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가 왼쪽으로 간 까닭은?

[회상] 마우스가 왼쪽으로 간 까닭은?

2003.1.12.월요일
딴지 민원접수처

2003년도 크리스마스가 꽤나 지났지만, 전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게 있슴돠. 한 7~8년 전 대딩일 때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슴돠.

어릴 때부터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배워온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성있게 솔로임돠. 학행일치하는 모습. 아름답지 않슴까? 아무튼 그 때 크리스마스. 제과점 케익은 깡그리 동나고 여관방도 프리미엄 붙는다는 바로 그 날. 제가 돈만 많았다면야 서울 시내 여관방을 모조리 다 예약해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행되는 커플들 염장질을 사전봉쇄했을 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집구석에 틀여박혀 똥꼬나 후비적대고 있었슴돠.

아..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고, 저녁이 되니 슬슬 심심해졌슴돠. 그래서 동네 사는 부랄친구 정우(물론 가명임돠)네 집에 놀러 갔슴돠. 가서 해지면 술이나 한 잔 쪽 할 생각이었지요.

근데 전 왼손잡이임돠. 어릴 때 왼손 쓰면 어른들한테 혼났잖슴까? 하다 못해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야구 글러브 중에서도 왼손잡이용 글러브는 없슴다. 그때 왼손잡이 글러브만 있었어도 훌륭한 야구선수가 됐을 수도 있는데… 설움 많이 받았지요. 왼손잡이에게도 평등한 스포츠는 오로지 당구 뿐. 제가 남들 보다 쪼금 일찍 당구에 눈을 뜬 것도 다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 때문이었슴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이 넘이 저희 집에 놀러 왔을 때인데 저희 할무이가 뭔가 맛난 걸 만들어주셨던 것 같슴돠. 근데 제가 그걸 또 왼손으로 집어 먹었슴돠. 할무이한테 엄청나게 혼구녕이 났슴돠. 왼손 쓴다고 말이죠. 그때 저 혼나던 걸 본 녀석은 나중에 왜 왼손을 쓰면 안되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죠. 그런 꼴을 보며 오래 붙어다닌 다닌 넘인지라, 녀석은 당시 제가 왼손잡이라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약간의 머쓱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슴돠.

다시 첨 얘기로 돌아와설라무네, 좌우당간에 그 넘네 집에 갔지요.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에…

친구 어머니가 방갑게 맞아주셨고, 워낙 많이 드나든 집이라 저는 마치 우리 집 내 방 찾아 드가는 것처럼 친구 넘 방문을 자연스레 열고 입장하였슴돠.

이 넘… 낮부터 자빠져 자고 있더군요. 남들은 불타는 휴일을 보낸다고 뼈와 살을 녹이는데 여친 하나 없이… 불쌍한 시키… 하지만 저 역시 습관적으로 넘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려는 찰나.

이 넘 책상 위에 컴이 눈에 확 들어왔슴돠. 근데 컴 옆에 마우스가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붙어 있는 것이었슴돠. 어라… 이건…

혹시 넘은 남몰래 왼손 사용을 실천해 보려는 것은 아닐까? 왼손잡이의 생활을 체험해보려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모든 문은 오른쪽에 경첩이 달려 오른손잡이들을 위해서만 열리고… 하다못해 화장실 휴지걸이까지 오른쪽에 걸려있는 세상에서… 이 넘은 이렇게 세상의 부당함을 느끼며 자그맣게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슴돠.

게다가 저는 당시 집에 컴터가 없었슴돠. 컴터를 주로 녀석의 집에서 사용하는지라 마우스를 사용할 때 불편하기도 했는데 녀석은 내가 느끼는 그 불편을 없애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슴돠. 아… 가슴이 복받쳐왔슴돠.

곤하게 자빠져 자고 있는 넘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슴돠. 이런 넘이 여친 하나 없다는 사실에 참으로 세상 여자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슴돠. 정우야… 하지만 너무 걱정마라. 이 친구는 니가 너무나 가슴 터지게 자랑차다.

저는 뿌듯한 마음에 컴터 앞에 걸터 앉았슴돠. 나를 위한 배려인데 요 넘을 안 만져볼 수가 없는 것이었슴돠. 스크롤이 부드럽지 않아도, 클릭질이 경쾌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슴돠. 저는 흐뭇한 표정으로 왼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았슴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새까맣던 컴터 모니터가 뚜뚱 켜지면서 뭔가가 눈 앞에서 훌러덩 거렸슴돠.

허연 가슴을 다 드러내고 있는 새침한 미소녀 애니메이션. 아, 씨바… 게임 <동급생>이었슴돠.

가만 보니 책상 아래에는 쪼물딱 뭉쳐진 화장지도 꽤나 쌓여있었더랬슴돠. 자빠져 자고 있는 넘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봤슴돠. 곤하게 자고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것임돠.


나중에 저도 식음을 전폐하고 <동급생>에 매달리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녀석의 컴터에서 제가 만난 아가씨는 ‘사쿠라기 마이’라는 캐릭터였슴돠. 게임에서 벗기기에 에로사항이 꽤나 많았던 졸라 깐깐한 여자지요.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절. <동급생>은 아주 훌륭한 딸감이었지요. 그리고 <동급생>이 퍼져나감에 따라 마우스를 왼쪽으로 옮기는 넘들이 대유행이었슴돠. 울나라에 오른손잡이가 그만큼 많았던 탓이기도 한데 <동급생>이 유행하던 당시에는 분명 세상에 왼손잡이들이 더 많았지 않았나 싶슴돠.물론 지금이야 각종 동영상에다 그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종류까지 워낙 다양하고 뛰어나다 보니 굳이 마우스를 사용할 필요없이 키보드로 다 조작이 가능하고 그러다 보니 예전과 같이 마우스를 왼쪽으로 옮길 까닭은 없슴돠.하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함돠. 미소녀 애니메이션 뽈 몇 장을 보기 위해 몇날 며칠을 죽어라고 노가다 클릭질을 해야 했던, 그리고 수시로 마우스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넘나들어야 했던 그 시절.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도 참으로 많은 게 달라진 것 같슴돠.예전이나 지금이나 일관성있게 여친이 없는 저는… 간만에 <동급생>이나 찾아봐야겠슴돠. 마우스를 옮길 필요가 없는 왼손잡이라는 점에 기뻐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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