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세대 – 일본 유학생의 관점에서.

Source : http://criticalmass.tistory.com/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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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하지 말고 너나 잘해!!!!!!

     ‘네가 이렇게 된거 다 너 때문이다. 핑계대지 마라. 너만 잘하면 된다.’

황신혜 밴드 멤버 김형태의 카운셀링에서 20대 백수에 관한 내용이 굉장히 유명해진 적이 있었다.  핑계대지말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열심히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그 내용이 상당히 감동적이었고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절대진리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에게 그런 논리는 완전히 틀린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고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친 책이 나왔다.

     ’88만원 세대’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긴 글을 써본다.

서론

사실 이 책이 나에게 엄청난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30세 -1개월 이라는 연령대

그러면서도 아직 학생이라는 미천한 신분

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한국에서 2년동안 직장생활을 한 경험 (그것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IT계열에서)

일본 유학 초기에 경험한 6개월간의 아르바이트

현재 취업활동중에 얻은 일본 기업들의 정보

그리고 일본 초등학교를 몇차례나 방문하고 나서야 느낀, 일본 교육계와 사회의 뚜렷한 연대의식의 발견

이라는.. 나름대로의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막연하고 뭐라 말할수 없는 일본과 한국의 괴리감을, 이 책에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 지옥이라는 곳에서 살았었구나.’ 라는 느낌? (죄송합니다.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을 ‘일본’이라고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  여기는 일본에서 상당히 시골에 속하는 곳이고, 같은 금액이라면 도쿄보다는 훨씬 풍요롭게 살수 있다.

달콤한 사장님 말에 속아서 나름대로 희망도 갖고 포부도 가지면서 열심히 일하고, 밥먹듯 야근하면서 기술개발에도 매진했건만, (물론 일년 후에는 바로 칼퇴근 해버렸다.) 돌아오는 것은 사장말이 구라였다는 사실의 확인, 밀린 월급, 그리고 회사 기술을 밖에서 이용하지 말고 2년동안 동종업계에 취업하지 말라는 서약서였으니… (그것때문에 머리 많이 빠졌다.)

그러면서 날 더 슬프게 한 건, 그걸 믿고 하나도 대비하지 못한 니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선 경험자들의 리플들 (XX인사이드의)… ‘제길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하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니 정말 이거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했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일본으로 와서 밑바닥부터 다시한다는 느낌으로 알바를 시작했는데….  나는 홍세화가 나 택시운전수요라는 안팔리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실감이 났던 것이다.

여기 와서 나는 절대 신봉하는 물가지수가 생겼는데 이 계산법을 보고 예전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절대 개념이 되어 버렸다.

계산법은 간단

맥도날드 알바 시급 / 빅맥 가격

의미는 간단하다. 내가 한시간 일해서 빅맥 몇개 사먹을까라는 개념이다.

한국은 한 시간동안 일하고도 빅맥 하나도 못사먹는다. 일본은 딱 한국의 두배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단순 수치비교에 조금 무리가 있기는 하다. 한국은 관행적으로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4,5시간 일하면 5000원 상당의 메뉴를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수치의 심각성을 만회하지는 못한다)

또하나 더

일년치 등록금 /  알바 시급

즉 일년치 등록금을 벌기위해서는 몇시간을 일해야 하는가 라는 계산법인데…

울 학교는 555시간이 나왔다.  일년이 52주이므로 555 / 52 = 10.7

즉 일주일에 11시간을 일하면 등록금은 해결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내 학부시절 등록금 1년치/ 한국 알바 시급 3500으로 나누면

     1600시간이 나오네…  일주일에 30시간을 일해야된다.

혼자살기는 엄두도 못내고 생활비와 등록금 둘 중 하나라도 버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다.

우울한 통계다.

일본에서 알바를 하면 적어도 혼자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월세가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알바만으로 월세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일본은 그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알바를 하면 어떨까?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내 친구는 알바를 해서 닛산 티아나 중고를 현찰로 샀다.  아 부러워….

     To be continued…

넋두리)
만약 내가 IT 직종이 아니었다면 무한경쟁이야 말로 최고의 선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직종과는 달리 IT는 20대 인력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윗세대보다 크게 차이나지 않고, 또한 그나마…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제대로 된 실적을 평가받을 수 있는 몇안되는 직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의 독특한 하청구조를 알기 전까지는….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한국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저자는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들을 비교함으로써 한국이 진정한 ‘지옥’이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고생하는 것이 어디 청년층 뿐이랴.  성별, 학력, 지역, 비정규직 기타 등등 여러가지 갈래에서 피해자들 그룹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청년층을 콕 찝어서 세대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청년층 =  사회진출 초보자 or 사회진출 유예자 ?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청년층 = 대학생이라는 공식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인양 쓰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청년층 = 대학생 = 사회생활 유예자 라는 느낌이랄까, 하물며 청년실업이라는 말 자체도 대졸출신의 실업률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니, 말그대로 고졸출신은 아웃오브 안중인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사회 모든 부분, 정치가, 공무원, 교수, 언론, 기업 모두 고졸들은 어떻게든 다 대학생이 되는 줄 알고 (그것도 전문대가 아닌 4년제) 이것에 맞춰서 모든 정책과 논의가 이루어지니, 고등학생들은 지잡대라는 악플이라도 받을지언정 전문대에 들어가거나 고졸로 지내 완전히 관심밖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4년제는 상위 도약(대기업 취직, 혹은 그에 준하는 좋은 직장 취직)을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자격요건이 4년제와 전문대는 천지차이)이라도 남겨져 있기에 언론에서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대우라도 해주지만, 전문대는 가끔가다 조금씩 나타나고, 고졸은 정말로 최악이다.  제일 문제가 심각한 계층이 오히려 논의거리조차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대학생 = 사회생활 유예자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도 부모님 잘만나서 편하게 생활하는 대학생들도 있고, 부모의 지원을 완전히 안받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등록금, 집세, 생활비를 모두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설사 부모님이 전부 부담하려 할 지라도, 적어도 본인이 생활비만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어야 하기 때문에, 서류상 고졸 출신인 대학생들은 고졸 학력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가진다.

이 경우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일단 많은 일본 젊은이가 고졸학력 비정규직이라는 통계에 잡히게 되고 그만큼 학력, 비정규직에 대해서 일본 정부, 언론, 지자체, 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전문학교(전문대), 4년제 대학생이기 때문에, 이들의 처우는 언제나 ‘학업을 병행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 상황으로는 몰고가면 안된다’라는 묵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대학생(전문학교, 4년제 포함)이 고졸출신, 비정규직에 발을 담근다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까.

첫째, 순수 고졸학력, 비정규직도 충분히 독립하면서 살 정도의 급료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같은 시간을 일할 경우 전문학교 출신 정사원과 거의 같은 급료를 받는다. (물론 복지 후생에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의 대우가 만족스러워서 정규직이 되고싶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부럽지 않은가?  우리도 이런 고민을 할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둘째, 사회 전체적으로 재분배 기능이 작용한다.  자식을 대학교에 보내는 자영업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자영업자가 한 명 이상의 알바생을 고용할 경우,  한국은 구조적으로 알바생을 착취하여 자기 자식한테 용돈으로 주게 되는 형태가 된다.  자영업자의 자식은 부모로부터 돈을 받기 때문에 알바를 안하고 공부에 더 매진하여 좋은 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간다(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확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영업자와 그 자식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되면 사업도 어려워지고, 자식 대학보내기도 힘든 상황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은 그 반대이다.  자식한테 용돈을 안주는 대신 아무 인연도 없는 알바생에게 그 돈이 돌아가게 되고,  또한 그 자식은 다른 곳에서 알바를 해서 사장한테 돈을 받는다.  이 경우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될 수록 영세한 자영업자 부모가 훨씬 유리하게 된다.  영세업자는 부담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자식의 알바비도 오르게 된다. 물론 금전적으로 생각하면 알바생 수 > 자식수 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자의 부담은 늘어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식이 금전적인 부담에서 조금 편해진 만큼 다른 돈많은 집 자식과 경쟁하는 데에 있어 핸디캡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최저임금은 조금씩 단계별로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확올려야 하며 또한, 학교등록금은 최저임금과 반드시 연동되어야 한다.  이것은 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당위의 문제이다.  현재의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자신이 알바를 하는 것보다는, 부모님한테 미안해도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더 효도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계산상 맞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도 88만원 세대라는 구조의 수혜자이다.  물론 문제는 나중에 발생한다.  대학교를 다닌 4년간 수혜자였던 그들은 그 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95%이다.  좋은 직장은 이제 얼마 없다.

셋째, 20대들이 사회경험을 일찍 시작함으로써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을 기를 수 있고 또한 이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동료간 연대의식이나 사회 의식을 기를 수 있다.  쉽게 생각해보자.  일단 대학생이되면 학업과 학비라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부담이 될 뿐만아니라 심지어 상당수는 부모와 떨어져 독립하여 살기 때문에 생활비마저 급격히 상승한다.  이들의 삶의 질은 안좋은 쪽으로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때에 자신을 상당부분 지탱해주는 것이 아르바이트라는 비정규직 생활과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얻는 몇가지 작은 혜택들 뿐이다.   이들은 현재 학생이라는 신분자체가 빈민층 근처에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서민 정책, 빈민층 대책, 비정규직 차별, 최저 임금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실제 일본사람이 직접적으로 연대하여 행동으로 옮길 정도로 다이나믹한 나라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고 정책을 집행한다고 생각하면 결과가 어느쪽으로 진행될 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대학생이라 할 지라도 청년때에는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민 관련된 정책은 나쁜 여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적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생은?  도서관에서 책파고, 토익 공부해서, 고시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직장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된다.  또한 직장 역시 대졸 이후 첫 월급이 생애 첫 월급이 될 경우가 많으며 이때의 월급은 사람마다 천차 만별이다.  공무원들은 서민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책은 겉으로만 맴돌 가능성이 크며,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들어간 사람들은 밑바닥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난놈 잘나게 만드는 정책이 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대졸후 뒤늦게 밑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세상의 지옥을 경험한다. 이미 세상은 무능한 공무원들때문에 바뀌기 힘들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는 신분상승을 위한 밑바닥 인생들끼리의 개미지옥 레이스를 벌인다.

어차피 세상에 진입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야하는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밑바닥 인생이라는 경험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일본은 대학생부터 사회인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함부로 무시하는 정책을 펼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밑바닥 사회인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몰상식한 정책을 펼칠 가능성도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대학생 and 비정규직 이 아닌 고졸자 or 비정규직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생각해보자, 사회 밑바닥을 모두가 다 겪는다면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무시하는 짓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잘난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사람 못난대로 산다는, 무식한 무한경쟁의 논리를 그 누가 함부로 주장 할 수 있을까.

네가 정말로 꿈을 이루기 원한다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꿈을 이룰 수 있다.

당신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원한다면….

도대체 한국의 88만원 세대들은 꿈을 이룰려면 정말로라는 단어를 몇개를 붙여야 될까?

또 정말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해야 될까….

누구처럼 지금 잠을자면 꿈을 꾸고 깨어 있으면 꿈을 이룬다고 말해야 될까?

이 번에는 특별히 문화계 이야기를 하고싶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술, 체육계는 특히 꿈을 먹고사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황신혜 밴드 멤버 김형태의 유명한 카운셀링 글도 예술쪽과 관련된 글이고, 또한 본인도 예술계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라고 생각할만 하다.  특히 대중예술(뭐 연예계를 포함하기는 하지만)쪽은 정말 눈물없이 볼 수 없다.  ‘비’같은 애들이 각고의 노력끝에 성공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성공하면 그들의 스토리는 언제나 인간극장이 된다.

일단 음악계로 한정시켜 보자.

한국은 어렸을 때의 순수한 흥미와 약간의 재능으로 음악을 할 수는 없을까?  고등학교 있을 때도 밴드한다고 기타들고 설치던 놈 몇명 봤고, 대학교에서는 음악동아리도 있고, 군대 있을때도 음악에 미친 고참들 많이 봤지만, 결국 군대 고참 한명이 기타세션으로 활동한다라는 소리를 얼핏 듣는게 고작이다.  (혹시 모르겠다.  아는 넘이 어디 언더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을지도.)

왜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절함과 치열함이 느껴질까?

내 가 노래방에서 잘부르는, 그냥 활달하게만 보이는 크라잉넛이라는 그룹도, 가사를 보면 언제나 처절함이 느껴진다.  물론 원래 락그룹이(락그룹 맞나? 나 장르 구분 잘 못하는데) 원래 사회비판적 가사 쓰고 가끔 정치적 성격도 내보이고 그러는게 정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가사는 세상이 빡세고, 처절하다라는 것을 몇번이나 강조하려 한다는 느낌이랄까,(우리는 달려야 해/바보놈이 될 순 없어/말 달리자, 뛰어라 내 다리야/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런 사람들의 생활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고생 무진장 한 사람들이고,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그들이 음악에 미쳤다는 것을 증명한다.

좋은 작품에는 작가의 치열한 경험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데, 사실 나도 그쪽을 더 좋아한다.  김광석도 서태지도 그랬다. 양희은의 노래는 그 잔잔한 멜로디 속에 폭풍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패닉은 2집이 최고의 명반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본 그룹이 하나 있다.  이들의 간단 소개를 하자면 (출처는 이들의 공식 사이트)

いきものがかり

이키모노가카리

  • 吉岡聖(YOSHIOKA KIYOE)
    パート:Vocal 生年月日:1984.2.29/血液型:A型
  • 水野良樹(MIZUNO YOSHIKI)
    パート:Guitar&Vocal 生年月日:1982.12.17/血液型:A型
  • 山下尊(YAMASHITA HOTAKA)
    パート:Guitar&Harmonica 生年月日:1982.8.27/血液型:O型

1999년 2월, 고등학교 친구인 미즈노와 야마시다가 그룹을 결성

그룹 이름은 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이 이키모노가카리(동물 관리 담당)를 했던 것에서 유래

같은해 12월에는 소개를 받아 아는 친구의 여동생 키요에가 들어옴.  동네 지역을 중심으로 노상 공연과 라이브 하우스에서 활발히 활동.

2006년3월15일 에픽레코드 재팬을 통해 메이저 데뷔.

데뷔 싱글 ‘사쿠라’가 티비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 문의가 쇄도.

그 결과 오리콘 차트 17위까지 오름.

세 상 참 편하게 살면서 음악하는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냥 친구들과 밴드 결성해서 동네에서 즐겁게 활동하다가 클럽하우스에서도 활동하다가, 결국에는 메이저 데뷔.  잘풀려서 여기까지 왔겠고 안됐으면 ‘이때까지 즐거웠다. 안녕’ 하고 기분좋게 해체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활동하다가 돈이 안모이면 가끔 알바도 뛰었을 것이다.

이들 그룹 역시 대개의 일본 문화가 그렇듯 정치성은 눈꼽만큼도 없고, 감정은 언제나 잔잔하게 흘러간다.

내가 좋아하는 데뷔곡 사쿠라 라는 노래도 미즈노가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고등학교 졸업식과 헤어진 친구들이 생각나서 그것을 가사로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리뷰를 읽어보길 권하고싶다.

http://blog.naver.com/jediyoda/100035552710

설명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좋아서, 피나게 노력해야 ‘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면, 일본 애들은 그냥 좋아서, 즐겁게 활동하면서도 ‘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너무 일본을 띄워줬나?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형 기획사에 의해 뼈빠지게 고생해서 생산되는 아이돌 그룹이 존재하며 언더그라운드도 라이브하우스쪽 기획사들과의 마찰이 꽤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물며 아무리 음악이 돈이 안된다 하더라도, 학업을 병행하면서 알바하는 대학생도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알바를 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악기값이 좀 많이 들겠다는 생각은 한다.)

단순히 음악 뿐만이 아니라 문화 예술 체육 등등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금 잘나가는 천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물론 전달될리야 만무하지만)

김윤아, 박태환, 박지성, 박세리, 비같이 정상에 오른 사람들..

당신들 이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인내와 노력 (물론 재능도)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알지만

‘정말로 좋아하면, 열심히 노력하면, 당신들도 나처럼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메이저에 데뷔하여 성공하지 않더라도, 마이너에서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하 지만, 이상하게도 이땅에는 선천적 천재가 너무 많이 나와서 (하물며 인구가 1.2배다 더 많은 일본보다도 더) 후천적 천재는 물론, 준수한 인재를 양성하기도 힘든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이 된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러니 제발 이땅의 천재들이여 부탁드립니다 제발….

황신혜 밴드 멤버 김형태님의 말을 절대진리로 알고 살다가 허망하게 무너진 지금,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꿈이라는 것은 그정도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실현하기가 어려운 것인지요.

또한, 이렇다할 비전도 없이 그냥 저냥 사는 것이 청년 백수라는 끔찍한 실패를 맛보아야 할 정도로 죄악인 것인지요.  별 고민없이 일하다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서 애 낳으면서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도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것인지요.

 

용팔이 연봉협상에서 승리하는 방법.  자기 연봉을 공개하라!!!!!!!!!!!!!!!!

현재 나는 취업활동중이다.  일본에서.

일단 일본은 졸업 일년전부터 이력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은 신규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다.  또한 지금은 도쿄돔이나 빅사이트같은 대형 전시장에서 합동 기업 설명회가 막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책자를 나눠주며 거기에는 오늘 나온 기업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오늘은 거의 대기업 중심이다.  민영화된 전력회사, 철도회사, 우체국 부터 메이커, IT기업까지 모집 직종, 급료, 복리후생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어서 자신한테 맞는 기업이 어디인지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한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니.. 두둥..

학부 졸업 초임이 한달 20만엔,  대학원 졸업 초임이 한달 22만엔….  그것도 100개가 넘는 기업들이 플러스 마이너스 겨우 2만엔의 편차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20만엔이라면 주당 40시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200,000엔 / (40시간 * 4주) = 시급 1250엔

일본 평균 통근시간이 1시간이므로 하루에 2시간 일주일에 10시간이라고 하면

200,000엔 / (50시간 * 4주) = 시급 1000엔

집에서 가까운, 시급 800엔, 900엔 정도 되는 알바라면, 조금만 빡시게 일하면 대기업 신입에 근접하게 생활할 수 있다.

물 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연 몇회의 보너스 등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업 편차가 있고,  더우기 대기업은 주거비용 지원까지..  사실 그러면 연봉이 한국 돈으로 3000만원 정도는 된다는 소리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명목상 모든 기업들이 신입에게 주는 월급은 거의 비슷하다는 소리다.  저기 밑에 있는 중소기업부터 (사실 중소기업은 복리후생, 주택지원등이 많이 빈약하기 때문에 월급 자체는 대기업보다 높다.) 잘나가는 대기업까지.

사실 당연한 것인데, 기업들은 대졸자들의 능력이 어느정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는다.   백지상태에서 가르쳐야 하며, 그래도 최소한 한달 20만엔 정도는 손에 쥐어줘야 한다는 것이 이쪽의 일반적인 통념같다.  88만원세대의 예처럼 통계에 능하고 정책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대학원생 풀타임은 한국에서 90만원에 모집하지만,  일본은 무조건 22만엔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연봉제는 사실 완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연봉제는 기업들의 노동력 착취를 합리화한다.  ‘너 방금 들어와서 능력 없잖아.  일단 한달 120만원부터 시작하자.’  또한 이것은 신규 노동자들이 회사를 고르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회진출 초보자라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어차피 거의 비슷할텐데,  회사 채용공고에 신규채용을 경력 채용과 분리하지 않고 임금란에는 (협상 가능)이라는 문구만 적어놓는다.  이 경우 회사와 구직자 모두 손해다.  물론 경력 채용 역시 마찬가지다.

면접관 – ‘당신의 이력서 맘에 드는군요.. 월급은 어느정도로 생각하시나요?’

구직자 – ‘… 제가 이쪽을 잘 모르니까…. 내규에 따르겠습니다.’

면접관 – ‘그럼 월급은 150에 하겠습니다.’

구직자 – ‘알겠습니다.’ (모야, 내 친구는 같은 업종인데 180받는데, 제길 괜히 왔네)

그리고 구직자는 영영 연락을 끊는다.

면접관 – ‘월급을 올려볼까?’

개인적으로 나는 용팔이 연봉협상이라 부르고 싶다.

가격이 써 있지 않아서, 가격이 시시때때로 달라져서,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물어봐야 되는 이상한 상황,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말이다.  또한 개개인은 바로 이전에 사간 사람이 얼마에 샀는지도 정보를 알 수 없다. 만약 손님이 반드시 그 가게 안에서 물건을 산다면 이러한 협상은 업자에게 유리하지만, 이것은 손님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종료되어 버린다.  물론 진짜 용팔이 협상같이 ‘옆에 회사는 180하는데 저도 180에 주세요’ 이런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문을 나서서 두번다시 연락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처법이다.  (물론 나는 2년차 연봉협상때 000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대신 나중에 퇴직금으로 뒷통수 맞았다.)

뿐만 아니라 연봉제의 취지도 제대로 못살리는 현재의 제도는 그냥 일방적인 사업주의 강요 그 이상의 것이 될 수가 없다.  혹 일방적인 강요라 하더라도.

‘XX 씨, 올해 우리 회사 매출과 이익은 얼마였고, 당신네 팀에서 기여한 바는 몇%였으며 당신은 팀에서 이만큼의 기여를 한 만큼, 회사 내규에 따라 올해 연봉은 얼마얼마로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자료상 착오가 있거나 자신의 평가에 만족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는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큰 불만도 없고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기업에서 사원에 대한 직무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보통 이경우 자신의 실적은 영업부가 아닌 이상 상사가 가로채는 경우가 많다.

설사 제대로 협상에 임하는 회사 또한 대부분의 기술직은 송강호같이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했거든요’라는 듯이 말하는, 협상력이 극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말로 연봉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말빨’일 뿐이다.  나 역시 윗사람이랑 대화하는 능력은 최악이다.  그렇다고 운동선수처럼 에이전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무에 대한 정확한 평가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연봉제는 언제나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도 일 못하는 내 동기가 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아가는 걸 알게된다면, 상사가 내 업적을 다 가로채 버려서, 내 직무평가를 제대로 어필할 수 없다면, 그것에 작년에도, 올해도 반복된다면, 당신은 그 회사에서 일할 맛이 나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은 자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연봉도 모르고,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은 이 동화속의 이야기와 같다.

세마리의 황소와 배고픈 사자

해설 – 어느 살기 좋은 마을에 세 마리의 황소가 살고 있었단다. 세 마리의 황소는 아주 사이가 좋았지.

황소1 – 우리들은 사이좋은 친구들, 우리는 언제나 함께야!

황소2 – 그럼, 그럼 그렇구말구 이 세상에서 우리 말고 이렇게 사이가 좋은 친구들이 있을것 같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

황소3 –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여기 있는 친구들이 영원히 부러워하게 말이야.

해 설 – 그런데 세 마리의 황소가 사는 곳 근처에는 항상 배가 고파하는 사자가 한 마리 살고 있었어. 그 사자는 배가 너무 너무 커서 먹어도, 먹어도 자꾸 배가 고팠단다. 그러니 세 마리의 황소를 얼마나 먹고 싶었겠니? 그래서 어떻게 하면 황소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기회를 노렸단다.

사자 – 저 녀석들을 빨리 잡아먹어야 할 텐데. 꿀꺽 아이고 배가 너무 고파.

해설 – 사자는 황소들 사이를 자꾸만 돌아다녔어. 안 그래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자가 저러니 뭔가 이상하지 않니?

황소1 – 얘들아 또 저 심술쟁이 사자가 뭔가 꾸밀 거 같지않니?

황소3 – 그래. 하지만 우린 하나가 되면 저 사자 녀석 따윈 문제없이 해치울 수 있어.

황소2 – 맞아 우린 세상에서 제일가는 친구들이잖아.

해설 – 얘들아 사자가 왜 황소들을 못 잡아 먹는 줄 아니? 그래, 황소들은 언제나 붙어 다녀서 사자 혼자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거든. 얼마 전에 배가 고픈 사자는 황소를 사냥하기 위해 나선 적이 있었단다.

사자 – 오늘은 기필코 저 녀석들을 잡아먹어 버리게쓰~

해설 – 하지만 사자가 다가가면 다른 녀석이 달려와 뿔로 받으려 하는거야 그래서 그 황소를 쫓아가면 다시 또 다른 황소가 달려들었어.

황소3 – 이 못된 사자 놈 같으니 으휴~

황소2 – 다시 이런 일 생기면 그 땐 그냥 무조건 뿔로 받는 거야!!

황소1 – 사자 녀석이 또 우릴 해치러 올 줄 모르니 같이 붙어서 자자.

그리고 몇일 뒤 사자는 나무 그늘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어.

사자 – 어떻게 하면 저 녀석들을 잡아먹으려나??

해설 – 그 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사자 – 옳지!! 바로 그거야.

해설 – 그 뒤로 사자가 어떻게 했을 것 같니? 사자는 몇 일간 먹이를 먹지 않았어 그리고 헬쓱한 모습으로 황소들에게 다가갔어.

사자 – 황소들아. 나는 지금까지 못된 짓만 하고 다녀서 그런 지 곧 죽을 것 같아 그래서 힘쎈 너희 황소들 중 한 마리가 나중에 내가 죽으면 묻어 줬으면 좋겠어.

해설 – 그러자 황소들은 제각기 자기들이 힘이 쎄다고 말하는 거야

황소2 – 그야 물론 내가 힘이 가장 세지~

황소3 – 아니야. 너보다는 내가 더 힘이 쎄지 이 탄탄한 근육 좀 봐~

황소1 – 흥! 웃겨? 이 세상에서 나를 당할 자는 없어.

해설 – 이때다 싶어 사자는 슬쩍 자리를 피했어. 황소들은 말 싸움이 곧 몸 싸움으로 퍼져나가 서로 당을 뒹굴었지.

황소3 – 어? 날 쳐? 어디 맛좀 봐라! 에잇

황소1 – 그래 어쩔테냐? 이 바보들아! 뭣 좀 제대로 하는 것이 있어야지?

황소2 – 다들 꺼져 버려! 내가 제일 힘이 세다구!!

해 설 – 황소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큰 싸움을 벌였지. 결국 세 마리의 황소는 사자의 생각 대로 사이가 몹시 나빠지고 지난 날의 싸움으로 거의 죽어 갔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사자는 이제는 마음놓고 황소를 한 마리씩 잡아먹을 수 있게 된 거야.

사자 – 내 머리를 달할 자. 그 누가 있을쏘냐. 하하하하

해설 – 결국 사자만 좋게 된 거지.

출처는 http://cafe.naver.com/dong21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7

만만한 손님한테는 더 받고 싶어하는 이들 용팔이는 다나와로 철퇴를 맞고 쓰러졌다.

만만한 손님한테 게임소프트 비싸게 팔고 싶어도 루리웹에서는 그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만한 직원한테 월급 더 주기 싫어하는 우리 사장님들은 무엇으로 철퇴를 맞을까.

한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지금 당장 연봉정보 사이트에 가입해서 회사, 직종, 연차별 자기 연봉을 공개하라.  그리고 연봉협상때 따져라. ‘우리랑 규모 비슷한 업체는 3년차한테는 000원 주는데요. 저도 그만큼 주세요’ 물론 이런말 하기 쉽지 않은 사람은 당장 경쟁사 경력채용 공고를 뒤져라. 용팔이 협상의 최후의 승자는 결국 당신이 될 것이다. 당장 자기 옆자리의 사람 연봉도 모르는 상황은 당신한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질문 – 그거 사이트에 올리면 사장님이 그게 나라는 걸 알텐데? 그걸 어떻게 하냐?

답 – 직급과 직종 연차는 나중에 그 취업 사이트에서 취업활동을 할 꺼라면 정확히 써야 되지만, 금액은 정확하게 쓰지 말고 얼추 비슷하게 쓸 것.

만약 거림찍하다면 직급 직종 연차 적당히 옛날꺼로 하고, 연봉도 대충 어림짐작으로 때려 맞추서 쓸 것.

이런 정보가 모이는 것 만으로 충분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신규 인력의 노동 유연성을 불허하라!!!!!

잡설

나는 98학번으로, 97년에 수능을 볼 때 쯤 IMF가 터졌다. 경쟁이야 말로 최고의 시스템이며, 능력 위주의 사회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사회라는 소리를 텔레비전과 언론에서 나불대기 시작했고, 반대편에서는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이런 세태를 경계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능력위주의 사회를 거부하는 것은 늙고 뚱뚱한 능력없는 과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동안 열심히 자기 능력을 키우면 이 사회는 그 능력을 인정해 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 2년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경쟁에는 공정성이 생명이며, 공정성을 위한 룰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약육강식일 뿐이라고, 그래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팔꿈치를 잘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단순히 개인대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기업대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는 정해져 있었으며, 기업간에는 이미 주종관계라는 것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유연성이라는 구호는 노동자를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최소한.. 신규인력에게만이라도 노동유연성을 억제해야한다.

첫째, 신규인력 모집에는 반드시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을 공개해야 한다.

공개하는 것 만으로도 동일 계열 임금 평준화를 어느정도 이룰 수 있다.

상식적으로 신입부터 동일 계열의 임금이 현격히 차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여기는 미쿡이 아니다. 하지만, 이 상식은 자신의 임금이 나보다 ‘학력/학벌’이 낮은 사람보다 더 높다는 ‘현실’에 간단히 무너진다.

노동조건을 언제 구직자에게 보여줄 것인가는 기업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이 타이밍이 자신의 무기라고 생각하여 나중에 보여준다면(예전에는 입사 후, 요새는 면접시),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종업원은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 사장은 한마디 한다. 요새 애들은 근성이 없어) 지금은 그 카드를 펼쳐보여야 할 때다. 그것이 서로간의 시간/비용 낭비를 줄이는 최선의 길이다. 회사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연봉을 기업 스스로 공개를 안하는 이상, 기업은 인재 채용에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며, 실제로 중소기업은 용팔이들처럼 ‘얼마에 알고 오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있지 않은가? 패를 공개하면 임금과 근로조건 역시 평준화 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신규 인력 채용을 원하는 기업은 시간/비용의 낭비 없이 채용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되지 않을까 한다. 현재의 구조는 신입들을 속여서 입사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둘째, 신규인력은 되도록이면 같은 시기에 모집해야 하며, 또한 같은 시기에 입사시켜야 한다.

가장 저렴한 인력을 특정 시기 이외에는 쉽게 모집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회사도, 상사도 신입사원들을 함부로 굴리는 짓은 할 수 없다. ‘너 없어도 일할 애들 많다’라는 굴욕적인 말은 내년 신입사원이 들어올때쯤 이 아니면 함부로 할 수 없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신입사원들에게는 큰 무기이다. 일년에 한 번 모집할 수 있는 신입사원이 부서에 들어와서 얼마 후에 때려친다면 한국의 경우 다음 날부터 모집공고 내서 금방 채울 수 있을지 모르나, 일본에서는 신규 채용 기간이 거의 정해져 있으므로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올해 4월에 입사하는 인력은 제작년 12월부터 구인활동을 실시, 작년 4,5월쯤에 입사여부가 결정되므로 최근 6개월 이내의 부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6개월 안에 다시 신입이 부서에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학교를 다니고 있음에도 입사시키는 회사가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금지될 일도 아니지만) 기업의 속셈은, 결국 빨리 일도 시켜서 써먹고, 또한 입사자가 더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않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니,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관행이다. 노동유연성은 있고, 구직유연성은 없다.

게임에서 아무리 하찮은 회복아이템도 일단 필드에 나가면 소중히 해야 한다. 필드에는 상점이 없기 때문이다. 인적 자원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신규인력을 조달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면, 기업은 ‘애들 나가면 또 모집하면 되지’라는 ‘유연한’생각을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정부와 학교가 신규 인력이라는 노동시장에서만이라도 노동유연성을 억제해 준다면 기업과 구직자 모두 보다 나은 조건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쓸만한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 기업은 과연 구직자들에게 떳떳했는지 반성해야 되지 않을까?

한국 이미지에 제대로 먹칠을 하다.

근처에 있는 여자고등학교에 가서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반동안.

그 결과는..  아 십라.  미래 내용을 준비해 갈 걸…

처음으로 고딩 애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름대로 한국 고딩애들이 어떻게 생활하나 싶어 자료를 보여줬지만

나는 완전히 혐한류가 되고야 말았다.

여러분은 하루 몇시간 자요?

밥은 먹고 다녀요?

가족들하고는 잘 지내나요?

공부말고도 써클활동은 열심히 하고 있죠?

근데 있잖아요. 한국은요………

내가 일본 학생들한테 보여준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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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서 집안 욕 하는 꼴이 되어 버렸지만…

근데, 솔직히 따져보자.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제발 부탁이다.

나는 승자니까 모든 걸 독식해도 되고, 너는 패자니까 닥치고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 정말 나쁘다.

그런데 더 나쁜건 뭔지 아니.

‘나는 패자니까 그냥 닥치고 있어야지’라는 생각.

애당초 게임의 룰을 제대로 만들 생각을 안하는 볍신같은 존재들은 놔두고,

우리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경쟁만 하는 어느 이상한 나라에 있다가,

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인양 절대 진리인양 살던 내가,

그것이 내 눈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을 때

매년 수능 점수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생겨도,

사실은 자신도 성적때문에 죽고싶다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가볍게 사태를 넘어가는 사회에 있다가,

도대체 왜 그딴 일로 자살하는 거냐고 묻는 학생들의 질문을 들었을때,

그나마 이정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여겼던 그 고생이,

정말로 엄청난 헛고생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386을 위한 변명아닌 변명

88만원 세대의 세대 구분 기준에 따르면 나는 386세대보다 밑에 그리고 88만원세대 보다 위인 X세대이다.

나 역시 386세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엄청나게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라는 말에는 도저히 동감할 수가 없다.  또한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세대간 갈등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싶다.

첫째, 필자는 386세대의 결집력을 너무 과대 평가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당선시킨 것은 물론, 30대에 불과한 동일 세대 엘리트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것도 이 세대의 특징이다.”

정 치적인 단결력에 있어서 가장 강력했던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87년이 정점 이었을 뿐이며 이들이 사회로 진출함과 동시에 단결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의 전성기는 20대였으며 2002년 잠깐 반짝했을 뿐 조선일보가 97년 386이라는 단어를 거론했던 것 부터가 사회에 진출하여 단결성을 잃어버린 ‘아 옛날이여’세대를 조명하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30대에 불과한 동일 세대 엘리트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서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20대였을 때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선거환경속에서도 민주투사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켰을 때가 가장 전성기였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두 번이나 힘없이 지켜본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나마 정계에 진출했던 동일세대 엘리트들마저, 다시 한 번 국회의원에 당선시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둘째, 필자는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했다고 한다.

”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즉, 대학 국유화를 쟁취한 뒤 다음 단계로 진화했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우리의 386은 대학 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이다.”

하지만 이미 30대가 되어 버린 386은 아무리 용을 쓴다 하더라도 그 힘은 대폭 약화되었을 뿐이다.   프랑스의 68세대는 2차대전 경험이라는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전후 재건 상황이라는 가장 취약한 기반을 가진 정부에게 대항한 세대이다.  더우기 필자가 말한대로 대학 국유화는 당시의 대학생이 아닌 중고등학생이 성취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80년대 학번인 “대학생”에게 학벌사회와 교육 엘리트주의의 책임을 프랑스68세대를 비교해 가면서 묻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80년대 학번이 20살이었을 때 그들은 교육 시스템 재건은 커녕, 87년 직접 민주주의라는 기본적인 제도를 겨우 성취해냈을 뿐이다. (그나마 정권교체도 실패했다.)  30대 중반에서야 그들은 ‘겨우’ 자신들의 대변인을 정치조직의 정점에 올렸지만(그것도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자살골로), 이미 그 정점은 87년 이후 꾸준히 파워가 하락, 막상 그들의 대변인은 말꼬투리 붙잡혀 탄핵까지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세대가 아이들을 낳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원정출산이라는 것이 나타났고, 그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조기교육 붐이 일어났다.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며 아이들의 혀를 수술함으로써 미국 언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엽기적 사건들도 소위 386세대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발생한 것들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세대에 관한 문제의 절반 정도는 지금의 386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생겨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386세대가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한다는 주장을 위해 몇가지 예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조기교육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당연히 시대의 흐름이 되는 말이고, 혀 수술은 일반화시키기에는 절대 무리, 원정출산이라는 말도 386이 그토록 싫어하는 대선후보의 외손주때문에 퍼진 말임을 생각하면, 원정출산이 엘리트의 전유물이 될 수 있을지언정 386의 전유물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 더우기 그때는 2002년이었다.  80년대 말부터 사회에 진출한 이 세대는 아무리 늦어도 90년대 후반에 이미 아이를 낳았을 것이므로 원정출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에는 억울할 듯 싶다.  필자의 정의대로라면 사회에 진출하자 IMF가 왔다는 X세대의 나이를 가진 이가 원정출산 붐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학벌주의 해체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그룹도 386세대 출신들이 아니던가? 전인교육, 대안학교, 생태학교, 전교조, 사학비리 고발 등)

셋째, 386세대의 경제적 결과물에 대한 독점현상

“386세대의 경제적 결과물에 대한 독점현상”,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적 지위에 도달한 이 세대는 장관이나 차관과 같은 정치적 고위직은 물론, 각 경제조직에서도 의사결정자의 자리에 빠른 시일 내에 도달할 것이다.”

” 게다가 이 세대(386세대)는IMF 이전에 이미 사회진출을 상당부분 완료한 연공서열의 마지막 세대이다.  상당히 많은 경제조직에서 이들이 문얼 걸어잠그면 다음 세대의 신규 진출이 매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386은 그 이름만큼 30대에 이미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초기 출발 조건을 안전하게 갖추었지만, 지금의 20대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만큼의 경제적 가능성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30대 중반에 자신들의 대변인을 정치조직의 정점에 올린 386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흔들리지 않는 단결력 등 세대간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 이후 등장한 그 어느 세대보다 더 강력한 보호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 대체 그 근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가장 선배인 80학번(61년생)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가 87년이라고 보면,  이제 겨우 실무에 익숙해 지려고 하니 IMF를 맞고, 2008년 현재 40대 중반~30대 중반의 나이에 사오정 삼팔선이라는, 조기퇴직에 몸을 떨어야 하는 세대이다.  가장 일은 많이하지만, 발언권은 존재하지 않으며, 의사결정자의 자리까지 오르기까지 인사적체와 치열한 경쟁을 체감해야 한다.  연공서열이라는 시스템의 밑바닥에서 자기 성과를 윗세대에게 바쳤던 그들은 막상 자기가 받을 차례가 오자, 기형적 연공서열+연봉제+강제퇴직 제도를 힘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세대이다.  이들은 경제적 결과물을 독점할 위치에 있지도 않으며, 그나마 좁디 좁은 의사결정자의 자리는 ‘경쟁력과 전문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외부 수혈’이라는 이름의 조직 외부 존재와도 경쟁해야 한다.   당장 현직 장관들을 봐도 50대 중반 이상이 대다수일 뿐만 아니라, 386들의 정권재창출이 실패한 상황에서 그들 세대가 정치적 고위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빨라야 10년은 걸릴듯 싶다.

‘사회진 출을 완료’했기 때문에 초기 출발 조건을 안전하게 갖추었을지는 모르지만, 연공서열의 밑바닥에서 죽도록 고생하다가, 조금 편하지려고 하니 20대 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사회초년기 연공서열의 밑바닥에서 자기 밥그릇 찾기에 둔감했던 그들은, 약삭빠른 20대들과의 밥그릇 경쟁에서 절대적 우위를 지키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이미 처자식을 짊어져 몸이 무거운 상태인 반면, 그들이 상대할 후배세대들은 당분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다.  대학시절과 사회 초년기, 제대로 된 자기계발도 못하고 독재와 싸우느라, 조직에 적응하느라 바뻤던 그들은, 이미 전공 지식, 외국어 능력, 재태크 상식으로 무장한 후배들에게 자신이 위라는 것을 능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밀린다 싶어 권위주의를 사용하는 순간, 이들은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완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필 자는 역사상 가장 결집력 강한 386의 절대 우위를 주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결집력 때문에 이들은 개개인의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고,  IMF 이후 개개인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풍토로 급속히 바뀐 지금.  과연 필자가 말하는 ‘선점효과’라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하다.  그나마 사회생활을 통해 모은 ‘자본’이라는 중요한 경쟁우위 요소도, 후배들은 결혼 연령 늦추기라는 신공으로 가볍게 극복하려고 한다.

결정적으로 386세대는 자신이 만든 직접 민주주의라는 룰로 치뤄진 승부에서 승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룰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그 밑 세대와의 경쟁에 있어서도 깨끗하게 승복할 가능성이 매우 큰 세대이다.  애당초 후배세대들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 세대의 힘이 약해졌다는, 룰을 중시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분 역시 마찬가지로 싸워야 할 전선을 이상한 곳에서 긋는 그들 부류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적은 딴 곳에 있는데 말이다.

필자의 바램대로 20, 10대들이 짱돌을 던졌을 때, 그 짱돌을 곱게 맞아줄 사람도, 같이 그들의 편에 서서 짱돌을 던져줄 사람도 바로 386세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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