이 선천 시가에 진입했다.  상당한 정도의 저항을 예상한 중국군 전차들은 장갑정찰대를 앞세워 신중히 접근했는데 의외로 시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정찰대의 보고가 왔다. 선천 점령 보다는 통과가 우선인 장갑집단군은 소수의 병력만 주둔시키고 즉시 남하를 재개했다. 장갑집단군 외에도 2개의 집단군 병력이 따랐다. 긴 차량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11. 17  11:35  선천 남서쪽 3 km, 대목산

  홍 대좌의 사륜구동차는 중국 전차들의 관측을 피하며 쾌속 전진해갔다. 속도가 느린 국군 전차들로서는 그의 차량을 따라가기도 바빴다.몇 개의 간선도로를 가로지르고 산길을 오르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평안북도를 가로지르는 적유령산맥이 서해바다를 만나 끝나는 곳이  바로 대목산이다.  해발 349 미터로서 해안의 산 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며 산세가 매우 가파르다. 사륜구동차가 서자 홍 대좌가 내렸다.

  "다 왔습네다. 이곳이 지휘본붑네다. 지금 지휘관들이 대기하고 있으니끼니 신고를 받으시라우요."

  차 중령이 전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에 뭐가 있나 궁금해 하는데 홍 대좌가 덤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 중령이 부하들을 사주경계 시키고 따라 들어갔다.

  덤불 속은 의외로 컴컴했고 조금 걸어들어가자 방공호처럼 생긴 문이 있었는데 문 옆에 앳된 소년처럼 생긴 인민군 병사 두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 의외로 전기불이 있었고 속은 상당히 깊었다.홍 대좌가 차 중령을 흘끗 보더니 설명을 해주었다. "이 대목산이래 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선천을 방위하기 위해 요새로 만들어졌습네다. 처음 보시갔디만 이 요새는 1개 사단이 1년 동안 독자적으로 전투할 수 있는 무기와 식량이 있습네다.  자, 여기가 지휘본붑네다."

  차 중령이 들어서자 기다리던 지휘관들이 일어서서 거수경례를 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나이들이 다양한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여군 장교도 몇 명 보였다.  차 중령이 경례를 하고 모두 홍 대좌의 구령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차 중령 동지는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선천을 끝까지 방위하는 도중 우리 35 예비연대의 연대장이 되셨습네다. 현재 중앙과 연락이 되지 않으므로 전시법에 따라 현역군관 중 최고 계급의 차 중령님이 제 35 예비연대장 겸 철산군, 선천군, 귀성군 등 3개군을 합한 사단의 사령이 되셨습네다."

  차 중령은 또 한번 놀랐다.전쟁이 발발한지 하루도 안되어 이렇게 자발적으로 예비군을 조직하고,  사전에 이 정도까지 준비하는 북한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어떻게 된겁니까? 저는 남쪽 출신이라 잘 모르는데요."

  "1997년, 당의 지도로 중국의 침략에 대비해서 의용군 조직의 개편이 있었습네다. 가까운 신의주시, 의주군, 용천군이 합해서 1개 사단이 되어 국경을 수호하고,  우리는 3개군이 합해 이들을 지원하게 되어 있습네다.신의주시와 그 부근은 아마도 떼놈들에게 점령이 되었을테니 이제 우리 3개군이 중국을 막는 최전선이 됩네다.아마 다른 군이나 시에서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입네다.  먼저 사단장 동지께 이 대목산 요새를 소개하갔습네다."

  스스로를 참모장으로 낮춘 늙은 대좌가 환등기를 켜더니 설명을 했다. 요새는 거미줄같은 동굴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고 곳곳에 포좌와 대공미사일 발사기가 있었다.차 중령은 이를 보면서 이 요새가 해군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상륙전에 대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했다. 의외로 단단히 만들어져 있었고,  장기 고립상태에서도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연대 작전참모라며 자신을 소개한 젊은 소좌가 나서더니 대목산 주변의 현재 중국군 이동현황, 그리고 임시로 배속된 교도대들의 위치를 보여주었다.  모두 유격전에 입각하여 편성된 조직들로 이 지역 민간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전과 병기 보유현황을 설명했다.  현재 휘하 부대들은 도로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다.

  차 중령은 고민했다.훈련과 장비가 빈약한 민간인들을 현대전에 동원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생길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그러나 정규군에게만 이 전쟁을 맡길 경우 오래지않아 이 전쟁은 통일한국의 패배로 끝날 것은 당연하며, 동시에 독립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참모들과 지휘관들을 둘러보니 갑작스런 전쟁에 당황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지만 조국을 지킨다는 확고한 결의가 보였다.

  "좋습니다. 적에게 잡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후손들이 중국어를 강제로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을 꼭 이길 수 있도록 싸워 나갑시다. 이만 회의는 마치고 저를 관측소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적의 침공을 조금이라도 늦춰야죠. 전투를 시작합시다."

  장교들이 서둘러 자신의 전투위치를 향해 달려갔다.

  11. 17  11:55  선천, 대목산 요새 관측소

  차 중령이 홍 대좌의 안내를 받아 승강기를 통해 산 꼭대기의 관측소에 도착했다.관측소에는 포병 관측장교와 대공지휘관이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민간인 부대치고는 훈련상태나 기강은 좋아보였다.

  망원경을 통해 동쪽을 보니 경의선과 함께 고속도로가 남동쪽을 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엔 무수한 숫자의 중국제 전차와 보병전투차, 그리고 수많은 트럭 행렬이 보였다. 홍 대좌가 거들었다.

  "요새포는 막강합네다.  도로의 위치에 대한 자료는 이미 입력되었습네다.그리고 도로 주변에는 이미 2개 대대의 유격부대가 진지에 은폐해 있습네다. 기저 명령만 내려 주시라우요."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둘러보았으나 어디에도 인민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전투전까지는 철저히 위장하는 것은 인민군의 전투교범의 제 1항이었고,  이는 예비군격인 노농적위대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위장은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공격하시오."

  차 중령은 인민군 민간인부대의 작전과 훈련상태를 보고 싶었다.과연 이들이 한국의 일반예비군처럼 형식적인 훈련만 했는지, 아니면 실전에서도 훌륭히 전투를 수행할지 궁금했다.

  155밀리 대구경의 요새포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도로 주변에서 불꽃이 튀었다.홍 대좌의 부대배치는 완벽해서 나무랄데가 없었다. 이 요새와 민간인부대들이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동을 지연시킬 정도는 되어보였다.

  대목산 산그늘에 숨어있던 구 소련제 122밀리 다연장로켓포의 변형인 BM-11 다연장로켓포대가 불을 뿜었다.  15발씩 두 번에 나눠 사격할 수 있는 이 다연장포는 보다 대구경의 다연장포가 북한에서 생산되자 일선 부대에서 물러나 이런 후방지역의 예비군부대에까지 운용되었다.  구식 4톤짜리 트럭에 탑재되어 있는 다연장포가 30발씩을 쏘고 나서 즉각 재장전에 들어갔다.다연장포의 단점이라면 재장전에 몇 분 씩이나 소요된다는 것이다.

  요새포와 다연장로켓포,  그리고 도로 주변 야산에 잠복하고 있던 적 위대의 일제사격 한번에  도로상에 움직이는 것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살펴보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로에는 수많은 중국제 69형 전차들과 90형 병력수송차,구 소련제 BMP-1형의 복사품인 WZ-500 계열의 각종 보병전투차들, 그리고 병력수송용 트럭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중국군 보병들은 하차할 시간 여유도 없이 당했다. 와우동에서 선천 남쪽 삼소리까지의 약 3 km 구간의 중국군이 전멸당했다. 약 1개 연대의 병력이었다.

  선천 시가에서는 중국 점령군과 적위대간의 시가전이 한창이었다. 교도대의 일부 병력은 선천에 남아 점령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도로에서 포성이 울리자 순식간에 이들을 기습하여 기선을 제압했다.1개 중대의 중국군을 사살하거나 포획했다. 교도대원들이 포로들을 대목산 요새로 호송했다.

  이동 중인 중국군을 섬멸한  노농적위대와 교도대는 전시규정에 따라 도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경의선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까지 파괴했다. 특히 교량과 터널은 제 1의 목표가 되어 철저히 부서졌다.이들은 작전을 마치자 마치 유령처럼 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야 중국 헬기들이 도착하여 도로주변을 비행했으나 이미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후속하는 중국군 집단군에서 선천시에 신경질적으로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선천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천의 북쪽에서 내려오던 중국군들은 대목산요새에서 포격을 하는 것을 산그늘에 가려서 보지 못한채 당했다.

  "훌륭합니다. 대단해요."

  "선두에 중국군 전차를 까부시지 못한거래 분통할 뿐입네다."

  차 중령의 칭찬에 홍 대좌가 부끄러워 했다.

  "아닙니다. 전차만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죠. 중국 침략군은 이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제 36, 37 예비연대 연대장들께서 도착했습네다."

  차 중령과 홍 대좌가 전투를 마치고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손님이 도착했다. 이들은 인근 철산군과 귀성군의 당 서기 겸 노농적위대 사령들로서 예비역 상좌들이었다. 제 11 기갑사단의 패전 소식을 듣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요새로 오던 중에 35예비연대의 승리를 지켜봐서 이들은 꽤나 들떠 있었다.

  "우리도 이번 전쟁에서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꼭 침략군을 몰아 내야합니다."

  36 예비연대장이 군당 서기답게 열변을 토했다. 차 중령이 이들과 함께 길고 긴 회의를 시작했다. 중국군의 남진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차 중령을 따라온 제 11 기갑사단 최후의 전차병들은 전차를 땅속 엄폐호에 감추고 18 시간만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후에 인민군들이 담배를 주었으나 맛이 이상해 전차병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피웠다.

  1999. 11. 17  11: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제 11기갑사단까지 당했습니다.  적은 이미 선천까지 침입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일단 11 기갑사단의 잔존 병력은 모두 후퇴했지만 제 3 전차대대 병력은 적 기갑부대를 막다가 점령지에 남은 것같습니다.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참모본부 상황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갑사단의 참패에 이어 사단의 안전한 후퇴를 위해 자신을 던진 제 3전차대대 대원들의 최후를 생각했다. 살아서 봐야한다고 명령했지만 차 중령은 명령불복종죄를 지었다고 정 대장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제 6 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은 중국 공격헬기들을 처치하고 중국군 장갑군단에 폭격을 가해 제 11기갑사단이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나타난 중국군 전투기들에 의해 모두 격추됐습니다."

  참모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군대가 패배하여 사기가 저하된 지휘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모두 침통해 하고 있었다.

  "현재 적 지상군의 주 침공로는 지도를 보시다시피…"

  양 석민 중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단말기를 조작하여 대형 스크린에 북한지역을 비췄다. 세 개의 커다란 붉은 색 화살표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피아 구분이 된 부대의 위치와 규모가 비쳐졌다.

  "이렇고, 역시 적의 주공(主攻)은  신의주에서 평양을 따라가는 길에 있는 부대들입니다. 혜산과 회령쪽으로 오는 적들은 조공에 불과합니다. 혜산과 회령쪽 아군이 후퇴는 하고 있지만 이는 전선의 균형을 위한 것이며 그쪽은 아직 큰 피해를 입은바 없습니다. 적의 공중공격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입니다."

  양 중장이 잠시 자료를 살핀 후에 보고를 이어갔다.

  "현재는 중국측의 광대역 전파방해가 걷혔다는 보고입니다. 중국측도 부대간 연락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전파방해가 불가능하겠죠.  단발적이나마 만주지역과 북경 부근의 우리측 정보원들로부터 무선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보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침공한 적 주력은 제 16병단 예하의 장갑집단군과 몇개 혼성집단군이라고 합니다. 2개의 헬기사단과 3개 전투비행사단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후속부대로는 심양과 단둥에 2개 병단의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일부는 국경을 넘었을지도 모릅니다."

  "1개 병단의 병력 수는 얼마나 됩니까?"

  중국군의 체계를 잘 모르는  구 국군의 이 호석 공군중장이 묻자, 양 중장이 잠시 자료를 검색하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시의 중국군 집단군은 3개 보병사단과 각 1개씩의 기갑여단, 포병여단, 그리고 고사포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만, 내전중에 기갑부대를 강화하여 기갑여단이 기갑사단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른 편제도 각기 달라 수비사단이 몇개 포함되는가 하면 기계화부대인 오토바이 사단이 편제에 들어있기도 합니다. 1개 병단은 몇개의 집단군을 합한 것으로, 또한, 병단이 몇개 모여 야전군이 됩니다."

  "총 병력은 얼마나 되오?"

  이 종식 차수가 오랫만에 끼어들었다. 이 차수가 보기에 적의 편제도 모르는 장군을 교육하는데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신의주에서 월경한 16병단과 만포쪽의 3병단, 혜산쪽의 제 5병단이 주력이며 선공부대인데, 단둥과 심양에서 월경 준비중인 2개 병단을 합쳐 중국측은 제 5야전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간단히 5野라고 합니다만, 지상군 총병력 6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양 중장이 답변하자 모두들 갸우뚱했다. 이 차수가 거듭 물었다.

  "설마 그 정도 병력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하지는 않갔디. 후속 병력이 또 있다는 말인데…"

  "예. 이들은 모두 중앙정부의 친위군격인 베이징군구와 지난(제남)군 구 소속의 부대입니다. 심양군구의 집단군들과 남부지방에서 올라와 심양군구에 배속된 부대들이 후위 지원부대라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만주지역에만 중국군 150만 정도가 있습니다. 이미 월경하여 전투에 돌입한 부대를 합하면 약 200만명이 됩니다. 물론 병참 등 지원부대는 빼고 말씀입니다."

  모두들 기가 막혔다. 중국은 한국을 점령하기로 이미 마음 먹은것 같았고 이를 막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생각들이 들었다.이 차수가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농을 건넸다.

  "이 정도 병력이면 중국이 핵을 쓰지는 않갔구만."

  모두들 웃었으나 쓴웃음일 뿐이었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중국이 핵을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즐겨 자랑하는 인구 핵폭탄, 또는 이번 상황에서는 인해전술같은 병력의 핵폭탄이었다.

  "전시비상동원체제는 잘되고 있소?"

  이 차수의 질문에 양 중장이 신속히 답변했다.

  "예! 예비군동원령이 내려 남북 모두 40개 예비사단이 편성중입니다. 그리고 향토예비군과 민방위 소집도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계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중화학공업 기업들의 비상전시체계에 따른 개편은 잘 이뤄지고 있으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는 배급제를 실시해야되는데, 정부는 시장경제의 붕괴를 우려하여 일반 소비재의 배급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전쟁발표가 나가자마자 암시장이 형성되었답니다.  또한 이중국적자들이 서둘러 출국하고 있어서 상당수의 기술인력이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음, 어느 나라나 있는 문제고… 우리측 대응태세는 어드렇소? 아무래도 저 장갑집단군이 문젠데…"

  "영변에 본부를 둔 인민군 425 기계화군단이 적의 장갑집단군에 맞서 북진 중입니다. 해주의 815 기계화군단도 도로를 따라 북진 중입니다."

  "해군은 어드렇소? 제주도 상황은?"

  이 차수의 물음에 인민군 박 상장이 보고했다.

  "중국은 현재 아군 서해함대에 대한 공격을 진행중입니다. 주로 공대함공격을 가하고 있는데 우리측 피해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작전해역에 대한 서로간의 전자전이 극심합니다. 우리 함대는 현재 전파관제 상황입니다."

  자신의 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부의 명령이나 보고도 당분간이나마 묵살할 수 있는 것이 함장, 또는 함대사령관의 권한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해군에 대해서는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간간히 해주상공의 조기경보기가 정보를 주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할 수도 없었다.

  "제주도는 현재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점령당했고 한라산 산정 일대도 대부분 중국군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공중지원부대가 출동했지만 적의 항공기들에 의해 제지당해 제주도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군의 정 대장이 분통을 터뜨리며 보고했다.  참모들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개전 후 최초로 도 하나가 점령당한 것이다.이제 남부지방까지 중국 공군기들의 공습권에 들게 되었다는 걱정이 들었다. 제주도가 함락되면 한반도는 남, 서, 북의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모들이 눈길을 이 호석 국군 공군중장에게 돌렸다. 이 중장이 질문을 받지는 않았어도 뭔가 말을 해야되는 상황에 처했다.

  "현재 서로 제공권을 장악하기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만,솔직히 아군이 불리한게 사실입니다. 항공기나 조종사의 질적수준을 떠나 숫적으로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적기의 요격에도 급급하여 지상지원공격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비역조종사들을 소집하긴 했지만 항공기 수는 절대부족한 상황입니다. 전투기의 긴급수입을 제안합니다."

  "해군함정, 특히 대잠수함전을 수행할 프리깃함들도 긴급수입할 것을 요청합니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거들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군수물자 수입요청이 빗발쳤다.  게다가 남북간의 기종이나 함종이 서로 달라 서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종류의 군용물자 수입을 위해 남북간의 참모들이 서로 말다툼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우리 해군은 공군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대함 미사일의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대공미사일을 탑재한 다수의 대잠 프리깃함을 수입해야합니다. 아니면 이지스함을…"

  "이 기회에 차라리 소형항모를 수입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전투기래 공중전에 유리한  러시아제 수호이-27이나 미그-29를 수입하는거래 낫갔디 않갔습네까?"

  "아닙니다. 러시아제는 레이더가 약해 지나치게 지상관제에 의존해야 하므로, 레이더가 우수하고 기동성이 좋으며 대지공격능력도 있는 F-18이 더 좋습니다."

  "그만 하라우요!"

  이 차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참모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벌써 신무기 도입의 환상에 빠져있었다.

  "무기 도입은 나중에 토의를 거친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적을 막을 방안을 연구합세다."

  좌중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압도적인 중국의 공세를 꺾을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공군이 중국 장갑집단군에 대한 폭격을 하자니 압도적인 수의 중국 전투기때문에 불가능하고,해군도 밀리는 상황이고, 지상군도 숫적인 면에서 불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낙후한 무기를 무시하던 참모들도 중국측과의 전투 이후에는, 그들의 무기체계와 높은 운용기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은 내전 과정을 통해 무기체계가 비약적으로 현대화되었고 군인들도 정예화되었던 것이다.

  "오늘 오전동안의 양측 공군기들의 피해입니다."

  침묵을 깨고 공군의 이 호석 중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까지 적기 격추 65기, 아군기 피격 49기입니다."

  "음… 공군조종사들의 기량이 뛰어났군요."

  제 11기갑사단의 패배로 풀이 죽은 육군의 정 지수 대장이 비꼬자 이 중장이 책상을 치며 외쳤다.

  "하지만 전투기끼리의 공중전에선 24 대 43입니다. 나머지 중국 전투기들은 대공미사일이나 대공포에 의해 격추시켰다는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조만간 우리나라 공군은 전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 차수가 가만 있다가 참지 못하여 질문을 했다.

  "왜 기렇게 차이가 나오? 무기면에서는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데…"

  "조종사의 기량도 크게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상관제입니다. 중국이 전자전기와 관제기를 동원해 전투기를 지휘함에 반해 우리는 주로 지상관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아군기의 레이더 성능이 우수하고, 조종사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 유리한 점도 있지만 관제기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공중전에서는 훨씬 유리합니다.그리고 저공침투해 오는 중국전투기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평양이나 서울이 지금도 공습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결책은?"

  이 차수가 강한 평안도 억양으로 냉엄하게 물었다.

  "조기경보관제기를 더 띄워야합니다.  최소한 4대는 더 수입해야합니다. 그리고 각 군에 분산되어 있는 레이더 기지를 통합 운용해야합니다. 현재로서는 적기 동향에 대한 실시간 정보처리가 불가능합니다.이는 현실에서 전투기의 격추비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소."

  이 차수가 대안을 내놓았다.

  "남쪽은 조기경보기를 몇 대 더 구입하기오. 북측의 레이다기지 관할권은 모두 남쪽에 주갔소."

  참모들이 깜짝 놀라 이 차수를 쳐다보았다.  북한지역 레이더 기지의 관할권을 넘긴다는 말은, 북한이 대량보유한 미그기가 특성상 지상관제에 크게 의존하므로 인민군 공군기의 지휘권을 국군에게 주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인민군 장성들이 얼굴에까지 불만을 드러냈지만 늙은 병사 이 차수 앞에서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호석 중장이 이 차수의 뜻밖의 결정에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대지공격기 A-10이 30대쯤 됩니다만…"

  그는 인민군 장성들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중국 장갑집단군 공격에 이들 공격기들을 425 기계화군단에 배속시키면 어떨까요? 단,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면 안되니 전투기들의 엄중한 호위하에 말입니다."

  이 중장이 제안하자 모두들 받아들였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빨리 남북 군체계를 상호 통합해야 중국이라는 강적을 상대할 수 있을겝니다."

  조금전 이 중장의 반박에 기분이 나빠졌던 정 대장도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군인이라 이 중장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며 북한지역에 주둔중인 국군 5개 사단의 지휘권을 모두 북측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남북 군 통합에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해오던  정 대장이 통합에 적극 동참하자 인민군 장성들도 이제야 국군 장성들을 신뢰하기 시작하여 남북의 참모들이 서로의 권할권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남북 군대의 실질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해함대에서 보고입니다."

  참모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전멸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한 함대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어떻게 되었소? 우리측 피해는?"

  인민군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묻자 통신장교는 이것이 승리인지 패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전문을 읽어나갔다.

  "서해함대 대전함 대파, 대전함은 중국 미사일구축함 2척을 침몰시켰고, 적 공격기 7기를 격추시켰습니다.0750에 전북함 피침, 전북함과 함대는 적 잠수함 6척을 침몰시켰습니다. 그 중 3척은 한급 핵잠수함이라고 합니다.  기타 피해는 초계정과 미사일 고속정 한척 침몰입니다. 전 북함의 함장 장 중령은 전사했습니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은 장 중령의 추서와 아울러 한국형구축함들의 서해함대 편입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0930에 적 재래식 잠수함 추정 격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적 잠수함들 때문에 보고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참모들이 실의에 빠졌다. 중국 잠수함 7척과 구축함 2척의 격침은 큰 전과였으나 서해함대의 기함인 전북함이 침몰했고 대전함도 대파되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대등하거나 약간 우세한 전과는 패배나 다름없었다. 중국 잠수함은 100여척이 넘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한국해군은 중국이라는 대해에 빠진 잉크 한방울에 불과했다. 중국과 전쟁을 치뤘던 역사상의 다른 이민족들처럼…

  "이거 안되겠군요."

  한국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말을 꺼냈다. 한국해군의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인민군 해군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서해함대에 귀중한 한국형 구축함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할 입장이었다.

  "현재 동해함대에 배속중인 한국형구축함 3척 모두와 시험항해중인 2척, 그리고 건조가 거의 끝난 1척 모두를 서해함대에 배속시키겠습니다. 물론 국군 해군본부의 심의를 거쳐야 되지만. 그리고 초계기 다수와 함께 209급 잠수함 4척을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제주도 방어전이 끝난 후라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입니다.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최초의 중형 항공모함 이순신함이 현재 무기장착중입니다.앞으로 한달 이내에는 옥포 조선소에서 진수될 예정입니다.  물론 작업진척을 더 빨리 해야겠죠."

  심 중장은 이순신함을 쓸 기회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부정적이었다.결국 한국형구축함들로 88함대를 구성하여 항모를 호위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이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은 원양해군으로 진출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침공을 막아내더라도…

  "고맙소. 심 동지!"

  박 정석 상장이 그동안 꺼려왔던  한국군 장성들에 대한 동지라는 호칭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제 합심해서 적을 몰아내고 나면 통일의 길은 더 빨라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나서의 일이었다. 참모들 누구나 중국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으나 이때만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1999. 11. 17  11:30  제주도 남제주군, 92연대 본부

  "백록담이 떨어졌습니다!  현재 1대대 3중대가 적 공정부대와 치열한 전투중이라는 보곱니다."

  "2대대가 제주항에서 후퇴했습니다.  제주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92연대의 연대장인 노 영기 대령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전황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주항의 중국 해병대 상륙과 한라산정의 공수부대의 강하로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백록담의 레이더 기지는 이미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서귀포시의 원래 기지에서 한라산 국립공원 내의 흙붉은오름(1391미터)으로 이동 중이던 대공미사일 포대와 지대함 미사일 발사기들마저 중국 공수부대에게 파괴당했다.  이제 적의 후속 공습과 상륙에 대한 방비책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급히 예비군을 소집하여 방어에 나섰으나 수적 열세보다는 장비와 훈련의 열세가 더 컸다.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예비군들은 주로 방위출신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중화기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 작전에 더욱 애를 먹어야했다. 92연대에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었고, 대전차병기는 더더욱 없었다. 6.25때 북한의 전차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국군처럼 105밀리 곡사포로 중국의 경전차와 맞서야 했다.

  11. 17  11:35  제주, 민오름

  제주시를 내려보는 민오름(251 미터)에 포대를 긴급배치한 92연대 소속 포병중대의 포대장 박 일우 대위는 망원경으로 북제주항을 둘러보았다. 제주시가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제주항의 전투가 사그러들자 중국군들은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상륙작업을 하고 있었다.  2 척의 유칸급 전차양륙함에서 62식과 63식 경전차들이 쏟아지고 있었다.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중국에는 63식 수륙양용 경전차가 1200대, 62식 경전차가 800대나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대만 상륙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만과 비슷한 섬인 제주도 공격에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박 대위는 적 상륙함대보다는 상륙부대를 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상륙한 중국 전차들이 제주시를 평정한 후 사방으로 갈라져 진격하였다. 박 대위가 망원경으로 보니 50여대의 전차가 제주 종합경기장 앞을 지나 연동의 신시가지쪽으로 가고 있었다.  전차의 기다란 행렬 뒤로는 73밀리 활강포를 갖춘 WZ-501 보병전투차와  YW-534 APC 수십대가 따랐다. 포대가 있는 민오름에서 사격하기 좋게 옆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이었다. 거리는 약 700 미터.

  포대장 박 대위의 지휘하에 4문의 105 밀리 곡사포가 일제 사격을 했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포병들과는 달리 이들은 곡사포에 의한 대전차 직사사격 훈련이 부족하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중국제 경전차들 사이의 맨땅에만 죽어라고 쏘아대고 있었다.  자기들을 공격하는 포병의 위치를 파악하자 중국군 전차들이 횡대로 넓게 산개하여 민오름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포병대원들이 당황했다.1950년대에 개발된 63식 경전차와 T-59전차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한 62식 경전차들이 전차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제주도 병사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리드를 정하고 쏴라. 전차나 군함이나 원리는 같아!"

  박 대위가 부하들을 다그쳤으나 좌표를 입력받아 사격하는 곡사와 조준기를 보며 사격하는 직사는 질적으로 달랐다. 박 대위가 직접 사격을 했다.  첫 탄은 중국 전차 위로 빗나갔으나  두번째 사격에서 신중하게 중국 전차를 조준기의 하단 위로 맞춰 쏘았다.차체 앞부분이 납작한 63식 경전차의 포탑에 포탄이 명중하자  이 작은 전차는 화염을 뿜어대며 폭발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수십대의 전차와 보병전투차 및 APC들이 방어진지가 있는 민오름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포병대와 함께 이동해온 현역 1개 소대와 예비군 1개 중대,그리고 제 주시에서 도망쳐온 소수의 패잔병들로 구성된 한국군은  중국군 전차들의 치열한 포격을 몸으로만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전차 무기가 없는 것이다. 한국군에 대전차무기가 빈약한 것을 확인한 중국군 보병전투차와 APC의 보병들은 하차도 하지 않은 채 몰려왔다.

  105 밀리 곡사포의 직사에 익숙해진  포병들이 전차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경장갑의 소형전차들은 포탄에 맞았다하면 파괴되었다.  중국 전차들이 반격을 시작하여  일제사격하자 1 문의 곡사포가 파괴되고 다른 곡사포 진지가 붕괴되었다. 포병들이 돌무더기 위에 쓰러졌다.  거리는 점점 좁혀들어 서로간의 거리가 약 200미터가 되었다.

  한국군 병사 중의 한명이 M-203 유탄발사기를 갖춘 K-2 자동소총으로 중국전차를 조준했다.  설마 장갑차가 아닌 전차에 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냥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심정에서  HEDP탄을 장전하고 쏘았는데, 전차에 명중하더니 의외로 전차가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해 버렸다. 다른 병사들도 따라서 유탄을 쏘기 시작했다.  중국군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잇달아 파괴되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군 보병들이 보병전투차와 APC에서 하차하여  한국군 진지에 사격을 가했다. 피아간의 거리는 10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사격 개시!"

  현역 소대장이 명령하자  한국군과 예비군들이 정신을 차리고 중국군 해병대를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향해, 그것도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의 보병은 좋은 표적이 되었다. 견디다 못한 중국 전차들이 연막탄을 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도 따라서 후퇴했다. 들판엔 17대의 전차와 APC가 불타고 있었다.

  "휴, 겨우 물리쳤군… 각 포대 보고하라!"

  포대장인 박 대위가 외치며 포가 있던 자리들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한 포대가 있던 자리는 포신만 덩그라니 놓여있었고,  다른 곳을 보니 포는 온전한데 포병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있었다. 예비군들이 부상당한 부하들을 민오름 뒤쪽 계곡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박 대위가 치를 떨고 있는데 소대장과 예비군 중대장이 왔다.

  "보병은 절반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예비군들의 피해가 큽니다."

  소대장이 박 대위에게 보고하자 나이든 예비군 중대장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현역과는 달리 예비군의 경우, 전사자만큼 전쟁미망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예비군을 동원하는 경우 피해가 막대한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병력이 부족한 판에 예비군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라동(吾羅洞)에 병원이 있습니다. 부상병들을 옮기지요."

  "견인트럭으로 옮기시오. 이제 포도 하나밖에 안남았으니 트럭 세 대를 다 써도 좋습니다."

  예비군 중대장의 건의에 박 대위가 트럭의 사용을 허가했다.  한번의 전투에서 전사 107명, 중상 54명의 피해를 입었다. 남아있는 병력은 약 100명 남짓했다. 박 대위가 16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는 3대의 트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앞을 보니 중국 전차들이 다시 공격할 기세로 전진해왔다. 예비군들을 포대에 충원하여 포 2문을 준비시키며 박 대위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멀어져가는 트럭 행렬을 보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그 트럭을 탔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리라는 생각을 한 순간 트럭들이 갑자기 폭발했다.

  "뭐야! 중상자들이 탄 트럭이!"

  국군과 예비군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중국군 전차들이 포격을 시작해서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일어선 그들은 몸을 숨기지도 않았다. 박 대위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저들은 부상병들이 아닌가. 도대체 왜, 누가!"

  박 대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살인마들을 발견한 것이다.그들은 중국 공수부대원들로서 대공 미사일 기지가 있던 어승생 고지(1169 미터)와 노루생이(611 미터) 및 거문오름(438 미터)을 점령하고 제주시 외곽도로인 16번 도로와 한라산 국립공원 아래 아라동(我羅洞)에서  제주시로 통하는 11번 도로의 교차점을 점령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한국군 트럭을 발견하고 공격한 것이다. 이들은 트럭에 탄 병력이 원래 중상자라는 것을 몰랐으나 트럭이 파괴된 후 확인사살을 위해 도로로 나온 것이다.

  "포 돌려! 저것들을 쏴라!"

  박 대위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소대장과 예비군 중대장이 말렸으나 그가 권총을 허공에 쏘아대며 부하들이 포구를 돌리게 했다. 공수부대원들은 도로에 널부러져 있는 한국군과 예비군 중상자들을 하나씩 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시체가 된 그들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이들은 민오름에 국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거리가 멀고, 중국군 전차들이 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설마 민오름의 국군이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사격!"

  105 밀리 포 2문이 동시에 불을 뿜고 이에 M-60 기관총 두 정이 가세했다.  약 900 미터의 거리에서 국군들을 깔보듯 시체들에 총질을 하던 중국군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중국군들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몇 발을 더 쏘게한 박 대위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듯 씩씩거렸다.

  "거리 500까지 접근했습니다."

  소대장이 포대장의 각성을 촉구했다.  박 대위가 포를 원위치에 배치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서둘러 임시 참호로 뛰어가 전방을 살폈다. 소 방목장이었던 벌판이 연막탄으로 뿌옇게 되어 보이지 않았다.  기관총을 비롯한 중화기들이 사격을 시작하고 소총은 사정거리 때문에 아직 대기중이었다.

  전차의 굉음 사이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박 대위가 연막탄의 연기사이로 하늘을 보자 앞부분이 강아지의 코처럼 새까맣고 뾰족한 헬기들이 보였다.

  "헬기다! 중국 공격헬기야!"

  "우린 대공무기가 없습니다!"

  "유탄발사기로라도 쏴! 접근을 막아!"

  포대장이 외치는 소리는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돌담 위로 헬기에서 발사한 2A42 30밀리 기관포의 파편이 튀었다. 현역들이 머리 위의 헬기에 소총을 연사했으나 중무장한 러시아제 Mi-28 하보크헬기에는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국군과 예비군들이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두 대밖에 남지않은 포는 헬기에서 발사한 9M-114 대전차미사일(나토명 AT-6스파이럴)에 부서졌다.

  "기관총은 뭐해?"

  박 대위가 기관총 진지로 뛰어가서 보니 병사들은 머리가 으깨어진채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총열이 땅바닥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두 병사는 총열교환 중에 공격당한 것같았다.  기존의 캘리버 50 중기관총이 총열 교환하는데 드는 시간이 47초임에 반해 한국산인 K-6는 신속총열교환식이어서 소요시간은 5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병사들은 그 5초 사이에 당한 것이다.박 대위가 새로운 총열을 부착하고 K-6 중기관총을 헬기를 향해 돌렸다. 바로 옆의 10미터 상공에 있는 헬기에 죽어라고 쏘아댔다. 대부분의 탄알은 막강한 헬기의 장갑에 튕겨져 나갔지만  몇 발이 테일 로터에 박혔다. 7톤짜리 대형헬기가 빙빙 돌며 땅 위에 주저앉았다.

  박 대위가 총구를 다른 헬기로 돌리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전차였다! 중국의 소형 62식 경전차가 돌담을 무너뜨리고 넘어왔다. 박 대위는 즉시 기관포를 전차를 향해 쏘았다. 총알이 장갑에 맞고 사방으로 튀었다. 갑자기 전차가 폭발했다. 전차의 5미터 앞에서 쏴대던 박 대위가 멍하니 서있는데 누군가 그를 끌고 참호로 뛰었다.  박 대위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아마 고씨나 부씨, 아니면 양씨가 틀림없는 이 제주도 출신 예비군중대장은 온몸에 치열한 전투를 치른 자국이 역력했다. 옷은 찢겨지고 피로 얼룩졌다.

  "방금 그것이 마지막 LAW입니다. 우린 패했습니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 한라산으로 들어갑시다."

  박 대위가 끄덕거렸다. 전시교범대로 유격전을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었다.전차에 대고 중기관총을 쏘아댄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이나 남았습니까?"

  "이동할 수 있는 병력은 현역 14명과 예비군 20명 정도입니다.소대장도 전사했습니다. 지금은 좀 더 줄었겠죠."

  박 대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박 대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갑시다. 중대장님."

  "예. 가죠. 박 대위님!"

  예비군중대장이 참호에서 일어나다 말고 주저앉았다. 박 대위의 상체가 보이지 않았다. 돌담을 넘어온 중국전차가 포를 쏘았는데 때마침 일어선 박 대위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다.  예비군중대장이 토하기 시작했다.

  1999. 11. 17  13:30  서울, 서초동

  "이거 살벌하군요. 전쟁이라…"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 위치한 종합광고대행사 아름기획의 AE인 변 승찬 대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작된 광고제작회의에서 일손을 놓고 있는 제작팀들과 한중간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들의 귀에 광고의 임팩트(impact)니 타깃 오디언스(target audience)니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을 것이 뻔해서, 변 대리는 일단 제작팀은 모았지만 제작회의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팀원들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 모두들 망연자실해 있었다.

  변 대리는 출근 전에 TV뉴스를 보고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다.  밤에 폭음이 울리고 총성 비슷한 것이 울려 잠을 깼지만 어디서 가스가 폭발하거나 교통사고가 난 줄 알고 다시 잤다.  출근하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오는데 한남대교가 날아가고, 다른 한강다리 몇 개도 무너져 나머지 다리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게다가 중무장한 계엄군에 의한 검문검색도 심해서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근할 수 있었다.

  "변 대리는 일반예비군이지?"

  친하게 지내는 그래픽 디자이너 황 부장이 묻자 변 대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아직 동원예비군이었다.  평상시에는 예비군 훈련가서 바쁜 회사업무를 잊고 며칠 푹 쉬는 것은 좋았지만, 이제 그는 언제 소집되어 전선으로 달려가야할 지 모르는 신세였다.

  "동원이야? 이 카피 큰일났네."

  PD인 강 차장이 카피라이터 이 진을 보고 웃었다. 이 진의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강 차장님, 그러지 마요. 장난이 아니라구요.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면…쩝."

  변 대리가 심각하게 이야기하자 다른 사람들도 한숨을 쉬었다.도대체 중국이라는 큰 나라와 전쟁을 해서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물론 한반도 주변 강국 어느 나라와 싸워서 유리한 나라가 있을까만…  그가 이 진을 보니 그녀는 걱정이 태산같은 얼굴이었다.언제 전선으로 갈 지 모를 자신보다 더 걱정하는 것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변 대리를 보자 그가 외면했다.

  "회의 시작하시죠. 쇼는 계속되야 한다는데… "

  ‘The show must go on.’을 외치는 변 대리의 주재로 제작회의가 시작되었다. 직급은 낮더라도 그의 직무는 AE(광고기획)였다.광고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며 광고의 제작과 매체집행은 그의 책임하에 이루어진다. 오늘 제작회의건은 하늘식품의 식빵 신제품의 TV-CF와 Radio-CM,신문과 잡지 등 4대매체 동시 런칭광고(신제품 출시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집중광고)였다.마케터(MKTer)인 선우 차장이 소비자조사를 바탕으로 마케팅계획을 설명하고 있을 때, 변 대리가 맡은 또다른 광고주인 예삐화 장품의 박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즉시 TV광고를 전면중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변 대리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휴대용전화기에 소리쳤다. 팀원들이 말도 못하고 변대리의 얼굴만 쳐다봤다.

  "아니, 기껏 정규물과 임시물 SA급 시간대(시청율 높은 시간대)를 잡아줬는데 두 달도 안하고 중지를 해요? 안됩니다. 광고공사에서 안받아 준다고요."

  변 대리의 말에도 박 과장은 막무가내였다.회장이 해외로 도피했는데 누가 광고료를 결제해주냐는 소리였다. 변 대리가 심각해졌다.  판매를 광고에 주로 의존하는 화장품회사가 광고를 중지한다면  다른 광고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대행사의 종말입니다…"

  변 대리가 휴대용전화기를 끄며 팀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여차하면 회사 때려치우고 사무실 차릴 궁리만 하는 아줌마인 CD(Creative Director) 황 부장, 회사 최고의 노총각인 PD 강 차장, 멋쟁이 마케터(Marketing Planner) 선우 차장, 본업보다는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는 GD(Graphic Designer) 최 대리, CW(Copywriter) 이 진,  Audio PD 박 승렬 등 9명의 회의 참가자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산업은 국가위기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전쟁이 길어진다면 광고대행사는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제작팀원들 사이에 퍼졌다.더우기 전쟁에 패해 중국에 점령당한다면… 변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AE(광고기획)는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은 편이다.

  "잠시만요… 보고 좀 하고 오죠."

  평시에는 애국자연 하며 설치던 사람들이  변란시에는 꼬리를 감추는 일은 흔하다. 6.25직전에 북침통일을 외치던 자들이나 조선시대의 대부분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1999년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도망가기 바빴다.정오 뉴스시간에 김포공항의 상황을 방영했는데 아비규환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가 어찌되든 자신들과는 상관도 없다는 모습들이었다.결국 잃을 것도 별로 없는 민초들만 전쟁터에 끌려갈 것이다.

  국장에게 보고한 변 대리는 전무실에 가보았으나 전무는 안보이고 국장, 본부장급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부장 중의 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전무의 회전의자에 눕다시피 하고 앉아있었다. 아무리 전무 본인이 없다지만 너무한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변 대리 왔나? 자네 광고주도 광고 내려달라는 소리지?"

  매체국장의 한마디에 변 대리가 맥이 풀렸다.  광고중지 요청은 그의 광고주인 예삐화장품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광고주들도 기존에 집행되는 광고를 중지시키기 바빴다.

  "전무님은 안계십니까?"

  "전무님은 일본으로 튀고 사장님은 미국으로 튀었지. 우린 어디로 튈까? 제주도가 점령됐다는데 거기로 도망갈 수도 없고… 하하"

  전무실을 나서는 변 대리에게 집에서 전화가 왔다.어머니가 걱정스런 말투로 소집영장이 왔다고 전했다. 소집일은 오늘 오후였다. 바로 집으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고 상관인 기획부장에게 업무인계를 한 다음, 그와 함께 회의실로 돌아왔다.

  "저는 당분간 출근을 못합니다. 집에 소집영장이 와서…  팩스로 휴직계를 제출하겠습니다. 제 업무는 부장님이 인수하셨습니다.일도 없겠지만… 제가 없는 동안 건강히 잘 계시기 바랍니다."

  놀란 팀원들이 몸조심하라며 변 대리와 악수를 했다.  그가 사무실을 나설 때 이 진이 배웅해주었다.그녀가 울락말락 하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말고… 서울이 폭격당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요."

  자신을 먼저 걱정해주는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진은 그 자리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는 그녀를 달래고 차에 올라탔다.그로서는 마지막으로 운전하게 될지도 모를 빨간색 지프(Jeep) 랭글리의 시동을 켰다.

  갑자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변 대리가 즉시 라디오를 키니 민방위본부에서 알리는 소리가 났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국민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14시 15분 현재 공습경보! 이 상황은 훈련이 아닙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가까운 방공호나 대피소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상황입니다. 현재 서해 상공에 중국 전투기로 보이는 다수의 항공기가 접근 중입니다…"

  1999. 11. 17  14:20  인천 서쪽, 서해 상공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수원의 전투비행단에서 즉각 F-16전투기 1개 대대와 F-5 1개 대대가 서해 상공으로 출격했다. 저공으로 목표상공에 도달하자 적은 1개 연대의 F/A-18 전폭기라고 조기경보기가 알려왔다. 적편대와의 거리는 아직 100km 정도 남았다.

  "F/A-18… 적은 전투기인지 폭격기인지 지금 상태에서는 모른다. 아마 절반은 호위, 절반은 폭격 임무를 맡았을 것이다. 아직은 접근한다. 전파관제를 지속하라."

  편대장의 명령이 김 종구 중위의 헬멧을 통해 전해졌다.그는 생전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그는 파일럿이 멋있게 보여서 공군조종사가 되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의 집에서 가까운 수원비행장에 배치되자 그의 천성인 끼를 발휘하여 오렌지족이 되었다.  토요일에 외박을 나오면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몰고 강남의 넓은 도로를 질주했다. 그를 따르는 여자도 많았다. 상대에 따라 돈 많은 대학원생이나 공군조종사로 신분을 바꿔가며 도시의 사냥을 했다.

  사관학교 시절 시작한 컴퓨터 통신의 볼링 동호회에서는 시삽을 맡고 있었다. 음흉한 그는 여자가 가장 많은 볼링동호회에서 잘난 용모와 세련된 매너로 여자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시삽이 되었다.  동호회에서도 그의 끼가 발휘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그의 아이디는 환경을 뜻하는 envir였다.

  조기경보기로부터 목표에 대한 데이터가 입력되며 스패로우가 발사대 기상태가 되었다. 김 중위는 적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F/A-18의 최대행 동반경은 740km에 불과하다. 이런 항공기로 서울을 폭격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규모 적의 지대지미사일 발견! 목표 수정, 미사일을 요격하라!"

  조기경보기에서 관제관이 소리쳤다.  수정된 데이터가 입력되자 관제관의 명령에 따라 전투기들이 일제히 미사일을 발사했다.  서울 상공의 수호를 책임진 관제관으로서는  당연히 지대지미사일의 공격을 무시 못하겠지만 한국공군의 F-16 편대는 상대적으로 고속인 F/A-18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F/A-18이 중거리 대공무기가 없어진 F-16 편대에 스패로우를 날렸다. 1기당 2기의 미사일이 발사되자 한국 공군기들이 일제히 레이더를 키고 채프를 뿌리며 급기동으로 미사일을 회피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F-16기들을 무시하고 후속하는 F-5 편대를 향해 날고 있었다.  F-5 편대는 아직 스패로우가 남아있었으나 F-16이 목표를 가려 미사일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미사일의 접근을 모르고 있다가 F-16이 회피하여 빈 하늘에서 미사일이 날아오자 F-5 편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번의 공격에 11기의 F-5가 추락했다.

  F/A-18 전투기들이 편대가 흩어진 F-16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F/A-18은 2기 1조가 되어 F-16 전투기 한 대에 미사일 4발씩을 발사하여 이들이 피할 공간을 주지 않았다. 곧이어 긴급연락을 받고 온 F-5 전투기들이 F-16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F-5들은 성능에 비해 최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F-16들이 위기를 넘기자 정신을 차려 F/A-18들에 역습을 가했다.

  김 종구 중위는 사이드와인더로 한 대,기관포로 한 대를 격추하고 좌측으로 급선회하며 추격하는 적기의 공격을 피했다. 급강하하여 적기를 따돌리고 오히려 다른 적기의 꼬리를 잡았다. 김 중위가 기관포를 쏘았다. 적개심보다는 공포 때문에 적기가 산산조각이 되도록  계속 발사했다.

  성능 뿐만 아니라 숫적으로도 우위에 서있는 중국 전투기들이 의외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국공군은 애프터 버너까지 가동하며 급속히 전장을 이탈하여 서쪽으로 날아가는 적기들을 쫓지도 못했다.  기지로 돌아가는 중에 그들은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서울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F/A-18의 서해상공 출현은 지대지미사일 공격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김 중위는 당분간 외박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강남의 오피스텔 주차장에 세워둔 페라리가 썩고 있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의 침대도…

  1999. 11. 17  18:00  평안북도 정주

  중국군 전차부대의 선발대는 어느덧 정주까지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이 지나가자 구성시 인근에 주둔하던 인민군 제 16사단이 통일참모본부의 명령을 받들어 황급히 후퇴하고 있었는데, 묘하게도 사단병력은 중국군 전차들을 뒤따르는 형국이 되었다. 멀리 보이는 중국제 T-85 II형 전차는 인민군 전차들과 구별되지 않아서 인민군들은 이들을 후퇴하는 인민군 전차대로 착각했다.

  인민군 16사단의 상공을 지나던 중국군 정찰기는 이 부대가 중국군인 줄 알고 병단사령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인민군도 이 미그-23 유형의 전투기를 후퇴를 엄호하는 인민군 전투기로 잘못 알았다.  어쨋든 인민군 16사단은 적의 공격을 받지않고 정주 남쪽의 운전(평북 남단의 서해안 지역)까지 올 수 있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교도대와 노농적위대는 안주지역으로 먼저 후퇴했으나, 피난민들을 먼저 보내느라 길이 막히고 장비가 많은 이들의 후퇴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앞서 진행하는 전차부대가 청천강의 지류중 하나인  대령강의 교각을 지날 무렵  멋도 모르고 뒤따르던  사단사령부는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선두에서 진행하던 연대의 전령으로부터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무시기? 남반부 아새끼래 전차대를 공격해?"

  "예, 대전차무기 종류가 남반부 거이 틀림없습네다."

  "이~~것들이, 포병은 즉시 전개하라~이…"

  인민군 16사단의 사단장인 백 계림 소장은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한국전쟁에서 잃은 전쟁 2세대로서, 한국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전쟁이 북한을 침공하기 위한 한국군의 조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던 차에 한국군이 전차대를 공격한다는 소식에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했다.

  인민군 16사단의 포병대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포격을 위해 횡으로 전개하고 사격준비를 하는 동안, 선두의 연대병력은 전차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차량에서 하차하여 전차대가 엄폐하고 있는 강둑으로 뛰어갔다. 사방에 포탄이 떨어져 파편이 튀었다.  강둑에 도착한 인민군 연대장은 망원경을 꺼내 강 건너를 보았다. 벌써 날은 어두워졌고 연막탄에 가려 시계는 흐렸으나  틀림없이 한국군들이 이쪽으로 포와 미사일을 발사하고있었다.

  "국방군 12사단이다!"

  연대장은 국군 제12사단이 영변 북쪽인 평북 운산에 주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역시 북한지역에 주둔한 국군이 뭔가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다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전차부대와의 합동작전을 위해 옆에서 포를 쏘고 있는 전차의 조종석쪽 해치를 권총으로 두둘겼다.  연대장도 못본 신형전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해치가 열리고  전차원용 헬멧을 쓴 운전병이 고개를 내밀었다.

  "동무는 오데 소속…"

  말을 하던 연대장이 깜짝 놀랐다. 섬광에 비친 그 운전병의 계급장에 붙은 것은 틀림없는 중국군의 휘장이었다. 전차병도 깜짝 놀라 해치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연대장의 권총이 빨랐다.

  "수류탄 까 집어 넣라우! 중국군이야!"

  연대장이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하급전사 한명이 방망이 수류탄을 전차 해치 안으로 밀어넣고 몸을 숙였다.잠시 후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나며 전차가 화기에 휩싸였다. 연대장을 따라온 통신병이 이 사실을 즉시 사단장과 연대소속의 대대에 알렸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단장은 통일참모본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령강의 다리를 지키는 12사단으로 부터의 보고로는 전방에 중국 전차들이 나타나서 전투중이라는 내용이고, 16사단은 남방에 아군전차대를 국군이 공격하고 있다고 하니 둘중에 하나는 잘못된 정보라는 뜻이었다.  선두의 연대장으로부터 급전이 들어왔다. 중국전차들과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통일참모본부는 즉시 12사단을 불러 중국전차대와 같이 있는 보병들은 인민군이니 보병에 대한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민군 16사단장이 놀라서 지휘차를 타고 강둑쪽으로 내달렸다.

  사단장이 본 것은 혼란의 극치였으며,  결과는 오해로 비롯된 파멸로 나타났다. 전차대 사이사이에서 남쪽을 향해 사격중이던 인민군 보병들이 우군으로 알았던 전차대와 전투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대전차무기가 빈약한 인민군들은 일방적으로 살육당했다.중국전차들이 인민군들을 깔아뭉갰다. 사격할 필요도 없었다. RPG로 몇 대의 중국 전차를 파괴하며 간신히 버티던 인민군들이 결국 강둑을 넘어 강으로 뛰어들었다.

  16사단에 소속된 대전차병기들이 모조리 전투지역으로 출동했다. 1개 전차대대와 대전차무기를 탑재한 장갑차,그리고 사단소속 공격헬기들이 투입되었다.  중국군 전차들은 1개 연대로 파악되었으나 병력의 우열을 따질 시간이 없었다. 사단의 전 화력을 투입하여 중국 전차부대를 대령강 상류쪽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인민군 선두의 연대병력과 분리되자 인민군과 국군의 포병이 사격을 개시했다.

  중국의 전폭기편대와 인민군의 공격기편대가  동시에 전장 상공에 도달했다. 양쪽 모두 지상목표보다 공중의 위협에 대처해야 했다. 호위기들끼리 싸우고 공격기들도 공중전에 가세했다. 국군의 지대공미사일 지원을 받은 인민군 항공기들이 중국군 비행기들을 몰아내고 나서 중국전차들을 공격했다.여기에 국군과 인민군의 포격, 그리고 대전차미사일이 가세해서 중국 전차연대를 괴멸시켰다.

  국군과 인민군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 선발대의 전멸을 확인한 중국 장갑집단군의 포병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대령강 양안의 모래밭에 포연이 자욱했다.  인민군 16사단은 서둘러 강을 건너 국군의 방어진에 다달았다.

  1999. 11. 17  19:00  평안남도 신안주, 청천강 다리

  통일참모본부는 국군과 인민군들에게 청천강 이남지역으로  후퇴하도록 명령했다. 박천까지 중국군에게 점령당해서 기동력과 화력이 우세한 중국 전차부대에 대한 방어선을 청천강으로 정하고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고 민간인도 소개했다.

  도로를 따라 피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이 있는 부녀자들이 중심이 된 피난민들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동원예비군격인 교도대나 민방위와 흡사하나 이보다 전투력이 있는 조직인 노농적위대에 입대하여 인민군 현역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포격과 중국군 전투기들에 의한 폭격이 계속되었다.도로 위에서 서둘러 남으로 향하던 민간인 차량들이 대량으로 파괴되었다.  사방에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도로 밖으로 뛰었다.도로는 붉은 피로 포장이 되었고 순식간에 불타는 승용차와 시체로 통행불능이 되었다.

  인민군 16사단의 사단장인 백 소장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중국군의 포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후퇴가 만만치 않았다.  국군 12사단이 먼저 후퇴를 하고 인민군 16사단이 뒤를 따르는데  국군은 피난민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무 천천히 후퇴했다. 백 소장이 지휘차로 먼저 달려가 도로관제원들을 닥달했다. 트럭으로 후퇴하던 국군들이 구경난 듯 보고 있었다. 백 소장이 화가 나서 권총을 빼들고 도로관제를 맡은 정치보위부 소속의 하급군관 한명을 즉결처분했다.  놀란 도로관제 담당 군관이 민간인들을 도로에서 벗어나게 했다.민간인들이 총을 들이댄 이들의 서슬에 놀라 길 옆에 차량을 버리고 걸어갔다. 남쪽에 신안주시의 불빛이 보였다.

  박천을 뺏긴 통일한국군은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넘어갔다.  이미 도착하여 방어진을 구축중인 후방부대와  정주 등에서 후퇴한 부대, 그리고 민간인 피난민들로 안주는 혼잡했다.중국은 공격전에 사전 정지라도 하려는 듯 전 포병을 동원하여 안주와 신안주일대에 포탄을 퍼부어댔는데 피난이 늦은 민간인들의  머리 위에 무차별로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제 저녁에야 도착한 서부전선 사령관격인 전 상현 상장은 부대배치를 마치고 참모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웠다. 동쪽은 묘향산맥, 서쪽은 청천강으로 삼은 방어선은 자신이 보기에도 믿음직해 보였다.

  1999. 11. 18  17:00  평안남도 안주 용연리, 안주지구 방어사령부

  "엄청나군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진다는게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쨋든 잘들 오셨소."

  안주지구 방위 사령관으로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인민군의 유명한 전 상현 서부전선 사령관이 겸임하고 그 휘하에는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과 제 4군단, 제 2군단, 제 7군단, 그리고 북한지역에 배치되었던 국군 제 12사단이 배속되었다. 지금은 각 부대의 배치상황 보고와 방어작전 계획 전달을 위해 각 예하부대의 지휘관들이 사령부가 있는 안주 시가 뒤의 용연리(龍淵里)에 모인 것이다.

  용연리는 안주의 남동쪽 산인 167고지 대조봉을 북쪽에 두고 있는 자그마한 부락이다.  중국측의 포격이 워낙 치열해 교통이 발달한 안주나 신안주에 사령부를 설치할 수 없어 이 곳에 설치했는데, 인근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대조봉에 레이더기지와 송신기지를 설치할 수 있어서 유리하기도 했다.

  "동지들도 잘 알다시피 이곳이 뚫리면 막강한 중국군 장갑군단들때문에 평양까지 바로 밀리게 되오.  안주 뒤에는 방어에 유리한 자연적 지형이 전혀 없는 평야로 이뤄져 적 기갑부대와의 싸움은 우리가 상당히 불리하게 된단 말이오.  우리 합심하여 안주를 지켜내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중국군을 상대로 오늘날 다시 한번 재현해봅세다."

  수나라 백만대군을 상대로 대승한 살수대첩, 그러나 현 상황은 적 보급선의 확장을 노려 적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이 일방적으로 패해 밀려온 상황이었다. 그러니 을지문덕 장군같은 사전준비나 작전은 일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일참모본부는 인민군 9사단과 국군 제 11기갑사단이 각개격파 당하고 후방부대의 병력 이동이 느려지자 사실상 평안북도를 포기하고 청천강과 묘향산을 이은 선을 방어선으로 삼은 것이다.  정주(定州)와 박천(博川)에서 일부 있었던 저항은 사실은 청천강 방어선의 확고한 진지구축을 위한 시간벌기에 불과했다.

  "적 주공은 정보보고에 의하면 아무래도…"

  전 상장이 벽에 걸려진 대형지도를 지휘봉으로 지적하며 직접 설명했다. 북위 39도 40분에 걸쳐있는 청천강 주변지역의 2만 5천분의 1 지도였는데 현재 중국군의 병력과 위치가 상세히 기입되어 있었다.

  "신안주 바로 앞에 있는 원일리(元一里)가 될듯하오.  동쪽 백돌고개쪽과 서쪽 북일리(北一里) 앞에는 섬들이 있는데 사구와 개활지라 적이 엄청난 피해를 각오하지 않는 한 엄두를 못낼 것이오. 그리고 안주보다는 도로망이 발달해있는 신안주(新安州)를 점령하는 거이 적의 일차 목표인듯 싶소. 그리고, 원일리 앞 청천강의 다리 세 개는 이미 파괴되었소. 중국측이 우리군의 후퇴를 방해하기 위해 먼저 파괴한 것으로 보아 적은 충분한 가교부대가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오."

  그가 잠시 국군 12사단의 공병장교에게 눈을 돌려 질문을 던졌다. 중국군의 도하예상지점이 원일리라는 것은 모두가 수긍하여  반대가 없었다. 그 공병장교가 대답할 때까지는.

  "동무가 청천강 도하전을 감행한다면 전투중 가교를 설치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소?"

  그 공병장교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설명을 했다.

  "강폭은 원일리 앞이 77 미터이니 이 곳에 리본부교를 설치한다면 약 40분이 소요됩니다.아군의 화력과 공중지원을 충분히 받는다고 해도 가교 하나 건설하는데 숙련된 공병 1개 대대는 희생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의 공병책임자나 작전책임자라면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 상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젊은 국군 공병장교를 쳐다보았다. 인민군 작전참모들도 마찬가지로 건방지기까지한 국군의 장교를 응시하였다. 전 상장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젊은 공병장교에게 물었다.

  "만약 동무에게 중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있다면 어딜 선택하갔소?"

  공병장교가 즉시 대답을 했다.

  "여기 동쪽 용전(龍田)과 도회(都會) 사이의 강입니다.  가장 강폭이 좁고 남쪽이 산지라 수비측 입장에서는 방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곳은 기갑부대가 운신하기 어려운 곳이 아니오? 적은 중국 장갑집단군인데 어찌 그런 곳을 선택하겠소?  스스로의 기동성을 제한하고 싶은 기갑부대장이 어디 있단 말이오?"

  인민군 820기계화군단의 군단장인 인민군 중장이 힐난했다.그러나 국군의 공병장교인 김 대식 중령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이 지역을 도하하려면 공격측이나 방어측, 양자 모두 기동의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강폭이 워낙 좁아서 중(重) 강습교량(Heavy Assault Bridge)차량 하나면 충분합니다. 최근에 제작된 강습교량은 예전의 전차탑재교량(AVLB)과  달리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길이가 30미터가 넘어, 강폭이 25 미터인 이 지역에선 충분합니다. 설치시간도 5분이면 되니 간단합니다. 중강습교량은 70톤의 하중을 버틸 수 있으므로 적 전차들은 충분히 사격을 하며 도강할 수 있습니다."

  김 중령은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곰곰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숫자를 외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역인 모양이다.

  "그리고 북쪽의 사구로된 개활지로는 적 기갑부대가 산개하여 공격해올 수 있으며, 공격 전에는 이 언덕 뒤에 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어는 어떻습니까?  남쪽 지역은 산지라서 전차 부대나 포병을 배치하기 힘든 곳입니다. 배치할 수 있는 병력 수에도 제한이 있게 되죠. 그리고, 일단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면 여기 이 도로를 따라 진격, 안주를 배후에서 공격할 수 있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에 중국 해병사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 주십시요.  이들의 전차는 수륙양용입니다."

  김 중령은 자신의 전공을 넘는 문제에 너무 아는 척 하는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말, 다 해버리자는 식의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중국제 전차는 러시아제와 마찬가지로 슈노켈을 장비하고 있어서 수심 5미터 정도는 충분히 도하할 수 있습니다만,슈노켈 제거 후 정상 운행까지는 2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러나 수륙양용은 다릅니다. 수중 도하가 아닌 수상 도하이며 도하중 전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적의 규모로 보아 장갑집단군을 필두로한 작전기동군입니다.  종심방어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비부대의 확보가 필요합니다.  예비부대는 특히 전차부대로 이뤄져야합니다."

  김 중령의 설명에 모두가 수긍하는 눈치였으나  예비병력으로 돌릴만한 기갑병력이 부족했다. 작전기동군은 적의 종심방어선을 돌파하여 전략목표를 탈취하기 위해 신속한 기동력을 가진 기갑부대를 위주로 편성된 부대를 말한다.  이는 구 소련이 서유럽과 전쟁을 벌였을 때 전략의 기본개념인데 중국에서 이를 빌어와서 한반도에서 써보려는 것이다. 반박했던 중장이 재차 질문했다.

  "방위사령관이신 전 상장님이나 기갑부대의 장군인 본관이 다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예측했소. 그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지휘부도 기갑부대출신일 것이오. 공격전에 상당수가 포에 격파될 이런 개활지보다는 강둑이 있는 원일리 앞쪽이 낫다고 봅니다만,전차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기위해서 그들도 원일리를 택하지 않겠소?"

  "원일리의 북쪽 대안은 여북리(余北里)군요. 논으로 이뤄진 개활지입니다. 강둑이 있다고는 하지만, 포격관측은 높은 고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직접 사격에 대한 방어 외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즉,적 기갑부대는 도하 전에 2 km나 포격에 노출이 됩니다. 이런 포격에 남아날 기갑부대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방어측도 적의 포격에 상당한 피해를 보게되겠지만, 그래도 방어는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입니다.

  제가 중국 기갑부대의 지휘관은 아니지만 저라면 절대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병대대장이 아닌 공격측의 기갑부대장이라면 말씀입니다."

  "음…  그렇다면 적이 안주를 공격하려면 상당히 우회를 해야하는데 과연 기갑부대인 적이 산지쪽으로 우회를 할까?"

  전 상장이 젊은 김 중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이젠 폐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회의 바로 남쪽은 산이지만 도회에서 안주로 가는 길 옆의 산으로 표시된 등고선은 산이 아닙니다.  제가 올 때 보니 밭으로 개간이 됐더군요. 그리고 가장 높은 지역이어야 겨우 해발 87미터 고지일 뿐입니다. 그것도 완만한 능선으로 되어 있어서 전차대로서는 평지나 다름없는 지역입니다."

  "적에게 해병기갑사단이 있다면…"

  조용히 있던 12 사단장인 최 소장이 김 중령의 말을 이었다.

  "백돌고개쪽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는 최대 수심이 4 미터라고 되어있지만 지금이 갈수기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중국의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가교 등의 인공물 없이도  충분히 도하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현재 포병과 백돌고개쪽의 위치를 보면 포병의 포 사격 지원이 상당히 어렵겠습니다. 사령부가 있는 대조봉은 겨우 167고지밖에 안되지만, 우리 포병이 너무 가까이 배치되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당한 고각사격이 되겠군요."

  최 소장이 포병여단장을 보자 포병여단장이 끄덕거렸다.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사각(死角)이 생기게 됩니다. 분산 배치를 했기 때문에 사각은 상당히 줄였습니다만 집중포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급속사격도 힘들어집니다. 잘못하면 사령부에 오발할 수도 있습니다."

  기타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방어작전은 대폭 수정되었다.포병의 배치를 분산시켜서 백돌고개 앞쪽의 사각을 대폭 줄이고, 다른 부대의 대전차병기들을 상당수 12사단쪽으로 양도했다. 후방에서는 속속 대형 치누크 헬기를 통한 대전차무기의 보급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대전차병기의 부족은 없었다.  드디어 결정은 내려지게 되었다. 박 상장이 명령을 내렸다.

  "좋소. 주 방어진지는 도회로 하겠소. 전 포병대가 국군 12사단을 지원할 것이오. 포병여단장은 당장 관측장교를 도회에 파견하시오.  하지만 적의 주 공격목표는 결국 신안주이기 때문에 820 기계화는 원일리에 배치하겠소. 12사단에서 필요한 것은?"

  국국 제 12사단장인 최 선일 소장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자신으로서는 치욕이라고 느꼈다. 거의 산악부대였던 자신의 사단을 평지에 몰아넣은 육군본부가 저주스러웠다. 처음 자신의 부대가 북한으로 이동배치받을 때도 북한과의 상황이 안좋을 경우  쉽게 포기하기 위해 자신의 부대를 북한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었다.

  "저희 사단은 통일 전의 원래 주둔지가 강원도 산골이라 전차와 대전차병기가 부족합니다. 적의 주공이 기갑부대라면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부대로 방비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알겠소. 전차 1개 여단을 12사단에 배속하겠소."

  전 상장으로서도 국군 12사단의 장비와 규모를 익히 아는지라 호쾌히 부대를 떼어주었다.  남북이 서로의 지역에 자신의 군대를 교차 주둔시켰으나 유사시에 대비하여 그 주둔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파악하는 정보업무가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 적이 있었으며 전 상장도 북한 지역에 주둔하는 모든 국군부대의 화력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 소장도 걱정이 되었다.  인민군과의 최초의 합동작전인 것도 문제였으나 인민군의 구식 T-62 전차가 최신식 중국전차들과의 전투에서 제대로 전과를 올려줄지가 걱정이었다. 전차 1개 여단을 지원받았음에도 자신의 부대가 적의 주 공격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되었다. 최 소장과 국군 참모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11. 18 19:50, 신안주시 북쪽 2 km 원일리 방어진

  "옵니다. 수 백 대의 땅크입니다."

  "기래? 어디 보자우."

  하급전사를 제치고 초소장이 열영상장치를 통해 전방을 보니 과연 어둠을 헤치고 수 백 대의 중국제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군의 포격 때문에 우렁찬 전차 엔진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중국제 전차였다.

  "본부 나오라우. 여기는 올빼미 여덟. 중국 전차부대 발견. 위치는….. 223887, 수백대의 중국제 땅크! 포 사격 바란다."

  초소장인 인민군하사가 적의 무차별 포격에 머리를 숙이고 5만분의 1 지도의 좌표를 찾아 무선으로 본부에 보고했다.그러나 즉시 포격지원을 해줄 줄 알았던 본부에서는 엉뚱한 질문을 퍼부었다.

  "다시 한번 확인하라. 적 전차부대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하사는 화가 났다. 도대체 본부는 뭘 묻는 것인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땅크가 수 백 대다. 강 건너편 논에 깔린 거이 다 땅크다.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와서 보라우!"

  "알았다. 즉시 포격지원을 하겠다."

  같은 시각, 용연리 사령부

  "대규모의 적 전차부대가 원일리 건너 여북리에 나타나서 진군해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포격을 허가해 주십시요."

  참모의 보고에 전 상장은  딜레마에 빠졌다.  적의 주공이 과연 어느 쪽인가.낮의 회의에서는 국군의 젊은 공병대 장교의 말을 믿고 적의 주공이 도회가 될 것으로 예상하여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부대를 재배치했었다. 그러나 적은 역시 자신의 애초 예상대로 여북리에 나타난 것이다. 그 수백대의 적 전차가 과연 적의 주력인가,  적의 주공이라면 즉시 포격 등의 모든 수단방법으로 방어해야 하는데 만약 적의 조공일뿐이라면 포병대의 위치만 가르쳐주고 적의 주공에는 지원을 못하게되는 꼴이 되고말 것이다.

  "적의 주공인가?"

  "예, 원일리쪽의 모든 청음, 관측초소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수백대의 전차라고 합니다. 적의 전차가 전원 투입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적 포병대의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원일리 일대의 방어진지는 적의 포격으로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전 상장은 중국군의 지휘관이 성격이 급하고 인민군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이렇다면 자신의 처음 주장대로 원일리쪽의 방비를 중시해야 했다.너무 머리를 쓰다보니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포격을 개시하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도회의 전차여단은 어떻게 할까요?"

  전 상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결단을 내렸다.

  "현 위치에서 즉시 이동 가능하게 대기하도록 명령을 내려."

  "예!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그 참모가 명령전달을 위해 돌아가자 국군 항공관제장교가 보고를 했다.

  "현재 상공에는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은 일반적인 중국제 섬형 전투기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수입한 미그-29가 주력입니다. 아군이 상당히 밀리고 있지만  적 항공기의 지상공격은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기래야지. 잘 하고 있구만."

  항공관제 장교는 전 상장의 말에 상당히 섭섭했지만, 그래도 아군 전투기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싸워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상군은 직접 적의 폭격을 받기 전까지는  공군의 고마움은 모르는 법이었다.  관제장교가 레이더를 보니 아군 전투기들의 수가 많이 줄어있었다.

  레이더에서 또 한대의 F-5 전투기가 사라졌다. 비교적 대형의 러시아제 공대공미사일은 전투기를 철저히 파괴시켜 조종사가 탈출할 틈이 없을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미사일의 명중율이 높아진 현대에도 러시아는 적 전투기의 철저파괴를 신념으로 삼아 대형이며 소수의 미사일을 장착하는 것이 전통이었고 중국도 미사일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전술을 많이 베꼈다. 항공관제 장교가 보니 또 한 대의 미그-23 전투기가 없어졌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아군 항공대가 전멸할 것같아 걱정되었다.

  1999. 11. 18  20:00  원일리

  "대대장 동지, 아군의 포격이 시작됐습니다."

  "기럼 고개 팍 숙이고 있으라우."

  예광탄과 함께 인민군의 중포와 전차포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강 건너 여북리의 논에  화염이 솔구쳐 올랐다.  여기저기에 파괴된 전차가 나뒹굴었으나 중국 전차들은 무슨 일인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계속 몰려왔다.  대대장은 잠망경식 야시경으로 계속 접근해 오는 중국군들을 관찰하며 상급 부대에 무전기로 보고를 했다.

  일정 거리에 이르자 원일리 방어진의 대전차화기들도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중국의 포와 전차포, 인민군의 포와 대전차병기들의 포탄 세례의 교환은 하늘을 붉게 수놓았다. 중국군은 필사적으로 리본부교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인민군의 기관총 사격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방어진인 원일리에서는 도망치는 적을 향해 사격이 계속되었는데 한 군관이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적진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더니 경악을 했다. 위험한 상황이 물러가고, 후퇴하는 중국군 진열에 조명탄이 연이어 발사되자 이제야 적군을 제대로 본 것이다.

  "대대장 동지! 적 전차는 몇대 안됩니다. 대부분 장갑차입니다. 전차도 구식 T-72…"

  "메이 어드레? 기럼 적 땅크들은 다 어데로 갔나? 본부 부르라우!"

  같은 시각,  용연리 사령부

  "뭐야? 장갑차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아까는 전차 수백대라고 하지 않았나?"

  작전참모 한 사람이 수화기를 대고 호통을 쳤다. 참모의 통화 모습을 본 전 상장이 얼어붙었다. 아군 포병대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나자 원일리로 오던 중국군 부대가 주공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으니  앞으로의 전투는 힘들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갑자기 사령부 상공에 전폭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수많은 중국 공군 소속 비행기들이 인민군의 대공 감시망을 피해 저공으로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항공! 항공!"

  사령부 건물 밖에선 이제야 공습을 알리는 경보가 울려퍼졌다.지상의 각종 대공화기가 불을 뿜었으나 이미 늦었다. 사령부가 있는 대조봉 일대와 포병여단이 있는 남쪽의 장상리 일대가 불바다가 되었다. 계속 안주상공 남쪽에서 선회하던 국군과 인민군 전투기들이 맞서 싸웠으나 전투기 수에 있어서도 압도당해 이미 제공권은 상실했고,  중국 지상군의 대공미사일이 무서워 직접 아군상공에 도달하여 중국폭격기를 요격하지 못하자 인민군의 피해는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인민군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해가 지자마자 주둔지 전역에 기름통을 놓고 불을 질러 놓았다. 야간공습을 한 중국기들은 조종사들이 야간감시고글(NVG)을 착용해서 목표물을 탐지하고 있었는데, 이 기름통의 불들이 야간감시고글의 기능을 마비시켜버린 것이다.  중국기들은 할 수 없이 관성유도장치에 의한 폭격만을 감행하고 정밀유도 폭격은 포기했다. 게다가 인민군의 주둔지와 송신기의 위치가 달랐으므로, 사전에 선정된 제한된 목표만을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인민군의 포병만이 포 사격으로 인하여 어쩔수 없이 위치가 노출되어 중국 공격기들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아 분산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막심했다.

  "대규모 적 전차부대 발견! 위치는 도회리 전방입니다."

  통신병이 경악성을 토했다. 역시 적의 주력은 강폭이 짧은 도회리 쪽으로 공격해왔다. 전 상장은 당황했다. 지원할 병력도, 포병도 없는 것이었다.  모든 전선에서 적의 포화가 빗발치고 보병과 기갑부대에 의한 단속적인 공격이 있는 판에 얼마 안되는 예비병력을 도회리쪽으로만 투입할 수도 없었다.

  "포병대에 연락해봐! 피해상황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뛰어갔다와서 보고해!  그리고 남은 포가 있으면 당장 12 사단을 지원하라고 전해!"

  이미 인민군과 국군의 구별은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인민군과 국군을 명확히 나눠서 부르지 않았던가.

  "사령관 동지. 12사단장의 무선보고입니다."

  박 상장이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통신기를 들었다. 국군 제 12사단장인 최 선일 소장의 침울한 목소리가 폭발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내용은 뻔하지 않은가.

  "사단장, 사수하시오."

  전 상장은 이 한마디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그로서는 너무 무기력하게 패배를 자인하기는 싫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참을 수 없게 된 전 상장이 덧붙였다.

  "내레 바로 가갔소."

  전 상장은 아직도 중국의  폭격과 포격이 계속되는 와중에 자신의 장갑지휘차에 올라탔다. 운전병에게는 최고속도로 12사단 사령부로 갈 것을 명했다. 운전병이 야간고글을 쓴 채 달렸으나 곳곳에 섬광과 불길이 치솟자 야간고글을 벗은채 질주했다. 사방에 인민군들의 파괴된 전차와 불타는 장갑차들이 보였다.

   저 안에는 우리 젊은 인민군들의 시체가 있을 것이다!

  전 상장이 중국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 올랐다.수없이 많은 자신의 부하들이, 전우들이, 젊은이들이 죽고 있는 것이다. 미그-29 전투기가 차량 행렬을 향해 다가왔으나, 호위 BMP에서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자 전투기는 즉시 도망가 버렸다.  도회리에 다가갈수록 포성과 총성이 요란했다.

  1999. 11. 18  20:25  안주시 동쪽 도회리, 12사단 전방지휘소

  "단결!"

  경비병이 전 상장 일행을 보더니 받들어총 자세를 취했다.  인민군의 복장은 중국군과 비슷해 오인사격이 많아 초소 경비병들은 항상 주의를 다해야했다. 경비병이 지하벙커로 전 상장 일행을 안내했다.

  "상황은 어떻소?"

  최 선일 소장은 경례를 하는둥마는둥 하더니 계속 모니터들을 주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일제 사격!"

  사방에서 포성이 울려퍼졌다.  전 상장은 이 소리가 반지하벙커인 사단 전방지휘소에 적의 포탄이 맞은것이 아닌가 움찔했다. 전 상장이 궁금해서 모니터를 보니 파괴된 수십대의 전차가 화면 가득히 보였다. 도회리의 강 건너 용전리 서쪽의 논과 밭엔 수많은 중국제 전차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공중에선 인민군 전투기들이 공중전을 하느라 지상지원공격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전투기들의 공기를 찢는듯한 소리와 기관포 발사음이 지하 지휘호에까지 들려왔다. 전 상장의 호통을 들은 공군 관제관이 인민군과 한국군 전투기들을 접적 상공까지 유도해서  중국의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피해가 늘어났다.  중국의 구식 J계열의 공격기들은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적 전차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한고비를 넘겼는지 최 소장이 전 상장 일행을 전자상황판으로 안내했다.10여명의 소위와 중위들이 정찰대와 하급부대의 보고를 받아 적정을 표시하기 바빴다.

  "현재 적의 3차에 달한 공격을 분쇄했습니다.  특히 이 앞의 강에 가교를 건설하려는 기도가 2차에 걸쳐 있었습니다. 중국군은 아군에 대한 포격을 가하며 수륙양용전차로 먼저 밀고 왔습니다만 격퇴했습니다. 문제는 가교인데  중국군은 한번에 6개가 넘는 AVLB(미 육군의 가위식 중강습교량)를 설치하곤 합니다.계속 파괴해도 끝이 없습니다. 강폭이 짧고 수심이 깊은 곳은 폭이 20미터밖에 안되어  가교전차 하나만으로 다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 중령의 지적이 옳았습니다.  아까는 1개 대대의 적 전차가 도하해서 몰아내는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과연 중국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중국은 한국을 침공하기 전에 한국의 지리에 대한 소상한 사전조사가 있었다.  위성사진을 통한 분석이나 한국 국립지리원에 대한 첩보행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의 왜국첩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공작원들을 한국에 파견하여 지형지물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전략적으로 중요한 청천강과 대동강, 한강 등은 아주 상세한 지리조사가 있었다.

  12사단의 공병감인 김 중령은 상황판을 보며 시무룩해져 있었다.그의 얼굴은 이미 전세는 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진작 그의 말을 믿고 이 지역에 더 많은 증원을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판단이었다.

  "아군의 피해는 어떻소?"

  김 중령을 흘끗 보고나서 전 상장이 묻자 최 소장이 즉답했다.

  "적의 규모가 너무 큽니다.  우리 사단 앞에만 적 2개 집단군이 있지 않나 추산될 정도입니다.현재 파괴한 적 전차만 100대가 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차가 공격때마다 몰려오곤 합니다. 아군은 현재 병력 30%와 장비 50%의 손실을 보고있습니다.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병력 30%의 피해라면 1~2차 대전 유럽전선이라면 벌써 적에게 항복하거나 후퇴해야할 정도의 피해상황이었다.후퇴할 기회가 있을 때 후퇴한다고 해도 이는 지휘관의 무능을 탓할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전투의 중심지였다. 전멸을 하더라도 후퇴는 할 수 없었다.

  "지원을 하겠소.  하지만 전 지역에 걸쳐 적이 파상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전차부대의 지원은 어렵고 보병 1개 사단을 지원해 주겠소."

  "적 전차의 수는 엄청납니다. 전차부대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게다가 적 전차 주력의 차종이 뭔지 아십니까?  러시아제 T-90입니다."

  전 상장이 깜짝 놀랐다. T-90은 러시아가 1993년에 실전 배치한 최신형 전차였다.  레이저 경보장치와 적외선 재머가 장착되어 있어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방어가 강화되었고, 능동반응장갑은 APFSDS(철갑탄의 일종)나 HEAT탄(성형작약탄)의 피탄에도 끄떡없었다. 기타 많은 러시아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최신형의 전차였고 이를 방어할 무기나 전술은 서방 여러나라에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이런 상황에 중국이 집단군 규모의 T-90을 보유했다는 것은 통일한국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중국군에 T-90이… 그리고 어떻게…"

  전 상장이 깜짝 놀라 묻자  최 소장이 계속 명령을 내리는 중간에 두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먼저 기총으로 예광탄을 쏴서 능동반응장갑을 파괴하고, 저격병들이 적외선 재머를 쏘아 부숩니다.  그 후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적 전차 하나 파괴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병간의 협동이 있어야 됩니다. 자, 또 온다. 준비…"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온다는 부관의 경고에 최 소장이 상황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 소장은 중앙의 대형스크린보다는 좌측의 지상레이더를 신뢰하는 눈치였다.  전자전에 익숙치 못한 전 상장이 보기에도 수백대의 움직이는 차량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백돌고개가 뚫렸습니다!"

  지휘부를 따라온 통신병이 외쳤다. 백돌고개는 안주 시가와 도회리의 중간에 위치한 지점으로 청천강이 갑자기 넓어져 폭 2 km, 길이 6 km의 사구와 삼각주가 있는 지역의 남쪽 중심지이기도 하다.  백돌고개가 적에게 점령된다면, 중국은 도회리와 안주시의 연락로를 차단하고 인민군 사령부까지 넘볼 수 있는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쪽 적 병력은?"

  "아군 4군단이 맞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지금 예비병력까지 모조리 투입했는데도 막지 못했습니다.  약 1개군단의 기갑부대와 2개군단의 기계화혼성부대로 추정된답니다."

  인민군은 중국군의 주공으로 예상되는 원일리 일대에 820 기계화군단을 배치하고 좌측 낙만리(樂萬里) 지역에 2군단, 우측 안주시가와 백돌고개쪽에 4군단을 배치하고 가장 우측 도회에는 국군 제 12사단을 배치했었다. 그러나 중국군 기계화 부대는 도회리와 백돌고개쪽을 주공으로 잡은 것이고, 폭이 짧은 안주전선에 방어군의 몇배나 되는 병력을 배치한 것이다.

  "820기계화에서 1개 사단을 빼내 백돌고개로 돌려! 그리고 7군단에서 2개 사단은 즉시 이쪽으로 이동시키도록! 아니, 이동 대기!"

  전 상장은 당황했다. 패배는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얼마나 아군의 피해를 적게하느냐가  작전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전 상장은 이왕 이렇게 된바에 원일리의 820 기계화군단을 도하시켜 백돌고개로 공격해오는 중국군의 배후를 쳐버릴까 하다가 기계화군단의 큰 피해를 우려하여 후퇴하기로 작심했다.

  1999. 11. 18  20:35  백돌고개, 인민군 전초기지

  "전부 뚫렸습니다. 적 전차들은 우리가 있는 곳을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젠 장갑차와 보병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셀 수가 없이 많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만 대충 쏴도 다 맞겠습니다.근데 포격은 왜 안해주는겁니까?"

  인민군의 한 문철 중위가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이 전초기지는 인민군 4군단의 최일선에 있는 관측기지인데  중국군의 전진이 워낙 빨라 미처 후퇴하지도 못하고 아직까지 관측보고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중사가 소대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없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한 중위는 전방을 잠시 주시하더니 무전기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포격지원이 늦은데 대해 불만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적 보병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담에 봅시다, 사단장 동지!"

  한 중위와 그의 소대원들은 이제 결전을 위한 준비를 했다. 몰려오는 중국군을 향해 기관총과 드래곤 2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적외선 유선유도방식의 드래곤이 날 때마다 장갑이 얇은 보병전투차 한대씩을 날려버렸다. 보병전투차에서 보병들이 급히 하차했다.이제 보병들은 인민군이 숨어있는 언덕까지 엄폐물도 없이 뛰어와야만 했다.

  한 중위는 미제인 드래곤 미사일이 역시 미제인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민군과 중국군이 서로 미제의 무기로 싸우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미제(米帝)는 조중(朝中) 공동의 적이 아니었던가?

  한 중위의 신호에 따라 매설된 지뢰를 연속적으로 폭파시키자 하늘까지 붉게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웬만한 총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중국군들이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더니  인민군들이 소수인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있게 몰려왔다.

  수십대의 미제 M2A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가 25 밀리 기관포를 난사하며 인민군들이 있는 언덕으로 몰려왔다. 소대에 할당된 8개의 대전차미사일은 이미 다 소비했다. 이제 남아있는 대전차무기라고는 몇 개의 RPG-7밖에 없었다. 이제는 후퇴할 수도 없는 한 중위의 소대는 결전을 각오했다.

  중국군의 보병전투차가 접근하면서 기관포를 쏘아댔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옆에서 기관총을 쏘던 전사가 쓰러졌다. RPG를 들고 있던 중사가 참호 위로 스치는 기관포탄의 각도를 보고 있다가 한순간 벌떡 일어났다. 거리는 60미터도 안되었다. 야광물질을 칠한 조준기 안에 보병전투차의 기관포 섬광이 잡혔다. 한 중위가 방아쇠를 당기자 강한 힘으로 포탄이 날았다.  포탄은 정확히 보병전투차의 포탑에 명중해 포탑을 종이 찢듯이 날려버렸다.

  옆에 있던 한 중위가 환성을 지르자 중사가 씩 웃었다.  웃으면서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의 가슴에서는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 중위가 중사를 멍하니 보다가 기관총을 잡고 쏘기 시작했다. 쏘면서 곁눈질로 소대의 상황을 보니 인원이 절반도 남지 않았다. 적은 셀 수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중위가 신호탄을 쏘고 머리를 숨기자  각 분대의 크레모어를 맡은 하급전사들이 일제히 격발기를 눌렀다.참호 위로 크레모어의 후폭풍이 지나갔다. 그의 철모와 군복에 먼지가 쌓였다.  중위가 다시 머리를 내밀고 보니 중국군 보병들은 보이지 않고 보병전투차들이 겁먹은듯 정지해 있었다. 어떤 전사가 RPG를 발사해서 보병전투차 한대를 파괴하자 보병 전투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살아서 돌아가는 중국군 보병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후퇴~ 남쪽으로 움직이라~~~우!"

  만신창이가 된 인민군들이 슬금슬금 참호에서 기어나왔다. 이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에게 수류탄 하나씩을 안겨주고 2차 공격을 피해 언덕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부상자들이 씩 웃었다. 조금 이따가 보자는 뜻이었다.

  100미터쯤 걸어 내려가다가 굉음에 놀라 소대가 있던 언덕을 보니 언덕은 이미 불바다가 되고 있었고 하늘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전투기 2대가 선회하고 있었다.저공으로 소대 위를 지나쳤으나 소대원들은 중국군인척 하고 태연히 남쪽으로 걸어갔다. 전투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뚝을 넘어 갈대밭에 엎드린 채 길을 보니 수많은 중국군 장갑차와 보병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중위가 소대를 도로를 따라 횡으로 산개시키고 분대장들을 불렀다.

  "공격하갔소. 준비들 하기요."

  분대장들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었다. 분대장들이 돌아가자 한 중위가 발사신호를 했다. 소대원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던지며 RPG와 소총을 발사했다. 불시에 기습당한 중국군들이 뿔뿔히 흩어져 달아났다. 근거리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RPG의 명중율이 높아 여기저기 장갑차들이 파괴되고 보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야간이라 중국군은  인민군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대규모부대가 공격하는 줄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 바빴다.

  한 중위의 신호로 소대원들이 길로 내려와 중국군의 시체들로부터 탄창과 RPG를 챙겼다. 인민군과 중국군의 무기체계가 비슷해서 편리했다. 길을 남쪽으로 가로질러 어느 야산으로 숨어들어갔다.  산에 오르자 멀리 포성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산길의 경사가 심해 숨이 가빴으나 한 중위는 시원한 밤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땀이 식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11. 18. 20:50  안주시 서쪽 2km 용흥리(龍興里)

  청천강 남쪽 지역은 치열한 전투와 부대의 이동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밤인데다가 서로의 무기체계가 비슷한 것이 많아 각종 오발 사고가 잦았는데 인민군 통신망의 붕괴는 안주전역 최악의 오인전투를 빚었다.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주 진지인 원일리에서 제 4군단의 방어진으로 이동하던 제 3기계화사단은 예비로 돌려진 제 7군단의 주방어진지인 문봉리 앞 용흥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7군단 수뇌부는 제 4군단의 방어선이 돌파되었다는 보고는 받았으나 820 기계화군단에서 제 4군단쪽으로 1개 사단을 이동시킨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공격을 예상하여 바짝 긴장한 인민군 제 7군단 15사단은 도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빠르게 이동중인 제 3 기계화 사단의 전차대열을 발견하자 중국군으로 오인하여 일제 사격을 가했고, 기계화사단도 7군단 병력을 전선을 뚫고 전진해온 중국군으로 오인하여 즉각 반격을 실시하였다.

  이는 더 큰 결과를 빚었는데, 비록 방어선은 뚫렸으나 820기계화군단의 지원을 기다리며 절망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던 4 군단의 사기를 크게 꺾어버렸다. 후방에서 전투가 벌어진 상황에서 방어란 더더욱 어려웠다. 그것이 우군끼리의 오인전투라는 사실을 생각못한 4군단 지휘부는 즉각 후퇴를 결심하였다.

  11. 18. 21:00 도회리, 12사단 지휘벙커

  "뭐야? 7군단 북방에 적 전차가 있고 3기계화 남쪽에 적 부대가 있다니? 오인이야! 즉각 전투중지시켜! 통제소는 도대체 뭐했어?"

  전 상장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의 공세가 덜한 군단에서 병력을 빼내 뚫린 곳을 막으려하던 차에, 오인전투라는 최악의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그것도 단 한대의 전차가 아쉬운 판에…

  "4군단은 후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4군단 후퇴병력과 중국군 전차들이 뒤섞인 상황입니다."

  전 상장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창피해서 12사단 지휘부를 흘끗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전투지휘에만 여념이 없었다.  비슷한 숫자의 적을 소수인 이들은 막고 있고 인민군들은 더 많은 숫자로도 막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웠다.

  "오인전투를 중지시키고 이들을 같이 배치해. 후퇴하는 4군단은 안주시에서 시가전을 실시하라고 전하라. 물론 지휘체계는 붕괴되었겠지만."

  전 상장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무전병이 각 군단으로 연락했다. 참모장이 4군단의 패배하여 후퇴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하라고 거들었다.

  "동지의 생각은 어떻소?"

  전 상장이 김 중령에게 자문을 구했다. 공병감에 불과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가장 믿음직한 인물로 보였다. 김 중령의 눈이 강하게 빛나더니 전 상장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820 기계화군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후퇴도 어렵습니다. 방법은 알고 계시겠지만…"

  김 중령도 전 상장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전 상장은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중국은 거의 무한할 정도의 자원을 투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중국의 헬기사단은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대공방어망이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입니다.부대가 후퇴하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상장이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김 중령은 기계화군단 하나를 희생시켜 전 부대의 후퇴를 종용하는데 자신의 입장에서는 병력보다는 전차를 아껴야할 상황이었다.

  "4군단과 12사단이 지연방어를 하고 나머지는 후퇴명령을 내리겠소."

  전 상장이 결정을 하고 부관에게 예하부대에의 전달을 지시했다.  무전병이 열심히 명령을 전달하는 동안  두 사람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김 중령이 놀란 눈을 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최 소장은 두 사람을 흘끗 보더니 계속 전투지휘를 했다. 최 소장이 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차 한 대라도 구하려면 우측의 12사단이 적 장갑집단군을 막고, 후퇴한 4군단이 안주에서 시가전을 펼치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것 같았다. 김 중령도 이해는 못할 바가 아니었으나, 820 기계화군단을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중국에는 무한정할 정도의 자원이 있지만 우린 없소. 아직 남아있는 전차를 후속부대에 무사히 전달해 주는 것을 나의 임무로 알겠소. 불만은 있겠지만 이해해주기 바라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저희 사단에 배속된 전차 중 2개 대대는 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이 지역이 너무 붐벼서 전투에 지장이 있단 말씀입니다. 하하!"

  전 상장의 부탁에 최 소장은 나머지 전차도 빼내가길 원했다. 그리고 조금 더 있겠다는 전 상장을 상황이 급박하다며 억지로 문 밖까지 배웅했다.

  "저희도 막다가 안되면 후퇴하겠습니다.빨리 제 2방어선을 구축해 주시죠.  저희 사단은 일단 예비로 돌려주셔야 됩니다. 좀 쉬어야 될테니까요."

  최 소장이 억지로 웃음을 띄었다.늙은 전 상장의 주름진 얼굴도 억지로 미소를 짓느라 일그러졌다.지휘벙커 밖에서 전 상장이 김 중령의 손을 잡고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연료 저장소가 중국군의 포격에 명중해 폭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건승을 빕니다. 사령관 동지!"

  김 중령이 멋지게 거수경례를 붙였다.전 상장이 김 중령의 왼손을 잡고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부탁하네. 자네와 최 소장 둘 다 꼭 필요해.자네들 부대는 잃더라도 자네들을 내 참모로 두겠네. 자네들 말을 안들어서 미안하네.  꼭 살아 돌아와주게. 명령일세."

  최 소장과 김 중령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거수경례를 했다.  꼭 돌아가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다시금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11. 18. 21:30 안주시 남동쪽 8km, 매암산 아래 비포장도로

  완벽한 등화관제를 하고,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켠 보병전투차를 선두로 전 상장의 전선 사령부와 전차 2개 대대가  안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통하는 산길을 달렸다.도회리의 서쪽인 백돌고개는 이미 중국군에게 점령당했으므로 예비도로인 이곳으로 우회한 것이나, 전 상장은 이미 패배를 예견하여 후퇴에 중점을 둔 부대이동을 시켰다. 야시경으로 고속도로를 살펴보니 이미 도로는 후퇴하는 인민군전차와 각종 차량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뒤에서 섬광이 비쳐서 보니 북쪽과 북동쪽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나고 있었다. 북쪽은 4군단이 패한 백돌고개이고 북동쪽은 12사단이 있는 도회리이다. 백돌고개의 불길은 잦아들고 있는 반면에 도회리쪽의 불길은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12 사단의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며 침략군을 저지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북서쪽 안주시에서는 인민군 4군단의 병력들이 절망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지  시가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되던 총성이 잦아들어갔다. 전 상장이 후퇴를 종용했다.

  11. 18. 21:40  도회리, 12사단 지휘부

  "김 중령! 늦기 전에 쓰는게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만, 어떻소?"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단장님!"

  최 소장의 질문에 김 중령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그동안 상황만 지켜보고 있던 김 중령이 부하 공병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발사! 아니아니…. 이럴 땐 투하라고 하던가? 어쨋든 그거… 알잖아. 풀어!"

  김 중령이 말을 더듬자 급박한 상황에서도 부하인 공병장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하긴 자신도 적당한 말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김 중령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24시간 동안 작업한 것의 성과를 이제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김 중령이 작전을 실시하자 사단장이 투덜거렸다.

  "이제 우린 후퇴준비나 해야겠어. 사령부나 다른 부대도 다 후퇴했겠지. 천 대령, 후퇴지휘를 하시오. 나는 마지막까지 상황을 보고 떠나겠소. 참, 고속도로나 국도는 피하고 산길로 이동해야겠소."

  11. 18. 21:42 도회리 앞 청천강

  아직 불타고 있는 수륙양용전차들 사이로 물위에 검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들은 한국 해군에게서 긴급 공수받은 소형 기뢰였다. 근접신관이 제거된 이 기뢰들은  천천히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약 3개 대대의 중국제 63식 수륙양용 경전차들이 도강을 하자 가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  육중한 T-90 전차들이 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 대씩 밖에 못지나는 중강습교량보다는 다수의 전차와 보병들이 함께 건널 수 있는 리본형 부교를 선호하는 중국군이 이제 막 3 개의 부교를 건설하여 수많은 전차와 보병전투차를 도강시키고 있을 때 가장 상류의 부교가 섬광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파편보다는 수압에 의한 파괴원리를 가진 기뢰는 기뢰가 직접 닿은 부분 뿐만 아니라 물에 떠있는 부교 전체를 파괴시켰다.  도강 중이던 전차 4대와 수많은 보병들이 물에 빠졌다. 부상당한 보병들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강물이 흘러 부교의 잔해들이 중간 지점의 부교로 흘러갔다.  가교전차의 가교는 직접 물위에 떠있지 않고 공중에 걸쳐있기 때문에 기뢰 공격을 받지 않았지만, 부교의 경우는 물위에 떠있기 때문에 기뢰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두번째 부교가 날아가고 또 수많은 차량들이 물에 쓸려갔다.

  11. 18. 21:43  도회리, 12사단 지휘부

  "현재 두 개 성공입니다. 어떻습니까?  살수대첩하고 비슷합니까?"

  "예끼 이 사람아. 을지문덕 장군은 이겼지만 우리는 아니잖은가?"

  김 중령이 장난스럽게 보고하자 최 소장이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지역이 지역인만큼  김 중령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상해 이를 실현한 것이다.

  "어쨋든 중국군은 지금 당황하겠죠. 보십시요. 세번째 부교에서는 후속차량들이 가교에 진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5초 후, 자 보십시요."

  최 소장이 중앙스크린을 보니  역시 정확한 시간에 세번째 부교도 날아가버렸다. 최 소장이 탄식을 했다.

  "강 폭이 좀 더 넓거나, 중국군이 가교가 아니라 주로 부교로 도강을 시도했으면 자넨 제 2의 을지문덕 장군이 될뻔했네. 중국군에게 가교전차의 수가 저렇게 많다니… 아깝군. 어쨋든 시간은 좀 더 벌었다고 볼 수 있지. 참, 나머지 기뢰는 어떻게 된건가?"

  "아마 중국군의 수륙양용전차를 파괴하든지 바다로 흘러 중국까지 건너가서 중국 군함을 파괴할 것입니다. 하하!"

  최 소장과 김 중령 뿐만 아니라 지휘부내의  모든 장병들이 오랜만에 파안대소를 했다.

  "자, 챙길건 다 챙겼겠지? 가자고."

  사단 사령부가 후퇴를 시작하자 마지막까지 중국군 전차들을 막던 제 2연대도 천천히 후퇴를 시작했다. 호되게 당한 중국군 전차들은 매복이 있을까 무서워 함부로 추적을 하지 못했다.  12사단은 제 2 방어진지로 천천히 후퇴했다.

  도회리 남쪽 매암산의 세 봉우리는 안주시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고지였고, 그 외에도 중요한 고지마다 1개 중대씩 배치했다. 12사단 병사들은 전투에 지쳤지만, 적의 도하작전 방어보다는 고지 방어작전에 자신이 있었다. 익숙한 강원도 보다는 산이 낮았지만 그래도 12사단으로서는 유리했다.  그러나 중국군은 믿는게 더 있었다.

  11. 18. 22:30  매암산 서산봉(451 미터) 12사단 지휘부

  "대규모 헬기부대입니다. 안주시로 진입중!"

  정상에 있는 대공진지에서 촬영한 화상이 유선을 통해 지휘부 스크린에 중계되었다.수 십 대의 공격헬기가 안주시 곳곳의 건물에 로켓포 공격을 가했고,  더 많은 수의 병력수송헬기들이 안주시 남쪽에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4군단은 후퇴할 기회도 없군요."

  "후퇴할 생각이 아예 없었지."

  김 중령의 평가에 사단장 최 소장이 토를 달았다. 인민군 4군단이 방어를 담당한 백돌고개가 뚫리자 일부는 바로 남쪽인 원풍리로 후퇴했지만, 대부분의 병력은 사령관인 전 상장의 명령에 따라 안주시에서 시가전을 전개하고 있었다.그러나 대규모 전차부대와 헬기부대의 협공을 받은 인민군 4군단은 서서히 붕괴되었다.

  "항복할 생각도 없군."

  최 소장이 속으로 인민군 4군단 병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때 통신병이 바짝 긴장하더니 사단장인 최 소장에게 보고했다.

  "적 기갑부대 서상리 진입, 331고지와 262고지에서 공격중입니다. 병력은 1개 전차연대와 2개 기계화연대… 포병은 없지만 사단편성입니다."

  도회리 남쪽 매암산 주봉은 12사단 지휘부가 있는 서산봉이고, 그 북쪽에 331고지, 북서쪽에 262고지가 있는데, 각 1개 대대씩이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그러나 대대병력이라도 병력 수에서는 2개 중대 밖에 되지 않은 부상자와 지친 병사들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전차무기는 거의 떨어진 상황이었다.

  국군 12사단 병력은 고지마다 넓게 분산해 있었다.4개 군단이 방어를 하던 곳을  피해를 입은 1개 사단이 방어를 하자니 병력은 몹시 부족했지만,  방어가 목적이 아니고 후퇴하는 본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만큼 병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안주쪽이 아니라 백돌고개를 뚫은 놈들입니다."

  작전참모 천 대령이 지적을 했다.  중국군은 아직 전선을 재정비하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고 있었던 것이다.러시아의 작전기동군 개념은 적의 종심방어선을 돌파한 후, 전차를 위주로한 기갑부대가 깊숙히 침입하여 전략적 목표를 탈취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이동은 신속했다.

  "안주를 뚫은 적 기갑부대는  각 부대간 연계 없이 평양까지 밀고 갈것입니다. 각개격파에는 좋은 상황입니다.  대전차무기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천 대령이 큰 고기를 놓친 듯 아쉬워했다.

  "우린 그냥 시간만 끌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겠지.  작전기동군이라는 거 참 이상해. 왜 보전합동의 원칙까지 깨가며.. 무전병! 적 전차부대는 적당히 보내도록 연락해. 고지 점령전을 하지는 않을거야. 우리는 뒤에 따라오는 보병을 친다. 탄약을 아끼도록!"

  사단장이 무전병에게 명령했다.후퇴는 하지 않되 적극적인 전투는 피하라는 명령이었다.  어차피 전차부대로는 이런 산악지대를 점령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 전차들은 단지 안주-평양간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 이 길로 온 것 뿐이었다.

  "우린 후퇴 안합니까?"

  김 중령이 의아한 듯 사단장에게 물었다. 사단장이 실실 웃었다.

  "우린 어차피 수송수단이 없잖은가?  적은 기동력이 우수한 전차부대인데. 우리가 후퇴한들 바로 따라 잡히겠지."

  사단장의 대답에 김 중령은 그럼 어떡할거냐고 묻는 눈을 했다. 사단장이 낄낄댔다.

  "그냥 버텨 보는거지 뭐. 전차도 없고 포병도 별로 없으니 이동은 쉽겠군. 참, 김 중령!"

  "예! 사단장님."

  "자넨 부상자 병력을 이끌고 후퇴해주게. 산길로 가야할거야. 사단이 보유한 트럭을 다 주겠네."

  김 중령은 사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유격전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정규군으로서  후퇴할 수 있는데도 유격전을 펼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공병대는 필요없으니 공병대도 같이 후퇴하게.  중장비도 다 가지고 가면 되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공병대는 전투 공병입니다. 일반 보병전투에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습니다."

  "명령일세. 적 전차가 오기 전에 떠나게."

  사단장 최 소장의 명령은 단호했다.

  김 중령은 공병대대와 부상자 부대의 후퇴를 준비했다.  선두에 대전차미사일을 탑재한 보병전투차를 세우고 중간에 앰뷸런스와 부상병들을 가득 실은 트럭, 뒤에 공병대대의 중장비가 따르게 했다.산길로 후퇴를 하면서도 김 중령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매암산의 봉우리들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헬기부대입니다!"

  천마계획에 따라 한국형 보병전투차에 대공미사일을 탑재한 차량에서 무선 보고가 왔다.김 중령이 북서쪽 하늘을 보니 수 십 대의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사격명령을 재촉하는 대공포 소대장에게 김 중령은 짤막하게 응답했다.

  "자네 같으면 우릴 공격하겠나? 고속도로를 보게."

  11.18  23:00  신의주-평양 고속도로상

  신안주 남쪽을 달리는 신의주–평양간 고속도로에는 후퇴하는 인민군 차량들로 만원이었다. 전차와 자주포,수송트럭과 보급부대의 차량이 뒤섞여있는 판에 중국군의 포격이 더해져 아비규환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갑자기 포격이 멈추더니 중국의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A-5C 대지공격기와 이를 호위하는 MIG-23과 비슷한 F-9 전투기였다.  도로 주변에 후퇴 엄호를 위해 배치된 대공 미사일차들이 수 십 발의 미사일을 쏘아댔지만 중국 전투기들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공으로 날아와서 집속폭탄을 투하하고 부리나케 남쪽 산을 넘어 도망가고, 이를 다른 전투기들이 뒤이었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도 공중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는데,  이는 지상전과는 달리 현재 공중전의 최전선은 평양상공이기 때문이었다. 인민군과 국군의 전투기들은 만주와 산둥반도에서 날아오는  전투기들을 요격하기에도 바빴다.

  전투기들이 돌아가자 헬기들이 나타났다. 공격헬기들이 대공미사일차량들을 먼저 공격하고, 대공미사일의 사격이 멈추자 차량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인민군들이 차량을 버리고 산속으로 뿔뿔히 도망쳤다.

  헬리콥터들이 공격을 마치고 북쪽 하늘로 날아가자 이번엔 중국군 전차부대가 후퇴하는 인민군 후미 부대를 덮쳤다.  인민군들은 파괴된 차량들을 헤집고 후퇴를 해야했는데,  도로상에 파괴된 차량이 너무 많아 추격하는 중국군들의 추격까지 방해했다.

  11. 18. 23:10  매암산 서산봉(451 미터) 12사단 지휘부

  "사단장님! 중국군 보병들이 고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단장이 조용히 앉아 모니터에 나온 상황을 살펴보았다.중국군 전차들은 이미 남쪽으로 이동했으나  중국군의 2개 기계화연대는 후환을 남기지 않기위해서인지, 아니면 공격당한데 대한 보복인지 국군들이 있는 331고지와 262고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영국과 합작하여 개발한 NVH-1 보병전투차와 대형 바퀴 6개가 달린 WZ-551 APC에서 기관포사격을 하는 동안, 이들 차량에서 하차한 보병들이 떼지어 고지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 두 고지는  경사가 급하여 공격측에 절대로 유리하지 않은 지형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병력차를 믿은 중국군 사단장은 밀어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추격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고지 정상 부근에서 국군 12사단의 중기관총이 불을 뿜어대자 헉헉대며 고지를 오르던 중국군 보병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갔다.양쪽에서 공격을 받기 때문에 위치로 보면 중국군이 훨씬 불리했으나 병력이 워낙 많았다. 보병전투차와 APC의 화력지원을 받아 보병들이 정상 부근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본 국군 12사단장이 명령을 내렸다.

  "좀 도와줘."

  사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산봉에 있는 국군 포병대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보병중대가 보유한 박격포까지 가세하자 서상리 분지 일대는 거대한 불꽃놀이판이 되었다. 조명탄은 필요도 없었다.  갑작스런 포격에 놀란 중국군은 북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보병뿐인줄 알고 공격했다가 포병을 갖춘 대규모부대라는 사실을 알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됐어. 우리도 후퇴한다. 제 3진지로!"

  사령부가 이삿짐을 꾸리느라 바빠졌다.  도회리와  서상리에 이어 더 남쪽의 용봉산(363 미터) 고지로 후퇴하는 것이다. 국군 12사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뒤늦게 날아온 중국군 헬기들은 아무도 없는 서상봉과 그 북쪽의 2개의 고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국군 병사들은 빚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무기와 탄약을 이고지고 산길을 걸어 후퇴했다.  산악용 대공 미사일차 험비 몇 대가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킨 채 대열을 인도했다.

  12사단장 최 소장이 부하들과 함께 산길을 걷고 있는데  중국군의 정찰헬기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헬기는 개미떼처럼 일렬로 이동하는 국군의 긴 행렬을 숲에 가려 보지 못했다.  그러나  헬기의 저공비행을 공습으로 착각하여 당황한 험비의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었다.헬기는 수십 발의 포탄을 맞고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난 채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저런, 빨리 이동해! 구보로 3진지까지 뛴다. 실시!"

  사단장이 부하들을 독촉했다. 아마도 중국군은 틀림없이 추락하는 헬기의 섬광과 하늘을 가르는 대공포탄의 궤적을 보았을 것일라고 생각했다.  사단장이 소대장 시절 이후 실로 오랜만에 구보로 산길을 뛰었다. 얼마 뛰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했지만 흐르는 땀을 늦가을의 바람이 씻어주어 상쾌했다.

  사단장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제 3진지의 지휘소에 도착했을 때 중국군의 대규모 헬기부대가 용봉산 상공을 가득 메웠다.  몇 대 남지도 않은 대공발칸포가 밤하늘을 향해 불을 뿜었다. 남아있던 마지막 대공미사일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몇 대의 헬기가 추락하자 중국 헬기들이 로켓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산 정상을 불바다로 만들려는듯 이들의 로켓탄 사격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1999. 11. 18  09:30(뉴욕 시간)  뉴욕

  중국이 한국 국경을 넘어 침공해오자 뉴욕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한국측의 요청에 의해 긴급유엔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동 제안으로 열린 유엔총회는,  그러나 한국인들이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야하는 장소로 바뀌고 말았다.

  "한국은,  특히 남조선은 우리 중국의 만주지역을 침공해야된다는 주장을 하는 호전적인 제국주의적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들 주장대로 조선족이 많이살고 있다는 만주는 수천년간 중국의 땅이며 조선족은 아직도 소수에 불과합니다.그럼에도 그들은 민족통합운동 또는 고구려 고토회복이니 만주수복운동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들먹거리며 호시탐탐 만주지역을 노려왔습니다. 자, 이것이 증거입니다."

  중국대표가 발언권을 얻어 열변을 토하다가 잠시 비디오를 틀었다.그것에는 중국 내란 중 서울에서 우익단체들이 만주수복을 결의하며 궐기대회를 하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또한 민족선각자인척 하는 자들이 쓴 책들의 문제되는 내용들,  그리고 심지어는 중국 내란 중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중국 내전 중 한국이 만주지역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비밀문건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북조선의 혜산이라는 지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 희생자는 대부분이 우리 중국동포였습니다.그리고 중국 단둥에서 일어난 조선인들의 폭동도 우리 중국의 체제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조선인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남조선은 우리 중국의 불행했던 내전시기를 이용하여 양측에 무기와 군수품을 팔며  내전기간의 연장을 획책하였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인들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유엔주재 중국대사의 연설은 반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지만, 큰나라 중국답게 다른 수많은 작은 나라들을 설득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 중국과 적대시한 동남아국가들은 중국의 눈치를 봐야했으므로 침묵을 지켰고,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중국을 지지했고 다른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보다는 아직은 낙후한 중국에 심정적 공감을 표시했다.

  "그말이 사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킬만한 원인은 안되지 않소? 왜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는데 침략한 것이오?"

  한국대사가 반박을 하자 중국대사가 바로 맞받아쳤다.

  "역시 그럴줄 알았소. 여러분! 이 화면을 보십시요. 한국의 침략행위를 보여줄 결정적 증거입니다. 11월 12일자로 되어 있습니다."

  화면이 움직이자 어느 시가지가 나왔고, 곳곳에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어 사방에 널려진 참혹한 시체들,그리고 총검으로 그 시체들을 찌르며 웃는 모습의 군인들이 보였다.  각국 대사들이 화면을 보고 신음성을 흘렸다.

  "우리 기자가 목숨을 걸고 촬영한 것이오. 저 군인들을 보시오. 틀림없는 한국군이오.단둥의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우리 국경을 넘은 한국군들이 단둥 시내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소. 이것을 보고도 거짓말하겠소?"

  "이건 명백한 조작이오! 한국군은 월경한 적이 없소!"

  한국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으나  중국대사는 콧방귀를 뀌였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고도 조작이라니, 한국대사는 한국군이 국경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댈 수 있소?"

  한국 대사는 말문이 막혔다.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어찌 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금 전에 무관이 브리핑한 내용이 퍼뜩 생각났다.

  "아시아 각국이, 물론 주일 미군도 포함되지만,  중국측의 최근 며칠간에 걸친 지독한 전파방해를 감지했소.이는 각국의 위성통신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었소. 이는 중국이 한국을 침공하기 위한 사전준비가 아니란 말이오?"

  "그것은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위한 조처였소. 우리는 전쟁준비가 되지 않아서 미제 전투기로 무장한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어려웠기때문이오. 자, 아까 그 화면의 날짜를 보시오. 비서관!"

  중국 대사가 변명을 하며 비서를 불렀다. 대사의 비서가 비디오를 조작하자 다시 같은 화면이 흘렀다. 화면 아래에 날짜가 표시되었는데 틀림없이 중국이 전파방해를 시작한 날이었다.

  "저 화면은 조작이오. 전쟁 5일 전에 그 화면을 찍었다면 왜 그리 오랫동안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았소?"

  한국대사가 묻자 중국대사가 대답했다.

  "전쟁은 이미 그 때 시작되었소. 우리는 5일에 걸쳐 월경한 침략군을 몰아내고 부대를 이동배치해 이제야 한국국경에 다다른 것이오. 우리는 확실하게 승리를 담보할 때까지는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까봐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침략군을 몰아내어 공개하는 것이오."

  중국이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은 단지 유엔대사들 뿐만 아니라 외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국 대사의 대답에 각국 대사들이 수긍하는 눈치였다.  중국대사가 각국 대사들의 눈치를 보더니 드디어 선언을 했다.

  "침략국은 자국이 공격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오. 이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경우요.  한국은 침략국이므로 우리 중국은 한국을 공격할 국제법적 권리가 있으며, 이는 침략이 아닌 자위권에 불과하오. 또한, 한국을 돕는 국가는 중국의 적으로 간주하겠소."

  각국 대사들이 웅성거렸다. 일본과 독일대사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유엔헌장에 적국조항이 삭제되지 않아 잠자코 듣고 있기만 했다.  영국과 프랑스 대사는 이미 한국과 무기 수출 계약을 한 상태라 상당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중국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할 규모였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동 제안한 중국의 한반도 내외국군대 철수에 대한 유엔결의안은 결국 부결되었고,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이 제출한 한국규탄결의안이 통과되었다.한중간의 전쟁문제는 안보리 상임이사회에 넘겨졌으나,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한 한국과 북한이 호소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11. 18. 11:00  워싱턴, 중국대사관

  "고맙습니다, 대사. 각하께서도 귀국 정부에 심심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최근 미국 시민들도 중국에 매우 호의적입니다."

  미 국방부의 군수담당 차관보인 윌리엄 제프리가 고개 숙여 중국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틀전,즉, 한중간의 전쟁이 나기 하루 전에 중국은 미국의 군사비 감축정책으로 인해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항공모함 2척과 순양함 3척의 건조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이들 수상함들의 구매계약을 미국과 맺은 것이다. 또한 감산과 함께 대량으로 노동자를 해고해야 할 위기에 처한 항공 방위산업체들의 경영에도 숨통이 트였다. 중국이 각종 항공기들을 미국에 대량 주문한 것이다.

  2000년에 있을 예정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 불경기로 인기하락중인 현직 대통령 제임스의 재선을 위한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중국대사는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지난 9월에도 상당수의 전투기와 수상함정을 미국에서 수입했다.미국은 군사교관단과 함께 훈련용 시설까지 중국에 공수해와서 열심히 중국군을 가르쳐주었다.  미국은 이제 가만히 앉아서 팔기만 하던 때는 지난 것이다.

  "아니죠. 귀국의 훌륭한 무기들을 계속 수입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중국은 자주국방을 위해 더 많은 미국제 무기를 수입할 예정입니다만…"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대사! 각하께도 이 기쁜 소식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상품을 원하신지 여쭤도 실례가 안되겠습니까?"

  제프리 차관보는 신이 났다. 처음에 제프리 차관보는 중국과 한국 양쪽에 무기를 판매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중국의 구매량이 엄청난 규모로 밝혀졌다. 97년 한반도 위기 때 판매한 무기량과 98년에 시작된 중국내전에서 중국에 판매한 무기수출량보다 훨씬 많은 주문을 했다.그 전에도 중국은 항모 2척과 신형전투기 등 대량의 무기를 구입했다.

  국방성은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중국에만 무기를 판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양해를 미리 받았기 때문이어서 문제는 전혀 없었다. 무기 판매보다는 생산이 더 급할 정도로 중국으로부터 주문받은 무기구매의 규모는 컸다.

  11. 18  10:10  미국 LA, 반전 전사 집단, PEACE

  "중국이 또 미국에서 항공모함과 미사일순양함 및 신예전투기의 구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거의 결정이 되었습니다.  의회에서도 반대는 없을거라고 합니다. 또한 더 많은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이 노력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중국은 아마도 계속 영토 확장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

  로스엔젤리스의 남부 교외 휴양지 별장에서 각색의 인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캄캄한 실내에서는 한반도 지도가 영상기로 벽에 비쳐지고 있었는데 중국군과 한국군의 현재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보위원이며 암호명을 짜르라고 밝힌 중년 남자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모두들 각양각색의 외양을 하고, 다양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에게 너무 강한 상대입니다.  우리가 개입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사태의 확산만 막기로 합시다."

  아랍계 복장을 한 사나이가 말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말레이계의 여인이 책상위에 얹었던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런 식이면 우리 모임의 의미가 없죠.  우린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우리는 중국이 동남아 각국을 침공하고 있을 때 국제여론만 동원하는 등 거의 방관만 하고 있었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킨다는 우리 모임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그린피스에서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10여척의 핵잠수함이 있으며 또한 핵미사일도 많습니다. 핵전쟁 가능성이 아직은 적지만 중국이 불리해졌을 경우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해상 봉쇄시에 연이어 발생할  유조선 침몰과 원유 유출 사태를 생각하면…, 휴… 끔찍하군요.  물론 한반도 산림과 환경의 피폐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존망을 건 전면전에서 누가 환경 파괴를 염두에 두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린피스에 소속을 둔 스웨덴의 쏘르가 말하자 위원들 모두가 심각해졌다.

  "그렇소. 우리 모임은 비밀결사기구이긴 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안위만을 위해 침묵할  수는 없소.  이제 우리가 나설 때 입니다. 싱께서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의장인 카를이 싱을 지목하자 모두가 싱이라고 불린 인도인을 주목했다. 터번을 쓰고 수염을 잔뜩 기른 전형적인 시크교도인 그는 반전전사 집단인 PEACE의 무력부문을 담당하고 있었다. 칼등이 휘어진 회교도 칼을 하나 쥐어 주면 더더욱 시크교 전사같아 보일 사람이었다.

  "안됩니다! 무력을 쓰다뇨.  우리는 비폭력주의를 일차적인 분쟁해결 원칙으로 신봉해오지 않았습니까? 96년의 보스니아 내전 개입이나 훨씬 이전의 미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가장 최근의 부룬디 개입도 그렇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아무리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아픔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갑자기 모잠비크 출신인 젊은 학자풍의 흑인이 일어나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자 위원들이 놀라며 동요를 일으켰다.  싱이 위원들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매의 그것 자체였다.

  "그래도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구해왔습니다.  가장 최소한의 희생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들의 배고픔을 덜어줬습니다.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들이 머뭇거릴 때 우린 항상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우리가 왜 반전전사입니까?   평화적인 수단을 동원할 때도 있지만 그 수단이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말입니다."

  싱이 중국의 침략행위를 평화적인 수단으로 막지 못한 위원들을 질타하듯 위원들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 전에는  비폭력적인 방법만 동원하고,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무력수단을 동원해왔습니다. 이는 전에 케네디를 암살함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극도로 약화시킨 정책적 오류를 비판하면서 정착된 우리 모임의 일관된  정책결정이었는데  저는 이에 반대를 표하고자 합니다."

  모든 위원들이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PEACE로서는 가장 큰 실책이라고 평가된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당시로서는 미국과 소련간의 전쟁을 막고 미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미국 군산복합체의 힘을 강화해주어 냉전을 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조직에서는 케네디 암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는데, 모잠비크의 흑인이 이 금기를 깨뜨리고 싱이 이 금기에 정면으로 반대를 한 것이다.

  "전쟁 징후가 보이면 정치,경제적 수단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아야합니다. 전쟁이 일단 발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인명과 환경 피해가 오고 맙니다.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전쟁 발발 이후에는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사전에 막아야 합니다."

  "좋소."

  카를이 다른 위원들의 반박을 사전에 제지하면서 싱에게 물었다.

  "그럼 싱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의 정책은 추후에 검토하기로 하고, 일단 한반도 사태에 대한 싱의 준비를 설명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카를."

  싱은 의장인 카를을 무한한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스페인 출신의 의사인 그는 촉망받는 젊은 외과의사였으나 남미 멕시코 원주민을 위한 의료 구호활동을 하다가 반정부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다.여러가지 이름을 쓰면서 치열하게 원주민과 농민의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활동이 힘들고, 원주민들과 농민들의 의식이 깨이자 현지인들에게 지도권을 넘기고 자신은 고국에 돌아와  산 호세 대학 의학부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다. 그는 10여년 전에 PEACE 위원들의 추천으로 이 조직의 무력부문 위원을 맡다가 최근에 의장이 되었다.  싱은 카를이 무력부문 위원일 때 그의 무장조직의 하나에서 대장을 하고 있었으니,  실제로는 싱은 카를의 부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상하관계 때문에 카를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종을 떠난 인류애 때문이었다.

  "한반도 지역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다들 아시겠지만 지정학적 요건을 먼저 검토하겠습니다."

  싱이 화면을 확대하여 한반도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넓은 지역을 보이게 하였다.

  "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한 목적은 다른데 있다고 봅니다. 중국과 한국과의 전쟁 뿐이라면 의외로 쉬운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중국이 한반도를 차지한 후의 상황을 보면…"

  싱이 단말기를 눌러서 중국과 한국을 같은 색깔로 표시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했을 경우의 동아시아 지도가 되는 셈이다. 이미 점령한 대만과 베트남,그리고 베트남 점령 이후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동남아 여러 나라를 계속 같은 색깔로 표시해가자, 중국은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이 되어있었다.

  "한반도는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점령되면 일본은 버틸 수 없게 됩니다.일본이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면 중국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태평양에서도 대제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은 중국이 꾸준히 관심을 둔 지역입니다.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죠. 한국을 점령하면 시베리아 지역은 중국이 쉽게 공략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약체화도 염두에 두시죠. 이를 보면 중국은 짧게는 일본, 길게는 러시아나 미국과의 한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세계대전입니다."

  위원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이는 정보위원인 짜르의 정보를 넘어서는 판단이었다.

  "핵전력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짜르가 단언하자 싱이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의 인내심과 장기적인 안목을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위원 중에도 중국인이 계신데…"

  위원들이 재정부문을 맡고 있는 창 위원에게 눈길을 돌렸다. 창이 약간 당황하며 용무늬가 새겨진 비단옷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1949년 중국혁명이후 중국은 왜 티베트를 침공했습니까?"

  싱의 질문에 창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티베트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소."

  창이 한마디로 싱의 질문을 일축하자 싱이 껄껄거리며 웃고나서 반문했다.

  "티베트의 수천년 역사 중에서 도대체 몇 년 간이나 중국의 영토인적이 있나요? 처음으로 점령한 13 세기는 중국의 한족이 아니라 몽고족인 원나라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죠?"

  창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중국은 티베트인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내지 않았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자치권도 주고 소득수준도 중국 내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오.  티베트는 승려가 지배하는 봉건 국가였소. 조상의 해골을 불경스럽게도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하는 열등하고 비위생적인 민족이란 말이오.  어쨋든 저도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의 문화를 개혁할 필요가…"

  "현실을 직시하시오. 남의 나라의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경우가 어디 있소? 영토적 야심 아닌가요?"

  미국인인 맥스는 팔짱을 낀 채  싱과 창의 말다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이 독립을 쟁취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인구에 있어서도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미국은 백인들의 땅이었다. 그리고 맥스는 그들의 조상들의 잘못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국가방위에 유리하기 때문이오."

  창이 실토하자 싱이 더욱 몰아붙였다.

  "국가 방위라뇨? 어느 나라의 침공에 대비한 것입니까?  주변에 있는 네팔인가요? 아니면 부탄? 이 나라들이 중국을 침략할 정도가 됩니까?"

  창이 묵묵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나라 인도요.물론 아직까지는 인도의 국력이 약해 위험은 없지만, 인도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중국을 인도의 침략으로 부터 지켜 내기가 쉽죠. 그리고 티베트는 인도와 비슷한 문화권이니 두 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킬 필요가 있었소."

  싱이 이제야 화난 얼굴을 풀고 미소를 띄우며 위원들에게 말했다.

  "중국은 100년 후에 인도가 국력이 강해져 중국에 침략해올까 두려워 그 100년 전에 티베트를 미리 점령할 정도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넓습니다. 1997년의 홍콩 반환만 해도 그렇습니다. 19세기나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어느 누가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하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이번 한국 침공도 그렇습니다.  물론 중국은 아직 시베리아에 대한 영토반환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만,수 십 년 이내에 반드시 시베리아를 수중에 넣을 것입니다. 최근의 중국의 확장정책을 본다면 그 시기는 더 빨라 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홍콩반환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고 반드시 무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핵전쟁입니다. 자존심 강한 러시아가 중국에게 영토를 할양하거나 알래스카처럼 돈에 팔지는 않을 것입니다."

  짜르가 잠시 창과 싱을 보고 말을 꺼냈다.

  "그렇소. 아직도 러,중 국경에선 조그만 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소. 러시아 군사력의 반 이상이 이 국경에 배치되어 있소.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이오만… 하긴 요즘은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쨋든 싱의 의견에 이어 제가 한마디 더 덧붙이죠. 한국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인데…"

  짜르가 일어나 싱을 대신해 지도를 보면서 설명했다.  전직 소련 KGB 제 1총국의 군사정보 담당자였던 그는 군사적 식견이 뛰어나 조직의 정보위원이 되었다.

  "한국을 중국이 점령한다면,아니, 최소한 세력권 안에 두기라도 한다면 일본은 쉽게 중국에 굴복하게 됩니다. 게다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해주 지역의  블라디보스톡은 이 지역 유일의 부동항입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점령되면 중국은 직접 블라디보스톡을 삼면에서 포위공격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며, 이는 러시아에 치명적입니다. 러시아가 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 십 년간 고심했는지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중국은 넓은 러, 중 국경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바다로부터 공격을 해올 수 있습니다.이렇게 되면 러시아로서는 러시아의 영토인 시베리아를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험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위원들이 러시아의 위험한 결단이라는 말에 부르르 떨었다.이는 핵전쟁을 의미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한반도는 주변 모든 나라의 완충지대라는 사실을 위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면 일본과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도 위험했다. 미국이 태평양을 잃으면 한낱 지역국가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짜르가 지도의 일본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최근 일본의 동향이 수상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중국입장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공할 줄 알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한국 정도는 점령할 정도의 군사적 역량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지도가 바뀝니다."

  짜르가 일본과 한반도의 지도를 같은 색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일본이 태평양의 대제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제주도, 일본 남부 가고시마에서 오끼나와를 포함한 난세이 제도가 대만까지 뻗어 중국을 완벽하게 해상으로부터 봉쇄해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면 필리핀군도와 더불어  중국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된다. 대만해협 남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이곳은 물길이 사납기로 유명하다.  중국은 대만 남쪽의 좁은 바시해협을 통해서만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데, 이 해협은 유사시에 1개 함대, 또는 잠수함 몇척만으로 봉쇄될 수 있는 극히 취약한 곳이다.

  "그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중국의 한반도 점령을 저지해야겠습니다. 군사부문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의 최고 역량을 동원해서 점령을 막읍시다. 한반도 점령은 중국의 세계 정복의 전초전이라 생각하고 우리 조직의 사활을 걸고 막아야합니다."

  카를 의장이 말하면서 싱을 눈짓으로 불렀다. 싱이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우면서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전투는 세 국면에서 진행됩니다.  물론 각 부문의 위원께서도 잘 해 주시리라 믿으며 우리는 목숨을 걸고 중국과 싸울 것입니다. 첫째는 암살부대의 투입입니다. 중국의 한반도 점령지대 주요 군 인사 뿐만 아니라 북경의 정치인들도 대상입니다. 그 암살 대상은 짜르께서 넘겨 주셨습니다. 두번째는 용병부대의 한반도 투입입니다.  유엔군의 파병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용병부대의 투입은 주의를 요합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번째는 중국 해안의 해상봉쇄입니다.  소속 잠수함과 비행기들을 동원해 중국의 해상로를 철저히 봉쇄하겠습니다. 원유의 유입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해상교통과 외국선의 통과,  미국의 무기 인도까지 봉쇄할 계획입니다."

  위원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과 한숨이 흘렀다. 싱은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작정한 것이며 위원들은 이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세계정복을 꾀하는 나라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미리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을 건드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렇다면 전면전인데… 우리 조직의 전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그리고 중국의 군사력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쏘르가 묻자 싱이 답변을 해야했다.위원들 간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으며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는 것이 이 조직의 규약이었다.

  "1997년 재정난에 빠진 러시아로부터 신형 전투항모 1척과 퇴역한 미국의 강습상륙함 1척을 우리 조직에서 빼냈습니다.물론 짜르 위원과 창 위원께서 상당한 노력을 하셔서 공작이 성공했습니다. 전투함은 미사일 순양함 2척과 구축함 및 프리깃함 6척, 기타 상륙함과 수송함이 있으며 잠수함은 12척입니다. 전투기와 초계기, 정찰기 및 탑재헬기 등을 합하면 항공기는 95기가 있습니다.

  지상전력은 현재 지원병들이 1개 여단이 있고 구르카 여단과 다른 용병 부대를 동원하면 2개 사단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함대와 지상전부대는 대만 북동쪽의 센카쿠제도 부근의 해상에서 훈련중입니다만 이들의 군사적 능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중국의 전술과 무 기체계, 그리고 언어에 대한 교육만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투입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한국군과의 지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이오? 짜르."

  카를이 묻자 짜르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의 통일참모본부와 협의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저희 요구를 안들을리 있겠습니까? 우리 부대의 지휘권은 우리가 계속 가지기로 하고 정보와 작전면에서 서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함대와 지상부대는 한국군에 소속됩니다. 참모본부에서 연락관 파견을 요청하더군요."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런 결정을 했단 말이오?  너무 독단적이지 않소?"

  창 위원이 투덜대며 항의했다.  아무리 평화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의 조국에 칼을 들이대는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자본과 여론을 동원하여 중국의 타국 침략을 막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의 조국은 세계평화를 자꾸 위협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이제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국에 어느 정도 해를 끼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국은 결국 한국을 점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떨치지 못했다.

  "이 전쟁은 우리 조직 50여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외에 우리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 조직의 와해를 위한 공작을 할 지 모르니, 이에 대비하여 보안을 철저히 하여 주십시요. 나머지 세부사항은 무력위원과 정보위원,  그리고 자금담당위원이 저와 함께 세부 계획을 작성해주시고, 이만 회의를 마칩시다. 준비가 끝나면 바로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카를이 폐회를 선언하자 모두들 하나 둘씩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전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가를 곰곰히 씹으며 각자의 차로 걸어갔다.

  11. 18. 11:10   워싱턴, 중국 대사관

  "올해 안에 필요한 무기 목록은 이것입니다. 인도 기일까지 적혀있으니 꼭 지켜주시고…"

  중국대사가 제프리 차관보에게 서류를 건네자  차관보가 잽싸게 받아 읽더니만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판매규모 300억 달러, 전년도 미국 무기 총수출액의 두배가 넘는 규모였다. 그것도 부가가치가 높은 신형 전투기와 이지스 순양함 위주의 구매의향서였는데 중국은 50% 선불, 인도와 동시에 잔금 지불의 좋은  구매조건을 제시하여 차관보의 환심을 샀다.

  "대사, 인도기일은 어떻한 일이 있더라도 꼭 지키겠습니다.  물론 최고의 품질도 보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 진수를 마치고 무기장착이 끝난 함정들을 우선 인도하겠습니다. 전투기는 현역에 배치되어있는 것들을 우선 인도하고 신형기가 제작되는 대로 바로 교체해드리겠습니다."

  제프리 차관보는 목이 멜듯한 목소리로 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무릎꿇고 절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제는… 우리 조종사와 해군이 이런 좋은 무기들을 다루려면 훈련을 충분히 받아야 할텐데 말이오."

  대사가 차관보를 힐끗 보면서 말을 꺼냈다. 중국 대사의 요구가 명확히 뭘 뜻하는건지  차관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즉시 이 엄청난 구매자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했다.

  "당연히 저희쪽에서 교관단을 보내 드려야죠. 무기 인도 전에 귀국의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이 충분히 무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저번의 경우처럼 저희가 교육을 맡겠습니다.  교육과 훈련에 필요한 시뮬레이션 기자재 등은 저희가 직접 수송해서 가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요."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미국의 생산자는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며 거래인 간의 의리도 지키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도 상거래이긴 하지만… 어떻소? 차관보.  설마 우리의 경쟁자에게 같은 상품을 팔지는 않겠죠? 그쪽은 얼마나 구매를 요청했나요?"

  제프리 차관보의 등줄기에 갑자기 땀이 흘렀지만 이는 미리 예상되었던 질문이어서 긴장이 오래 가진 않았다.  그로서는 어떻게든 이 큰 손님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물론 한국에서 조기경보기와 전투기, 그리고 해군함정 몇 척을 주문했습니다만 아마 인도까진 상당 기간이 걸리지 않나 싶군요.  설계부터 차근차근 해야하니까요."

  중국 대사가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렇죠. 미국 무기의 품질이 우수한만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껄껄"

  11. 18. 11:30   워싱턴, 한국대사관

  "미국은 우리의 중고 무기 수입계약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새걸로 사가라는 것인데 이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해군 제 5함대가 해체되어 항공모함 2척과 미사일 순양함 4척, 기타  수상함 몇 척이 예비역으로 돌려졌습니다. 그리고 3개 항공단도 최근에 예비로 돌려졌는데 잉여무기가 없다는 것은… 신품을 구입하려면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여기에는 분명히 중국의 농간이 숨어 있습니다."

  대사관실에서 1등 참사관인  이 현종이 흥분을 하며 대사에게 말하자 대사는 눈을 감은채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창밖으론 거리에 단풍이 지고 있었다.  무관인 한 영순 대령도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 말고도 영국과 프랑스에 무기 구입을 의뢰했지만, 이 무기들이 한국에 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중국이 해상봉쇄를 하면 남지나해를 어떻게 통과하겠습니까?   호주와 일본쪽으로 돌아서 오면 된다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고…  미국에서 구매해야만 태평양을 통해 안전하게 한국으로 수송할 수 있습니다."

  이 현종 참사관이 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며 대사의 분발을 촉구했다. 김 동현 주미대사가 서류 보따리를 챙겨서 방을 나갔다. 참사관이 따라 나섰다. 외교관들은 전투는 하지 않았지만 이 참사관은 차라리 목숨 걸고 전투를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기를 빨리 보내달라는 본국의 훈령이  매 시간마다 비명이 되어 대사관으로 날아들고 중국이 한국의 땅을 점령하는 평수만큼 자신들은 피가 마르는 것이다.

  11. 18  10:00  인도 북부,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의 총리인 텐진 테트론은  다람살라의 초라한 임시정부 집무실에서 고민에 빠졌다.모든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절대 비폭력을 외쳤지만, 중국이 다른 나라를 점령할수록 티베트의 독립은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진 테트론은 어린 시절에 본 장대한 티베트 고원을 회상했다. 챵탕(羌塘:북쪽이라는 뜻의 티베트말, 중국이름으로 짱베이:藏北)고원의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되는 야크의 무리,  멀리 보이는 눈덮힌 흰산, 일년 내내 불어오는 차가운 서풍.

  그는 어릴 적에 부친의 장례식을 보았다. 승려들이 북을 울리며 부친의 시체를 메고 언덕위로 올라갔다.  도중에 친척들은 모두 돌아갔지만 그는 몰래 다른 길로 따라갔다. 언덕 위에서는 승려들이 날이선 돌칼로 새들이 먹기 좋게 부친의 시체를 해부하고 있었다.한 젊은 승려가 커다란 돌을 내려쳐 두개골을 부수자 안구와 뇌수가 튀었다.  어린 그는 이 끔직한 광경을 보고 눈을 감았지만, 부친의 시체가 우주의 원소가 되어 되돌아 가고 혼은 하늘높이 날아가 또다른 윤회를 시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5세에 그는 승려가 되기 위해 라사(拉薩)의 부다라궁(布達拉宮)으로 들어갔다. 아미타불의 화신인 판첸 라마와 함께 1,300년간 티베트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인 관음보살의 화신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기도 한 부다라궁에서 불교를 연구했다. 1959년, 중국의 세번째 침공으로 14대 달라이 라마는 추종자들과 함께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리고 티베트 내에서 일어난 몇 번의 민중봉기, 특히 89년의 봉기에서는 8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군에게 학살당했었다.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비폭력을 외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텐진 총리는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세력과 은근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총리는 이제 일어설 때라는 확신이 생겼다. 티베트 독립은 달라이 라마의 노벨상 수상보다는 총에 의해 쟁취해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이었다. 더 늦출 수는 없었다.  텐진 테트론은 티베트 독립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악마가 영혼을 팔라고 해도 팔 수 있었다. 총리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인도 다람살라에는 실제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95년 현재 총리직은 텐진 테트론이 수행하고 있다. 89년의 티베트 민중봉기 때 8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사망했으며,그래도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간디와 같은 비폭력 노선을 고집하며 무장독립운동을 반대해 왔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99. 11. 18. 22:00  전라남도 여천군 안도, 남고지

  "아따, 행임도 참. 전쟁이 나서 난린디 낚시대를 다 갖고 오요?"

  "아 이놈아, 묵어야 살 거 아니냐?  자꾸 그러믄 감생이(감성돔의 전라도 사투리) 낚아도 니는 안줘뿐다 이."

  "아고야~ 시방 감생이 낚을라고요? 저 건너 연도에 총소리 나는거 안들리요? 지끔 낚시할 때요? 때가…"

  "선배님들 제발 조용해 주십시요."

  여수 남쪽의 큰 섬인 돌산도 남단에서 30분쯤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면 다도해의 끝 부분에 안도라는 섬이 있다.지금 이곳에는 95연대 해안 1대대 3중대 병력이 여수시에서 소집된 예비군과 함께 안도를 방어하기 위해 긴급투입되었다.

  현역병 1명에 예비군 2명씩 안도를 빙 둘러싼 해안초소별로 배치되었는데 예비군들의 군기는 말이 아니었다.  전쟁이 터져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비군들은 현역병들의 통제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현역병이 제지할라치면 당장에 싸가지 어쩌고 하면서 웃통벗고 달라드는 예비군들 때문에 중대장은  적 공격에 대한 방어에 신경쓰기보다는 예비군에 의해 사고가 터질까봐서 안절부절했다.

  저 멀리 연도(鳶島)에서는 아직도 한국군 1개 소대 및 예비군들과 중국 해병대간의 전투가 치열했다.이미 18:00시에 섬의 북단인 역포와 서쪽의 토명포에 상륙한 중국 해병대는, 비록 장비면에서는 뒤지나 섬 구석구석을 알고있는 예비군들의 저항이 의외로 완강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의 훈련을 받고 숫적으로도 우세한 중국 해병대들이 섬의 대부분을 장악해갔다.

  "선배님, 낚시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적이 바로 앞에 있지 않습니까?"

  현역병인 강 의섭 일병이 단호하게 제지했으나  예비군 병장인 김 의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낚시바늘에 크릴 새우 몇 마리를 꿰었다. 턱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모습이라 4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아직 20대 후반의 총각이었다.

  "니가 국민핵교 다닐 때 나는 전방에서 뺑이쳤다이~. 니보다 나가 더 잘 안다. 가만 앉어서 떼놈들이 오는지 망이나 잘 보랑께.이 새비가 왜 이리 안끼진대?"

  김씨는 절벽 위의 참호에서 나가지도 않은채 낚시대의 탄성을 이용해 줄을 던졌다. 크릴새우가 바늘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케미 라이트(화학 약품을 배합한 형광물질)가 허공을 가르며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연도에서 총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늦가을의 내림 감성돔 낚시꾼들로 보일 것이다.

  김씨는 찌없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찾아 찌와 봉돌이 없이 미끼만 던져서 미끼가 파도에 쓸려다니면 의심 많은 감성돔도 별로 의심하지 않고 미끼를 문다는 가정하에  여수 지역의 낚시꾼들이 자주 써먹는 낚시법이었다.

  "행임은 연도 사람들이 걱정도 안되요?"

  같은 동네 동생인 방 영훈이 핀잔을 주었다.연도가 중국군에 완전 점령되면 안도 차례라는 것은 너무도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낚시를 하는 김씨가 부럽기도 하고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연도는 벌써 끝장나뿌렀다. 여그도 얼마 못버티꺼여.어차피 우린 소모품 아니겄냐. 시간만 끌믄 되겄지.근디 오운이 니 헤엄칠 줄 알겄지, 이~?"

  김씨는 방씨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낚시대 끝만 주시하며 물었다. 낚시대 끝의 작은 케미 라이트가 스타라이트라는 상표명에 걸맞게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어둡게 빛났다. 그것은 파도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며 깜박였다.

  "아따, 나가 뱃놈 아니요. 헤엄은 칠 줄 아요만, 머달라고요?"

  상대적으로 젊은 방씨가 김씨에게 물었다.  강 일병도 궁금하다는 듯 김씨를 쳐다보았다.  김씨는 돌아보지도 않고 낚시대 끝만 노려보고 있었다.

  "안도는 째끄낭께 도망갈 데도 없을 것이다. 싸우다 안대믄 금오도로 튀야지 어쩌겄냐. 강 일병도 헤엄칠 줄 안당가?"

  강 일병이 머뭇거리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강 일병은 서울 출신이라 수영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에 살면 다들 수영을 잘 한다더니 정말 그런가 싶었다.

  김씨가 갑자기 긴장을 했다.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던 초리끝이 한 템포 빨리, 작게 움직였던 것이다. 강 일병과 방씨도 초리끝을 보았다. 밤에 다섯 칸(약 9미터)짜리 낚시대의 끝을 본다는 것은 낚시 문외한들은 힘들어서 두 사람은 자꾸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낚시대 전체가 휘었다.  감성돔이 미끼를 물고 바다쪽으로 도망가자 김씨가 낚시대를 챈 것이다. 김씨가 낚시대를 바로 세우자 낚시대 초리끝이 김씨 바로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김씨와 고기간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갸~ 총소리가 멈처뿌렀다! 인자 우리 차례구만 이~ "

  김씨는 고기와 실랑이 하면서도 연도쪽에도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이다. 강 일병이 서둘러 크레모어를 다시 점검했다.

  "삐까리(감성돔 새끼의 전라도 사투리)여~ 30 쎈치도 안되겄는디."

  김씨가 조심조심 낚시대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줄을 잡고 끌어올리자 하얀 비늘의 감성돔이 펄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감성돔은 성체로 성장한 후에도 성전환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동물이며, 맛이 좋고 낚시할 때 손맛이 좋아 낚시꾼들이 즐겨 잡는 어종이다.11월에는 월동을 위해 감성돔들이 피둥피둥 살이 찐 상태로  남해 먼바다로 나가는데, 낚시꾼들은 이 시기를 노려 감성돔 낚시를 많이 한다.

  "아따, 고놈 참 먹음직스럽구마 이~  쐬주하고 초장에 그냥, 카~~ "

  방씨가 고기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전쟁만 아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밤하늘의 유성처럼 수 십 개의 노란 불빛이 남쪽 바다에서 날아왔다.

  "숙여! 포탄이다."

  김씨가 낚시대를 세워 쥔 채 몸을 참호 속으로 숨겼다. 방씨와 강 일병도 멋도 모르고 따라 숨었다.  잠시 후 밤하늘을 찢는듯한 폭음이 섬 전체에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절벽 사이에 돌로 만든 이 참호의 30미터쯤 위쪽에도 포탄이 작렬했다. 돌이 굴러 내려왔다.

  "아까 본께 10분 동안 함포사격하든디 이번엔 어쩔랑가 모르겄네 이~ 오운아, 한번 내다 바라. 갠찮다."

  김씨가  낚시대를 접으며 방씨에게 말했으나  방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참호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포격이 잠잠해지자 김씨가 고개를 내밀고 바다 위를 살폈다. 어두운 밤바다 위에는 수 십 척의 상륙정들이 악몽속의 유령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85톤의 유친급 상륙정과 128톤의 유난급 상륙정들이었다.

  "온다!"

  중국 해병대는 안도의 남쪽 포구인 이야만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연도 9 km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인 작도(鵲島) 근처에 중국군 남해함대의 대부분이 몰려 있었다.  중국 항공모함 해신 2호에서 출격한 전투기와 헬기가 안도를 무차별 폭격했으며,  함대의 함포도 가만있지 않았다.특히 이야만의 방파제는 중국군 전투기들이 철저히 공격했다. 그들은 폭탄을 투하하지는 않고 주로 기관포로 공격을 했다. 방파제에 불꽃이 튀자 장비가 변변찮은 예비군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안도 이야만의 동쪽 남고지에 있는 참호에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중국의 대군 앞에 자신들만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참호 안에 던져진 감성돔이 펄떡였다.

  "우리 해군하고 공군은 머하는 거시여? 짱께가 이로코롬 들어와 뿌러도 되는것이랑가?"

  김씨가 투덜거렸다.  그로서는 아직 한국의 공군기 한 대, 경비정 한 척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따~ 서구지에 있는 것들 큰일나뿌렀네요.  중국놈들, 정말 징하게 싸 제끼요 이~."

  방씨가 함포의 집중 공격을 받는  이야만 서쪽의 서구지를 보고 한탄했다.  강 일병은 처음엔 웬 달구지 이름을 동네에 붙이나 하고 웃었으나, 서구지나 남고지의 고지, 또는 구지는  곶(串)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라도 사투리는 희안해서 명사의 모음까지 바꿔버린다. 강 일병이 3개월 전까지 근무했던 여천군의 한구미라는 작은 포구는 그 동네 사람들은 행귀미라고 불렀다. 모음조화에 역행동화가 너무 강하게 언어에 작용하는 것 같았다.

  안도의 한국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섬에 접근해오는 상륙주정과 수륙양용차에 박격포를 쏘아댔다.  몇 안되는 해안의 M-60 기관총들도 불을 뿜었다. 바다에 하얀 물보라가 튀었으나 중국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격포로 움직이는 상륙주정을 명중시키는 것은 황소가 뒷걸음질에 쥐를 잡는 확률과 비슷했다. 박격포를 쏘는 한국군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어차피 지금 밖에 포를 쏠 기회가 없어서 아낌없이 쏘고 있었다.

  뜻밖에도 쥐가 잡혔다.수 십 발을 발사하다 보니 어쩌다가 운없는 상륙주정 한 척에 명중한 것이다. 섬쪽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그 상륙주정은 같은 자리에서 몇 바퀴 빙빙 돌더니 침몰해버렸다. 그러나 중국군 상륙주정의 수는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이야만의 방파제에 도착했다. 호위하던 몇 척의 고속어뢰정은 섬 주위를 돌면서  섬에 사격을 가했다.

  이야만의 방파제에서는 중국 전투기들에 의해 공격당했던  예비군 소대가 방어를 하고 있었다. 방파제보다 더 높은 유난급 상륙주정에서 발사하는 기관포에 예비군들은 방파제 뒤에 숨어 꼼짝을 못했다. 몇 명의 예비군이 겁에 질려 방파제 안쪽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중국군 해병대원들이  상륙하자 예비군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서구지와 동고지의 높은 지대에서  쏘는 기관총들이 합세해 해병대원들을 쓰러뜨렸다. 예비군들이 수류탄을 굴렸다. 수류탄은 폭 7 미터의 방파제를 굴러 반대쪽으로 떨어지며 폭발했다. 중국군들도 수류탄을 반대쪽으로 굴리기 시작했다.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들이 방파제를 차츰 점령해가며 방파제 안쪽의 항구마을로 접근했다. 일부는 동쪽의 남고지쪽으로 전진했다.

  "이거 안대겄당께. 어차피 이쪽으론 상륙 안학겅께 우리도 고지로 올라가서 싸우더라고."

  김씨가 제안하자 현역병인 강 일병이 고개를 저었다.  명령이 없이는 죽어도 참호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김씨는 총소리가 가까와지는 것으로 봐서 아군이 밀리니 증원을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둘은 서로의 주장을 굽힐 수가 없었다.

  "그러믄 한 명만 올라가서 망보는 것이 어떠까요? 질 밑에 있응께 좀 불안하당께요."

  방씨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강 일병도 동의를 해서 방씨가 참호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방위 출신의 방씨가 투덜거리며 바위절벽을 타고 올라갔다.남고지 꼭대기에서 연이어 들리던 기관총 사격음이 그곳에서 난 폭음과 함께 멈추더니  근처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서구지 쪽에서만 총성이 울렸다.

  갑자기 방씨가 올라간 절벽에서 M-16의 연속 사격음이 들려왔다.아카보 소총의 연사음도 들렸다.수류탄의 폭음이 이어졌다. 김씨와 강 일병이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행임~ 빨랑 오랑께요. 중국군이요. 나 좀 살리주씨요!"

  방씨의 비명이 들리자 두 사람은 허겁지겁 바위절벽을 탔다.올라가보니 작은 해송 밑에 방씨가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강 일병이 서쪽을 향해 총을 쏘는 동안 김씨가 방씨를 끌어 안았다.

  "히히~ 시방 두 놈 잡았당께로. 헉~ 컥!"

  달빛 아래에서 방씨를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었다.배에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김씨가 보기에 방씨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방씨는 목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감생이… 동네 점빵에서 쐬주에다가… 히히… 흐억!"

  방씨가 선혈을 왈칵 쏟았다. 김씨도 참호 안에 버리고온 감성돔 생각이 났다. 아직 살아서 퍼득대고 있을 감성돔을 생각하니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초장이 있어야지, 임마. 날로 묵냐?"

  방씨가 미소를 지었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행임은… 낚시꾼이… 초장도 준비…. 안해오요?"

  방씨가 김씨를 비웃으며 김씨의 팔을 잡은 손을 서서히 내렸다. 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김씨는 방씨의 죽음보다도 전쟁통에 예비군으로 소집되면서도 낚시대는 가져왔는데  초장을 준비해오지 않은 자신이 스스로도 이상해 보였다.그러나 방씨가 아직 듣고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낚시꾼은 묵을라고 괴기를 잡는 거이 아니지 이~. 니는 돈벌라고 배 타냐?’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강 일병이 소총을 연사했다. 김씨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적을 향해 소총을 쏘았다. 오솔길을 따라 소리없이 접근해오던 중국군 몇 명이 쓰러졌다.  중국군이 응사를 했으나 김씨와 강 일병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후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사격을 한번 하고는 꼭 자리를 이동했다. 달빛에 보이는 중국군의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강 일병이 뛰어가다가 중국군이 발사한 총에 맞고 쓰러졌다.  김씨가 수류탄을 던져 중국군의 추격을 견제하며 쓰러진 강 일병을 보았다. 강 일병은 총탄을 가슴에 맞고 즉사했다. 김씨는 강 일병이 고통을 당하지 않고 죽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강 일병의 몸에서 탄창을 집었다.중국 해병대원들이 일제 사격을 하며 뛰어왔다. 갑자기 이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땅바닥에 넘어졌다.김씨가 후퇴중에도 나무 사이에 낚시줄을 연결한 것이다. 김씨는 코가 깨져 정신이 없는 해병대원들이 일어서고 있을 때 다시 수류탄 한 발을 더 던지고 북쪽으로 내달렸다. 잠시후 폭음이 일어나고 곧이어 중국군들의 욕지기가 들려왔다.

  11. 18  23: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안주에서 보고입니다. 중국군 3개 이상의 장갑집단군이 방어선을 뚫고 남진 중이라고 합니다.인민군과 국군의 연합부대는 안주전선에서 후퇴중입니다.  인민군 4군단은 고립되어 있고,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통신실과 연결된 단말기로  급전을 읽은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했다.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회의실 바로 옆의 통신실에서 통신장교가 뛰어왔다.양 중장이 통신지를 나꿔채듯 뺏아 읽었다.

  "제 7군단과 820 기계화군단이 후퇴 중  대규모 공습을 당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입니다.  공중지원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전상현 상장은 공습으로 전사했습니다."

  참모들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아직 중국 전투기들에 의한 평양 공습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전선에 돌릴 전투기의 여유가 없었다. 여수를 지원해야 할 울산의 전투기까지 평양방어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여수를 포기하죠."

  "안됩니다. 적에게 제 2전선을 허용하면 끝장입니다."

  "그래도 후퇴하는 우리 군을 엄호해야 되지 않소? 몇 개 안되는 기계화군단이 당하고 있어요. 전차가 없으면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단 말이오."

  후퇴하는 인민군들의 공중엄호 문제로 참모들이 다투고 있을 때 한국 육군 정 지수 대장의 통신용 단말기가 울렸다.또다른 급전이 들어온 것이다. 정 대장은 예상한 일이라는 듯 놀라지도 않으며 보고했다.

  "현재 돌산도 바로 앞의 금오도까지 점령당했습니다.중국 전투기들이 여수시를 폭격하여 한국화약 공장이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정 대장이 상황보고를 하자 몹시 피곤한 모습을 한 이 차수가 물었다.

   왜 하필 여수디요?

  인민군 해군 박 정석 상장이 그깟 소도시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듯 물었다. 국군 장성들이 공화국 수도인 평양보다 남반부 소도시를 더 중요시하는 것같아 불쾌했다.

  "여수시 북쪽 여천공단엔 커다란 화학공장과 비료공장이 있다네."

  이 차수가 부하 장성의 불만을 눈치채고 설명해주었다. 양 중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거기엔 자동차 공장도 있고 바로 그 위 광양에는 포항제철도 있습니다. 포항제철의 광양제철소지요.  게다가 서울까지 가는 송유관도 있습니다. 평양이 심리적으로 중요하다면 여수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입니다. 우린 둘 다 잃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전선이라면… 우린 또다른 전선을 유지할 병력과 장비가 없습니다."

  박 상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차수가 물었다.

  "남해함대의 위치는 어디오?"

  "지금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5 km 해상입니다.  적의 함재기에 의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심 현식 중장이 보고하자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되뇌었다.

  "만약 여수와 순천이 점령당하면… 어려운 싸움이 되겠습니다."

  양 중장이 회의실 앞쪽 중앙의 대형 모니터에 비친 상황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힘없는 손짓으로 상황판을 짚어나갔다.

  "31사단 2개 연대 병력이 순천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경남의 53 사단 병력도 속속 이동중입니다. 01:00시에 김해와 광주비행장에서 항공기들이 여수 상공으로 출동할 예정입니다."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마나 전과를 올려주느냐가 문제였다.  중국 해군의 대공 방어력은 너무 강했던 것이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은 궁금한 점도 풀리고  서해에 중국해군의 위협도 없는지라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며칠밤 잠을 못잔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김 대장."

  "예, 차수님!"

  이 종식 차수가 깊이 한숨을 쉬더니 인민군 육군의 김 대장을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김 대장이 눈치를 채고 깊이 고뇌하는 듯 했다. 잠시 후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격여단과 정찰연대를 투입하겠습니다. 후퇴전에 이들 부대를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반격전에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평양이 위험하니 할 수 없죠. 하지만 우리가 반격을 할 때는 어려운 전쟁이 될 것입니다."

  한국군 출신의 참모들이 의아해했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를 잘 알고 있는 정 지수 대장 마저 그깟 소규모 부대가지고 되게 생색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차수 등의 인민군 참모들에게는 패를 다 보여주고 도박하는 기분이었다.

  1999. 11. 19. 00:15  전라남도 여천군 안도, 동고지

  김씨가 헐떡거리며 동고지의 중대본부가 있던 곳을 보았다. 전기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백금만의 모래사장을 헉헉대며 걸어 동고지로 가던 김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모래사장의 북쪽 방파제 겸 선착장에 대형 배들이 많이 보였다.  배 안에서는 불이 켜진채로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형의 중장비를 하역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군이다!’

  놀란 김씨의 발이 얼어 붙었다. 뒤쪽 산에서는 아직도 자기를 쫓아오는 중국군들의 총성이 들리고 있었다. 앞쪽 넓은 모래사장에는 네 명의 군인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도저히 국군이나 예비군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 김씨는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무거웠고 다리와 심장은 떨렸다.달이 구름에 가려 윤곽만 보이고 있었다.

  중국군들은 기관총을 바다쪽으로 거치한 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전투는 거의 끝났으므로 긴장도 풀린 상태였다.  숲속에서 나는 총소리도 조만간 끝나서 다음 상륙을 위해 전 부대가 이곳에 모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을 걸어오는 사람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까 숲속으로 대변을 보러간 중사가 틀림없었다. 중사가 이상하게 총구를 들이댄 채로 걸어왔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 것을 보았다.

  중국군이 기다리던 중사는 총소리가 나고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놀라서 뒤를 보던 자세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는데, 불행한 분대원들 있는 곳에서 총소리가 나자 무서워서 숲을 나가지 못했다.  땅에 앉은 자세 그대로 설사가 나오자 그 소리에 중사가 깜짝 놀라 엎드렸다.

  ‘니기미, 니기미!’

  김씨는 총을 쏜 후 서쪽 숲으로 뛰었다.방파제의 배들에서 김씨를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 기관총의 탄알이 사방에 튀었다. 숲으로 뛰어들고 나서는 박박 기었다. 어디에도 아군은 없고 중국군 투성이었다. 기어가는데 앞에 뭔가 비린내를 짙게 풍기는 물체가 닿았다.어둠 속에서 보니 어느 예비군의 시체였다. 누군지 몰라도 평소에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이 섬까지 와서 외롭게 죽은 것이다.

  김씨가 시체를 타고 넘어갔다.이제 배에서 기관총을 쏘는 중국군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 일단 안심했으나  총격이 이어지자 무릎이 까지도록 계속 기어갔다. 모래밭쪽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중국해군이 숲에서 나온 중국군을 한국군으로 오인하고 사격을 한 것이다.

  ‘여기는 당산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무당을 뜻하는 당골래, 또는 당골네는 대학 다니던 친구가 단군이 변한 말이라고 가르쳐주었다.당산은 무당이 굿을 하던데서 비롯된 이름이었다.아마도 어부들은 바다가 무서워서 여기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한 모양이다.  작년 여름에 이곳에 낚시하러 왔을 때 무당이 굿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 더운 날에 땀도 흘리지 않으며 펄쩍펄쩍 뛰며 굿거리를 하는 중년의 무당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굿을 한 당골네는 중국군이 침공해올줄 알았으까?’

  김씨가 허튼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에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북서쪽에 있는 금오도는 무슨 일인지 조용했다. 지원사격도 안해주어 섭섭했다.

  ‘금오도에 있는 것들은 중국군이 상륙해 올 줄도 모른당가? 즈그들도 금시 당하껀디…’

  바위를 타고 내려가 해변에 도착했다. 파도가 밀려올 뿐 이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김씨가 한숨을 내리쉬며 총을 바위 위에 내려놓고 군화를 벗었다. 발을 바닷물에 넣어보니 의외로 따뜻했다. 파도가 맨발을 간지럽혔다. 금오도의 남동쪽 우실포까지는 1 킬로미터는 족히 되어보였다. 김씨가 바위를 내려가 가슴까지 물에 들어갔다.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11. 19  00:30  전남 여수시 국동, 바다아파트 15동 207호

  "어무니, 긍께 빨랑 피난 가야된당께요."

  "안대! 우리 새끼 아직 안들어왔는디 머덜라고 나가 피난가긋냐? 나는 안간당께. 느그들이나 얼릉 가 바라."

  "아따, 어무이도. 으하는 예비군이니께 군인들하고 같이 싸우고 있당께요. 전쟁이 다 끝나야 돌아오죠 이~. 인자 가장께요."

  노파는 막내 아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여수에만 살았기 때문에 6.25의 참화를 겪진 않았지만 여순반란사건을 겪어서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당시 여수에서 빨갱이로 몰린 젊은이들은 모두 국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수에는 67세에서 70대 초반의 남자는 외지인으로 보면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에 여수시민이 입은 피해는 심각했다.골목마다 넘쳐나는 수많은 처참한 시체들을  본 기억이 아직도 꿈에 악몽으로 나타나는 노파였다. 그 악몽의 시체들 사이에 늦게 본 작은 아들이 끼어있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고~~~ 전쟁 나가믄 죽는거여. 애고 내 새끼 으하야~~~ "

  노파가 통곡을 해댔다.  노파의 곡소리는 집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행기와 대공포 소리보다 컸다.

  "어매~ 어무이, 재수없게. 으하가 왜 죽는다 그르요? 걱정 마씨요.으하는 살아 오껑께."

  중년의 큰아들이 노파를 억지로 집밖으로 끌어냈다. 노파는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순순히 큰아들과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노파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무서워서 타지 못하고 꼭대기층이라도 걸어서 다니자, 큰 아들은 노모를 위해 2층으로 이사했다.노파의 큰아들은 동생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서 온 전화로 듣기로는 동생이 있던 안도는 이미 점령당했다고 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 아내가 자동차에 시동을 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고교생 딸이 창밖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매~~~~~ 나 팔자야. 으하는 어직 장개도 못갔는디, 아이고~ "

  큰아들이 노모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운전석에 앉은 큰아들은 백미러로 모친의 상태를 살피며 차를 시내쪽으로 몰았다.온 시가지가 불에 타고 있었다. 도로에 돌들이 굴러 떨어져 있었으나 점점 속도를 냈다.

  11. 19. 00:50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도 남쪽 해상

  3척의 군함이 밤바다 위에서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군함들은 엔진을 정지한 채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두 척은 이미 침몰했습니다. 2척 대파, 1척 반파입니다."

  한국 해군 남해함대의 기함인 율곡함의 함교에서 대공전 사관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중국의 대함미사일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에서 섬 사이에 숨어 대함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작전은 크게 빗나갔다. 중국 함대의 항공모함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남해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구식 기어링급 구축함 경기함(DD-923)과 역시 구식인 한국 해군의 유일한 알렌 섬너급 구축함인 대구함(DD-917), 울산급 프리깃함인 마산함(FF-955)과 경북함(FF-956),  그리고 분통 터지게도 최신예 한국형구축함인 퇴계함이 침몰 당하거나 운행불능이 되었다.

  특히 퇴계함의 대파는 충격이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대공방어망을 갖춘  퇴계함이 초전에 대파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퇴계함이 쇄도하는 중국의 대함미사일에  시 스패로(Sea Sparrow) 대공미사일 16발을 모두 발사한 다음에, 채프의 구름이 적 미사일의 레이더에 대한 방벽을 두르고 2기의 30 밀리 골키퍼(Goalkeeper) 대공포가 요격에 나섰지만, 몰려오는 대함미사일의 숫자는 함대의 대공방어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기함인 율곡함은 반응이 신속한 수직발사기 체계를 갖춘 대공미사일 SM-2의 덕을 톡톡히 입었다.방어망을 뚫고 온 미사일도 300미터 전방에서 20 밀리 개틀링건이 간신히 명중시켜, 미사일 파편에 의한 약간의 손해만 입은 상태였다.

  퇴계함이 명중한 다음에야 중국 대함 미사일의 최종유도가 적외선 유도방식인 잉지(鷹擊)-2 대함미사일이라는 것을 간파한 대공사관이 플래어를 대량으로 발사하고 함대를 정지시켰으나, 이미 늦어 5척의 대형함이 중국 함대를 공격도 못해보고 파괴당한 것이다. 모함을 잃은 퇴계함의 슈퍼 링크스(Super Lynx) 헬리콥터가  기함인 동급의 율곡함에 착륙하여 급유를 받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 위에서는 소방선들이 퇴계함의 불길을 잡고 있었다.

  "적 함대의 위치는 아직 파악 못했나? 01시부로 예정된 아군기들과의 공조체제 유지는?"

  함대사령관은 냉정하다기 보다는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는 듯 보였다. 율곡함의 함장이 보고했다.

  "적 함대 위치 완전 파악됐습니다.하픈을 갖춘 모든 함정에서 데이터 입력을 완료했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거리는 40km, 항모 1척과 구축함 7척, 프리깃함 9척, 기타 대형양륙함 등 20척입니다."

  함장의 보고를 들은 함대사령관 윤 도선 소장은 분통이 터졌다. 한국 해군의 대함미사일인 하픈의 사정거리는 130km, 중국함대의 수상타격력의 핵인 레이더 유도 대함미사일 잉지(鷹擊)-1의 사정거리는 겨우 40km이다. 그러나 중국함대는 함재기와 제주도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을 이용해 공대함미사일로 한국 해군의 남해함대를 공격한 것이다.

  함장이 자신을 놀리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 윤 소장은 불쾌했다. 함장은 중국 함재기들의 공격권에 접근하지 말고, 명중율은 떨어지더라도 원거리에서 공격하길 권고했었다.  함대사령관은 자신의 고집대로 접근하다가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 부끄러웠다. 그러나 자신이 함대사령관인 것이다.

  "아군 공격기 편대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순천 상공에 도달,발사 직전입니다."

  통신병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이미 함대의 위치는 서로 노출되었으니 이제 공격만이 남은 것이다. 아군 공격기 편대보다 함대의 미사일이 더 많은 전과를 올려주기를  바라면서 함대용 통신기의 마이크를 잡았다.

  "전 함대 대함미사일 발사!"

  율곡함에서 하픈 함대함 미사일이 8발 연속 발사되었다.  탑재헬기인 웨스트랜드社의 슈퍼 링크스에서도 밤하늘에 2기의 하픈을 발사했다.평상시의 탑재무기인 4발의 시 스쿠아(Sea Skua) 대함미사일 대신 오늘은 보다 대형인 하픈을 발사했는데,발사순간 앞부분이 뾰죽한 링크스 헬기가 화염에 휩싸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함정에서도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함대에 소속된 2척의 포항급 코르벳함에서는 보다 소형의 엑조세를 발사했다. 엑조세는 사정거리가 42 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직선코스를 취했다.욕지도의 상공에 불꽃놀이가 벌어진듯 바다 위 하늘이 찬란했다.

  11. 19  01:00  전남 여천군 연도 동쪽 바다

  상륙전 지원에 바쁜 중국 함대에 먼저 대공 경보가 울렸다. 여수시에서 40km 북쪽인 순천의 바닷가(광양만) 상공에서 발사된 48기의 하픈이 발사순간  제주도 상공에서 비행중인 중국 조기경보기의 레이더에 잡혔다. 즉시 미사일 요격 체제에 들어간 중국 함대는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요격지점인 여수 남쪽 해상에 도달하자 한국 공군의 F-16기들이 발사한 공대함미사일이 오기도 전에 중국 전투기들을 노리고 돌산도의 최고봉인 천왕산(385 미터)에서 대공미사일이 날아왔다. 여수시가 폭격을 당하는 동안에도 숨죽이고 있던 대공미사일 기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선 것이다.

  중국 전투기들이 갑자기 날아온 대공미사일을 피해 뿔뿔히 흩어지고, 미사일 요격편대의 호위를 맡은 전투기들이 미사일 기지를 향해 날았다. 상공에서 3개의 불꽃이 피어날 때 천왕산 정상 부근에서도 불꽃이 일어났다.  이때 공대함 미사일들이 중국군의 대규모 편대 아래를 통과하여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중국 전투기들은 공대함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남쪽으로 비행하면 함대로부터 오인사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함대에 미사일 공격을 보고하고  한국 공군기들을 노려 북진했다. 갑작스런 지대공미사일의 출현으로 중국 전투기들은 임무인 대함미사일 격추를 하나도 못해낸 것이다.

  중국 함대 북쪽에서 하픈이 날아왔다. 함대에 경보가 다시 울리고 구축함들이 대공방어에 임했다. 루다급 구축함 카이펭의 후미에 있는 8연장 대공미사일 발사기에서  크로타일 단거리 대공미사일이 연속 발사되었다. 지앙웨이급 프리깃함 화이난과 통링에서는 PL-9 단거리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이 능력을 넘는 공대함 공격을 받았듯이 이들도 역시 대공방어력을 넘는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었다.

  공대함 미사일의 접근과 동시에 함대함 미사일의 경보가 울린 것이다. 파도 위를 스치듯 날아오는 하픈과 엑조세의 대군을  제주도 상공의 조기경보기나 함대의 초계기 모두가 발견을 하지 못했다. 중국 함대는 북쪽과 동쪽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의 십자포화에 걸려들었다. 함대가 최종방어에 돌입하여 채프로켓을 마구 쏘아올리고 20밀리 대공포가 불을 뿜었으나 미사일을 막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북쪽 해상에서 대공방어에 임하던 카이펭이 하픈에 명중했다. 227 kg의 탄두가 이 불행한 3700톤급 구축함의 흘수선을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함수부분이 두쪽이 나고 폭발이 이어졌다. 화이난과 통링의 두 프리깃함은 공대함 하픈에 명중한 후  함대함 하픈까지 명중하자 곧바로 침몰했다.다른 루다급 구축함 주하이와 지앙후이급 프리깃함 마오밍도 각각 2발의 하픈을 맞고 침몰중이었다.

  해신 2호는 악착같이 버텼다. 4기의 20밀리 개틀링건이 3기의 하픈을 요격했으나 최종 돌입코스가 복잡한 엑조세는 막지 못했다.함수 부분에 명중해 순간적으로 개틀링건의 사격관제장치가  작동을 멈춘 순간 다른 3기의 하픈이 쇄도해 왔다.  해신 2호가 연속 불길을 뿜으며 폭발했다. 그러나 해신 2호는 덩지에 걸맞게 이 정도의 타격에 침몰하지는 않았다. 함체의 7군데로부터 침수가 되며 항행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늦가을의 밤바다 위에 화재가 발생한 5척의 중국군함이 표류하고 있었고 바다 밑에는 모두 7척의 중국군함이 진흙바닥 위에 가라 앉아 있었다.

  11. 19. 01:10  전라남도 구례군 상공

  항모의 대파 소식을 들듣 화가 난 중국 전투기들은  한국 전투기들을 좇아 순천을 지나 지리산 상공에 다달았다. 오는 도중 경상남도의 남해군과 전라남도의 승주군에서 날아온 구식 나이키(Nike) 지대공미사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러시아제 수호이-27을 함재용으로 개발한 수호이-27K는 애프터 버너를 가동하여 순식간에 F-16을 따라잡았다.

  공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에 F-16이 들어오자 막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수호이 편대의 뒤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편대의 후미에서 따라오던 3대의 수호이가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고 있었다.  불길 사이로 수십 개의 작은 불빛이 날아오는 것이  수호이 전투기의 조종사들에게 보였다. 신형 중거리 대공미사일인 암람(AMRAAM)이었다. 이제서야 후방감시레이더가 미사일 경보를 발했다.  그리고 20여기의 F-16 전투기가 레이더에 나타났다.  이들은 광주비행장에서 출격하여 수호이 전투기들이 올 때까지 지리산 뒤쪽에 숨어있던 매복부대였다.

  도망가던 F-16들도 선회하여 단거리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고는 다시 동쪽으로 비행했다. 수호이 전투기들은 도망가는 F-16들을 포기하고 미사일을 피하기 바빴다. 그 사이에 5기의 수호이가 격추되었다.미사일을 피하느라 신경을 못쓴 사이에 광주에서 출격한  이 F-16 전투기들이 수호이 편대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지리산 상공에 공중전이 벌어졌다. 대형의 수호이들은 근접전에서는 별로 잇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예산이 부족해 미사일 사격훈련보다는 근접전훈련을  더 많이한 한국공군 조종사들의 날렵한 F-16 전투기들이 계속 킬 마크(kill mark)를 올렸다. 연료가 떨어진 수호이 전투기들은 눈물을 뿌리며 제주도 상공으로 후퇴했다.

  후퇴할 때 F-16이 날린 미사일에 2대가 추락하긴 했지만 속도가 빠른 수호이 전투기들은 F-16을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해신 2호가 표류중인 여수 근해를 피해 수호이 편대는 보성군 상공을 지나 제주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연료는 약간의 여유가 남아있었으나 또다른 공중전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때 정면에서 F-5의 편대가 나타났다.

  목포비행장은 전쟁이 나고 제주도가 중국에 점령당하자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공군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다.  목포에서 출격한 12기의 F-5는 각각 2발의 스패로우를 발사하며 계속 날아왔다.중국 전투기들의 편대장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하지 말고 회피하라! 연료가 없어!"

  편대장은 최강의 전투기인 수호이-27K가  소형의 저성능인 F-5전투기에 쫓긴다는 것에 자존심 상했으나, 한 대의 전투기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처음 항모인 해신 2호에서 출격할 때는 50기였으나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날아가야 하는데 연료가 아슬아슬한 지금 싸구려인 F-5를 상대할 여유는 없었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편대장의 명령에 따라 저공비행에 들어갔다.  F-5 전투기들이 악랄하게 뒤쫓았다. 또다시 7기의 수호이가 화염에 휩싸여 보성군의 너른 차밭에 추락했다.

  11. 19. 01:15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도 남쪽 해상

  남해 함대 사령관 윤 도선 소장은 함교 밖에서 예인선에 끌려가는 퇴계함을 보고 있었다. 퇴계함의 함장은 전사하고 그 외에도 37명이 전사, 53명이 행방불명되었다.

  ‘내가 저 함에 탑승했엇다면…’

  퇴계함은 97년에 취역한 한국형구축함의 2번함이었으며 6개월 전까지 남해함대의 기함이었다. 3번함인 율곡함부터는 대공미사일을 SM-2로 바꿨지만, 먼저 건조된 퇴계함은 그대로 골키퍼 30밀리 대공포와 시 스패로 대공미사일을 쓰고 있었다.

  ‘결정적인 차이야…’

  윤 소장은 작년에 퇴계함을 수리할 때 대공미사일 체계도 바꾸기를 건의했었다. 그러나 예산상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것은 이러한 결과로 나타났다. 발사한 미사일의 전과가 궁금하여 함교 안으로 들어왔다.

  "12척 격침 및 대파입니다. 해신 2호는 항행불능입니다."

  함대의 통신장교가 보고했다. 공군과의 합동작전 치고는 시원치 않은 결과였다.

  "적의 대공방어망은?"

  재공격을 결심한 사령관이 통신장교에게 물었다.  통신장교가 작전장교와 상의하여 보고했다.

  "단거리 대공미사일을 갖춘 구축함과 프리깃함은 모두 격침되거나 대파되었습니다.  대파된 적함에 다시 명중할 우려도 있지만 함재기가 없어진 지금 적 함대의 대공방어망은 사실상 분쇄되었습니다. 현재 적 잔여함대의 위치가 파악되었습니다.조기경보기에 따르면 아직 제주도에서 중국전투기가 출격하지 않고 있답니다."

  통신장교의 보고를 들은 함대사령관은 연도 동쪽의 작도에 파견된 해군 UDT 부대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방수처리된 통신기를 보유한 UDT 대원들은 무인도인 작도의 해변에 숨어 중국함대의 위치를 보고하고 있었다.  중국의 헬기들이 작도를 수색했지만 그들은 당연히 발견되지 않았다. 섬이 아닌, 섬에 부속된 바닷속 바위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공격하라."

  남해함대에서 또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첫번째 공격을 교훈삼아 먼저 포항급 코르벳함들의 엑조세가 먼저 발사되고,  그 이후에 하픈이 발사되었다.엑조세는 파괴력에 있어서 하픈에 못미치지만 뛰어난 시 스키밍(sea skimming) 능력은 공격받는 함대의 대공망을 휘젓기에 충분했다. 100 여발에 가까운 엑조세와 하픈이 벌거벗은 중국 함대를 향해 날아갔다.

  11. 19  01: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제 15 전투비행단의 보고입니다. 3파에 걸친 공격으로 적기 50대 중 42대를 격추했습니다. 아군 피해는 F-16이 5기, F-5가 3기입니다."

  "남해함대의 보고입니다. 적 함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침투조에 의하면 중국함대가 있던 해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탑재헬기들이 소형 대함미사일을 싣고 적 소형함정들에 대한 소탕전에 들어갔습니다."

  이 호석 공군 중장과  심 현식 해군 중장의 보고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실로 오랜만의 승리였다.

  "제주도를 탈환해야 되는데…  우리는 수송능력이 없어서 힘듭니다. 제주도로부터의 공습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피스쪽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양 중장이 한숨을 쉬었다. 외국군에게 영토를 잃고 이를 다른 외국군에게 수복시켜 달라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피스의 연락관 짜르가 한국인들을 안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참모들은 제주도로부터의 공습은 계속 문제되겠지만 이제는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인 상륙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그래도 이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스의 전력은 잘 모르지만 짜르가 설명한 장비와 인원이라면 제주도 수복은 걱정없어 보였다. 중국본토에서 지원하러 오는 적기는 한국군이 맡기로 합의했다. 심 중장이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된 작전을 설명했다.

  "안주쪽이 더 걱정이군요."

  이 차수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진 것을 본 정 지수 대장이 큰일이라는 듯 참모들을 보며 말했다.

  11. 19  01:35  전남 여천군 금오도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 금오도에 도착한  김 의화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오랜만에 헤엄을 치니 몹시 힘들었다. 바위틈에서 보니 해상에는 불타는 중국 함선들이 있었고 섬의 해변에서는 어뢰정과 상륙주정들이 중국 해병대원들을 탑승시키키 바빴다. 중국군이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기껏 도망친 금오도도 중국군에 점령당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중국군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오도의 남쪽 포구인 십장을 피해 직포쪽으로 걸었다.

  중국군의 총에 맞고 죽어간 방씨가 생각났다. 강 일병도 용감한 군인이었다.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민가를 찾아 옷을 구해입기로 했다. 남해바다라고는 하나 밤바다는 너무 추웠다.  게다가 자신은 수영을 하여 물에 젖지 않았는가?  상체를 숙이고 조심조심 직포의 마을 있는 곳으로 향하던 중 어두운 길가에 국군의 시체  2구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포로가 된 후 사살당했는지 양손이 뒤로 묶여있었다.김씨가 주변을 살피다가 K-2소총과 탄창을 주워 탄띠에 가득 채웠다.  팬티 차림에 탄띠를 매고 총을 든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문득 시체를 돌아보고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니기미, 나가 왜 미안하다냐? 살아서? 나도 싸울만큼 싸왔다고…’

  길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잽싸게 수풀 속으로 숨었다.잠시 후 어둠 속에서 중국 해병대원들의 후퇴하는 행렬이 보였다.  가시가 맨살을 찔렀다.

  ‘나가 느그들을 기냥 보내믄 사람이 아니지 이~~ ‘

  중국군 1개 분대가 김씨가 숨어있는 숲을 지나갔다.김씨가 살짝 길로 내려와서 수류탄 2개의 안전핀을 벗기고 하나씩 중국군을 향해 높이 던졌다.하나는 땅에서, 하나는 공중에서 폭발했다. 발포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저항하는 중국군은 없었다.  길 한쪽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씨가 부상당한 중국군을 발견하고 쏠까 말까 망서렸다.  마음 속에서 방씨와 강 일병이 쏘라고 채근했다.김씨는 차마 쏘지 못하고 숲으로 다시 들어갔다. 바닥의 돌이 발을 찔렀다.

  이젠 어떡할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소리가 멈춘 이 섬은 전쟁터 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달이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풀을 뜯어 자리를 만들고 차분히 앉아서 생각했다. 이 섬엔 국군도 없고 돌산도까지 헤엄쳐 가기는 너무 멀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으실으실 몸이 떨렸는데 섬 모기들이 살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다.  남해안 섬모기는 12월까지 활동하는 놈들이다.  두 개의 섬에서 싸웠으면서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는 자면서 모기에게 피를 빨리고 있었다. 그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1999. 11. 19  07:00  동지나해, 제주도 남방 80 km

  짙푸른 동지나해를 헤치며 함대가 조용히 북상하고 있었다. 러시아식의 대형 전투항모 1척과, 보다 소형이지만 항모라고 부를 수 있는 미국식 강습상륙함 1척, 그리고 최신형 순양함과 프리깃함들, 양륙함, 기타 지원함으로 구성된 이 군함들의 마스트에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푸른색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국기가 아닌 반전전사 그룹 피스의 깃발이었다. 평화를 사랑하며 2차대전 때문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일단의 지식인 그룹에서 출발한 반전그룹 피스는,  어느덧 군대를 보유할 정도로 세력을 신장하여 국가들간의 전쟁에 간섭하려는 것이다.

  상륙함 갑판에 나온 병사들은 가지각색의 인종으로 구성되었다. 인종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이들의 구성은 과연 언어소통이 될까 걱정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은 피스 소속의 국제지원병과 용병들이었다. 국제지원병들은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이 있을 정도의 지성인들이라 외국어에 능숙했으며, 용병들은 어떠한 언어에도 잘 적응했다. 네팔 출신의 구르카용병들도 그들의 직업상 당연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모국에서의 엘리트일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프로였다.

  네팔 국민은 네와르족, 구릉족, 마가르족과 히말라야 등반에서 뺄 수 없는 존재인 셰르파족으로 구성되어있다. 현재의 샤하왕조는 인도의 크샤트리아(무사계급) 출신이며 구릉족이다. 유명한 구르카용병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협력했던 구릉족이 주축이 된 용감한 전사들이다. 네팔에 구르카족이라는 부족은 없으며, 단지 구릉족의 전사들이 중심이된 용병이 바로 구르카용병이다.

  2차 대전 중 이태리 전선에서의 구르카 용병들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총알이 떨어지자 공격해오는 독일군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끝까지 싸웠다. 이들에게 전장은 신이 부여해주신 직장이었으며 나중에 용병이 될 후세들의 보다 나은 작업환경을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인도의 시크교도들이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면 구르카 용병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들로 이름이 났다. 구르카용병들은 산업이 낙후한 네팔에서는 농업과 관광산업에 이어서 제 3의 외화 수입원이 되고 있다. 홍콩정청의 주요 시설 경비에는 이들 구르카 용병을 썼다.

  함대는 빠른 속도로 북진하고 있었다. 이들의 유도는 2기의 조기경계 경보기가 맡았고, 초계기와 대잠헬기들이 바다속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여 저공비행하고 있었다.

  1999. 11. 18  16:05 (워싱턴 시각)  미국 워싱턴, 호텔 플라자

  오후가 되자 호텔 플라자 1층에 있는 컨셉션룸은  각국의 보도진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결코 과장하는 법이 없던 그린피스가 웬일로 중대선언을 한다고 통보해서 각국 특파원들은 그린피스가 이번 한중전쟁에 관련하여 어떤 깜짝 놀랄만한 시위를 하지 않을까 예측되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한중전쟁은 하나의 재미있는 게임에 불과했고 여기에 환경단체의 시위까지 가세한다면 아주 훌륭한 볼거리를 시청자들에게 줄 것 같아서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시간이 되자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나타났다. 그린피스 의장인 프라타 야콥손이 먼저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그는 바로 반전전사 그룹 PEACE의 로스엔젤리스 회의 때 모습을 보인 쏘르였다.  쏘르는 한중전쟁이 불러올 환경재앙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며  중국이 한국에 대한 침략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연설을 마치자 그는 의자에 앉아있던 단단한 체구의 중년 신사를 소개했다.

  "이 분은 저희 그린피스의 상급단체인 PEACE의 의장이신 미스터 카를 입니다. 이번 한중전쟁에 연합군으로 참전하고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여러분을 모신 것입니다. 미스터 카를!"

  기자들이 웅성거렸다.국제민간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다른 단체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고 PEACE라는 조직은 들어 보지도 못한 단체였다.  또한, 이들이 중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여러분…"

  카를이 보도진들의 흥분을 가라않히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고 보도진들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ENG의 조명이 비치고, 이미 어떤 기자는 휴대전화로 본사에 특종을 송고하고 있었다. 유선방송인 CNN은 즉시 생방송을 개시했다. 카를이 묵묵히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우리 반전전사 그룹 PEACE는 오늘부터 침략군 중국에 대항해 한국과 연합하여 전쟁을 수행키로 하였습니다.이를 위해 한국에 전투병력을 급파하였고, 해군과 공군도 한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카메라의 불빛이 연이어 터지자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안경을 고쳐쓰고 계속 읽어나갔다.

  "이들은 의용병과 일부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계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앞으로의 계속된 중국의 침략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참전이 이루어진 것을  무척 슬프게 생각합니다. 이만 발표를 마칩니다."

  카를이 발표를 마치자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퍼부어대기 시작했고, 일부는 특별방송이나 호외를 준비하기 위해 본사에 연락하여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를께 질문입니다. 이 조직은 언제 생겼죠? 인적 구성은?"

  "병력수는? 무장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한국군에 배속되어 작전할 계획인가요?"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 : 비정부기구)가 국가간의 전쟁에 개입해도 됩니까?"

  "혹시 동지나해에 있는 소속 미확인 함대가 피스의 함대입니까?"

  "미국은 중국에 대규모로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데, 혹시 미국과 충돌하지 않을까요?"

  기자들이 카를에게 몰려와 질문공세를 퍼붓자 카를이 딱 한 마디만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회견장을 떠났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직업이고,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이만, 안녕히!"

  "잠깐만요.  피스에서 돕더라도 한국은 결국 중국에게 점령되지 않을까요?"

  당돌한 여기자의 질문에 카를이 멈춰서서 그 여기자를 보았다. CNN의 유명한 흑인 민완기자 캐럴 골드버그였다.금발의 흑진주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름다운 금발과 멋진 흑갈색의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녀는 미모보다는 능력으로 방송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가씨는 어쩔 수 없이 강간당할 위기에서는 저항을 포기하오? 끝까지 항거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봤다 칩시다. 그럼 나는 강간범이 무서워 아가씨를 버리고 도망가야 옳겠소? "

  여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카를이 다른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사무실로 돌아가 세계전도를 펴서 중국이 한국을 점령할 경우 세계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 보시오.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오."

  1999. 11. 19  07:20  남지나해, 남사군도 근해

  북반구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적도 부근인 이곳은 아직도 여름이었다. 아니, 남지나해는 상하(常夏)의 바다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순항하는 중국해군의 지앙후이급 프리깃함 안슐함은 남지나해를 통해 북진하는 상선과 유조선들을 임검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제 밤에는 정선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하던 한국상선 한척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침시켰다.한국으로 향하는 상선이나 유조선은 모두 나포와 격침의 대상이 되었다.  이 해역을 지나 한국방향으로 항해하던 선박들은 중국의 위협과 20배로 뛴 전쟁지역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호주 남쪽으로 우회하든지 한국행을 포기해야 했다.

  안슐함의 승무원들은 따분하기는 하지만 위험이 별로 없는 이 임무를 좋아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조선 남부에 상륙작전 중이던 남해함대가 크게 당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전해들은 승무원들은,  조선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조선의 전황이 더 나빠져 자신들의 함정도 조선전쟁에 투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멀리 미국 텍사코사의 거대한 석유시추선이 보였다. 필리핀과 계약했던 석유회사들은 모두 철수하거나 중국과 재계약을 해야했다.중국은 이제 원유수출국 중의 하나가 되었다. 최근 남사군도 곳곳에서 유징이 발견되어 다국적 삭유회사들의 중국방문이 잦아지고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었다.

  안슐함에서 갑자기 비상사이렌이 울렸다. 함이 속력을 내고 우측으로 급선회하면서 6기의 중국제 2연장 37밀리 대공포가 허공으로 불을 뿜었다.  수심이 얕은 이 해역에서 좌초될 걱정은 접어둔 채 전투속도로 내달렸다. 함이 순식간에 섬광에 쌓인 채 폭발했다.함교부분이 완전히 날아간 이 1700톤급 프리깃함은 불에 타며 서서히 함수부터 침몰했다. 주변 해상에는 어떠한 배도 보이지 않았는데 안슐함이 갑작스런 미사일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다.

  침몰하는 프리깃함의 북쪽 35km 바다 속에  한 척의 잠수함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국의 한국 해상 봉쇄에 맞서 반전전사 그룹 ‘피스’ 가 역으로 중국 해상 봉쇄에 나선 것이다.

  1999. 11. 19  07:40  제주시, 중국 인민해방군 제 5해병사 사령부

  "레이더 기지에서 보고입니다. 제주도 남방 53 km 지점에 정체불명의 선단 계속 북상 중! 침로는 서귀포이며 함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통신원이 보고하자 사단장인 톈 대좌가 의아해 했다.

  "어느 나라 함대야? 규모는?"

  "모르겠습니다.  한라산의 레이더로는 파악이 힘들다고 합니다. 모두 15척의 대형 선박이 나타났습니다. 초계기를 날려 보시는 것이…"

  사단장이 툴툴거렸다. 조선반도 남쪽에서 상륙작전을 하던 함대가 전멸당해 제주도를 지켜줄 해군함정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해군 전투기들은 제주도와 조선반도 남쪽 사이의 바다  상공에서 치열한 공중전 중이었다.

  ‘남중국해의 일부라고 하지…’

  사단장이 한반도 남해의 국제적 명칭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전에는 F-16 전투기 한 대가 중국의 대공망을 뚫고 날아와  중국전투기들이 출격 채비 중인 제주공항의 활주로에 마인릿(ISCB-1 MINELET)폭탄을 투하하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뒤늦게 공항 수비대의 대공미사일이 발사되어 F-16은 바다로 추락했지만,  활주로 두 개가 못쓰게 되고 전투기 3기가 파괴되었다. 지금도 활주로에는 1분에 하나의 비율로 소형 자폭탄이 폭발하고 있어서 복구에 나선 공병대는 활주로에 접근도 못했다.

  "조선에는 예비함대가 없으니 미국이나 일본함대겠지. 아마 돌아갈거야. 그리고 초계기는 지금 바빠!"

  사단장이 미국은 이 전쟁에서 우호적인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일본은 이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상부에서는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으나 전세가 상당한 정도까지 기울지 않으면 일본이 절대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정보분석을 했고 사단장도 이를 믿고 있었다.

  사단장은 초계기가 보내온 한국 남해함대의 위치를  상황판과 대조하며, 한중간의 공중전 상황도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 조선의 남해함대는 중국의 공군이 무서워 제주도에 접근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투기는 문제였다. 방금 또 한 대의 수호이가 조기경보기의 지원을 받는 한국공군의 AMRAAM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이 상황에서 초계기를 남쪽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조기경보기가 없는 지금 초계기는 제주도를 지키고 있는 제 5해병사에 있어서 목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1999. 11. 19  07:45  남지나해, 제주도 남방 50 km

  "출격!"

  피스함대 항모의 함교에서  아침해를 바라보며 거친 구렛나루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의 전사 싱이 외쳤다. 중국의 한국침공을 미리 예상하여 남지나 해상의 무인도 사이에 숨어 있던  반전전사 그룹 피스의 함대는 급거 수송기편으로 날아온 싱을 사령관으로 맞아 한반도를 향해 북진중이었다.

  한국의 통일참모본부에 연락관으로 가있던 짜르로부터 한국군이 제주도 수복을 요청해왔다는 사실을 새벽에 알려왔다.중국에 대한 해상봉쇄에 나서기 전에 지상병력의 한반도 상륙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피스함대는 함대와 지상병력이 분리되지 않고 작전을 할 수 있어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제주도 점령전에서의 작전지휘권이 일원화되었고 함대가 보유중인 화력과 병력으로는 제주도를 쉽게 점령할 것으로 보였다.

  싱이 통일참모본부에서 보내온  제주도의 세밀한 지도와 중국군 현황을 다시 검토했다. 제주도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병대 1개 사단병력이 주둔중이었으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전투기들이었다.제주공항에 있는 1개 연대의 전투기뿐 아니라 상하이에 기지를 둔 해군항공대의 전투기들이 날마다 한반도 남쪽 지방을 폭격하고 있었다.

  여천의 한국비료 공장뿐 아니라 옥포의 대우조선소도 당했다. 보병전투차와 대공포차를 생산하는 광주의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K-1전차를 생산하는 창원의 현대중공업 공장이 중국 전투기들의 폭격에 호되게 당해서 전차와 보병전투차를  빨리 보내달라는 전선으로부터의 빗발치는 수요를 이제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싱이 보기에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한국에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중국에는 아직 무한정의 병력과 장비가 있는 반면 한국군의 전력은 사흘만에 거의 바닥이 난 것이다.특히 해군과 공군의 소모가 심했다. 이들은 장기간의 교육기간이 필요하다는 참모의 설명이 없더라도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제주도였다. 중국 산둥반도로부터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항속거리의 제한 때문에 한반도에 사실상의 위협이 되지 못했으나 제주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달랐다.그리고 상하이쪽에서 출격한 중국 해군소속의 공격기들은 제주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재급유한후 한반도 남부를 폭격했다.  그러나 한국군은 97년의 미군철수 후 해병대의 수송수단이 부족해 제주도 상륙작전은 엄두도 못냈다.  민간인 배들을 징발할 수 있었으나 속도가 느린 배들로 상륙작전을 펼치다가는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어 통일참모본부에서도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이 때 피스가 나선 것이다.

  항모의 스키점프대를 박차고 첫번째 전투기가 이륙했다.  7만톤급 러시아제 항모에서 미그-29를 함재형으로 개량한 러시아제 전투기가 이륙한 것이다. 좌측의 경사갑판에서도 두번째 전투기가 잇달아 날았다. 두개의 비행갑판에서 모두 24기의 미그전투기가 이륙한 후 미국제 F/A-18 편대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토네이도 전폭기 편대가 이륙했다.

  러시아에서 본격항모 제 3호로서 제작되었으나  경제사정상 취역하지 못했던 이 불운한 항공모함은 다국적인들의 손에 넘어가 다국적의 전투기를 이륙시키고 있었다.통상동력의 쿠즈네초프급과 달리 이 항모는 러시아 최초의 본격적인 원자력항모였으며, 기존의 4만 5천톤급이 아니라 진짜 ‘본격 항모’라고 부를만한 7만톤급의 대형함이었다.러시아의 항모 건조 사상에 맞게 이 항모도 자체무장은 대단했다. 함대함, 함대공, 대잠로켓 등, 현대 해상전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무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뒤따르던 강습양륙함에서 20여기의 시 헤리어 전투기를 날렸다. 선두의 미그기가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발사되는 레이더 전파를 잡아 대(對) 레이더미사일(ARM)을 날렸다.

  11. 19  07:50  제주시, 중국 제 5해병사 사령부

  "남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옵니다! 레이더 파괴용 미사일입니다.레이더는 즉시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제주도 40 km 남쪽에 전투기 70여기입니다!"

  통신병이 백록담 정상의 레이더기지로부터의 급전을 받아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사단장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럴리가… 조선에 또다른 함대가? 그리고 항모가? 설마, 그럴리가 없어!"

  "레이더 기지가 파괴됐습니다."

  통신병이 급박하게 보고했다.  사단장은 한국공군과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전투기 편대를 남쪽으로 돌릴까 고민했다. 즉시 상하이에 있는 해군 항공대에 지원해달라는 급전을 띄운 다음,  공항에 남아있는 전투기들을 모두 출격시켰다. 하나 밖에 없는 활주로에서 전투기를 모두 발진시키는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광주와 여수비행장에서 출격한 한국 공군과 대치 중인 1개 대대를 뺀 나머지 제주공항의 중국전투기들이 백록담을 넘어 남쪽을 향했다. 이들은 7시간 전에 여수쪽을 치던 중국함대와 함재기들이  전멸당하자 제주도를 방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급파된 해군항공대였다.모두 24기의 최신예 수호이-27 전투기들이 남쪽 상공에서 다양한 유형의 전투기편대를 레이더로 포착하고 공격준비를 했다.

  그러나 불행한 중국 전투기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미사일을 먼저 막아야 했다. 서방의 분류번호 AA-12인 러시아제 RVV-AYe 중거리 미사일이 중국전투기들을 향해 날아왔다.사정거리 90km인 이 미사일은 적외선 유도방식의 대공미사일만 탑재하고 있던  중국 전투기들의 사정거리 훨씬 밖에서 날아왔다.  능동형 미사일이 아닌 것을 확인한 중국 조종사들은 일단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기에 바빴는데 격자형 핀이 달려있고 12.5 G의 고기동까지 가능한  이 미사일을 전투기의 순발력만으로 피할 수 있다는 오해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것이 가능한 전투기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이 미사일은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이었다. 관성유도로 적기가 피할 수 없는 거리까지 접근하여  액티브 레이더가 최종 작동하는 AA-12는 같은 러시아에서 만든 수호이-27 전투기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채프를 뿌리며 최고속도로 제주도쪽으로 도망갔으나, AA-12미사일은 채프의 효과 한계 주파수인 20기가 헤르츠를 넘는 30기가 헤르츠의 주파수를 발산하며 채프의 구름을 뚫고 전투기를 포착하여 마하 3의 속도로 수호이 전투기들에 명중했다.

  어떤 전투기는 뒤에서 접근하는 미사일을 간신히 피했으나 미익의 20미터 오른쪽에서 18 kg의 탄두가 작렬하여 그 전투기를 찢어발겼다. 마지막 남은 수호이의 조종사는 겁에 질려 미사일에 명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그의 판단은 옳아서 조종석에서 사출한 직후 그의 전투기는 미사일에 명중되어 공중에서 산산조각났다.

  미그-29 전투기들은 수호이 전투기들이 모두 격추되자 북쪽으로 계속 날았다. 백록담을 넘자마자 제주공항이 보였다.  활주로에 전투기는 없고 몇 대의 수송기만 조그맣게 보였다.편대비행에서 벗어난 미그-29 전투기 한 대가 30밀리 기관포를 쏘자 수송기들이 연이어 불길에 쌓여 폭발했다.  이제서야 공습을 알아차린 MT-LB 대공미사일차가 내습하는 전투기를 노렸으나 이 대공차량이 SA-13 Gopher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기도 전에 뒤따라온 F/A-18 전폭기가 클러스터 폭탄을 관제탑 주위에 투하했다. 수 백 개의 자폭탄이 관제탑 주위에 흩어지며 관제탑과 대공차량을 불태웠다. 활주로 주변의 대공포들이 사격을 시작했으나 초저공으로 습격하는 다수의 전투기들은 막지 못했다.

  제주도 북쪽 해상에서 한국 공군기들과 일진일퇴를 하던 중국 전투기들이 초계기로부터 비상연락을 받고 급거 제주공항을 향했다. 후퇴하는 편대를 향해 한국 전투기들이 발사한 여러 발의 AMRAAM (신형 중거리공대공미사일)이 날아왔으나  수호이들이 동시에 급선회하여  전파방해를 실시했다.  마하 4의 AMRAAM은 ECM(전자전) 장비가 월등한 수호이 전투기들을 격추시키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상하게 한국공군의 F-16들이 북쪽으로 돌아갔다.  수호이들이 다시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중국 전투기들이 제주공항 상공에 도착했으나 적기는 보이지 않았다. 비행장을 보니 활주로는 멀쩡했지만 관제탑이 날아가 버렸다.수송기 몇 대가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고, 대공미사일 발사기는 하나도 남지 않고 당했다.  초계기에 연락해보니 관제탑과 연락이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편대장이 적기를 수색하기 위해 고도를 높였다.

  갑자기 수호이 편대의 바로 아래 한라산 남쪽으로부터 미그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나타나자마자 적외선으로 유도되는 AA-6 Acrid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미사일들은 마하 4.5의 속도로 날아와 수호이 전투기들이 피할 틈도 주지 않았다.어떤 수호이 조종사가 겨우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탄두중량 38kg의 거대한 탄두가 전투기 바로 뒤에서 폭발해 주익이 부러져 추락했다.  이 조종사가 사출기어를 당겼으나 캐노피가 열리지 않았다. 날개를 잃은 전투기는 빙빙 돌며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조종사의 동공에 점점 확대되었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한 미그기들이 몇 대 남지 않은 수호이를 향해 쇄도했다. 임무중량 18톤에 불과한 미그-29 전투기들은 25톤의 수호이보다 근접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미그기의 조종사들은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 조종사들이었다. 중국내전과 동남아침공에서 전투경험을 쌓은 중국의 수호이 조종사들도 그들의 다년간 실전 경험에 바탕을 둔 잔재주에는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폭탄을 투하하고나서 전투기로 변신한 F/A-18 호넷편대까지 근접공중전에 가세했다. 격추 댓수에 따라 보너스를 받는 용병들의 공격은 악랄했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악어처럼 한 대의 중국전투기를 향해 3대의 피스 소속 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리고 있던 수호이편대는 숫적으로도 압도되어 괴멸되어 갔다.  이제 제주도 상공은 국제용병들의 하늘이 되었다.

  서쪽으로 도망가던 초계기는 한국공군의 F-5 전투기에 나포당해 강제로 목포공항에 유도되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나온 중국 조종사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선의 또다른 함대와 항모의 존재에 대해 2함대 사령부에 보고는 했지만 사령이 믿지주지 않았다. 조선이 의외로 강해 어쩌면 이 전쟁은 오래 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얼마 않있어 중국군은 조선반도를 점령할 것이며 아군이 자신을 석방시켜 주길 기대하며 포로로서는 비교적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1999. 11. 19  08:30  제주도 남제주군

  지상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호넷 편대가 한라산정에 배치된 대공포와 대공미사일 발사기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다음, 토네이도가 지상시 설물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다.수직이착륙기인 시 헤리어 전투기들이 30밀리 아덴포로  장갑이 얇은 중국의 T-62 경전차와 T-63 수륙양용 경전차들을 대량으로 살육하기 시작했다.  전차부대 엄호를 위해 날아온 카모프 헬기는 도저히 시 헤리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중국 제 5 해병사는 이제 보병만 남게 되었다.이들을 향해 한국군 패잔병과 예비군들이 달려들었다. 예상 상륙지점인 서귀포로 향하던 중국 군 구원부대는 아귀처럼 악착같이 공격해오는 이들을 맞아 싸우느라 도로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민은 빛나는 투쟁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서귀포에서는 헬기들의 엄호를 받는 용병들이 상륙전을 개시했다. 헬기강습병들이 서귀항에 교두보를 마련하자 새섬을 지나 카페리터미널에 접안한 양륙함들이 60톤급의 육중한 이스라엘제 메르카바 전차들과, 역시 대형인 이탈리아제 신형 아리아떼 전차들을 하역했다.  전차들은 상륙한 즉시 부두로를 따라 진군해갔다.  이미 중국군이 발사하는 포성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남국호텔이 있는 중정로에서 총성이 울렸으나 산발적인 전투는 곧 끝나고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순식간에 용병들의 손에 떨어졌다.

  서귀포에서 후퇴하는 중국 해병대를  그동안 산속에 숨어있던 제주도 92연대소속의 한국군과 예비군들이 포위했다. 아무리 패전을 경험한 군대라지만 이들의 행위는 너무 잔인했다.포로가 된 중국군을 산 채로 포를 떴다. 전신주에 묶인 채 대검으로 난자당하는 중국군들의 비명과 신음이 제주도의 아침을 가득 메웠다.

  11. 19  08:35  제주도 120 km 남서해상

  아침 햇살이 파도에 눈부시게 반사되기 시작한 아침의 서해바다 위에 작은 유람선이 유유히 잔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한중전쟁의 한복판인 서해상에 이 유람선은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이 배는 한국 해군에 징발되어 작전 중이었다. 선수의 갑판에는 대형 프리게이트함에서나 볼 수 있는 Mk-48 다연장 시 스패로우 대공미사일 발사기가 있었고,  선교에서는 한국 해군복장을 한 군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어젯밤 졸지에 징발당한 이 배의 선주 겸 선장만이 졸린 눈을 꿈뻑였다.

  "왔습니다. 조기경보기로부터 데이터가 옵니다."

  통신병이 대공사관에게 보고했다. 목포 상공에는 한국 공군의 F-5 전투기들에 의해 엄중 호위되고 있는 E-2C 조기경보기가 상하이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중국의 전투기들을 레이더로 추적하고 있었다.한국 해군함정들의 대공미사일 시스템의 지위를  신형인 스탠더드 미사일 시스템에 물려준 이 구식 미사일을 유람선에서 발사하면, 조기경보기가 무선지령으로 중국 전투기에 이 미사일들을 유도하는 작전이었다.3번에 걸친 시뮬레이션에서는 성공했으나 실전에서 어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4발의 미사일이 연속 발사되었다. 수평선 멀리 다른 유람선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 스패로우 대공미사일은 대공미사일 치고는 아주 낮은 고도로 서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11. 19  08:40  제주도 155 km 남서해상

  상하이에서 출격한 90여기의  F/A-18 전폭기들이 동쪽을 향해 고속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중국 조종사들은 제주도의 해병사단으로부터 긴급 구조요청을 받고 출격하기는 했으나 아직 제주도가 적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완전한 저공침투비행은 하지 않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900피트의 고도를 잡아 비행하고 있었다. 상하이 동쪽 상공의 조기경보기는 편대의 진로에 아무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한반도 남서쪽인 목포 상공에 한국군의 조기경보기가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진로 중에 한국군 전투기나 전투함의 활동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전투기들은 전혀 경계를 하지 않고 비행했다.

  선두의 조종사가 해면 위에 이상한 물체들이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저고도로 비행하는 이 물체들을 보자 이것들이 혹시 대함미사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대공미사일은 당연히 미사일 자체나 발사체인 군함과 전투기에서 레이더파를 발산할 것이고 이 레이더파가 전투기의 미사일 경보체계를 시끄럽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대공미사일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육안으로 확인하자는 생각에서 뒤따르는 편대에 무선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물체 중 하나가 급상승 하더니 자신의 전투기로 다가왔다.  조종사가 급히 선회를 시도했으나 마하 3.5의 시 스패로를 피하기는 너무 가까왔다.

  선도기인 F/A-18이 추락하는 하늘 아래로 시 스패로 미사일들이 서쪽을 향해 날았다. 편대장이 미사일을 본 것은 3 km 전방이었다.

  "대공미사일 경보!"

  편대장이 얼떨결에 편대용 주파수로 경보를 발했다. 미사일의 유형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플레어를 연속 발사하고 기수를 남쪽으로 꺾었다. 그러나 미사일은 사방에서 날아왔다.시 스패로는 AR(active RADAR homing : 능동 레이더 유도)이나 IR(적외선 유도) 방식이 아닌 SAR(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이기 때문에 미사일을 향한 잼(jam-전파방해)이나 플레어는 소용이 없었다.  시 스패로 미사일들이 급상승하며 편대로 파고 들어 폭발했다.  조종사들이 미사일의 유형을 확인하고는 조기경보기를 향해 ECM을 걸었으나 0.1초 단위로 주파수도약을 하며 추격해오는 미사일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편대장은 얼떨떨해졌다.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에 의해 편대의 절반을 잃은 것이다. 틀림없이 해상에는 적함이 없다고 조기경보기가 확인하여 주었다. 그렇다면 미사일은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바로 앞에서 전투기 한 대가 공중폭발했다.화염에 휩싸인 전투기가 오른쪽으로 추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설마 한국에 잠수함 발사 대공미사일 시스템이 있는 것일까?’

  편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대공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손실기의 숫자를 조기경보기에 보고 한 편대장은 계속 동쪽을 향해 날았다. 갑자기 날아드는 미사일이 무서워 편대를 2만 피트의 고공으로 비행하도록 명령했다. 편대장은 조기경보기를 믿지 않게된 것이다.직접 레이더를 가동시키고 미사일이나 적기를 경계했다.

  편대가 상승하는 중에 또다시 미사일의 대군이 날아왔다. 저공으로부터 솟구치는 미사일들은 위에서 보니 전봇대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다.전투기들이 채프를 하늘 가득 뿌렸으나 미사일은 채프의 구름을 뚫고 올라왔다. 편대장은 평생 처음 겪는 공포를 맛보았다.

  1999. 11. 19  08:50  서울, 신촌

  "야~ 이거 된다."

  "진짜! 근데 머해? 빨리 카피하지."

  "응. 그래그래. 잠깐… "

  "더 좋은거 없을까?"

  신촌의 하숙촌에서 대학생 두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런 전쟁통에 지방 출신 학생들이 고향에 돌아가거나 군에 입대하지 않고  하숙방에 쳐박혀 있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머드 좀비(통신게임 사용 중독자)들도 이때만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 살 길 찾느라 바쁜 판이었는데 이들은 이틀 밤을 새가며 컴퓨터로 찾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결실을 본 것이다.

  "음… 접속만 어렵지 중국군 중앙 컴도 별거 아니네?"

  "일단 카피나 빨리 해. 아직도 보안시스템 작동 안하지?  에구… 넘 꼬졌당~ 추적도 안하네?  잼없게."

  한 학생이 마우스를 누르자 파일이 계속 복사됐다.  화면에는 중국식 약자가 가득했다. 막강한 64비트 운영체제인 윈도우즈99인 이들의 컴퓨터는 화면에 뜬 파일들을 압축하여 순식간에 복사했다.

  "히히~  우린 지금 중국 공산당 주석 아이디로 들어간거니까 누가 의심하겠어? 의심한 놈이 더 의심받겠다. 글고 유니콘은 접속중에는 추적을 안받자나. 나중에 추적받는 경우도 드물고…"

  "히~ 글치… 추적당하는 재미로 딴 소프트만 쓰다 보니까… 잉? 근데 이건 또 머야? 또 다른 패스워드가 필요한데? 한자로 1급기밀사항이 라고 되어있군."

  "음냐… 그래봐야 이 유니콘2를 한번 더 가동시키면.. 이번엔 몇 분이나 걸릴까?  자, 그동안 라면이나 하나씩 뽀개지 모~ "

  "잉? 먹을 새가 어딨어? 벌써 나왔는데…"

  "에구… 정말 잼없다. 너무 쉽네."

  "어? 저건 뭐야. 에구…  중국식 한자 약자는 넘 어려버. 북조선… 안주.. 점령… 뭐.. 보고."

  "뭐? 안주가 점령됐어? 테레비에서 보니까 국군과 인민군이 연합해서 안주에서 철통같이 중국군을 막고 있다던데?  설마 점령됐나?"

  "안주가 어디야?"

  "어휴~ 뉴스 좀 봐라. 청천강 바로 남쪽에 있는 북한 도시야.이게 무너지면 평양까지 바로라든데… 쩝. 졌나부다~ 잉~ 우리도 군대 끌려가게 생겼다~~ "

  "에구… 어쨋든 이 놈도 카피하고…  저기, 편제라고 되어 있는 것도…"

  "그래 머… 우리 컴 용량은 크니까.  음… 카피해도 기록은 안되는군. 걱정없어. 나중에도 얼마든지 이 아이디로 접속된다구."

  "됐다. 그럼 이걸 한 번 개성으로 날려보자구.  통일참모본부가 거기 있지?"

  "그려… 일단 몇 개 더 카피하고… 근데 전화번호를 어서 찾아?"

  "전화번호부에 있겠지.  일단 인터넷 나와서 ISDN으로 찾아봐.그러구나서 접속하지 머….."

  이들은 국민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다뤄서 이제 웬만한 프로그램은 꿰차고 있었고 가끔 재미로 해킹을 하는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이들은 컴퓨터 해킹의 천재들은 아니지만 웬만한 네트웍에서는 충분히 기량을 발휘하는 중급 해커들이었는데 남의 자료를 삭제한다든지 하는 피해를 주는 크래킹은 절대 삼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자  이들은 어떻게든 중국의 전산망에 침입하여 나라지키기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수많은 기라성같은 해커들도  중국군의 전산망에 침입하려 했으나 중국군이 외국에 대해 전산망을 폐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각 통신망에서는 중국 컴퓨터 해킹을 목표로 정보교환이 활발했으나 누구도 열쇠를 찾지 못했는데, 이들 두 대학생들이 최초로 중국군 전산망을 해킹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들이 해킹을 한 툴은 유니콘 2라는 일종의 바이러스 컴퓨터였다.접속한 통신망의 호스트에 가상의 미니어처 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다시 인터넷의 서비스인  월드와이드 웹과 다른 몇 개의 통신망을 통해 해킹 대상이 되는 컴퓨터에 침입하는 장치였다.  통신망 중간중간의 또 다른 슈퍼컴퓨터에 가상 컴퓨터를 만들어가며 해킹 대상 컴퓨터에 접근하면, 역추적해도 중간의 슈퍼컴퓨터만 알 수 있고 처음 접속한 컴퓨터를 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적당할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전의 유니콘 1과는 달리 호스트 컴퓨터의 바이러스 백신을 파괴하지도 않기 때문에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폐쇄됐는데?"

  "전화번호는 맞는데…쩝… 전시라서 그러나부다.  그럼 이 자료 어떡하지?"

  그동안 공개되었던 통일참모본부와 국방부, 정보사단 등 국방관계 기관들이 전쟁이 나면서 기밀자료유출을 우려하여 국내외 통신망으로부터의 접속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 기관들은 중국 해커들의 침입을 막느라 바빴다.

  "그럼 이걸 들고가야 되겠네…쩝"

  "으으으…. 종이값만 해도 엄청 나겠다."

  "타이틀로 들고 가면 되지 머… 근데 거기에 컴이 있을까? 있더라도 시디롬은 없을텐데…"

  "크… 그럼 근처에서 디스켓으로 카피해야지 머…  문방구라도…"

  "으… 설마 아무리 군대가 후졌다고 해도 문방구 컴보다 후지랴?"

  "냠…  군바리들이 워낙 무식해서 재작년에 386을 대량 구입한거 몰라? 그 꼬진걸 칼라라고 바가지 쓰고…쩝"

  "잉? 이건 386에선 안돌아가는데…"

  "할 수 없지 머… 통일참모본부까지 해킹할 수는 없고… 근데 이런 판국에 개성 가는 차가 있으려나…"

  "으윽! 통일참모본부까지 가게? 그냥 국방부나 육군본부에 가면 되잖아?"

  "아니…작전권은 다 통일참모본부에 있대, 임시지만… 그리구 지금 북한지역에서 전투중이니 인민군 출신 군인들이 더 급하잖아?  직접 들고 가자고."

  "할 수 없지. 그럼 광모형 차 빌려서 가지 머…"

  "빌려 줄려나? 사정 이야기 해 보고…"

  11. 19  11:10  개성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통일로 이곳저곳에 새로운 군 검문소가 새로 많이 생겼다.개전 첫날의 테러를 막지 못한데 대한 반성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중국군 특수부대의 이렇다할만한 활동은 없었다. 한국군과 경찰, 안기부에서 이들을 철저히 추적하여 체포했기 때문이다. 중국 특수부대는 완전 소멸한 것으로 보였다.

  군인이나 민간인 모두들 잔뜩 긴장한 모습들이었는데 완전 군장을 한 수많은 군인들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학생들이 걱정했다. 그러나 곧 자신들의 차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산시부터는 북쪽으로 이동하는  군 차량들 때문에 한참 기다렸다가 갈 수 있었다.이들이 개성에 도착한 것은 서울에서 출발한지 두 시간만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개성 북쪽 외곽의 산 아래에 있었다.  남쪽으로는 송악산이 보였다. 임시 기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의 역할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아보였다. 입구쪽에 전차 몇대가 있었고 총을 든 군인들이 바리케이드 뒤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국군과 인민군들이 함께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차를 길 옆에 세우고, 국군 중에서도 대학교를 다니다 온 듯한 군인을 찾아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서울에서 왔는데요."

  "무슨 일입니까? 여긴 민간인출입 통제지역입니다."

  김 준태가 그 안경쓴 군인을 보니 인텔리같아 보였다.과연 말투도 진짜 군인같지는 않았으나 완전무장한 전투복에,어깨에는 육군 상병 계급장이 붙어서인지 의젓해 보였다.

  "저희가 중국군 컴퓨터에 침입했는데… 혹시 최 상병님 해킹이 뭔지 아세요?"

  김 준태가 그 군인의 명찰을 보며 물어보니  최 상병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했다고요? 전시라 국제통신을 외국에 대해 폐쇄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했어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유명한 해커들이 시도했지만 안된다고 들었는데…"

  김 준태와 구 성회는 서로 얼굴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 이 군인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눴는데 최 상병은 울산공대 화공과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고 했다.

  "형, 그럼 우리를 높은 사람에게 소개시켜 줘요.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면 더 좋고요."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구 성회가 부탁하자 최 상병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군대도 전산화가 많이 됐지만 높은 사람들은 워낙 꼴통이거든. 도대체 무슨 말이 통해야지… 참모본부에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참! 우리 소대장님이 컴퓨터를 좀 하고 참모들이 누군지는 아니까 잠깐 기다려 봐요."

  최 상병이 통제소 문 밖에서 안쪽에 앉아 있는 장교와 한참 이야기하더니 두 대학생을 손짓으로 불렀다. 대학생들이 뛰어가 통제소 안을 들여다 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하다니… 접속은 어떻게 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료를 뽑을 수 있습니까?"

  대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의외로 군인들도 컴퓨터 문맹은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 앉은 나이든 인민군 하사관은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의 아이디와 비번을 압니다. 모든 자료를 뽑을 수 있어요.  저희들을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데려가 주시면 바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소대장이 그들의 진심을 믿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기다려 보십시요. 제가 양 중장님께 전화해보죠."

  "예. 빨리요. 중국군이 청천강 방어선을 뚫었다죠?  안주에서 우리군에 큰 피해가 났더군요."

  구 성회의 말을 듣더니 소대장이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통일참모본부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로 미루어 그런 낌새를 받았을 뿐인 군사기밀이었다. 소대장이 참모본부 회의실로 사용중인 상황실로 전화를 하여 양 중장을 찾았다.

  "통일! 정문 통제소의 박 중윕니다."

  소대장이 바짝 긴장하며 통화를 했다. 중위와 중장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방위 정도 되면 중장에게 경례도 안하지만.. 잠시 통화가 되더니 소대장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양 중장님이 두 분을 모셔 오랍니다. 설명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11. 19  11:20  개성, 통일참모본부 상황실

  "뭔가?"

  양 석민 중장이 짜증나듯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  청천강에서의 패배로 전군이 후퇴 위기에 몰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들이 전선을 돌파하여 남진하고 있는 판에 정문 경비실에서의 전화는 짜증나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말이 이어지고는 양 중장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래? 그럼 신원조회 한 다음 바로 들여보내."

  주변의 참모들이 궁금해서 물으니 양 중장이 미소를 지었다.

  "직접 한 번 들어보시지요. 서울에서 대학생 두 명이 왔는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 컴퓨터에 침입했다는군요."

  인민군 출신 참모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아해했고 국군출신 참모들은 호기심에 가득차 있었다. 이윽고 젊은 학생 두 명이 경비실  박 중위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왔는데 뭇 장성들을 보곤 무척 위축된 듯한 표정이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양 중장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물었지만  학생들은 주눅이 들어 얼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희들은 연세대학교 학생들입니다만… 저는 신문방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구 성회이고 이 친구는 금속공학과 4학년 김 준태입니다."

  재수생은 아무래도 티를 낸다는 생각이 들어  구 성회가 약간 쑥스러워졌다.

  "그래, 자네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 컴퓨터에 침입했다고? 그러면 거기 컴퓨터는 어떻던가? 자료를 빼낼 수 있나? 어떤게 있던가? 그리고 컴퓨터 전문가들도 침입 못했다는데 어떻게 들어갔지?"

  양 중장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정보사단의 내노라는 컴퓨터 전문가들도 침입 못한 중국군 전산망이었다.  전시가 되자 중국의 모든 컴퓨터들이 국제통신망과의 연락을 끊어서 침투해 볼 기회도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의 보고였는데 어떻게 침입했는지 궁금했다. 한국과의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중국은 중국본토 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까지 국제통신망을 폐쇄하여 세계 경제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각지에 금융공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리고 각국 주재 대사관과 국제기구와의 통신망도 끊었다.  중국은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도 통신망을 차단할 정도로 컴퓨터 보안에 철저했다.

  "저희들은 최근에 중국에 항복한 베트남의 행정컴퓨터망을 통해 침입했습니다. 중국은 기밀유출을 우려해 국제전산망과 연결되는 모든 컴퓨터망을 차단했습니다만, 베트남 주둔군을 빼먹었더군요."

  이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국내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미국과 일본을 거쳐  베트남에 주재하는 일본 상사의 한 현지공장에 침입한 후 베트남 행정전산망에 들어가고, 다시 중국군 점령부대의 한 군부대 컴퓨터를 통해 중국군 컴퓨터망에 침입했다고 알려주었다.그러나 어려운 이야기는 대충 빼고 넘어갔다.

  "베트남의 그 중국군 부대 컴퓨터를 관리하는 자는 사실 컴퓨터 해킹에 대해 거의 초심자입니다. 물론 프로그래머, 또는 전산망 관리자로서는 훌륭하지만 보안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인민군 참모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패배 후 전선유지에 골몰하던 정말 중차대한 회의를 미루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양 중장의 표정을 살피며 궁금해했다.

  "어쨋든 저희들은 중국군의 전산망에 침입했고  정보를 빼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청천강 전역에서의  아군 피해까지 기록되었더군요."

  참모들이 깜짝 놀랐다. 아군의 가장 큰 패배로서 국내 및 외국언론에는 한마디도 노출이 안된 것인데 어떻게  이 대학생들이 안단 말인가? 해외언론도 중국군 커뮤니케의 불확실한 기사를 받아 단지 한국군이 패해서 후퇴했을거라는 추측기사 밖에 쓴 것이 없었다. 미국 언론의 경우 비교적 자신있게 한국군의 패배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물론 이는 CIA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한 보도였다.  그리고 CIA도 위성 정보를 분석하여 몇 시간 전에야 알아낸 극비정보였다. 다른 대학생이 탁자 중앙의 컴퓨터를 살피더니 시디 롬을 넣고 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인민군 제 4군단 섬멸, 인민군 제 2군단 및 820 기계화군단 대파 및 후퇴, 국군 제 12사단 패주.. 사살 3만 2천 7백 5십 6명, 포로 1만 3천 8백 12명. 전차 247대 및 장갑차 453대 파괴 또는 노획.전투기 27대 격추, 맞습니까? "

  참모들이 벌떡 일어났다.전사자와 행방불명자의 수가 약간 틀릴뿐 거의 정확했다. 그렇다면 행방불명자의 일부는 적의 포로가 되거나 산 속으로 도망쳐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전사 3만 2천이라면 6.25때 55일간의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서 희생된 국군 전사자 3만 4천 명과 비슷한 숫자였으며, 그 정도로 인민군의 피해는 컸다. 김 준태가 계속 읽어 내려갔다.

  "중국군 전사 1만 8천 287명, 부상 3만 천 67명, 전차 171대 파괴,장갑차량 216대 파괴 및 피해. 전투기 21대와 헬기 54대 손실."

  "어떻게 그걸… 그렇다면 틀림없군. 그럼 혹시 중국군의 작전계획도 있나?"

  이 종식 차수가 구경만 하다가 놀라 물었다.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적의 전략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구 성회가 자료를 검색하더니 읽기 시작했다.

  "인민해방군 제 16병단에 대한 중앙군사위의 명령.16병단 소속 제 13 장갑집단군은 경의선을 따라  파괴된 철로를 복구하며 평양으로 직진하고 제 15장갑집단군은 조선반도 서해안을 따라 강서군과 용강군을 점령하라. 제 16장갑집단군은 순천으로 우회하여 적의 배후를 물리친 후 평양을 공격한다. 각 장갑집단군은 2개의 일반 집단군과 동행한다. 귀 부대의 뒤에서는  막강한 인민해방군과 10억 인민이 귀 부대를 지원할 것이다. 이상,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이… 누구인데 못읽겠습니다."

  인민군 해군상장이 자신의 단말기에 나온 중국식 약자를 보더니 리루이환이라고 말해주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각자의 단말기의 내용을 읽은 참모들이 기가 막혀서 입을 열지 못했다.  중국군 부대들의 이동방향과 공격 예상 방향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CD-ROM 타이틀 한 장이 현재의 상황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었다.

  "양 중장, 적 부대의 상황을 다시 설명하시오."

  "화면 준비"

  이 차수의 명령에  양 중장이 배석한 참모부 소속 초급장교들에게 명령했다.  화면이 평안남도 일대의 지도를 비추고 그곳에는 붉은 화살표가 남진하고 있었다.

  "우측에 순천을 향하는 화살표의 규모가 잘못되었습니다. 1개 여단이 아니고 집단군입니다.즉시 현지 사령관을 호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순천의 우리 병력으로는 막지 못합니다. 공중지원이나 병력지원을…"

  참모들이 바삐 현지 사령관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평양뿐만 아니라 순천까지 위험하고, 이렇게 되면 함경남북도에서 싸우고 있는 남북한의 연합군이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적의 병력 상황은 저희가…"

  잠시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서먹서먹하게 서 있던 대학생들이 말하자 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잠시 전화선 좀 빌릴까요?"

  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준 참모들이 고마와서인지 자신을 내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하사관으로부터 전화선을 받아들고는 자신들의 랩탑 컴퓨터에 연결하고 이를 다시 회의실의 대형 모니터와 연결했다.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쳐다 보았다.

  "중국군 컴퓨터에 있는 내용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혹시 중국어 전문가가 계시면 더 좋은데요. 중국식 약자가 많아서…"

  구 성회가 랩탑컴퓨터를 키자 대형화면이 컴퓨터 화상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보여주었다. 참모들이 서로 얼굴을 보더니 이야기했다.

  "우리 인민군들은 다들 중국어를 아니 걱정말게. 혹시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우리 부하들이  점검해봐도 되겠나?  물론 원본은 돌려 주겠네."

  참모들이 이들에게 굉장한 호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이들 정도면 유성의 정보사단보다 훨씬 정확하고 방대한 정보를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구 성회가 타이틀을 정보 담당 장교에게 주었다.  김 준태는 몇 개의 통신망을 통해 천천히 중국군 중앙컴퓨터망에 접근하고 있었다.

  "자네들 현지 입대하지 않겠나? 우리 참모본부로 말이야."

  양 중장이 제의하자 다른 인민군 장군도 대학생들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인민군에 입대하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이 차수가 그 말을 듣더니 화를 벌컥 내었다.

  "이 마당에 국군이면 어떻고 인민군이면 어떤가? 그리고 구분할 필요가 어디 있나?"

  이 차수가 장군들을 나무란 후 대학생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차피 대학생들에게도 곧 전시 동원령이 내려질텐데…  지금 바로 입대해 주게. 계급은.. 양 중장, 어느 정도 계급까지 줄 수 있소? 소좌, 아니, 소령 정도 줄 수 있겠소?"

  "자네들 컴퓨터 기사 자격증 있나?"

  양중장이 대학생들에게 묻자 대학생들은 없다고 답했다. 해킹 실력과 자격증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는게  이들 대학생들의 평소 생각이었다.

  "차수님, 이들은 자격이 없는 기술전문가이지만 기술하사관으로 특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좀…"

  "무슨 소린가? 소령은 되어야지. 아니면 인민군에서 데려가겠네."

  "하지만 이들은 남한 대학생들이고 우리 군 규정상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장군들이 입대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동안 계급에는 관심이 없는 이 대학생들은 어느새 북경의 중국 인민해방군 중앙컴퓨터 안에 침입하고 있었다.

  "자, 지금 들어왔습니다. 알고 싶은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요. 시간여유는 많으니 하나씩요."

  "그럼 중국군 공군의 이동 배치 상황과 규모를 먼저…"

  "아니, 현재 중국 해군의 작전 계획을.."

  "먼저 지상군 집단군별 위치를 더 자세히…"

  남북의 각군 참모들이 저마다 관심있는 내용을 요구하여 실내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구 성회가 화면을 검색하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 없었던 화일이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강한 구 성회가 화일을 열람했다.

  "제주도가? 제주도를 수복하고 있군요?"

  김 준태가 깜짝 놀라 물었다. 화면에 중국군의 피해가 표시되었다.자그마치 100대가 넘는 중국 전투기들의 피해상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소속을 알 수 없는 항모부대에서  제주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실시하고 있다는 급보도 나왔다.

  "우리나라에 항모가 있었습니까? 메르카바는 이스라엘제 아닙니까?"

  구 성회가 신기한듯 묻자 참모들이 씩 웃었다.

  "아니라네. ‘피스’라는 반전 전사집단 소속이지.  우리와 연합하기로 했네. 그리고 제주도는 이미 수복했고…"

  이 차수가 나서서 직접 설명했다. 피스에서 파견된 짜르가 씨익 웃었다. 참모들로서는 이제 제주도는 일단 한숨 돌린 눈치였다.이제 북쪽의 위협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급박했다.

  "아…  엘빈 토플러의 전쟁과 반전쟁이라는 책에 나온 그 반전 전사요?"

  김 준태가 한국인 장성들 사이에 앉아있는  푸른 눈의 사나이를 보고 한국어로 묻자  짜르가 엘빈 토플러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관인 인 한수 중위가 정확한 의미가 아니라며 피스에 대해 대충 설명해 주었다. 양 중장이 서둘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는가? 아니라면 자네들이 찾기 쉬운 정보부터 찾아주게. 참, 이걸 바로 정보사단에 연결해 정보사단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님."

  두 대학생이 중국군의 정보를 대량으로 빼내기 시작했다.육해공군 병력배치 현황과 작전계획, 중국이 가지고 있는 아군에 대한 정보,  첩보부대의 비밀사항들, 보급계획 및 일정, 심지어는 참전하고 있는 중국군 사병들의 신상정보까지 빼내었다.

  "중국군 제 16병단 소속 제 13장갑집단군의 현재 위치와 진로는 이렇습니다."

  양 중장이 대학생 해커들이 중국군 컴퓨터에서 빼낸 정보와 항공정보, 그리고 전자전 정찰기가 중국군의 통신을 도청하여 분석한 내용을 종합하여 화면에 표시했다. 제 13장갑집단군은 안주 회전에서도 예비부대로 빼돌린 만큼 아직 대부분의 전력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적의 주공입니다. 우리측 정찰기와 전자전기들이 수십차례나 출격했지만 적의 대공미사일과 전투기들의 요격 때문에 접근도 못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공중 보호막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들을 막을 방안을 연구해야됩니다."

  "역시 전차의 최고의 적은 항공기입니다. 우리 공군의 전폭기와 공격 헬기, 그리고 A-10 공격기들을 동원하면 쉽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의 항공우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이건 어렵지요."

  "평야이니까 대규모의 포격이 괜찮을겁니다."

  "땅크에는 땅크가 최고디오."

  이 차수가 묵묵히 듣고 있더니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아까 새벽에 동원하기로 한 저격여단의 대전차대대로 막아보는게 어떻소? "

  이 차수의 말에 인민군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국군참모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아니, 겨우 1개 대대로 어떻게 적을 막습니까?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전문 전투집단이지만 적의 규모는 1개 집단군,  즉 우리측 군단 규모를 훨씬 넘습니다. 너무 무리하는거 아닐까요.  괜히 시간낭비할까 두렵습니다."

  국군의 정 지수 대장이 반발하고 나서자, 다른 국군 참모들도 끼어들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효율적인 대전차 방어부대라도 적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이들을 영국 기갑사단의 대전차연대처럼 사단규모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집단군을 상대로하는 전략적인 임무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이 차수가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에게 대전차대대에 대한 브리핑을 시켰다.

  "우리 인민군의 정규전 특수부대인 저격여단에는 몇가지 특수전 대대들이 있습니다. 전투 목적에 따른 병과별로 대대가 구성되어 있는데 부대구성은 시가전 대대, 야간전 대대, 대전차 대대, 산악전 대대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들 중 대전차 대대는 대전차 방어가 주목적인 대대로 전차중대,  장갑차 중대, 포병중대, 공병중대, 대전차포중대 및 대공포소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모두 대 전차전의 최고 전문가들입니다. 물론 적이 집단군이라는 대규모이긴 하지만 실제로 중국 장갑집단군과 맞부딪힐 경우는 승패를 장담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이들의 능력을 낮춰 잡아도 최소한 3일 정도는 적을 막아낼 수 있을것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이들 대전차대대는 개성 전면의  국군 기갑사단에 맞서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는데에 주목해 주십시요."

  "아니, 그러면 인민군은 유사시에 우리 국군 제 1 기갑사단을 대전차 대대에 맡길 생각이었소?"

  정 대장이 비꼬듯 말하자 김 대장도 맞받았다.

  "국군이 북침할 경우 우리 인민군은 대전차대대로 국군 제 1기갑사단을 섬멸시키고 815 기계화군단과 820 기계화군단으로 서울을 점령할 계획이었소. 내 말은, 우리 인민군 부대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오."

  "그러나 적은 집단군이오.  1개 대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할 정도의 시간만 벌어주면 되겠죠.  저는 대전차대대의 투입을 찬성합니다.  전선을 유지할 시간만 좀 더 벌면 좋겠습니다. 후방의 부대가 배치될때까지 아직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국군의 정 대장도 화를 내며 찬성했으나 그는 극히 냉소적이었다.

  1999. 11. 19  11:3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요새

  "철산시 북방 차련관 일대에서 적 집단군 병력 남하중!"

  "적 집단군 병력 구성시 통과중입니다."

  요새 사령부와 같은 굴을 쓰는 통신실에서 연속 보고했다.  상황판을 담당한 여군들이 무표정하게 적 병력의 규모와 위치를 나타내는 표지를 상황판에 붙이고 있었다. 차 영진 중령은 중앙 모니터에 비친 평안북도 지도만 유심히 보고 있었다.

  "홍 대좌님, 혹시 정주군에도 연대가 있습니까? 박천군은요?"

  차 중령이 조용히 묻자 홍 종규 대좌가 부동자세를 취한 채 대답했다. 홍 대좌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로서는 상급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였다. 차 중령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각 군별로 최소 1개 연대씩 당연히 조직됩네다. 길티만 그쪽 예비연대와는 개전 첫날 이래 무선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네다."

  차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만 중국군의 병력이 계속 한반도에 투입되는 지금,  각 군과의 연계가 없으면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중령은 정주군 및 박천군과의 무선연락망을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들의 전투력으로 보아서 병력의 결집이 이뤄진다면 큰 전력이 될 것같았고 잘하면 전선의 상급부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11. 19  11:40  평안북도 만포진

  중국과 국경을 접한 압록강의 만포를 점령한 중국인민해방군 제 11병단은 자강도 (평안북도의 북동쪽 지역) 강계와 전천을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인민군이 방어하던 희천을 하루 밤낮의 공방전 끝에 점령했다. 희천은 묘향산맥 바로 북쪽에 위치하여 묘향산맥을 넘어 평안남도를 넘보고, 함경남북도와 양강도의  통일한국군을 배면에서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인민군의 저항이 거셌으나, 제공권을 가진 중국 공군의 강력한 지원으로 인민군은 어제 묘향산 방어선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18일부터 방어선을 지키던 인민군의 진지를 넘어 이들은 안주방어선이 뚫려 위기에 몰린 덕천 방면의 방위를 위해 이동했다.

  만포 남쪽의 국도를 따라 중국군 보급부대의 차량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철로는 후퇴하던 인민군들이 파괴하고 떠났지만 국도를 따라 이어진 철로에서는 중국군 공병대가 보수작업을 하기 바빴다.  탄약과 식량, 연료 등의 보급품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남으로 이동해갔다.

  이런 모습을 영어로 bumper to bumper라고 인민군 저격여단 산악전 2대대 3중대의 조 부현 중사가 씨익 웃었다.  조 중사는 해발 637미터의 후고산봉 기슭에서 부하들과 함께  중국군 수송부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 중사는 작년에 졸업한 하사관학교 고등과정에서 전에 배웠던 러시아어 대신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러시아어나 중국어는 말할 수 있는 군인이나 인민들이 워낙 많았고,  영어가 제대 후에도 도움이 될것같아 자신은 영어를 선택한 것이다. 2년 후엔 제대하여 나진, 선봉 지구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고 싶었는데 이번 전쟁으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대부분의 외국계 자본이 중국의 침공을 보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조 중사는 국도를 내려보는 산 위에 서서 망원경으로  중국군 보급부대의 규모를 살폈으나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규모를 모르는 적을 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대규모의 보급부대라면 선두쪽을 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찬찬히 부하들을 살펴보았다.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트럭들을 노리고 있는 고속 유탄포의 사수 김 하사, 북쪽을 맡은 기관총 사수 리 전사, 드라구노프 저격총을 바위 위에 거치하고 적의 지휘관급을 노리는 민 하사 등,  모두들 표정은 평온해보였다.  입대한지 1년이 안된 박 전사만이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인민군이면서도 특이하게 검은 헬멧을 쓰고 검은 가죽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이 인민군에서 제일 멋진 군복을 입은 대원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직은 늦가을이라 낮에는 통풍이 안되는 이 군복을 입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 군복은 방풍을 위해 입는 특이한 경우였다. 산악전 2대대 3중대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단도저격조라면 공격해오는 적의 주력을 기습하고 도주하여  적의 공격의 맥을 끊는 역할을 해야했다. 그러나 그들이 여단장에게 받은 임무는 적의 공격부대는 관찰만 하고 적의 보급부대만 치라는 것이었다. 전파방해나 전파추적의 위험때문에 연락은 비둘기를 이용했는데 지금까지 적 공격부대를 정찰하고 날려보낸 비둘기가 열 마리가 넘었다.비둘기가 남으면 구워먹겠는데,  적의 대규모 병력이동이 너무 많아 결국 비둘기 맛을 보지 못해서 아까왔다. 헬멧을 장시간 쓰고 있어서인지 그의 이마엔 땀이 흘러 내렸다.

  "준비!"

  도로 반대편에 매설한 크레모어의 격발장치를 맡은 표 전사의 손가락이 움찔하는게 보였다. 적이 양면 포위공격으로 오인하도록 크레모어는 아군이 매복한 반대쪽에 매설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의 한마디면 이 계곡이 총성과 폭파음에 뒤흔들릴 것이다.

  "공격!"

  조 중사가 헬멧의 무전기를 통해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발했다.  먼저 김 하사의 40mm K-4B 고속유탄포가 불을 뿜었고, 이어서 다른 분대원들의 무기로부터도 적에게  총탄이 퍼부어졌다.  대부분이 보급품을 실은 트럭과 병력수송 장갑차인 중국군 수송대는 고속 유탄포의 제물이 되었다. 차량대열 곳곳에 화염이 솟구쳤다. 과연 계곡에서 울리는 반향음은 컸다.

  보병과 차량 운전병들이 차에서 빠져 나오자 이번엔 더 큰 재앙이 그들을 기다렸다. 30미터마다 설치된 크레모어가 2km에 거쳐 연속 폭발한 것이다.수송대와 호위대의 장교급들은 여지없이 민 하사의 저격총에 쓰러졌다.리 전사의 K-3 분대지원 기관총도 끊임없이 탄피를 쏟아내며 불을 뿜었다.

  ‘어차피 일부분이다. 적이 너무 많아. 그리고 길게 늘어서 있어서 사정거리가… 그래도 일단은 성공이다.’

  조 중사가 적의 피해상황을 살펴보았다. 고속유탄포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중국군의 트럭과, 트럭들의 사이사이에 낀 장갑차들은  파멸을 면치 못했다. 탄약을 가득 실은 트럭이 폭발하자 주변의 트럭들도 연쇄폭발하고, 연료를 실은 트럭은 폭발하며 주변 도로 위를 불타는 연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공격권 내에서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선두의 2 km에 걸친 적의 보급부대는 전멸시켰지만 뒤에 있는 보급부대가 마음에 걸렸다.  그냥 후퇴할까 생각했지만 그들이 전선에 도착하면 아군과 인민들의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정 중사가 결심을 했다.

  "전원 탑승, 뒤쪽 놈들도 친다!"

  헬멧에 딸린 헤드폰을 통해 명령을 내리자 주변에 흩어져있던 부하들이 산 뒤쪽으로 내달렸다. 조 중사도 뛰어갔다. 바로 산 뒤쪽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탔다.  김 하사가 30 킬로그램이나 되는 고속유탄포를 들고 헐떡이면서 가장 나중에 탑승했다.

  "북쪽으로! 가자!"

  모두 시동을 키고 작은 산길을 달려갔다.  이들 분대원들은 산악전 2대대 제 3중대인 오토바이 중대의 일부였다.  중대원 전원이 산악용 모터사이클을 타고 어떤 산이든지 오를 수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중대훈련 코스로 백두산을 등정했는데,비가 온 후 땅이 질퍽거리고 길이 없는 코스를 택해 낙오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성공적으로 등정했다.

  이런 야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 중사는 생각했다. 물이 마른 개울을 건널 때는 분대원들이 기분이 좋았는지 공연히 점프를 했다. 약 3킬로미터의 산길을 북쪽으로 달려 어제 보아둔 장소에 도착했다. 조 중사는 땅바닥에 오토바이를 눕혀둔 채 총과 탄띠를 매고 뛰어갔다.다른 분대원들도 어제 답사때 지정된 자신의 위치로 뛰어갔다.

  조 중사가 M-16과 같은 규격의 K-3 분대지원기관총용 탄띠를 리 전사에게 건네주고 망원경으로 적의 동태을 살폈다.  갑작스런 기습에 적은 아직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몇 대의 호위용 경전차가 길에서 내려와 감자밭을 달리고 있었다. 보병전투차 10여 대가 그 뒤를 따랐다.  보급부대의 트럭 운전병들은 소총을 들고 차에서 내린 채 삼삼오오 모여 불에 타고 있는 트럭대열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아직 그곳에 있는줄 아는 모양이군.’

  절호의 기회라고 조 중사는 생각했다. 이제 또 치고, 북으로 가서 한 번 더 칠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됐나?"

  조 중사가 김 하사와 리 전사를 쳐다보았다. 고속유탄포의 유효 사정거리는 1500 미터, 분대지원 기관총은 800 미터라고 조 중사는 배웠다. 그러나 우수한 사수라면 사정거리를 약간 더 길게 하는 법이다. 그렇게 보면 김 하사와 리 전사는 유능한 사수였다.그러나 저격여단의 모든 전사는 다 유능한 사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모두가 몇가기 무기에 숙달되

었고, 특히 자신의 무기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통일사격대회에서는 모든 총기분야에서 저격여단의 사수들이 상위권을 휩쓸었었다. 특히 인민군에게 인도된지 얼마 안된 고속유탄포나 분대지원 기관총, 스팅거 대공미사일 등의 사격부문에서도 저격여단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국군 장성들이 혀를 내둘렀다.

  헤드폰을 통해 분대원들의 복창이 이어졌다.첫 공격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두번째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격!"

  명령을 내리자 동시에 사격을 시작했다.  중국군 보급부대의 대열 곳곳에 폭발 섬광이 튀었다. 전멸한 선두 대열만 쳐다보던 후속 보급부대들은 급작스런 공격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도망갔다.  사륜구동차 뒤에 숨은 중국군 군관이  무전기를 들고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그 장교는 곧 민 하사의 저격에 쓰러졌다. 조 중사도 저격총으로 보급부대를 쏘다가 총구를 경전차와 장갑차가 갔던 쪽으로 돌려보았다.

  SVD 드라구노프 저격총에 장착된 PSO-1 망원조준경 안에 T-62 경전차 해치 위로 상체를 내민 중국군 군관의 모습이 보였다. 무척 화가 난 모습으로 이쪽을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인민군의 위치를 이제야 파악한 모양이었다.  조 중사가 거리를 재어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기자 그 군관은 머리에서 피가 튀며 뒤로 쓰러졌다.  다른 경전차의 운전수에게도 한방, 또다른 보병전투차로 옮겨 기관포 사수들에게 한 방씩 쏘았다.그러자 경전차와 보병전투차 해치 위에 있던  기관포 사수들이 해치를 닫고 숨어버렸다. 경전차의 85밀리 포가 불을 뿜었다. 그러나 당황했는지 실력이 없었는지 포탄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조 중사가 느긋하게 7.62밀리 10발들이 탄창을 갈아끼웠다.

  조 중사가 다시 보급부대 쪽을 보니 대충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또 북쪽으로 가서 한 번 더 칠까 하다가 지나친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더 북쪽의 보급부대들을 망원경으로 살피니 호송대의 일부가 차에서 내려 산 위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진작 그랬어야지. 꼭 당하고 나서 후회한다니까…’

  조 중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부하들은 목표를 찾지 못해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가자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는 노동자들처럼 천천히 장비를 챙겨 모터 사이클에 탑승했다. 분대원들이 자신의 장비를 들고 올 때, 표 전사는 그들이 있던 곳 주변에 크레모어를 설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누군가 가느다란 이 철사줄을 건드리면  주변을 800개의 쇠구슬이 초토화시킬 것이다. 분대원들의 표정은 시원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듯했다.

  "탄약 아끼라우. 전쟁은 계속되니끼."

  산악용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걸며 조 중사가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 아니고 임시 아지트이지만…

  이 같은 일을 다른 소대의 다른 분대들도 할 것이다. 아니, 산악전 2대대의 모든 대원들이 이 임무를 받았다.산악전 1대대는 중대단위로 요지를 방어하고,  2대대는 분대단위로 흩어져 적의 보급부대를 격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정 하사는 다른 대대원들도,  아니 모든 인민군과 국군들이 자기 분대원들처럼 잘 싸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이리저리 돌면서, 가끔가다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추적대의 추격을 따돌리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아지트 부근에는 부비트랩을 설치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의 비트(비밀 아지트)는 서쪽으로 5 km나 떨어져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생각해 보았다.  통일이 된 후로 군대 급식은 아주 좋아졌다.  주,부식을 모두 한국군이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원래 엘리트 부대인 저격여단 병사들이 보기에도 급식이 월등히 향상되어 좋았다. 하지만 전투급식인 레이션은 금방 질려버린다.

  11. 19  12:00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대안

  산악전 2대대 1중대의 한 분대인 김 동현 중사와 부하들은 이틀째 산 위에서 평북선 철로(수풍에서 정주까지의 철도)를  살피고 있었다.  그 철도에는 어제 폭발물을 은밀히 매설하여 공격기회만 노리고 있었다.위치는 내리막 급경사가 한번 꺾이는 곳,일단 폭발물이 터지면 기차가 급정거를 해도 소용없이 열차 모두가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철길 아래를 파고 폭발물을 매설하였기 때문에 몇 번 왔던 중국군 철도 경비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중국군의 공격헬기가 철도 주변의 산들을 훑어보았으나 워낙 위장이 철저해 그들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X세대라고 까부는 최 전사는 바위에 등을 기댄채 CD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마 Ce Soir Je Dors Pas라는 제목의 발음도 하기 힘든 음악일 것이다.저 놈은 그 곡만 하루종일 반복해서 듣는다, 라고 김 중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흰눈이 쌓이면 그의 음악은 The Famous Blue Raincoat로 바뀌는 것도 알고 있었다.

  김 중사는 원래 정찰연대의 폭발물 전문가로서 작년에 저격여단에 배속되어 분대장 임무를 수행해왔다. 폭파 대상에 따라 화약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의 부하들은 그의 가르침을 잘 따라주어 이제 분대원 모두가 폭발물 전문가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함흥에 살고 있는 가족이 걱정되었으나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적지에 몇 명씩 흩어진 저격여단의 산악전 대대원들도 모두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후퇴하는 급한 상황에서 도마뱀 꼬리 떼듯 산악전 2대대를 적지에 남겨두었으나  본대의 후퇴를 위한 희생이 아닌,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이틀간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여단장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방어전을 맡은 산악전 1대대는 이미 상당한 피해를 봤을거라는 생각도 했다.

  ‘아니, 이미 전멸했을지도…’

  식량은 15일치가 임시 아지트에 있었다.  이를 다 먹고 굶주릴지, 아니면 그 전에 분대 전원이 전멸하거나 중국군의 포로가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 사이에 전쟁이 끝날지도…’

  앞날 뿐만 아니라 생존이 불투명했으나 이것은 군인의 일이었다.  전쟁에 대비하여 키워지는 군인은 적의 침략을 막기위해 싸워야 했다. 게다가 저격여단은 정찰연대와 함께 인민군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동안의 밥값을 충분히 하리라 마음먹었다.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3 km 북방 산위에 있는 전초기지에서 빛이 반짝였다.  모르스 부호로 된 그 거울 반사빛은 50량을 단 열차가 오고있다는 내용이었다. 화물은 주로 전차와 자주포이며 유개차엔 탄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가만히 들으니 기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 십 대의 기차를 그냥 보냈다.  이 기차들은 구성시를 통해 평안남도의 안주까지 가서 전선 부대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여단장의 공격명령이 떨어졌고, 게다가 전차부대의 호송열차라면 공격의 우선순위는 상당히 높았다. 김 중사는 이들을 치기로 결심했다.

  "준비."

  김 중사가 짤막하게 명령하자 기폭장치를 맡고 있는 전사가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여러 상황이 예상되었으나 폭발물이 매설된 이 구간은 경사가 심하므로 기차들이 시속 30 km로 감속을 한다는 것을 관찰로써 확인했었다. 그렇다면 열차가 폭발구간의 50 미터 전방에 왔을 때 폭파시키기로 결정을 했다. 열차가 북쪽 산굽이를 돌아 나오는 것이 망원경에 잡혔다. 과연 전차와 자주포였다.각 유개차에는 전차 2대와 자주포 1대가탑재되어 있고 무개차가 40량이니 모두 80대의 전차와 40대의 자주포가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거의 1개 기계화연대분에 해당하는 장비들이었다.

  전차와 자주포에는 승무원이 그대로 탑승하고 있었고,대공포 몇 문과 경비병도 몇 명 보였다.  뒤에 딸린 10량의 화물칸은 창문이 없고 문이 밖에서 채워진 것으로 보아 모두 탄약을 실은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객차도 세 대나 있었는데 모두 중국군으로 가득찼다. 그들은 연이은 승전에 고무된 듯 웃고 떠드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폭약이 매설된 곳 50미터 전방에 이르자 김 중사의 별다른 명령없이도 하급전사가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섬광과 함께 철도의 일부분이 날아가고 나서야 폭음이 들려왔다.  철도는 받침목뿐만 아니라 자갈로 쌓은 기반도 같이 절벽쪽으로 무너져서 기관사가 급제동을 했으나 열차가 하나씩 절벽으로 떨어져갔다. 차례차례, 모두 55량의 열차가 곤두박질했다. 절벽 아래에 두대의 기관차가 떨어지고 그 위에 연이어 다른 차량들이 떨어져 부서져갔다. 뒷부분의 탄약열차가 떨어지자 충격에 탄약이 연쇄폭발하기 시작했다.객차에서 튕겨나온 극소수의 중국군들도 폭발에 휘말려 모두 죽었다.

  엎드린 채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살피던 김 중사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떨며 일어났다. 중국군의 화물열차에 타고 있던 중국군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물론 전차와 자주포, 그리고 탄약이 못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이 이 광경을 본 전사 한 명이 자신의 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총을 쏠 기회는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한 방 쏴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분대는 총을 쏠 기회가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과묵한 이들은 김 중사를 선두로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이제 제 2의 목표로 이동할 때였다. 산길을 따라 송평이 있는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제 3의 목표인 수풍발전소 폭파는 분대의 전멸을 각오해야할 지도 모를 어려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단풍이 거의 진 늦가을 정오,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쬐고 있었다.

  11. 19  15:30  경기도 동두천

  아름기획의 변 승찬 대리는 즉시 전방에 투입되지 않고  동두천의 육군기갑학교에 배속되었다. 군복무 중 K-1 전차 포수였던 그는 당연히 K-1 전차에 타게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러시아제 T-80 전차교육을 받게 되었다. 1995년 하반기에 러시아에서 돌려받을 차관 대신에 들여왔다가 원래의 목적인 대전차교육에 투입되지도 않고 창고에 처박혀있던 230대의 T-80을 주축으로,  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군에게 인도된 동두천기지에서 새로운 기갑사단이 창설되었다. 교관단 중에는 인민군 군관들이 꽤 있었다. 변 대리가 복무 중에는 적으로 대했던 그들에게서 전차교육을 받게되어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도 오전의 학과수업에 이어 실습이 이어졌다.  변 승찬은 러시아제 전차의 일반적인 달걀형 포탑과 포탑 뒤에 달고 다니는 연료 드럼통을 보고 혹시나 한국공군에게 오인 폭격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125밀리 2A46 활강포는 처음 쏘게 되었는데 K-1전차와는 화기관제장치가 너무 달라 적응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통일참모본부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이 전차들을 전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전차의 질이나 보급체계의 통일성 같은 것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한국군에 바가지를 씌운, 부산항 창고에 쳐박혀 있던 M-1 에이브람스 전차들로도  새로운 전차사단을 창설하고 있었다. 물론 약간의 구식 M-48도 가세하였다. 이들 기갑사단들은 현역과 예비군이 섞여있었다.

  11. 19  16: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의외로 적의 남진 속도가 느립니다."

  개전 후 이틀간 뜬 눈으로 노심초사하다가 처음으로 4시간 동안 눈을 붙인 참모들이 부시시한 몰골로 양 석민 중장의 브리핑을 들었다.양 중장은 아직 잠을 못잔 듯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중국군의 3개 병단은 안주 이남으로 계속 내려오고는 있지만 속도가 많이 느려졌습니다.후속 부대들의 위치도 불분명합니다. 중국군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기건 인민들의 노농적위대와 저격여단이 막고 있어서 기래요."

  양 중장의 의문을 이해하겠다는 투로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말했다.  그는 정규군으로써 적을 막지 못하고 예비군과 특수부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자존심을 강하게 건드려서인지 자괴감에 쌓인 채 설명했다.

  "삼팔 이북서껀 신의주까라 죄 노농적위대가 조직되,인민군 예비부대래 되는 거디요. 후퇴하지 못하고 적 점령지역에 남은 예비부대들의 활약이 대단할 깁니다.길고 저격여단은 개전 첫날 북쪽으로 향했디요. 이들의 위치는 아무도 모릅네다."

  "저런… 그러면 그들의 피해가 엄청 클텐데요."

  국군의 정 지수 대장이 걱정하는 투로 말하자 김 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반부 향토예비군보담 훨 낫디요."

  한국 예비군들의 훈련상태를 잘 아는 인민군 장성들이 웃었다.  국군장성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나왔다.아직은 패전을 하고 있었지만 제주도 수복이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제주도와 여천군 예비군들은 잘 싸웠지요.  그건 그렇고, 우리는 이제 적 장갑군단의 공격을 막아야… 묘향산 쪽이 버텨줘야 우리 군이 함경도에서 후퇴할 수 있는데요…"

  정 대장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 대장을 쳐다보았다. 김 대장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1999. 11. 19  14:00  함경남도 동백산(2096m) 기슭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계곡을 덮은 초겨울의 낭림산맥에 요란한 진동음이 들려왔다.비포장길의 자갈을 부수며 거대한 중국제 T-72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오고 있습니다."

  "규모는?"

  "드래곤 플라이의 정찰에 의하면 전차연대를 선두로한 보병 3개 사단이라고 합니다."

  작전참모가 보고하자 인민군 제 2사단의 사단장인 강 일섭 소장이 망원경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산지라서 전차의 기동이 좋지 못하니, 아마 전차연대는 자주포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A-37B 드래곤 플라이(Dragon Fly)는  전방 항공통제 및 대지공격기로 쓰이는 경항공기인데, 한국군에서는 지상전 지원을 위한 정찰기로도 쓰고 있었다.  전후 복좌식에 짧은 동체와 긴 날개의 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비행기를 한국군은 장난스럽게도 용팔이로 부르고 있었다.

  사단장은 미국에서 수입한  JSTARS(지상목표탐지 공격용 레이더 시스팀)를 갖춘 E-8C 조인트 스타즈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한국에 두 대밖에 없는 그 비행기는 안주 남쪽의 대규모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이쪽은 신경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게 엉망이었다. 전쟁 전에 세웠던 계획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항공지원은 없네?"

  "예. 안주가 뚫린 후로 엉망입니다. 평양이 위험하다고 합니다."

  안주가 점령된 마당에 사실 이곳을 방어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동쪽 함경도에 있는 인민군부대들이 후퇴할 때까지 시간만 벌어주면 되는 작전이었다. 강 소장은 부대가 얼마나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하루…? 강 소장이 빙긋 웃었다. 자신은 하루살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항공지원이나 병력지원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대공무기와 대전차무기 체계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꼈다.동백산 정상 부근의 전방지휘소에서 사단장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적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기 바빴다.  포격을 시작할까 하다가 아직 기다리기로 했다.  괜히 적에게 포병의 위치만 알려줬다가 안주회전의 재판이 될까 두려워서였다. 중국군에게 어떤 신병기가 있는지 몰라도 적은 아군 포병대를 초반에 섬멸한다는 정보도 있고 해서 사단장은 아직 포병대를 아끼기로 했다. 전쟁은 길어질지도 몰랐다.

  계곡에 정찰헬기 두대가 나타나서 남쪽으로 접근해왔다. 보병들이 헬기를 발견하고 즉각 적외선 유도식의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날렸으나 배기상향편향장치(엔진배기구가 위를 향해 배기열이  로터의 바람에 의해 분산되는 구조)때문인지, 아니면 상부에 장착된 적외선 대항 비콘 때문인지, 어쨋든 미사일은 명중하지 않았다. 이 프랑스제 SA 342M 가젤 헬기들은 대공포를 피해 능선 뒤에서 마스트장착 조준장치만 내놓고 방어선 곳곳을 정찰한 후 돌아갔다.

  사단장이 허탈하게 헬기가 사라진 북쪽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측 대남리의 1539 고지를 맡은 3연대에서 급전이 왔다.

  "200여 대의 헤리콥타가 남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쪽 방어선은 그들의 공습에 초토화되었습니다. 메뚜기떼처럼 시커멓게 몰려 다닙니다."

  "뭐야? 혹시 강습헬기는 봤나? 모조리 공격헬기는 아니디?"

  "잘… 경황이 없어서… 확인은 못했습니다."

  사단장 강 소장이 혀를 찼다. 아마 그 연대장은 겁에 질려 지휘소 안에 쳐박혀 있었으리라.사단장이 사주 대공경계를 명령하려고 부관을 부르는 순간 공습경보가 발령되었다.

  "항공! 남쪽에서 헤리콥타가 시커멓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항공관측병의 외침을 듣지 않아도 지휘소 안이 대규모의 헬기 소리에 진동했다.  사단장이 밖으로 나가서 남쪽을 보니 멀리 해발 1720미터의 마대령을 넘어 수많은 헬기가 이곳 동백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봐도 기종이 확인이 안되는 먼 거리였으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온 산이 헬기 소리에 진동했다.  갑자기 또다른 대공경보가 울렸다. 고사포대대장이 지휘소 밖으로 뛰쳐나와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흥남 상공의 조기경보기로부터 연락입니다! F-5 유형의 대규모 전투기 편대가 저공침투로 접근중이랍니다."

  "대공배치 변경, 미사일은 북쪽, 대공포는 남쪽으로!"

  "알겠습니다."

  대대장이 연락을 위해 지휘소로 뛰어들어간 순간  방어선 상공에 F-5기들이 떼지어 날아올랐다.이미 정찰헬기로부터 연락받았는지 대공포좌와 대공미사일 진지를 정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경량 소형의 전투기라지만 그래도 폭격이었다. 능선이 화염에 휩싸였고,  동시에 지상에서 미사일이 꼬리를 물고 발사되었다.

  이들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한 후 노획한 전투기 중 일부였다. 대만공군,이제는 없어진 중화민국의 조종사들은 한달간의 사상교육을 받고 중국 인민해방군에 편입되었다. 조종사들은 어떻게든 전과를 올리기 위해 발악했다. 이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대공미사일과 대공포의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전투기들이 방어선을 유린했다.

  동쪽 하늘에서 또다른 F-5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사단장이 레이더병의 보고를 받고 새파랗게 질렸지만 이들은 동백산을 지키는 인민군을 돕기 위해 강릉비행장으로부터 출격한 한국공군이었다.같은 기종인 F-5이기 때문인지 한국공군은 근접전을 회피했다. 거리 20km에서 한국군의 F-5에서 미사일이 계속 발사되었다.

  F-5기 성능개량사업에 의해 항법장비와 레이더장비가 대폭 개량된 한국공군의  F-5E는 동체 하부의 파일런에서 스패로우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지상공격을 위한 출격을 하느라 자위용 사이드와인더밖에 없는 중국의 F-5는 2만피트의 고공에서 공격해오는 한국공군에 당할 수 밖에 없었다.강력한 APQ-159 레이더가 F-5에게 그동안 없었던 룩다운 능력을 주었고 M/L-STD-1553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통합된 사격조준장치가 미사일의 명중율을 높였다.  게다가 이들은 조기경보기의 유도까지 받을 수 있어 유리했다. 또 한 대의 F-5가 지상으로 추락하여 폭발했다.

  지상지원 공격기들의 상공을 엄호하던 중국군의 또다른 F-5기 편대가 한국공군을 노리고 날아왔으나, 미사일을 모두 발사한 한국공군은 미련없이 남쪽으로 도망갔다. 공군본부에서는 전투기의 손실이 점점 커지자 꼭 필요한 상황 외에는 근접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통일 한국 전투기의 숫자는 점점 줄고 있었다.공중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 너무 잦은 것이다. 한국 공군기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중국군의 헬기들이 공중폭격으로 엉망이 된 방어선 상공에 도달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개발한 유로콥터 타이거의  호위 및 화력지원용 기종인 HAP 헬기들이 먼저 기수에 장착된 Giat 30mm 기관포로 참호선을 쓸었다.  곧이어 나타난 대전차형인 독일제 PAH-2들이 HOT 미사일로 방어선 곳곳에 배치된 전차와 중화기진지를 공격했다. 60여기의 공격헬기는 소리만으로도 위력적이어서 인민군들은 감히 참호 밖으로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민군들은 조만간 헬기들이 공격을 마치고 돌아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뒤이어 따라온, 60년대에 중국에서 생산된 구식 선풍 25호와 Mi-4 헬기들이 방어선 곳곳에 착륙하더니 헬기에서 중국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참호에서 떨고있는 인민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손을 들고 나오는 인민군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사단장인 강 소장도 중국군 헬기강습병에 의해  지휘소 밖으로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국 헬기에서 중국군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능선 남쪽으로 도망간 인민군들은 더 운이 없는 편이었다.타이거 공격헬기들은 도망자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단풍이 지고 난 동백산 남쪽의 급경사 계곡은 다시 한번 화염과 인민군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낙엽이 져도 숲이 비교적 울창해서 하늘의 사냥꾼을 피할 수 있었던 동백산 동쪽, 북골령으로 도주한 소수의 인민군들만이 함흥쪽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퇴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전투도 하지 않고 도로를 따라 남진해 온 중국군 제 39집단군은 전차부대를 선두로 동백산을 넘어 함흥쪽으로 진출했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급유와 무기장착을 마친 공격헬기들이 상공을 엄호했다.이들의 앞길에는 어떠한 방해물도 없었다. 전차와 헬기, 그리고 자동차화 보병으로 구성된 기동력있는 이 부대는 저녁무렵 함흥평야의 젖줄인 성천강을 볼 수 있었다.

  한중 양국이 안주 남쪽에 전투기와 전력을 집중배치하는 동안 동해안쪽은 상대적으로 이렇다할 큰 전투가 없었다.  그러나 인민군의 후퇴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중국군은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이는 함경도쪽을 공격했다. 이제 함흥이 중국군에게 점령될 경우, 함경남도에 대부분 몰려있는 인민군 2개 군단은 포위될 수밖에 없었다.

  1999. 11. 19  16:45 평안남도 순천

  "패들락! 패들락!"

  김 종구 중위는 계속 패들락을 외치고 있었다. 그의 애기(愛機) 선영이는 지금 중국 공군 J-5 공격기의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 낙후한 공격기는 의외로 끈질기게 김 중위의 기관포 사격을 잘 피했다. 암람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은 모두 써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기관포밖에 없었다. 그것도 1초분만이 남아있었다.

  "상태 양호. 걱정 말고 빨리 해치우기나 하라고."

  윙맨을 맡아 김 중위의 전투기를 뒤에서 엄호하고 있는 곽 대위가 재촉했다.  그러나 김 중위로서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이 5분간의 짧은 공중전에서 지금까지 모두 6기의 전투기를 잃어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은 미그-21의 중국산인 섬(殲)-7 전투기 50여기와, 미그-19의 중국산 파생형인 J-5 공격기 30여기였다. 저공비행으로 전장에 도착한 F-16 편대가 순천의 인민군을 공습중이던 J-5를 노리자, 상공에서 이들을 엄호하던 섬-7 전투기들이 덮쳐서 지금은 근접전 양상이 되었다.  성능은 F-16이 훨씬 앞섰지만 숫자에서 압도하는 중국의 고물 전투기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방금 격추된 이 소령만 해도 전년도의 최우수 전투기 조종사인 탑건이었다. 중국군 조종사들의 실전감각이 성능의 차이를 좁혔다.

  마침내 김 중위의 기관포가 J-5를 잡고 우측으로 급선회했다.  J-5가 공중에서 멋지게 폭발했다.  김 중위가 한숨을 쉬려는데 갑자기 눈앞에 섬-7 전투기가 기관포를 쏘며 뒤로 스쳐갔다. 김 중위가 급히 공중제비를 하여 그 전투기의 꼬리를 잡았다. 즉시 200미터 바로 뒤에서 기관포를 퍼부었다. 미그는 엔진에 몇 발을 맞고 불을 뿜었다.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서야 윙맨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자신도 목표를 공격할 때 패들락을 외치지 못했다. 패들락은 "I’m Padlocked", 즉, 선도기에 의한 목표발견의 신호였고, 동시에 선도기가 적기를 공격하는 동안 자신의 엄호를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김 중위가 뒤를 돌아봤다.  곽 대위의 전투기가 보이지 않았다. 무선으로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김 중위는 즉시 전장 상공을 이탈해 남쪽으로 비행했다. 곽 대위는 김 중위의 후미를 엄호하다가 중국군 전투기가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한 PL-9 적외선 미사일에 당한 것이다.남은 아군 전투기는 얼마 없었다.

  고도를 올리자 F-5 편대가 북쪽으로 급히 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한국공군의 지휘부는 너무 적은 수의 F-16을 보낸 것을 후회하여 급히 30여대의 F-5를 증파했는데, 그 사이에 아까운 F-16만 당한 것이다. 연료계를 보니 이미 빙고상태가 지나 수원비행장으로 귀환할 수 없었다. 가까운 평양 북쪽 순안비행장을 무선으로 불러 그곳으로 향했다. 그 비행장은 순항미사일의 공격을 받았는지 사방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연기 사이로 미그-23 전투기들이 이륙했다. 하나 남은 활주로에서 미그기들이 출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김 중위는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는 전투기인 선영이의 콘솔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어쨋든 오늘도 그는 살아남은 것이다!

  급유를 마치고 수원비행장으로 돌아오자 자신이  한국공군 통틀어 세 번째의 에이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편대기 12대 중에서 살아남은 조종사는 김 중위를 빼고 4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2명은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탈출했는데,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 아직 구조를 못하고 있었다. 수원에 돌아온 F-16은 떠날 때의 16대에서 2대로 줄어있었다. 인민군에게 구조된 편대장 최 소령은 헬기로 귀환중이었다.

  조종사 휴게실에 들어와 푹신한 의자에 앉은 그는  오늘도 잠을 못이룰 것같았다.  전쟁 개시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동료들이 죽어갔다.  자신의 차례는 언제 올까 두려웠다. 머리를 젖히고 눈을 감으니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빨간색 페라리가 생각났다. 여자친구들도…

  1999. 11. 19  21:00  필리핀 상공

  대한항공 소속의 여객기 KAL 638기가 필리핀 루손섬의 동쪽 200km 해상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호주 시드니에서 이륙했는데 기내에는 승객이 한명도 없었다.  승객 의자가 모두 치워진 이 여객기는 대만과 남사군도가 중국에 점령된 후 붕괴된 싱가포르 무기시장을 대신해 시드니에서 열린 무기시장에서, 각종 미사일을 구입하여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기존의 호주-한국 노선은 크게 동쪽으로 옮겨졌다.  어제는 한국에서 호주로 향하던 여객기가  중국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객 전원이 몰살당했다. 국제항공기구(ICAO)가 중국의 범죄행위를 규탄했지만 중국정부는 이 행위는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KAL 638은 항공등도 키지 않은 채  여객기로서는 엄청나게 낮은 고도인 고도 1000피트로 북쪽을 향해 비행했다. 비행기 아래쪽 해상에는 흰 항적을 끌고 있는 선단이 보였는데 그 선단도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참치냉동선 동원 139호

  장 봉수 선장의 동원 139호는 최고 속도로 북쪽을 향했다.  서사모아에 기항중이던 그의 배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즉시 냉동창고를 모두 비우고 필리핀 루손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공산반군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소총과 수류탄 등 소화기를  가내생산하고 있는 집들을 돌며 이들 무기를 값을 가리지 않고 매입했다. 그의 사정을 들은 무기중개인이 국제무기상인 호세를 소개해주어 그로부터 대량의 지대공 및 함대함 미사일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 선장은 돈이 부족했다. 선단의 비상시를 대비해 회사에서 입금해준 그의 아메리카 뱅크 계좌의 예금잔액을 훨씬 넘는 금액이었다.

  본사의 회장을 설득하여 대금을 송금시키고 이를 호세에게 주었다.그가 루손섬을 떠날 때 호세는 신의의 상징으로 자기가 소지하고 있던 콜트 38구경 권총을 장 선장에게 주었다.  무기에 이상이 있으면 다시 돌아와 그 권총으로 자신을 쏘라는 의미였다.

  장 선장이 한국으로 향하는 중에 중국 잠수함에 의해 두 척의 어선을 잃었다.  중국 잠수함들은 한국 상선들이 기존 항로를 크게 우회한다는 사실을 알고 필리핀 근해까지 침범하여  한국 국적의 배를 공격하는 것이다. 장 선장은 배를 잃고 나서야 선미에 일본의 국기를 게양했다.

  1999. 11. 19

  일본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가장 먼저 내각이 한 일은 일반산업의 방위산업체로의 전환이었다.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라인은 장갑차 등의 군용차를 생산했고 조선소의 도크는 모두 함정 건조에 사용되었다.  미쯔비시 중공업 공장에 있는 전투기 생산라인의 수가 매일 두배씩 늘어났다. 군사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일본은 전시체제로 들어갔다.

  예비역 자위관들이 소집되었으나 아직 징병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일본 수상의 제의를 한국의 홍 대통령이 거절했다.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는 한국민의 감정상 너무 꺼림칙했던 것이다.그리고 일본의 야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일본의 88함대는 대마도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해군의 남해함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개의 구축함대를 부산쪽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정부가 일본에 한국으로의 무기 수출을 요구하자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다만, 계속해서 일본 자위대의 파견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작전권은 일본이 가지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한국과 일본의 협상은 계속되었으나 지지부진했다.

  1999. 11. 19  23:30  평안남도 안주 동남방 8km, 매암산 기슭

  중국군은 안주를 점령하자 계속 남하해갔다. 안주에는 포병대와 수송부대 등의 지원부대와 2개 사단의 예비병력만 남게 되었다.제공권을 가진 중국군은 여유가 있었다.  한국군의 야간공습을 우려하여 이동은 주간으로 한정하고 밤에는 쉬었다. 1951년과는 반대의 양상이었다.

  매암산 아래의 분지에는 중국군 제 212사단이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주둔중이었다. 중국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아직까지는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어서 예비병력은 넘쳐나고 있었다. 병력보다는 물자의 소모가 예상외로 심했는데 이는 병력소모가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숙영지 주변에 철조망이나 지뢰 등의 매설도 없이 주둔하는 212사단은 지나친 자신감에서였는지 경계도 허술했지만  전시 야외주둔의 원칙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달이 기울자 숲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든 중국군 초병이 적외선 야시장치로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숲과 참호 앞의 개활지 모두 온도차가 거의 나지 않았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초병은 다시 총을 내리고 고개를 숙여 담배를 피워 물었다.한달째 계속된 야외훈련과 잦은 부대이동,  가족에의 편지 금지 등 모든 것이 이상했는데, 그 후에 부대가 압록강철교를 건너서야  중국이 한국을 침공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비부대라 아직까지 전투가 없었지만 적지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들어와서 만나본 적이라고는 얼이 빠져있는 피난민들과  초췌한 몰골의 부상당한 인민군 포로밖에 없었다.

  전쟁은 의외로 쉽게 끝나  한 달 안으로는 집에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 전쟁이 터지니 군인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이 많아져서 좋았다. 한달 전에 받은, 화남 지방의 농촌에 사는 가족의 편지에는 홍수로 먹을게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몇 년 간 계속 홍수 아니면 가뭄이라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기근이 심했으며 굶주린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참호 안에서 담배를 깊이 빨고 얼굴을 참호 밖으로 냈다.적은 없겠지만 혹시나 야간당직군관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키면 큰일이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역시 아무도 없었다. 같은 근무조인 중사는 계속 곯아떨어져 있었다.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이제 교대 시간이 30분 남았으니 아직 자려면 멀었다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숨이 멈춰질 때 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숨을 들이쉴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목이 뜨뜻한 것으로 메워졌다. 감각이 없다. 캄캄한 밤이 더욱 까매져서 아무것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어지러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무척 졸렸다.

  중국군 초병 두명을 해치운 검은 그림자들이 참호의 기관총을 반대쪽으로 설치했다. 50 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있는 참호마다 검은 그림자들이 기어들어갔다. 이들은 적외선 반사 흡수율이 수풀과 거의 같은 DBDU 위장복을 입어서 적외선 감시장치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다른 그림자들은 이미 중국군의 야전막사로 기어들기 시작했다. 초병들을 해치우고 불 켜진 막사를 먼저 공격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이 켜진 막사의 수가 점점 줄었들었다.  마침내 부대 전체가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가장 먼저 212 사단의 이상을 발견한 것은 집단군 사령부의 통신병이었다. 정기적으로 통신을 유지해야 되는데 212사단 통신병의 보고가 끊어진 것이다. 이런 이상은 가끔 있기 때문에 넘어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전시상황이라 당직사령에게 보고를 했다.

  신안주시 남쪽의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주둔 중인 214 사단의 전령이 투덜거리며 트럭을 타고 212사단의 주둔지로 가 보았다. 지도에 주둔지로 표시된 곳은 이상하게 캄캄했다.사단병력이 주둔하는 곳이라면 야간 등화관제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도시처럼 환해야되는데 불빛이 전혀 없었고 적막만이 감싸고 있었다.

  전령이 사단 주둔지가 바뀌었나  생각하여 무선으로 집단군 사령부에 보고했지만 당직사령의 호통만 들어야했다. 운전병이 막사가 있다고 알려와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막사는 많은데 불빛이나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둔지 입구의 바리케이드 근처에도 중국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이상한 낌새가 들어 무선으로 집단군 당직사령에게 계속 보고했다. 이 시간에도 일부 전선에서는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고 점령지역에서도 패잔병 및  게릴라 소탕작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당직사령은 신경이 날카로와져 계속 호통을 쳤다. 왜 아무도 없냐고 질책했는데 전령 입장에서는 난감했다.

  "젠장, 아무도 없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전령이 무전기를 손으로 막고  투덜거렸다.  운전병은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군기빠진 당나라 군대라 하더라도  전시에 이런 경우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수많은 막사에 초병 하나 나와 있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집단군 당직사령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채근했다. 전령도 이상한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으나 명령이 명령인지라 무전기를 둘러매고  손전등을 소총에 맨 채 차에서 내렸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막사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무전병이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전기에서는 어떻게 된거냐고 당직사령인 군관이 계속 호통을 쳤다.

  "막사… 안입니다. 이상하게… 병사들이… 자고 있습니다. 모두.. 흔들어 깨워보겠습니다. 이봐! 일어나!"

  1999. 11. 20  00:15  평남 개천, 중국군 16병단 25집단군 사령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군관이 참다 못해 소리질렀다.

  "도대체 어찌 된거야? 212 사단 전체가 나자빠져 자고 있단 말야? 초병도 안세우고?"

  "으…"

  군관은 잠시 침묵 후에 무전기에서 전령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들어야했다.

  "다, 다 죽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병사들도, 총을 들고 문에 기대고 있는 병사도 다… 옆 막사에 가보겠습니다."

  집단군의 군수참모이며 오늘밤 야간사령인 추 대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사단 전체가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다 죽었단 말인가?  옆 막사에도 시체만 있다는 전령의 비명에 가까운 보고를 받고 참을 수가 없었다. 즉시 214 사단에 비상을 걸어 212 사단 주둔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의 매복이 예상되니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곤히 자고 있던 집단군 사령도 깨워 보고했다. 212 사단 전체가 야습을 당해 전멸했으니 적 1개 사단 병력 정도가 후방에 남아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214 사단에 이어 집단군 사령(正職–사령관)이 집단군 직속부대를 이끌고 서둘러 212사단의 주둔지인 매암산 아래쪽으로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214 사단장의 무선보고가 왔다.

  "212 사단은 없어졌습니다. 남은 건 1만여구의 시체와 철저히 부서져서 사용불가능한 장비 뿐입니다. 곳곳에 휴발유가 뿌려져있습니다.아마 불을 지르려다 황급히 도망친것같습니다."

  집단군 사령은 숨이 멈출 지경이었다.  한반도 침공작전 이래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아시아 각국 침공작전을 펼친 이래 처음이었으며 더우기 한명 남기지 않고 몰살당한 것 또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적은 어떻게 그 많은 병사들을 죽였나?  총소리는 없었지 않은가."

  "예. 저도 방금 도착해서 몇 십 구 안봤지만  대부분 칼이나 송곳 종류, 또는 신경가스에 당했습니다. 일부 소음총에 의한 사망도 있지만.."

  갑자기 무선에서 폭음이 연속적으로 들리며 사단장의 말이 끊겼다.정직은 분노에 부르르 떨었다.  212 사단에 이어 214 사단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이런 지경에 다음날로 예정된 집단군 전체의 이동은 의미가 없었다.  집단군 휘하 5개의 사단 중에서 벌써 2개를 잃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적지의 점령도 의미가 없었다.공격하고 점령해봐야 이렇게 적이 자기 세상인듯 활개 치지 않는가. 사령이 멍청하게 무전기를 보고 있는데  무전기에서 다시 사단장의 무선 보고가 흘러나왔다.

  "당했습니다.  적은 단발적인 부비트랩을 쓰지 않고 212 사단 숙영지 전체에 대규모 지뢰원을 조성했습니다.지금 피해상황을 조사중입니다만 크게 당한 것같습니다. 한 방에 날아갔습니다.  남은 인원이 얼마 없습니다!"

  정직은 분노와 공포에 몸을 떨었다.적은 아군이 전멸한 212사단의 주둔지에 대규모 부대가 정찰하러 올 것을  미리 알고 지뢰밭을 만들어서 214 사단까지 날려버린 것이다. 서둘러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같이 몰려왔다.그러나 자신의 직분을 잊지는 않았다. 즉시 집단군 통신실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통신차에 있는 3개의 강력한 무선 안테나가 산지에서도 신안주시의 집단군 사령부에 무선 신호를 보냈다.

  "전 집단군에 비상을 걸어! 적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하나 남김없이 사살하도록 전하라. 빨리 가!"

  집단군 사령은 직속 연대의 길을 재촉했다.저 멀리 212사단의 주둔지였던 곳이 불길에 쌓여있었다.저곳에는 자신의 또다른 부대인 214 사단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다.  무한궤도를 갖춘 YW-531 H APC의 파생형인 85식 장갑 지휘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피던 사령은 북쪽 262고지 쪽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얼핏 느꼈다.순간적으로 위함을 느껴 지휘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갑자기 목에 큰 충격이 와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해치에 몸을 걸친 채 부대행렬 곳곳에 섬광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했다. 목에서 계속 뭔가가 흘러 나오는 느낌이 이어졌다.

  새벽에 심양에 본부를 둔 조선공격군 예하 16병단 사령부에 당중앙군 사위로부터 기다란 제목의 전문이 도착했다.

  < 금번 16병단 25집단군 예하 212 사단과 214 사단, 집단군 사령부 직속 자동차화연대의 참상에 관한 군사위 정보분석소위의 보고사항과 조선공격군에 대한 군사위의 명령 >

      이번 참상은 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소속의 특수부대인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의 소행으로 추정됨.절대 인민군이나 남조선군의 패잔병집단이 아님.야간전대대는 야간전 전문 전투부대로서의 특수훈련을 이수, 무기도 무음무기를 주로 사용하며 백병전에 능함.달빛이 전혀 없는 암흑상태의 야간에도 10미터 이상 떨어진 상대방의 명찰을 인식할 정도임. 참고로 저격여단은 전원이 각종 무기와 폭발물의 전문가들임. 적이 소수라고 무시하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것.  주간에 적 발견지 반경 40km 이내를 포위, 추적하여 섬멸할 것이며 이들과의 야간전은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회피할 것. 이상.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리루이환

  1999. 11. 20  05:00  평안남도 개천군

  비상이 걸린 중국군 제 16병단 사령부가  북경으로부터 온 전문을 받은 바로 그 시간에 인민군 야간전 대대의 병사들은 산길을 타고 동쪽으로 40여 킬로미터를 행군하여 안주로 향하는 25집단군과 엇갈려 개천군에 있는 용린사(龍麟寺) 남쪽 숲속에 도착, 나무 밑둥을 파고 들어가서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자고 있었다.  새벽이란 이들에게는 암흑의 시작을 뜻했다. 너무 밝아 활동을 못하는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므로 자신들을 드랴큘라라고 자조하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밤이 좋았다. 부득이한 이유로 낮에 전투를 수행해야할 경우에는 야간전투시 일반보병이 착용하는 야시경처럼 자신들은 광량조절필터가 달린 안경을 착용해 햇빛으로부터 자신들의 눈을 보호해야만 했다. 무덤 뒤쪽에서는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모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기러니끼, 우린 여기 집단군 사령부를 공격하는기야. 집단군 사령이 아까 우리에게 뒈졌다는구만. 동무들 어제 뎡말 수고 많았어.여단장 동지와 통일참모본부에서 칭찬이 대단해."

  나이든 대대장이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부하 군관들을 격려했다.군관이라면 당연히 평양말인 문화어를 써야함에도 대대장은 말 배우는 것과 동시에 진급도 포기해 버렸다. 대대장이 부하 통솔 잘하고 전투지휘 잘하면 되지 꼭 애써가며 평양말을 배워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는 자신의 사투리를 고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대대장이 통일참모본부로부터 전송된 자료를 지도와 대조했다.

  "이 지점이구만. 보급상태는 어때?"

  적진 한복판에서의 보급문제는 심각했다. 어제밤 큰 전투를 치르면서 자체보유한 탄약과 폭발물을 다 써버렸는데 다행히 전투보급 체계가 같은 중국군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 212사단의 주둔지에 매설한 지뢰도 212사단의 무기고에서 노획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간전대대 고유의 보급품은 조달할 수 없었다.

  1999. 11. 20  05:00  서해상, 북위 37도, 동경 125도

  서해의 짙은 새벽 안개를 해치며  대규모의 선단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회색으로 선체를 칠한 배들은 꿈결처럼 파도를 헤치며 항진하고 있었는데 선두의 배 마스트에는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오성홍기!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함대가 서해 바다를 새까맣게 메우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항공모함 2척, 미사일 순양함 5척, 미사일 구축함 8척, 프리깃함 12척 등 배수량이 큰 대형함만 27척에 각종 미사일고속정과 어뢰정, 소해정 등 중국 해군의  최신예함들로 함대를 구성하여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수많은 수송함과 전차양륙함이 따랐다. 또한 바다 속에는 중국 해군의 수 십 척의 잠수함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11. 20  05:30  개성, 통일참모본부

  "대규모 함대입니다.  서해상에 수십척의 중국 함선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륙전이 아닌가합니다."

  고단한 새벽잠을 깬 참모들이 투덜대며 자리에 대충 앉자, 양 중장이 청천벽력 같은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의 다소 당황한듯한 설명을 듣고 모두들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겨우 병력을 동원하여 막강한 중국 지상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판에,  또다른 상륙전이라면 가용자원이 딸리는 통일 한국군으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을것같았다.

  "적 함대는 어떻소?  규모는?"

  이 차수가 묻자 양 중장이 이제야 생각난듯 화면을 켰다.

  "적 함대의 현재 위치는 덕적군도 남서방 100 km 정도입니다. 해주만 상공에 떠 있는 조기경보기의 보고로는 대형함이 30여척이라고 보고 하고 있습니다.  함종은 아직 안밝혀졌지만 아군 정찰기가 다수 떴으므로 곧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위치로 보나 규모로 보나 상륙부대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덕적군도라면 인천 서쪽 아니오? 그럼 혹시 인천쪽으로 상륙하는 걸까?"

  이 차수가 매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들의 접근을 제지한다는 것은 현재 거의 파산상태에 있는 서해함대나 남북한 공군의 능력으로서는 무리였다.  상륙을 허용하고 지상에서 싸우는 것밖에 도리가 없어 보였다.

  "적 함대의 위치로 봐서는 인천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현재 아군은 서울에서 평양 사이의 지대에 대부분이 몰려있으므로 아마도 적은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한 태안반도나 아산만 쪽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음… 평양보다는 서울이 더 위험하게 됐구만… 이거 원…"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혀를 찼다. 전에 묘향산과 청천강 방어선이 안주전투의 대참패로 뚫리고 평양이 위험해졌을 때 국군 참모들은 평양을 포기하고 멸악산맥을 방어선으로 삼자고 주장했었다. 중국 장갑집단군의 위력이 워낙 막강해서  평야지대에서는 방어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국군 참모들의 주장이었지만, 인민군 입장에서 수도인 평양을 내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이야기였다.  대전차 대대와 남쪽 대학생들의 컴퓨터 실력 덕분에 평양 실함의 위기를 넘기자마자  이젠 서울이 위험해진 것이다.  인민군 장성 입장으로서는 남쪽이 북쪽을 도운 것처럼 이번엔 북쪽이 남쪽을 도울 수도 없었다. 어쨋든 아직 북쪽에선 중국군들과 전투중이며 회복하지 못한 지역이 더 많았기때문이다.

  "현재 충청남도의 병력은 어떻소?"

  한국 공군의 이 호석 중장이 물었다.  양 중장이 자료를 찾아 화면에 덧붙였다.

  "향토사단이 하나 있습니다.  주로 해안방어 임무라서 기갑이나 항공 전력은 없습니다. 예비사단 2개는 지금 편성이 끝났고… 이건 원래 동부전선에 투입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취소해야 되겠죠. 그리고 현재 지원가능한 공군 비행장은 대전밖에 없습니다.  다른 비행장의 전투비행단은 현재 정수 미달입니다. 현재 제 8전투비행단이 주로 평양상공의 요격임무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서부전선의 항공지원이 취약해지겠군요."

  "아무래도 중국군은 우리측 전선의 강화를 방지하기 위해 제 2전선을 구축하려는 것 같습니다.  여수에 상륙하려던 것처럼 우리측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의 협소한 지형상 중국군의 대규모 병력이 운신할 폭이 좁아  중국측으로서는 전선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력의 우위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자 통일한국군의 전선강화를 막을 목적으로 서해안에 상륙전을 시도하여 북쪽 전선을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하려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참모부 소속 중위가 받아  전화를 양 중장에게 넘겼다.  양 중장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루만 빨리 알았으면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지. 왜 이제야 말하나? 지금 서해안으로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단 말일세. 그래.. 응… 자네들도 빨리 와주게."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양 중장의 얼굴을 살폈다.

  "그 대학생들, 아니,  컴퓨터 전문가 소령들이 이제야 중국군의 상륙 계획을 알아냈다는군요. 하루만 빨리 알았어도 어떻게 막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됐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방법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병력이 없잖소? 해군도 동원하기 힘들고…"

  "우리 서해함대는 다들 평안남도 서쪽 바다에 몰려 있습니다. 남해함대는 제주도에 대한 중국의 재공격을 막기 위해  제주도 서해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동해함대는 함경도쪽의 후퇴작전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충청도 서해안은 상대적으로 방비가 너무 허술했습니다."

  국군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탄식하듯 말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거의 무진장할 정도라며 모두들 걱정했다.

  "그러면 제주근해에 배치된 남해함대의 일부를 태안반도 근해로 이동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양 중장이 걱정스러운 듯 묻자 심 중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최고 순항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최소한 16 시간은 걸립니다. 남서해안의 항로가 원래…  그리고 남해함대에서 군함을 빼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중국의 다른 함대와 대치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함대로 적의 상륙을 저지하기는 무리입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해야합니다. 물론 단 하나의 희망이 있긴하지만…"

  "단 하나의 희망이라뇨? 그게 뭡니까?"

  박 정석 상장이 묻자 심 중장이 대답했다.

  "그 해역에는 우리 209급 잠수함 2척이 있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군은 대함전 능력이 어느 정도 될까요?"

  심 중장이 겨우 2척의 잠수함으로 어찌 해보겠다는 자신의 의견이 쑥스러운듯 말미를 돌렸다. 이 호석 중장이 공군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현재 남북의 공군력은 전쟁 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격추 및 파손,또는 정비 중이라서 실제 가용 전력은 전쟁 전의 전투기와 공격기 합계 1천 5백대에서 현재 800대 정도입니다. 특히 F-16의 손실이 큽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신예전투기들을 상대로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F-4나  F-5를 투입하기도 무리입니다. 미그-23은 더욱 힘들고요."

  "음……"

  참모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단 전북의 32사단을 충청도 해안으로 돌리고,  북쪽으로 이동중인 전남의 예비 61사단을 긴급배치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해군이나 공군의 지원은 힘들것으로 보이는데…"

  양 중장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육군의 막대한 피해를 각오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참모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역상륙은 어떨까요?  일단 상륙을 허용하고 적의 상륙지점에 우리가 역상륙하면…"

  심 중장이 안을 내놓았으나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군력이 강하지 못한 통일한국군으로서는 역상륙할 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역상륙은 상륙병력 전원의 전멸을 각오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다. 세계전사상 역상륙이 시도된 적은 많았지만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적의 군수물자에 대한 타격을 목적으로 한다면 별개의 문제였지만, 상륙하는 측에서도 항상 역상륙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상륙전의 일반교리였다.

  "일단 소규모 부대로 역상륙은 시도합시다.그래야 상당수 상륙병력을 해안에 묶어둘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죠."

  참모들이 한국해군 UDT의 역상륙에 대한 안을 통과시킬 때 대학생 해커들, 이제 육군 소령이 된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며칠 밤을 꼬박 새워서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일단 컴퓨터와 회의실 중앙의 대형 모니터를 연결시킨 후, 구 성회 소령이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우 디렉토리가 달라서 찾는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현재 상륙부대의 위치와 규모입니다. 보시죠."

  구 소령이 화면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장치를 가동시키자 화면에 중국군 상륙부대의 위치가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상륙부대의 규모와 소속 함정들의 제원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해신 시리즈 전투항모 한 척과 미국의 니미츠급 대형항모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상전투함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동해함대의 전력 거의 전부입니다."

  심 중장이 놀라 외쳤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중국 해군에 수입되어 시험 운항을 마치고 처음으로 작전에 참가했는데,  놀랍게도 수심이 낮은 서해로 온 것이다.

  "중국의 공격형 잠수함이 모두 동원된 듯합니다. 원잠인 한급 외에도 킬로급과 로미오급 등의 재래식이 60척이나 되는군요."

  박 상장도 놀라며 말했다.  참모들의 벌린 입들이 다물어지지 못하고 있을 때 심 중장이 조용히 말했다.

  "흘수가 깊은 항모들은 해안 30km까지 밖에 접근을 못합니다. 상륙부대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겠는데요.  항모부대와 상륙부대는 분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해역에 섬들이 많으니 공군기를 적절히 이용하여 상륙부대에 공대함 미사일을 날리면…"

  "그럽시다.  일단 지상군이 해안에 배치될 때까지 공군이 막는데까지는 막아봐야죠."

  이 호석 중장이 동의를 표하자 참모들이 모두 찬성하고  곧 통일참모본부의 명의로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당 군사위의 명령서에 따르면 상륙지점은 아산만입니다만,주요 공격 목표는 서울로 되어있습니다.상륙병력은 1차로 6개 사단이며 추가로 12개 사단이 지원될 예정이랍니다. 선발 6개 사단 중 1개 사단은 해병 기갑사단입니다."

  구 소령이 말하자 참모들이 시름에 잠겼다. 중국군은 제 2 전선의 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위기감이 참모들 사이에 번졌다.

  "차라리 남포쪽으로 올 것이지…"

  박 상장이 한탄하자 국군 장성들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는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다음에 말씀 드리리다. 우리 인민군은 해군이 약해보였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모를 것이오. 다음에 말씀 드리리다."

  국군 장성들은 박 상장이 무슨 큰소리를 치나 했지만 이 차수는 빙긋 웃었다.

  "일단 1차 상륙병력을 철저히 때려부셔야 적의 2차 상륙 기도가 좌절될 것이오. 이 6개 사단을 막을 방도를 세웁시다. 가용병력은 어떻소?"

  이 차수가 얼른 말을 돌려 묻자 양 중장이 다시 설명했다.

  "충남 33사단, 충북 35사단, 전북 32사단,전남 31사단 등 향토사단이 있고, 편성과 이동중인 전남의 61,62 예비사단, 전북 63,64 예비사단과 충남북의 65,66,67 예비사단 까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비사단이라 장비가 형편없습니다. 잘못하면 대량살육 당하고 적의 서울 진입을 허용할 수도… 국군 수방사 예하 기갑사단 하나를 동원해야 합니다."

  "안되오.수방사 예하 병력은 지금 대부분 최전선에 있고 수도 인근에 배치된 부대는 제 1기갑사단 하나밖에 없소. 창설과 교육중인 기갑사단 2개를 빼면 최후의 예비부대란 말이오.  이 부대까지 소모해 버리면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해나가라는 말이오?"

  정 지수 대장이 계속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 보루인 제 1 기갑사단의 출동에는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이 시간에도 중국 해군의 상륙부대는 점점 아산만에 접근하고 있었다.

  11. 20  06:10  백아도 남서쪽 10km 해역, 한국해군 잠수함 장보고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몰려옵니다. 2-5-5, 거리 30에서 45km, 대형 수상함 다수!"

  일반적으로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는 패시브 소나의 유효거리가 길다. 그러나 긴만큼 정확한 거리의 측정이 어려워진다. 대양상에서의 패시브 소나의 최대 유효탐지 거리는 약 80해리이며, 구형 하푼(HARPOON)의 사정거리도 이와 동일하다. 지금 장보고함에서는 소나 유효탐지 거리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측정하고 있지만,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는 거리 측정의 부정확성 때문에 함장이 발사를 망설이고 있었다.

  "미속 전진, 3-0-0, 삼각측정을 한다. 적 잠수함의 활동도 잡히나?"

  함장 서 승원 소령이 잠망경을 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해군 사령부를 경유한 통일참모본부의 명령으로는 적 상륙부대 중에서도 항공모함이나 미사일 순양함 등의 대형 함정보다는 상륙부대를 실은 수송함을 노리라는 명령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차양륙함이라면 최고의 목표라는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함장으로서는 적 잠수함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이 걱정되었다.

  "인근 해역에 잠수함의 활동은 없습니다."

  소나실로부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전진 미속, 3-0-0"

  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복창하자 잠수함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해군 잠수함부대로는 최초의 전투작전 투입이었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승무원들이 모두 바짝 긴장을 하고 각종 계기를 주시했다.

  "항공기의 레이더 전파를 잡았습니다. 초계기의 해상수색 레이더입니다. 3-1-4에 거리 12km, 아! 또 있습니다.  2-0-9, 거리 15km! IL-28의 대잠공격형입니다."

  전파분석반에서 초계기의 존재를 알려왔다.중국의 해상초계기가 이렇듯 한반도에 접근한 것은 전쟁 발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은 IL-28 경폭격기를 대잠용으로 개발한 바 있다.그 정도의 거리라면 초계기의 레이더에 잠수함의 잠망경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하던 함장이 잠망경을 보더니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2-3-5에 적 항공기 다수! 잠수한다. 다운트림 최대!"

  함장이 잠망경을 내리고 뛰어내려왔다.  함내에 비상이 걸리고 적 비행기의 육안수색으로부터 피하고자 최고의 속도로 잠수를 시작했다.

  "적 항공기를 식별해 봐. 기종은?"

  "섬-15형 함재전투기입니다. 총 4기. 거리가 멀어 탑재무기의 실루엣이 불명확하지만 해상초계라기보다는 백아도 폭격이 목적이 아닐까요?"

  전자전 사관이 비디오를 되돌리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덕적군도의 한 섬인 백아도에는 해군 레이다 기지가 있으니 중국군의 목표가 될만했다.

  "좋아, 적 함대의 해석치는 나왔나?"

  아군이 공격받건말건 일단 잠수함이 공격목표가 아닌 것이 서 소령으로서는 다행스러웠다. 어쨋든 임무는 하고 볼 일이었다.

  "선두의 미사일 구축함과 소해정들의 데이터는 나왔습니다만, 항모와 수송함들은 뒤쪽에 있어서 신호들이 뒤섞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좀 더 전진을 해서 알아보는게 낫겠습니다."

  발사관제관이 보고하자 함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전진을 명했다. 잠수함이 수중 15노트의 속도로 천천히 적 함대를 향해 나아갔다.

  11. 20  06:20  대전 제 8 전투비행단

  브리핑실에 가득 모인 전투기 조종사들이 한국 공군 최초의 대함공격을 준비하면서 바짝 긴장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전투기와 공격기의 구분이 거의 없는 한국공군으로서는 특히 대함 공격의 실적이 전무했다. 그래도 하픈이라도 있으니 기관포로 간첩선을 막던  옛날보다는 상황이 좋아진 편이었다. 모두가 최초의 대함미사일 공격을 앞두고 들뜬 채 단장의 설명을 들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이 섬형 함재기들이다."

  단장이 화면에 러시아 수호이 27의 함재형 개량형인 수호이 27K의 중국형인 섬(殲)-15호 전투기를 비쳤다.

  "산뚱 반도로부터 출격하는 해군 공격기와 전투기들도 있지만 거리상 체공시간이 짧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항모에서 바로 출격하고, 최근의 정보에 의하면 이들의 추력대 중량비가 기존 수호이-27K와는 상대가 안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미국에서 엔진을 개량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것은 직접 이들과 교전한 조종사들로부터 얻은 정보이다."

  브리핑실에 신음 소리가 퍼져나갔다.  소문대로 과연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국을 편든다는 말이 맞았다. 거대한 적인 중국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절대 밝지 못했다.

  "우리는 이 함재전투기를 상대하는게 아니라 적함을 공격하는 것이다. 모두 착각 말도록!"

  비행단장인 진 권휘 준장이 비행복을 입은 채 적 함대의 진형을 설명하며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적 함대 진형은 포클랜드 전쟁 당시, 산 카를로스 상륙작전 때의 영국함대의 방공진형과 같다. 제 1진은 전투기의 CAP(전투공중초계), 2진은 미사일구축함의 광역대공미사일망, 3진은 프리깃함들에 의한 단거리 SAM과 근접화기이다. 가장 후미에 적 항모와 양륙함 등의 대형함정들이 있다. 물론 우리의 목표는 양륙함과 수송함이 된다.제군들이 적 항모를 공격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적 상륙 저지이다. 이번 우리의 작전은…"

  진 준장의 작전 브리핑에 조종사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더니 금방 정색을 하고 주목했다. 어쨋든 목숨을 건 작전이었다.

  "1대대는 적기의 유인과 요격을 맡는다. 2대대는 역시 대함공격이다. 2대대는 내가 직접 지휘한다. 자, 가자!"

  전투조종사들이 브리핑실을 뛰쳐나가 각자의 전투기에 올랐다. 몇 번의 공중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미 며칠전의 자신들이 아니었다.가끔 조종사들이 전투중 손을 보기도 하는데 인간을 죽인 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으며, 역시 그들의 손은 피묻은 더러운 손도 아니었다.

  이미 무장을 끝낸 F-16 전투기들이 한대씩 날아오르기 시작했다.아침 햇살이 눈부신 하늘을 천천히 날아오르는 전투기들은  이동하는 철새처럼 평화로와 보였다.

  11. 20  06:30  백아도 남서쪽 20km 해역, 한국해군 잠수함 장보고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2-0-9, 거리 15마일에 대형함정군.  1-8-5의 선두 집단과는 배수량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잠수함들은 전방에 배치. 대형함정 음문해독 중… 2-0-2에 루다급 구축함 키닝, 2-0-8… 이건!"

  "무슨 일이야?"

  소나원이 비명을 지르자 함장이 소나실로 뛰어갔다. 소나원이 가리키고 있는 음문 그래프는 함장은 본 적도 없는 초대형 수상함이었다.  서 소령이 마른 침을 삼켰다.

  "혹시 이건 9만톤급 원자력항모?"

  함장이 소나원의 표정을 살폈다.  제발 자신의 판단이 틀리길 바라면서 그를 봤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중국에 없는 줄로 알았던 9만톤급 항모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곧 출동할 한국 공군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상부에 보고할 것도 없이 이 핵항모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퇴역했던 니미츠입니다. 96년 림팩(RIMPAC) 훈련 때 봤습니다. 아니, 모의전투를 치뤘습니다."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자신은 구축함의 대잠사관으로서 바로 이 장보고함을 쫓고 있었다. 결국 장보고함이 승리했고, 잠수함의 가상 미사일공격 결과 니미츠는 침몰로 판정되어  미국 해군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속도가 느린 통상형 잠수함에 의한 핵항모의 침몰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RIMPAC은 사실상 구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한 환태평양 군사훈련이었는데, 적 잠수함과 장거리 폭격기, 각종 수상함의 대함 미사일에 대한 방어를 하며 상륙부대를 목표해역까지 도달시키는 훈련이었다.  격년제로 실시되며 한국도 빠짐없이 참가했지만,통일이 되면서 북한의 주장에 따라 한국은 불참하게 되었다.

  "그 때 이 중령님은 3개의 허수아비를 발사했었지. 모두가 깜짝 놀랐어. 진짜를 다시 찾는데 5분이 걸렸고, 그 때는 이미 4기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후였거든.  그리고 최종평가 때 이 방법에는 대책이 없다고 했지. 좋아, 우리도 이 방법을 쓰지."

  서 소령이 씩 웃으며 유선유도어뢰에 장보고함의 음문을 입력할 것을 지시했다. 발사관제관인 고 중위가 신중하게 음문 데이터를 입력시키는 사이 서 소령이 한마디 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량의 무기를 팔았다는데 설마 핵항모까지 팔아치울 줄을 몰랐어.아마 미국은 선전 때문에라도 통상형 잠수함에 가상격침된 기록이 있다고는 말하지는 않았을거야. 우린 똑같은 방법을 쓴다. 물론 이 수심에 온도층은 존재하지 않지만 방법이 있지. 1,2,3,4번관 어뢰장전! 5,6,7,8번관 하픈 장전!"

  고 중위가 데이터 입력을 보고하자 서 소령이 함내가 떠나갈 듯 외쳤다.

  "자, 돌격!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 수중항주 25 노트."

  서 소령은 부함장의 복창이나 어뢰와 미사일의 장전확인도 없이 바로 최고속도를 명했다. 갑자기 선체가 골재채취장의 덤프트럭 소리를 내더니 속도가 가해졌다. 209급 재래식 잠수함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인 25노트로 5킬로미터쯤 항주하자 서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1번 어뢰, 목표 1번함, 어뢰의 초속(初速)은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도 좌현으로, 함을 20노트로 감속!"

  잠수함 승무원들이 갑작스런 명령의 홍수에 휩쓸렸다. 함장을 통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명령을 주고받기 바빴다.

  "1번 어뢰 발사 완료!"

  "감속 20노트, 심도 80!"

  "1번 발사관 어뢰 장전."

  명령과 복창이 혼선을 이룬 가운데 부함장이 확인에 바빴다. 한국 잠수함 승무원들에게 있어서 96년 림팩에서의 니미츠 격침은 당시 함장인 이 중령과 함께 신화로 남아 누구나 이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함장이 시계를 보더니 손을 천천히 치켜 올렸고, 이를 본 승무원들이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3번 어뢰, 목표 2번함, 어뢰의 초속은 여전히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도 좌현, 함은 15노트로 감속!"

  다시 한번 함내에 일단의 혼란이 오고,  이내 다시 잠잠해 지더니 모두들 함장의 치켜든 손을 보았다.

  "4번 어뢰, 목표 3번함, 초속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노트로 감속, 우현 전타!"

  장보고함이 4번 어뢰를 발사하고 무음잠항에 들어가며 천천히 부상했다. 항해사관은 이해역을 손바닥 들여보듯 잘 알고 있었다. 좌전방 1km에 암초가 있고, 이것이 장보고함을 지켜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3발의 어뢰는 긴 와이어를 끌고 장보고함의 음향을 발하며 수중을 항주했다. 중국해군은 다가오는 잠수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즉각 프리게이트함과 대잠헬기들을 어뢰쪽으로 보냈다.

  "어뢰 수중항주중, 1번함까지 2300, 2번함 3100,3번함 2700! 적함 접근 중, 회피행동은 없습니다!"

  중국 프리깃함들은 발사된 어뢰들과  3개의 어뢰가 발사된 지점을 연결한 장보고함의 추정위치를 쫓고 있었으나, 장보고함은 이미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아직 속고 있군. 좋다. 잠망경 올려, 발사준비."

  함장이 명령하자 전기적 작동에 의해 잠망경과 함께 전파수신 안테나가 물 위로 올라갔다. 전자전 하사관이 주변해역의 레이더파를 잡은 후 소나와 레이더의 자료를 대조하여 적함과 항공기들의 위치를 수정 보고 했다. 함장이 잠망경으로 주변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동안 발사관제관이 목표 데이터를 최종 입력하고 발사준비를 마쳤다.  중국 함정들이 추적하던 물체가 잠수함이 아니라 어뢰라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회피행동에 들어가서 소나의 데이터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대신에 무선데이터를 참고로 데이터를 입력하여 목표에 대한  데이터는 더 정확해졌다. 발사절차에 따라 복창이 이어졌다.

  "5,6,7,8번관 연속 발사! 발사 즉시 재장전하여 동일 목표에 대해 발사! 어뢰는 최종속도로!"

  11. 20  06:35  같은 수역, 한국해군 이천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잠수함 접근 중! 방위 3-1-4, 거리 3800."

  소나원은 잠수함의 심도를 빼고 보고했다. 최고 수심이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 해역에서 심도는 의미없는 숫자였다.

  "음… 대기."

  이천함은 해저에 함을 눕히고 한 시간째 꼼짝 않고 있었다.패시브 소나로 수면 위의 상황을 계속 살피고 있었는데, 중국 수상함정들의 수가 워낙 많아 공격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리깃함이 연속적으로 탐신음을 발사하고 초계기들이 청음소나를 투하했다. 움직이면 바로 들켜서 공격도 못하고 당할 상황이라  이천함은 중국의 대규모 함대를 바로 머리 위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국함대가 다 지나가자 속도가 느린 잠수함이 온 것이다. 함장은 잠수함을 공격할까, 아니면 기다렸다가 수상함정들을 공격할 기회를 노릴까 고민했다.

  "함형을 확인해봐."

  함장이 소나원에게 명령하자 소나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잠수함의 소리와 중국 잠수함의 특징이 기록된 화일을 비교했다. 계속 소리와 음문 그래프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미오급입니다. 현재 거리 3200. 속도는 10노트입니다."

  함장은 중국의 로미오급 잠수함에 대해 생각했다.해군에서 발간한 대잠수함전용 기밀문서에는  중국의 로미오급(중국 해군의 제식명 033급) 잠수함은 대잠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탑재병장은 단지 14기의 SEAT-60 패시브 호밍 어뢰 뿐이었는데 이 어뢰로는 잠수함을 공격할 수 없었다.  최고 속도는 수중 13노트, 장보고함과 같은 209급 잠수함인 이천함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속도였다.

  함장은 고민했다. 대형전투함정이 당연히 공격 우선순위가 높지만,적 잠수함을 내버려두기도 아쉬웠다. 게다가 이 잠수함은 이천함의 존재도 모르지 않는가.그리고 어차피 중국 함대는 이천함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금 전 중국함대가 머리 위로 지나갈 때 함장이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아 승무원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함장으로서는 승무원들에게 겁장이로 비쳐지기도 싫었다. 움직이기로 했다!

  "거리 1500이 되면 어뢰 2기 발사. 발사 후 즉시 3-0-2로 항진한다."

  좁은 잠수함이 갑자기 바빠졌다. 승무원들이 어뢰발사 준비와 이어서 있을 잠수함의 이동 준비에 바빴다.

  "발사!"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뢰가 발사되었다.  좌우현에서 각각 한 발씩 발사된 어뢰는 35노트의 속도로 중국 잠수함을 향해 직진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되어 중국 잠수함은 피할 사이도 없었다.

  "가자, 항속 15노트."

  "명중!"

  함장의 항진 명령과 소나원의 보고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곧이어 어뢰에 명중된 중국 잠수함에서 나는 폭음이 이천함을 때렸다.이천함은 서서히 속도를 내어  침몰한 중국 잠수함 옆을 지나쳐 서쪽으로 항주했다. 커다란 폭발음이 얕은 서해바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수심이 워낙 얕아 해저로부터의 반향이 심했다. 이천함은 이 소음의 그늘에 숨어 중국 프리깃함과 초계기를 피했다.

  11. 19  06:35  서해상

  늦가을 서해의 차가운 바다 위로 물보라가 뿜어져 올라왔다.4발의 하푼미사일이 부스터에 의한 추진력을 받으며 상승하다가 곧 날개가 펴지며 수면비행에 돌입했다.  잠시 후 다시 4발의 미사일이 수면으로 나오고 더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보고함은 목표포착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바다 속으로 숨었다.

  수면 위 3 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하픈 미사일들은 같은 목표를 향하여 날아갔다.  중국 함대는 잠수함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확인하고 초계기와 대잠헬기들을 처음 미사일이 발사된 해역으로 급파하는 동시에 회피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사일들은 저고도로 날기 때문에 발사된 순간만 잡히고 지금은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

  11. 20  06:37  장보고함

  "2-3-5에 수중폭발음! 잠수함이 파괴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원이 보고하자 서 소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위치에는 장보고함의 자매함인 이천함이 숨어있는 것을 함장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중국 구축함이나 초계기의 공격을 이천함이 피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 소령의 해군 사관학교 동기인 이천함의 함장은 국산함의 성능이 더 좋다며 서 소령을 놀리곤  했었다.장보고함이 독일의 키일 조선소에서 건조됨에 반해 이천함은 옥포의 대우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이다.성능의 차이가 조선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천함의 함장은 항상 자신의 함이 더 좋다고 우기곤 했었다. 취역 연도가 1년의 차이가 나므로 그 사이에 건조기술이 더 발달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후에 건조된 함들과는 성능 차이가 많이 나서  자매함으로 부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이천함의 함장을 못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서 소령의 가슴이 아팠다.

  "어뢰는 어떻게 됐나?"

  함장 서 소령이 묻자 어뢰와 적함을 추적하던 소나병이 보고했다.

  "1번 목표 거리 400, 급속 접근 중! 목표1 디코이(decoy : 회피용 미끼) 발사. 어뢰 최종속도 진입! 시간상으로는 벌써 명중했을겁니다. 아! 명중!"

  수중에서의 음파의 속도는 공중에서보다 훨씬 빠르지만,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소나에 잡히는 거리와 실제의 거리는 차이가 있게 된다.이번에도 같은 경우이다. 장보고함의 소나에 목표접근으로 표시된 어뢰는 이미 최종속도인 35노트의 빠른 속도로 목표와 충돌했다.

  장보고함의 승무원들이 무음잠항중이라 소리는 못내지만 주먹을 쥐고 흔드는 등 몸짓으로 환호를 질렀다.  어뢰는 쟝후이급 프리깃함 깡딩에 명중했다. 260 kg의 탄두가 함의 강판을 뚫고 작렬했다.

  "2번함은 어뢰 회피, 어뢰가 다시 돌아서 접근합니다. 아! 명중!"

  다시 승무원들 사이에 무언의 환호가 오가는 사이, 서 소령은 미사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한국해군 잠수함 최초의 적함 공격과 성공,이것은 자신의 잠수함으로 이뤄졌지만, 하픈의 명중 여부가 더 궁금했다.하픈 미사일이 워낙 비싸 자신은 실제로 발사한 경험도 없었던 것이다.

  11. 20  06:40  서해상

  장보고함에서 발사한 하픈 미사일 8기는  마하 0.85의 아음속의 속도로 수면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하픈 대함미사일은 비록 실전배치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더 이상의 좋은 무기가 나오지 않아 당당히 현역을 지키고 있었다.

  하픈과 비교되는 엑조세 미사일은 명중율에서는 신뢰할만 했지만, 지연신관 조작법이 워낙 까다로와 포클랜드해전에서의 영국함 셰필드호의 경우처럼 탄두가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셰필드호는 미사일의 연료가 폭발하여 화재로 침몰하긴 했지만,동시에 이 미사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다.그리고 엑조세와 달리 하픈만이 한국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었다.

  관성유도로 20여 킬로미터를 날아간 하픈 미사일들이 급상승했다. 목표를 찾기 위해 레이더를 발진시키며 돌입을 하는데, 이는 동시에 미사일 요격을 막기 위한 회피 기동이기도 해서 이를 격추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소속의 항공모함 해신 6호, 즉, 미국 해군 니미츠의 다른 이름인 이 대형 함정은 한국 공군기의 내습에 대비해 함재기들을 이륙시키고 있었다. 속도는 30노트 정도로 빨랐지만, 함재기 출격을 위해 직선 코스를 취하고 있어서 하픈 미사일의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와 오차가 거의 없었다.근접방어화기인 CIWS가 이제야 미사일의 돌입을 발견하고 자동으로 사격을 개시했지만 급강하하는 미사일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미사일은 바로 돌진하여 거대한 항공모함의 흘수선을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그 바람에 이륙중이던 F/A-18 전폭기가 중심을 잃고 바다에 추락했고, 항공모함은 큰 화재에 휩싸이게 되었다. 연이어 다른 3발의 하픈이 날아왔는데 CIWS는 이미 기능이 마비되어 미사일을 막지 못했다.

  하픈이 계속 명중하며 폭발이 이어졌다.  거대한 항모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9만톤급의 거대한 항공모함이라도 탄두중량 500 파운드의 연속된 폭발력은 견디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해역에 있던 프리깃함이 항모를 구하려고 달려왔지만 계속 날아온 4발의 다른 하픈이 해신 6호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거대한 이 항모는 함수로부터 바다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승무원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그들의 머리 위로 함재기와 탑재 헬기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11. 20  06:45  서해 상공

  "통참으로부터 연락이다. 적 항모중 1척은 니미츠급 핵항모다!  적의 함재기는 약 90대로 봐야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호이-27K와 F/A-18로 밝혀졌다."

  진 준장이 무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 무선을 통해 여기저기서 무거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덩지가 너무 크고,예상한 적기의 수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적기와 교전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대형 수상함정들이다. 작전은 속행한다."

  진 준장이 부하 파일럿들을 격려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어쩌면 계획 자체를 다시 수립해야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공격하기로 작정했다.

  "풍속 20, 풍향 3-2-5, 좋다. 1번 작전 개시!"

  전투기들이 일제히 공대함 하픈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발사를 마친 전투기들은 반전하여 대전 비행장쪽으로 돌아가면서  공중에 수많은 물체를 뿌렸다. 이 물체들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알루미늄 풍선이 되어 서풍을 타고 육지쪽으로 이동했다.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나머지 반의 전투기들은 다시 저공비행을 하여 서해상으로 돌아갔다.

  11. 20  06:47  장보고함

  "4번 어뢰는 빗나갔습니다.  아, 연속폭발음! 하픈 명중! 또 명중! 4번의 폭발음이 있었습니다. 다 맞았습니다!"

  소나병의 외침을 필두로 승무원들이 잠수함이 떠나갈듯  환성을 질렀다. 여기에는 과묵한 서 소령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는 의자 위로 뛰어 올라가 만세까지 불렀다. 스스로 무음잠항의 원칙을 깬 것이다.

  "목표, 침수음이 들립니다. 속도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미사일 발사 해역에 수중항주 중인 어뢰 다수!"

  소나병이 보고하자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국 항모는 최소한 항행불능이 되었을 것으고 보았다. 그리고 하픈을 발사한 후 즉시 잠수함의 위치를 옮긴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대잠헬기에서 발사한 어뢰는 5노트로 수중항주 중인 음파어뢰를 쫓고 있었다.서 소령으로서는 중국의 대잠헬기는 걱정할 것이 못되었다. 다만 MAD(자기 탐지장치)를 갖춘 초계기가 걱정이었지만, MAD의 탐지거리는 너무 짧았다.

  "샴페인이 없어서 아깝군.  이봐, 함내에 종이컵 커피라도 한잔씩 돌려, 그걸로라도 건배를 해야지."

  함장이 주방에 연락하자 주방장이  커피와 생수를 승무원들에게 따라 주었다. 모두들 진짜 술을 받듯이 좋아했다.

  "자,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여 건배! 원샷!"

  서 소령이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단 숨에 마셨다.  술잔을 마신 것처럼 종이컵을 거꾸로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털었다. 승무원들이 배를 잡으며 웃고 자신들도 따라했다. 모두들 술이 아니라 승리에 취한 것이다.

  "자, 우리 몫은 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사냥감이 듬뿍 있으니 그냥 가기도 아깝다.  하픈은 없지만 어뢰가 많이 남았으니 다 쓰기로 한다. 적 함대 뒤로 돌아 돌아간다. 침로 2-5-1, 심도 200, 미속 전진."

  승무원들이 이성을 찾아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잠수함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 속도로는 적 함대를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저들도 무작정 한반도에 접근하지는 못할거야.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

  "소나에서 발령소로, 적 잠수함 발견, 2-1-4에 1척, 2-0-9에 한 척입니다. 거리 7000~9000 사이. 모두 원자력잠수함입니다."

  소나원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원자력잠수함의 속력과 무장은 통상형잠수함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잠수함은 핵무장 잠수함일 가능성도 있었다. 함대가 위험할 경우 중국군이 핵을 쓰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처리했으니 중국군이 핵을 쓸 리가 없어.  핵을 쓰려면 벌써 썼을테고… 상관없다. 미속전진!"

  서해의 특징은 리아스식 해안답게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해역에 섬과 암초가 많다는 것이다.바다가 얕기 때문에 잠수함의 패시브소나의 성능은 향상되지만 섬과 암초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이럴 경우 이 해역을 잘 알고 있는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11. 20  06:48  서해 상공

  제 8 전투비행단의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중국 상륙함대에 접근했다. 고공에는 수많은 알루미늄 풍선들이 적의 레이다를 속여주기를 바라면서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해주상공의 조기경보기 E-2C에서의 지령이 수신되었다. 파일럿들이 자신의 미사일의 목표를 신중히 수정하여 입력했다. 갑자기 조기경보기로부터 다른 연락이 왔다. 중국의 거대한 항공모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야? 어쨌거나 잘됐군. 어차피 항모는 목표도 아닌데…’

  김 준장이 갑자기 사라진 중국 항모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단지 목표 상공에 적의 함재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었다.

  "지금이다. 발사!"

  진 준장의 한마디에 F-16전투기들이 일제히 오토맷(Otomat)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오토맷은 엑조세와 거의 같은 크기의 미사일인데 발달형인 Mk-2의 경우 data-link  장치를 미사일에 탑재하여 중간 유도가 가능하게 된다. 모두 48기의 오토맷 Mk-2, 개발국인 이태리에서 테세오라고 부르는 이 대함 미사일들이  터보팬을 가동하여 중국함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먼저 발사한 24기의 하픈은  중국군 상륙함대의 대공미사일망을 구성하는 구축함대를 피해 크게 남쪽으로 돌아 다시 북쪽으로 선회, 수송함과 양륙함들을 노리고 쇄도해 들어갔다.

  대형 핵항모 해신 6호가 격침되어 승무원 구조와 한국군 잠수함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중국함대 남쪽 해상에 미사일들이 나타났다.  하픈은 수면 위를 스치듯 나는 sea-skimming 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하기 때문에 목표 3킬로미터 이상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공중전투초계에 임했던 전투기들은 알루미늄 풍선을 추격하고 있었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이미 해신 6호와 함께 가라앉았다.초계기들은 모두 미사일을 발사한 잠수함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한 상태여서,  남쪽에서 몰려 오는 하픈을 발견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이 날은 중국함대 최악의 날이었다. 먼저, 호주에서 구입한 퇴역항모 멜버른을 개조한 소형 재래식 추진 항공모함 해신 4호가 하픈의 세례를 받았다. 3천톤급의 전차양륙함과 수송부대를 실은 류칸급 및 샨급 대형 수송함들도 하픈의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24발의 하픈 중 21발이 목표에 명중해 폭발했다. 해신 4호는 바로 침몰하지 않았으나 전차양륙함과 수송함들에게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6척의 전차양륙함과 11척의 수송함이 침몰하거나 대파됐다.

  대형항모인 해신 6호가 침몰하자 함대지휘권은  해신 4호로 옮겼으나 해신 4호마저 피습된 지금 지휘부는 완전 붕괴되었다.개별 함정들이 후퇴를 결심할 즈음에 오토맷 대함미사일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구축함을 향하는 듯했으나 미사일구축함들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자 크게 남쪽으로 선회하여 요격미사일을 피하고,  앞서의 하픈과 같은 코스를 취하여 남아있는 양륙함과 수송함들을 향해 돌진했다.

  오토맷 미사일들이 해신 4호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나머지 양륙함과 수송함도 남김없이 서해바다에 수장시켰다. 항모들을 호위하던 프리깃함들만이 덩그러니 이 해역에 떠있었다.  이제는 보호할 것도 없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해야했다.  전투기의 호위가 없는 프리깃함이 적의 영해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갑자기 썰렁함을 느낀 구축함과 프리깃함들이 전속력을 내어 서쪽으로 항진했다.

  11. 20  06:55  장보고함

  "수상에 폭발음 다수! 아마도 공군의 공격이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침몰중인 함정 다수, 엔진 정지 중인 함정도 많습니다."

  소나원이 신중한 목소리로 함장에게 보고했다.  서 소령은 이 기회에 적 함대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당장 인근 해역에 있는 중국 잠수함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장보고함은 5노트의 속도로 서서히 서쪽으로 나아갔다. 원자력잠수함들은 장보고함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수상함정들의 재난을 구경하는지, 신경질적으로 부상과 잠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나에서 발령소로! 해상에서는 지금 카레이스 중입니다. 목표 잠수함들도 급속히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 소령이 무슨 일인가 소나원에게 다가와서 수상항주를 지켜보았다. 수 십 개의 밝은 점들이 대잠경계 속도까지 무시한 채 서쪽으로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전투기가 없는 항모부대의 운명이란 뻔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서 소령이 이들을 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다시 목표들을 살펴보았다.

  "잠깐, 핵잠수함 한 척이 급속 접근중입니다.  1-7-5, 속력 30 노트, 거리 2700. 2-5-0 방향으로 이동중입니다.  이 속도라면 소나의 기능은 상실할텐데요."

  소나원이 설명하자 서 소령이 시큰둥해지며 말을 했다.

  "좋아, 통과시켜. 대신에 도망가는 엉덩이를 걷어 차주지. 어뢰는 준비됐지?"

  서 소령은 맹수와 사냥꾼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사냥꾼이 도망가는 맷돼지를 향해 총을 쏘았으나, 맷돼지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도망갔다. 맷돼지가 총에 맞은 장소에 갔으나 핏자국이 없어서 동료 사냥꾼은 맷돼지가 총에 맞지 않았다며 포기했다.그러나 주인공 사냥꾼은 명중됐다고 생각하여 계속 추적해보니 맷돼지가 쓰러져있었다. 맷돼지는 항문에 총알을 맞아서 즉시 피를 흘리지 않고 도망갔으나, 총알이 관통하여 내장을 휘저은 것이다.

  그러나 맷돼지와 달리 잠수함에 있어서 추진부가 밀집한 뒤쪽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곳이다.  잠수함의 선체는 일반 수상함정보다 두껍고 이중선체가 최근 잠수함 건조의 일반적인 사상이다.  옆구리에 533밀리 어뢰를 맞고도 침몰하지 않는 경우는 충분히 예상되어 왔다. 그러나 뒷부분에 한 방 맞으면  아무리 강한 러시아제 타이푼급 잠수함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물론입니다. 발사관 모두에 어뢰가 장전되어 있습니다. 발사관 주수 완료. 하픈은 이제 없잖습니까?"

  어뢰반에서 퉁명스럽게 보고하자 서 소령이 투덜거렸다. 깜박한 것이 아니라 확인해 본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조언을 했다.

  "저 잠수함을 공격한 후 수상함정들을 공격하시죠. 이번 기회에 최대한 적 함대에 피해를 주어야합니다."

  부함장은 이 기회에 적 함대를 괴멸시켜 구축함의 숫자를 줄여놓아야 다음 작전에서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러 척의 구축함에 쫓기는 것은 잠수함 승무원들로서는 악몽이었다.

  "거리 1500, 이 코스라면 우현 500미터를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원이 보고하자 잠수함의 정지를 명한  서 소령이 잠수함 공격 후 급속 부상할 것을 명령했다.  관제반원들은 중국 수상함대에 대한 공격에 대비해 각 목표함정들의 해석치를 내고 있었다.

  "거리 500! 계속 같은 코스입니다."

  "전방에 그대로 발사하면 됩니다. 확실합니다."

  소나원과 발사관제관의 보고에 따라 서 소령이 발사와 동시에 급속부상을 명했다.  잠수함이 어뢰 두 발을 발사한 후 급속히 물을 배출시키며 잠망경 심도로 부상했다.

  "잠수함 명중! 침몰중!"

  "목표 데이터 입력 중!"

  "E-2C에서 초장파 무선명령입니다. 적 함대의 데이타를 주겠답니다."

  소나원이 적 잠수함에의 명중을 보고하고  발사관제관이 데이타를 입력 중에 통신사관이 급전을 전했다.전자전기에서 목표 데이터를 제공해 준다면 잠수함으로서는 소나에 의한 부정확한 목표입력을 피할 수도 있고,  또한 레이더를 가동시킴으로써 적 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의한 발견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좋아, 다운트림 최대, 통신 케이블 방출하라!  근데 하픈은 이제 없잖아?"

  깊은 수중에 있는 잠수함에는 원칙적으로 전파가 도달하지 않는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결과,  파장이 긴 전파(장파)는 얕은 해역에 있는 잠수함과의 연락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장파는 대량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없기 때문에 급한 경우에 잠수함을 해상으로 불러내는 역할만 했다.  잠수함에 전파를 발사하는 시설은 작년 전라남도 해남의 평야에 만들어졌다.  장보고함에서 수신용 케이블이 나와 수면 위로 올라갔다.

  "목표 데이터 받았습니다. 자동입력 완료!"

  "좋아, 발사!"

  함이 울리고 8개의 발사관 중  7개로부터 SUT Mod 2, 533밀리 유선유도 어뢰가 발사되었다.

  11. 20  07:00  한국 해군 잠수함 이천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현재 12척의 구축함과 프리깃함이 급속 서진 중입니다. 우리쪽으로 다가옵니다."

  소나원이 이제 제법 긴장이 풀린 듯 천천히 보고했다.이제 자신은 전투를 겪은 고참인 것이다. 로미오급 재래식 잠수함 2척을 격침시키는데 자신의 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좋아, 근처에 적 잠수함이 없으니 이제 함대를 공격한다. 잠망경 심도로!"

  이천함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해상에 적 초계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파수신기가 달린 통신케이블을 방출했는데  의외로 한국군이 쓰는 주파수대의 전파가 잡혔다.

  "조기경보기로부터 적 군함들의 위치에 관한 데이터입니다!"

  통신원이 보고하자 함장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위험하게 해면으로 부상하여 레이더 전파를 발신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 전 발사관 하픈 장전! 아니, 7,8번관은 남겨둬. 아직 중국 잠수함은 많을테니까."

  함장이 명령하자 어뢰원들이 하픈을 발사관에 장전하고 발사관제관은 목표 데이터를 입력했다. 발사 준비완료의 신호가 두 곳으로부터 왔다.

  "하픈 전기 발사!"

  약 1200톤의 이천함이 연속 진동했다.  잠수한 상태로 하픈 미사일을 연속 발사했다. 하픈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다가 수면비행에 들어갔다. 함장은 적함의 전파방해를 우려하여 조기경보기에 의한 중간 유도를 하지 않고 하픈 자체의 관성유도와 최종유도인 레이더유도를 믿기로 했다. 이천함이 나머지 2발의 하픈을 더 발사하고 깊이 잠항을 시작했다.

  "명중! 명중! 또 명중!"

  소나원이 신이나서 떠들었다. 장보고함에 의한 해신 6호의 침몰과 한국공군기의 공습으로 나머지 항모인  해신 4호 및 수송함과 양륙함들이 모조리 침몰하자 중국 구축함들은 도망가기 바빴는데, 전혀 엉뚱하게도 전진하던 방향에서 하픈 미사일이 날아오자 중국의 수상함들은 피할 틈도 없이 당했다. 소나원이 계속된 승전보를 전했다.

  그러나 이천함은 바다를 낮게 가로지르며  중국의 초계기가 날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구식 IL-28 경폭격기를 중국이 대잠수함용으로 개발한 하얼빈 H-5  대잠전기가 이천함을 발견하고 어뢰를 투하했다.  어뢰 두 발이 승리에 들떠있는 이천함의 함미쪽으로 고속 접근했다.

  1999. 11. 20  06:30  평안북도 평원군 영유(永柔) 북동쪽 10km, 어파

  어파는 안주군에서 평원군으로 넘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안주평야의 너른 들이 묘향산맥의 자락에 의해 끝나고 다시 평원군의 드넓은 평야가 시작되는 곳이다. 경의선이 남쪽으로 평양을 향해 뻗어 있고 평양과 남포로 가는 도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새벽녘에 정찰 나갔던 대대 수색대로부터 적의 대규모 전차부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왔다.  부대 진지로부터 북동쪽 9km, 전차부대의 통상 진격속도로 15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대대 지휘부가 정확한 위치를 지도에서 찾고 있을 때, 수색대는 적 헬기정찰부대와 교전 중이라는 짤막한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영유로 가는 도로 주변의 구릉 지역에 위치한 대전차진지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대대장 배 윤성 중좌는 천천히 부근 지역을 망원경으로 둘러보았다. 새벽안개가 온 들녘에 자욱했을 뿐, 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전자전부대가 있습니다. 전자전 부대가 우리측 전파를 잡아 수색대와 위장진지의 위치를 파악한 모양입니다.본 진지에서 직접 교신을 하지 않은게 다행입니다. 그러나 위장진지는 곧 불바다가 되겠죠."

  옆에 있던 작전참모가  곧 닥쳐올 전투가 두려운지 대대장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대대장이 불만스러운지 툴툴거렸다.

  배 중좌는 산악지형에서 전차부대를 공격할까 했지만, 적에게 강력한 헬기부대의 지원이 있다는 정보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전차부대가 너른 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전을 세웠다. 어제 후퇴해온 국군 12사단의 공병대와 함께 두 개의 진지와 수많은 대전차호를 건설했다. 그리고 완벽한 승리를 위한 몇 개의 함정도…  모자라는 자재는 국군 수송부대가 헬기와 트럭으로 긴급지원을 해주어 어젯밤에야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안주전투에 참가했던 국군 12사단 소속의 공병감인  김 대식 중령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그의 말을 들으면 왜 안주전투에서 패배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방어전에서의 전차부대 제 일의 임무는 적 전차부대와의 교전 아닌가?  그러나 안주의 인민군 전차부대는 적 전차부대와 교전할 기회도 없었다. 김 중령과 그의 공병대대는 부상자 부대를 계속 남하시킨후 대전차대대와 함께 대전차호를 건설하고  중국의 러시아제 T-90전차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전수해 주었다.

  전방 우측 3 km에 위치한 위장진지의 중대장에게서 유선연락이 왔다. 적의 규모는 1개 전차사단과 2개 기계화사단이라는 보고였다.  지금 공격준비를 위해 전개 중이라는데, 중대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위장진지 앞의 논에 전개한 적은 4km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내려온 명령서에는 중국 장갑집단군에 러시아제 신형 T-90 전차가 300대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단군 소속의 공격헬기부대도 무시 못할 정도의 숫자가 있었다. 어쩌면 적을 격퇴시키기 전에 자신들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했다.  적보다 준비보다 많았으니 우리가 유리하다. 일단은…’

  갑자기 상공에 초음속 전투기의 굉음이 들렸으나, 즉시 남쪽으로부터 대공 미사일이 날아와 그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미그-23 유형인 그 전투기 조종석 바로 위에서 미사일이 폭발하여 기체가 중심을 잃고 산 위로 추락했다.폭발에 당했는지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 벌써 세 대째군.’

  다시 아무 것도 없게된 텅빈 하늘을 보며 배 중좌가 중얼거렸다.  새벽부터 상공엔 어떠한 항공기도 볼 수 없었다. 서로가 정찰기를 발진시키기도 했지만 대공망이 워낙 치밀해  이 지역 상공에 비행기가 떴다하면 즉시 격추되었다.  가끔 저렇게 저공침투 해오는 비행기도 있었지만 목적을 당설하지는 못했다.

  배 중좌는 감청컴퓨터(여러곳에 감청기를 설치하여 들리는 소리와 진동을 종합하여 적의 규모와 위치를 판단하는 장치)가 적 전차부대의 규모와 배치를 추정한 지도를 보았다. 선두에 전차사단, 좌우 후방에 2개의 기계화사단을 배치한 것이 중대장의 보고와 일치했다.  그러나 아직 적 포병대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가속하여 시속 55 km의 속도로 전진해 오고 있습니다."

  기술 하사관이 헤드폰을 쓰고 중국군 전차부대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그가 다른 감청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지우고 논길 옆의 감청기 하나를 골라 집중적으로 음을 증폭했다. 기기를 조심스레 조작해 가며 듣더니 갑자기 대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보고했다.

  "틀림없는 T-90 전차의 엔진음입니다. 840마력짜리 V-84 디젤 엔진입니다. 그러나 무게는 좀 덜 나가는 것같습니다.원래 T-90의 전투중량은 약 46.5톤입니다만,  포탄 적재량을 줄였든지 능동반응장갑을 줄였든지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차의 기동성을 향상시키고자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종종 쓰는 것으로 압니다."

  기술하사관이 잠시 헤드폰의 소리와 감청컴퓨터의 음문그래프에 신경을 집중하더니 말을 이었다. "감소된 중량이 약 2톤정도,이동시 소리의 차이를 들어보면 아마도 전장부의 반응장갑을 일부 제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두 기갑정찰대대의 전차들은 마인롤러 미부착 상태입니다!"

  마인롤러(mineclearing roller)는 전차 앞부분에  매다는 지뢰제거기이다.  러시아 전차들에 처음 장착됐는데 이의 효용이 입증되어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의 주력전차들에 많이 채용되었다. 그런데 중국전차들은 무슨 이유인지 마인롤러를 부착하지 않았다.  기갑정찰대까지 마인롤러가 없다는 것은 중국군이 기동전을 중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통일한국군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배 중좌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원래는 잠수함의 소나병인 기술하사관의 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소리만 듣고도 전차의 무게를 추정하는 그 하사관의 귀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나 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별 차이는 없어보였다.

  "전진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일까요?  T-90은 그 전의 모델과 비교해 추력 대 중량비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쨋든 잘 됐군요. 마인롤러 미부착에 전면 반응장갑 일부 제거라…"

  작전참모가 씨익 웃었다. 배 중좌도 참모를 보고 아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젠장맞을 공중지원은 없답니다. 요격에도 바쁘다는 설명입니다. 하긴, 이 지역 빼고는 전 전선에 걸쳐 제공권을 상실했습니다만…  잘하면 A-10 몇대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중국 전투기들의 교대시간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아군의 포병대와 항공병력은 이 전투를 지원할 능력이 없었다.  단지 적 공격기들만 요격해주겠다는 답신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아군병력의 배치를 위해  적 장갑집단군의 공격을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대전차대대가 지연시켜주길 바랄 뿐이었다. 단지 일말의 양심인지 A-10 공격기 몇대를 전투 시작 후에 보내준다는 지원약속만이 있을뿐이었다. 물론 이는 약속에 불과하다고 배 중좌는 생각했다.  현재 통일참모본부의 실권을 쥔 국군 장성들은 대전차대대의 능력을 몰랐다.  저격여단을 러시아의 저격사단처럼 일반 보병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저격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적 공격의 예봉을 꺾어 방어한다는 뜻으로 쓴다.

  포병과 미사일, 공격헬기의 지원은 막강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능력을 배가시켜주어 통일참모본부는 이들의 막강한 공격력을 여러차례  맛보아야만했다. 순천은 아직 점령당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강력한 공격을 막고 있는 인민군들의 피해가 너무 커서,  통일참모본부는 순천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영유 서쪽으로 진출한 장갑집단군은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 통일한국군이  서해안까지 방어선을 형성하기도 전에 빠져나가 남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민군 지상군이 포위해서 이들의 진격이 멈춘 순간 통일한국군의 공군기들이 쉴새없이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졸지에 포위당한 이 중국군 부대는 이미 어젯밤부터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선이 뚫린 인민군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했다. 이들을 막느라 벌써 2개의 사단을 소모했다.  하늘에서는 치열한 공중전이 계속되었다.

  통참으로서도 중국군의 주력인  제 13 합성장갑집단군만은 꼭 막아야 한다는 의견의 합치를 본 바 있다. 그러나 통참이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고 싶어도 가용 자원이 빈약하여 할 수가 없었다.아직도 순천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강서군을 향해 돌진중인 중국 장갑집단군을 막는데 지상군 3개 군단과 해군 서해함대,  그리고 공군이 총동원되어 막고 있었다.  중국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 앞에서 통일한국군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쪽 영유에서는 인민군과 국군이 급히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유명한 인민군의 815기계화군단과 2개 군단, 그리고 국군의 제 9기갑사단과 제 2군단이 긴급배치되었다. 그러나 방어선을 견고히 하는데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815기계화군단의 2개 전차여단은 서쪽의 중국군을 막는데 차출되어 실제 군단병력이 되지 않았다. 이곳 영유가 떨어지면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이 중국군의 포격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되므로 평양까지 위험했다.

  위장진지와 적의 거리는 약 2 km, 적은 이미 위장진지의 위치를 눈치챘을 것이 당연하고, 적의 선공으로 아침의 전투는 시작될 것이라고 배 중좌는 생각했다.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제 T-90 전차에서 발사되는 125 밀리포의 소리였다. 곧이어 위장진지에 있는 이 소좌의 보고가 무선으로 흘러나왔다.  적은 3개부대 전체가 사격을 시작했으며, 적의 전차들은 이동하면서 사격하는데도 명중율이 놀랍도록 높다는 보고였다. 또한 지대지미사일이 낙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왔다.  위장진지의 중대장인 이 한욱 소좌가 명령을 발하는 소리와  포탄과 미사일이 작렬하는 소리가 대대무전기에까지 들려왔다. 이제 그의 역량에 따라 이 전투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1. 20  07:00  위장진지

  이 한욱 소좌는 적의 포탄세례에 귀가 멍해졌다. 야산의 능선 3 km에 걸친 위장진지 곳곳에 적의 파멸적인 포격이 가해진 것이다. 특히 전선 후방 멀리로부터 날아오는 중국 정밀기계수출입공사의  305밀리 M-1B와 WS-1 다연장로켓탄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긴 방어선에 분산배치되어 있는 인민군들이 저항한번 제대로 못한 채 쓰러져갔다.배치받은 구형 T-62 전차 9대 중에서 겨우 4대만 남았다.나머지 장갑차들은 엄폐호에 숨어 있었다.장갑집단군 소속 중국군 포병연대의 83형 152밀리 자주곡사포도 이 파티에 참가했다.

  이 소좌가 대대용 무전기를 쳐다 보았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마자 전화선이 끊겼기때문에 무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본 진지의 위치가 탄로날까봐 대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자신의 중대를 위장진지에 미끼로 배치하고 수신만 하는 대대장이 혐오스러져서 무전기에 대고 감자 바위를 먹였다.거짓 후퇴를 하여 적의 본대를 유인, 포위섬멸한다는 고전적인 작전은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미끼가 되는 부대장의 심정은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적이 유인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포위해도 섬멸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 소좌가 보기에도 적은 너무 많았다.

  중국군이 전방 2 km까지 접근해오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인민군이 발사한 대전차 HEAT탄(성형작약탄)은 전차 포탑의 반응장갑에 명중하자마자 반응장갑이 터지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민군의 구식 T-62전차가 발사한 철갑(APFSDS)탄도 중국 전차의 장갑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나갔다. 피탄경시를 중요시한 달걀 형태의 러시아제 전차가 그렇듯이 전차포와 대전차포는 정면에 정확히 명중하지 않으면 중국 장갑집단군이 자랑하는 T-90전차의 장갑을 뚫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반응장갑 때문에 대전차미사일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 소좌가 소이탄 발사를 명령했다.각 장갑차의 12.7밀리 기총과 구경이 더 작은 기관총에서 발사되는 소이탄이 대낮의 하늘을 더욱 밝게 밝혔다. 중국 전차에 소이탄이 맞자 전차 앞부분의 반응장갑이 터져나갔다.소이탄은 8000도의 고열로 전차의 장갑을 뚫는 성형작약탄에는 훨씬 못미치만 상당한 정도의 고열을 내어 능동반응장갑의 폭발을 유도해냈다. T-90의 적외선 재머도 이들의 뺄 수 없는 공격목표였다. 각 전차의 레이저경보장치도 철저히 부쉈다. 저격여단답게 보병들의 사격은 정확했다.

  어느 정도 사격한 후 전차와 장갑차를 서서히 후퇴 시켰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본 중국군의 전진속도가 빨라졌다. 이를 본 이 소좌가 보병들 전원을 장갑차와 보병전투차에 탑승시키고 재빨리 후퇴해갔다.

  중국군의 전차부대는 단숨에 인민군 위장진지를 짓밟고 넘어 넓은 들로 나왔다.  그동안 산간지역의 좁은 도로만 달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듯 중국군 전차들은 최고속도로 벌판을 질주해갔다. 후퇴하는 인민군 보병 전투차들에 포화를 퍼부으면서, 이제 중국 장갑집단군은 전차부대의 최대 강점인 기동전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전차사단 뒤로는 기계화사단들이 따르고 있었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도 중국 전차들의 능동반응장갑과 조준기 등을 악착같이 파괴하고 있었다.

  1999. 11. 20  07:15  대전차대대 주진지

  드넓은 평야에 수백대의 전차와 그보다 많은 수의 장갑차들이 질주하는 모습은 대전차진지의 인민군들 눈에도 장관이었다. 대전차 진지에서는 이들의 술래잡기가 옆쪽으로 보였다.중국군의 전차들은 전차포로 인민군을 쏘기보다는 위협해서 세우려는 기세였다.아니면 인민군의 주 진지까지 인민군을 총발받이로 몰아 공격하려는 의도인지도 몰랐다. 진지에서 망원경으로  이들의 경주를 지켜보던  배 중좌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국군 12사단의 김 중령에게 눈짓을 보내자 김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몇 대 남지도 않은 인민군의 T-62전차들이 제 2진지에 도착하여 엄폐호에 숨고 115밀리 활강포로 사격을 시작하자 미리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또다른 중대가 사격을 시작했다. 배 중좌가 치켜들었던 손을 아래로 힘껏 내렸다.

   "1번 눌러!"

  배 중좌의 일성이 터져나왔다.  대대장 옆에 대기한 폭파조가 1번 스위치를 누르자 벌판을 달리던 중국군 전차 수 십 대가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들어갔다.

  1번 스위치는 어제 들판 수 십 군데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넓고 깊게 땅을 파고 위장해서 만든, 대전차호의 위를 덮은 강철판의 지지대를 붕괴시키는 기폭장치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래가 텅빈 강철판을 통과할 때 적 전차에서 느끼는 소리와 진동을 같게 하는 것이었는데 공병대는 1미터 두께의 흙을 철판 위에 쌓아 부족하나마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작업을 마치자 배 중좌는 12사단 공병대와 교도대원들에게 후퇴를 종용해서 지금은 김 중령과 폭파조만 남아 있었다.

  수십대의 전차가 땅속으로 사라지자 뒤따르던 전차들과 보병전투차들이 놀라 급정거를 했다.  급정거를 했으나 미쳐 서지 못한 전차와 보병전투차 몇 대도 관성의 힘에 의해 빨려들어가듯 대전차호에 빠져들어갔다. 땅속으로 꺼져들어간 전차들은 5미터나 되는 깊은 함정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2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생존하는 전차는 20세기 말이 되도록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차 승무원들이 파괴된 전차의 유독성 가스를 피해 기어나왔으나 함정을 기어나오자마자 후퇴한 인민군들이 발사한 기관총 세례에 몰살당했다.

  "포격 개시!  발사!  2번 눌러!"

  중국군 전차부대가 정지한 것을 확인한  배 중좌의 명령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먼저 한국군으로부터 인도받은 K-200 보병전투차의 파생형인 박격포차에서 원격레이더로 자동조준되는 107밀리 중박격포를 수 십 발 연속 발사했다. 전차들은 박격포 포탄을 무시했지만, 이 포탄은 의외로 대전차용 성형작약탄이었다. 중국 전차의 포탑이나 차체 위에 명중하자 고온의 액체화한 금속이 전차 윗부분의  얇은 장갑을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전차 내부를 불태웠다.  레이더로 조준되는 박격포탄은 이것이 과연 미사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정확하게 중국 전차들을 노렸다.

  후방에서는 포병중대가 MLRS와 한국군 155밀리 M109A2 자주포를 통해 SADARM(Sense and Destroy Armor)을 발사했다.발사 후 이중모드로 밀리미터파나 적외선 탐지기로 표적을 탐지하고 표적 상부에 명중하는 무게 11.7kg의 SADRAM은 155밀리 포탄에 2발,  MLRS로켓탄에 6발씩 운반되어 중국군 전차 상공에서 분리되어 전차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임시로 배속된  다른 포병중대는 북한 고유의 자주포인 170밀리 곡산형 자주포로 중국 기계화사단의 보병전투차들을 노렸다.

  K-200의 또다른 파생형인 20 밀리 대공 발칸포차가 전차들을 향해 불을 뿜었고, 구식 러시아제 BRDM에서는 새거(Sagger) 대전차 미사일이나 신형인 AT-7 SAXHORN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능동장갑이 없고 장갑이 얇은 전차의 옆 부분이나,  있더라도 이미 후퇴하던 이 소좌 중대의 소이기관총탄 사격에  능동장갑이 파괴된 전차들은 미사일의 관통을 막지 못했다.

  3대의 독일제 전차파괴차 판저예거(Panzer jager, KW)는 깊숙한 참호속에 숨어 20미터 길이의 미사일플랫폼만 내놓고 연속사격을 하는 모습이 공사장의 굴삭기를 연상케했다.  또한 21세기형 전차라고 불리는 미국 TCM사의 무포탑전차는 포신만 위로 내밀고 피탄면적을 최소로 한 채 105밀리 자동장전 속사포로 중국군 전차를 연속 파괴했다.이 전차는 연전에 한국지형 테스트용으로 미국에서 왔다가 사격통제장치의 불량문제로 개발 자체가 연기되었는데 이를 한국정부가 싸게 사 들인 것이었다. 개발당시에 이 전차는 대용연구차량(SRV)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각종 장갑차량과 사륜구동차에서는 밀란과 드래곤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보병들도 대전차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보병들은 휴대형인 90밀리 무반동총과 3.5인치 대전차 로켓포, LAW, 심지어 유효 사거리가 11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M-31 대전차 고폭총류탄까지 총동원하여 전차와 장갑차량들을 공격했다.

  특히 대공발칸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공포는 특성상 초구속도가 높아 전차 파괴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선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공포들이  대전차포로 자주 활용된 사실로써도 그 효용을 알 수 있다.  발칸포의 대전차공격은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즐겨 썼던 수법이다.

  보병과 동시에 주진지 뒤쪽에서  무장헬기 4대가 떠올라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MD500D의 대전차 개량형인 이 헬기들은 미사일 발사 즉시 언덕 뒤에 숨어,  로터 아래 마스트에 장착한 조준장치로 미사일을 유도했다. 80년대 말에 북한이 밀수입한 이 미국제 헬기는 절반이 대전차용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미사일 4발을 쏜 후에는 즉시 진지 뒤에 착륙해서 미사일을 재보급받고 다시 이륙했다.

  중국군 전차부대의 전진을 막는 강력한 저항에 놀란 중국군 전차들이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의 언덕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판저예거의 미사일플랫폼과 무포탑전차에 탑재된 작은 면적의 전차포뿐이었다. 보병들은 모두 잠망경을 통해 미사일을 유도하거나 사격 즉시 몸을 숨겼고, 대공발칸포는 3중의 견고한 콘크리트 토치카에서 사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토치카는 지연신관을 가진 미사일만이 파괴할 수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니 또 어떠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선뜻 인민군들이 숨어 있는 언덕으로 전진하지도 못했다. 계속 숨어서 쏘는 인민군들의 미사일에  못견디게 된 중국군이 후퇴를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야 중국군 포병들의 포격이 시작되었으나  횡으로 전개한 포병의 위치에서 볼 때는 종적으로 길게 연결된 인민군 진지에 대한 포격은 별 의미가 없었다.  단지 본대의 후퇴를 위한 엄호사격에 불과했다.  후퇴하는 전차들이 속도를 높였고 이들을 각종 포화와 미사일이 따랐다.또 다시 땅이 무너지고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빠졌으나 이들은 미사일이 더 무서웠다.

  그러나 후퇴하는 전차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전차 지뢰였다. 전진해올 때는 작동하지 않게  인민군들이 기폭장치를 해제했다가 스위치를 누르자 기폭장치가 작동하여 대전차지뢰의 효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또 다시 많은 수의 중국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파괴되었다.

  후퇴하면 지뢰탐지기에 드러나지 않는 플라스틱 대전차지뢰,  가만히 정지해있자니 각종 포화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었고 전진하다가는 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꼼짝 못하게 된 중국군 지휘부는 헬기부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중국 장갑집단군 사령은 헬기가 올 때까지의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전차가 SADARM의 우박을 맞고 폭발했다. 레이저경보장치는 사령의 전차가 미사일에 포착되었다는 경고를 발했다. 집단군 사령은 급해졌다.자존심까지 내팽개친 구원요청 독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령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소수이지만 강력한 적의 저항이다. 제발 빨리 와!"

  제 13 장갑집단군의 사령인 창 밍윈 소장은 중국내전때 남경군 고 중장의 휘하에서 장갑사단장을 했던 인물이었다.북경을 공략할 때는 좌익을 맡아 북경군구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가장 먼저 북경 외곽에 도착하는 명예를 안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대망의 별을 달게 되었다. 조선정벌은 그에게 있어서 또다른 기회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차에 충격이 가해졌다.  포탑 오른쪽에 동전만한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열파가 쏟아져 들어와 포탑 안을 휘감았다.창 소장의 뇌리에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막내딸이 떠올랐다.  사기꾼같은 미국놈 마이클. 백인과 결혼한 유색인종 신부의 비참함을 자주 들어서 말렸으나 막내는 막무가내였다. 딸과의 전화연락이 끊긴지 1년이 넘었다. 제발 행복하기를…

  3분이 안되어 약 30대의 러시아제 Mi-24 하인드 공격헬기가 대기하고 있던 산 뒤로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전차 대대에 배속된 인민군 고사포 소대에서  SA-16 GIMLET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10여대를 격추시키자  중국군 헬기들은 겁을 먹고 즉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공격헬기들을 뒤따라온 중국군 공중기동여단은 강력한 대공부대의 존재를 연락받고 공격헬기들을 뒤따라 도망갔다.  공격헬기가 당하는 판에  자체 장갑이 빈약한 수송헬기들의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공격헬기들의 활약을 잔뜩 기대하던 중국 전차탑승원들이 망연자실했다.

  전진할 수도, 후퇴하기도 어려워 망설이던 장갑사단장은 가만히 있자니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여 지뢰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고 후퇴를 명령했다. 짧은 시간에 150여 대의 전차와 더 많은 수의 보병전투차를 잃은 중국 장갑집단군은  조금 전에 점령했던 인민군의 위장진지 뒤로 후퇴했다. 후퇴하면서도 인민군의 미사일공격과 지뢰에 의한 피해는 늘어갔다. 지뢰에 의해 전차궤도가 절단되어 꼼짝할 수 없게된 전차의 승무원들이 전차를 뛰쳐 나왔지만, 이들이 다른 전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인민군의 기관포가 작렬하여 이들을 휩쓸었다.

  제 2진지에서는 이 한욱 소좌가 중국군의 포화에 의해 잃은 왼쪽팔을 오른손으로 들고 계속 사격하라고 외쳤다.피투성이가 된 중대장은 방어진 위에 우뚝 서서 그 팔을 지휘봉처럼 흔들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의무병이 그를 참호로 끌어들이는 순간 근처에서 20여발의 로켓탄이 작렬했다. 잠시후 먼지와 연기가 걷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999. 11. 20  07:25  위장진지

  직격포화를 피해 숨어들어간 인민군의 위장진지, 그곳에는 계속 전진해온 보급부대와 기계화부대의 후속부대, 그리고 후퇴해온 전차와 보병전투차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이 언덕 그늘을 벗어나는 즉시 인민군의 미사일이 날아오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가장 바깥쪽의 전차 또 한 대가 인민군의 헬기에서 발사된 대전차미사일에 파괴되었다.  이 모습을 본 바깥쪽 전차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단장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설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장진지는 또다른 재앙의 서곡이었다. 능선의 뒤쪽, 위장 진지에서 보면 전면, 2미터 깊이의 땅 속에 대형 유조탱크 3개와 LPG가스 탱크 2개가 숨겨져 있었다. 지상에 위장되어 있는 수십개의 가스 노즐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공기보다 1.5배 무거운 액화 프로판가스를 공기중에 스프링쿨러처럼 빙빙 돌며 뿜어냈다. 다른 수 십 개의 파이프에서 배관이 터지자 휘발유가 사방에 분수처럼 쏟아졌다.

  이것을 본 중국군 전차 부대원들은 공포에 질려버렸다.사방 수백미터에 걸친 휘발유와 가스의 벌판, 이곳이 자기들의 무덤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전차도 장갑차도 휘발유에 흥건히 젖었고 프로판가스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전차병들이 즉시 시동을 끄고 전차에서 내려 북쪽으로 줄달음질 쳤다.이들의 뒤를 보병전투차를 버린 기계화보병들이 따라 뛰었다.

  "발사!"

  배 중좌의 짤막한 명령에 자주 박격포차에서 단 한발의 중박격포탄을 발사했다. 국군 12사단의 공병감 김 중령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제 하루종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유조탱크와 LPG탱크를 매설하고 대전차 참호를 파느라고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죽을 중국군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중국 전투기 편대의 짧은 교대시간을  이용해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공군의 부 영철 소령은 자신의 애기인  A-10 썬더볼트II 공격기를 몰아 급히 전장 상공에 도착했다. 부 소령은 지상을 보곤 깜짝 놀랐다.  컴퓨터에 입력된 지도상에 있는 벌판에는 수백대의 중국군 전차와 장갑차들이 파괴된채 불타고 있었고, 그너머 능선 북쪽에는 지금 아수라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벌판에서 파괴된 숫자보다 더 많은 중국군 전차와 장갑차들이 뒤집힌 채 화염에 휩싸여 차례로 폭발하고 있었다.  불타는 보병전투차와 사륜구동차에서 뛰쳐나온 중국군들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땅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불길이 한순간에 사람을 재로 바꾸어 놓았다. 부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처참한 전장은 그로서도 처음 보았다.  수많은 전사를 읽고 전쟁영화를 보았으나 이런 장면은 상상도 못했었다.

  "3시방향에 적 차량부대!"

  부기장의 외침에 문득 정신을 차려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뒤따라 오던 2대의 공격기와, 호위 겸 지원공격을 위해 동행한 F-4E 팬텀 4기도 같은 방향으로 선회했다.  눈앞에서 부대가 전멸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기하고 있던  중국군 포병연대와 후속 보급부대는 하늘로부터 또다른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공격기들이 30밀리 어벤저를 쏘며 집속폭탄을 투하했다. 다양한 구경의 장갑자주포와 단거리용인 83형 122밀리 40연장로켓포를 탑재한 트럭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대공자주포가 이제야 하늘을 향해 불을 뿜어댔으나 1초도 쏘기 전에 팬텀기에 당했다. 자주포가 필사적으로 언덕 너머로 도망가려했으나  A-10의 어벤저포에 10여 발을 관통당하자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팬텀의 집속폭탄은 수많은 자폭탄으로 나뉘어 수송트럭 대열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연속 폭발했다. 공격기들이 서너 차례 공격과 선회를 반복하자  지상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중국군의 제 13 합성장갑집단군은 궤멸당했다.

  11. 20  07:50  개성, 통일참모본부

  "급전입니다. 대전차대대가 적의 장갑집단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젊은 통신장교가 통일참모본부 종합상황실로 급히 뛰어들어와 보고하자 상황판을 보며 분주하게 토의하고 하급부대에 명령을 내리던 참모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어렵게 유지하던 방어선이 장갑집단군에 뚫려 전군 후퇴라는 뼈아픈 작업을 수행 중이었는데,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한 시간 전 서해에서 중국 상륙함대를 전멸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들떠있던 참모들에게는 경사가 겹친 듯한 기쁜 표정들이었다.  이제 반격하여 적을 몰아내고 잃었던 땅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이들의 눈빛에 나타났다.

  "좀 더 자세히, 어떻게 겨우 1개대대가 집단군을 섬멸했나?"

  오랜만의 쾌거에 국군의 양 석민 중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통신장교를 채근했다.이 종식 차수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니, 그로서도 기대 이상의 전과였다. 대규모 적 기갑부대에 대한 방어전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저격여단 대전차대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긴 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국군 출신 참모들은 기쁘지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을,  인민군 장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랑스럽게 그동안 축 쳐졌던 어깨를 활짝 폈다.모두들 통신장교가 전통문을 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차호, 각종 대전차미사일, 대전차 지뢰, 그리고 특이하게도…, 초대형 지하유류탱크와 LPG 가스탱크를 이용했습니다. 아군 지상공격기에서 촬영한 화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대전차대대의 보고는 암호문으로 적 격퇴, 부대 위치를 전진시킨다, 보급요망,이라는 짤막한 것뿐이었습니다. 전과보고는 공격기들의 촬영에 의한 것입니다."

  통신장교는 국군과 인민군의 묘한 경쟁관계를 의식하여  인민군 대전차대대의 보고가 국군의 확인에 의한 객관적인 전과라는 것을 확인시키며 영상장치를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벌판에서 파괴된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들, 대전차호에 빠져 연기가 새나오는 전차들,그리고 인민군 위장진지의 북쪽에서 불타고 있는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화면이 급히 오른쪽으로 돌아가더니 중국군의 포병연대를 비추고, 공격기들이 무차별 공격하는 장면이 보였다. 잠시 후에는 중국군 포병대가 있던 곳이 파괴된 차량들의 잔해로 바뀌었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위장진지 전면에 아직도 불에 타고 있는 전차와 장갑차들,  그리고 그 너머 벌판에 파괴된 전차들을 비추었다. 그리고 북쪽의 산에는 추락하여 불에 타고 있는 중국군의 공격 헬기 잔해들이 보였다.

  "공격기의 부 영철 소령이 촬영한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해보니, 이번 전투의 전과는 적 전차 파괴 273대, 장갑차와 보병전투차 526대,그리고 자주포와 트럭 등이 310대입니다만, 촬영되지 않은 전과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들의 전과는 중국군 최정예 장갑집단군인 신예 T-90 전차부대를 상대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통신장교가 해설까지 해가며 컴퓨터용지에 쓰인 내용을 읽었다.

  "엄청나군요. 전쟁 시작 이래 지상전에서의 최대의 전과입니다. 저격 여단 대전차대대라… 우리쪽도 그런 부대를 만들고 싶군요. 물론 야간 전대대와 같은 저격여단의 다른 부대도 말입니다."

  양 중장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민군 장성들의 어깨가 한껏 치켜 올려졌다.  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에 공격기와 기갑사단으로 맞서기를 주장하던 국군 참모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진작에 인민군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리 대전차대대를  투입했더라면 전황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투기들을 빼내 상공을 엄호해준  공군의 이 호석 중장께 감사하오.그리고 포병사령관 김 은수 소장은 정말 노고가 많았소.  그리고 안주방어선에서 패배한 부대의 명예는 이번 12사단 공병대의 활약으로 회복되었다고 봅니다."

  이 차수는 국군의 지원부대들을 차례로 격려하였다.  이들의 지원 없이는 대전차대대의 전과는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이 차수가 함으로써 국군 장성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종식 차수가 근엄한 목소리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반격을 할 때요. 모든 작전은 반격을 염두에 두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시오. 특히 강서군으로 향한 놈들은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곧 공격하시오. 그리고 함경도쪽의 후퇴는 보류하시오. 반격이요!"

  "예! 차수님."

  국군이건 인민군이건 가리지 않고 이 차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중국군의 최강 합성장갑집단군에 대해 단 1개 대대의 소규모이지만 전문화된 부대를 배치하고,  특히 후방에 대공 미사일부대와 공군 요격기 부대를 집중배치해  압도적인 중국군의 항공우세에 대항해 일부지역이지만 제한적인 항공우세를 달성하여  대전차 대대에 대한 공중엄호를 철저히하여 대부대가 밀집한 것으로 중국군 지휘부가 오판하게끔 한 이 차수의 전술에 무궁한 찬사를 마음속으로 보냈다. 이제 전술이 아닌 전략차원에서도 이 차수의 능력이 발휘되길 바랐다.

  1999. 11. 20  10:50  함경남도 흥남

  "우린 앉아서 죽으란 말이야?"

  함경남도에 고립된 제 3군단의 군단장인 진 진형 중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백산을 점령한 중국군 39집단군이 강력한 헬기사단과 공중기동여단을 앞세운 기동전으로 순식간에 흥남 서쪽인 정평까지 점령하자, 중국군을 상대하며 천천히 후퇴하던 인민군 3군단과 5군단은 퇴로가 차단되어 함흥 남쪽의 흥남 해안가에 대부분 몰려있었다. 급히 달려온 동해함대에 의해 일부 철수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와서 반격이라니 장난같지도 않았다.  부두에는 철수준비를 마친 1개 사단 병력의 보병들이 초조하게 배에 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북쪽의 중국군은 거리가 멀었고 남쪽의 중국군에게는 포병이 없어 주변에 포탄이 낙하하는 불상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그러나 후퇴하지 못하면 중국군에게 죽거나 포로가 될 운명이어서 이들은 초조했다.

  "서부전선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군단장 동지!"

  "기래도 여기는 사정이 다르잖아. 완전 포위된 상태야~ "

  참모장이 반격을 종용하는데 상공에 한국군의 F-5 전투기들이 북쪽을 향해 날았다. 군단장이 비행기들을 보는 동안 참모장이 설명했다.

  "남쪽 정평에는 이미 폭격을 시작했고  구원군이 신속히 북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적은 겨우 어제 방어선을 뚫었기 때문에 아직 견고한 포위망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쪽에서 공격하면 포위 공격이 된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물론 항공우세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만…"

  군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남쪽 바다 상공에서 미그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헬기 한 대가 날아왔다. 대공부대가 일순 긴장하다가 긴급연락을 받고 경계를 해제했다. 그러나 대공포는 헬기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갔다. 대공포의 조준기 안에 흥남부두에 착륙하는 헬기가 잡혔다.

  "뉘기야?"

  군단장은 이렇게 불리한 전황에서  미그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고 오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다.  진작 공중지원을 해줬으면 피해가 적었을 것이라는 불만이 쌓인 판에, 이 헬기의 출현은 별로 기분 좋은 것이 못 되었다.

  군단장이 있는 곳의 50미터 북쪽에 착륙한 Mi-8 수송헬기에서 일단의 장교들이 내렸다. 부두경비를 맡은 병력이 누군지 확인하러 달려갔다가 얼어붙으며 경례를 했다. 장교들이 군단장쪽으로 걸어왔다.군단장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차수 동지!"

  "진 중장, 수고 많으시구레."

  "어드렇게 이곳까지 오셨습네까? 포위당한 위험한 곳에 말입네다."

  이 종식 차수가 빙긋이 웃었다.

  "진 중장의 군단이 포위한 거이 아이었소?"

  "차수 동지…"

  "서부전선은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되었소. 이제 동부전선만 잘되면 우리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알갔습네다. 기래도 무전으로 하시지 일케 직접…"

  "나도 인민군의 사기를 한 번 보고 싶기도 해서 이렇게 왔소."

  이 차수가 후퇴를 위해 동해함대를 기다리며 힘없이 앉아있던 인민군 들을 둘러 보았다. 갑작스런 이 차수의 등장을 보고 모두들 웅성거렸다. 패배한 전쟁터를 방문한 군 최고지휘부의 존재는 이들의 사기를 급격히 올렸다.이제 이들은 그동안의 잊혀진 부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차수는 다른 정치지도자도 아닌,  인민군들의 존경받는 어른이며 현역 군인이었다.

  "동무들!"

  이 차수가 나이답지 않게 쩌렁거리는 목소리로 인민군 장병들에게 외쳤다.

  "남반부 해군은 남해와 서해 해전에서 중국군을 크게 무찔렀고, 평양 북쪽 서부전선에서는 우리 인민군들이  적 장갑집단군들을 섬멸하고 있소. 이제 이곳에서만 승리하면 우리 땅을 다 찾을 수 있소. 동무들의 2세와, 동무들의 가족과, 동무들의 미래를 위해 침략자들을 몰아냅시다!"

  인민군들이 벌떡 일어나 몰아내자를 연호했다.

  "싸우자!"

  함성이 해일이 되어 산을 넘었다. 이들은 어제의 후퇴만 하던 부대가 아니었다. 모두가 전의에 불타올랐다. 국군이나 서부전선의 인민군에게 더 이상 뒤지고 싶지 않았다. 함대에의 승함에 대비해 포장했던 무장을 다시 풀었다.

  군단장이 임시 지휘소로 쓰는 막사로 이 차수 일행을 안내했다. 이들은 정평을 점령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함경남도 신포와 북청에 남아있는 인민군 5사단은 김책(성진)시 쪽으로 북진시키고, 함흥 북쪽 신흥의 인민군 8사단은 개마고원쪽으로 이동시켰다. 후퇴하던 인민군 3사단의 갑작스런 역습에 혜산에서부터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없이 천천히 남진해오던 중국군 제 5병단은 당황하여 황급히 전선을 축소시켰다.

  함흥 비행장에 속속 착륙하는 허큘리스 수송기로부터  한국군의 제 3 공수여단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부대를 정비한 후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함흥 서쪽의 성천강쪽으로 향했다.정평 남쪽의 영흥으로부터 인민군 제 9 기계화군단과 보병 2개 사단이 투입되어 전투에 임하고 있었고,  낭림산맥의 백산으로부터 후퇴중이던 1개 사단도 동쪽으로 이동하여 정평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정평을 점령한 중국군은 3배 나 많은 병력에 역으로 포위되었다.이날은 지금까지의 한중전쟁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기록된, 하루 3만발의 포탄이 동해안의 조그만 읍인 정평에 집중되었다.

  1999. 11. 20  14:20  함경남도 정평

  중국 공중기동여단의 헬기들은 한국 전투기들의 계속되는 전투초계에 의해 이륙도 못하고 있었다.  기동성이 제한된 이들은 일반보병보다 무력한 존재였다.  이 집단군에 하나밖에 없는 중국 전차연대는, 비록 구식이지만 공격기와 포격의 지원을 받는  제 9기계화군단의 T-64에 의해 격파되고 있었다. 정평을 구원하러온 중국군 전투기들은 갑자기 육,해,공에 형성된 엄중한 대공방어망을 뚫기에 벅찼다.  대부분이 정평 북쪽 상공에서 미사일과 남북 전투기들에 의해 요격되어 압록강을 넘어 도망갔다.

  최초로 정평 북쪽에서 인민군 제 9기계화군단과 3군단 병력이 만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만세를 불렀다.국군 제 3공수여단이 북쪽으로부터 정평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해 시가전이 전개되었다.하늘로부터 인민군 제 11공정경보병여단이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시내 곳곳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바다쪽에서는 동해함대의 엄호를 받으며 인민군 제 27상륙경보병여단이 통일한국군 최초의 상륙전을 시작했다. 정평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 27상륙경보병여단 소속의 박 철용 소위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정평 동쪽 언덕에 도달했다. 상륙전 때 적의 상륙저지 움직임은 전혀 없어서 피해를 입지 않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정평을 살펴보니 이미 시내 곳곳에 불이 나고 있었고  사방에서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과연 저곳에 소대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기동전 위주의 편제인 중국 집단군은  대부분이 보병전투차나 장갑차에 탑승한 기계화보병들이고, 인민군 2개 군단을 포위하기 위해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에 상륙전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었다.중국군은 갑작스런 대규모 포위공격에 놀라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돌아온 정찰병들이 정평 동쪽의 인민학교 운동장에  중국군 지휘부로 보이는 부대가 있다고 했다. 즉시 중대장에게 보고한 박 소위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그 인민학교 뒤쪽 주택가에 도착했다. 큰길쪽에는 급히 동쪽 해안으로 향하는 1개 대대의 중국군 기계화부대가 보였다.이들이 통과하기까지 숨어서 기다렸다가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3층건물로 박 소위와 몇 명이 올라갔다.

  학교 뒤의 3층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니 2층짜리 학교건물 옥상에는 파괴된 대공포좌가 보였고 운동장에도 파괴된 전차 2대가 불타고 있었다. 복도에는 중국군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구식 장갑차가 두 대… 지휘차 한 대와 무선차, 파괴된 전력차… 경비병력은 강화된 1개 소대 정도…’

  박 소위는 건물 안에 있는 확실한 병력은 모르나 중국 지휘부는 전투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일단 이곳을 공격하기로 정했다.  중대본부는 수색대인지 패잔병인지 모르나 일단의 적 보병부대와 조우하여 교전중이라고 전해했다. 중대장을 기다리지 않고 공격준비를 했다.

  선발대인 독고 중사의 분대가 학교 뒷담을 넘었다. 초병은 보이지 않았으나 조심하며 뒷문쪽으로 접근했다.  독고 중사가 안을 보니 앞문쪽에만 경비병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독고 중사가 신호를 하자 다음 분대가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박 소위가 안을 살핀 후에 분대의 공격진행 방향을 지정했다.  1개 분대는 건물 우측의 창문 아래쪽으로 보냈다.

  박 소위가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 다시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폈다.  마지막으로 엄지손가락을 펴자 소대원 전원이 건물로 돌입했다. 1분대는 정문쪽의 경비병 두 명을 사살하고 운동장의 중국군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3분대가 2층으로 뛰어올라간 것을 확인한 1분대원들이 장갑차들을 향해 중국제인 69-1식 RPG를 발사했다. 후폭풍이 건물 현관에 불어닥치고 장갑차는 화염에 휩싸였다.

  3분대원들이 2층에 도착한 순간,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란 중국군 세명이 총을 들고 교실을 뛰쳐나왔으나 그들은 즉각 사살당했다.  유리창과 출입문을 통해 방망이수류탄을 던지고, 이 초 후에 수류탄이 연속폭발하자 인민군들이 일제히 교실로 뛰어들었다. 상당히 고위장교들로 보이는 중국군들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엎드려 있었고 두 명은 배에서 내장과 피가 쏟어져 나오며 죽어가고 있었다.  분대장이 중앙탁자에 있는 지도를 보고는 즉시 무전기로 소대장을 불렀다. 그가 유리창을 통해 창문 밖을 보니 중국군 지원부대가 교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박 전사! 기관총!"

  분대장이 외치자 뒤따라온 기관총 사수가 즉시 운동장쪽 교실 창문에 PK경기관총을 거치하고 중국군들을 향해 기관총을 연사했다. 교문에 10여구의 시체가 쌓이자  물러난 중국군이 학교의 담을 대신한 화단 뒤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창문 아래쪽으로 갔던 2분대는 창문을 넘어 복도를 통해  교실쪽으로 들어가 움직이는 모든 물체에 대해 자동사격을 가했다. 통신장교인듯한 권총을 쥔 중국군이 쓰러지자 뒤쪽 벽면에 핏자국이 튀었다. 중국군 한 명이 분대장인 독고 중사를 향해 자동소총을 쏘려했으나, 같이 온 하급전사의 사격이 빨랐다.  그 중국군은 머리와 가슴에 한 발씩을 맞고 뒤로 꺼꾸러졌다.  통신용 헤드기어를 쓰고 있는 나머지 중국군들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하급전사들이 포로들의 몸수색을 하고 있을 때 독고 중사가 소대장에게 상황이 끝났음을 알리는 무전신호로 무전기를 두번 툭툭 쳤다.

  1999. 11. 20  15:30  인천광역시, 영종도 국제공항

  여객기들이 눈코 뜰 새 없이 이착륙을 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아우성이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중국적자들이었고 얼굴이 알려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97년의 위기때 북진통일을 부르짖던 여당지도자와 99년 만주수복운동위원회의 위원장의 얼굴도 보였다. 이들은 어줍잖은 영어를 쓰며 항공사에 좌석을 강요했으며, 외국항공사에는 특별기의 증편을 요구했다. 하지만 외국항공사들은 전쟁이 벌어진 한국상공에 진입하는 자체를 꺼렸다.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과 일본은 아직까지 한국에 남아있는 자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계속 특별기를 파견했다.  한 대학교의 총장은 비행기트랩에서 미국군인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미군에 의해 떠밀려졌다.  특별수송을 담당한 미군들은 본국에서 미국인 백인과, 이들과 동행하는 동양계 미국인들만 탑승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돈 들여서 어렵게 구한 미국 영주권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트랩으로 오르려는 총장의 눈앞에 그 미군이 권총을 들이밀었다.

  의외로 외국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다.대부분이 젊은 학생들이었다. 유럽에서 온 여객기에서는 단체 배낭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인지 색색의 배낭을 매고있는 학생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젊은이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은 사라진 채 어두운 얼굴로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여객기는 평소의 러시아와 중국을 통과하는 항로가 막히자 알래스카를 통해 왔는데,  일본이 한국으로 향하는 여객기들의 이륙을 지연시켜서 도착이 하루 더 늦어졌다. 학생들은 즉시 공항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공항버스 위로 초음속 전투기들이 지나갔다.

  쟈카르타에서 출발한 보잉 767 여객기가 활주로에 내렸다.  새털라이트(원형)식 탑승장에 내린 코오롱 엔지니어링의 백 창흠은 서둘러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인도네시아에 석유화학공장 플랜트를 건설하다 전쟁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한 그는 택시를 잡아 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1999. 11. 20  16:30  북위 31도, 동경 126도 해상 (동지나해)

  이 지역은 제주도와 중국 상하이, 그리고 일본 가고시마와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는 해상이다. 중국에 4,000대나 있는 구식 미그-19형 전투기의 항속거리 아슬아슬한 이곳 해상에 반전전사그룹 피스의 함대가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중국 공격기들이 내습했으나 미리 탐지한 함대는 조기경보기와 막강한 러시아제 대공시스팀의 합동작전으로  이들의 공격을 피해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항모에서 발사된 사정거리 450km의 SS-N-19 함대함 및 함대지 겸용 미사일과, 러시아로부터 항모와 같이 구입한 슬라바급 순양함에서 발사된 사정거리 550km의 SS-N-12함대지미사일이 상하이와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그리고 난징(南京)의 공항과 시내 중심부를 향해 발사되었다.한국군으로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최초의 공격이었고, 중국도 전쟁의 피해지역이 될 수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전략적 공격이었다.

  목표해상에 도착한 함대가  보급선에서 미사일을 전달받아 다시 재장전을 하는 중에 공격준비를 마친 항모탑재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이륙을 시작했다. 공격기로 쓰이는 수호이-25UT 프록풋이 먼저 날았고, 이어서 전투기 겸 공격기인 F/A-18, 마지막으로 MiG-29K 편대가 날아올랐다.

  거대한 러시아제 항공모함의 동쪽 15km 해상에 커다란 물기둥이 솟아 올랐다. 물기둥 상공을 P-3C 오라이언이 스치듯 날았다. 또 한 척의 중국 잠수함이 초계기에 잡혀 침몰한 것이다.  함장인 루시쵸프가 함교를 통해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다.

  2개 함대가 거의 전멸한 중국 해군은 의외로 힘이 없어보였다.  아직 막강한 북해함대가 남아있었지만 함장으로서는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적이라고는 몇 대의 수호이-27K에 의한 호위를 받는 16기의 구형 J-6 공격기와  두 척의 한급 원자력잠수함 밖에 없었다.  공격기들은 구식 잉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곤 부리나케 도망쳐 버렸다. 발사된 32발의 미사일 중 함재전투기가 절반을, 슬라바급 순양함의 SA-N-6 장거리 대공미사일이 나머지 절반을 잡았다. 최종방어는 필요도 없었다. 도망가던 중국 전투기들도 10여기가 함재전투기들에 의해 격추되었다.  중국군은 당분간 같은 작전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함장이 생각했다.

  잠수함은 함대에 접근하던 중에 초계기와  탑재헬기에 의해 어이없이 당했다.  수중속도가 25노트 밖에 되지 않는 개조되기 전의 이 한급 원자력 잠수함들은 함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너무 서두른 것이 실수였다.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한 초계기가 전파관제하에 접근하는 중에, 바보같은 잠수함 함장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부상했는데  그 순간 초계기의 하픈에 당했다. 어뢰도 아닌 대함미사일에 당한 어처구니 없는 경우였는데 이것은 부상해야만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한급 잠수함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다른 한 척은 초계기와 헬기들에 의해 포위된 채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다가 결국 방금 침몰했다. 초계기는 잠수함 바로 위에서 폭뢰를 투하하여 두번째 탄이 잠수함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잠수함의 함체에 균열이 생기고 누수가 시작되는 소리가 초계기에 잡혔다. 점점 심해에 가라앉다가 결국 함체가 찌그러들며 폭발했다.  항모의 함장 루시쵸프는 이 해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발전된 기술에 의해 침몰한 잠수함 원자로의 용융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루시쵸프는 원래 러시아 해군 소속의 중형 항공모함인  쿠츠네쵸프의 함장이었다.  나이가 들어 퇴역하자마자 정보업무상 몇 번 마주쳤던 짜르로부터 용병 제의를 받았다. 그는 이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바다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뱃놈은 어쩔 수 없어.’

  초계기인 오라이언이 항모에 착륙했다. 함장은 러시아제인 매이나 베어 F에 더 믿음이 갔지만, 오라이언의 승무원들은 의외로 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육상기지 발진형인 다른 것보다는 함재형인 오라이언이 훨씬 낫긴 했다.  피스의 함대는 한국 해군의 도움도 없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륙함과 함께 사령관인 싱은 서해상에 남았다. 지상군 병력은 이미 한국의 목포에 상륙하여 북으로 이동중이었다. 이들은 조만간 평양 북쪽의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피스 함대에 맡겨진 임무는 중국  해상봉쇄와 함께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었다.

  ‘방어전을 위한 공격이라…’

  함장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한국군 입장에서야 한반도 전선에서의 제공권을 잡기 위해서도 당연히 중국 본토를 공격하고 싶겠지만, 만약 중국이 핵을 사용한다면…  핵을 보유한 국가가 외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자국영토 안을 침공한 적에게 핵공격을 하는 경우 핵의 선제 사용에 대한 부담은 훨씬 작아진다. 함장은 절대 함대를 중국연해에 접근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해상에 함대를 전개한 채 공격기로만 중국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어차피 해상에는 목표로 삼을만한 중국함대가 보이지 않았다.

  1999. 11. 20  16:50  중국 상하이 상공

  "2시 방향에 중국 전투기 편대 출현, 접근 중."

  호주 출신의 용병 조종사 맥스가 함대 상공의 조기경보기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하며 동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신은 미그-29를 몰고 공격기 편대를 엄호하는 것이 임무였다.고도 3만 피트의 미그기에서 멀리 보이는 상하이는 불에 타고 있는지 검은 연기가 시내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조기경보기에서는 함대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공항과 전투기 기지, 산꼭대기의 레이더 기지,  그리고 항만과 시내 곳곳의 목표에 명중되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상하이 상공의 미그기는 미그-23의 중국제인 J-8 Finback이라고 알려왔다.

  중국의 미그들과 40km까지 접근했다.  레이더의 성능이 떨어지는 J-8 이라면 지상레이더기지의 관제에 따라야하므로 지상레이더 기지가 파괴되어 관제를 상실한 지금  중국의 미그기들은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미그-29 편대 아래에서 선회하고 있던 F/A-18 전투기들이 AMRAAM공대공미사일 8발씩을 발사했다.  조기경보기로부터 수신되는 맥스의 레이더 정보에는 암람과 미그-23이 점점 접근하고 있었다. 맥스는 중국인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멋있는 디자인의 미그-23이 파괴될 생각을 하니 정말 아까왔다.

  중국 요격기 편대는 미사일과의 거리 약 9km에서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회피하기 시작했으나 총 192기의 미사일이 90기의 미그를 노리고 쇄도했다.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여 벌거벗은 F/A-18은 미사일배달부의 역할을 마치자 전과확인도 하지 않고 항모로 돌아갔다. 피스의 미그-29와 중국 전투기들의 거리가 15km로 접근했을 때에야 상공에 미사일이 모두 사라졌다.  동시에 60여기의 J-8 전투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화재에 휩싸인 넓은 상하이 시내 곳곳에  추락하는 중국 전투기들로 인해 새로운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차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으나 30여곳 이상에서 발생한 화재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중국 전투기의 조종사들이 겨우 미사일을 피했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편대를 재정비하고 있을 때 미그-29 전투기들이 공격해왔다.처음 중국 전투기들이 감지한 것은 전투기의 대공 레이더였고 다음은 공대공미사일의 레이더였다.중국 전투기들의 오른쪽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며 미사일이 날아오고 그 뒤로 미그-29 전투기들이 보였다.  놀란 중국 조종사들이 급히 선회하며 본능적으로 채프를 뿌렸으나 미그-29에서 발사된 AA-10 알라모 대공미사일의 절반은 적외선 추적방식이었다.

  상하이 상공에 불꽃놀이가 이어지고, 지상의 중국인들은 도대체 누가 이겼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증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의 목숨이었다. 시민들이 짐을 꾸리고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향하는 상하이의 모든 도로가 피난민들로 메워졌다. 도시는 순식간에 그 기능을 마비했다.

  중국 전투기들의 편대장은 자기 편이 7기로 줄었을 때에야 도망칠 것을 생각했지만 이미 자신의 전투기 뒤에는  미그-29 전투기가 따라붙고 있었다. 전투기 어디에 맞았는지 조종이 제대로 안되었다. 또다시 미그-29에서 발사된 기관포탄이 번쩍이며 편대장기의 진로 앞으로 스쳐갔다.

  수호이-25UT 프록풋(Forgfoot)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상하이에 도달했다.  공격기 편대의 북쪽에는 거대한 양쯔(揚子)강이 바다와 만나는 만 입구가 보였다. 장강(長江)으로 불리는 이 강은 칭하이성(靑海省)의 탕굴라산맥 북쪽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윈난(雲南), 쓰촨(四川),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장시(江西), 안후이(安徽), 장쑤(江蘇)를  거치고 상하이에 이르러 동지나해로 흐르는 길이 6,300km의 대하(大河)이다.이 강의 광대한 유역에는 중국 총인구의 4분의 1인 약 2억 2천만명이 살고 있다.

  바다 위를 스치듯 저공비행으로 날아온 수호이들이  항구와 조선소를 맹폭격하기 시작했다.  상선과 유조선이 가장 먼저 당하고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무너졌다.  침몰하는 유조선이 흘린 중유가 항만 해상을 가득 메웠다. 상하이의 바다가 불타고 있었다.항만 폭격을 마친 공격기들은 시내쪽으로 향해 날아가 나머지 폭탄을 투하하고 지대공 미사일을 피하며 동쪽으로 달아났다. 공격기들의 작전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다.

  수호이-25UT의 폭격이 끝나자 상공에서 엄호하며 가끔 지상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던 미그-29들도 동쪽으로 돌아갔다.  난징 방향에서 급히 출격한 200여기의 미그-19기들은 이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1999. 11. 20  17:20  동지나해, 피스함대의 항공모함 함교

  "미국 함대입니다!  1-5-4에 항모를 포함한 기동부대입니다."

  함교 밖으로 전투기들의 착함을 지켜보던 함장이 급히 자신의 지휘콘솔에 앉아 중앙레이더 화상을 보니 십 여 척의 대형함들이 급속 서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상수색레이더와 대공레이더, 그리고 조기경보기의 레이더영상이 컴퓨터에 의해 조합된 이 레이더 화상에는 뜻밖에도 항공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200km 동쪽 해상에 E-3C 센트리 조기경보기 한 대만이 보였다.

  "기동부대가 아냐. 상공에 전투기가 없고 함의 숫자도 부족하다.함종을 확인할 수 있나?"

  통신장교가 조기경보기와 한참 통신을 하더니 항모 1척과 타이컨디로 거급 미사일순양함 2척, 알레이 버크급 미사일구축함 4척, 그리고 기타 수송선과 보급선이 몇 척 있다고 알려왔다.

  "침로 2-5-0, 30노트. 짜르를 부탁하네."

  함장 루시쵸프가 함대를 급히 남서쪽으로 돌리고  개성 통일참모본부에 파견되어 있는 짜르를 불렀다.  짜르와 통일참모본부의 참모들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9. 11. 20  17:25  개성, 통일참모본부

  "공격하면 안됩니다! 미국이 참전할 수도…"

  육군의 김 병수 대장이 호전적이고 막강한 미국과의 전쟁을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국과의 전쟁은 상상만 해도 공포 그 자체였다. 미국과의 전쟁은 최악의 경우 민족의 말살까지 고려해야 했다.

  "공격해야 됩니다.그 무기가 중국의 손에 들어가면 겨우 반전에 성공한 우리 군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주장했다.그는 최근 미국이 해외에 파병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수송함대에의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중앙화면에 나온 루시쵸프도 고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수송중인 무기는 어떤 종류입니까?"

  양 석민 중장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루시쵸프에게 물었다.영어라면 양 중장보다 훨씬 더 더듬거리는 루시쵸프를 대신해 짜르가 설명했다.

  "초대형급 항모 1척과 여기에 탑재된 신형 항공기 90대,  타이컨디로거급 이지스순양함 2척과 그보다 소형의 이지스구축함인 알레이 버크급 4척입니다.  3척의 수송선에는 신형인 F/A-18E 및 F-15 전투기 200여기가 탑재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의외로 빨리 왔군요, 계획은 알았지만… 아마 미국 7함대에서 빼돌린 물량 같습니다. 중국이 상당히 급해졌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참모들이 질려버렸다. 중국은 초반에 신형전투기와 2개 함대가 거의 소모되자, 구형의 전투기와 군함을 투입하기 보다는 신형이며 전투력이 막강한 무기체계를 급히 미국에서 도입한 것이다.  미국은 고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본 사세보항에 기항 중인 항모와 일본 각지에 배치된 주일미군의 전투기들을 급히 빼돌렸다.  태평양 해상에는 지금도 다른 수송함대가 신형 전투기를 가득 싣고 빠른 속도로 중국을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를…"

  동부전선에서 정평 점령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이 종식 차수가 부관에게 지시했다. 북한 인민군의 군 지휘권을 최 광 차수에게서 완전히 이양받은 이 차수는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한국 대통령의 결재만 받으면 되었다. 부관이 화상통신을 준비하는 동안 이 차수가 참모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정도의 무기라면… 우린 파멸이오."

  참모들이 고개를 숙였다. 평양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이제야 반전을 시작한 통일한국군에게 제공권은 중요했다. 수많은 전투기 파일럿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제공권을 장악한 지금도  압도적인 수의 구형 중국 전투기들에 의해 제공권이 위태로왔다. 소형의 한국형 구축함으로 간신히 버티고 약간의 기략으로 중국의 2개 주력함대를 격파한  통일해군도 이지스순양함 2척과 이지스구축함 4척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화면에 홍 대통령이 나오자 참모들이 기립했다. 이 차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각하, 미국의 초대형 원자력항모와 이지스순양함 6척이 제주도 남해상에서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피스의 짜르 참모는 이를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로 보고 있습니다.  또다른 수송대가 태평양에서 중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무기들이 중국에 넘어가면 우리는 전쟁에 지게 됩니다. 이들을 공격할 기회는 지금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격할 경우 각하는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내려 주십시요."

  비상각의를 진행중이던 대통령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주변에서는 아마 국방장관이나 한국군의 육해공 참모총장들이  대통령에게 공격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지 시끄러웠다.  이 차수가 대통령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대통령이 한숨을 길게 쉬는 모습이 보였다.

  "이 차수의 생각대로 하시오. 뒷감당은 우리 정치인들이 해야지 어떻겠소. 질 수는 없고… 걱정마시오…"

  대통령이 이 차수에게는 걱정말라고 했지만, 자신은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각하, 안됩니다!"

  비상각의에 참가한 국무위원들과 참모총장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차수는 그들의 눈이 아마도 살기를 띄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대통령이 화상전화를 급히 끊었다.이 차수는 부관에게 대통령 이외에 국군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 또는 국방장관의 통화를 거부하라고 부관에게 지시했다.아직 화상통신을 끊지 않은 루시쵸프는 고뇌하는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다.

  "그들을 공격하시오. 혹시 전투기의 지원이 필요하오?"

  통역인 인 한수 중위를 통해 이 차수의 뜻을 전달하자 짜르와 루시쵸프의 표정이 환해졌다.  짜르와 루시쵸프는 피스 함대로만 미국 수송함대를 공격하는 경우, 한국과 미국과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피스함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한국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이 차수의 한마디가 그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아닙니다. 다른 방법으로 공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시쵸프가 연신 고개를 숙이자 이 차수가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아니오, 어려운 임무를 맡아주어 고맙소.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1999. 11. 20  18:30  동지나해 해상

  미 항모 죠지 워싱턴은 중국영해를 향해 급속히 서진하고 있었다. 이 초대형 항모를 호위하며 2척의 타이컨디로거급과 4척의 알레이 버크급, 그리고 6척의 수송선과 2척의 보급선은  북쪽 해상에 피스 소속의 함대가 있다는 사실을 위성정보를 통해 알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협을 피해 중국해군 지상발진 전투기들의 호위가 가능한 해역으로 급히 함대를 몰고 있었다.

  죠지 워싱턴은 1990년에 건조된 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이다. 만재배수량 10만 2천톤, 전장 332미터의 이 거대한 항공모함은 평소에 탑재하던 전자전기와 초계기를 육상기지로 돌리고 대신 F-14와 F/A-18 전투기로 갑판과 격납고를 가득 채우고, 이들을 중국에 인도하기 위해 항해중이었다. 상공의 호위는 다만 함재전투기와 일본의 육상기지에서 발진한 E-3C AWACS만이 담당하고 있었다.

  "피스 함대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레이더 담당장교가 함장에게 보고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대 수상전 경보를 해제했다.이륙 직전의 함재전투기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애당초 피스 함대가 우리를 상대하려는 것은 무리였죠."

  함대의 대잠전을 지휘하는 맥과이어 준장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피스함대를 비웃었다.  해상수색레이더를 담당하는 하사관은 아까부터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함장이 그의 등을 툭 치며 물었다.

  "자네 왜 그래? 아까부터."

  하사관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한참 고민하더니 하사관이 레이더 화상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접근하고 있는 두 척의 참치잡이 어선 말씀인데요…"

  "그게 뭐 어때서? 아까 우리 전투기가 비무장인 것을 확인했잖은가? 중국 선적이고…"

  "예… 하지만 이들의 진로가 수상쩍습니다. 우리 함대 양 옆으로 통과할 예정입니다."

  "우하하!  어선들이 갑자기 하픈으로 공격할까봐 겁나나? 이봐, 이들과의 거리는 5km 이상씩 떨어져 있다구.  그리고 하픈이란게 아무 배에나 다 장착되는 것도 아니고… 혹시나 발사한다고 해도 우리의 대공방어망을 뚫을 수는 없지. 걱정 말게나."

  함장이 걱정 말라고 했지만  하사관은 계속 이 어선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아무래도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척의 어선이 미국 함대의 남쪽과 북쪽 해상을 완전히 지나쳤습니다."

  하사관이 보고하자 함장이 그것 보라는 듯 하사관을 나무랐다.

  "어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북쪽의 피스 함대나 감시하라고.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왜 한국은 우리를 그냥 통과시키지? 지금밖에 공격할 기회도 없고 이 무기가 중국에게 넘어가면…"

  함장이 극비로된 수송선의 화물에 대해 생각했다.  수송선 세척에 나뉘어 실린 각 96기의 F-14와 F/A-18 전투기, 그리고 다른 수송선 3척에 있는 A-10 공격기와 아파치 헬기들… 이 화물은 중국의 육해공 전력을 한단계 상승시킬만한 양의 엄청난 무기였다.  한국이 지금 저지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전선은 붕괴될 것이 확실했다.

  "한국이야 당연히 중국보다 우리 미국이 무섭겠죠. 설마 우릴 공격하겠습니까?"

  맥과이어 준장이 말하는 순간 함교 밖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함장이 함교 밖 해상을 보는 순간에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고 충격파가 이어졌다.

  "안지오가 당했습니다! 무엇에 당했는지 모릅니다. 퇴함하겠답니다!"

  통신사관이 타이컨디로거급 순양함  안지오의 함장 말을 그대로 전했다.안지오는 1993년에 건조된 최신형 이지스함인데 중국에 인도되는 함대의 전면 북쪽 해상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함장의 얼굴이 쟈빛으로 변했다. 해가 진 해상에 또다른 섬광이 빛났다.  항해사관이 남서쪽 해상을 보며 외쳤다.

  "러셀도 당했습니다."

  러셀은 1995년에 건조된 최신형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이다. 타이컨 디로거급보다 약간 소형이지만 그 공격능력은 거의 같다. 다만, 타이컨 디로거의 탑재헬기가 2대임에 반해  알레이 버크급은 헬기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

  "도대체 적은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는거야?"

  함장이 물었으나 이는 함교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의문점이었다.갑자기 항공모함이 진동하며 크게 흔들렸다. 충격에 함장과 함교요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함장이 먼저 일어나 함의 상태를 살폈다. 함의 곳곳에서 피해를 보고해왔다. 다시 한번의 충격파가 함을 뒤흔들었다. 다시 쓰러졌다가 일어난 함장이 마이크에 대고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기 발진!"

  그러나 그는 이착함 관제사관으로부터 절망적인 보고를 받았다.

  "발진할 수 없습니다. 기관실과 원자로 측벽이 당했습니다!"

  "수송선 두척이 침몰중입니다!"

  "DDG-55 스타웃, 공격을 받고 침몰중!"

  "CG-60 노르망디 대파, 운행불능!"

  계속하여 참담한 보고가 이어졌다.  남아있는 것은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 두 척밖에 없었으나 언제 당할지 알 수 없었다.수송선은 동쪽으로 도망가고 있었으나 속도가 너무 느렸다. 피스의 헬기 두 대가 이 수송선을 추격했다. 함장이 중얼거렸다.

  "기뢰야… 참치 어선 두척과 연결된 낚시줄에 기뢰를 달았어…"

  함장은 한국이 과연 미국과 대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통신병이 함장에게 피스의 함장이 통신에 나왔다고 보고했다.  피스 항모의 함장은 함대를 당장 제주도쪽으로 돌리라고 협박했다.  함대 상공에는 언제 왔는지 미그-29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날아 남쪽으로 지나갔다.함장이 본국에 보고하는 순간 헬기 한 대가 접근해왔다.

  1999. 11. 20  19:10  서울, 논현동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신 승주씨는 입대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소집영장에 적힌 소집날짜는 11월 19일로 되어있으니 하루가 늦은 셈이었다.  아내는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흐느끼고 있는지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서둘러 속옷과 세면도구를 챙기고 집을 나서려다 TV뉴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잠시 TV를 보니 위험한 전선에는 빠짐없이 등장하여 전선 상황을 시청자에게 알려 이번 전쟁통에 가장 용감한 종군기자로  이름을 날린다는 박 영범 기자가 화면에 나와있었다. 화면에는 위성중계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기자는 지금 평안남도 순천지구 전선에 나와있습니다. 해가 진 지금도 전투가 한창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자랑스런 국군과 인민군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잠시 포격이 빗발치고 있는 앞쪽 산을 비쳤다. 조명탄과 포탄의 폭발 섬광 사이로 인민군의 전차와 보병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네 대의 F-4 팬텀기들이 고지 정상 부근에 집속폭탄을 투하하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고지 여러 곳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른 불빛이 전투기를 따라갔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며 굉음이 들렸다.화면에는 카메라가 있는 참호 이쪽 저쪽이 흔들리며 보였다. 한국군 소속의 군인들이 치열한 포격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진정이 되더니 다시 기자가 나타났다. 기자 주위에는 흰눈이 나부끼고 있었다.

  [중국군은 서부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동부전선에서도 우리 군의 반격작전이 훌륭하게 수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시청자들께 이미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만, 서부전선은 더 치열한 전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기자가 있는 이곳 서부전선 모 기지는 지금도 중국군 포격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용감한 우리 국군과 인민군의 전진을 끝까지,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보도할 것을…]

  다시 섬광이 비치며 카메라가 흔들렸다.  신 승주는 대단한 기자들이라며 감탄했다. 군인들도 포격이 무서워 참호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기자들은 너무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다시 화면이 안정이 되고 화면 중심에 박 기자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나타났다. 이마가 약간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박 기자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가리고 말을 이었다.

  [저희 KBS는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싸우는 국군과 인민군의 자랑스런 모습을 시청자 여러분께 신속하게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 지금 흰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반격하는 우리 통일한국군의 승리를 축하하듯 첫눈이…]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고 잠시 후에는 화면이 까맣게 되면서 칙칙거렸다.  화면에 앵커인 중년의 남자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보도본부가 비쳐졌다. 남자 아나운서는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옆의 여자 아나운서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다가 자리를 박차고 오른쪽으로 뛰어나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PD가 급히 남자 아나운서의 상체를 잡고 있던 2번 카메라로 바꾸었다.

  "박 기자! 박 기자! 박 영범 기자 나와주세요."

  앵커가 애타게 박 기자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앵커가 침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전선의 박 영범 기자가 연결이 안되고 있습니다.그가 안전하기를 빕니다. 지금까지 본 방송국의 기자 세 명을 포함해 모두 24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이번 전쟁중에 사망, 또는 실종됐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미국 대사관으로 돌려 주한 미국대사의 기자회견을 듣겠습니다.현장에 이 승 기자 나와주세요. 이 승 기자?"

  [예, 여기는 미국 대사관 기자회견장입니다…]

  화면에는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북적거리는 회견장을 배경으로 젊은 기자가 나타나 방금 전에 끝난 미국대사의 기자회견 소식을 전했다.

  "미국이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데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해군이 미국의 해군함대를 공격하여 2척을 침몰시키고 5척을 대파했으며,  이들을 모처로 납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 승주는 다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까지 따라나선 아내는 그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신 승주도 말을 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두 사람이 섰다.

  "걱정말아요. 우리가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들어가요."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1999. 11. 20  19:30  개성, 통일참모본부

  "눈이 오고 있습니다!  첫눈입니다."

  이 호석 중장이 창가로 뛰어가  창밖의 함박눈을 보며 어린애처럼 외쳤다.  참모들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첫눈을 보고 싶었지만 체면때문에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이 차수가 창가로 가서 눈내리는 연병장을 보자 참모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갔다.  전쟁 와중에도 모두 환하게 웃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눈 내리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된 모양으로 가로등에 비치는 참모본부의 연병장에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참모들은 마음같아서는 연병장으로 뛰어가  눈을 마음껏 맞으며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조금 전에 피스함대가 중국으로 향하던 미국함대를 나포해 제주도에서 화물을 내리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와서 모두들 들떠있어서 이 차수가 한마디 할 때까지는 눈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모두들 잘해주었소.  이제 눈이 내렸으니 적의 공격은 눈에 띄게 약해질 것이오. 우리 군의 보급부대는 월동장비가 되어있겠죠?"

  참모들이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 내리고 있는 폭설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았다. 회의가 시작되고 정 지수 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중국군의 현재 주력은 제남(濟南)군구와 남경(南京)군구의 병력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겨울에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선천의 차 중령이 보낸 보고에도 월동장비 노획에 대한 보고는 없었습니다."

  차 영진 중령이 지휘하는 노농적위대와 교도대는 간신히 북한 전파망과 연결되어 간간히 무선교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동하면서 무선 교신을 하기 때문에 아직 중국군에게 추적당하지 않고 있었다.  통일참모본부는 피점령지역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장투쟁을 하는 민간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들은 단순한 유격대가 아니라 중국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있는 대단한 부대였다.  중국은 도로사정이 열악한 개마고원쪽으로 병참선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정 대장은 제 11기갑사단의 후퇴전에서 세운 공과 현재의 감투정신을 육군본부에 보고해서 차 중령의 대령 승진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적은 월동장비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단기전으로 끝낼 생각이었겠지만, 11월에 눈이 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모양 입니다."

  박 정석 상장도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으나 김 병수 대장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인민군도… 겨울에는 기동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도로 사정도 길티만 전차래 다들 낡아서…"

  "그건 걱정마시오.  우리가 전차구난차와 민간에서 징발한 불도져 등을 보내 드리겠소. 현재 전선으로 이동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건 차수님이 어제 아침에 제게 말씀하셔서 준비한 것입니다만…  차수님의 신경통은 정확한 모양입니다. 하하.  일기예보에는 일주일간 눈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정 지수 대장의 말에 참모들이 호쾌하게 웃었다. 20세기가 거의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도 과학적인 일기예보보다 노인의 신경통이 더 정확하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차수도 싫지는 않은 듯 투덜거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양 중장이 뭔가 꾸미는 것같은데, 혹시 무슨 일인지 알아도 되겠소?"

  정 대장이 참모들의 웃음이 잦아들 무렵에  양 중장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양 중장이 최근 참모본부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서 정 대장이 한번 찔러본 것인데 의외로 양 중장이 웃으며 순순히 털어놨다.

  "첫째는… 하하하. 이 눈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차수님의 신경통이 도진 것이 아니죠."

  양 중장이 참다못해 배를 잡고 웃었다.이 차수도 결국 껄껄거리며 웃었다. 사정을 몰랐던 참모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요? 그럼 인공강우? 아니, 눈이니 강설이군. 이게 우리 기술로 된단 말이오?"

  김 병수 대장이 깜짝 놀라 물었다.  피스의 짜르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도 인공강우는 계속 시험해왔지만 정확한 지점에 정확한 강수량을 보장하지 못해 기상이변이 속출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 바로 인공강수였다.잘못하면 한 곳에 집중호우, 다른 곳에는 가뭄을 유발시킬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는 실시하지 않는 시험이었다. 양 중장이 참모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예, 평안북도 선천과 구성쪽은 차 중령과 저격여단이 훌륭하게 보급선을 차단하고 있지만, 중국은 만포-강계-희천을 연결하는 선에 보급선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지대들인만큼 폭설의 영향은 더 커질 것입니다. 아마 산발적인 보급부대 폭격보다는 훨씬 효과가 크겠죠.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만,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중앙기상대는 이 지역에서 30cm 이상의 적설량을 예보하고 있습니다.아까 낮에 서해상으로 출격한 수송기 편대가 그들입니다. 고공에서 넓은 구름대에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눈의 씨앗을 살포한 것이죠."

  "음… 훌륭하오. 그럼 두번째는 무엇이오? 양 중장…"

  기상상황을 중요시하는 공군 출신인 양 중장이 낼만한 아이디어였고, 이를 중앙기상대와 과학기술원의 전산팀,그리고 공군 CN-235M 수송기들이 합작하여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다. 양 중장이 두번째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참모들의 부관들과 통신팀원들을 상황실 밖으로 나가도록 명령했다.양 중장이 짜르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를 믿기로 했는지 대답을 시작했다.

  "두번째는 중국군의 중앙컴퓨터에 관한 것입니다. 구 소령과 김 소령 들어오게!"

  양 중장이 인터폰을 눌러 두 대학생 해커들을 불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나타나 브리핑석에 서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참모들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소령들이 설명을 마치자 양 중장이 요약을 했다.

  "그렇니까 우리는 중국의 중앙전산망을 통해 핵미사일의 발사 암호를 알 수 있으며, 미사일기지에 우리측 요원들을 침투시킬 수 있습니다.그리고 중요한 전황에서  중국군의 전산망을 두번에 걸쳐 마비시킬 수 있고, 이 사이에 우리가 전략적인  공격목표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우리 민족은 절멸이오, 절멸!  이,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오.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은…"

  정 지수 대장이 그 위험을 생각하며 몸서리쳤다.양 중장이 무거운 어조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중국의 선제 핵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한반도에 침입한 중국군들은 지금 위기에 봉착했으며,  그들의 위기감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계속 상승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더라도, 우리가 실지를 모두 회복하게 되면 그들로서도 어쩔 수가… 그전에 미리 막아야 합니다."

  정 대장이 고통스런 표정을 짓더니  왼쪽 벽면에 걸려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상통신을 위한 화면인데 지금은 꺼져있었다. 정 대장이 조용히 참모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대통령이 결정해야할 상황이오. 어쩌면 이것은 중국군 400만 대군의 침공보다 더 위험한 일일 수 있소.그리고 우리 군 요원 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기관도 관여되어 있는 일이니,  우리의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참모본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합니다. 적 지대지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화상통신은 안되오. 일단…"

  이 차수가 나섰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을 벗어던지고 차라리 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본관의 상관이신 최 광 차수가  대통령 각하를 면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민군에는 차수 위에 원수, 그 위에 대원수가 있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나서 대원수 자리는 지금까지 공석이 되어 있었고,  원수인 김 정일은 대원수에 취임하지 않았는데,  3명의 원수가 모두 죽은 지금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 광 차수가 군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 광 차수는 사실상의 군 지휘권을 이 차수에게 모두 위임한 상태였고, 전쟁 수행 중의 정치적인 문제는 홍 대통령에게 거의 일임했다. 자신은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한 북한쪽의 동원문제만 관할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실권을 거의 상실했지만, 그의 양보 덕택에 군 지휘권과 전쟁수행을 위한 행정이 비교적 무리없이 일원화될 수 있었다.

  참모들이 침묵했다. 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 호석 공군중장이 나섰다.

  "독립된 방공부대가 없는 우리 군의 실정으로 볼 때, 이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일단의 미사일 요격 능력이 있는 전투기로 편성된 요격기부대와 지대공미사일부대를 통합시켜 참모본부 직할로 배치해야 합니다."

  참모들이 끄덕거리고 이 문제들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1999. 11. 20  21:20  평안남도, 안주 남쪽 15km

  중국의 전투기들은 미그-29와 수호이-27 등의 극소수 신예 전천후 전투기들을 제외하고는 폭설 때문에 출격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한국 공군의 전투기들이 전선을 넘어 중국군의 보급로 곳곳을 공습하고 있었다. 통일한국군의 지상군 병력은 폭설과 저격여단의 보급로 차단작전에 의해 갑자기 급속도로 약화된  중국군 방어선 곳곳을 뚫고 천천히 북진하고 있었다.

  국군 제 61 동원사단은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전멸시킨 인민군 815 기계화군단을 따라 북으로 전진하고 있었다.개전 첫날인 11월 17일에 긴급소집된 예비군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61사단은 이틀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마친 다음, 아침에 기차로 광주를 출발해서 평양에서 트럭으로 갈아타고 오늘 오후에야 전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양 북쪽인 영유를 통과할 때는 불에 타고 파괴된 수많은 중국군 전차의 잔해들을 보고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침에 끝난 전투여서인지 아직도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전차도 보였다.  언덕 너머에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전차와 각종 차량,  그리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불에 탄 시체들이 온 들녘을 메웠다.  대부분이 동원예비군들인 61사단 병사들은 중국군 대신에 자신들이 저 모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들판을 내리는 눈이 덮고 있었다.  상공에는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또 안주다! 우린 안주로 간다."

  어느 병사가 외치자 트럭에 탄 다른 병사들 사이에 잠시 술렁임이 일어났다. 개전 이틀째에 안주와 신안주 지역에서 큰 전투가 일어나 그곳 전선을 지키던  인민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이제 한국군과 인민군이 힘을 합해 안주 지역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18일과 다른 점이라면 통일한국군이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며,중국군은 순천쪽에서 후퇴한 인민해방군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 배수진을 치며 맞서려 한다는 점 뿐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들이 신안주가 보이는 안주평야의 부서진 한다리(大橋)역 부근에 도착하여 포격이 쏟아지는 이곳에 전개를 시작한 것은 자정이 넘어설 무렵이었다. 이제 1999년 11월 21일이 시작되었다.

  1999. 11. 21  00:30  평안남도 안주 상공

  한국 공군 소속 F-16 전투기의 파일럿인 김 종구 중위는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전쟁이 시작된 11월 17일 새벽에 비상이 떨어진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된 출격 때문에 전투기조종사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적 지대공미사일도 아니고, 적 전투기도 아닌, 쏟아지는 졸음과 피곤이었다.조종사들은 전투기가 점검을 받는 중인 두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었으나, 나머지 시간은 계속되는 요격과 공중지원, 또는 상공엄호임무 등으로 출격하느라 지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적었다.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 12대는 지상지원을 하는 F-4E 팬텀기와 A-10공격기들의 상공엄호임무를 맡아 고공에서 적 전투기들을 요격하고 있었다. 뜻밖에 중국의 미그-29 전투기들은 한국 공군의 F-16 전투기들이 두려웠는지,아니면 이 비싼 전투기들의 급속한 소모에 놀라 몸을 사리는지 지상전투가 계속되는 안주 상공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안주전선에서는 팬텀기와 A-10공격기들이 신나게 중국군 진지를 두둘기고 있었다.  김 중위는 공격기 편대의 조종사들이 부러웠다.

  중국군의 지대공미사일은 이미 소모되었는지 지상의 포화는 대공자주포의 사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도 곧 팬텀기들에 의해 박살이 나서 지상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지게 되었다. 폭격을 마친 공격기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상공에서 보였다.

  편대장의 지시에 따라 중국 전투기들을 향해 각각 4발씩의 암람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전투기 레이더의 조준에 따라 한 발씩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레이더를 보니 중국 전투기들이 미사일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회피운동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미사일에 전투기 하나가 잡혔다. 그러나 그 뿐, 중국 전투기들은 저공으로 피하며 북쪽으로 도망갔다.편대장기의 선도로 편대는 수원기지를 향해 비행했다. F-16이 빠진 상공을 인민군의 MiG-23이 대신했다.

  1999. 11. 21  07:30  동해, 독도

  "소속미상의 대규모 함대 접근! 남동쪽 35 km 해상입니다."

  레이더를 맡은 곽 상경이 외쳤다.  독도 경비대장인  안 국선 경위가 레이더를 보니 오른쪽 아래 구석에 수많은 휘점이 보였다. 미국이나 러시아의 대규모 함대가 독도 해역을 통과할 때도 이 정도로 대규모는 아니었다. 아직 영해침범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제수역을 침범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사전통고 없는 함대의 침범이라니…

  안 경위가 긴장을 하며 곽 수경이 앉은 옆의  통신장비에서 마이크를 들고 통신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기는 물개, 호박엿 나와라, 오버."

  안 경위가 몇 번 부르자 울릉도의 해군파견반이 무선에 나왔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울릉도 호바~악엿. 무슨 일인가? 오~바."

  울릉도의 무선병이 뱀장수 흉내내듯 목소리를 낮게 깔고 발음을 길게 내었다. 안 경위는 이게 무슨 장난인가 화가 났지만 상황이 급했다. 속으로는 콜사인을 이따위로 정한 해군들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동남방 35 km 해상에 대규모 함대 급속 접근중! 우리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항공정찰을 요청한다, 오버."

  "알았다. 오버!"

  무선병도 긴장해서 즉각 응답을 하고는 울릉도 해군 파견대장에게 보고했다.  파견대장은 북평의 제 1함대 사령부에 보고하고 함대사령관은 즉시 울릉도 서쪽에서 초계중인 제 12구축함대를 불렀다.구축함대의 함재헬기 2대가 동쪽을 향해 날았다.

  "헬기가 보입니다, 대장님!"

  관측을 맡은 김 수경이 무전기로 수비대장에게 보고했다.  안 경위가 막사 밖으로 나와서 서쪽하늘을 보니 슈퍼 링스 헬기 두 대가 급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헬기들이 독도 상공에서 안심하라는듯 한바퀴 선회를 한 다음에 고도를 높이고 남동쪽으로 날았다.

  1999. 11. 21  08:10  슈퍼 링스

  "수색 시작."

  기장이 적당한 고도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부기장에게 레이더 해상수색을 명했다. 부기장이 기기를 조작하는 중에도 기장은 계속 고도를 높였다. 레이더경보기의 수신음이 삑삑거리기 시작한 거리는 목표에서 약 60 km였다.

  "1만톤급 순양함이 세 척입니다.  기타 다양한 배수량의 함정이 12척에 달하고 있습니다.목표에서 발하는 레이더 전파는 콩고(金鋼)급의 공중수색레이더에서 나온 것입니다.  F밴드인데요?  목표상공에는 헬기가 10여대 떠 있습니다."

  "그럼 또 일본인가?"

  부기장이 보고하자 기장이 기도 안찬다는 듯 말했다.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독도 해상에 함대를 연례행사처럼 파견하고 있었다. 올해는 그 빈도수가 많다는 것을 기장도 알고 있었으나 설마 무슨 일이 날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국제통신주파수를 이용하여 영해침입의 경고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부기장이 레이더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미사일입니다! SM-2MR형 미사일 2기가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부기장이 경악을 했다. 부기장의 외침에 기장은 바로 헬기를 급강하시켰다. 따라오던 다른 헬기도 즉시 강하했다.

  "미친 놈들이… 즉시 함대에 보고하라."

  통신사를 겸한 옆자리의 부기장이 제 12구축함대를 불러서 상황을 보고했다.함대에서는 돌발적 상황에 놀란듯 헬기들에게 지시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미사일이 마하 2의 속도로 접근했다.  헬기는 레이더를 끄고 저공비행으로, 가능한 서쪽으로 급속히 비행했다. 잠시 후 미사일이 날아왔지만, 중간유도인 관성유도 후에는 발사체의 전파에 의한 최종유도를 받아야하는 이 미사일들은  본함의 레이더에서 헬기들이 사라지자 목표를 잃고 서쪽으로 얼마쯤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자폭했다.

  "우리도 한방 쏠까요?"

  부기장이 하픈에 일본함대의 위치를 입력시켰다. 물론 구축함 탑재헬기 기장의 권한을 넘는 문제이니  기장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공격받기만 하고 반격을 못하는 것이 분했다.  사정거리만으로 보면 하픈을 장비한 헬기쪽이 훨씬 유리했다.  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에서 사정거리가 더 긴 하픈을 날리고 헬기는 도망칠 수 있기때문이다.

  기장이 기다리던 함대로부터의 명령이 내려졌다. 계통을 통해 보고중이니 위협적인 행동을 자제하라는 것이 명령이었다.  이럴 경우 어디까지 보고하는지는 뻔했다. 진해의 해군사령부에서는 합참과 국방부에 보고하고, 국방부는 청와대에 보고할 것이다.  합참은 또 이 문제를 개성의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게 되는 것이 현재의 명령 및 보고계통이었다.

  기장은 일본 이지스함의 대공미사일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인 약 75km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일본함대를 레이더로 수색했다.  여차하면 대함미사일을 날리겠다는 위협이었다. 함대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을 들은 부기장이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영해를 침범하기 전에는 절대 공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또 다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말입니다.지금 제 12구축함대가 급거 동진 중입니다."

  부기장이 기가 막힌듯 힘없이 말했다.부기장이 레이더로 보니 일본의 함대는 한국 영해 아슬아슬한 곳까지 접근했다가 급선회했다. 부기장은 일본함대가 영해로 들어오길 내심 기대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짜증이 났다. 거리는 약 50km가 되었으나 기장은 더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영해를 침범할 경우 응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기장은 고도를 약간 올려 하픈의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사일! 총 4기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기장이 부기장의 외침을 듣자마자 고도를 내리고 잽싸게 서쪽으로 도망갔다.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나 명령이 명령인지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헬기는 이미 최고속도에 도달해 있었다. 기수가 뾰족하게 생긴 슈퍼 링스 헬기가 수면을 스치듯 날고 있었다.

  "시 킹(Sea King)의 레이더입니다! 데이터링크가 되었을지도…!"

  부기장의 비명이 들려왔다. 기장이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급히 급상승하며 채프를 뿌리고는 급강하했다.이지스함의 대공미사일은 기본적으로 반능동 레이더 유도(Semi Active Homing)를 한다. 대공미사일이나 적기 등, 함대에 접근하는 복수의 위협에 대비하여 우수한 레이더로 복수추적을 하여 격파하는 능력이 있는 이지스함은  대공미사일을 능동유도에 맡길 수가 없다. 같은 목표를 다수의 미사일이 공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더 전파가 미치지 못하는 수평선 아래로 목표가 숨어버릴 경우 반능동유도를 할 수 없는데, 이럴 경우 탑재헬기에서 레이더를 발사하여 데이터 링크로 자료를 이지스함에 송신을 하면 이지스함이 대공미사일을 유도하게 된다. 한국 헬기들은 일본함대의 탑재헬기인 시 킹 때문에 이제 수평선 아래로 숨을 수가 없게 되었다.

  "1기 회피, 또 접근합니다!"

  부기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기장은 미사일을 피하면 꼭 하픈을 발사하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군법회의에 불려가더라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만약 자신이 일본의 미사일에 맞아 전사하면 일본은 자신이 일본함대를 먼저 공격했다고 생떼를 부리거나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이용하여 얼버무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분했다. 그리고 그는 미사일의 영공침해도 틀림없는  영토침범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른쪽 상공에 섬광이 번쩍였다.편대기인 헬기가 미사일에 맞아 공중 폭발한 것이다. 기장이 급선회 및 급상승을 하여 간신히 미사일을 따돌렸다.그는 헬기를 급하게 조정하여 고도를 올렸다. 이미 기장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발사!"

  기장이 명령하자 부기장이 얼떨결에 2발의 하픈을 발사했다.  영국의 웨스트랜드사에서 제작한 슈퍼 링스의 한국해군 인도분중  초기형은 시 스쿠아(Sea Scua) 대함미사일 4기를 장착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고 탄두의 위력도 약해서,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던 한국해군은 다른 나라들처럼 1997 년부터는 하픈을 탑재할 수 있도록  헬기를 개조했다. 하픈이 목표를 향해 날았다.

  "함대사령관이 나왔습니다. 하픈을 발사했다고 난리인데요?"

  부기장이 보고하자 기장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니기미, 지랄하지 말라 그래. 우린 죽기만 하란 말야? 내 말 그대로 전해."

  황당해진 부기장이 기장의 말을 동해함대인 제 1함대사령관에게 그대로 전하는중 부기장이 경악을 했다.

  "적 전투기가 나타났습니다! 미사일 경보!"

  저공으로 한국 영공을 침입한 일본의 F-15J 전투기 두대가 남쪽 상공에서 나타나 가시거리 훨씬 밖에서 한국해군의 헬기에 스패로우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4발의 스패로우는 채프를 이미 다 써버린 슈퍼 링스 헬기로 쇄도해왔다. 마지막 수단으로 ECM(전자전)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헬기로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저공비행중이던 헬기가 그대로 물속에 기체를 쳐박았다. 기장은 일본의 미사일에 죽기는 싫었던 것이다. 미사일들이 목표를 잃고 침몰하는 헬기 위를 스쳐 지나갔다.

  수면에 부딪힌 충격으로 부기장은 실신해 있었다.  기장이 문을 열고 헤엄쳐서 자동으로 펼쳐진 구명보트를 끌고서 다시 헬기로 돌아가 부기장을 옮기는 중에 일본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F-15J 전투기가 물 위에 아직 떠있는 헬기에 기관포를 마구 쏘아댔다.  해면에 하얗게 물보라가 튀었다. 수 십 발의 포화를 뒤집어 쓴 슈퍼 링스 헬기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폭발 순간의 강력한 폭풍이 구명보트를 뒤집었다. 전투기들이 상공을 몇 번 선회하더니 동쪽으로 날아갔다.  빈 구명보트 근처에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슈퍼 링스에서 발사된 2기의 하픈은 목표점을 향해 저공으로 날고 있었다.  목표가 입력된 하픈은 관성유도에 의해 마하 0.9의 속도로 순항했다. 목표 전방 5km에서 급상승하여 레이더를 키고 가장 큰 목표를 향해 자동적으로 돌입했다.

  미쯔비시 조선소에서 건조된 콩고급 2번함인 기리시마가 하픈의 요격에 나섰다. 기리시마 함미의 수직발사기에서 스탠더드 SM 2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하픈의 궤도가 급강하하자 스탠더드는 모두 빗나갔다. 일본의 함대에서 마지막 방어수단인 채프로켓을 발사하며  팰렁크스 대공포를 연사했다. 그러나 레이더로 자동유도되는 대공포도 고도를 급격하게 바꾸며 날아오는 10평방센티미터의 작은 표적을 맞추지는 못했다. 하픈은 탄막을 뚫고 기리시마의 함교에 명중했다. 폭발의 충격이 함을 휩쓸고 대화재가 발생했으나 침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함은 순식간에 전투불능이 되었다.  각종 관제장치를 통제하는 컴퓨터가 있는 함교와 3차원레이더를 잃은 이지스함은 물위에 떠있는 고철과 다름없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수병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북쪽에서 항주중이던 시라네급 구축함 구라마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함미의 헬기 플랫폼을 위로부터 뚫고  들어간 하픈은 함의 가장 밑바닥에서 폭발했다. 선체의 상부는 화재, 하부는 침수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서 구라마는 함미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붉은 원을 그린 헬기들이 함대 위로 날았다.

  1999. 11. 21  08:25  제 12구축함대 기함 강원함

  헬기로부터의 보고가 끊기자  동해함대의 분함대인 제 12구축함대 사령관 이 승호 해군준장이 당황했다. 중국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마당에 일본과 이런 사태가 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일본이 이 사태를 이용해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웠으며, 일본의 의도대로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슈퍼 링스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해 보니, 독도 부근의 일본함대는 한국동해함대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도 막을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호출입니다."

  통신사관이 회선을 넘겼다.이 준장이 상황을 보고하자 잠시 회의하는 듯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더니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차수요.지금 우리는 일본과 일전을 겨룰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소. 참으시오. 귀항하시오.]

  "차수님…그들은 영공과 영해를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독도가 위험합니다. 일본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 준장은 설마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이 또 터지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찢기고 마오. 분쟁 방지에 모든 력량을 동원하시오. 독도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상황에서 우리는 참을 수 밖에 없소.]

  "… 알겠습니다. 차수님. 하지만 저들은 그냥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준장이 통신기를 놓고 함대에 귀항을 명령하자마자 바로 독도에서 연락이 왔다. 이 준장이 받았으나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냥 돌아가면 어떡합니까? 저들은 계속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했고 헬기와 일본함대가 접근중입니다. 전사 한 명에 부상자가 두 명입니다! 그 중에 한 명은 중상입니다!]

  "안 경위. 상부에서는 현재 일본과의 일전을 회피하기로 결정했소.귀관이 나라와 겨레를 생각한다면… 응사하지 않기를 바라오."

  [우린 죽어도 좋소! 하지만 독도를 포기할 생각이란 말이오? 설마!]

  안 국선 경위의 말에는 분노가 가득 실려있었다. 갑자기 회선 연결상태가 악화되더니 무선이 중간에 자꾸 끊겼다.

  [일본 헬… 치직~ 미사.. 칙!]

  이 준장이 통신기 옆의 기둥을 주먹으로 쳤다.주먹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통신기에는 잡음이 잔뜩 실린 채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통신실의 수병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하더니 함내에 퍼져 울렸다. 원래는 코믹한 리듬의 노래였지만 지금은 장엄하게 들렸다.

  1999. 11. 21  08:30  독도, 서도(西島)

  "함대에서는 우리더러 응사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고 명령했다."

  안 경위가 침통한 목소리로 상부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했다.  바깥에서는 일본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과 일본함대의 함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연이어 작렬하고 있었다. 관측소에 있다가 중상을 입고 독도 서도의 남쪽 동굴로 후송된 김 수경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독도의 다른 섬인 동도에 나가있는 대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기있는 전투경찰들은 아무도 몰랐다.통신실과 식량창고를 겸한 레이더실이 폭격에 파괴되고 내무반으로 쓰는 막사도 불에 타고 있었다. 한국 해군이 구원을 오지 않는다면 이들은 죽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냥 죽기는 억울합니다. 싸워야합니다, 대장님!"

  곽 상경이 주장하자 다른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안 경위도 끄덕였다.

  "그럼 우린 싸우다 죽기로 하지, 헬기 소리가 들린다. 나갈 준비!"

  전투경찰대원들이 자신의 화기를 점검했다. K-2 자동소총과 탄알 108발이 전부였지만 최소한 두 명의 일본군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헬기가 섬 이곳저곳에 내리고 일본어로 외치는 소리와 군화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군화소리가 점점 동굴로 접근했다.

  "나가자!"

  안 경위가 선두에 나서서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했다. 바로 뒤따라 나선 곽 상경도 자동으로 긁었다.해변 자갈밭에서 수색중이던 일본 육상자위대의 공정단 소속의 자위대원들이 갑작스런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총소리에 놀란 절벽 위의 일본군들이 아래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저격수 출신의 피 수경이 무릎쏴 자세로 한 발에 한명씩 쓰러뜨렸다. 총에 맞은 일본군들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자위대의 응사가 시작되자 엄폐물이 없는 자갈밭에 있던 대원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일본 해군의 무장헬기가 동굴 앞쪽에 나타나 포위된 한국 전투경찰을 향해 기관포를 쏘아댔다.

  1999. 11. 21  08:40  평안남도, 안주

  한국 61사단병력은 인민군 815 기계화군단의 엄호를 받으며 신안주를 차츰차츰 조금씩 점령하고 있었다. 중국의 대부분 기갑전력은 한국공군의 공격기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청천강 북쪽의 포병대도 거의 전멸했다. 단지 일단의 패잔병들이 후퇴시기를 놓치고 신안주 시내에 숨어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새벽의 치열했던 전투에 비하면 지금은 무척 평화롭다고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중국군 1개 집단군의 5개 사단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1개 장갑사단을 선두로 한꺼번에 밀고 내려온 그들에게  하마터면 방어선이 무너질뻔 했으나,815 기계화군단이 중국 장갑사단을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여기에는 저격여단의 대전차대대가 합세하고 한국군의 야간전 장비를 갖춘 A-10 공격기도 가세했다.  중국 보병사단들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으나 개활지에서의 인해전술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무수한 인민 해방군이 통일한국군의 기관총에 쓰러졌다. 중국군 공격의 중심이 되었던 국군 61동원사단의 중앙병력이 천천히 후퇴하며 중국군을 유인했다. 대부분이 보병뿐인 중국군은 자루에 담긴 쥐처럼 몰살당했다. 중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계속 전진해왔다.

  투입된 병력수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었으나, 이는 같은 조건에서의 병력 수 차이가 중요한 것이지 은폐,엄폐물이 전혀 없는 개활지에서의 인해전술을 중국군에게 막대한 손실만 강요했다. 중국군은 한국전쟁 때의 인해전술은  모두 산악지형에서 상대를 포위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전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하다가 크게 패배한 것이다. 1개 보병분대의 화력이 2차대전 때 소대 병력의 화력보다 강한 지금,  인해전술은 견고한 평야의 방어선 돌파작전에는 적합치 않았다.

  안주의 너른 들녘에는 3백여대의 중국제 전차가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고, 중국군의 시체가 발디딜 틈도 없이 가득 쌓였다.  부상자 후송과 진지 정비를 끝내고 61동원사단 병력이 늦은 아침식사를 시작했다.들녘에 가득한 피비린내와  아직도 파괴된 전차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군인들이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데, 어떤 예비군이 ‘비료 안줘도 내년 농사 잘되겠다’고 농담을 하자 모두들 그 자리에서 토하고 말았다. 쌍방의 포격전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안주 주변에는 쌓여있는 눈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포탄에 눈이 녹아 다시 얼음이 되었다.

  안주를 점령하고나서 간밤의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815 기계화군단과 국군 61사단, 인민군 보병 3개 사단이 보급과 정비를 위해 후방으로 빠지고, 대신  국군 제 9기갑사단, 보병 3사단, 63동원사단, 해병 1사단, 그리고 평양지역 방위군의 일부인 인민군의 제 2사단과 5사단이 투입되었다.  통일한국군으로서는 최초로 이루어진 전선에서의 병력교대였다. 이는 한국군이 드디어 병력에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으며,  중국군의 이동과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청천강 유역으로 전진하는 제 9기갑사단의 전차 안에서 전차대원들이 페리스코프를 통해 청천강을 보았다. 청천강에는 부서진 리본형 부교의 잔해만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가고 있었다. 백돌고개 앞의 습지 곳곳에는 후퇴하다가 죽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시체들이 노총각 재떨이의 담배 꽁초처럼 구겨진채 버려져 있었다. 9기갑사단의 전차들이 보병과 포병, 그리고 전투기들의 지원을 받으며 서서히 바닥이 마른 백돌고개 앞쪽의 청천강을 건너고 있었다.

  1999. 11. 21  09:30  일본 통막회의

  "저는 조선이 막강한 중국의 침공을 막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조선은 분명히 전력 외의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이런 조선을 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군을 반도에서 몰아내면 조선군은 틀림없이 열도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는 병력이 훨씬 열세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위대 통합막료회의(統合幕僚會議) 회의실에서 항공막료장(航空幕僚長)인 야마다 마사오(山田正雄) 공장(空將)이 해상자위대의 독도점령에 우려를 표했다. 독도의 점령은 자위대로서 보면 실지회복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식민지에 불과했던 한국이 강점했다는 인식을 가진 일본인들은 이번 자위대의 독도 점령을 환영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으므로,  결국 한국은 독도를 일본에 양보하게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방위청의 방위국에서 파견된 사토 가쓰미(佐藤勝巳) 조사 제 2과장이 씩 웃으며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우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사 2과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이며, 각국에 파견되어 있는 방위주재관(대사관의 무관)들이 외무성을 경유하여 보내오는 정보와 문서를 분석, 번역하는 임무를 맡는다.

  "조선이 중국에게 이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군사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력편성이나 이동상황, 작전계획까지 조선군이 손바닥 들여보듯 훤히 아는데  이기지 못하면 더 이상하겠죠."

  "아니, 그게 무슨 뜻이오?  중국 군사위원회에 첩자라도 있다는 것이오?"

  육막장(陸幕長) 출신인 오부치 게이조(小淵蕙三) 의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사토 과장에게 물었다.  다른 막장들도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사토 과장이 의기양양하게 한국이 유리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의 해커들이 11월 19일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중앙컴퓨터에 침입했습니다.중앙컴퓨터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회의록이나 작전명령, 이동계획 등이 모두 입력되어 있으니, 조선군은 가만히 앉아서도 중국군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쉬운 전쟁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위대 장성들이 이제야 이해하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한국인들이 애국심이 투철하고 전략에 뛰어나더라도, 압도적인 중국군 병력과 신무기 앞에서는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었는데, 상황은 반대로 되어 한국군이 중국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니 이들이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했다.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평가한 군사전문가도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자, 화면을 보십시요."

  사토 과장이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여 중앙화면을 켰다.  현재 중국군의 병력과 무기체계가 화면에 떴다.  그가 키를 몇번 치니 한중전쟁 직전과 현재의 상황이 비교되었다. 해군의 경우는 심각해서 현재 절반 정도의 전력 밖에 남지 않았으며,  함대로서의 전력을 갖춘 것은 북경 근처의 해역을 책임지는 북해함대 밖에 없었다.

  "중국군은 조선에 패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일본은 조선에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군사자료까지 모두 입수했으니까요."

  사토 과장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막료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 과장은 대학생 해커들이 중국군 중앙컴퓨터에 침범할 때 일본 통신망의 슈퍼컴퓨터에 미니어쳐를 설치했는데, 정보 2과의 컴퓨터전문가들이 이를 파악해 한국군이 알고 있는 중국군의 자료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한국의 자료까지 입수할 수 있었다.그러나 육해공의 막료장들은 정규군이 아닌 자가 정보만을 믿고 설치는 것이 보기 싫은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에게 전쟁은 저런 민간인이 아닌, 충성심이 강한 군인에 의해 승리가 쟁취되어야 한다는 신앙같은 믿음이 있었다.

  "정보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일본군은 그깟 중국보다 훨씬 강하오. 그리고 지금 조선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느라 전력이 바닥이 난 상태요. 지금이 조선을 정벌하기 쉬운 가장 절호의 타이밍이란 말이오.  육상자위대의 예비자위관들은 이미 소집된 상태고, 중공업은 이미 군수체제로 전환했소.  이제 징병제만 실시하면 되는데 왜 내각은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소?  중국이 아직 반도에 남아있을 때 실시해야 중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이 설텐데 말입니다."

  최근에 육막장(陸上自衛隊 幕僚長)이 된 고마쓰 미도리(小松綠) 육장(陸將)이 투덜거렸다.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경우는 삼국이 서로 싸우는 상황이므로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중국이 완전 패배한 다음이 낫지 않겠습니까?  중국과의 전쟁으로 허약해진 한국군은  우리 육상자위대의 전시동원체제가 완전히 갖춰진 다음에 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야마다 공장(空將)이 특유의 신중론을 폈으나, 가만 앉아있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해장(海將)이 책상을 탕탕 두들기며 소리쳤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조선을 정벌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중국도 우리의 공격을 반길 것입니다.  최소한 반도의 남쪽 절반이라도 우리가 차지해야 합니다."

  "어허~~~ "

  오부치 통막의장이 하토야마 해장을 만류했다. 하토야마 해장은 독도의 한국군과 헬기들이 먼저 공격해서 반격에 나섰다고 주장 했으나, 이를 곧이 들을 의장은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는 수많은 정보분석과 사전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소장파 장성들이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수상과 내각은 일단 한국에 일본함대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일본이 영해를 침범했다며 그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고 있었다.  어쨋든 독도는 지금도 일본 해상자위대가 점유하고 있었고, 내각은 계속 시간을 끌고 있었다. 죽도(竹島)에 영원히 히노마루(일장기)가 휘날리게 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일본인의 바램이었다.

  "선전(宣戰)의 권한은 중의원에 있으니 기다리시오.  그리고 더 이상의 도발은 자제하기 바라오. 겨우 헬기 두 대 격추하고 우리 함대는 두 척이나 당하지 않았소?  그것도 2천억엔 짜리 이지스함이라니… 도대체 손익계산이 어떻게 된 것이오?  엄청난 손해가 아니냔 말이오."

  의장이 날카롭게 하토야마 해장을 질타했다. 해장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의장은 소장파 자위관들 때문에 군에 대한 문민우위의 원칙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전환점마다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결과적으로 일본국민을 불행에 빠뜨렸었다. 의장은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도 독도를 회복하길 바랐다. 패전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을,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

  의장이 갑자기 생각난듯 인민군이 보유한 중거리 유도탄의 현황을 물었다. 핵탑재가 가능한 스커드형 미사일의 파생형인 노동 1,2호나 대포동 미사일 등은 이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야마다 공장은 일본열도의 전역방위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지금 이 미사일을 완벽하게 요격할 수는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해장은 북한에 핵이 없으니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하자고 주장했다. 오부치 의장은 도쿄에 미사일이 낙하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린 시절 도쿄 상공을 비행하는 미군 B-29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1999. 11. 21  10:30  황해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통일참모본부는 일본의 독도 무력점령을 국민들에게 감추려고 했으나 이미 통신이 국제화한 이때,  이런 문제는 절대로 비밀로 지킬 수 없었다. 독도가 일본에 강점되었다는 소식이 국제전화와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순식간에 국민들 사이에 퍼졌고, 독도수비대원들이 한국군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는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일본과 중국을 싸잡아 비난했으며,  저항 한번 없이 독도를 순순히 내준 군 지휘부를 격렬히 비판했다. 컴퓨터 통신망에는 나라를 지키자는 내용의 갖가지 격문이 뜨고,  언론사에도 국민의 의견이 빗발쳤다.  일본의 독도 점령은 의외로 국민의 의분을 자아내어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일단 중국군을 몰아내고 보자는 여론이 급속도로 형성되어 예비군 소집 대상도 아닌 나이든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군입대가 급속히 늘어났다. 각지의 임시모병소와 군부대 앞에는 입영지원자들이 쇄도했다.국방부는 일단 전선에 여유가 생긴 상황이므로, 이들이 가진 기술과 건강 상태 등을 따져 선택적으로 입영을 허가했다.  이들을 철저히 교육시킨 다음 전황을 보아가며 전선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한국전쟁 때처럼 총 한방 쏘아보지 않고 전선에 배치되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각 지방의 공업단지들은  급속히 군수산업으로 전환되어 속속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즉시 군복 생산에 들어갔다.  피스의 함대가 중국에 대한 역해상봉쇄를 실시한 다음부터 말레이시아 등의 항구에서 대기하던 화물선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원료나 원자재난은 해결되었다.

  참모본부 상황실의 좌측 통신용 화면에 대통령이 나타났다.그동안 묵묵히 통일참모본부를 옹호해왔으며 신중하기로 유명한 홍 대통령도  그런 결정을 한 참모본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통일참모본부에 독도의 무력회복을 명령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 차수가 허허 웃으며 대통령의 불평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 차수는 대통령을 보며 육군병장 출신의 젊은 사람치고는  상황판단이 냉철하다며 감탄했다.  이 차수는 대통령에게 전혀 설명할 필요도 없었으며, 대통령은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만 이 차수를 탓할 뿐이었다.

  "씁쓸한 비난의 화살이로군요."

  홍 대통령과의 화상통신이 끊기자마자 양 중장이 투덜거렸다.

  "내래… 약소국에서 태어난 사실에 비애를 느낍네다."

  김 병수 대장도 한숨을 쉬며 한마디 했다.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은 일본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일본은 너무 비겁하군요. 언젠가 꼭 죄과를 치룰겁니다."

  "그건 그렇고… 준비는 잘되어 가오?"

  이 차수는 이미 예상했다는듯,  홍 대통령의 불만같은 것은 신경쓰지도 않고 양 중장을 보며 준비상황을 체크하길 바랬다.치밀한 양 중장이 훈련상황과 침입예정루트를 참모들에게 보고했다.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거려 동의를 표했다. 정 지수 대장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도대체 이 작전 자체가 두려웠다. 대통령의 결정은 삼군총장과 합참의장,국방부 등의 라인은 비밀유지를 위해 소외시킨 채,  통일참모본부의 건의 형식을 빌어 홍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망설이는 대통령을 인민군의 최고실력자이며 참모장인 최 광 차수, 아니,  오늘 아침에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산당 중앙상무위원회에 의해 원수로 추대된, 최광 원수가 설득하여 겨우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암호명 [장마]라고 명명된 이 작전에는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와 인민군의 정찰연대가 동원되었고, 이들의 호송은 한국해군의 잠수함대가, 그리고 루트 개척은 해군 UDT가 맡았다.  그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이번 한중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중요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모든 한국인의 미래를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1999. 11. 21  11:10  경기도, 동두천기지

   선천에서 패배한 국군 제 11 기갑사단의 잔여병력과, 안주에서 크게 당한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일부 병력을 기간병력으로 하고, 남북의 전차대원출신 예비군들을 소집하여 긴급편성된 통일한국군 지상군의 첫 번째 부대인 제 1기갑사단이 러시아제 T-80 전차를 선두로 기지 정문을 지나 도로에 나섰다.  제 1 기갑사단은 각각 전차 51대로 이뤄진 4개의 전차대대, 155밀리 자주곡사포와 MLRS로 이루어진 포병연대, K-200보병 전투차가 중심이된 2개의 기계화보병연대, MD-500의 정찰형과 전차공격형 헬기로 이뤄진 항공대대,  그리고 기타 공병단과 기갑정찰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흘간의 교육과 훈련으로  예비군이며 광고회사의 대리였던 변 승재는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러시아제 화기관제장치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변 승재는 전차 안에서 바깥을 보며, 혹시나 한국군이 오인해서 전차를 공격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부산에서 편성된 제 2기갑사단은 미국산 M-1A1 에이브럼스 전차로 편성이 되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깐깐한 인민군 군관을 전차장으로 모시지 않아도 될테니…’

  이제 다시 군으로 돌아가 변 하사가 된 변 승재는  포탑 위에 상체를 내밀고 있는 전차장을 힐끗 돌아보았다. 전차중대장인 그는 현역이라는데도 나이가 40은 되어보였다. 자기 말로는 전사출신 군관이라고 했다. 한국군으로 치면  이등병이 계속 군문에 종사하여 대위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변 하사가 끔찍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 1 기갑사단은 북으로 전진해 임진강을 건너 전곡에 도착, 다시 서쪽으로 계속 달려서 개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사리원과 평양을 거쳐 안주로 향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안주는 이미 통일한국군이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30대의 전차와 450대의 보병전투차, 그리고 기타 자주포와 보급트럭 등의 긴 행렬로 이뤄진 제 1기갑사단은  한 지점을 지나가는 데에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1999. 11. 21  13:50  평안북도, 박천 남방 10km

  폭설은 중국군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전진하는 통일한국군에게도 방해물이 되었다.선두에 선 해병 1사단의 전투공병단이 불도져로 눈을 밀어내며 전진했다.  전쟁이후 첫 전투참가인 이들은 웬 노가다냐며 투덜거리며 도로의 눈을 밀어냈다.  공병단 앞에는 수색중대가 정찰을 하고 있었으나 적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많던 중국군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공에 F-16의 호위를 받는 팬텀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북쪽 상공으로 날아갔다.  곧이어 대공포화 소리와 함께 폭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병 1사단은 이제 곧 전선에 도착하는 것이다.

  "적은 평안북도의 운전, 박천, 영변, 희천을 방어선으로 고착시킬 태세입니다. 그 이남의 적은 모두 후퇴했습니다.  우리 사단의 목표인 박천에서 선두 부대가 강력한 적의 반격에 직면했습니다."

  이동지휘차 안에서 작전참모가 사단장에게 통일참모본부로부터 온 작전계획서를 설명했다. 사단장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통참은 우리 사단이 너무 돌출해 있으니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평남의 개천을 점령한 아군 2군단은 아직 청천강을 도하하지 못했습니다. 군단사령부에서는 박천의 반포위를 명했으나 공격은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반포위하면 당연히 전투가 개시되는 법…  어떻게 기다리기만 하라는건가?  음… 선두 부대를 철수시키게. 기다리기로 하지."

  사단장의 명령에 박천 남쪽을 공격중이던  해병 1사단의 선두 대대가 투덜거리며 철수했다.  해병 1사단의 병사들은 언덕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연신 북쪽을 쳐다봤다.  저곳에 자신의 뼈를 묻을지도 몰랐으나 승리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전선에 긴장감이 쌓인 적막이 찾아왔다.눈은 산과 들을 덮으며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1999. 11. 21  22:40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

  밤이 되자 다시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정찰병들이 곽산 인근에 대규모 중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알려오자 이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이동중이었다.  본대가 정찰대와 만나기로한 야산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정찰병들이 왔다. 어둠 속에 보이는 그들은 눈밭 위에서 하얀 위장복을 입고 꿈결 속의 유령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대원들이 그들의 접근을 막고 수하를 했다.

  "암호!"

  "내가 잠들면 누가 밤을 노래하리."

  구 소련 페레스트로이카의 대중문화적 선구자인 락 스타 빅토르 최의 노랫가사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암호였다. 암호치고는 엄청나게 길었지만, 대신에 상대방의 억양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이용되었다. 정찰병들이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적 부대는 보병 1개 여단입니다. 전차 등의 중화기는 없지만 경계는 비교적 엄중합니다."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간전대대가 위명을 떨침에 따라 중국군 부대는 대낮보다는 밤에 경계를 더 철저히 해서  야간전대대가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달이 완전히 지므로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둠은 이들의 신앙이었다.  아직도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초겨울의 눈 치고는 상당히 오래 내렸다.  대대장이 내뿜는 입김이 하얗게 서려올랐다.

  대대장이 정찰병을 따라 야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망원경으로 중국군 주둔지를 보니 부대 주변이 대낮같이 환했다.

  "야, 이기 눈부셔 못보갔구만."

  "감도를 줄이십시요. 대대장 동지."

  대대장이 망원경의 광량조정장치를 조절하여 어둡게 했다. 이들은 어둠에 더 익숙하므로 밤에도 일반 망원경으로 본다. 인공적인 조명이 있는 곳을 볼 때는 망원경으로 들어가는 빛의 양을 줄여 볼 수 밖에 없었다.

  "저것들, 잘 때도 불을 안끄고 잡니다. 막사 주변을 철조망으로 치고 30미터마다 전등이 달린 전봇대가 하나씩 있습니다."

  정찰병이 말하자 대대장이 끄덕거렸다.

  "20메다마다 참호에 두 명씩 있구만. 이 간나이…  쓰…"

  "꼭 우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1개 대대는 순찰활동하고 있습니다."

  "길타고 안티기도… 어제 그놈들보단 낫디만… 가자우."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전멸은 못시키더라도 타격을 주자는 의견이 다수였다.대대장도 전선에서 피흘리고 있을 동지들을 생각하니 초조했다. 결국 공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윽고 달이 기울자 야간전대대 대원들이 움직였다.달없는 밤의 움직임이었지만 이들은 신중했다. 어제의 실패가 모두를 신중하게 했다.

  어제는 적 부대에 접근중 청음초소의 중국군 초병들에게 발각되어 공격도 못해보고 후퇴했었다.  선발대가 중국군 초소에 접근하던 중에 한 대원이 살얼음을 잘못 밟아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중국군의 주둔지에 비상이 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그러나 미처 공격진형을 갖추지 못한 야간전대대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적의 추격을 피해 약 30km를 북쪽으로 후퇴한 후에, 대대장이 처음 소리를 낸 대원을 즉결심판했다. 소음권총에 의한 총살이었다. 그 대원은 자결을 간청했지만 대대장이 들어주지 않았다.대대장이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에 대고 한 발을 쏘았다. 다른 부하들이 즉시 땅을 파고 시체를 묻었다.그리고 그 위에 눈과 썩어가는 낙엽을 덮어 위장했다.

  이 부대가 정주에 나타난 것은,  중국군의 추격도 피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덜한 청천강 북쪽의 적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여단본부와의 무선은 끊어진지 이틀이 지났고, 임시 비트가 적에게 탄로나서 휴대한 비상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어제의 야습이 성공했더라면 대원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아니,  그들의 식으로는 밤새도록 굶고 있었다.

  대원들이 중국군 주둔지로 1분에 1미터씩 조심조심 접근했다.적의 야시경이나 적외선 스코프에는 걸리지 않는다. 소리만 안내면 되었다. 선발대가 전등이 약 100미터 가량 설치되어있지 않은 캄캄한 참호 앞쪽으로 갔다.  참호 밖에는 워낙 추워서 그런지 중국군 경비병이 총을 메고 나와 발운동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전사가 뛰어가 경비병들을 덮쳤다. 참호 밖의 경비병은 목이 부러지고, 참호 안의 경비병은 도끼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 참호를 점령한 전사들이 신호를 했다.

  선발대인 소대가 천천히 참호로 가고, 이를 확인한 본대도 서서히 움직였다. 대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중국군 주둔지로 접근해 가는데 갑자기 조명탄이 올랐다. 조명탄은 선발대가 접근 중인 참호 앞이 아니라 본대 위로 떨어졌다.

  "함정이야!"

  사방에서 기관총 소리가 콩볶듯 들려왔다. 전차가 우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조명탄을 정면으로 본 대대원 몇명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전차포가 이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하여 대대는 섬광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간전대대는 창설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중국군 특수부대인 권단 제 3려(여단급)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고 이들을 청천강 이남에서 부터 추격해와서, 이 곳에 위장 주둔지를 만들어 놓고 매복한 것이다.  이들은 최첨단 대인레이더를 탑재한 보병전투차 3대와 헬기, 전차 등 완벽한 준비를 하고 이들을 맞았다.대인레이더는 기존의 대인레이더와 달리 적외선레이더 중에서도 고감도의 도플러식 레이더였다.  대용량의 컴퓨터가 있어야 이동하는 데이터에 대한 발견과 처리가 가능한 이 레이더는 미국이 최근 개발한 신무기여서 야간전대대의 적외선 흡수 전투복은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권단은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부대였다. 부대 이름부터가 권단(拳團)인 특수부대였다.

  야간전대대원들은 일단 야간고글의 광량조절장치를 조작해 최대한 어둡게했다.  다시 수 십 발의 조명탄이 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써치라이트를 킨 헬기들까지 가세해 공중에서 기관포를 쏘아댔다. 대원들은 눈을 다칠까봐 헬기를 향해 응사하지도 못했다.  아까운 대원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가는 모습이 대대장의 핏대선 눈에 보였다. 이들이 이 정도로 어둠에 적응하기까지는 5년 이상의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이들이 모두 쓰러지면 인민군은 최소한 5년 동안은 제대로 된 야간전대대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대장 동지,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승에서 뵙자고요."

  부관이 대대장을 측은한 눈으로 보았다.대대장도 이제 끝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대원들이 대대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응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이제 당분간 밤에 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암적응을 하려면 최소한 사흘의 야간훈련이 필요했다. 물론 살아남더라도…

  대대장이 주위를 살펴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디인가 확인하고 돌격을 외치려는 순간 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갑자기 상공의 헬기들이 공중폭발하며 추락했다.  헬기들이 갑작스런 적의 공격에 혼란에 빠져 사격을 멈추고 급상승해서 적을 찾으려 했으나  사격하기 더 좋은 위치만 내준 꼴이었다.다시 5대의 헬기가 추락하고 칠흑같은 하늘에는 더 이상 비행하는 물체는 없었다. 이제 공격은 전차에 행해졌다. 중국제 T-82들이 허망하게 폭발했다. 권단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우군입니다. 대대장 동지!"

  "기다리라우. 이런 곳에 아군이 있을리가…"

  대대장이 주변을 둘러보자  소총의 사정거리 넘어 멀리 전차 몇 대와 구형의 장갑차들이 보였다. 전차는 국군의 K-1인 88전차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장갑차는 인민군의 BRDM이었다. 하지만 병력은 별로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대대장이 안팎으로 포위된 중국군에 응사하며 상황을 살펴 보았다.

  "이 지역에 남반부 땅크라니,  길고 겨우 저 인원으로 역포위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중국군 권단은 사방에서 빗발치듯 날아오는 총탄에 공포를 느낀 모양이었다.대대장은 자신이 중국군 지휘관이라면 이 상황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겠지만 중국군들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중국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중국군은 막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그들이 떠난 곳에는 수 십 대의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불타고 있었다. 중국군이 후퇴한 반대방향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으나 꼭 자신들을 부르는 불빛같아서 그 쪽 언덕으로 움직였다. 중국군을 공격했던 부대는 계속 전투중이었다.

  "귀관은 누구십니까?"

  비교적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한국어라서 대대장이 기뻐 어쩔줄 몰랐다.  주변에는 참모로 보이는 몇몇이 전투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장 황보 일 중좝네다!"

  대대장이 부동자세로 경례하며  어둠 속의 사나이를 보았으나 어두워서보이지 않았다. 야간전대대원이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못알아 본다는 것은 치욕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이 야간고글의 광량조절장치를 아주 감도가 낮게 조정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조절하여 보니 엉뚱하게도 자신 앞에 국군 중령이 있었다.

  "저는 제 11기갑사단 제 3전차대대장 차 영진 중령이며 현재는… 홍 대좌, 우리 사단 이름이 뭡니까?"

  차 영진 중령이 홍 대좌를 불렀다.홍 대좌가 씩 웃더니 아직 사단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차 영진 부대가 어떻갔시요? 이미 사단병력을 훨씬 넘어버렸으니 사단이라는 명칭도 못쓰갔습네다."

  차 중령이 아연실색했다. 북한은 항일빨치산 시절부터 유명한 지휘관의 이름을 부대에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우수한 부대일수록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부대이름으로 삼았으며, 부대원들은 이를 명예로 받아들였다.  북한의 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부대 이름에 부대장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당 주석만이 할 수 있었고,  이럴 경우 그 부대는 집단 영웅칭호를 받은 것으로 되었다. 주석은 11월 17일 새벽에 중국군 특수부대에 의해 죽어서 현재 북한에는 당 주석이 공석이므로, 부대장 이름을 부대 이름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차 중령은 자신의 이름을 부대 이름으로 삼기는 싫었다.

  "그건 안되고… 우리 부대 이름은 북부군으로 하죠."

  그가 사관학교 생도시절에 재미깊게 읽은 소설인 남부군을 따서 북부군이 어떻냐는 의견을 내자 참모들이 좋다고 맞장구쳤다.  중국군 점령 지역인 북부지방에서 활동하는 유격부대이니 그들에게 북부군이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그리고 부대 규모를 상당히 과장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지금도 이들의 부대는 보병 1개 사단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의주와 안주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중국군은 병참선을 멀리 만포, 강계, 희천으로 우회시켰으나 지금은 폭설로 인해 보급부대가 산간지방 곳곳에 고립되었다.  고립된 중국군 보급부대는 인민군 저격여단과 피점령지역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패잔병들과 민간인 유격부대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긴데… 저 종간나이들을 어드레케 할겁네까?"

  야간전대대장인 황보 중좌가 중국군 주둔지를 가리켰다. 주둔지에 맹렬한 박격포 공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차 중령이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만 했다.

  "전멸시켜야죠. 저들은 특수부대입니다."

  "어드러케요?"

  황보 중좌가 놀라서 물었다.  아무리 봐도 병력은 얼마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적을 친단 말인가? 중국군 주둔지의 전등은 이미 꺼져서 캄캄한 가운데 예광탄과 포탄만이 꼬리에 불을 끌며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지금 공격은 단지 양동작전일 뿐입니다.  한곳에 몰아넣었으니 이제 전멸시키면 됩니다. 참, 황보 중좌님의 혁혁한 전과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차 중령이 잠시 중국군 주둔지 주변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황보 중좌를 지휘차량 쪽으로 안내했다. 차 중령이 황보 중좌의 부하들을 이쪽으로 이동시키라고 하자 인민군들이 야간전대대원들을 중국군 주둔지가 안보이는 쪽으로 이동시켰다.

  "야간전대대의 위명은 이번 전쟁 중에 익히 들어왔습니다. 섬광에 귀중한 눈을 노출시켜서는 안되겠죠."

  황보 중좌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차 중령을 보니  그는 씩 웃고 있었다.  그 직후에 섬광이 번쩍이더니 엄청난 폭음이 계속 울려왔다. 땅이 큰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렸다.  황보 중좌가 놀라 언덕위로 올라가서 주둔지쪽을 보니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고  황량한 벌판만이 불에 타고 있었다.

  "이기… 어드레케 된깁네까? 내레 꼭 무시기 마술을 본… 혹시… 전술핵입네까?"

  "아닙니다. 밤에만 가능한 트릭… 아니, 속임수죠."

  차 중령이 정정했다. 인민군들은 한국군이 영어를 자주 쓰는 데에 불만이 많다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차 중령도 교육 당시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신도 실수를 한 것이다.

  "헬리콥터에서 MK82-0 SLICK이라는 대형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폭발력이 굉장하죠? 원래는 활주로를 건설하려고 준비해둔 폭탄이랍니다.이걸 중국군들 머리에 몇 발 떨어뜨린거죠."

  황보 중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헬기에 대한 대공사격을 막고 중국군을 한곳에 몰아넣기위해 지금까지 박격포와 기관총 공격을 한 것이다.  대대장은 한 수 앞을 보며 전술을 짜고 아군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적을 순식간에 일망타진하는 차 중령이  보통 군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황보 중좌는 자신의 처지를 불현듯 깨달았다.  야간전대대는 중국 특수부대의 주요 표적이 되어 계속 쫓기고  보급품도 바닥이 난 상태였다.오늘 일을 보니 자신의 대대는 거의 한계상황에 다달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을 따라가면 일단 부대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듯 했다.

  "저… 저를 휘하에 두실 수는 없겠습네까?"

  "아이고, 휘하라뇨. 같이 협력합시다."

  "감사합네다. 대장 동지!"

  저격여단은 그동안 외로웠다. 여단과의 연락이 끊겨 전황을 알 수 없는데다가 추격까지 받고 식량도 떨어져 비참한 상황에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차 중령의 부대와 황보 중좌의 대대가 차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의 부하들은 의외로 많았다. 구석구석에서 계속 꾸물거리며 기어나왔다. 자신의 부대원보다 10배는 더 많아 보였다.황보 중좌는 이 많은 병력이  자신의 눈을 속이고 매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차량은 꼬리를 물고 계속 북으로 달렸다. 황보 중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쪽에 중국군은 없습네까?  이렇게 차도로 다녀도 되는겁네까?"

  황보 중좌와 같은 지휘차에 탄 차 중령이 설명했다.  차 중령의 부대는 예비군이지만  효과적인 유격전을 수행하여 정주 북쪽의 몇 개 군이 해방구가 되었다는 것과,아까 전멸시킨 중국 권단은 이 지역을 잘 모르기 때문에 겁도 없이 들어왔다는 설명이었다.  야간전대대가 먼저 공격하여 자신도 당황했다는 말도 해주었다.

  "물론 밤에만 해방구이지 낮에는 중국전투기들 때문에 차도로 이동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대공무기가 빈약하니까요…"

  황보 중좌가 그래도 이게 어디냐는듯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한가지 의문을 풀고 싶어 차 중령에게 물었다.

  "지휘관 동지의 부대는 중국군이 공격을 안합네까? 저흰 계속 추적을 당해왔습네다만…"

  "아…  평안북도 동쪽 지역의 중국군 병참선에 2개 집단군이 경비중이라고 합니다.중국군은 아마도 전선보다는 후방이 더 껄끄러웠던 모양이죠. 하지만 이쪽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신의주 남쪽까지는 경계하지 않고 차량으로 움직입니다.  청천강을 돌파해서 남쪽의 전선과 연결 해볼까 했는데 아직은 힘들겠습니다. 위성수신 텔리비전을 보면 전황이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직…"

  선천이 가까와질수록 차 중령은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제대로 피난을 갔을까, 혹시 무슨 안좋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고민되었다.  선천 북쪽의 민간인은 중국군의 신속한 점령에 모두 점령지에 남았으나, 선천 남쪽의 민간인들은 제 11 기갑사단이 중국군을 막는 동안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아마 서울의 친정에 가 있겠지… 전쟁이 빨리 끝나야…

  선두의 차량행렬이 선천 남쪽에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인민군 초소에서 불빛으로  요새에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언덕에서 보이는 선천 시가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 중령이 한숨을 쉬자 황보 중좌가 그의 눈치를 보았다.

  1999. 11. 22  01:30  평안북도, 선천

  이윽고 선천의 부대가 선천의 대목산에 도착하여  부대전체가 차량째 지하 차고로 들어갔다. 황보 중좌가 이 요새의 시설을 보고 감탄했다.

  "하하! 인민군이 만든 요새입니다. 모르셨군요?"

  차 중령이 유쾌하게 웃자 황보 중좌가 쑥스러워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예비역 군관들이 황보 중좌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차 중령도 좋아했는데, 나이든 노농적위대나 훈련이 부족한 교도대원들 보다는 이들 특수부대원들이 들어와 부대의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기 누기야?  황보 일 동무!"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반백의 군관이 들어왔다.  황보 중좌와 야간전대대의 중대장들이 즉시 부동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여단장 동지!"

  그는 저격여단장 최 대좌였다. 황보 중좌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래, 고생했구만. 동무."

  최 대좌가 황보 중좌의 어깨를 치고 자리에 앉았다.  계속 자신을 보고있는 황보 중좌에게 설명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최 대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레 묘향산에서 산악전 1대대와 함께 죽도록 싸우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지비.우리 사단장 동지께서 워낙 영명하셔서 이번 전쟁은 아마 우리가 이길거야~. 동무들도 걱정말라우."

  최 대좌가 호쾌하게 웃었다. 최 대좌는 인민군이고 차 중령보다 계급도 높았지만 이미 차 중령이 사단장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급자가 있더라도 규정상 차 중령이 계속 사단장을 하게 되었다.  최 대좌는 처음엔 하급자인 국군 장교의 명령을 받는 것이 싫었지만  계속 전투를 치뤄본 결과, 차 중령은 대단히 훌륭한 전술가라는 판단이 서서 충심으로 그를 받들고 있었다.

  야간전대대의 사병들은 실로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숙소를 배정받은 그들은 아직 잘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요새를 구경하고 보초들에게 최근 전황을 물으며 신나게 떠들었다.초병들은 광도가 낮은 전등불빛에도 눈부셔서 색안경을 쓰고 있는 그들이 신기하게 보였지만, 초병근무중에도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북부군이나 새로 배속된 야간전대대나 실로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는 밤이었다.

  1999. 11. 22  13:50  평안북도 만포 9km 남방 독로강변

  "분대장 동지, 완전 포위당했습니다."

  무수한 전투를 치렀으나 아직은 신병 티를 벗지 못한 박 전사가 급하게 외쳤다. 크레모어 등 폭발물을 맡은 표 전사는 이미 전사했고, 고속 유탄포의 김 하사는 가슴에 총상을 입어 중상이었다.산악용 오토바이가 세 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민군 저격여단 산악전대대 3중대 중에서 조 부현 하사가 지휘하는 분대는 종말을 맞고 있었다. 만포 남쪽,이들에게는 북쪽인 성동의 분지에서 중국군이 총격을 가했고,  강건너 양가동에서는 전차가 이쪽을 향해 포를 쏘고 있었다.  상공에서는 공격헬기 3대가 비행하며 이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독로강은 평안북도에 있는 적유령산맥에서 발원하여  강계를 지나 만포남쪽에서 급선회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압록강에 이르는 강이다. 높은 산 사이의 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평소에는 물살이 빨랐으나  지금은 얼음이 꽁꽁 얼어있었다. 그 강 건너편에도 중국군이 우글대고 있었다.

  이들은 19일에 전투를 시작한 이후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20일부터 중국군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고 있었다.  도살자라고 불리우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특수조직인 2027부대의 1개 대대가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전문 트랙커훈련을 이수한 이들은 산악용 오토바이의 궤적을 좇아 첫날에 바로 오토바이 분대의 아지트를 찾아냈고, 이후 이틀간의 치열한 추격 끝에 결국 이들을 포위망에 몰아넣었다.  2077부대는 산악용 오토바이에 탑승한 대원들뿐만 아니라 10마리의 군견과 전문 트래커등이 추적을 하고, 상공에서는 헬기가 엄호하며 철저히 추적해서 이들을 잡을 수 있었다.

  리 전사는 계속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민 하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스팅거를 발사해 하인드 헬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들이 있는 곳 남쪽의 녹번동에서 인민해방군 중대병력이 천천히 독로강의 얼음을 건너왔다. 중국전차의 주포에 리 전사가 날아가고 헬기의 로켓포에 민 하사가 갈갈이 찢겼다.이제 분대장인 조 중사와 신병인 박 전사, 그리고 중상을 입은 김 하사만이 남았다. 탄알도 점점 떨어졌다.

  부하들을 보며 조 중사가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어차피 항복해도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해를 중국군에게 입혔다.전선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제발 통일한국군이 중국군을 몰아내길 바랬다.

  "착검하고 탑승! 남쪽으로 간다. 돌격~~~ "

  박 전사가 김 하사를 부축하여 오토바이에 태우고 자신도 탔다.세 명의 전사가 오토바이의 굉음을 울리며 중국군을 향해 돌진했다.  인민해방군의 총격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인민군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든채 속도를 올렸다. 중국군들에게 접근하며 괴성을 질렀다.  중국군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1999. 11. 22  15: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이번엔 평양쪽입니다. 중국… 대단한 나라입니다."

  양 석민 중장이 한탄을 했다.  참모들이 무슨 소린가 바라보았다. 양 중장이 중앙의 화면을 켰다. 서해안과 평안북도의 지도가 나타났다. 유능한 컴퓨터 해커인 구 성회와 김 준태가 미리 북해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양 중장에게 보고하고,양 중장은 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이들의 움직임을 세밀히 포착할 수 있었다.  산동반도에 있는 중국 북해함대의 기항지인 웨이하이 웨이 앞바다에 모인 중국해군의 연합함대는 당의 명령대로 평양 서쪽인 남포를 향해 직진했다. 전황을 다시 중국의 의도대로 이끌겠다는 당 지도부의 강력한 의사표현인 동시에 중국해군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작전이었다.  동해함대와 남해함대에서 남아있는 구축함등의 대형함정들을 모두 긁어모아 이 작전에 모두 투입했다.

  "중국의 북해함대입니다. 남포 서쪽 150 km 해상입니다. 역시 상륙부대로 보여집니다."

  양 중장이 화면에 중국 북해함대의 편성표를 올렸다.  항모 2척과 구축함 등 각종 전투함 20 여척, 잠수함과 상륙함, 수송함 등이었다.

  "대만 상륙전에서 유명해진 린 훼이 중장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어떤 기책을 쓸지 주의해야 합니다."

  참모들이 술렁거렸다. 중국은 2개 함대로 각각 남해안의 여수와 서해안의 태안반도를 노렸으나 한국군은 방어전의 유리함을 업고 이들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한국군의 남해함대와 서해함대도 이미 전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숫자는 어느 정도 갖춰져있지만 신형인 대형함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동해함대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던 한국형구축함들은 독도 문제가 발생하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동해바다를 떠날 수가 없었다. 공군은 더 처참한 지경이었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F-4 팬텀까지 요격임무에 동원되었다. 피스 함대가 동지나해로 떠나간 지금,  참모들은 그들을 붙잡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중국함대를 막을 전력이 별로 없었다.

  "걱정 마시라우요. 남포는 까딱 업시요.  남포 인근해에 적 잠수함들의 정찰활동이 많다는 걸 알고도 냅뒀시요."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큰소리 쳤다.  이 종식 차수도 느긋한 표정이었다.  국군 참모들은 영문을 몰라 인민군 참모들의 눈치를 보았다.

  "중국은 상륙지점을 잘못선택한 것이오.  물론 남포는 평양을 공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위치이긴 하지만 우리 공화국을 잘못봤소. 아, 미안 하외다. 우리나라 말이오."

  이 차수가 즉각 정정하며 말을 이었다.

  "이틀 전에 적이 태안반도쪽으로 상륙하려 할 때  박 상장의 말을 기억하시오?  차라리 남포로 오라는 말을…  이제 인민군 해군의 력량을 보게될 것이오."

  박 상장이 자세한 설명을 하자 국군 참모들도 한시름 놓았다. 그렇지만 인민군의 준비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전이 제대로 먹힐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통일참모본부는 적의 상륙부대에 대한 합동공격작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11. 22  18:00  평안남도 남포 서쪽 60km 해상

  서해안의 낙조를 배경으로 수많은 중국 함정들이 동진하고 있었다.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북해함대의 사령인 린 훼이 중장은 항모 해신 3호의 함교에서 한국군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막강한 인민해방군의 동해함대와 남해함대가 어이없이 당했다. 자신도 당할지 모르지만 한국에 항공기와 대형 함정들의 숫자가 상당수 감소했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남포 서쪽 해상은 중국에서 발진한 지상기지 출격 항공기들의 충분한 항속거리 내에 있지 않은가? 게다가 통일한국의 서해함대는 지상군을 지원하는지 몇 시간째 평안남도 안주 서쪽 해상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군인은 마땅히 적국의 침공에 대해  국가를 방위하는 데에 최고의 존재가치를 가진다. 린 중장은 한국군, 특히 오랜 친구인 박 정석 상장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방위하기 위해 싸우기 때문에 당당하고, 자신은 침략을 위해 싸우므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니 일단 이기고 볼 일이라며 마음을 다졌다.

  5만톤급의 중형항모 해신 3호는 대만 상륙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군함이다. 호위함 없이 항모 단독으로 출전하여 수 십 척의 잠수함들을 대만의 해안선까지 도달케 하였고 후아리옌 공군기지를 점령했다. 대만군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공격해온 해신 3호에 의해 사기가 땅에 떨어져 이후의 전투에서도 일패도지했다. 이번엔 상선으로 위장하지 않고 당당히  호위함들을 거느리고 상륙작전을 지휘하며 한반도 서해안으로 항진했다.

  해상에는 다수의 프리깃함과 구축함들이  예상되는 한국 잠수함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계중이었고 상공에도 여러대의 헬기와 초계기들이 잠수함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태안반도에 해병대를 상륙시키려던 중국 동해함대가 한국군의 잠수함들에 의해  허망하게 전멸한 사실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고, 린 중장은 이들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했다.  그는 함대를 한국군의 잠수함공격에 취약했던 동해함대의 대공진형이 아닌, 러시아식 대잠진형을 택했다.

  초계기와 헬기,또는 잠수함과 구축함들이 함대가 진행하는 해역을 격자식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방어를 전담하고 있었다.이 해역에 은밀하게 숨어있을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이라도 단 한번의 공격 밖에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함대의 가장 선두에는 기뢰전용 수색헬기와  소해정들이 항로를 열었다.  그러나 아직 해안선에서 멀어서인지 인민군이 설치한 기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적과 접촉해보지 못하고 해안에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함대 승무원들의 긴장을 가중시켰다.

  "아직 적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적함도, 적기도 안보입니다. 해주 상공에 조기경보기만 떠 있습니다."

  함장의 말에 린 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한의 수도가 위협받고 있으므로 최소한 인민군은 함대와 공격기편대를 보낼 줄 알았으나 하늘과 해상엔 아무런 위협이 없었다.함대를 호위하는 잠수함들로부터도 위협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차라리 잘됐군. 함대는 해안 30km까지만 접근시키고 상륙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석도(席島)와 초도(椒島)의 상황은?"

  린 중장이 남포항으로 가는 길의 섬들에 대한 상륙전 상황을 묻자 작전참모가 상황판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섬을 수비하는 인민군들의 저항은 의외로 약하며, 조만간 점령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린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남해함대와 동해함대의 패배를 교훈삼아 린 중장은 극히 신중하게 한국해안에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상륙지점 근처의 섬은 무조건 점령했고, 적 잠수함이 없다고 확인된 후에야 함대를 전진시켰다. 함대가 해안에 점점 가까와졌다.

  상공에는 미그기의 중국식개량형인 각종 섬형(殲型)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이미 어두워진 동쪽하늘을 향해 날았다.  상륙부대의 작전을 돕기 위해 해안폭격을 목적으로 요동반도에서 발진한 대규모 편대였다. 함대는 어느새 해안에서 30km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직 인민군의 대응은 없었다. 지대함 미사일의 공격도 없었다. 함대를 호위하며 상공을 선회중인 전투기나 조기경보기에서는 아직 어떤 공격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해왔다.

  린 중장이 점점 불안해졌다.준비성이 대단한 박 정석 상장이 있는 통일한국군이 이렇게 무력하게 중국의 상륙을 방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알고 있는 박 상장은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전투 전에 결판난다는 전쟁관을 갖고 있는 전략우위의 전략가였다. 린 중장이 함대의 해상 초계를 강화시켰다. 마지막까지 항모 갑판에 남아있던  초계기 두 대도 긴급 전투발진 시켰다.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웨이하이 웨이, 랴오둥반도의 다이렌에서 출격한 초계기들이 함대 상공에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해안상공에서는 중국 공격기들과 인민군 전투기들간의 격렬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지대공 미사일의 도움을 받은 인민군이 약간 우세한 전과를 나타냈지만 상륙목표 해안에 대한 폭격은 성공리에 수행했다는 보고가 왔다.드디어 LCAC(공기부양식의 고속상륙주정)와 LCU(다용도 상륙 주정)들이 함대를 떠나 해안으로 향했다.  상공에는 미국식 강습양륙함인 해신 6호에서 이륙한 헤리어-2와 공격헬기들이 이들을 엄호했다.

  잠시 후 해안을 공습한 편대가 함대 상공을 지나 서쪽으로 날아갔다. 공격 전보다 눈에 띄게 숫자가 많이 줄어있었다.  린 중장은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출격한 통일한국 전투기들의 숫자를 컴퓨터로 조회해 보았다. 전투기들은 하루에 최소한 7회의 출격을 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격추된 전투기들을 감안하면  통일한국군의 조종사들이 거의 살인적인 중노동을 한 결과였다. 이륙 전에 전투기의 정비도 완벽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 짓이다. 조선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린 중장은 역시 전쟁의 대원칙이  이번 전쟁에도 들어맞고 있다고 생각했다.이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전쟁에서는 결국 병력이 적은 쪽이 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무기나 절세의 전략가가 나오더라도 병력의 압도적인 열세는 극복하지 못하는 법이다.

  목표해안에는 아직 인민군들의 항공기들이 떠있었다.  그러나 공중전에 대비한 요격기들이기 때문에 함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않는다고 린 중장은 생각했다.  작전참모가 적기 편대에 대한 함대공미사일 공격을 건의했으나 린 중장은 공대함미사일을 갖춘 공격기들의 위협에 대처하거나, LCAC들이 상공으로부터 위협받을 때에 대비해 대공미사일을 아끼자며 그 건의를 묵살했다.  상륙부대는 해안까지 10km가 남았다. 드디어 해안 방어부대의 미사일공격과 포격이 시작되었다. 중국 함대도 지원포격을 시작했다.

  "수중에 어뢰 다수! 접근중입니다, 1-8-5, 거리 1200…1000! 초고속입니다! 어뢰의 수는 35기로 증가!"

  소나담당 전업군사(專業軍士)가 외치자 대잠지휘관이 깜짝 놀랐다.함장이 즉시 항해군관에게 회피운동을 지시하고 전업군사에게 물었다.

  "적 잠수함은 없었잖아. 어떻게 된거야?  발사점은?"

  "어뢰 3기 300미터까지 접근중, 탐신음파 발신 중! 본함을 향합니다! 발사점은 암초쪽입니다만 잠수함은 없었습니다.수중항주중인 어뢰의 총 수 42기로 증가! 선두 어뢰, 본함에서 100미터! 충돌합니다!"

  함대사령관 린 중장도 깜짝 놀랐다. 어뢰의 속도가 너무 빨라 대응시간이 절대부족했다.

  "막아라! 허수아비 발사! "

  함장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나병이 끝까지 헤드폰을 끼고 어뢰와의 거리를 불렀다.

  "쿠앙!! 쾅! 쾅!"

  어뢰 세 발이 연이어 폭발하자 충격이 항공모함을 뒤흔들었다.물기둥이 200미터나 솟구치고 항모는 금방 화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함내의 방화시스팀이 자동적으로 작동해서 격납고와 원자로실에 있는 수병들은 불벼락 다음에 물벼락을 맞아야했다. 아슬아슬하게 갑판 끝에 걸려있던 탑재기인 수호이-27K 한 대가 결국 바다로 떨어졌다. 린 중장이 쓰러졌다가 통신담당 군사장(軍士長)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났다.

  "적 어뢰의 최종속도는 300노트로 추산됩니다. 스퀄입니다!"

  폭발의 와중에 고막이 터진 소나담당 전업군사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이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려했으나  함내상황을 보여주는 시스팀은 다운되었다. 린 중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각 부서는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남아있는 프리깃함을 발사지점으로 보내! 헬기와 초계기도…"

  함대사령관이 함교의 깨어진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보니 이미 함대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있었다. 보이는 군함마다 모두 화염에 휩싸여있었다.  숫자가 많이 모자랐다. 남아있는 함정이 별로 없었다. 대잠헬기들이 항공등을 깜빡이며 급하게 남쪽을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잠전지휘관이 침통하게 보고했다.

  "스퀄은 러시아가 1995년에 개발한 로켓추진식 어뢰입니다.너무 빨라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게다가 일반적인 533밀리가 아니라 650밀리나 되는 대형어뢰입니다. 함대는 거의…"

  스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세르고 오르조니키제 항공연구소에서 1995년에 개발한 초고속 어뢰이다.개발 당시에는 속도가 약 200노트(시속 360 km)에 유도장치가 없었으나, 나중에 유도장치를 부착하고 속력도 300노트(시속 540 km)까지 올렸다. 서방세계의 어뢰가 보통 35~60노트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속도의 어뢰이다.  300노트라면 초속 150미터로서, 음속의 반이 약간 안되는 정도의 빠르기이다.

  제인연감의 군사정보 관계자는 이 미사일이  물과의 접촉을 제거함으로써 속력향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개발자인 러시아의 항공 연구소에서는 물속에 진공의 관을 형성해 그 안을 이 미사일 어뢰가 날게된다고 밝혀 제인측의 추정을 확인했다. 이 어뢰는 러시아의 신형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빅터-3형 공격잠수함의 탑재용으로 개발되어 구경이 650밀리나 되는 대형어뢰이다.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타이픈급, 델타-IV형, 빅터-3형 및 오스카-2형 잠수함들은 530밀리 외에도 650밀리 발사관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웨이크(wake:항적) 추적방식의 80형 어뢰를 장착한다. 이것도 탄두가 450kg이나 되며 속도는 50노트인 막강한 어뢰인데, 스퀄은 아예 어뢰의 상식을 뒤집은 어마어마한 어뢰이다. 이 스퀄이 남포 앞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수송함 및 보급함 12척 침몰, 3척이 화재, 구축함 6척 침몰에 4척이 대파되고 프리깃함 9척 침몰에 2척이 대파입니다. 예비항모 해신 6호도 어뢰 3발을 맞고 침몰했습니다.  피해를 입지 않은 함은 마오밍과 후앙시 등 프리깃함 두 척과 구축함 한 척 뿐입니다. 잠수함들은 아직 공격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본함은 5곳이 침수되어 운항불능입니다."

  대잠지휘관이 보고하자 린 중장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북해함대뿐만 아니라  한중전쟁에서 크게 피해를 입은 동해함대와 남해함대의 잔여 함정까지 총동원했는데 통일한국군의 단 한번의 공격에 함대가 거의 전멸한 것이다.미국에서 수입하려던 초대형 항모와 이지스함들이 피스의 함대에 나포된 지금 인민해방군의 해상전력은 이제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방금 침몰한 해신 6호는 미국에서 비싸게 구입한 3만 9천톤급 강습상륙함 벨로우드(Belleau Wood)였으며,약 1,900명의 해병이 타고 있었다. 다른 침몰한 수송함에 승선한 해병대원들과 함께 이들을 잃은 중국함대는  추가 상륙병력이 단숨에 바닥이 나버린 상태가 되었다.

  아직도 함내에서는 진화작업이 한참이었다.  원자력 항공모함이 아닌 재래형 항모였다면 벌써 연료에 인화되어 폭발했을 것이다.  함장이 해군사령관인 창 리엔츙 상장(上長)에게 급보를 전하고 있는 중에 함대에 대공경보가 울렸다. 함대 상공에 있던 조기경보기가 대공경보를 함대에 전했는데, 적은 요격기들 뿐이니 헬기와 상륙주정들을 공격할 것같다는 보고였다. 그래도 전투기들이 20 km까지 접근하여 함대사령관은 신경이 쓰였다.  즉시 대공미사일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상륙부대는 계속 전진시켰다.  자체 무장이 약한 상륙부대는 바다를 통해 후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륙하는 쪽이 안전해보였다. 항모와 남아있는 프리깃함에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이었다.

  "함재기를 발진 시킬 수 없나?"

  연료가 떨어져가는 함재기들을 회수하고 교대할 항공기들을 출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린 중장은 답답한 대답을 들어야했다.

  "동력실 외벽을 관통당해서 원자로를 정지시켰습니다.  증기사출기를 쓸 수도 없고 본함이 운행불능이기 때문에 이륙하는 전투기에 추진력을 줄 수도 없습니다. 함재기의 이륙은 불가합니다."

  함대사령관의 질문에 함장이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곧이어 통신담당 군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고했다.

  "어뢰발사 해역에 적 잠수함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 뭔가? 혹시…"

  린 중장은 갑자기 수중에 장치된 어뢰 플랫폼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북한의 무기체계는 없으니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러시아제인 아쿨라급이나 시에라급 공격잠수함의 가능성도 생각했으나 북한의 재정상태로 봐서 이런 신형함의 구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미사일 다수! 적기들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현재 45기, 숫자 증가 중! 52, 55… 목표는 본 함대입니다!"

  레이더병의 보고에 함대사령관 리 중장이 경악했다. 중국군 항공대와 공중전을 벌인 인민군 전투기들이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했단 말인가?

  "요격하라. 근데 어떻게 된거야? 적은 요격기들이었잖아?"

  함대사령관의 호통에 통신담당 군사장이 조기경보기를 불렀다.  조기경보기의 책임자가 당황한듯 더듬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공에서는 수호이-27K 전투기들이 대함미사일을 향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게… 몇 대씩 구월산 뒤로 들어갔다 나오길래 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마 산 뒤에서 요격기를 공격기로 교체한 모양입니다. 같은 미그-21과 23이고 숫자도 같아서 바뀐줄 몰랐습니다.]

  해안에 있던 통일한국군 전투기들은 조기경보기의 지시에 따라 1개중대씩 차례로 남쪽으로 선회하며, 해주에서 출격하여 저공으로 비행해온 공격기들과 구월산 뒤에서 바꿔치기 한 것이다.  공중전을 벌였던 전투기들은 이미 해주비행장에 착륙하여 2차 출격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사일 발사!"

  린 중장의 명령에 따라 함미의 수직발사기에서 대공 미사일들이 공대함 미사일을 노리고 연속 발사되었다. 약 30여기를 발사한 순간 또다시 어뢰 경보가 울렸다.

  "어뢰! 아까와 같은 형입니다. 2기 접근 중! 거리 900, 700, 400…"

  고막이 터진 소나 담당 하사관 대신 그 자리에 앉은 군관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을 포함한 함교요원 모두가 얼굴이 파랗게 질린채 벽에 붙어있는 물체를 잡았다. 이미 어뢰의 회피는 포기하고 폭발 충격에 대비한 것이다.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고 함내에 정전이 되어 캄캄해졌다.  컴퓨터와 레이더가 모두 작동이 중지되자 항공모함의 전파 유도를 받아 날아가던 미사일들의 레이더 시커가 자동으로 켜지고, 미사일은 진행방향 상공에 있던 상륙주정 위의 중국군 헬기들을 향했다.  반능동 유도방식인 미국의 SM-2대공미사일을 중국군이 유사시에 대비해 능동-반능동 방식의 혼합방식으로 개조한 것이 잘못이었다.  20여기의 헬기와 헤리어, 나중에 출발한 상륙거점 확보용 수직이착륙 항공기 MV-22A Osprey 10여기가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자기편 미사일에 당했다.

  인민군의 전투기들은 미사일발사를 마치자 상륙주정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모두 돌아가버렸다. 항모가 오른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졌다. 항모는 점점 침몰하고 있었다.린 중장이 기울어진 함교 유리창을 통해 동쪽 하늘을 보니 그곳에선 수 십 개의 불빛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함재기들이 발사한 미사일에 요격되었는지  섬광이 일어났다.

  "전원 퇴함하라! 본국에 구원을 요청하라. 연락이 되는 함을 찾아 상륙주정들도 후퇴하라고 일러. 철저한 함정이다!"

  린 중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몇 명의 군관이 함대사령관의 명령을 전하러 아래쪽으로 뛰어갔다.비상전원이 있는 캣워크(cat walk:비행갑판 바로 옆의 작은 공간)의 점멸등이 급하게 깜빡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까지 침몰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있는 항공모함과 몇 척의 프리깃함에 미사일이 쇄도했다.  이 모습을 본 린 중장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 이렇게 침략자는 응징을 당해야지.  하지만 만약 조선이 중국을 역으로 침략한다면 마찬가지로 응징을 받을 것이다. 박 상장도 알고 있겠지만…’

  거대한 항모에 섬광이 번쩍였다.

  1999. 11. 22  19:5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의 북해함대는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수중의 어뢰플랫폼과 공군의 2차에 걸친 공습으로 함대와 상륙부대,그리고 전투기들을 모조리 수장시켰습니다. 이제 해군력에서는 우리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적은 항모가 하나도 없으며,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수에서는 차이가 역전되었습니다."

  양 석민 중장이 화면의 내용을 바꿔가며 자신있게 보고하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든 참모들이 평양 근해의 상륙전에 대비하여 무인 어뢰 시스템을 장비한 인민군해군의 박 정석 상장의 주도면밀함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피스에서 파견된 짜르도 박 상장의 기가 막힌 무기운용과 공격 타이밍 선정에 혀를 내둘렀다.그러나 북해함대의 사령인 린 제독과 개인적으로 친했던 박 상장은  오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를 이긴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박 상장은 자신이 서해함대 사령관일 때 상부에 건의하여,  비싸지만 확실한 무기인 스퀄어뢰를 러시아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다. 서해 각지의 수중에 이들을 배치하고, 남포 북쪽인 용강군에 있는 산의 동굴에서 이들을 무인조종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7년의 통일원년에 남북은 통일이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서 협상과 동시에 군비증강에 열을 올려 각자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종 무기를 수입했었다. 이 시스템도 97년에 개발된 것이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중국의 해안을 완전히 봉쇄해야 합니다."

  피스의 짜르가 강력히 주장하며  중앙화면을 자신의 모니터와 연계시킨 후 보고를 했다. 반전전사 집단인 피스의 연락관으로 파견된 짜르는 통일한국군 해군 중장의 계급과 동시에 통일참모본부 국제연락 담당 참모의 직함을 받았다. 평양 방어선에 투입된 피스의 지상군은 대장인 싱이 통일한국군 육군 중장의 계급을 수여받았고 남지나해에 파견된 피스의 의용군과 용병들도 계급과 군번을 받았다.  이들이 교전당사국의 군인이 되어야 국제관계에서 하자가 없고, 포로가 되었을 경우 정당한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젊은 인 한수 예비역 중위가 짜르의 통역을 하고 있었다. 인 대위는 대학생 때부터 그린 피스와 국제사면위원회의 회원이었는데, 전쟁이 나자 피스의 요청으로 통일참모본부에 배속이 되었다.  젊은 사람 치고는 뚱뚱하고 배가 많이 나와 풍채가 있어보였으나, 군복이 너무 꽉끼어 허릿살이 삐져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웃기부터 했다.

  "현재 남지나해의 상황입니다.  우리 함대는 중국의 2개 분함대와 전투를 수행중입니다.  화력은 우리가 앞서지만 하이난섬(해남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 때문에 완전한 해상봉쇄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스함대의 놀라운 화력과 기동력에 한편으로 놀라며  참모들이 아쉬워하자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나섰다.

  "중국은 800대의 해군항공대 소속 항공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항속 거리가 짧고 구형이지만 해상봉쇄 함대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가  직접 중국 산둥반도나 북경의 입구인 천진을 공격하고 싶어도 이들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대공미사일을 갖춘 몇 척의 구축함을 피스 함대에 배속시켜서 남지나해의 해상 봉쇄를 강화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참모들이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국해군의 심 현식 중장을 보았다. 심 중장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일본 때문에…  함경도쪽 인민군, 아니, 병력은 철수가 취소되어서 이제 그쪽으로 함대를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만,  러시아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항로를 지켜야 하고, 더 큰 문제는…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아니, 일본 아새끼들이 또 어드레케 하디요?"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흥분해서 평안도 사투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독도는 일단 한일간의 정치문제화하고 있습니다만, 독도를 점령하고 나서도 일본함대에 의한 영공과 영해침범의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오늘만 해도 동해함대와 일본 자위대함대가 조우전을 벌일 뻔 했습니다. 걱정하실까봐 말씀은 안드렸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동해함대의 구축함을 뺄 수도 없기에 말씀드립니다."

  참모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쟁 전 정보사단의 보고에서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할 경우,  일본도 같이 한반도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했었다. 그리고 일본에 관한 각종 정보보고에 따르면 일본의 자위대가 한중전쟁 발발 이후, 일부의 호전적 여론을 입고 정치권의 명령을 공공연히 무시한다고 했다.일본 정가에서는 쿠데타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만약 일본이 우리를 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겠소?"

  이 차수가 참모들을 진정시키고 간단한 질문을 했다. 양 중장이 즉답을 했다. 너무나 많이 토의한 문제였다.

  "중국의 한반도 침략 초기나, 한중 양국의 전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된 때 입니다."

  "그렇소. 지금은 아직 아니오. 독도는 일단 내버려 두시오.하지만 독도를 잊지는 맙시다."

  이 차수가 분노하는 참모들을 진정시켰다.

  1999. 11. 22  19:40  평안북도 영변

  영변은 인민군 2군단이 공격을 맡고 있었다. 평안남도 개천에서 청천강을 건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들은 하루 밤낮을 싸워 겨우 도강에 성공하고 영변을 향해 신속 전진중이었다. 인민군 7사단은 영변과 희천 사이의 방어선을 뚫어  영변을 고립시키기 위해 영변 동쪽에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영변 남쪽을 방어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제 231사단의 연락군관인 쿠젠모우 중위가 사륜구동차를 타고 급히  전선의 연대로 가는 도중에 길 뒤쪽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놀라 차를 세우게 했다. 여자의 비명은 계속 들려왔다. 쿠 중위는 차에서 내려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쿠 중위와 동년배인 운전병이  뛰어가는 쿠 중위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차안에서 담배를 피워물며 쿠 중위의 결벽성을 걱정했다.

  길 뒤의 작은 계곡에서는  5명의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젊은 여인 한 명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 하나씩을 잡고,  그 중 한명이 막 못된 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쿠 중위가 권총을 빼들고 서서히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옆에 누가 오는지 신경도 안쓰고 킬킬대며 하던 일에 몰두했다.

  "너희들 뭐하는거야?"

  병사들이 깜짝 놀라 돌아봤으나 아군인 것을 확인하자 킬킬대며 웃었다. 허리 운동을 하던 상사는 젊은 중위를 힐끗 보고 그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고는 하던 짓을 계속했다.  여인은 이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는지 얼굴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수치와 고통으로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히히~ 군관동지, 잠깐만 기다리십시요. 두번째 순서를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잡고 있던 중사가 말하자 병사들이 쿠 중위를 보고 킬킬댔다. 분노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쿠 중위가 허리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이를 본 병사들의 얼굴이 갑자기 노래졌다.  그가 여인의 몸위에 있던 상사를 쏘았다.계곡에 총성이 울리고 상사의 머리에서 피와 뇌수가 튀었다. 상사는 여인의 몸위에 힘없이 쓰러지고 병사들이 놀라 튀듯이 일어났다. 열병이 중위에게 총을 쏠까 말까 망설였으나 그는 지금 어깨에 총을 메고 있는 상태여서 망설였다. 고참인 상등병이 그 열병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중위가 다시 총을 쏜다면 이들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기색이었다. 쿠 중위가 이들에게 권총을 들이댔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인민해방군 전사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한 명의 군관과 네 명의 병(兵)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하지만 총을 겨누고 있는 쪽은 군관이었다.

  "모두들 구덩이를 파서 상사를 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