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지은이 소개/댄 브라운>
한때는 평범한 교사이던 <다 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은 이 작품으로 일거에 세계적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 빈치 코드>를 발표하기 전에 세 개의 작품에서 자신의 능력을 탄탄히 쌓아왔다.
첫 책은 1998년에 출간된 Desital Fortress이며, 다음 작품은 Deception Point와  Angels & Demons가 있다. 바로 Angels & Demons에 하버드 대학교의 예술사, 종교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등장한다. <다 빈치 코드>에서 인류의 비밀을 파헤치는 핵심 인물인 랭던은 전작에서 이미 창조된 인물인 것이다. <다 빈치 코드>의 주인공 소피 누뵈 또한 전작에서 창조된 주인공 이다. 이렇듯 댄 브라운은 주요 인물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전작에서 발전시켜, 완벽한 블록버스터 <다 빈치 코드>를 탄생시켰다.
댄  브라운은 소설의 상상력이 얼마나 방대할수 있는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그를 소설계의 빅뱅이라고 부른다. 이제 댄 브라운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될 것이다.

<소개글 , 서평>
<다 빈치 코드>는 2003년 3월 출간 이후 미국에서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다 빈치 코드>는 미국에서 약 7백만 부 판매되었고, 아마존에 독자서평은 3천 개를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다 빈치 코드>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40여 개국에서 판권을 계약했고, 10여 개국에서 출간하여 모두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USA Today>지는 <다 빈치 코드>가 유일하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량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베스트셀러 소설은 단지 그 한 책만 판매되는데 그치고 마는데, <다 빈치 코드>는 이 책에서 언급하거나 이 책과 관련 있는 다양한 도서의 판매량까지 끌어올려 독서시장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출간한 더블데이 출판사는 이 책이 시장에 나온 날을 ‘다 빈치 코드의 날’이라고 부른다.
미국 ABC 방송사는 뉴스 스페셜에서 <예수, 마리아 그리고 다 빈치>라는 제목으로 <다 빈치 코드>에서 언급한 내용을 추적했다. 이 소설의 파장은 <뉴스위크>를 포함한 주요 언론에서 크게 기사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계까지 파장이 이어져 SONY사와 영화 판권을 계약해 2005년 개봉할 예정이다. 이렇듯 <다 빈치 코드>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주목을 받자 <다 빈치 코드>를 소재로 한 다양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제 <다 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은 세계의 화제 인물로 꼽히게 되었다.

사실 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단체, 시온 수도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이다. 파리 국립 도서관은 1975년에 기밀문서로 알려진 양피지들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아이작 뉴턴,보티첼리,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포함한 수많은 시온 수도 회의 회원들 이름이 있었다.
  ‘오푸스 데이’ 라는 바티칸의 성직 자치단은 아주 독실한 가톨릭 분파다. 세뇌와 강압, ‘육체의 고행’으로 알려진 위험한 종교의식들이 보도되면서, 이 교파는 최근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오푸스 데이는 미국 뉴욕 시 렉싱턴 가 243번지에 4천 7백만 달러짜리 미국본사 건물을 얼마 전에 완공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자료, 비밀 종교의식들에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

프롤로그

파리,루브르 박물관
오후 10시 46분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 자크 소니에르는 대화랑의 아치형 천장 아래를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소니에르는 제일 가까이 있는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돌진했다. 일흔여섯 살의 이 노인은 도금된 그림 액자가 벽에서 떨어질 때까지 잡아당겼다. 소니에르가 뒤로 넘어지자 그림이 몸을 덮쳤다. 소니에르의 예상대로 화랑의 출입을 봉쇄하는 철문이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마룻바닥이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벨이 울려댔다.
  소니에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잠시 누워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
  캔버스 아래에서 기어나오며 소니에르는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냉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소니에르는 손과 무릎이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4,5미터 떨어진 철문 밖에서 소니에르를 공격하던 남자의, 산처럼 큰 그림자가 철창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몸집이 큰 사내였다. 유령처럼 창백한 피부에 가늘고 하얀 머리카락을 뒤집어쓴 사내의 눈동자는 암적색이고 홍채는 분홍색이었다. 색소결핍증인 듯한 사내는 외투에서 권총을 꺼내 철창 사이로 소니에르를 겨누었다.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소.”
  들어보지 못한 특이한 억양이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시오.”
  “무슨 얘긴지 도통 모르겠소.”
  화랑 마룻바닥에 힘없이 무릎을 꿇으며 관장은 말을 더듬거렸다.
  “거짓말을 하고 있군.”
  남자는 소니에르를 바라보았다. 유령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외에는 움직임이 없었다.
  “당신과 당신 형제들이 갖고 있는 그것은 당신들 게 아니오.”
  소니에르는 일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이 작자가 그걸 알지?’
  “오늘 밤 정통 수호자들이 복귀하실 것이오. 그것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말하시오. 그럼 당신은 살수 있소.”
  남자는 권총을 낮춰 소니에르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게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비밀이오?”
  소니에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남자는 총신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소니에르는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잠깐 당신이 원하는 걸 얘기해 주겠소.”
  관장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지금 하려는 거짓말은 수없이 연습하던 것이다…… 기도하는 매순간, 결코 쓸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소니에르가 말을 마쳤을 때, 남자는 뽐내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사람들이 말한 그대로군.”
  소니에르는 움찔했다.
  ‘그 사람들?’
  “그들을 찾아냈지. 세 명 다. 그들도 당신이 방금 말한 대로 얘기하더군.”
거대한 몸집의 남자는 빈정거렸다.
  ‘그럴 리 없어!’
  세 명의 집사와 관장의 진짜 신분은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고대 비밀만큼이나 신성한 것이다. 소니에르는 집사들이 죽기 전에 엄격한 절차에 따라 똑같은 거짓말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조직의 규정이기도 했다.
  남자는 다시 권총을 겨누었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면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내가 되겠군.”
  ‘진실.’
  순간 소니에르는 진짜 공포에 맞닥뜨려졌다.
  ‘내가 죽으면 진실은 영원히 사라진다.’
  관장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권총이 발포되었다. 총알이 복부에 박힐 때 소니에르는 타는 듯한 열기를 느꼈다. 관장은 쓰러졌다. 천천히 몸을 움츠리며 소니에르는 철창 사이로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이제 소니에르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소니에르는 눈을 감았다. 두려움과 후회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빈 화랑에 딸각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니에르는 눈을 번쩍 떴다.
  남자는 즐겁다는 듯이 권총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권총의 둘째 핀으로 손을 뻗던 남자는 순간 생각을 바꿨는지, 소니에르를 비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내 일은 끝났군.”
  관장은 하얀 셔츠에 난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흉골 아래가 5,6 센티미터 가량 피로 물들어 있었다.
  ‘위장.’
  무참하게 총알은 심장을 비껴갔다. 알제리 전쟁에 참가한 베테랑으로서 소니에르는 이런 끔찍한 죽음을 목겼했었다. 고작 15분 정도만 살 수 있을 터였다. 위산이 흉강에 스며들면, 독 때문에 천천히 독살될 것이다.
  “고통이란 좋은 것이오. 선생.”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혼자가 된 자크 소니에르는 고개를 다시 철문으로 돌렸다. 덫에 갇힌 꼴이었다. 적어도 20분동안 저 철문은 열리지 않을것이다. 누군가 다가오더라도 소니에르는 이미 죽은 목숨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니에르를 사로잡는 두려움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반드시 비밀을 전해야 한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소니에르는 살해된 세 형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먼저 활동한 윗세대와 그들 모두에게 맡겨진 사명을 생각했다.
  ‘깨져서는 안 될 지식의 사슬.’
  그리고 이제, 갑자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소니에르는 유일하게 남은 연결고리이자 지금까지 지켜온 엄청난 비밀의 외로운 수호자이다.
  소니에르는 떨리는 몸을 이끌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 .’
  박물관 대화랑에 갇힌 소니에르는 횃불을 건네줄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사람이다. 소니에르는 이 고상한 감옥의 벽들을 응시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들이 오랜 친구처럼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소니에르는 모든 힘과 재능을 끌어모았다. 소니에르는 그의 필사적인 임무를 위해 얼마 남지않은 자신의 시간을 다 써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

  로버트 랭던은 천천히 깨어났다.
  어둠속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작고 익숙하지 않은 울림이었다. 손으로 침대옆을 더듬어 불을 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 랭던은 루이 16세 시대의 가구들과 수작업으로 된 프레스코 벽화, 거대한 마호가니 기둥이 침대 네 귀퉁이에 서 있는 호화로운 르네상스풍의 침실을 둘러보았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침대 기둥에 걸려 있는 자카드 천의 목욕 가운데는 ‘리츠 파리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
  느리게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랭던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랭던씨? 제가 손님을 깨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침대 옆의 시계를 본 랭던은 망연자실했다. 밤 12시 32분. 겨우 한 시간 정도 잤는데 죽은 듯이 잔 것 같았다.
  “저는 호텔 안내인입니다. 손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방문객이 와 계십니다. 몹시 급한 일이라고 하시는데요.”
  랭던은 아직도 의식이 흐릿했다.
  ‘방문객?’
  침대 옆 탁자 위의 구겨진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 아메리칸 대학이 자랑스럽게 제안하는 로버트 랭던과의 밤
  하버드 대학, 종교 기호학 교수
  랭던은 신음했다. 오늘 밤에 그는 사르트르 대성당의 돌들에 숨겨진 이교도의 상징에 관한 슬라이드를 가지고 강의했다. 아마 청중 가운데 보수적인 사람들은 심사가 뒤틀렸을 것이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그의 숙소까지 쫓아왔다.
  “미안합니다만, 저는 무척 피곤하고 또 ……”
  “하지만 손님, 아주 중요한 분입니다.”
  안내인은 목소리를 낮추더니 다급하게 속삭였다.
  랭던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종교화와 종교의식의 기호에 관한 그의 책들은 예술계에서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해, 바티칸에서 공표된 사건에 그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유명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 이후 자칭 대단한 역사학자나 예술가 나부랭이들이 랭던의 방문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랭던은 되도록 공손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그 방문객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좀 받아놓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분께 제가 화요일 파리를 떠나기 전에 전화드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 그럼 수고하십시오.”
  안내인이 뭐라고 항의하려는데 랭던은 전화를 끊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침대 옆에 놓인 호텔의 ‘숙박고객 안내서’를 본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내서의 표지는 ‘빛의 도시에서 아기처럼 자는 법, 리츠 파리 호텔에서의 포근한 잠’ 따위의 선전 문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랭던은 방을 가로지르는 전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에 비친, 헝클어지고 지친 남자가 낯설어 보였다.
  ‘넌 좀 쉬어야 해. 로버트.’
  지난 몇 년 간 그는 과도하게 일했다. 하지만 랭던은 거울에 나타난 그 증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날카롭게 빛나던 푸른 눈동자가 오늘 밤에는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강한 턱과 보조개가 팬 뺨에는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 있었다. 관자놀이 근처에는 회색 머리카락들이 굵고 거친 흑발 사이로 깊게 길을 내었다. 학교의 여자동료들은 그 회색 머리카락이 랭던의 문학적인 외모를ㄹ 강조해 준다고들 했다.
  ‘<보스턴 매거진>이라면 당장이라도 만날 텐데.’
  당황스럽게도 지난달. <보스턴 매거진>은 랭던을 보스턴의 가장 흥미로운 인사 열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영광인지 뭔지 모를 그 선정 때문에 랭던은 하버드 동료들의 끊임없는 놀림에 시달려야 했다. 집에서 5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에서 가진 오늘 밤 강의는 그에게 또 다른 명예를 안겨주었다.
  만원을 이룬 파비용 도핀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주최자가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밤 우리의 손님은 소개가 따로 필요 없는 분입니다. 이분은 수많은 책의 저자입니다. <비밀 분파의 기호학>,<조명학의 예술>,<표의문자의 잃어버린 언어> 그리고 <종교적인 도상학(그리스도나 성모, 성화에 나타난 기호를 풀이하고 연구하는 학문)>등 다수의 책을 집필하셨는데, 말 그대로 대단한 책들입니다. 여러분 중 대다수가 수업 교재로 이분의 책을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관중석에 있던 학생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오늘밤, 인상적이고 다양한 이분의 관심 분야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분을 소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 ”
  주최자는 무대에 앉아 있는 랭던을 장난스럽게 쳐다보았다.
  “청중 가운데 한 분이 방금 제게 이것을 건네주었습니다. 말하자면 …… 흥미로운 소개라고나 할까요.”
  주최자가 들고 있는 것은 <보스톤 매거진>이었다.
  랭던은 몸을 움츠렸다.
  ‘제기랄, 저게 어디서 났지?’
  여자는 얼빠진 기사의 일부를 발췌해 읽기 시작했다. 랭던은 의자속으로 몸이 점점 가라앉는 듯 느껴졌다. 30초 정도 지나자 청중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만둘 기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해 바티칸 비밀회의에서 자신의 이례적인 역할에 대해 랭던 씨가 공개적인 설명을 거절한 일은, 우리 잡지가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랭던 씨를 꼽는 일에 확실한 점수를 보탰다.”
  여자는 청중을 선동했다.
  “여러분, 더 듣고 싶어요?”
  청중은 갈채를 보냈다.
  주최자가 다시 기사로 고개를 숙이자 랭던은 누군가 저 여자를 막아줬으면 하고 바랐다.
  “비록 랭던 교수가 우리의 일부 젊은 수상자들처럼 외모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사십대의 학자는 학자로서의 매력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사로잡는 랭던 교수의 외모는 이례적으로 낮은 바리톤의 목소리로 완성된다. 랭던 교수의 여학생들은 이 목소리를 ‘귀를 위한 초콜릿’ 이라고 표현한다.”
  강당에 폭소가 터졌다.
  랭던은 서투른 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해리스 트위드를 입은 해리슨 포드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기사 몇 줄이 더 나올 터였다. 더구나 오늘 밤 랭던은 해리스 트위드와 바바리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랭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랭던은 어정쩡하게 서서 주최자를 연단에서 밀어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모니크 씨. <보스턴 매거진>은 말을 꾸미는 데 확실히 재능이 있죠.”
  당황스러운 한숨을 쉬며 랭던은 청중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여러분 중 누가 저 기사를 제공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영사관을 통해 그 사람을 추방하게 하겠습니다.”
  청중들은 웃어댔다.
  “자,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오늘 밤 기호의 힘에 대해 얘기하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
  전화기가 침묵을 깨며 다시 한 번 울렸다.
  호텔에 대한 불신으로 신음하면서 랭던은 수화기를 들었다.
  “네?”
  예상한 대로 호텔 안내인이었다.
  “랭던 씨.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 방문객이 지금 손님 방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랭던은 이제 잠이 완전히 깨었다.
  “방문객을 지금 내 방으로 보냈단 말이오?”
  “죄송합니다. 손님. 하지만 이런 분은 …… 이분을 막을 힘이 제게는 없습니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구요?”
  하지만 안내인은 이미 전화기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육중한 주먹이 랭던의 방문을 두드렸다.
  랭던은 침대에서 빠져나와 목욕가운을 걸치고 문으로 향했다.
  “누구요?”
  “랭던 씨? 당신과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저는 제롬 콜레 부관입니다. 중앙사법경찰국(DCPJ)에서 나왔습니다.”
  남자의 영어에는 날카롭고 권위적인 울림이 배어 있었다.
  랭던은 멈칫했다.
  ‘사법경찰?’
  DCPJ라면 미국의 FBI와 비슷한 기관이다.
  안전고리를 걸어 둔 채 랭던은 문을 조금 열었다. 랭던을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는 무척 말랐고 공무원 차림인 푸른 제복을 입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남자가 물었다.
  랭던은 망설였다. 낯선 사람의 누르께한 눈이 자기를 쳐다보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희 반장님이 비공식적인 문제로 당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원하십니다.”
  “지금요? 자정이 넘었는데요”
  랭던은 가까스로 말을 뱉었다.
  “오늘 밤 루브르 박물관 관장을 만날 예정이었다는데, 맞습니까?”
  랭던은 의아함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 밤 강의가 끝나면 자크 소니에르와 술 한잔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소니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걸 어떻게?”
  “당신의 이름을 관장의 수첩에서 발견했습니다.”
  “저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DCPJ 요원은 절박한 한숨을 내쉬더니, 열린 문틈 사이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들이 밀었다.
  사진을 본 랭던은 온몸이 굳는 듯했다.
  “이 사진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찍은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요.”
  사진의 이상한 이미지를 보고 있노라니 강한 혐오와 충격이 부풀어 오르는 분노로 바뀌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습니까?”
  “바로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관장을 만날 계획이었다는 것과 기호학에 대한 당신의 지식을 참고로 말입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느낀 공포가 이제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사진의 광경은 끔찍하고도 기이했다. 불편한 데자뷔 감각마저 몰고 왔다. 1년하고 조금 더 전에 지금과 비슷한 도움을 요청받았다. 24시간이 지난 뒤, 그는 바티칸 시티에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전혀 달랐다. 사진의 장면이 불안할 정도로 익숙했다.
  DCPJ 요원은 시계를 보았다.
  “반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랭던은 요원의 얘기를 거의 듣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사진에 꽂힌 채였다.
  “여기 이 기호와 시체가 아주 이상하게……”
  “시체의 자세 말인가요?”
  요원이 물었다.
  한기를 느끼며 랭던은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대체 누가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할 수가 없군요.”
  요원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랭던씨. 이 사진의 모습은 ……”
  요원은 뜸을 들였다.
  “소니에르 관장이 직접 한 것입니다.”

2

  1.6킬로미터 떨어진 브뤼예르 가에 있는 고급 저택의 입구에서는 사일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덩치 큰 알비노(알비노: 선천성 색소결핍증, 즉 백피증인 사람)가 느릿느릿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대못이 박힌 말총 허리띠가 허벅지에 매달려 살을 파고 들었지만, 사일래스의 영혼은 주인에 대한 봉사의 만족감에 젖어 노래를 불렀다.
  ‘고통은 좋은 것이다.’
  저택으로 들어서던 사일래스는 로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계단을 올라갔다. 침실 문은 열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문을 잠그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일래스는 침실로 들어가 등으로 문을 밀어 닫았다.
  방은 검소했다. 딱딱한 나무 바닥에 소나무 옷장과 침대로 쓰는 삼베 매트가 구석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번 주에 사일래스는 이곳 방문객이다. 하지만 뉴욕에 이와 비슷한 은신처를 갖는 축복을 수년 동안 누리고 있었다.
  ‘주님 내게 쉴 곳과 삶의 목적을 제공하신다.’
  마침내 오늘 밤 사일래스는 그 빚을 갚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는 옷장으로 서둘러 다가가 맨 아래 서랍에 숨겨져 있던 휴대 전화기를 찾아서 번호를 눌렀다.
  “네?”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스승님, 막 돌아왔습니다.”
  “말해라.”
  사일래스의 연락을 받게 되어 몹시 즐겁다는 투로 전화의 목소리는 명령했다.
  “네 명 모두 죽었습니다. 세 명의 집사들 …… 그리고 우두머리인 마스터도요.”
  마치 애도하는 듯한 침묵의 순간이 이어졌다.
  “그럼 자네가 정보를 갖고 있겠군.”
  “네 명 모두 일치했습니다. 각각 따로따로 말입니다.”
  “그럼 자넨 그들의 말을 믿는다는 건가?”
  “그들의 일치된 증언을 우연으로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흥분된 숨소리가 이어졌다.
  “훌륭해. 비밀 엄수에 대한 조직의 명성이 너무 자자해서 걱정했는데 말이야.”
  “죽음에 대한 예감이 강력한 동기였습니다.”
  “그래, 제자여 내가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얘기해 보거라.”
  사일래스는 희생자들에게서 모은 정보가 충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승님, 네 사람 모두 클레 드 부트(clef de voute:금고를 여는 열쇠)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 전설의 쐐기돌 말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급히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사일래스는 그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쐐기돌이라…… 정확히 우리가 예상한 대로군.”
  전설에 따르면, 조직은 ‘클레 드 부트’ 또는 ‘쐐기돌’이라고 알려진 돌로된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직의 가장 큰 비밀이 잠든, 최후의 장소를 밝혀줄 정보가 새겨진 석관이다. 그 비밀은 매우 엄청난 것이어서 그것을 보호하는 일이 조직의 존립 이유가 되었다.
  “그 쐐기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스승이 말했다.
  “스승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쐐기돌은 여기 파리에 있습니다.”
  “파리? 믿어지지 않는군. 그렇게 간단하다니.”
  사일래스는 오늘 밤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보고했다. 네 명의 희생자들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허망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기 바로 직전에 비밀을 실토한 일들을 말이다. 네 명 모두 같은 얘기를 했다. 쐐기돌은 파리의 오래된 생 쉴피스 교회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고 말이다.
  “주님의 집에 말이냐? 감히 우리를 이렇게 조롱하다니!”
  스승이 소리쳤다.
  “그자들이 수백년을 숨겨온 것처럼 말이죠.”
  승리의 기쁨을 가라앉히기라도 하듯 스승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오늘 신께 아주 훌륭한 예배를 드린 것이네. 우리는 이를 위해 수백년을 기다려 왔어. 자네는 반드시 그 돌을 내게 가져와야 해. 즉시! 오늘밤 안으로. 거기에 걸린 대가는 알고 있겠지.”
  그 대가는 계산할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사일래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승의 요구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교회는 요새와 같습니다. 특히 밤에는요. 제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확신에 찬 스승의 목소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난 사일래스는 기대감에 온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
  사일래스는 중얼거렸다. 고맙게도 스승은 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참회할 시간을 준 것이다.
  ‘오늘 저지른 죄에 대해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오늘 벌어진 죄악은 신성한 목적하에 행한 것이었다. 적들에 대한 신의 전쟁은 수백년 동안 있어 왔다. 용서는 보장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면죄는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을 사일래스는 알고 있었다.
  사일래스는 그림자를 끌면서 알몸으로 방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대못이 박힌 말총 허리띠가 허벅지를 옥죄는 것을 살폈다. <길>의 신실한 추종자들은 모두 이 장치를 착용한다. 그리스도가 겪은 고통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도구로는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금속 갈고리가 박힌 가죽 채찍도 있다. 이런 도구들이 불러오는 고통은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은 기본 착용시간인 두 시간 넘게 하고 있었지만 ,사일래스는 오늘이 보통 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리띠의 버클을 잡고 한 단계 더 조이자, 허리띠의 갈고리들이 살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천천히 숨을 토해 내면서 사일래스는 고통의 정화 의식을 음미했다.
  ‘고통은 좋은 것이다.’
  스승 중의 스승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의 신성한 부문을 되뇌면서 사일래스는 속삭였다. 에스크리바는 1975년에 죽었지만 그의 지혜는 계속 살아있고, 그의 말은 이 땅의 수천 명의 신실한 충복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육체의 고행’으로 알려진 신성한 의식을 수행할 때 여전히 속삭여지고 있다.
  사일래스는 마룻바닥에 정결하게 말려 있는 두꺼운 밧줄로 고개를 돌렸다.
  ‘원칙.’
  밧줄의 굵은 매듭에는 마른 피가 붙어 있었다. 자기의 고뇌가 정화되기를 고대하며 사일래스는 짧은 기도문을 외웠다. 그런 뒤 밧줄의 한 쪽 끝을 쥐고 눈을 감은 채 어깨 너머로 휘둘렀다. 밧줄의 매듭이 등을 찍어 대는 아픔이 느껴졌다. 사일래스는 밧줄로 자기 살을 난도질하면서 한 번 더, 한 번 더 외쳤다.
  “Castigo corpus menu(내 몸에 체벌을 내려라)!”
  마침내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3

  시트로엥 ZX의 열린 창문으로 상쾌한 4월의 공기가 느껴졌다. 오페라 하우스의 남쪽을 지나 방돔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자동차의 보조석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던 로버트 랭던은 이 도시가 자기 옆을 지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빨리 마친 샤워와 면도는 랭던을 말쑥해 보이게 했지만 그의 근심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참혹한 관장의 시체 사진이 랭던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가 죽었다.’
  랭던은 관장의 죽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소니에르는 운둔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헌신은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푸생과 테니르스의 그림들 속에 숨겨진 비밀부호에 관한 소니에르의 책들은 랭던이 즐겨 사용하는 교재이기도 했다. 오늘 밤의 만남을 몹시 고대하던 랭던은 관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실망했었다.
  다시 관장의 시체사진이 떠올랐다.
  ‘자크 소니에르가 직접 그렇게 했다?’
  사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며 랭던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시는 이제 꾸불꾸불한 아랫길로 이어졌다. 수레의 사탕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 쓰레기 봉지를 거리에 내놓는 식당 종업원들 , 재스민 향이 묻어나는 산들바람에서 늦은 밤의 온기를 느끼려고 서로 감싸안는 연인들. 시트로엥 자동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이 혼돈속을 누볐다. 2음조의 거슬리는 사이렌 소리는 칼처럼 교통의 흐름을 갈랐다.
  “랭던 씨가 아직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반장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호텔을 떠난 후 요원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본질적으로 다른 표상과 이념들의 숨겨진 상관성을 탐구하는 데 일생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랭던은 세계를 역사와 사건들이 서로 심오하게 짜여진 거미집으로 보였다. 랭던은 하버드에서 기호학 수업시간에 종종 이렇게 말했다.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다. 표면 바로 아래에 묻힌채 말이다.’
  “파리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겠군요?”
  랭던이 말했다.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터폴입니다.”
  ‘인터폴, 물론 그랬겠군.’
  랭던은 생각했다. 모든 유럽의 호텔들이 숙박 수속을 밟을 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요청이 공식적인 행동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랭던은 깜박 잊고 있었다. 그것은 법이기도 했다. 유럽 어디에 있든, 인터폴 수사관들은 누가 어디에서 자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리츠 호텔에 묵고 있는 랭던을 찾아내는 데는 아마 5초밖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트로엥이 도시를 남쪽으로 가로지르자, 조명을 받고 있는 에펠 탑이 오른쪽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에펠 탑을 보며 1년 전의 장난기 어린 약속을 떠올린 랭던은 비토리아를 생각했다. 6개월마다 지구상의 낭만적인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에펠 탑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1년 전에 로마의 시끄러운 공항에서 키스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다.
  “그녀를 올라가 봤습니까?”
  요원이 고개 너머로 물었다.
  랭던은 자신이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흘끗 쳐다보았다.
  “뭐라구요?”
  요원은 창 밖으로 에펠 탑을 가리켰다.
  랭던은 자신이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흘끗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요원은 창밖으로 에펠 탑을 가리켰다.
  “무척 아름답죠. 안 그런가요? 그녀는 프랑스의 상징입니다. 저는 그녀가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랭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호학자들은 프랑스에서 저 3백 미터짜리 남근상보다 적절한 국가적 상징을 찾을 수 없다고 종종 말한다. 프랑스는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 나폴레옹이나 난쟁이 페팽처럼 불안하고 왜소한 지도자들로 유명한 나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리볼리 가의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트로앵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요원은 앞에 가던 세단을 앞질러 카스트글리온 가의 숲이 우거진 구역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카스티글리온 가는 파리의 센트럴 파크로 불리는 유명한 튈르리 정원의 북쪽 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튈르리 정원을 여기 피어난 수천 송이의 튤립과 연관시켜서 잘못 이해한다. 튈르리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단어이다. 공원은 한 태 이 도시의 유명한 붉은 기와, 즉 튈르를 만들기 위해 진흙을 채굴하던 엄청나게 크고 오염된 채굴장이었다.
  황량한 공원에 들어서자, 요원은 계기판 아래로 손을 뻗어 사이렌을 껐다. 랭던은 갑작스러운 정적을 음미하며 안도했다. 자동차의 창백한 할로겐 헤드라이트가 공원의 자갈길을 훑었다. 타이어는 졸린 듯한 리듬으로 억양을 실어 노래하듯 윙윙 굴러간다. 랭던은 항상 튈르리를 신성한 땅으로 생각했다. 이곳에서 클로드 모네는 형식과 색을 실험했고, 문자 그대로 인상파 운동의 탄생이 고무되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이상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시트로엥은 공원 중앙 가로수 길의 서쪽 아래로 접어들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형 분수를 돌아 한적한 나무 길을 통과하자 널찍한 사각형 공간이 나타났다. 랭던은 아치 모양의 거대한 돌로 표시된 튈르리 정원의 끝을 바라보았다.
  케러젤의 아치.
  케러젤의 아치에서 주신제 의식이 한 번 열리긴 했어도, 예술지상주의자들은 이 장소를 전혀 다른 이유로 숭배했다. 튈르리 끝의 산책길에서는 동서남북 네 곳에 있는, 계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 박물관이 모두 보였기 때문이다.
  센 강과 볼테르 부두를 건너 남쪽인 오른쪽 창문 밖으로는, 옛날 철도역사로 쓰이던 오르세 미술관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파리국립근대 미술관이 있는 퐁피두 예술 문화 센터의 초현대적인 건물의 꼭대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뒤편 서쪽으로는 죄 드 폼 국립 미술관의 고대 람세스의 오벨리스크가 나무들 위로 솟아 있다는 것을 랭던은 알고 있었다.
  아치 길을 통과해서 곧게 뻗은 동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ㄷ자형의 르네상스 궁전인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랭던이 눈동자로 거대한 건축물을 흡수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사이, 익숙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찔할 정도로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루브르의 당당한 정면이 파리의 하늘을 배경으로 성체처럼 서 있었다. 거대한 편자 모양으로 생긴 루브르 박물관은 유럽에서 가장 긴 건물이다. 이 편자 모양의 건물을 펼치면 에펠 탑을 세 개 늘어놓은 것보다 길다. 심지어 박물관 양 날개 사이에 있는 수백만 평방미터의 광장도 박물관 정면의 폭에는  도전하지 못한다. 랭던은 한때 루브르 박물관 주변을 한 바퀴 걸어보았다. 길이가 약 5킬로미터나 되었다.
  대략 6만 5천 3백 점이나 되는 루브르의 예술품들을 모두 감상하는 데는 5주 정도 걸리지만, 여행객들은 대부분 랭던이 ‘ 루브르의 보물찾기’ 라고 부르는 축약된 코스를 선택한다.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세 가지 미술품에 눈도장을 찍고 가려는 단거리 경주 같은 것이다. 이 보물들은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승리의 날개>다. 아트 부치왈드는 5분 56초 안에 이 명작들을 모두 보았다고 자랑삼아 떠벌렸다.
  요원이 무전기를 꺼내 빠르게 프랑스어로 말했다.
  “랭던 씨가 도착했습니다. 이 분 전입니다.”
  해독하기 어려운 대답이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요원은 무전기를 넣은 뒤 랭던을 돌아보았다.
  “출입문에서 반장님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요원은 루브르 광장의 자동차 출입 금지 표지판을 무시했다. 그리고 도로의 연석 위로 시트로엥을 몰고 갔다. 조명 빛을 받으며 분수를 뿜어내는 일곱 개의 삼각형 연못에 위풍당당하게 둘러싸인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입구는 박물관만큼이나 유명했다. 중국 출신의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디자인한 신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 입구는, 르네상스 앞마당의 품위를 해친다고 믿는 전통주의 신봉자들의 냉소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괴테는 건축물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페이를 비평하는 이들은 이 피라미드를 칠판 위의 손톱자국이라고 비꼬았지만, 진보적 옹호론자들은 22미터 가까운 높이의 투명한 피라미드를 고대 구조와 현대 방식의 빛나는 결합, 그 이상이라며 환영했다. 새 천년으로 루브르를 이끄는 신구(新舊)의 상징적 연결고리로서 말이다.
  “저 피라미드가 마음에 드십니까?”
  요원이 물었다.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에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함축적인 질문이다. 피라미드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안목없는 미국인이 되어 버리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프랑스인에게 모욕이 되는 식이다.
  “미테랑은 대담한 남자였죠.”
  랭던은 다소 엉뚱하게 대답했다. 피라미드를 의뢰한 이 대통령은 ‘파라오 콤플렉스’로 고통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단독으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이집트 예술, 그 인공물로 파리를 채우려 한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집트 문화에 애착이 강했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프랑스 사람들은 작고한 미테랑 대통령을 여전히 스핑크스라 부르고 있었다.
  “반장은 누구입니까?”
  화제를 바꾸려고 랭던이 물었다.
  “부쥐 파슈. 우리는 토로라고 부릅니다.”
  피라미드 정문으로 다가가면서 요원은 말했다.
  모든 프랑스인의 별명이 이상한 동물 이름일까 궁금해 하면서 랭던은 요원을 슬쩍 쳐다보았다.
  “반장을 ‘황소’라고 부른단 말입니까.”
  요원의 눈썹이 활처럼 치켜 올라갔다.
  “랭던 씨의 프랑스어 실력은 생각보다 훌륭하군요.”
  ‘프랑스어 실력은 시시하지만, 12궁도 도상학은 꽤 쓸 만하지.’
  타우루스자리는 황소를 의미한다. 점성술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상징의 정수다.
  요원은 차를 세우고 두 분수 사이에 있는 피라미드 한 면의 커다란 문을 가리켰다.
  “저게 입구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선생.”
  “함께 안 갑니까?”
  “제 임무는 선생을 여기까지 모시는 겁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습니다.”
  랭던은 한숨을 내쉰 뒤 차에서 내렸다.
  ‘이건 당신네 서커스로군.’
  요원은 시동을 걸고 속도를 냈다.
  혼자 남은 랭던은 떠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을 지켜보며 이 광장을 빠져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침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뭔가가 그것은 불순한 생각이라고 랭던에게 말하고 있었다.
  분수의 안개 속으로 다가가며 랭던은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상상의 문턱을 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꿈결 같기만 한 이밤의 묘한 분위기가 랭던 주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호텔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황소라고 불리는 경찰 반장을 기다리며 스핑크스의 지시로 지어진 투명한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 갇힌거야.’
  랭던은 생각했다.
  거대한 회전문이 달린 정문으로 랭던은 터벅터벅 걸어갔다. 로비에는 흐릿한 불이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노크해야 하나?’
  하버드의 저명한 이집트 학자들 중 일찍이 피라미드의 정문을 두드리고 답을 구해본 자가 있는지 궁금했다. 손을 들어 유리를 두드리려는 순간, 아래쪽 어둠 속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인물이 있었다. 땅딸막한 남자는 어둠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처럼 보였다. 어깨에 두줄 단추가 달린 짙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한치의 실수도 없을 것 같은 권위를 풍기며 다가왔다. 휴대 전화기로 통화하던 남자는 문에 도착하자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랭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랭던이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자 남자가 말했다.
  “저는 브쥐 파슈입니다. 중앙사법경찰국의 반장입니다.”
  남자의 어조는 귀에 거슬리는 굉음으로, 마치 폭풍이 몰려드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랭던은 손을 내밀었다.
  “로버트 랭던입니다.”
  파슈의 큰 손바닥이 랭던의 손을 으깰 듯이 감쌌다.
  “사진을 보았습니다. 당신네 요원은 자크 소니에르가 스스로 그런 것을 ……”
  흑단처럼 새까만 파슈의 눈동자는 잠겨 있었다.
  “랭던 씨. 당신이 사진에서 본 것은 소니에르가 한 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4

  브쥐 파슈 반장은 넓은 어깨를 뒤로 젖히고, 턱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성난 황소처럼 몸을 움직였다. 검은 머리에 오일을 발라 뒤로 매끄럽게 넘겨 화살 모양의 앞머리가 두드러져 보였다. 돌출된 이마를 둘로 가르는 듯 한 중앙의 v자 모양의 머리는 함선의 뱃머리를 연상시켰다. 반장의 눈은 밟고 있는 바닥을 태우기라도 할 것 같았다. 모든 문제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다룬다는 명성 그대로, 반장의 눈은 화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랭던은 반장을 따라서 유리 피라미드 아래의 낮은 중앙홀로 이어지는 대리석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두 명의 사법경찰 앞을 지나갔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오늘 밤 파슈 반장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여기를 드나들 수 없는 것이다.
  홀로 내려오면서 랭던은 점점 치밀어 오르는 전율과 싸워야 했다. 파슈의 존재가 오히려 고마웠다. 이 시간의 루브르는 묘지 같은 음산한 분위기 였다. 어두운 영화관의 통로처럼 계단은 발판마다 깔린 조명으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랭던은 머리위의 유리에 닿아 진동하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투명한 지붕 바깥으로 분수에서 피어난 안개가 조명을 받아 흐릿하게 사라지는 광경이 보였다.
  “마음에 듭니까?”
  파슈는 넓은 턱으로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랭던은 이 말장난에 싫증이 나서 한숨만 내쉬었다.
  “예, 당신네 피라미드는 대단합니다.”
  파슈는 투덜거렸다.
  “파리의 얼굴에 난 흉터일 뿐이죠.”
  ‘원 스트라이크.’
  이 반장이란 작자는 재미라곤 없는 경직된 사고방식의 인간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랭던은 파슈가 미테랑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정확히 666장의 유리판을 사용해 이 피라미드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이상한 요청은 666이 사탄의 숫자라고 주장하는 음모론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얘깃거리가 되었다.
  지하 로비로 더 내려가자, 입을 크게 벌린 것 같은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 로비로 더 내려가자, 입을 크게 벌린 것 같은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 17미터 아래에 건설된 6천 5백 평방미터의 새로운 로비가 끝없는 동굴처럼 뻗어 있었다. 루브르의 외관과 어울리도록 따뜻한 느낌의 황토색 대리석으로 건설된 지하 홀은, 보통 때엔 햇빛과 관광객들로 힘차게 맥박치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홀 전체가 차가운 교회당의 지하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어둡고 황량했다.
  “박물관의 보안 요원들은?”
  랭던이 물었다.
  “조사.”
  랭던이 자기 팀의 성실성에 의문이라도 제기한 것처럼 파슈는 간단히 대꾸했다.
  “명백하게, 출입이 금지된 누군가가 오늘밤 들어온 것이 확실합니다. 박물관의 모든 야간 경비원들은 지금 쉴리 관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은 제 요원들이 박물관을 접수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랭던은 파슈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빨리 움직였다.
  “자크 소니에르 관장과 잘 아는 사이입니까?”
  반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파슈는 놀란 듯했다.
  “첫 만남이 오늘 밤이 될 뻔했다는 얘깁니까?”
  “예. 제 강의가 끝난 후 아메리칸 대학의 리셉션 자리에서 만날 작정이었죠. 하지만 관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파슈는 작은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걸어가면서 랭던은 다른 피라미드를 언뜻 보았다.
  ‘역 피라미드.’
  중간층의 접합 부분에서 종유석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거대한 채광창이었다. 파슈는 아치 모양의 터널 입구로 통하는 짧은 계단으로 안내했다. 터널의 입구 위에는 ‘드농’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드농 관은 루브르의 3대구역(드농,쉴리,리슐리외)중 가장 유명한 구역이다.
  “오늘 만남은 누가 제안했습니까? 당신인가요. 아니면 관장인가요?”
  갑자기 파슈가 물었다.
  랭던은 질문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터널로 들어서면서 대답했다.
  “소니에르 씨가 제안한 것입니다. 몇 주 전의 관장의 비서가 전자메일로 연락해 왔습니다. 이번 달에 파리에서 강의가 있다는 얘기를 관장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습니다.”
  “뭘 의논하려 했지요?”
  “저도 모르죠. 하지만 예술에 관해서가 아니겠어요? 우리는 관심사가 비슷하니까요.”
  파슈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관장이 왜 만남을 제안했는지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얘기군요.”
  그랬다. 그 당시 랭던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크 소니에르는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기로 유명했고, 참석하는 자리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랭던은 자크 소니에르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랭던 씨, 관장이 살해된 오늘 밤에 당신과 무엇을 의논하려 했는지 짐작가는게 있습니까? 수사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질문의 신랄함에 랭던은 불쾌했다.
  “정말이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연락을 받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저는 소니에르 씨의 작업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제 수업 시간에 소니에르 씨의 원문을 종종 사용할 정도로요.”
  파슈는 수첩에 이 사실도 적어 넣었다.
  두 사람은 드농 관을 절반 정도 걸어왔다. 랭던은 벽 쪽에 두 개의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소니에르 씨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지난해의 대부분을 소니에르 씨의 주요 전문 분야를 다루는 책의 초고를 쓰는데 보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니에르 씨의 뇌를 끄집어내고 싶었지요.”
  파슈가 힐끗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파슈는 잘 이해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 주제에 관해서 소니에르 씨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는 얘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주제였습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랭던은 잠시 망설였다.
  “본질적으로, 원고 내용은 여신숭배에 관한 도상학입니다. 여성의 고결함에 대한 개념과 그와 연관된 예술과 상징들을 다루는 것이죠.”
  파슈는 두툼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소니에르 씨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만 ……”
  “알겠습니다.”
  랭던은 파슈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는 지상에 나타난 최초의 여신을 다룬 도상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소니에르는 다산, 여신숭배,위카(땅 혹은 대지에 바탕을 둔 종교로, 새로운 이교도의 하나) , 신성한 여성에만 열정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루브르 박물관장으로서 20년의 재임 기간 동안, 소니에르는 박물관에 여신과 관련된 지상의 예술품들을 최대한 수집하는 데 일조했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 델피 신전의 여제사장의 쌍도끼부터 시작해 금 지팡이, 서 있는 작은 천사들 같은 티예 앙크(여성의 생식기관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고리가 달린 T자 모양. 생식과 장수를 상징하며, 오늘 날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수백 점, 고대 이집트에서 사악한 영혼을 쫒아내는 데 쓰인 시스트럼(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여신 이시스 제사 때에 쓰던 금속악기) , 호루스를 기르는 여신 이시스의 모습을 묘사한 입상들의 당당한 진용에 이르기까지 루브르의 수집품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당신의 원고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당신 책에 도움을 주려고 만나자는 전화를 한 게 아닐까요?”
  랭던은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제 원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 초고 상태이니까요. 그리고 편집장 외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파슈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랭던은 다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원고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잃어버린 신성한 여성의 기호들>이란 가제를 달아둔 3백 페이지가량의 초고는 기존의 종교적 도해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논쟁거리가 될 새로운 해석을 들이대고 있었다.
  랭던은 작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파슈가 더 이상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춰 섰다. 돌아보자, 파슈는 5미터 정도 뒤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겠습니다. 아시겠지만 , 화랑은 걸어가기에는 꽤 머니까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파슈가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드농 관의 기다란 두 층을 오르는 수고는 덜어줄 터였다. 그러나 랭던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성마른 얼굴로 파슈는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뒤돌아보며 랭던은 한숨을 토해 냈다.
  ‘잘못 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랭던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랭던은 소년이었을 때 쓸모 없어진 우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구출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좁은 공간 안에서 철벅거리며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했었다. 그 후 폐쇄된 공간에서 병적인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스쿼시 코트 같은 곳 말이다.
  ‘엘리베이터는 안전한 기계다. 줄에 매달린 작은 금속상자일 뿐이야!’
  랭던은 스스로 타일렀지만, 결코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숨을 참으며 랭던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익숙한 아드레날린의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고작 이 층일 뿐이다. 십 초면 돼.’
  “당신과 소니에르 씨. 한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까? 편지 왕래도 없었습니까? 우편으로 뭔가를 주고받은 적은 없습니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파슈가 물었다.
  역시 이상한 질문이었다. 랭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없습니다.”
  그 사실을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처럼 파슈는 머리를 곧추세웠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파슈는 눈앞의 문짝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랭던은 자기를 둘러싼 네 벽들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쓰려고 노력했다. 반질반질한 엘리베이터 문에 반장의 넥타이 핀이 반사되어 비쳤다. 칠흑 같은 마노 보석 열세 개가 박힌 은제 십자가 모양이었다. 랭던은 적이 놀랐다. 열세 개의 보석이 박힌 십자가라는 뜻의 크룩스 젬마타(crux gemmata)라 불리는 상징이었다. 열세 개의 보석은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를 나타내는 기독교적인 표의문자였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랭던은 프랑스 경찰 반장이 자기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여기는 프랑스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 나라에서 기독교는 종교도 특권도 아니다.
  “이건 크룩스 젬마타입니다.”
  갑자기 파슈가 말했다.
  깜짝 놀란 랭던은 문에 반사된 파슈의 모습을 마주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멈추고 문이 열렸다.
  천장이 높기로 유명한 루브르 화랑의 확 트인 공간을 기대하면서, 랭던은 엘리베이터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가 걸음을 내디딘 세계는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랭던은 놀라서 멈칫했다.
  파슈가 흘끗 쳐다보았다.
  “랭던 씨, 관람 시간 이후의 루브르는 본 적이 없겠지요?”
  ‘그런 적은 없죠.’
  태도를 바로하려고 애쓰면서 랭던은 생각했다.
  빠짐없이 조명을 받는 루브르 화랑들이 오늘 밤엔 놀라울 정도로 어두었다. 위에서 비추는 관람용 흰색 조명 대신에, 조도가 낮은 붉은 조명이 바닥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간헐적인 붉은 조명 조각들이 타일 바닥위로 엎질러진 것 같았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쳐다보며, 랭던은 이런 장면을 예상했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대부분 일류 화랑들은 전략적으로 밤에는 조도가 낮고 , 덜 위협적인 붉은 조명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것은 야간에 경비요원들이 복도를 순찰할 때 , 그림이 빛에 과다 노출되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술품을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두기 위한 배려였다. 오늘 밤 박물관 안엔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보통 때라면 솟구쳐 보이는 아치형 천장이 낮고 어두운 공허한 공간으로만 보였다.
  “이쪽으로”
  파슈는 오른쪽으로 홱 돌더니 연결된 여러 개의 화랑을 지나갔다.
  파슈를 뒤따라가면서 랭던의 시력은 점차 어둠에 적응해갔다. 거대한 암실에서 현상되고 있는 사진들처럼 커다란 유화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점차 드러내고 있었다…… 랭던이 화랑을 지나갈 때, 그림들의 눈도 그를 따라왔다. 랭던은 박물관 특유의 익숙한 공기를 느낄수 있었다. 탄소 향이 희미하게 감도는 메마르고 탈이온화된 향기였다. 관람객들이 토해 놓은 부식성 강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사방에 설치된 석탄 필터가 장착된 산업용 습기 제거기 때문이었다.
  벽을 따라 올라간 높은 곳에서는 보안용 카메라들이 관람객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따.
  ‘우리가 당신을 보고 있다. 어느 것에도 손대지 마시오.’
  “모두 진짜인가요?”
  감시카메라를 가리키며 랭던이 물었다.
  “물론 아닙니다.”
  파슈는 고개를 저었다.
  랭던은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 크기의 박물관을 비디오로 감시한다는 것은 비용면에서도 말이 안되고, 효과 차원에서도 신통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비디오로 감시하려면, 몇백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큰 박물관들은 이제 봉쇄 정책을 펴고 있다. ‘도둑이 오지 못하게 막는 일은 그만두자. 차라리 도둑을 안에 가두어 버리자’는 의미다. 침입자가 예술품을 옮기려고 하면, 예술품이 있는 화랑 주변이 봉쇄되는 것이다. 도둑은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철창 안에 갇힌 자기 꼴을 보게 될 터였다.
  대리석 화랑 앞쪽에서 목소리들이 울려왔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오른쪽으로 쑥 들어간 큰 방에서 나오는 듯했다. 밝은 불빛이 복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장실입니다.”
  반장이 말했다.
  관장실로 다가가면서 랭던은 소니에르의 우아한 취미를 엿보았다. 따뜻한 재질의 목재, 나이든 거장의 그림들, 엄청나게 큰 골동품 스타일의 책상, 그 위에는 완전 무장한 60센티미터 정도의 중세 기사상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은 전화를 하고 뭔가를 받아 적는 경찰 요원들로 북적거렸다. 그들 중 한명은 소니에르의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관장실은 오늘 저녁 DCPJ의 임시 본부가 된 모양이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듣고 계십니까?”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랭던은 호텔 문 앞에서부터 출입 허가증을 달고 있었다. 파슈와 랭던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한 무리의 요원들을 남겨두고, 파슈는 랭던을 어두운 홀 아래로 안내했다. 루브르의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대화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0미터정도 앞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소중한 이탈리아 걸작품들이 모여 있는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방이다. 랭던은 이미 이곳에 소니에르의 시신이 누워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명한 기하학 문양의 마룻바닥이 폴라로이드 사진에 한치의 실수도 없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출입구는 거대한 강철 격자로 막혀 있었다. 중세의 성채들에서나 이용 했을 법한 격자다.
  “봉쇄용 보안 철창입니다.”
  격자 가까이 다가가서 파슈가 말했다.
  어둠 속의 철창은 탱크라도 가둘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랭던은 희미하게 불을 밝힌 동굴같은 대화랑을 철창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먼저 들어가십시요. 랭던 씨.”
  랭던은 돌아섰다.
  ‘나 먼저 들어가라고? 어디로’
  파슈는 격자 밑부분의 바닥을 몸짓으로 가리켰다.
  랭던은 아래를 보았다. 어둠속이라 눈치 채지 못했지만, 철창은 60센티미터가량 들어 올려져 있었다.
  “이곳은 루브르 보안요원들에게는 아직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경찰 과학수사국(PTS)에서 나온 저희 팀이 지금 막 조사를 끝냈습니다.”
  파슈가 입구를 가리켰다.
  “아래로 들어가십시오.”
  랭던은 겨우 기어 들어갈 좁은 공간을 응시하다고, 위에 매달린 육중한 철문을 올려다보았다.
   ‘농담이겠지?‘
  철문은 침입자를 내리치려고 기다리는 단두대 같았다.
  파슈가 프랑스어로 뭐라고 툴툴거리더니 시간을 체크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덩치 큰 몸을 숙여 철창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파슈는 철창 사이로 랭던을 뒤돌아보았다.
  랭던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을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 짚은 채, 배를 바닥에 깔고 앞으로 끌었다. 그러나 입고 있던 해리스 트위드의 목덜미가 철창에 걸려 찢어지고, 뒤통수를 철문에 박고 말았다.
  ‘아주 우아하군. 로버트.’
  서투르게 철창 밑을 빠져나온 후 일어서면서, 랭던은 오늘 밤이 아주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오푸스 데이의 새로운 미국 본사이자 회담 센터인 머리 힐은 뉴욕의 렉싱턴 가 24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1만 2천 평방미터짜리 빌딩은 4천 7백만 달러 이상이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고, 붉은 벽돌과 인디애나 석회암으로 치장되어 있다. 메이 앤 핀스카가 디자인했고, 빌딩 안에는 백 개가 넘는 침실과 여섯 개의 식당, 도서실 거실 회의실 사무실이 있다. 2층과 8층,16층에는 목공예와 대리석으로 장식된 교회가 있고, 17층은 모두 주거 지역이다. 남자들은 렉싱턴 가에 위치한 정문으로 드나들었지만, 여자들은 다른 쪽에 있는 출입문을 사용해야 했다. 이 건물 안에서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항상 분리되어 있었다.
  이른 저녁, 마누엘 아링가로사 주교는 자신의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전통적인 검정 사제복을 입고 작은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허리에 자줏빛 띠를 둘렀을 테지만, 오늘 밤은 일반인들과 섞여서 여행할 참이었다. 주교는 자신의 높은 지위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로지 예리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만이 14캐럿짜리 자수정과 커다란 다이아몬드들, 그리고 수공예로 만든 미트라(주교들이 의식 때 쓰는 관)모양의 홀이 박힌 금반지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행가방을 어깨에 짊어지면서 주교는짧은 기도를 올리고 아파트를 나섰다. 운전사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은 아링가로사는 창문을 통해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주교는 자기만의 별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전투는 승리할 것이다.’
  한 달 전 자신의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대항해서 아무런 힘도 쓸수 없던 것을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었다.
  오푸스 데이의 수장으로서, 아링가로사는 지난 10년 간 자신의 삶을 오푸스 데이. 즉 ‘신의 사업’에 관한 복음을 널리 알리는 데 바쳐왔다. 1928년 스페인 사제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설립된 이 단체는 보수적인 카톨릭 가치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리고 회원들에게는 신의 사업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할 것을 권고했다.
  오푸스 데이의 전통철학은 프랑코 독재시절 이전의 스페인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34년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의 정신이 담긴 <길>의 출간과 함께 에스크리바의 메시지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책에는 평소 생활하면서 신의 사업을 행할 수 있는 999개의 명상이 수록되어 있었다. 현재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4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므로 오푸스 데이의 힘은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오푸스 데이의 건물과 교육센터, 심지어 대학교까지 찾아볼 수 있다. 오푸스 데이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재정도 가장 안정된 가톨릭 교파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종교적인 냉소와 예찬, 텔레비전 선교사들이 판치는 요즘 시대에 날로 확장되는 오푸스 데이의 부와 힘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아링가로사는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푸스 데이를 뇌를 세척하는 종교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초보수적인 기독교의 비밀 분파라고도 합니다. 어느 쪽입니까?”
  기자들이 가끔 묻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주교는 끈기 있게 대답했다.
  “그 어느쪽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톨릭 교리를 열심히 따르는 일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신의 사업이란 게 반드시 수입의 십 분의 일을 헌금으로 내고, 순결에 대한 서약과 채찍질이나 말총 허리띠를 통한 속죄를 포함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오푸스 데이의 극히 일부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에는 여러 참여 단계가 있습니다. 수천 명의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결혼을 했고, 가정이 있으며, 자기들이 속한 사회에서 신의 일을 행합니다. 그밖의 사람들은 오푸스 데이의 수도원에서 고행의 삶을 선택했지요. 이러한 선택은 모두 개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푸스 데이의 모든 사람들은 신의 사업을 행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확실히 경탄할 만 한 원정이지요.”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논리가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는 항상 스캔들을 파고 들었다. 대부분의 큰 조직들처럼 오푸스 데이 역시 조직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잘못 인도된 몇몇 영혼들이 회원으로 있었다.
  두 달 전, 오푸스 데이 그룹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환락 상태를 종교 체험이라 믿고 환각제에 취한 신입회원들을 붙잡았다. 또 다른 대학교의 학생은 갈고리가 박힌 말총 허리띠를 하루 권장시간인 두 시간 넘게 사용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삶에 환멸을 느낀 보스턴의 한 젊은 금융투자자가 자살을 기도하기 전에, 자기의 전 재산을 오푸스 데이에 넘긴다고 서명한 사건도 있었다.
  ‘잘못 인도된 양 떼 무리들.’
  마음은 신도들에게 향한 채 아링가로사는 생각했다.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일은 FBI스파이. 로버트 한센의 공개재판이었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한센이 오푸스 데이의 신실한 회원이라는 것과, 자기방에 비디오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센의 친구들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한센이 자기 부인과 성행위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판사는 ‘독실한 가톨릭 교인의 유희로는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슬프게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푸스 데이의 감시 네트워크(ODAN)라고 알려진 새로운 감시단체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단체의 인기 웹사이트인 www.odan.org는 오푸스 데이 구회원들의 증언을 빌려 ,오푸스 데이 가입을 경고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오푸스 데이를 ‘신의 마피아’ 혹은 ‘그리스도의 제사’로 치부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링가로사는 오푸스 데이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는지 비평가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푸스 데이는 바티칸의 전적인 승인과 축복을 받고 있었다.
  ‘오푸스 데이는 교황 자신의 개인적인 교파다.’
  하지만 최근에 오푸스 데이는 미디어보다 훨씬 강력한 힘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아링가로사 자신도 몸을 숨길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적 …… 다섯달 전에 힘의 균형이 변화무쌍하게 흔들린 사건이 있었다. 아링가로사는 그 충격에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시작한 전쟁을 아직 모르고 있어.”
  비행기 창문 밖으로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며 아링가로사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순간 아링가로사의 눈은 비행기 창에 비친 낯선 자기 얼굴에 머물렀다. 납작하게 흰 코가 어두운 장방형의 얼굴을 지배하고 있었다. 코는 젊은 선교사 시절 , 스페인에서 한방 얻어맞아 주저앉은 것이다. 신체 결함은 이제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아링가로사는 영혼의 세계에 있지, 육체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포르투칼의 해안을 통과할 때, 아링가로사의 사제복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 전화기가 진동했다. 비행 도중 휴대 전화기의 사용을 금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통화는 놓칠 수 없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번호를 알고 있고, 그 사람이 이 휴대 전화기를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흥분된 감정으로 주교는 조용히 대답했다.
  “네?”
  “사일래스가 쐐기돌의 행방을 알아냈소. 돌은 파리에 있소. 생 쉴피스 교회 안이오.”
  전화를 건 사람이 말했다.
  아링가로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까이 있군요.”
  “즉시 쐐기돌을 얻을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의 힘이 필요하오.”
  “물론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십시오.”
  휴대 전화기의 전원을 껐을 때, 아링가로사의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공허한 밤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주교는 자신이 벌이기 시작한 일 때문에 난쟁이처럼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일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알비노는 물이 담긴 작은 대야 앞에 서 있었다. 등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문질러, 붉은 피가 물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히솝(히솝풀. 성서의 우술초로 , 유대인은 부정을 없애는 의식에 그 가지를 썼다.)으로 나를 정화시키리라. 그럼 나는 깨끗해질 것이다.’
  찬송가를 인용하면서 사일래스는 기도했다.
  ‘나를 씻자. 그럼 나는 눈보다 하얗게 될 것이다.’
  사일래스는 한동안 느끼지 못하던 어떤 예감이 솟아남을 알 수 있었다. 그 예감은 사일래스를 전율케 했다. 지난 10년간 사일래스는 자기의 죄를 씻고, 새 생활을 시작하고, 과거의 폭력성을 지우면서 <길>의 내용을 따랐다. 하지만 오늘밤, 모든 것이 힘차게 돌아오고 있었다. 묻어 버리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싸우던 증오가 다시 샘솟고 있었다. 자기의 과거가 이토록 빠르게 떠오르는 것에 사일래스는 놀라고 있었다. 물론 과거의 기억과 함께 기술도 생각났다. 거칠지만 아주 유용한 기술이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평화…… 비폭력……사랑.’
  이것은 사일래스가 처음으로 받은 가르침이다. 그는 이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말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힘으로 신을 위협하는 자들은 힘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확고 부동한 힘과 말이다.’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병사들은 자기들의 신념을 꺾으려는 자들에 대항해 그들의 신념을 지켜왔다. 오늘 밤 사일래스는 그 전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상처를 말리면서 사일래스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었다. 양모로 만들어진 어두운 색깔의 망토는 사일래스의 흰 피부와 머리카락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허리에 매단 밧줄을 꽉 죄면서, 사일래스는 후드를 머리위로 뒤집어썼다. 거울 속에서 사일래스의 붉은 두 눈은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바퀴는 구르기 시작했다.’

6

  보안 철문을 기어 나온 로버트 랭던은 대화랑의 입구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랭던은 길고 깊은 협곡 같은 화랑 입구를 응시했다. 화랑의 양쪽에는 9미터 높이의 벽이 어둠 속에서 증발하듯 솟아 있었다. 천장 케이블에 매달린 다 빈치와 티치아노, 카라바조의 멋진 작품들 사이로 야간 조명등이 부자연스러운 붉은 불빛을 발산하며 위를 향해 있었다. 귀족과 정치인의 초상화를 비롯해 정물화와 종교적인 장면, 풍경화 들이었다.
  대화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많은 관람객에게 더 놀라운 경험은 기하학 패턴으로 유명한 마룻바닥이다. 대각선의 참나무 널빤지를 눈부신 기하학 디자인으로 배열한 마룻바닥은 시각적인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닥의 다차원적인 네트워크는 관람객들에게 매 걸음 변하는 표면위로 화랑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마룻바닥의 무늬를 따라가던 랭던의 눈에 예기치 못한 물체가 잡혔다. 랭던 왼쪽으로 2,3미터 앞에 떨어져 있는 물체 주위에는 경찰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랭던은 파슈를 향해 돌아섰다.
  “바닥에 있는 저것 …… 카라바조의 작품입니까?”
  쳐다보지도 않고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하건대, 그 그림은 2백만 달러도 더 나갈 터였다. 그런데 폐기된 포스터 그림처럼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도대체 저 그림이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겁니까?”
  파슈는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곳은 범죄 현장입니다. 랭던 씨,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저 캔버스는 관장이 벽에서 잡아 뜯어낸 것입니다. 관장은 그렇게 해서 보안 시스템이 움직이게 한 거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마음에 그려보며 랭던은 입구를 뒤돌아보았다.
  “관장은 자기 사무실에서 공격을 받고, 이 대화랑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벽에서 잡아떼어, 보안 철문을 작동시킨 겁니다. 즉시 모든 출입구가 차단되면서 철문이 떨어졌을 겁니다. 철문이 내려진 여기가 대화랑으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입구입니다.”
  랭던은 혼란을 느꼈다.
  “그럼 관장이 대화랑 안에서 범인을 잡았단 말입니까?”
  파슈는 고개를 저었다.
  “보안 철문은 소니에르와 범인을 갈라놓았습니다. 살인범은 홀 저쪽에 있었죠. 그리고 이 철문을 통해 소니에르를 쐈습니다.”
  파슈는 그들이 막 기어서 통과한 철문의 쇠창살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오렌지색 딱지가  매달려 있었다.
  “PTS 팀이 철문에서 탄흔 잔재를 찾아냈습니다. 범인은 쇠창살 사이로 총을 쐈고, 소니에르 씨는 여기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랭던은 소니에르의 시신이 담긴 사진을 떠올렸다.
  ‘경찰은 소니에르 스스로 했다고 하는데……’
  랭던은 앞에 펼쳐진 광대한 규모의 화랑을 쳐다보았다.
  “그럼 소니에르 씨의 시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파슈는 십자형의 넥타이 핀을 바로잡은 뒤 걷기 시작했다.
  “잘 아시겠지만, 대화랑은 상당히 깁니다.”
  랭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화랑의 길이는 대략 450미터, 워싱턴 기념비 세 개를 합쳐놓은 것과 같다. 화랑의 폭 역시 숨을 들이쉴 만은 했다. 열차 두량을 나란히 세워 놓은 넓이 정도는 되었다. 화랑의 중앙에는 군데군데 입상들과 거대한 도기품들이 전시되어 복도를 멋스럽게 가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한쪽 벽을 따라 관람하다가, 반대편 벽으로 돌아가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파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면을 주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많은 걸작들을 일별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랭던은 무례하게만 느껴졌다.
  ‘어차피 이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야.’
  랭던은 자신을 달랬다.
  조도가 낮은 붉은색 조명등은 불행히도 바티칸 비밀문서 보관소의 붉은 조명 아래에서 겪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밤은 로마에서 죽을 뻔한 그날과 매우 유사했다. 랭던은 다시 비토리아를 떠올렸다. 수개월 동안 비토리아는 랭던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로마에서 겪은 일이 겨우 1년 전이라는 것을 랭던은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수십년은 지난 것 같았다.
  ‘또 다른 삶.’
  비토리아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지난 12월이었다. 엽서에는 분규물리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자바해로 떠난다는 내용이 씌어있었다. 쥐가오리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무슨 물리학이라고 했다. 랭던은 비토리아 베트라 같은 여자가 대학 캠퍼스에서 자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결코 품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로마에서의 만남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열망을 마음에 심어놓았다. 독신생활에 대한 오랜 애착과 거기서 얻는 자유로움이 어느틈엔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예상치 못한 공허감이 랭던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랭던과 파슈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이렇게 멀리까지 갔습니까?”
  “소니에르 씨는 위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서서히 죽어 갔을 겁니다. 십 오분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렸겠지요. 분명히 소니에르 씨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랭던은 섬뜩해서 돌아보았다.
  “보안요원이 도착하는 데 십오 분이나 걸렸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경보음이 울리면 박물관 보안요원은 즉시 행동합니다. 그들은 대화랑이 봉쇄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쇠창살을 통해 화랑안.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지요.  보안요원들이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고 합니다. 필시 범인일 거라 가정하고, 규정대로 사법경찰에 연락한 것입니다. 우리가 도착해서 철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들어올리고, 저는 무장한 요원 부대를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요원들은 화랑을 점거해 가면서 침입자를 구석으로 몰아갔지요.”
  “그리고요?”
  “안에서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니에르 씨외에는요.”
  파슈는 저 멀리 아래쪽을 가리켰다.
  랭던의 시선이 파슈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파슈가 화랑 중앙의 커다란 대리석 입상을 가리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상을 지나, 30미터쯤 지난 지점에 휴대용 조명기구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마룻바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진홍색 화랑 안에서 하얀 조명을 받고 있는 부분은 정말이지 섬처럼 보였다. 빛 한가운데에는 현미경 밑에 놓인 벌레처럼 관장의 시신이 마룻바닥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사진을 봤을 테니,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겁니다.”
  파슈가 말했다.
  시체로 다가가면서 랭던은 차디찬 냉기를 느꼈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가장 기이한 장면이 앞에 있었다.
  자크 소니에르의 핏기 없는 시신은 사진에서처럼 바닥에 누워있었다. 랭던은 강한 조명 불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시신 위로 몸을 숙였다. 기묘한 형태로 자기 몸을 배열하느라 삶의 마지막 몇 분을 써버렸을 소니에르가 다시금 놀라웠다.
  소니에르는 제 나이에 맞는 노인으로 보였다. 모든 근육조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걸치고 있던 모든 옷가지들은 벗어서, 마루 위에 단정하게 놓아두었다. 소니에르는 자기 등을 화랑의 긴 축과 정확히 일치시켜 폭 넓은 화랑 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팔과 다리는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나 아이들이 만든 눈 천사처럼 바깥쪽으로 뻗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사지를 벌린 사람처럼 보였다.
  총알이 살을 뚫고 지나간 듯 갈비뼈 바로 아래에는 피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바닥에 흘러내린 양이 적은 것을 보니, 놀랍게도 거의 피를 흘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니에르의 왼쪽 집게손가락은 피투성이였다. 자기 손가락을 상처 부위로 쑤셔 넣은 게 틀림없었다. 소니에르는 자신의 피를 잉크삼고 벌거벗은 복부를 캔버스 삼아, 배 위에 기호 하나를 그려놓은 것이다. 오각형의 별 모양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직선이었다.
  ‘별표.’
  소니에르의 배꼽에 중심을 둔 별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는데, 현장을 직접 목격하니 마음이 더욱 편치 않았다.
  ‘소니에르가 직접 했다.’
  “랭던씨?”
   파슈의 짙은 눈동자가 다시 랭던에게 머물렀다.
  답하는 랭던의 목소리는 거대한 공간의 내부가 텅 빈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것은 별표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호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사천 년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을 겁니다.”
  “무엇을 뜻하는 거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랭던은 항상 망설였다. 하나의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얘기한다는 것은 노래가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지 얘기하는 것과 같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의미는 달랐다. 미국에서 KKK(Ku Klux Klan) 집단의 하얀 모자는 증오와 인종차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종교적 신념의 의미를 갖는 의복의 하나다.
  “기호를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기본적으로 별표는 이교도의 종교적 기호입니다.”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숭배로군요.”
  “아닙니다.”
  어휘 선택이 더 명확했어야 함을 깨닫고 랭던은 즉시 말을 고쳤다.
  요즘들어, ‘이교도(pagan)’라는 용어는 악마숭배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몰이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시골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파가누스(paganus)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교도‘는 자연 숭배처럼 오래된 시골풍의 종교를 고집하면서, 기독교에서 볼 때 아직 교화되지 않았거나 교리 따위를 주입받지 않은, 문자 그대로 시골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실 , 시골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두려움은 너무커서, 한 때 시골 사람(villager)을 뜻하던 무해한 단어가 악당(villain)이라는 사악한 영혼을 나타내는 단어를 낳기까지 했다.
  “별표는 자연숭배와 관련된 기독교 이전의 기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남자와 여자죠. 신과 여신이 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양이라고도 하죠. 음양이 균형을 잘 이룰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룹니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혼돈이 생기죠.”
  랭던은 소니에르의 복부를 가리켰다.
  “이 별표는 모든 것의 반쪽인 여자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종교 역사가들이 ‘신성한 여성’ 또는 ‘성스러운 여신’이라고 부르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소니에르 씨 역시 이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소니에르 씨가 자기 배 위에다 여신의 기호를 그렸다는 말입니까?”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랭던은 그렇다고 해야만 했다.
  “가장 구체적으로 해석하자면, 별표는 성애와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기호화한 것입니다.”
  알몸의 시신을 바라보며 파슈는 신음소리를 냈다.
  “초기 종교는 자연의 신성한 질서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여신 비너스와 행성인 비너스, 즉 금성같은 것이었죠. 여신은 밤시간 동안 하늘을 지배했고, 수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너스,동방의 별, 이슈타르, 아스타르테. 모두 자연과 어머니인 지구와 연결된 강력한 여성형 개념입니다.”
  파슈는 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든 간에 악마숭배라는 개념이 더 마음에 드는 듯 말이다.
  랭던은 별표의 가장 놀라운 의미는 설명하지 않았다. 비너스와 관련된 그래픽의 기원이었다. 천문학도 시절, 8년마다 황도를 가로지르는 금성, 즉 비너스의 자취가 완벽하게 별 모양을 그린다는 것을 배우고 랭던은 기절할 뻔했다. 이 현상을 관찰한 옛날 사람들도 랭던처럼 매우 놀랐고, 비너스와 그 별 모양은 완벽, 아름다움 그리고 성애의 순환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마법 같은 비너스의 매력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게임을 조직할 때 비너스의 8년 주기를 도입했다. 현대 올림픽 게임의 스케줄이 여전히 비너스 주기의 절반을 따른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오각형의 별 모양이 공식 올림픽 휘장이 될 뻔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조화와 포용이라는 올림픽 게임의 정신을 더 잘 나타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오각형 별은 교차하는 다섯 개의 고리로 바뀐 것이다.
  파슈가 불쑥 끼어들었다.
  “랭던 씨, 저 별은 분명히 악마와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네 미국 공포영화들이 그 점을 분명히 보여주지 않습니까?”
  랭던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맙군, 할리우드.’
  악마 같은 연쇄 살인범 영화에서 오각형 별은 이제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 다른 악마부호들과 함께 사탄 추종자들의 아파트 벽에 휘갈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쓰인 기호를 보면, 랭던은 항상 실망스러웠다. 별의 진짜 기원은 아주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리, 별 모양에 대한 악마적인 해석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개념의 기원은 정확합니다. 하지만 별이 상징하는 개념은 수천년을 거치며 왜곡되어 왔지요. 이번 경우에는 유혈 참사에서 쓰였고요.”
  “제가 설명을 잘 따라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랭던은 파슈의 십자형 넥타이 핀을 흘끗 쳐다보았다. 말의 요점을 어떻게 잘 표현해서 이해시켜야 할지 난감했다.
  “교회 말입니다. 반장님. 기호들은 아주 복원력이 강합니다. 하지만 별 모양의 의미는 초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바뀌어 버렸지요. 이교도를 뿌리뽑고 대중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목적으로 바티칸이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 일부가 이교도의 신과 여신들에 대한 더러운 캠페인이었습니다. 신성한 상징들을 악한 것으로 둔갑시킨 겁니다.”
  “계속하십시오.”
  “난리통인 시대엔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롭게 출현한 권력은 기존의 기호들을 접수해서, 그 의미를 지워버리기 위한 시도로 두고두고 기존의 기호들을 폄하합니다. 이교도의 상징과 기독교의 상징이 맞붙은 전쟁에서, 이교도가 진 것이죠.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악마의 갈퀴가 되고, 지혜로운 할머니의 뾰족한 모자는 마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너스의 별이 악마의 기호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랭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불행하게도, 미국 육군 역시 별 모양의 의미를 오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별 모양은 전쟁을 나타내는 첫쨰 상징이 되어 버렸죠. 모든 전투기에 별을 그려 넣었고, 모든 군 장성들의 어깨에는 별이 달려 있으니까요.”
  ‘사랑과 미의 여신에게 너무한 일이지.’
  파슈는 독수리처럼 펼쳐진 시신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군요. 그럼 이 시신의 자세는요? 뭔가 짐작되는 거라도 있습니까?”
  랭던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 자세는 별 모양과 신성한 여성의 관계를 단지 보강하고 있습니다.”
  파슈의 표정이 흐려졌다.
  “무슨 말씀인가요?”
  “반복입니다. 기호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를 강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죠. 소니에르씨는 자기 몸으로 별 모양을 만든 겁니다.”
  ‘별 하나가 좋은 거면, 두 개는 더 좋으니까.’
  매끄러운 머리를 다시 한 번 쓸어 넘기면서, 파슈의 눈은 소니에르의 두 팔과 두 다리, 머리의 다섯 꼭지점을 훑고 지나갔다.
  “흥미로운 분석이군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럼 저 알몸은?”
  파슈는 늙은 남자의 벌거벗은 몸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듯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소니에르 씨는 왜 옷을 벗었을까요?”
  ‘빌어먹을, 좋은 질문이군.’
  랭던 역시 사진을 본 순간부터 궁금했다. 랭던의 추측은 전라의 육체 역시 성애의 여신인 비너스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 문화는 남녀의 육체 결합과 비너스의 관계를 많은 부분 지워버리고 있지만, 날카로운 어원학의 눈으로 보면 비니리얼(venereal : ‘성교의 , 성교로 일어나는’의 뜻)이라는 단어에서 비너스의 본래 의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랭던은 여기까지는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파슈 씨, 소니에르 씨가 왜 자기 몸에 기호를 그렸는지, 왜 이런식으로 자기 몸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명백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크 소니에르 같은 분은 별을 여성 신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호와 신성한 여성의 상관관계는 역사가들이나 기호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자기 피를 잉크로 쓴 것은요?”
  “쓸 수 있는 다른 도구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파슈는 잠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나는 …… 경찰이 어떤 법정 절차를 따를지를 예상하고 소니에르씨가 피를 사용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
  “이 왼손을 보십시오.”
  랭던은 관장의 창백한 팔을 지나 왼손까지 살펴보았지만 ,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몸을 숙여 들여다보다가, 놀랍게도 관장이 커다란 펠트펜을 꽉 쥐고 있음을 알아챘다.
  “우리가 소니에르 씨를 발견했을 떄 이것을 쥐고 있어습니다.”
  파슈는 랭던을 남겨두고 5,6미터 떨어진 곳에 놓인 이동식 탁자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여러 전선과 전자기구, 수사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탁자 둘레를 걸으며 파슈가 물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펜을 잘 아십니까?”
  펜의 상표를 보기 위해 랭던은 더 깊숙이 몸을 숙였다.
  ‘뤼미에르 누아르 스타일.’
  랭던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불가시(不可視)광선 펜 또는 워터마크 첨필로 알려진 특수 펠트펜은 원래 박물관 사람이나 예술품 복원가, 위조 감식 경찰관들이 고안한 것으로, 물건에 보이지 않는 표시를 해둘 때 사용한다. 부식되지 않는 알코올 바탕의 형광 잉크로 쓰인 첨필은 오로지 불가시광선에서만 보인다. 요즘의 박물관 보수 유지 직원들은 매일매일 박물관을 순찰할 때 이 펜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복원이 필요한 미술품들의 액자에 보이자 않게 V표시를 해둔다.
  랭던이 일어서자, 파슈는 하얀 조명기로 걸어가서 전원을 꺼버렸다. 화랑은 순식간에 어둠에 파묻혔다.
  랭던은 불안했다. 파슈의 몸이 밝은 자주색 조명 아래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파슈는 휴대용 전등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자주색 빛이 안개처럼 파슈를 감싸고 있었다.
  자줏빛으로 눈을 빛내면서 파슈가 말했다.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경찰은 피나 다른 법정 증거를 찾기 위해 범죄 현장을 조사합니다. 이때 불가시광선 조명을 사용하죠. 이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이 되실 겁니다……”
  파슈는 불쑥 시체의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를 보던 랭던은 놀라 펄쩍 뛰었다.
  자기 앞 마룻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기묘한 광경을 보았을 때, 랭던의 심장은 무섭게 뛰었다. 관장이 휘갈겨쓴 필기체 글씨가 관장의 몸뚱아리 옆에서 보라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관장이 남긴 마지막 문장을 바라볼수록, 랭던은 오늘 밤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
  문장을 다시 한 번 읽고 난 랭던은 파슈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이죠?”
  파슈의 눈동자가 하얗게 빛났다.
  “선생, 정확하게 그서이 당신이 여기에서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소니에르의 사무실에서는 콜레 부관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와, 관장의 거대한 책상 위에 설치된 오디